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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길찾기


우리나라 만화계의 경우, 여타 문화 전반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귀엽고 미성숙한 모습의 그림체, 혼을 쏙 빼놓는 액션 위주의 스토리 등. 그래서인지 몰라도 만화를 생각하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림체는 예뻐야 하며 어린 친구들만 봐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을 내버리곤 했다.


하지만 일본의 만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및 유럽) 만화계는 일찍이 그 방향을 크게 틀었다. 이른바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장르가 출현했고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문학과도 견줄 수 있는 스토리와 철학이 아닌 만화는 거의 퇴출되다시피 하였다. 그들에게 만화는 더이상 우리나라처럼 미풍양속을 해치고 어린 친구들에게나 읽히는 B급 내지 하류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그림체에 액션 위주의 스토리를 추구해도, 그 안에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굳이 철학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생각할 거리'가 있다. 이는 어린 친구들을 위한 교육용 만화와는 전혀 다르다.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리를 시각적으로 더 잘 전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학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모든 상상력을 그림에 쏟아 붓다


그런 면에서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라는 부제가 달린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이미지프레임)는 일반적인 만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분히 교육적이고 정보전달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제나 소재가 결코 쉽게 다뤄질 수 없다는 면에서, 작가의(나아가 출판사의) 문제의식이 깊숙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만화를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스토리에서의 상상력은 완전히 배제한 채, 그 모든 상상력을 그림에 쏟아 붓는다. 한국현대사에서, 겉으로는 가장 화려했지만 안으로는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저질의 시대였던 1970년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대의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인지, 작가의 그림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너무나 불편해서 피해버리고 싶지만, 반드시 인지해야 할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을 정말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챕터마다 한국현대사에서 결코 지울 수도 지워서도 안 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려진다. 위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스토리라인에서 상상력을 배제한다. 그 대신 수많은 현대사 관련 책들을 인용해서 사건들의 디테일을 채웠고, 더불어 작가가 직접 당시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 인터뷰까지 하였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의 한 장면. ⓒ길찾기


요즘 한창 네이트 웹툰에서 연재 중인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도 상당히 많은 책들을 참조하고 인용하고 있는데, 그 차이는 명확하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가 몰랐던 혹은 눈 감고 지나치려 했던 정보의 정확한 전달과 문제 의식 고취를 최우위에 두고 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이를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눈에 띈다. 굳이 나누자면, 팩트와 팩션이라고 할까.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 역사


이 만화는 분명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작가도 말했듯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용히 울부짖고 있는 피해자들을 그냥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만화를 본다고 해서, 그렇게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당장 뭔가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과 행동 앞에 '앎'이 오는 것 아니겠는가. 먼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면 누군가들은 말한다. 직접 그 시절에 살아보지도 않고 직접 그 상황에 맞딱뜨려 보지도 않고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투철한 정신과 박학한 이론으로 무장해도, 조용히 있어야만 하는 걸 알고 있느냔 말이다. 그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미래로 전달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것이 조작되고 삭제된 현실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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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