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표지 ⓒ책세상



어처구니 없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언젠가 동네를 한번 산책하고자 집을 나섰다. 생각해보니 30여 년을 산 동네를 제대로 돌아다본 적이 없었다. 동네 산책이니만큼 여기저기 구경도 하며 쉬엄 쉬엄 걸어보려 했다. 오래지 않아 당황과 황당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여기가 어딘지, 우리 동네가 맞는지, 집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결국 산책의 묘미는 온데 간데 없고 2시간 만에 겨우겨우 집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매일 단조로운 패턴으로 다니다보니 겪게 된 황당한 일이었다. 


황당한 일은 또 있었다. 이건 내가 기본적으로 길치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길치 또한 과도한 단조로움으로부터 잉태된 기형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난 단조로움의 화신인 듯하다. 강남역 근처에서 일할 때였는데, 매달 한 번씩 퇴근 후 10분 거리에 있는 치과에 정기검진을 갔어야 했다. 그곳을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대체로 바둑판처럼 생긴 강남역 거리니 만큼, 한 번 잘 숙지만 해놓으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난 갈 때마다 1시간 동안 찾지 못해 해맸다. 그곳이 그곳 같고, 그 거리가 그 거리 같았다. 단조로움의 공간인 강남을 단조로움의 화신이 이겨내지 못한 것일까. 


판에 박힌듯 메마르고 단조로운 세상살이


에드윈 애벗의 소설 <플랫랜드>에는 미치광이 정사각형이 나온다. 모든 것이 납작한 2차원의 세계인 플랫랜드를 떠나 여러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점, 선, 3차원, 이후의 고차원까지 경험하고서 플랫랜드로 돌아와 주민들에게 다른 차원의 존재 사실을 알리는 데 시간을 바친다. 에드윈 애벗이 활동할 당시인 빅토리아 시대의 판에 박힌듯 메마르고 단조로운 세상살이를 풍자한 것이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책세상)에서 저자는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플랫랜드 주민들과 다름 없다고 설파한다.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 제한된 틀을 만들어 좁디좁은 곳에 스스로를 가두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결국 똑같은 존재가 되고 말 거라고 경고하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닫히고 협소하고 감소되고 활기를 잃고 단조로운 존재가 되어 버린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넓은 안목으로 춤추듯 줄달음질치며 수많은 가능성으로 활기 넘치던 시야를 되찾을 수 있을까?


방법은 낯설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 수단은 문자와 이미지를 동등하게 활용한 '만화'이다. 특히 이미지로 낯설게 보기와 다르게 생각하기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 자신이 직접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책은 하버드대 최초로 철학 교재로 채택되었다고 하는데, 위에서 말한 '문자'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인류의 모든 지식이라 할 만한 것들이고 이미지는 그 모든 것을 표현하고 그 자체가 지식 중의 하나가 되며 동시에 훌륭한 아트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이에게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인간의 사유를 지배하는 개념이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실로 옮겨가기 위해선 그야말로 철저한 전복과 반역과도 같은 혁명적 주장이 필요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함은 그래서 인류 역사상 그 무엇과도 비할 데 없는 것이다. 1500년 간 이어져 내려온 인류와 지구의 진리를 부정하고 올바른 곳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한낱 미물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라는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이는 마치 플랫랜드의 미치광이 정사각형이 여러 차원의 세계를 여행하고 와서 주민들에게 다른 차원의 존재를 알리는 것과 다름 없다. 생각해보라. 당연히 '미치광이' 취급을 당할 게 아닌가. '이단아' 취급을 당할 게 아닌가. 곧 그 자신의 인생을 건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누구나에게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보는 행위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하는 색다른 관점의 발견, 끊임없이 시야 너머의 존재를 추구하는 호기심,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을 재구성해 상식을 틀을 벗어나며 보다 높은 차원의 시각의 제공, 예술에 조예가 깊은 과학자들의 폭넓은 시야를 통한 새로운 발견, 너머의 공간을 유추할 수 있는 괌점의 무한한 가능성의 상상력 등이 혁명적 전환에 필요한 것들이겠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유의 전환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언플래트닝의 방법들, 새로운 경험과 상상력과 호기심


너무도 어려운 일일 거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는다. 방법론이야 이 책 하나에도 무수히 많이 존재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거야 차원이 다른 문제니까. 그래서 저자는 일상에서 손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이야말로 인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닐까. 탁상공론식의 사유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행할 수 있고, 결국 도움이 되는 것 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건 단순하다. 매번 다른 길로 출퇴근을 해보는 거다. 인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시시각각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출퇴근길이 여행이 된다.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걸어보는 시도만으로 그렇지 않다면 보지 못했을 다른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반복하다 보면 그 일에 능숙해지고 곧 습관이 되어 편하겠지만 '유연성'을 잃어갈 것이다. 위에 제시한 것들만 해도 우린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다. 


상상력과 호기심은 가장 강력한 '언플래트닝'의 방법들이다. 익숙한 두 공간을 낯선 방식으로 연결하는 사이의 공간이 바로 상상력이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수많은 익숙한 것들을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 벽을 통과할 수 있는 이, 부엌 찬장에 있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린 새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호기심은 상상력과 같은 맥락이다.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호기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호기심이 없이는 상상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힘들다. 벽이나 부엌과 같이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끊임없이 너머의 무엇을 추구하려 해야 하는 것이다. 너머의 무엇을 보고 싶어 해야 하는 것이다. 이후에나 그 무엇이 구체성을 띤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어우러짐이 필요하다


이 모든 사유를 표현하는 주요 수단을 텍스트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그래왔을 것이다. 이미지보다 텍스트가 가지는 힘이 훨씬 컸다. 저자는 그 '습관'에 대해 전복을 시도한다. 텍스트에만 의존하면 언어의 선형적 구조 바깥에 있는 것들은 무시된다고 본 것이다. 이미 그의 머릿속엔 텍스트와 이미지는 동등하다. 


시각적인 것은 문자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한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놓쳐왔을까? 대상에 대한 사유뿐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보려고 할 때 무엇이 시각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이미지의 존재가 부각된다. 그렇지만 이미지만으로도 부족하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어우러짐이 필요하다. 그건 만화로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만화라는 순차적이고 동시적인 생태계에 삽입된 문자와 그림들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공존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두 요소가 결합하면서 시각과 언어는 섞인다. 서로를 침투하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서로 섞이면서도 다른 표현 방식 사이에 일어나는 굴절 현상은 공명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읽고 보는, 또 보고 읽는 역동적인 순환 과정을 만들어낸다. 텍스트와 그림은 동등한 파트너로서 상호 의존하는 불가분의 관계다." (본문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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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야옹야옹~ 캬흥! 흠냐흠냐. 그녀는 고양이 같다. 기본적으로 너무 귀엽고 또 얌전한데 가끔은 엄청 무섭다. 아무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인간처럼 길러졌다지만 야생성이 살아 있는 고양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런 고양이가 매력이 있듯이 그녀도 매력이 충만하다. 


야옹야옹 하면서 꼼지락 거리다가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생겼는지 캬흥! 하며 꽥 소리를 지르고는, 민망했는지 미안했는지 흠냐흠냐 하며 조용해지곤 하는 것이다. 재밌다. 생각만해도 웃음이 나와. 


고양이 하면 또 생각나는 게 '사부작사부작' 아니겠나. 뭔가 하려고 할 때는 티나지 않게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한다. 그래도 완전히 소리를 내지 않을 순 없는지, '부시럭부시럭' 한다. 뭔가 소소한 의성어나 의태어가 잘 어울리는 그녀다. 또 '시무룩'해지기 일쑤인 그녀다. 다 괜찮으니 '엉엉' 울지만 마렴~


그녀는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다. 호기심도 많고. 반면 그만큼 멍~ 하니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생각이 많고 관심이 많은 만큼 머리를 식혀야 한다나~ 그런 모습은 진득하니 무표정으로 앉아 있다가도 장난감 거리를 주면 도무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촐싹거리는 고양이와 판박이이다. 그걸 흐뭇하게 지켜보는 난 주인? 아니, 집사인가?


그럼에도 그녀는 의지가 되는 사람이다. 한없이 약하고 여린 듯하지만, 그보다 더 똑부러지고 강한 사람이 없다. 이제 보니 이건 뭐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정말 피곤하 게 산다는 거... 조금만 힘 빼고 살자~ 그럼 좋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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