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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세계를 계속 흐르게 하는 순환과 지속의 희망에 대하여 [신작 영화 리뷰] 1858년 에도, 인분을 수거해 지방의 농사꾼에게 되파는 일을 하는 야스케. 그는 분뇨업자로 사람들에게 무시와 천대를 당하지만 없어선 안 될 직업인이다. 비 오는 어느 날, 폐지를 주워 팔며 생계를 이어 나가는 츄지와 우연히 만나 조수로 채용한다. 그곳에는 오키쿠도 있었는데, 츄지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 같다. 오키쿠는 몰락해 가는 사무라이 집안의 외동딸로 절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 비만 와도 온 동네에 인분이 넘쳐흐르는데, 한때 모두가 우러러보던 오키쿠의 아버지 겐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어느 날 겐베는 칼을 지닌 채 일련의 사람들과 길을 나서고 오키쿠는 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결국 겐베는 목숨을 잃고 오키쿠는 목을 다쳐 목소리를 잃는다. 시름에 빠져 집 밖으로 나.. 더보기
학교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이야기 <플레이그라운드> [신작 영화 리뷰] 일곱 살 노라는 막 입학한 낯선 학교가 두렵기만 하다. 입학 첫날 아빠의 손을 떼기가 무섭고, 오빠 아벨이 함께 입학해 종종 볼 수 있다고 해도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선생님이 돌아가며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해도 잘 대답하지 않는다. 체조, 수영 등 체육 시간도 무섭다. 점심 때는 오빠한테 가서 밥을 같이 먹으려고도 한다. 그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라는 것이다. 어느새 학교에서 웃고 있는 노라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오빠를 보러 가니 누군가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처음엔 선생님이 와서 말렸고 두 번째엔 선생님한테 가서 말했더니 와서 말렸다. 그런데 세 번째엔 선생님한테 가서 말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괴롭힘이 끝나고 아벨은 동생에게 .. 더보기
세계를 이루는 또 다른 무엇들... 현실이 된 동심 <이웃집 토토로> [리뷰] 아내가 아직 여자친구였을 때, 그러니까 20대 중반쯤 아내가 몇 번인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스무 살 때까진 동물과 얘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훨씬 어렸을 때는 남들 눈엔 안 보이는 걸 볼 수도 있었다고 한다. 난 어렸을 때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느끼게 된다. 때론 귀여운 느낌으로, 때론 뼈저리게. 동심을 느낄 때면 행복에 졌지만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생각하면 슬프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비단 나나 아내뿐만은 아닐 테다. 만화의 천국 일본에서도 굴지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해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사실적 판타지를 선사한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래했나 보다. 50세에 가까운 나이, 1988년에 같은 작품을 내.. 더보기
봉준호의, 봉준호에 의한, 봉준호를 위한 <옥자> [리뷰] 봉준호 감독의 봉준호 영화는 대체로 직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지닌다. 확실한 목표가 거기에 있고, 우리의 주인공은 그곳에 다다르고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그 자체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대, 영화를 통해 가장 재밌게 대리만족 또는 대리경험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에드벤쳐적 요소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 관객을 끌어모으고는, 봉준호는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이야기다. 봉준호처럼 필모에서 흑역사가 없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2000년의 시작에서 로 시대를 앞서간 실험적인 현실 풍자 코미디를 선보이고는, 에누리 없이 3~4년에 한 번씩 작품을 들고 왔다. 여전히 그는 현실을 그리고, 가감없는 코미디적 요소를 적재적소에 흩뿌리며, 누군가에게는 실험적일 .. 더보기
현대사회에 대한 치명적이고 통렬한 실험 우화 <더 랍스터> [오래된 리뷰]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은 데이비드(콜린 파렐 분)는 호텔로 오게 되었다. 그곳은 일명 '커플 메이킹 호텔'로, 45일 간 머무르며 커플이 되는 교육을 받는다. 만약 그 시간이 지나서까지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 단, 매일 숲으로 가서 마취총을 이용해 서로 사냥을 하는데 거기에 성공한 횟수만큼 기간이 늘어난다. 이 시대는 누구나 반드시 사랑을 하고 커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그런 시대다. 데이비드는 혹시 동물이 되는 상황이 되면 랍스터가 되고자 한다. 100살까지 살 수 있고 피는 귀족적인 푸른색이며 근시다. 그렇지만 동물이 되긴 싫다. 동물이 되면 숲에 버려지는데, 위험에 상시노출되어 있지 않은가.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 더보기
<세상물정의 사회학> 헤르메스가 세상과 조우하는 방법 [서평] 2007년 시작되어 지금은 최고의 미드(미국드라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평행이론'에는, 두 천재 물리학자가 나온다. 이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길 수 있을 만한 지능을 가졌지만 세상살이는 꽝이다. 자신들이 배운 이론의 창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이 나온다. 평소에는 잘 열리던 문이 열리지 않을 때 그들은 과학적·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지나가던 학생이 아주 쉽게 문을 열어젖힌다. 거기엔 어떠한 이론적인 지식이 필요치 않았다. 단지 눈을 조금만 돌리기만 하면 되었다. 아니, 사실은 너무 쉬워서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행동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세상과 제대로 조.. 더보기
<로드> 명백한 죽음의 길을 가며 기어코 살아가는 이유 [지나간 책 다시읽기] 코맥 매카시의 소설 세계 문학계의 주류인 미국 문학과 유럽 문학. 당초 두 문학은 그 뿌리가 같다. 하지만 필자가 읽었던 소설들에게서 느꼈던 바는 사뭇 다르다.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미국 문학은 간결한 가운데 유머가 있고 유럽 문학은 끈덕진 가운데 클래식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국 문학은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조금은 밝은 분위기가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유럽 문학은 묵직한 주제 위에서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가 함께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묵직한 주제 위에서 지극히 어두운 분위기가 감도는 미국 문학은 어떤 느낌일까? 거기에 미국 문학의 특징인 간결한 문체가 함께 한다면?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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