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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내외향의 완벽한 비쥬얼도 상쇄하지 못할, 스토리와 캐릭터의 아쉬움 <사냥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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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넷플릭스



2011년 단 한 편의 영화 <파수꾼>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중추이자 한국영화 최대 기대주로 떠오른 윤성현 감독, 10대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섬세하게 표현해 찬사를 받았다. 꾸준히 한국 독립영화를 봐온 필자에게도, 이 영화는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한공주> <벌새>와 함께 '위대한' 한국 독립영화 중 하나로 기억된다.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차기작을 내놓지 않았다. 


그 사이 <파수꾼>의 주연들 이제훈과 박정민은 충무로 유망주의 자리를 넘어 연기력과 흥행력을 두루 갖춘 충무로 스타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 소문이 들렸다. 이제훈과 박정민이 중추적 역할을 맡을 거라고도 했다. 소문만 무성하던 끝에 2020년 2월 개봉이 확정되었고, 곧 2020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우뚝 섰다. 최우식, 안재홍, 박해수도 함께하니 만큼 기대가 치솟았다. 베를린 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코로나 이슈와 넷플릭스 해외 판권 이슈의 악재를 지나 결국, <사냥의 시간>은 2020년 4월에 넷플릭스로 공개되었다. 영화 외적 잡음을 압도적으로 잠재울 압도적이고도 파괴적인 영화를 목도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관객들의 융단폭격이 시작되었다. 대체로, 압도적인 비쥬얼과 처참한 스토리을 말하며 처참한 스토리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스토리로 찬사를 받은 윤성현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인데,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방구석의 작은 스크린이 아닌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달랐을까 하는 의구심도 풀어보려 한다. 


'헬조선 탈출기'에서 '사냥의 시간'으로


망해 가는 한국, 청년 장호와 기훈은 3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는 준석을 마중한다. 들어 보니, 3년 전 그들은 함께 작당모의하여 거사를 치르다가 준석만 잡혀 들어갔던 것이다. 물론 준석이 주도자였다. 그런데, 준석은 출소하자마자 보다 거대한 일을 벌이려 한다. 동네 불법 도박장 금고를 털자고 장호와 기훈을 끌어들인다. 그곳은 당연히 조폭들이 관리하는 곳, 잘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장호와 기훈은 꺼려 하지만, 도박장에서 일하는 친구 상수를 끌어들여 작전을 계획하고 개시한다. 


친한 총포상 형 봉식한테 총들을 얻어 도박장 금고를 털어서는, 역시 친한 형님 빈대한테 대만의 섬 컨딩으로 밀항을 해서, 꿈에나 그리던 에메랄드 빛 바다와 푸른 하늘을 보며 편안하게 살아가자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나름 철저한 리허설로 도박장 털기 작전은 훌륭하게 성공한다. 상수는 조금 더 다니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셋은 출발하기 전에 기훈의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계획 성공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한'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엄청난 잠행술과 추격술과 사격술로 그들을 쫓기 시작한다. 상수를 처치하고 손쉽게 셋의 뒤를 쫓아 맞딱뜨린 한, 보다 재밌는 '사냥의 시간'을 즐기고자 한 번 놔 준다. 도시를 넘어와 도망친 세 친구, 빈대가 소개해 준 아무도 모르는 건물에 잠행하며 밀항을 준비하고 기훈은 부모님이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찾아오지 못할 거라 믿고는 쉬고 있던 둘에게 여지없이 한이 다다르는데... 과연 한의 추격 사냥을 뿌리치고 무사히 밀항할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의 걸맞는 비쥬얼


영화 <사냥의 시간>은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를 표방한다. 모든 게 무너지다시피 하여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청년들이 크게 한탕해 희망이 살아숨쉬는 곳으로 탈출해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게 전체적 맥락이다. 청춘들이 흔히 꿈꿀 만한 헬조선 탈출기에서 시작한 영화는, 제목 그대로 정체불명의 추격자 한이 펼치는 사냥의 시간으로 돌변한다. 훔친 돈을 전부 돌려 준다는 데도 오직 한 번 찍은 놈은 끝까지 추격해 죽이고 만다는 사냥을 목적으로 한 '한'의 알 수 없는 집념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영화의 외향은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 장르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와중에 컴컴하면서 붉디 붉은 도시, 그곳에서 사람이 살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일단 분위기 조성은 OK. 한의 과정을 생략한 잠행술은 서늘함 그 자체이고, 뛰어다니지 않고 조용히 총을 그것도 정확하게 겨누고 있는 총격술은 예술 그 자체이다. 여기에 참을 수 없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배경음악이 한몫해, 스릴러로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극단을 만들어냈다. 


외향적 비쥬얼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내향적 비쥬얼까지 완벽히 조성해 낸 것이다. 방구석 스크린으로 보았는데도 이 정도라면, 영화관 스크린으로 감상했으면 소위 '난리'날 뻔했다. 심장 밖으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느낌이 아닌, 심장 안으로 근육이 조여오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을 게 분명하다. 이 영화에서 이 점들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에서 보여 준 섬세함을 보다 확장시켜 보여 주는 데 성공했다. <사냥의 시간>에서는 그것만 보여 주었고 그것을 통해 핵심을 보여 주지 못한 게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소홀히 대한 '캐릭터'의 아쉬움


<사냥의 시간>은 '사냥의 시간'을 보여 주는 데 전심전력을 쏟았다. 그 시간의 기가 막힌 외향 및 내향 비쥬얼을 통해 현재 우리 청년들이 당면한 상황 또는 사회의 단면이나 현상을 비유/은유적으로 풀어내길 바랐는데, 전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에 있지 않나 싶다. 네 청년 친구와 '한'이라는 추격자까지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다는 건 둘째치고, 영화 전체에서 '캐릭터'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데 가장 소홀히 대하는 게 '캐릭터'들이다. 


단순히 개개인의 사연이 없다는 수준이 아니라 앞뒤 없이 본체만 덩그러니 던져진 것 같고, 캐릭터를 소모시킬 때 성의가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스토리의 맥락도 함께 들춰내 버리게 된 것이다. 즉, 훌륭한 배우들이 분한 캐릭터들을 잘 살렸으면 스토리도 함께 자연스럽게 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처참한 스토리가 도드라져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는 스토리가 처참한 것보다 캐릭터가 처참했다. 


최근 비쥬얼텔러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2017년 <악녀>, 2018년 <마녀> <PMC: 더 벙커> 등이 독특한 액션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바 있다. <사냥의 시간>도 비쥬얼텔러의 약진으로 소개될 만하다. 물론, 액션이라기보다 분위기 조성 면에서 말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건 액션과의 동질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공통적으로 스토리 또는 캐릭터에 지극한 약점을 노출했다. 이들 영화에서 완벽을 기대할 순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겠지만, 한 면의 신선함 내지 대단함이 한 면의 아쉬움을 상쇄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냥의 시간>이 과연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값진 타이틀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비쥬얼적 성공조차 영화관 스크린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상당 부분 빛을 발할 테니 말이다. 여타 '큰 영화'들처럼 좀 더 기다렸다가 넷플릭스 아닌 극장 개봉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크게 달라질 건 없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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