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몬드>


소설 <아몬드> 표지 ⓒ창비



우리 뇌에는 '아몬드' 모양의 중요 기관이 있다고 한다. 동기, 학습,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편도체'. 그래서 아몬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사실 아몬드가 한자로 '편도'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아몬드. 


소설 <아몬드>는 작은 편도체와 각성 수준이 낮은 대뇌 피질을 타고난 아이 선윤재의 이야기다. 대신 그에겐 엄마와 할멈의 깊은 사랑이 있었다. 그런 한편, 선윤재와는 반대로 타고난 아이 곤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에겐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어둠의 기억들이 있다. 이 둘의 만남과 성장은 강렬한 한편 눈물겹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한 번 잡으니 손에서 놓치 못했다' 등의 식상한 감상평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 있는데, 작가의 이력에 눈이 간다. 일찍이 영화평론으로 데뷔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계속 단편 영화를 연출해온 '영화통'이다. 


이창동, 유하 등의 작가 출신 영화감독이나 천명관처럼 영화감독으로의 궁극적 꿈을 꾸는 작가는 익히 봐왔지만, 영화감독 출신 작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소설 같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소설을 더 반기는 추세에 적잖은 이점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 


무관심으로 귀결될 무감정은, 안 된다


소설은 날카로운 아픔으로 시작한다. 유일한 혈육들이 피칠갑으로 살인당하는 장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나, 윤재. 그러곤 그 유일한 혈육들인 엄마와 할멈과 나의 끈끈하면서도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윤재는 태어나길 감정이 없이 태어났지만, 엄마와 할멈은 그에게 좋은 감정을 끝없이 불어넣어준다. 


시작부터 예고된, 홀로된 윤재. 어린 그지만, 역설적으로 감정이 없기에 잘 살아나갈 수 있다. 그의 곁으로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이 다가온다. 엄마와 친하게 지냈다던 건물주 심박사를 비롯해, 풍부한 감정을 지녔지만 어둠의 기억들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곤이, 그리고 윤재로 하여금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장본인 도라. 


우린 이들의 모습에서 무감정이 주는 '편리함'과 감정이 주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어느새 윤재의 무감정과 무표정이 부럽고 따라하고 싶어 진다. 이면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넘겨 집으려 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윤재가 오히려 소통과 공감을 울부짖는 이 시대에 일종의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또 알고자 하고 느끼고자 하는 지금, 이 감정과다의 시대에 '무감정'과 '무관심'이 나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감정이 없는 게 편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해답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일까. 결국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귀결될 무감정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일까. 거기에 함정이 있다. 한도 끝도 없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 결국 무감정과 무관심이 우리를 좀먹는다. 


'감정'을 배울 필요도 있다


소설은 다분히 '성장 소설'로서의 콘셉트다. 전체적 느낌은, 성장 소설의 대명사 <데미안>보다는 또 다른 대명사 <호밀밭의 파수꾼>에 가깝다. 세상의 표준과는 너무도 다른 주인공, 그는 혼자다. 하지만 그에겐 빛과 같은 존재가 있다. 그 존재 덕분에 세상의 표준과 가까워진다. 아니, 표준과 다른 것도 표준의 하나라고 인식하게 된다. 


<아몬드>는 또한 <호밀밭의 파수꾼>의 뜬금없다고 할 만한 마무리도 닮았다. 다름 아닌 빛과 같은 존재와의 해후, 그리고 변화. 한 단계 성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곁에 두고 가끔씩 다시 읽어도 하등 지루할 것 없는 전개와 읽는 이의 마음을 영원히 어루만져줄 것 같은 따스함은 조금 엹다. 


우린 아마 풍부한 감정을 가졌을 거다. 그래서 제대로 감정을 '배운' 적이 없을 거다. 이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윤재가 감정을 배우는 모습이었는데, 굉장한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상당히 불쾌하기까지 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그런 마음은 거의 없어졌다. 감정을 배우진 않더라도,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인간은 머리가 온전히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 없지만, 가슴이 머리를 지배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린 내 감정은 물론 남의 감정도 잘 다루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잘 못 다루기도 한다. 감정을 배울 필요도 있는 것이다. 윤재의 무감정이 부러웠다가, 감정을 배우는 윤재가 부러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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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낮술>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 여러 모로 보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때론 너무 웃겨서, 때론 너무 답답해서, 때론 너무 불쌍해서, 때론 너무 나 같아서. ⓒ영화사 진진



실연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혁진을 위로 하기 위해 친구들이 뭉쳤다. 의미 없는 말이 오가고 혁진은 여전히 실의에 빠져 있다. 기상이가 제안을 하나 한다. 내일 당장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 아는 형이 폔션을 하고 있으니 몸만 가면 된다는 것. 마침 장날이기도 하단다. 폔션 잡고 놀다가 강릉 해수욕장에 가서 겨울바다를 마주하며 컵라면에 소주 한잔 들이키자는 것. 술김에 생각할 것도 없이 모두 승낙한다. 


혁진은 홀로 정선에 도착한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장은 어제 끝났다고 한다. 혁진은 점심을 먹는다. 기상한테 전화가 왔는데 서울이란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일모레나 갈 수 있다고 한다. 혁진은 기상을 욕하며 반주를 한다. 기상이가 계속 전화를 건다. 이왕 거기까지 간 거 폔션에 가서 쉬라고, 내일 모레 가겠다고. 혁진의 모험 아닌 모험이 시작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은 <조난자들>의 노영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두 작품으로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상도 많이 탔다. 비록 두 작품이지만 그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본격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이다 보니 흥행하기가 쉽지 않고 영화를 계속 만들기도 쉽지 않다. 


주인공 혁진은 술을 엄청 좋아하는, 그런 이는 아니다. 다만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으니, '술 잘 마시네~'. 그럴 때마다 혁진은 좋아하며 더 마신다. 우리 모든 남자의 자화상. ⓒ영화사 진진



영화는 내가 보아 온 여타 '주류' 독립영화와는 다르다. 독립영화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이 주를 이루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문제를 건드리곤 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 <가시꽃> <마돈나> <4등>이 그랬다. <낮술>은 장르부터가 '코미디'이고 '술'이 주요 소재인 만큼 이들과는 멀 수밖에 없을 거다. 


영화에서 술 마시는 장면만 열 장면 이상이다. 장면당 5분씩만 해도 영화의 절반에 해당한다. 거기엔 어김 없이 주인공 혁진이 있는데, 술을 향한 폭주는 아니다. 그는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가, 누군가가 무슨 이유를 대서 술을 권하면 때론 즐겁게 때론 억지로 술을 마신다. 빠지지 않는 말이 있으니 "이야, 술 잘 마시네~" 


정말 찌질하지 않나. 왜 그러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런데 혁진에게서 내 모습이 보인다. 나 뿐만이랴? 여러 남자들이 보인다. 대다수이지 않나 싶다. 딱 저 한마디면 된다. 그러면 아마 대다수 남자들은 술을 거절하지 못할 거다. 술 마시는 장면만 나오면 손발이 오그라 들면서, 웃기고 슬프다가, 우울해지고, 술 진탕 마신 것처럼 허탈해진다. 그걸 의도한 거라면 정녕 잘 해냈다. 


홍상수표와는 또 다른 '진리'


남자 입장에서 술이 있는 자리에 여자가 빠질 수 없다. 혁진은 술이라면 거절을 못하는데, 또 여자도 거절 못한다. 혁진은 며칠의 여행 아닌 여행 동안 온갖 처참한 꼴을 당하는데, 온전히 술과 여자 때문이다. 애초에 실연을 당하고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정선에 가게 된 거 아닌가. 또 폔션에서 옆방 여자에게 들이대려다가, 옆방 여자의 유혹에 못 이겨 그리 된 게 아닌가. 


홍상수표 영화인듯 아닌듯, 가장 먼저 홍상수표 영화가 생각나지만 또 다르다. 또 다른 '찌질'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사 진진



술과 여자, 술자리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홍상수표 영화'. 그의 영화에 빠짐 없이 등장한다. 그의 영화에, 특히 술자리에서 꼭 등장하는 게 있으니, 허세 가득한 술자리 비평들이다. 다 상대방을 꼬시려는 수작이다. 그게 너무 눈에 드러나는데, 그래서 너무 찌질해 온몸이 가려울 정도인데, 너무 나와 똑같아서 무섭기까지 하다. 


반면 <낮술>에는 술자리 비평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고작 하는 얘기가 술에 관한 거다. '술 한잔 하러 가실까요' '술 한잔 쭈욱 들이키시죠' '술 잘 마시네' '주량이 어느 정도세요?' '거국적으로 건배' '원샷입니다' 등. 정녕 아무 의미 없는 말이 오간다. 홍상수표 술자리와는 또 다른, '진리'에 가까운 모습이다. 


'재미'의 향연, 그 뒤엔 여지없이 '술'로 인한 씁쓸함


한편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어른 남자의 로드 무비로도 읽힌다. 생각나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최고의 성장소설 중 하나로, 아이지만 스스로가 어른 같다고 자부하는 홀든 콜필드가 학교를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흘 동안 겪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다뤘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는 한편 천사 같은 이들도 만난다. 진정한 천사인 여동생 피비를 만나며 콜필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술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저 혁진의 여정에 포커스를 맞춰도 좋다. 일종의 폭소 로드 무비랄까. 그저 재밌고 재밌다. 또 보고 또 봐도 마찬가지. 단, 남자한테만 그럴듯? ⓒ영화사 진진



혁진은 어땠을까. 변태도 만나 당할 뻔하고 호의를 갖은 척 접근한 이들에게 제대로 털리기도 한다. 이상한 말을 해대는 못생긴 여자에게 명확한 거절의 뜻을 내비치니 쌍욕을 해대지 않나, 알고 보니 그 여자가 기상이의 아는 형의 사촌 여동생이라지 않나... 정말 되는 게 하나 없는, 콜필드의 여정 못지 않는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콜필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콜필드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 여정을 택한 거고 혁진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다.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너무 재밌고 생각하며 봐도 역시 너무 재밌다. 박장대소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몇몇 등장한다. 조금은 예상이 되지만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 앞에 여지 없이 '술'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일 년에 한 번은 꼭 술 때문에 인생에 남을 만한 사고를 치곤 한다. 차마 말 할 수 없는 그런 정도로 말이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술을 진탕 먹고 사고를 치곤 하는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다. 혁진이도, 아니 술을 마시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컵라면에 소주 한 잔',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환상적이다. 춥긴 너무 추울 텐데, 뜨거운 컵라면에, 속 깊이 지져주는 소주까지. 혁진이 직접 해보고 친구한테 말해줬다. "야, 너무 춥기만 하더라. (너무 추워서 컵라면하고 소주를 먹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그렇다. 술은 항상 핑계가 있다. 핑계는 핑계로만 끝나지 않고 술도 술로만 끝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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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책임져야 할 문제적 소설 리스트


책 블로그를 하게 되면 책에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서평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이더군요. 

이번에 한 번 소소한 책 이야기를 해보려 하는데요. 뭐 별 거는 없을 것 같아요 ㅋ


간단한 리스트 하나 소개해드릴까 해요. 

일명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할 문제적 소설 리스트' 라고. 

말 그대로 제 인생을 책임져야 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친 소설들입니다. 

명색이 책 블로그인데, 이런 리스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깔끔하게 10권을 뽑아봤는데, 어떠신지요?

그래도 최소한 이건 좀 아닌데 하는 소설은 없지요?

반면 왜 이 소설이 안 들어 갔지 하는 의문은 많이 드실 거라 생각 되요 ㅋ

그냥 한 번 쭉 훑어 보시고, 들어 본 적이 없다 거나 알지만 읽어 보지 못했다 싶으면

먼저 제 블로그에서 서평을 찾아 보시고 인터넷으로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슬라이드로 보시면 됩니다^^ 순서는 상관없이 넣었습니다. 

아래의 순서도 순위가 아닙니다~)


1.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2.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3. 조지 오웰의 <1984> 

4.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 

5.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6.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7.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8.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9.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10.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소설리스트에 보내면 시간이 좀 지나서 실어주는데요. 한 번 보내보세요~

저도 큰 기대 없이 보내봤는데 뭐 큰 기대 없을 만큼 보내준 그대로 실어 주셨네요. 

sosullst.com/archives/3827


여러분의 소설 리스트는 어떤지요?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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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호밀밭의 파수꾼>


<호밀밭의 파수꾼> ⓒ 문예출판사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되기 전 애매모호한 시간을 보냈을 무렵, 학교 도서관을 배회했다. 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명저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니, 꼭 그렇진 않았다. 그냥 원래 도서관을 좋아했고,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한량같이 도서관을 휘젓고 있는데, 정말 우연하게 성장 소설 한 편을 발견했다. 제목은 <호밀밭의 파수꾼>. 무슨 이유였는지 지금으로선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 자리에서 그 소설을 훔쳐왔다. 즉, 도서관 대출을 하지 않고 대출 코드 스티커를 떼어버린 채 그냥 가져와 버린 것이다. 이유없는 반항이었을까, 소설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때문이었을까. 홀든 콜필드처럼 모든 걸 증오하고 있어서 였을까.


"그래. 난 학교를 증오해. 정말 증오하고 있어. 그것뿐이 아냐. 모든 게 다 그래. 뉴욕에 사는 것도 싫어. 택시, 매디슨 가의 버스들, 뒷문으로 내려달라고 항상 고함치는 운전사들에다 런트 부부를 천사라고 부르는 엉터리에게 소개되어야 하고, 밖에 잠깐 나가려 해도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하고, 항상 부룩스에 가서 바지를 맞추어 입는 자실들, 항상....."(호밀밭의 파수꾼, 195쪽, 문예출판사 판)


어찌 되었든 이후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 인생 최고의 소설로 자리매김 중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16세 소년인 홀든 콜필드가 네 과목에서 낙제하여 4번째 퇴학을 당한 후 겪는 2박 3일 동안의 일을 1인칭으로 풀어간 소설이다. 부유한 중산층의 자제인 소년은 왜 이리 세상에 불만이 많은 것일까.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모습일 뿐일까? 위에서 언급한 주인공의 말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속물적이고 허위에 가득 찬, 자신이 속한 중산층의 삶을 증오하고 있다. 자동차를 좋아하지 않고 말을 갖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생각은, 현대 사회가 가지는 비인간적인 면에 점점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


이 소설은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나 헤세의 <데미안>과는 확연히 다른 류의 성장소설이다. 그건 젊은이들만이 가지는 방황과 일탈, 호밀밭에 머물며 꼬마 아이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걸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겠다는 소박한 꿈을 절묘히 파악한 덕분이겠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호밀밭의 파수꾼, 256~257쪽, 문예출판사 판)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콜필드는 결국 집에 돌아갔고,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서부로 도피하고 싶다던 콜필드의 꿈은 미성숙한 인간이었던 청춘의 꿈으로 남게 된 것일까.


꿈을 꾸고 좌절하고 성장하고 포용하고 인정하고 성숙하는 인간. 콜필드가 가장 믿고 존경했던 선생님인 엔톨리니 선생님이 한 말을 통해 콜필드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통과의례를 지난 것이었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 277쪽, 문예출판사 판)


1952년에 소설이 출간되자 미국 사회는 엄청난 논쟁에 휩싸인다. 한 소년의 성장소설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말 하나하나가 당시 미국 중산층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고 사용하는 언어들도 직설적일 뿐만아니라 비속어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 변호사, 목사를 비난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논쟁이 계속될수록 판매는 급증하고, 윌리엄 포크너는 '현대문학의 최고봉'이라는 격찬을 보낸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1500만부 이상이 팔렸고, 세계 굴지의 출판사 랜덤하우스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소설'과 미국 여대생들이 뽑은 '금세기 100대 소설'에도 뽑혔다. 한편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2010년 타계했다. 이 소설이 세대를 거듭해 계속 읽히고 현대성을 갖는 이유는 아마도 지금 우리가 허위에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필자는 이 소설을 매년마다 한 번씩 읽는다. 혹자는 단순한 성장소설이라는 점을 들어 '피터팬 증후군'이라도 걸렸는지 알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합당한 이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중학생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을 읽으며 일종의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을 처음 접했을 당시의 나와 대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세대 간의 불통(不通)은 존재 자체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해결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서로를 알고 싶어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한 사람을 소개한다. '존 레논'을 암살한 자 '마크 채프먼'. 그는 존 레논을 암살한 혐의로 체포될 당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여러가지 추측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크 채프먼이 정신이상자였다는 설이다. 마크 채프먼은 자신을 존 레논이라 생각하고 앞에 있는 존 레논이 가짜, 허위라고 생각해 그를 암살했다는 것이다. 평소 자신을 홀든 콜필드에게 집착했던 그는, 허위와 기만을 극도로 증오했던 홀든 콜필드처럼 행동한 것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부작용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981년 존 레논을 암살한 마크 채프먼은 종신형을 언도받고 지금도 교도소에 복무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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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금서의 역사>


<금서의 역사> ⓒ시공사

시간을 거슬러 중국 진나라 시황제 때로 가보자. 당시 진나라는 상앙과 한비자 등의 법가를 국가 통치 체제의 주된 전략으로 받아들여 우민 정책과 함께 법에 의한 획일적인 사회 통제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중국 대륙에 뿌리내려져 온 유가 학문과 사상은 이 체제를 비판하였다.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진나라의 승상 이사는 정부가 시행하려는 정치를 비판하는 일체의 사적인 학문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관련된 모든 책을 불태우게 하였다. 만약 관련 서적을 소장하고도 신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물론이었다. 


또한 불로장생약을 구한다는 방사가 많은 재물을 사취하는 시황제의 부덕을 비난하며 도망을 치자, 시황제는 유생들 수백명을 체포하여 매장해버리기도 하였다. 이후 한나라에서 '협서율(금서 소지를 금하는 법)'을 폐지할 때까지 유가는 크게 위축되었고 자유롭지 못하였다.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학문과 사상을 철저히 탄압하고 금지시킨 대표적 사례인 '분서갱유'. 그럼에도 그 속에서 유가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책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반체제 탄압과 금지의 사례는 비교적 현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2000년 노벨 문학상을 탄 '가오싱젠'이 있다. 그는 불문과 출신으로, 일찍부터 외국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브레히트, 베케트 등의 영향으로 부조리극에 눈을 뜨게 되어 1인자가 되었다. 때는 문화대혁명 직전이었다. 당연히 그는 정부의 요시찰 인물이었으며, 문화대혁명 당시 가혹한 탄압을 받는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을 놓지 못해 비밀리에 글을 썼다.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그에 대한 탄압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에 가오싱젠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창작욕구를 폭발시켜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글들 대부분이 사회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다시 요시찰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압박이 심해졌다. 더이상 버티지 못한 가오싱젠은 여행을 떠난다는 명목으로 프랑스에 망명 신청을 하였고 결국 망명하게 되었다. 이후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지만, 중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밖에도 금지, 탄압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처럼 금지, 특히 금서의 역사는 깊고도 풍부(?)하다. 우리나라처럼 철저히 이념으로 갈라진 나라의 경우, 그 깊이와 양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도 남을 것이다. 비록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자기검열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금지조치


<금서의 역사>(시공사)는 금지의 역사 중에서도, 금서에 관련된 대표적 사례만을 뽑았다. 고르고 고른 것이겠지만 다루는 책만 해도 자그마치 110여 권에 이른다.(목차에 나온 대표적 책들만 그 정도이고, 책 속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은 책들이 금지조치 당했다.) 그리고 이 목록의 대부분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책들이다. 어떤 책들은 당연히 금지조치를 당했을 거라 예상되고,(<1984>, <로리타>, 

<악마의 시>, <호밀밭의 파수꾼>, <다빈치 코드> 등) 어떤 책은 금지조치를 당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 않다.(<해리포터> 등) 


이를 책의 금지 성향을 나눈 파트만 해도 12가지이다. 그만큼 다양한 이유로 책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질서 유지, 악의 근절, 정신 지배, 권력과 독재, 음란, 허위와 기만 등. 개인적으로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금지는 '자기검열'이다. 대부분 자신이 쓴 글에 대한 부끄러움 내지 자격지심이다. 대표적인 예로 프란츠 카프카의 유언 편지가 있다. 그는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읽지 말고 남김 없이 불태워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막스 브로트는 이 유언을 따르지 않고 원고를 책으로 냈고, 오늘날 너무나도 유명한 몇 편을 구해낼 수 있었다. 


한편 전설적인 베스트셀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미첼과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레마르크는 카프카와는 완연히 다른 이유로 자기 검열을 시도했다. 흔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첼의 유일무이한 단 한 권의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전에 많은 미출간 소설을 지었는데 출간하지 않았고 모든 원고를 없애버렸다. 이후 애국심에 불타는 여성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만 남긴 것이다. 레마르크의 경우, 성공적인 저널리스트였지만 무명에 가까운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대중적 베스트셀러 만들기 전략에 의해 기존의 모든 글들을 스스로 폐기하였다. 실로 자기검열은 가장 강력한 금지조치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서도 계속되는 금서의 역사


금서의 역사는 현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세기의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와 <다빈치 코드>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다빈치 코드>의 경우 예견된 사항이고, <해리 포터>는 의외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21세기 미국 최초의 분서 사건의 주인공으로 <해리 포터>를 가리켰다. 미국 피츠버그에서 '하나님의 성회' 종파의 기독교 신자들이 예배 분서 중에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가 마법을 예찬한다는 이유로 불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바이다. 


<다빈치 코드>의 분서는 너무도 유명한 얘기인데, 작품 속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둘 사이에 자식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라는 이유로 이탈리아 세사노의 지방 정치가 두 사람에게 2006년에 공개적으로 불태워지고 말았다. 또한 2005년에는 터키의 한 지방 정치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모든 서적을 불태워버리라는 지시를 하기도 하였다. 비록 취소되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과 <1984>. 어김없이 금서의 역사에서 한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지금도 한 해에 전세계적으로 30만 권씩 팔린다는 역사적인 베스트셀러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성장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인 이 소설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을 보았다. 주인공 홀든이 음란한 언어를 구사하고 술도 마시고 창녀에게 동정을 잃기도 했다는 걸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은 그들에게 '도덕의 파수꾼'이란 멋진 이름을 붙여주며 조롱하고 있다.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이 미래를 조종한다


책에서는 <1984>가 금지조치를 당했다는 서술을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이 어느 나라에서는 분명 금지조치를 당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조지 오웰은 <1984>를 통해 금지의 역사를 꿰뚫는 말을 남겼다.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은 미래를 조종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진리부'에서 현재 지배하는 정치와 일치하지 않는 과거 문서의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한다. 미래를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과거와 현재의 점유에 있다. 즉 원본을 획득하고 해석을 독점해야 한다. 미래는 이제 정해지지 않는 범위가 아니라 단지 논리 정연한 결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우연적인 미래를 방지한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에서)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우연히 빅브라더를 비난하는 골드슈타인의 금서를 얻어 읽게 된다. 그로 인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니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빅브라더 정부는 과거를 지우고 현재만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반쪽 짜리 진실에 기반한 현재에서. 


우리나라는 국방부에서 모든 책을 검열하고 국가 체제에 반하는 도서들에게 '볼온서적'이라는 낙인을 씌운다. 그러면 시중에 유통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검열을 통해 몇몇 책들에 '19금'의 낙인을 씌운다. 당연히 판매에 큰 타격을 입는다. 이는 비단 도서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금지로 논란이 되었듯이, 영화계에서도 검열이 시행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금지의 역사는 깊고도 넓다. 


언젠가는 반드시 현재도 과거가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든지 지금 금지된 것들은 미래에도 금지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이제 TV에서 술과 담배 광고를 보기가 힘들어졌거나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점차적으로 사회에서 그에 관련된 수요가 적어질 것이다. 자연스레 문학작품에서도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꼭 필요할 환경이 있을 것이 아닌가? 미래의 언젠가 우리는 술과 담배가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은 다른 무수한 요소들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게임중독법'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천천히 교묘하게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금지의 올가미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고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단, 거기에서 살아남아 계속 빛을 발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금지의 역사, 금서의 역사는 곧 투쟁과 생존의 역사이고 존재 발현의 역사이다. 


금서의 역사 - 10점
베르너 풀트 지음, 송소민 옮김/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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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불멸의 작가들>


<불멸의 작가들> ⓒ윌컴퍼니

예술에 있어서 작가가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특히나 미술의 경우에는 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100%에 이를 것이다. 이는 음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 문학에서도 상당할 것이다.

 

물론 작품 자체가 워낙에 유명해지다보면 역전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해리포터> 시리즈는 객관적으로 볼 때 작가인 조앤 롤링보다 작품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일 것이다. 예전 작품으로 보자면 <돈키호테> 류의 작품을 들 수 있겠다


무슨 말인고 하면, 작품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을 경우이다. 돈키호테로 인해 작가인 세르반테스가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작품을 말할 때 작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죄와 벌>을 말할 때 도스토예프스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 <햄릿>을 말할 때 셰익스피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쟁과 평화>를 말할 때 톨스토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작가의 힘!

 

얼마 전부터 한국 문학계 및 출판계에 거세게 불고 있는 열풍이 있다. 하나는 하루키 열풍이고 다른 하나는 조정래 열풍이다. 먼저 하루키가 포문을 열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로 일본에서 대열풍을 일으키고 한국에 상륙해 2개월여 동안 수십만 권이 팔려나가며 역시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사랑에 그의 이름 하루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수많은 평론가들에게 맹비판을 받아도 대중들은 여지없이 그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그가 하루키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최근에는 조정래 열풍이 불고 있다. <정글만리>(해냄)로 중국에서의 정글과도 같은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을 그려낸 조정래 작가.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이리도 대박을 터트릴지 예상하지 못했는데, 역시 조정래였던 것 같다. 일찍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전국민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새긴 그였기에, 대중들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의 작품을 선택한 것이리라. 물론 하루키나 조정래나 작품의 질이 좋아야 한다는 건 기본 선결 과제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좋아하는 작품과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좋아하는 작품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지도 10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매년마다 읽고 있다) 나에게 이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만 다가온다. 지금도 작가의 이름을 말할 때면 책을 보거나 검색을 해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모르고 읽어본 적도 없으며 읽어볼 생각도 없다.

 

좋아하는 작가는 조지 오웰이다. 그의 대표작인 <동물농장>, <1984>, <카탈로니아 찬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를 섭렵했고, 또 다른 작품들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버마 시절> 등도 꼭 읽어볼 생각이다. 내가 이 작품들을 읽고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가 조지 오웰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관되게 사회 비판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읽기 쉬운 문체이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좋다. 나에게 있어 그의 작품은 무조건 믿고 보는 작품인 것이다.

 

문학의 힘?

 

<불멸의 작가들>(윌컴퍼니)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저자가 세계적인 문학의 대가 125명을 추려 그들의 일대기와 그들의 대표작 중 하나에서 발췌한 내용을 담았다. 작품도 빛났지만 작가가 더욱 빛났던 이들이었기에, 작가 소개 4페이지 중에서 1페이지를 작가의 사진으로 채우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앞서 말한 하루키를 능가하는 열풍을 일으켰던 작가들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는 책을 소개하며 이를 문학의 힘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 위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말은 나와 있지 않다. 책의 특성상 저자의 목소리는 작가들의 목록 선택에서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애당초 제목이 불멸의 작가들이어야 하지도 않다.

 

작가와 작품 모두 기억에 남을 것 같지 않은 이 책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 <불멸의 작가들>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또한 기억에도 남을 것 같지 않다. 그나마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이 책의 거장 125명 리스트에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작가와 좋아하는 작가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정도?

 

일단 이 책은 저자가 말한 것처럼 책에 수록된 작가들의 목록이 독단적이며 변덕스럽다’ 125명에 달하는 목록이 전혀 분류가 되어 있지 않아 한 번 들춰보고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 않게 되어 있다. 나라별, 시대별로 분류는 못할망정, ABC나 가나다순으로도 분류가 안 되어있다. 하다못해 성별로라도 분류가 되어 있었다면 언제고 들춰나 보기 편할 텐데 말이다.

 

125명의 작가들 중 내가 아는 작가를 세어보니 75명이었다. 저자는 독자 여러분이 동경하는 작가가 혹시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용서해주길 바란다며, 이 책을 통해 더욱 많은 위대한 작가들을 알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진을 제외하고 3페이지에 불과한 작가 및 작품에 대한 소개를 보고 어떤 판단을 하라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결정적으로 아시아를 포함한 제 3세계 국가의 작가들은 전무하다시피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미국, 유럽 출신이다.(폴 오스터와 스티븐 킹까지 포함시켰으면서 푸쉬킨을 비롯해 피츠제럴드, 한트케, 펄 벅, 윌리엄 골딩, 맥카시 등을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다.) 이 부분 때문이라도 이 책을 다시 볼 일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결코 너그러이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닌 것이다.

 

이 책에서 제일 볼만한 건 차라리 본문이 끝나고 책의 끝부분에 부록으로 제시하고 있는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125가지 제안인 글쓰기의 요령과 훈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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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