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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인류에게 대재앙을 선사할 쓰레기... 그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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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문학동네)는 대재앙 이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살아남은 아버지와 아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를 길을 카트를 끌고 걸으며, 생존을 위해 쓰레기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로 입고 먹고 잔다. 지금이야 거지나 노숙자처럼 보이겠지만, 종말 후의 쓰레기는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묵시록적인 비전을 보여주며 성서에 비견될 작품으로 칭송받는 이 소설을. 과도한 소비 지상주의로 물든 세상이 무너진 뒤의 재활용 시대 세계 보고서로 해석하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감히 단언하건데, 쓰레기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미 세계의 종말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쓰레기 수집 또는 쓰레기 재활용은 이미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형이나 언니한테 옷가지 등을 물려받은 일, 슈퍼에 빈 병을 팔아 돈을 받은 일, 바자회에서 물건을 사고나 판 일, 초등학교 때 반의무적으로 폐품을 수집해 제출(?)한 일 등. 나열한 일들 말고도 훨씬 다양한 사례들이 있을 테다.

 

위 사례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 없어진 물건은 사실 쓰레기가 되기 마련인데, 그 쓰레기들이 나에게 돈이 되어 돌아오고 누군가에게 알맞은 상품이 되고 재활용되어 새롭게 탈바꿈한다는 사실 말이다. 오래전 소비 지상주의 사회가 된 우리 사회이지만, 그에 대한 고찰 또한 같이 해왔던 것이다.

 

쓰레기 수집가들이 세상을 구원한다?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표지 ⓒ 시대의창

종신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8개월 동안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뒤지고 수집하며 지낸 제프 페럴 교수의 책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시대의창)는 쓰레기에 대한 고찰의 수준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는 도시 이면의 세상을 탐험해보고 그 세계와 같이 호흡해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8개월 간의 노숙 아닌 노숙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탐사 르포를 위시한 인문 교양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인 탐사 르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탐사 대상에 대한 고발적 성격이 아닌 탐사 대상의 재발견과 이해 그리고 탐사 대상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고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 곳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노숙자나 거지는 아니라고 한다. 작지만 집이 있고 정규 직업을 가진 경우도 있다고. 지하철 무가지를 비롯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 분들도 이 세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들이 모두 노숙자나 거지는 아니지 않는가. 단지 생존을 위해 사회가 용인하는 정상적인 이력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들 도시의 쓰레기 수집가들을 과도한 소비 행태로 인해 무너져 가는 현대 사회를 구원하는 사람들로 그리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낡은 법과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서, 실제로 재하는 현재의 삶에 부합하는 새로운 법과 경제적 가치를 이끌어 내는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오해와 법적인 제재가 따른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이들은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는 더럽고 쓸모없는 거리의 무법자이고, 정부당국에게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며 법을 어기는 범법자일 뿐이다.

 

길거리의 삶, 그리고 쓰레기의 의미


책은 저자가 어떻게 길거리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길거리의 삶에서 어떤 깨달음(사회·문화적인 학술적 깨달음, 즉 거시적 깨달음과 개인적인 깨달음, 즉 자신의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는지, 쓰레기는 어떤 식으로 재생이 되는지, 쓰레기 수집의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고 그 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쓰레기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등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들 중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은 저자가 직접 체험한 쓰레기에 관한 사례들이다. 그는 이를 일기 형식으로 작성해 순차에 상관없이 주제별로 나열했다. 대부분의, 아니 모든 사례들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평생 한 번이라도 접해보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흥미롭고 신기하게 다가올 것이다.

 

저명한 교수가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쓰레기통에서 당장 꺼져요!”, “진짜로 경찰한테 전화하기는 싫거든요라는 말을 듣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떤 쾌감까지 맛보기도 한다. 또 그가 열심히 쓰레기통을 뒤져 획득한 물품들, 그 중에서도 책들의 제목을 보면, 개인적으로 뒷골까지 당기는 흥분 상태에 빠지곤 한다. 나도 쓰레기통이나 뒤져볼까? 하고 말이다.

 

사회 제대로 이해하기, 다시 생각하기


책이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는, 위의 사례 등을 통한 이 사회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재발견과 이해와 더불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다시 생각하기 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소비자들이 기존의 잘못된 질서를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이 시대의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 즉 소비자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소비를 일삼고 있다. 이제는 소비를 넘어서 낭비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제 산 물건을 오늘 쓰레기통과 길거리로 집어던지기 바쁘다. 소비를 위한 소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발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은 거대한 산을 형성해 언젠가 무너져 내려,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을 선사할 것이다.

 

반면 거리의 쓰레기 탐색자들은 쓰레기더미를 분류하고 솎아낸 다음 그들이 찾아낸 것을 재활용한다. 소비경제가 버린 것들을 다루는 대안 경제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각종 이분법적 구조(상품과 쓰레기, 공공과 개인, 소유와 버림, 빈과 부 등)의 부작용으로 점점 그 기능을 상실해 가는 도시를 사실상 지탱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단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지만(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들이 없다면 드러난 곳은 금세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이론적인 고찰과 사례의 적절한 조화가 빛을 내고 있다. 여기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개인적 경험에 입각한 존재론적 문제가 사회적 문제는 물론 범죄와 정의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진부한 관념을 벗어버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걷고, 자전거를 타고, 쓰레기더미와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매일매일 길거리에서 보낸 나의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면서 나는 단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수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본문속에서)



"오마이뉴스" 2013.7.1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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