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표지 ⓒ달


벌써 5주기다. 박완서 작가가 돌아가신지 벌써 5년이다. 세월이 쏜살 같음을 새삼 느낀다. 그의 죽음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다작 작가기도 하거니와 영원한 현역 작가일 것 같은 그의 소설을 더 이상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박완서라는 이름은 친숙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친숙하다. 그의 사후 그의 작품, 그에 관한 작품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세월이 쏜살 같다고 느꼈던 이면에는, 그가 우리 곁은 떠난 걸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그의 작품과 그에 관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 있다. 독자에게 그는 여전히 현역 작가이다. 


소설가의 소설(글)은, 소설가의 사상을 대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가의 말은 무엇을 대변할까? 아마도 소설가 자신을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글)이 외부를 향한다면 말은 내부를 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박완서 작가는 그동안 수많은 소설을 써왔다. 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봐왔다. 종종 그의 말을 들어왔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었고 소설로 말을 대신해 왔다고 생각했다.  


박완서, 그는 살아 생전 어떤 말을 했을까


이제 떠나고 없는 그의 말이 듣고 싶던 찰나, 소설가 박완서의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문학동네)이 나왔다. 살아 생전 그는 어떤 말을 했을까. 그의 소설과 일맥상통할까. 아니면 소설에서와는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말과 그의 소설은 일맥상통한 면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1980년부터 2010년까지, 데뷔 10년부터 영면에 들기 바로 전 해까지의 생각 또한 일맥상통했다. 


박완서 작가는 1970년 사십이라는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다고 한다. 지각생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늦게 데뷔했는데, 이후 왕성한 활동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확고한 작가적 위치를 굳히며 대표 작가로 주목 받았다. 이 책에 실린 9개의 대담에서 그의 데뷔작 <나목>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늦은 나이에 그것도 주부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이 문단에 상당한 충격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오히려 그것이 좋다고 말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쪽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그가 사십에 데뷔하기 전까지 주부로서의 삶을 산 것이 다 문학수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 보통 사람의 생활을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체험과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지 않고 상상력만 과잉 되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말이다. 


박완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6·25다. 특히 대부분의 6·25 관련 작품들이 남성들의 체험을 남성들의 시각으로 그리곤 했는데, 박완서는 여성들의 체험을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박완서는 남다른 그 경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글로 씀으로써 기억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그는 하고 싶은 일, 글로 기억하는 일을 했고 그게 바로 6·25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그는 여성에 천착했다. 6·25와 여성, 일상 등 그가 천착한 키워드들을 들여다보면 별다를 게 없다. 솔직히 재미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의 글은 참으로 잘 읽히고 재밌다. 생각에 막힘이 없고 시원시원하게 인간을 이야기한다. 그 안을 제대로 집어내기 때문에 공감의 연쇄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수많은 대담 중에서 추리고 추린 이 핵심 대담집을 통해 박완서를 알 수 있고, 박완서의 소설을 알고 싶어졌다. 


박완서를 제대로 만나게 해주었다


솔직히 말해 박완서의 소설을 그리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다. 주요 작품들 몇 편만 접해봤을 뿐인데, 그건 아마도 그를 대표하는 키워드들 때문일 것이다. 그가 너무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다는 것, 대표적인 여류 작가로 여성에 천착한 소설을 썼다는 생각, 별 것 없는 일상을 잘 풀어내기만 했을 거라는 편견, 6·25에 너무 편중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 등이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을 테지만, 나로서는 그것들이 크게 작용했다. 


이 대담집은 그런 점들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간에서 말하길, 이러 저러 하더라. 이에 그는 변명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결코 틀리지 않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했고 이렇게 썼다고 말한다. '이웃들의 삶 속에 존재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고, <미망>에서 좋은 의미의 자본주의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은 참으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책은 박완서를 다시 만나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살아 생전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껏 좋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를 기리고 헌정하는 그런 책. 하지만 나에겐 다르게 다가왔다. 박완서를 잘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은 박완서를 다시 생각하는 게 아닌, 박완서를 제대로 보고 만나고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책의 기획 단계에서 그것까지 인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이 책은 나에게 정녕 좋은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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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아베의 가족>



<아베의 가족> 표지 ⓒ아시아


"황량한 들판에 던져진 그 시든 나무들의 꿋꿋한 뿌리가 돼줄는지도 모를 우리의 형 아베의 행방을 찾는 일도 우선 그 무덤에서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전상국의 소설 <아베의 가족>이 한국 분단 문학에서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60년이 넘도록 여전히 한반도에 깊이 아로새겨진 한국전쟁의 폭력성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분단의 비극을 능수능란하게 여과 없이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으로도 충분한데 이 총체적 비극의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거기서 이 소설은 분단 문학을 넘어 한국 문학에서도 특별하게 되었다. 


이 소설이 전하는 한국전쟁의 폭력성, 분단의 비극 그리고 비극 해결 모색을 들여다보자. 이를 들여다보는 건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와 한국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쟁의 폭력성과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아베'가 꿋꿋한 뿌리가 돼줄 것이지만, 상흔은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짊어지지도 짊어지지 않을 수도 없는 전쟁의 비극


진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떻게든 적응을 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어머니는 본래 강한 사람이었는데 미국에 오니 시든 병아리 마냥 힘이 없고 우울하다. 그건 '아베'를 한국에 남겨왔기 때문이었다. 아베는 누구인가. 그는 한마디로 백치. 가난한 진호의 가족들은 그들의 가난을 아베 때문으로 돌렸다. 미국에 와서는 아무도 아베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사가 하나 빠진 느낌으로 살고 있었다. 아베 때문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호는 어머니의 수기를 우연히 읽는다.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수기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아베의 과거가 낱낱이 그려져 있었다. 진호는 급기야 아베를 찾으러 한국에 가기로 마음 먹는다. 도대체 수기에는 어떤 기막힌 과거가 그려져 있는 것일까? 


어머니와 아버지의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한국전쟁으로 단숨에 깨진다. 아버지가 전쟁에 끌려간 것이다. 어머니는 동맹국 미국군에 의해 강간을 당한다. 그렇게 태어난 게 아베다. 아베는 제대로 태어나지 못했다. 그 아베를 잘 보살펴준 게 지금의 아버지다. 그것은 아버지의 과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군인이었는데 탈영을 하여 민가에 들어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죽였었다. 그 장면을 백치 아이가 고스란히 보고 있었는데, 아베가 그 백치 아이를 연상시켰고 아버지는 그 백치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아베에게 투영하여 속죄하려 한 것이었다. 


미국군이 어머니를 강간한 것과 아버지가 민가의 사람들을 죽인 것 모두 전쟁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잘못 태어난 아베는 비극을 상징할 것이다. 폭력을 당한 사람, 폭력을 행한 사람 모두 비극을 안고 살아간다. 다만 그 비극의 이면, 감춰진 비밀을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다. 결국 비극이 가져다주는 아픔을 끝까지 짊어지지 못한다. 그렇다고 멀리한다고 아프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폭력이 가져다준 비극이란 그런 것이다. 짊어지지도 짊어지지 않을 수도 없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굴레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딜레마 중 하나는 이렇다. 누구든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단 말인가? 그렇지만 이 극도의 모순이 우리 사회에 지극히 존재한다. 시대를 표현하는 데 가장 탁월한, 그중에서도 사회의 진짜 모습을 그리는 데 천착하는 독립 영화가 가장 많이 그리는 것이 바로 이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굴레'인 걸 보면 알 수 있다. 


<아베의 가족>이 보여주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바로 이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굴레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인은 피해자(미국군에 의해 강간을 당한 어머니)이자 가해자(군대에서 탈영하여 민가로 들어가 사람들을 죽인 아버지)의 굴레에 말려들어 갔다. 문제는 결과와는 달리 원인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누구에 의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개인의 경우는 이렇겠고 국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36년의 치욕적인 일제강점기를 한국인에 의해 끝내지 못했고(김구 선생은 타국에 의한 한국의 광복을 한탄했다.) 분단 또한 한국인만의 의지가 아니었다. 비극의 원인이 다른 누구에게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굴레는 우리가 진 채 살아가고 있다. 


소설은 아베를 짊어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말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순 없다고 본 것이다. 비극의 원죄를 묻는 데 앞서 앉고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상처는 결국 곪아갈 것이고 그로 인해 몸은 시들어갈 뿐이다. 아베를 두고 온 어머니가 시들어가고 무기력해진 것처럼 말이다. 아프고 치욕적이지만 우리의 뿌리임이 분명한 아베다. 그 뿌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딜레마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출판사에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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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그랜 토리노>


영화 <그랜 토리노> ⓒ워너브라더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본래의 의미에서 상당히 빗겨나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과 북으로 갈려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모든 것을 규정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인데, 보수와 진보라는 거대한 가치가 한국에서는 이데올로기에 먹혀버린 듯한 형상이다. 


보수와 진보는 사실 철학적인 용어로, 각각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 그리고 전통적 가치나 정책·체제 등에 반하여 새로운 가치나 정책의 창조를 주장하는 사상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그래서 이들은 그 자체가 지니는 악이나 선의 개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조직마다, 나라마다 견지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그들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추구하는 것 뿐이다. 


전통을 중요시하고 지킬 게 많아지면 자연스레 보수가 되기도 하고, 변화를 중요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면 진보가 되기도 한다. 한편 이 둘을 혼합할 수도 있다. 필자도 어느 면에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면을 강조하고 추구하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완전한 진보적 가치를 견지하기도 한다. 그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역사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를 것이다. 


영화 <그랜 토리노>는 이 중에서 '보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보수의 본래 의미인,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를 완벽히 수행하는 한 노인의 모습을 그린다. 월트 코왈스키 노인(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현재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한적한 동네에서 애완견과 함께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그들은 코왈스키의 보수적인 태도를 못 마땅히 여기며 조롱하기만 할 뿐이다. 


한편 그에게는 1972년산 '그랜 토리노' 자동차 한 대가 있다. 포드 자동차에서 50여년을 일한 그에게 그 차는 보물과도 같은 것으로, 매일 같이 관리하고 지켜보고 있다. 지켜야 할 절대적 '선(善)'인 것이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더 있다. 바로 그의 작은 집과 앞마당.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장총을 서슴없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겨눌 수 있다.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는 아마도 자신이 보수주의자인 걸 딱히 인지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지 '나의 것'을 지키고 가꾸고 보존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또한 그에게는 과거에 겪은 크나큰 사건이 그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이 과거를 청산하고 동시에 조금은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할 기회가 그에게 찾아온다. 


그의 옆집에는 흐몽족(베트남 남부의 소수 민족)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 '타오'라는 아이가 있는데, 같은 흐몽족 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곤 한다. 갱들이 와서 자신들과 함께 깽판을 치며 놀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대상은 바로 옆집 코왈스키 소유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는 것. 하지만 코왈스키의 방어 때문에 실패한 타오는 도망친다. 어느 날 다시 찾아온 갱들, 그들끼리 벌어지는 실랑이, 코왈스키 내 앞마당까지 침범해 벌어지는 실랑이, 장총을 들고 와 방어하는 코왈스키, 엄청난 카리스마에 도망치고 마는 흐몽족 갱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영웅이 된 코왈스키. 그렇게 영웅이 된 코왈스키는 옆집과 점점 더 친해지며 특히 타오와 친해진다.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런데 코왈스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타오의 누나인 수가 길에서 흑인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 코왈스키가 나서서 구해준 것이다. 참으로 카리스마 있는 코왈스키의 모습에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짜고짜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모습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과장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에서 '세계 경찰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흐몽족 수가 말해주는 종족의 역사를 생각하면 더더욱. 왜 베트남 사람이 미국까지 와서 지내고 있느냐는 말에, 수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공산당이 흐몽족을 학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흐몽족이 미국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영화의 의도를 조금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왈스키는 타오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갱들을 찾아가 두들겨 패 놓았다. 그는 왜 자신의 것을 넘어 자신을 영웅이라 떠받드는 사람을 지키려 했는가?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하지만 이 영화를 드라마로, 과거의 망령에 사로 잡혀 현재를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한 노인의 투쟁이라는 시선을 본다면, 감동적이기 그지 없다. 그는 언제고 거기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는데, 누가 보아도 위대하게 그리고 감동적이게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갱들이 다시금 찾아와 타오네 집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수는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에 코왈스키는 오랜 생각 끝에 갱들의 집으로 쳐들어 간다. 그 전에 타오가 오지 못하게 지하실에 가둬 둔다. 그러며 그는 타오에게 말한다. 


"사람 죽일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지? 그래, 완전 죽이는 기분이지. 한 가지 안 좋은 건, 어린 애들 죽이고 받은 훈장이지. 항복하려는 애들을 말이야. 너처럼 어린 병사들이 겁에 질려 있었어. 나는 그런 아이들 면전에 대고 라이플을 갈겼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 생각 안 나게 돼. 넌 그러면 안 돼. 난 이미 손에 피를 묻혔으니까. 난 이미 더럽혀 졌으니까. 그게 바로 내가 혼자 가는 이유다. 이제 넌 네 인생을 살아라. 난 끝내야 할 것이 있어. 그래서 혼자 가야 하는 거다."


착하고 순수한 청년 타오에게 자신과 같은 후회의 삶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게 악(惡)을 박멸 하려는 의도까지도. 그러며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싶었을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결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선택으로, 위대한 미래를 창조하는 데 쓰이게 될 것이다. 


지극히 드라마적인 요소와 캐릭터의 힘 만으로 끌고 가는 이 영화는 어떤 극적인 장면이나 분위기, 반전이 없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큰 웃음이 터져 나오곤 하는데, 의도치 않았겠지만 대놓고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보다 더 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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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다른

나에게 있어 미국은 몇 가지 유명한 사건들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아직 머리가 크지 않았을 때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작으로 히틀러에 의해 유린된 유럽을 복원시켰고 원자폭탄으로 일본을 파멸시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행한 나라. 또한 타국임에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출전하여 공산주의를 저지시키려 한 나라. 그리고 걸프전을 통해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그의 악랄한 나라인 이라크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나라. 미국은 고마운 나라이자, 믿음직한 나라이자,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나라였다. 


2001년 9월 11일, 세계 평화 수호자인 미국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대형 사건이 발발한다. 미국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슬람 테러단체가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무너지고 수천 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반 탈레반 정권을 수립한다. 2년 뒤에는 이라크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초강대국 미국의 추락이 시작됨과 동시에, 미국의 침략과 폭력이 부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진짜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 미국의 진짜 모습일까. 자유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평화를 바라는 미국이 진짜일까. 간섭과 침략과 폭력의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진짜일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과 시도로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었고 내놓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내놓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하워드 진'이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쟁에 참가한 전력이 있으며, 흑인여자 대학에서 교수 직책을 잡은 적이 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는 한평생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했고 전쟁을 반대했으며 평등을 외쳤다. 그는 <미국 민중사>라는 명저를 남겼는데,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다른)는 <미국 민중사>와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이다. 


만화의 콘셉트는 하워드 진이 강의를 통해 들려주는 미국사이다. 1890년 '운디니드 학살'을 시작으로 2001년 9.11 테러까지를 다루며, 미국이 어떻게 세계 초강대국으로 되어 가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일들을 저지르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하워드 진이 직접 겪었던 사건, CIA 기밀 문서에나 나올만한 내밀한 사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제 머리가 클만큼 커서 미국에 대한 환상을 져버린지 오래이고 그래도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만화를 보니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진짜 미국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더 내밀한 진짜 미국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 군대는 도덕적 목적이 아닌, 정치·경제·군사적인 목적에 이용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신이, 자신들에게 미개하고 미성숙한 나라에 민주주의라는 축복을 전하라는 운명을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말입니다."(본문 중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진실-침략 전쟁


저자는 미국사의 익히 알려진 사실을 나열하고 있다. 그중에는 알려져 있지만 숨겨진 진실들이 부지기수이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많다. 몇몇 주요 사건들을 간략히 다뤄보며 미국사을 빠르게 해부해 보겠다. 


지금은 전설적인 존재들이지만,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악덕 자본가들'이 있다. J.P. 모건, 존 D. 록펠러, 제이 굴드, 조지 폴먼 등이다. 그들은 미국 초기 때 광산과 철도 등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들의 악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제이 굴드가 했던 말인 "나는 노동계급의 절반을 고용해서, 나머지 절반을 죽일 수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조지 폴먼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계속해서 삭감하면서, 사택 임대료는 그대로 두었다. 그로인해 그는 고용주로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이어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평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간섭과 전쟁이, 사실은 미국 내의 파업과 저항운동의 반항적 에너지를 외부의 적에게 돌리려 한다는 수작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대표적 시작은 미국-에스파냐 전쟁으로, 이미 19세기 말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만 아니었을 뿐, 19세기 중반부터 온갖 간섭을 명목으로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했다. 


전쟁은 계속 이어진다. 하외이, 필리핀, 멕시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전쟁은 아닐지언정 미국이 뒤에서 조종한 전쟁이 일어난 곳도 쿠바, 니카라과, 이란 등 지면이 없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진실-조용한 전쟁


미국의 전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외부 침략의 전쟁과 맞물려 내부에서 조용하지만 격렬하고 끔찍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책의 시작에 나오는 '운디드니 학살'은 내부에서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엄연한 '침략'이었다. 수천 년동안 살고 있던 터전에 갑자기 타인이 쳐들어온 것이 아닌가?


이어서 악덕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계속된다.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건 파업밖에 없었고, 자본가들을 위시한 국가가 할 줄 아는 건 억압과 폭력뿐이었다. 그것으로 안 되니까 주지했다시피 외부로 눈을 돌린 것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부 전쟁이 있다. 바로 인종 전쟁. 백인과 흑인 간의 오래된 전쟁이다. 이는 내부에서도, 전쟁 중에서도 계속된다.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인종 차별의 정신이기 때문에, 참 오래가기도 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는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이 모든 반항적 에너지를 전쟁에 돌렸듯이, 이들 모두가 모여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을 벌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이자 작중 화자인 하워드 진이 강의하는 장면에선 그의 등 뒤로 여지없이 '이라크 전쟁 반대' 보이는 게 인상적이다. 이처럼 미국사는 '(모든 류의) 전쟁'과 '전쟁 반대'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의 한 장면 ⓒ다른


이 만화책은 그동안 접해왔던 교양학습만화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저명한 학자의 저서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만화로 옮긴 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만화로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옮겨졌을 뿐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학자의 연구 결과 그 자체이다. 하지만 저자(하워드 진)의 것인지 아니면 각색자의 것인지 모를 높은 수준의 유머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화로써 가지는 최소한의 코믹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 만화책은 만화가 가지는 시각적 특징을 최대한도로 이용했다. 위의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글을 적절히 혼합하였다. 시각적인 요소로써 만화와 사진은 동일한 장점을 지니지만, 실사는 객관성과 신뢰 그리고 때론 잔혹성을 높여주는 측면까지 지니고 있다. 여기에 일반적인 만화책보다 월등히 많은 글은 오히려 학습만화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만큼 마지막은 저자의 글로 끝마치도록 하겠다.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어려울 때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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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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