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열전] 하정우


개인적으로 '하정우'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된 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청어람



2005년, 일병 정기휴가 때였다. TV를 틀어 우연히 보게 된 게 하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현역 군인이 제대로 된 한국 군대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못해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저 상병과 병장은 미래의 내 모습일 것 같고, 저 일병은 현재 내 모습인 것 같고, 저 이등병은 얼마 전 내 모습인 것 같고...


그때 배우 하정우를 처음으로 보았다. 하정우가 분한 유태정 병장의 군대 생활과 제대 이후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며, 그의 중학교 적 친구 이승영이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맛물려 누가 진짜 '용서받지 못한 자'인가를 신랄하고 가슴 아프게 전한다. 하정우의 실생활적 면모에 기반한 연극적·영화적 연기를 두루 감상할 수 있는데, 윤종빈 감독이 중요한 역으로 나와 함께 전설적 캐미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하정우의 스크린 데뷔작은 아니다. 그는 2002년에 드라마와 영화로 데뷔해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도 역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갔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한 자>가 개봉하기 전에 이미 <잠복근무>라는 당시 메이저급 영화에 조연으로 얼굴을 알리기도 했고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와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위한 방편처럼 느껴진다. 


열일 하정우


'열일' 하정우의 한창 때 작품이자, '대세' 하정우로의 다리가 되어준 작품 <추격자>의 한 장면. ⓒ쇼박스



그는 1998년부터 데뷔를 하고 나서인 2003년까지 거의 매년 한두 작품씩 연극무대에 섰는데, 그 나이 때 배우들이 많이들 듣는 '발연기' 논란 한 번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김용건'이라는 전국민이 누구나 알 만한 배우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자기만의 클래스를 만들고자 한, 멀고 험하지만 알차고 지능적인 경력생활이다. 


하정우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윤종빈이다. 이들은 자그마치 4편을 함께 하는데, 하정우는 단연코 어느 한 감독과 그만큼의 영화를 함께 하지 않았다. '페르소나'라고 할까. 이들은 다름 아닌 대학 선후배 관계다. 둘 다 중앙대학교 출신으로 하정우는 1978년생 연극학과, 윤종빈은 1979년생 영화학과. <용서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인데, 하정우를 비롯 학교 선후배를 총동원해서 찍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 이들은 훗날 일명 '윤종빈 사단'이 되어 많은 영화를 함께 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하정우는 말그대로 '열일' 한다. 하정우 하면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먹방과 열일인데, 열일 수식어는 아마 이때부터 그 싹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2년 동안 그는 자그마치 단역, 조주연 가릴 것 없이 6개 영화에 출연한다. 대부분 비대중적이지만, 모든 면에서 그의 연기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8년이다. '대세' 하정우의 시작이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2008년 <추격자>야말로 하정우의 이름값을 수직상승시킨 영화다. 희대의 사이코패스 지영민은 2000년대는 물론 한국영화사에 남을 만한 캐릭터로, 하정우는 '능청스럽게' 연기해버린다. <공공의 적>의 사이코패스 조규환이 준 충격을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10년이 지났어도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는 그 눈빛과 행동, 그의 나이 불과 31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해, 단역 한 편과 주연 세 편을 합쳐 네 편의 영화에 출현했다. 윤종빈 감독과 함께 한 <비스티 보이즈>처럼 조금 아까운 영화도 있고, <멋진 하루>처럼 멋진 영화도 있다. 


대세 하정우


그야말로 '대세' 하정우의 한 가운데에서 흥행과 비평, 이슈 모두 훌륭했던 작품 <터널>의 한 장면. ⓒ쇼박스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하정우라는 배우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굳어진 시점이. 사이코패스조차 능청스럽게 연기해버리는, 그만의 특유한 연기 방식이 말이다. 그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사람의 모습을 띤다. 거기에 어떤 '연기적' 요소를 찾기 힘들다. 여타 연기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톤 앤 매너가 그에겐 없다. 


반면, 지극히 '연극적' 요소는 항상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내 주위에도 있는데, 연극적인 일반인 말이다. 하정우는 그 연극적 요소들을 깨알같이 잘게 부수어 연기 전반에 촘촘히 박는다. 부자연스러움은 옅어지고 신선함과 재미짐이 떠오르는 광경을 우린 목격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아니 2005년 이후 2016년까지 2014년을 제외하고 하정우는 일 년에 두 편 이상 영화에 출현하지 않은 때가 없다. 그리고 최소 한 편 이상 흥행, 비평, 이슈 등으로 한 해 영화계를 흔들 만한 메이저급 영화에 출현한다. 나열해 보자면 2009년 <국가대표>, 2010년 <황해>, 2011년 <의뢰인>, 2012년 <범죄와의 전쟁>, 2013년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 2014년 <군도>, 2015년 <암살>, 2016년 <터널> <아가씨>... 누군가는 한 편 출현하기에도 힘들 영화들이다. 그리고 올해에는 엄청난 제작비와 함께 그 만듦새 때문에 엄청난 걱정거리(?)를 안기고 있는 <신과 함께>가 대기 중이다. 


하정우 하면 다가오는 이미지가 '믿음'과 '탄탄' 등일 것이다. 탄탄한 연기에 기반한 믿음가는 영화 또는 캐릭터랄까. 그건 하정우라는 사람한테까지도 충분히 적용될 만하다. 그는 이에 부응하듯 배우라는 타이틀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하고 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종합예술인 하정우


'아티스트' 하정우로서의 작품들이다. 하정우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인이 아닌가. ⓒ하정우



영화 감독 타이틀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2013년 <롤러코스터>와 2015년 <허삼관>을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했다. <허삼관>에는 주연까지 도맡아 했다. 비록 두 작품 모두 흥행 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고 비평 면에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 도전 자체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배우 열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언제 글을 쓰고 연출까지 했을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엄연히 수많은 아트페어와 개인전까지 연 '아티스트'다. 


하정우 열일의 절정기이자 대세 하정우의 시작점인 2008년, 그는 이미 아티스트로의 길을 암중모색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국가대표급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때 2009년, 자원순환 정크아트 공모전에 작품을 기증한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데, 캐릭터의 이미지와 심리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독백과 세상을 향한 방백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며, 인간, 배우, 남자로서 스크린에서 하지 못했던 또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리라. 


그야말로 하정우를 '종합예술인'이라고 칭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배우라는 타이틀에 한정짓기에는 하정우라는 사람의 면면이 너무 방대하고 이채롭다. 연극, TV드라마, 영화, 시나리오 작가, 감독. 그리고 에세이 작가, 그림 작가까지. 그 자체로 현대 '종합예술'의 결정판으로 여겨지는 영화의 한 가운데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그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하지만 같은 길을 가는 방면을 개척해 역시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는 그.


이제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그의 이름 석 자가 아로새긴 예정작들이 즐비하다. 우린 그저 즐거울 뿐이다. 열일하는 그가 부러우면서 믿음직하고, 한없이 대세인 그가 계속 대세였으면 좋겠으며, 종합예술의 경지에 오른 그가 더 멀리 오래 비상하기 위해 조금은 몸을 추스렸으면 한다. 오래된 팬으로서 갖는 아이러니이지만, 여하튼 그를 여기저기에서 꾸준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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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멋진 하루>


하정우가 아직 신인이었을 당시, 베테랑 전도연과의 만남으로 많은 기대를 받은 작품 <멋진 하루>. 역시,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하나다. ⓒ스폰지 Ent



가끔 '한국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다른 어느 나라 영화도 아닌 한국 영화가 말이다. 중국이나 일본 영화와는 달리 한국 영화는 '풍'이 확고하지는 않은 것 같다. 미국을 위시한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까. 굳이 뽑아보자면 한이 서려 있는 풍이 한국 영화의 풍이랄까. 그래서 일명 '국뽕' 영화가 많이 만들어 지고 또 많은 인기를 얻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 영화의 풍은 섬세한 멜로를 기반으로 멜랑꼴리와 유머와 현실 감각이 조금씩 섞인 장르인 것 같다. 이 또한 영향을 받을 것일 수 있지만, 그래도 가장 한국 영화 같지 않을까. 내가 가끔 '한국 영화'가 보고 싶을 땐 바로 이런 풍의 영화가 보고 싶을 것을 게다. 


전도연과 하정우가 멋들어지게 연기한 2008년작 <멋진 하루>는 비록 원작은 일본 소설이지만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영화다. 모르긴 몰라도 일본풍이 강할 수밖에 없을 단편 소설을 훌륭하게 재단해낸 각본의 힘이겠다. 이제 막 신인을 벗어난 하정우는 날아다니고, 베테랑 전도연은 자신을 낮추고 모든 걸 받아주었다. 이 둘의 서울에서의 하루를 멋지게 그려냈다. 다시 봐도 정녕 괜찮은 영화다. 


왠지 '멋진 하루'일 것 같은 이들의 하루


영화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일상적 이야기를 포착하며 시작한다. 두 번째, 세 번째에 비로소 우리의 주인공 희수(전도연 분)가 등장한다. 카메라는 이제 그녀에게 집중한다. 여타 영화와는 다른, 신선한 시작이다. 희수가 있는 곳은 경마장이다. 그녀는 어슬렁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하다. 어디선가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그에게로 가 반가워하는 그의 얼굴에 대해 대뜸 '돈 갚아'라고 한마디 한다. 


희수의 싸늘한 한마디와 병운(하정우 분)의 천연덕스러운 반응은 이 영화의 앞날을 예견한다. 시종 일관 계속될 이 둘의 티격태격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희수가 병운에게 받아야 할 돈은 350만 원, 참으로 애매한 액수다. 병운은 당장 갚을 돈이 없어 빌리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며칠 뒤에 붙여준다는 병운을 믿지 못하는 희수, 오늘 당장 받아야 한다고 하며 병운을 따라 나선다. '멋진 하루'의 시작이다. 


과연 멋진 하루일까. 굳이 끝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멋진 하루는커녕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될 거라고. 꿔준 돈을 받기 위해, 돈 꾸는 현장을 따라나서야 하다니. 영어 제목인 'My Dear Enemy'에서도 풍기는 이 정반대 콤비의 모순적인 하루. 그런데 병운의 천연덕스러움, 그가 돈을 꾸러다니는 풍경,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생각나게 하는 OST까지, 마치 설렘 가득한 산책을 가는 기분이다. 왠지 이들의 하루가 '멋진 하루'일 것 같다. 싱숭생숭한 기분은 어딘가로 가버리고 설렘만 남는다.


여성에 대한 천착에서 인간에 대한 섬세한 시선까지


영화는 이윤기 감독이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여성에 대한 천착을 간직한 채, 인간에 대한 섬세한 시선까지 보여준다. 한국 영화의 발전 양상을 보는 것 같다. ⓒ스폰지 Ent



그럴 때가 종종 있다. 정말 가기 싫은 곳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따라 가서 시종 일관 인상을 쓰며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있었는데 막상 떠나면서는 뭔가 괜찮았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말이다. 희수가 느낀 감정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내 돈 내가 돌려받겠다는데, 왜 내가 모르는 사람이랑 함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병운은 그게 다 너한테 돈 갚으려고 하는 거고 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둘러대니 더더욱 마음에 안 들고 인상이 찌뿌려진다. 


와중에 이윤기 감독은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여성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형식은 두 남녀의 좌충우돌 로드무비지만, 병운이 돈을 꾸러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듯한 회장님,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우며 마트 일을 하는 여자, 밤일 하는 여자,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여자, 어디를 다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듯한 여자 등, 그야말로 다양한 여성군이다. 


희수가 보기엔 병운이 여자들의 돈을 뜯어 먹는다기 보다 여자들이 병운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역겨워 보였는지 밤일 하는 여자한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곧 사과를 하는 희수, 그녀는 여자들을 향한 분노를 병운에게 돌린다. 반반한 얼굴과 사람 기분 좋게 하는 입담으로 여자들 돈 뜯어 먹는 놈. 


그렇지만 그녀가 그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그들은 그저 오래전 헤어진 연인일 뿐인데. 일 년 사이에도 몇 번이나 180도 바뀌는 게 인생 아닌가. 다시 보니 병운과 그녀들은 서로를 돕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분명 그녀들이 어려울 때 병운은 두 발 벗고 도와줬을 것이다. 감독의 여성에 대한 천착은 이렇게 인간에 대한 천착, 인간에 대한 섬세한 시선으로 발전했다. 


내 영화 인생에 나타난 특별한 영화 한 편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개봉한 지 오래지 않아서 이 작품을 봤을 것이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두 주연 배우 때문에 봤을 텐데, 묘하게도 근 10년이 지나도록 가끔 생각이 났다. 이 영화가 풍기는 분위기가 정녕 어디 서도 느끼기 힘들기 때문일 텐데, 묘하게 위로해주는 기분이랄까. 거기에 병운으로 분한 하정우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을 좋게 해준다. 더군다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러워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게 아닌가. 


자꾸 떠오르는 영화는 또 보게 마련이지만, 또 보게 되었을 때 실망할 여지가 많다. 그때 그 영화를 봤을 때 나의 상황과 나를 둘러싼 환경과 영화를 둘러싼 환경 등이 변했을 것이기 자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세상이 변했을 테니 말이다. 하다 못해 예전의 것이기에 촌스럽고 유치하고 예상되고 지루하고 재미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억 속 옛 연인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막상 보고 난 후 실망을 금치 못하느니 안 보는 게 낳다는 느낌이랄까. 


<멋진 하루>는 어땠나. 그런 기시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때 못 봤던 것들(영화 스킬, 장면, 영화 제목의 반어법)이 보이고, 그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병운이 돈 꾸러 다니는 여자들의 감정)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땐 참 '빈약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풍부한' 영화일 줄이야. 살아가면서 보고 또 보게 될 영화인 것 같은데, 몇 년 뒤에 또 보게 되면 또 어떤 것들이 되살아나 내 눈 앞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내 영화 인생에 특별한 영화 한 편이 나타났다. 


전도연과 하정우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영화


영화의 두 주연배우 전도연과 하정우. 그리고 이윤기 감독. <멋진 하루>는 감독뿐만 아니라 두 배우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의 조합을 다시 보고 싶다. ⓒ스폰지 Ent



이 작품은 무엇보다 두 주연 배우 전도연과 하정우에게, 특히 하정우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전도연은 2007년 <밀양>으로 역사적인 '칸의 여왕'이 되어 한국 영화계에 깊은 족적을 남겼는데, 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 <멋진 하루>를 선택했다. 전작에서 모든 걸 다 바친 듯한 연기를 선보였다면 이 작품에선 모든 걸 다 내려 놓고 후배 하정우에게 모든 걸 다 넘겨준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볼 때,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완성형 연기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한편 하정우는 2008년이 특별할 것이다. <추적자>로 필모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고, <비스티 보이즈>로 윤종빈 감독과 다시 만나 열연을 펼쳤으며, <멋진 하루>로 비로소 '하정우표' 연기를 완성시켰다. 하정우표 연기의 시작이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면, <멋진 하루>는 최근 <터널>까지 이어진 그의 연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왠지 그도 이 작품에서의 병운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좋아할 듯하다. 


연기를 잘하는 건 둘째 치고 배우 필모그래피 전체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작품들이 있을 텐데, 전도연과 하정우 두 배우에게 <멋진 하루>가 상징하는 바는 남다를 것이 분명하다. 비단 두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이윤기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2005년 <여자, 정혜>로 데뷔하자마자 많은 주목을 받았던 그, 계속해서 많은 사랑을 받다가 <멋진 하루>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로 비평과 흥행에서 참패, 작년엔 <남과 여>로 돌아왔지만 흥행에서 참패했다. 


물론 이윤기 감독의 작품들이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은 없지만, 적어도 비평에선 좋은 점수를 얻었던 바 최근의 행보가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그만의 색채가 묻어나는 각본을 다시 접하고 싶다. <멋진 하루>가 생각나는 멋진 이야기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11월에 개봉할 예정이었던 <어느날>의 개봉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게 아쉽다. 후반작업 때문이라고 하는데 하루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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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배우 콤비 8] 윤종빈과 하정우


개인적으로 독립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요. 그 시작이 2005년 작 <용서 받지 못한 자>였습니다. 지금은 대세가 된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배우가 함께 했죠. 윤종빈 감독은 연출과 함께 3명의 주연 배우 중 한 명으로 출연도 했습니다. 이후 이 둘은 3편의 영화를 더 찍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4편의 영화가 윤종빈 감독의 연출 필모그래피 전부죠. 즉, 윤종빈 감독은 모든 영화를 하정우와 함께 한 것이죠. 





단순한 관계는 아닌 걸로 보이죠?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배우는 무슨 관계일까요? 다름 아닌 대학교 선후배 관계라고 합니다. 둘 다 중앙대학교 출신인데요. 윤종빈 감독은 1979년생 영화학과, 하정우 배우는 1978년생 연극학과네요. 과는 다르지만 학부는 같은 셈이지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 감독의 졸업 작품으로 2,000만 원을 들여 만들면서 학교 선후배를 총동원했다고 해요. 같이 출연했던 서장원, 임현성, 한성천도 모두 학교 선후배이고 이 작품이 데뷔작이에요. 임현성, 한성천은 조연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윤종빈 감독 작품에 자주 출연하고 있네요. 이들 모두가 윤종빈 사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작품이 들쑥날쑥한 면이 있는데요. 첫 작품은 굉장히 좋았고, 두 번째는 상대적으로 별로 였습니다. 세 번째는 다시 좋았고, 네 번째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죠. 다음 작품은 좋을 거라 예상됩니다. 대중 산업의 최전선인 영화계에서 이런 식의 우정을 계속 이어나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물론 서로 실력으로 믿을 만해야 하겠지만 말이에요. 그럼에도 감독의 입장에서 자신의 모든 작품 주인공을 한 사람 만으로 채운다는 건 모든 걸 넘어선 무엇이 있어 보입니다. 두 분 모두의 원년 팬으로서 두 분의 앙상블이 계속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용서 받지 못한 자, 2005>





<비스티 보이즈, 2008>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군도: 민란의 시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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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용서 받지 못한 자>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포스터. ⓒ 청어람



철없는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된 남자에게 "군대를 갔다 와야지 철도 들고 정신차리지"라는 말은, 마냥 듣기 싫은 말이기 보다 일종의 기대심리가 적용되는 말이다. 말인즉슨, 누구나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면 세상이 원하는 진정한 남자가 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엔 필수적으로 '변화'가 뒤따른다. 과연 어떤 변화일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국 특유의 위계질서, 그 중심에 있는 남자들만의 위계질서. 군대를 가기 전의 '무질서'에서 군대를 다녀온 '질서'로의 변화가 이를 주도한다. 군대는 문신을 새기듯 질서를 몸에 체득시킨다. 이는 곧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남자가 되는 길인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수많은 '용서 받지 못한 자'들이 존재한다.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군대라는 소재를 아주 미시적으로 접근해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남자로의 변화, 권력의 질서 안에서 변해가는 자들의 모습 등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너무나 공감이 되는 내용에, 몇 번이고 몸서리치며 보고 또 봤던 기억이 난다. 필자 또한 '용서받지 못한 자' 중의 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또 한 번 몸서리가 처진다. 한 점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용서 받지 못한 자들


영화는 두 파트로 나뉘어 진행된다. 승영이 자대 배치를 받고 난 후 군대에서의 이야기와, 승영이 상병 휴가를 나와 태성과 만나는 이야기. 먼저 군대에서의 이야기부터 풀어본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 또한 간단하다. 제목처럼 전부 '용서 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 중에 누가 봐도 용서 못할 인물이 있다. 


말년 병장 '수동'(임현성 분). 그는 내무실 최고참으로 최 정점의 위치에서 권력을 마구 휘두른다. 후임의 팬티를 훔쳐 입고, 후임의 편지를 훔쳐 읽으며, 성추행까지 행하는 등의 각종 부조리한 짓거리를 일삼는다. 그가 하는 말은 대체적으로 이렇다. "고참이 하자면 하는 거지." "야, 나도 옛날에 그렇게 당하면서 지냈어." 그렇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 되물림 하는데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군대가 낳은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그러면서도 제일 큰 희생자이기도 하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일방적 가해자와 희생자로 비춰지는 수동과 승영. ⓒ 청어람



그런 그와 거의 동년배인 분대장이자 병장 유태성(하정우 분)이 있다. 그는 스스로 군대 생활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즉, 뒤 끝없이 조이고 풀어주는 역할을 잘했다는 말이다. 수동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적당히 풀어줄 줄 아는 그는 사실, 수동보다도 더 용서 받지 못한 자라 할 수 있겠다. 이는 그의 신참 부사수이자 중학교 동창이기도 한 이승영(서장원 분)과의 애매모호한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태성은 중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승영과 허물없이 지내려 한다. 그래서 부조리한 군대 생활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는 승영을 언제나 감싸주려 한다. 하지만 결국은 이와 같은 행동이 군대라는 곳에서 승영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승영은 부조리한 군대 권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참을 수 없어 몇 번이고 선임과 다툼을 하고 그럴수록 미움만 받는다. 그런 사이에 승영의 부사수인 허지훈(윤종빈 분)이 들어온다. 지훈은 일명 고문관으로, 지지 리도 어리바리한 인물이다. 승영은 그런 모습을 착하다고 생각하며 한없이 잘해준다. 이윽고 얼마 후 태성이 전역을 하고 그들에게 시련이 닥친다. 여기저기에서 후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승영을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이에 승영은 결국 돌아서고 만다. 그 누구보다도 부조리한 권력을 반대했던 그마저도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훈을 버리고 권력에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승영. 갈 곳 없는 지훈은 자살을 택한다. 어리바리하게 군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지훈을 욕할 것인가, '전향'에 가까운 변화를 택한 승영을 욕할 것인가. 진정 용서 받지 못한 자는 누구인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일방적 희생자였던 승영은 어느샌가 가해자가 되어 있다. ⓒ 청어람



진정 용서 받지 못할 자는 누구인가


영화의 다른 파트를 들여다보자. 승영은 상병 휴가를 나와서 태성을 만나려 한다. 그런데 태성은 좀처럼 만나주려 하지 않는다. '민간인'에게는 '군인'이 별거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그들에게 쓸 시간이 아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여하튼 태성을 만난 승영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지훈에 대해 상의하려 한다. 물론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승영. 이에 태성은 '군인은 다 힘들어'라는 말을 전달하며 더 이상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군대에서의 일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힘들기 때문에 그냥 버티라는 말 밖에는 해줄 말이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며 애초에 차단을 해버리니, 승영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태성한테 말해봐야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겠는가. 그는 어설픈 자기 학대를 시도하고, 태성에게 매달려 울어도 본다. 하지만 남는 건 생채기와 '괜찮아'라는 태성의 영혼 없는 위로 뿐. 


이 타이밍에서 영화가 말하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승영이다. 그는 신병 때부터 고수해온 권력에의 반(反)함과 '후임이 왕이다'라는 생각을 완전히 반대로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 때문에 지훈은 자살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사실 지훈은 여자친구와의 헤어짐으로 인한 충격으로 승영과 다른 선임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고, 이를 본 승영은 폭발해 지훈을 심하게 나무랐고 지훈은 자살을 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휴가를 나온 승영이 자살을 택하고 만 것이 아닌가. 이는 누구 때문일까. 자신의 선택으로 빚어진 일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택했으니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걸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태성이 조금이라도 승영의 말을 들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렇다면 태성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용서 받지 못한 자'인가? 몇 번이고 돌려봐도 진짜 '용서 받지 못한 자'를 찾기란 가히 쉽지 않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멱살잡기는 가해자와 희생자를 상징하는 듯하다. ⓒ 청어람



혹시 나는 용서 받지 못한 자가 아니었나?


테이프를 앞으로 감아본다. 다시 처음부터. 용서할 수 없는 또는 자신도 모르게 용서 받을 수 없는 자가 된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태성은 승영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승영은 결정적일 때 지훈을 질책하며 그를 저버렸다. 지훈 역시 시간이 가도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동을 비롯한 승영과 지훈의 선임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군대에 만연한 권력 구조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이며 후임들을 몰아세웠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모두 군인이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군대란 말인가. 몇 번이고 영화를 돌려봐서 얻은 결론이다. 군대로 상징 되는 이 시대의 거대한 틀, 구조.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 희생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용서 받지 못한다. 가해자이기 때문에. 


생각해본다. 나는 군대에서, 사회에서 희생자인가. 가해자인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희생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사슬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처음 볼 때는 코믹하고 일상적인 군대 이야기로 보이다가, 보면 볼수록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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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신간 책 수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돌베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2013년 10월, 268쪽, 13000원, 유시민 지음, 돌베개 펴냄


유시민과 돌베개 출판사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에 <97년 대선 게임의 법칙>부터 시작해 2002년에는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2007년 <대한민국 개조론>, 2009년 <후불제 민주주의>, 2010년 <운명이다>, 2011년 <국가란 무엇인가>. 하나같이 당대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논란에 중심에 있으면서, 그 힘을 잃지 않고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이 다시 만나 논란에 중심에 돌직구를 날리는 책을 출간했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대선 직전에 벌어졌던 'NLL 포기' (허위) 폭로로 시작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대한 일련의 사건들. 사실 너무나 꼬이고 꼬여서 생각하기도 싫은 문제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생각할 수도 생각하기도 싫은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는 아마 국민으로하여금 여기에서 관심을 멀리하게 하기 위한 누군가의 술수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정치인에서 자유인으로 돌아간 '유시민'이 숱한 논란 속에서 전문이 공개된 대화록에 대한 해독과 일목요연한 해설을 곁들인 책을 집필했다. 이 대화록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발언'의 해석에 있기 때문에, 저자는 이를 최대한 풀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회담 전후 상황과 텍스트들을 꼼꼼히 비교분석한 것은 물론이다. 


아무래도 유시민이 정치인이었을 당시 반대 입장을 취했던 사람들은 이 책을 굉장히 정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점이 이 책과 저자가 가져가야 할 숙제이다. 이 책은 단순히 논란을 등에 업고 나온 한순간 반짝하는 책에 그치고 말 것인가? 아니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며, 하나의 텍스트가 될 것인가?



[신작 영화 수다]


<롤러코스터> ⓒCJ엔터테인먼트<톱스타> ⓒ롯데엔터테인먼트


<롤러코스터>

2013년 10월 17일, 하정우 감독, 정경호 주연, 코미디


<톱스타>

2013년 10월 24일, 박중훈 감독, 엄태웅 주연, 드라마


톱 영화배우 출신의 두 신인 감독이 공교롭게도 한 주를 두고 영화를 내놓았다. 하정우 감독의 <롤러코스터>와 박중훈 감독의 <톱스타>.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를 대표하는 하정우와 1990년대를 대표하는 박중훈. 과연 이들이 연출한 영화는 어떠할 지 기대된다. 그 기대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화면을 만들었는지, 어떤 각본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궁금한 것이다. (사실 이들의 이름을 빼고 영화 자체로만 볼 때는 거의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점) 


먼저 <롤러코스터>는 코미디라고 한다. 한류스타가 된 주인공이 일본 활동 중 여자 아이돌과 스캔들이 터져 도망치듯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일들. 거기에 기상악화로 착륙도 할 수 없는 상황! 과연 무사히 착륙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얼마 전에 열연했던 <더 테러 라이브>의 한정된 공간 모티브를 가져온 것 같다. 이번에는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 그것도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잘만 하면 본전은 뽑을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을까? 일단, 이유없이 보고 싶어지기에 어느 정도 점수를 준다. 


다음으로 <톱스타>는 드라마라고 한다. 왠지 제목만 봐도, 감독인 박중훈의 지난날이 보이는 듯하다. 솔직히 시놉시스는 안 봐도 뻔할 것이다. 주인공은 원래 톱스타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톱스타로 오르는 기회를 얻는다. 그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욕망에 휩싸인다. 정상에 올랐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이 폭발한다. 과연 그와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미래는?


뻔한 시놉시스이지만, '욕망'에 관한 드라마는 언제나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또한 진정한 톱스타였던 박중훈이라면 아무도 모르는 연예계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도 들게 한다. 그런데 보고 싶진 않다. 너무나 추악한 욕망을 그릴 것이 자명하기에, 보기 불편해지는 것이다.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할까?


감독으로 다시 시작하는 이들을 박수치며 응원해주고 싶다. 단지 배우로써의 인기를 등에 엎으려는 수작만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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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욕망이 맞부딪히는 지금을 보여준 <더 테러 라이브>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한 장면. "신고하지마.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야!" ⓒ 씨네2000


"지금…,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습니다."이 한 마디로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어느 불만에 찬 시청자의 장난 전화이겠거니 생각하며 터뜨려보라고 맞받아쳤더니 진짜로 폭파해버렸다. 그것도 방송국 근처에 있는 마포대교를. 만약 그곳이 다른 어딘가였다면, 앵커 윤영화(하정우 분)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테러범의 노림수였을까. 과거 '국민 앵커'라 불리면서 마감 뉴스만 5년 연속으로 진행했던 윤영화가 라디오로 밀려나 재기를 노린다는 것을 테러범이 알고 있었던 것일까. 윤영화는 이 테러를 기회라고 생각하고 생방송을 결심한다. 그러며 과거 그를 물 먹였던 차대은 국장(이경영 분)과 같이 시청률 대박을 노리고 테러범과의 전화 통화를 시도한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숨도 쉴 틈 없이 이야기를 진행시켜 10분 만에 본론으로 진입한다.

"신고하지마.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야!"(윤영화 앵커)

테러는 이미 벌어졌으니 재난영화로써의 볼거리는 이미 다 보여준 셈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세심한 배려를 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영화는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것을 택한다. 주연 배우 하정우의 상반신. 그곳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자신감의 표출이랄까. 
영화가 묻는 언론의 본질 그리고 정부의 본질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한 장면. "지금 시청률 78% 찍었는데, 끝나고 술 한 잔 하자!" ⓒ 씨네2000


영화는 윤영화의 이야기에서 테러범 박노규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박노규는 30년 전 마포대교 신축 공사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2년 전 마포대교 확대 공사에서도 노동자로 살았다. 그런데 2년 전 사고로 3명이 죽었을 때, 경찰이 국제 행사 때문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박노규는 이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마포대교 폭파를 계속한다. 그러며 '믿을 수 있는 국민 앵커' 윤영화의 입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려 한 것이었다. 그에게서 잘못 표출되는 욕망 덩어리를 볼 수 있다. 

영화는 이처럼 크게 두 가지 갈래 길로 나뉘어져 수평을 달리는 듯 보인다. 윤영화와 박노규, 박노규와 정부 간의 관계. 즉 억울한 한 '하층민' 시민이, 방송국(언론)의 국민 앵커라는 믿을 수 있는 통로를 통해 정부에게 요구를 하는 것이다. 영화는 테러범 박노규의 말을 통해서 묻는다. 언론(방송)의 본질이 무엇인가? 정부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로 하여금 테러를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이는 누구인가? 

이쯤에서 봤을 때 방송국은 이 사태에서 제3자의 입장일 뿐이다. 시청률 운운하는 것도 방송국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 무너지지 않은 마포대교 위에 인질 아닌 인질로 10여 명의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영화는 또 다른 길로 들어선다. 제3자의 입장이었던 방송국이 끼어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시청률 78% 찍었데. 끝나고 술 한잔 하자!"(차대은 국장)

그러나 거기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목숨조차 시청률에 이용해 먹으려는 차대은 국장의 욕망. 그는 대통령이 사과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테러범으로 하여금 인질을 다 죽게 만들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인질극의 막을 내리며 시청률의 정점을 찍고, 해결은 윤영화 앵커가 한 것으로 말이다.

여기서 윤영화는 딜레마에 빠진다. 다만 인질에 대한 미안함이 100%가 아니다. 그의 옆에서 경찰총장이 이어폰 폭발로 죽었고, 그의 귀에도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가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인질이 죽어서는 안 됐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 테니. 그 또한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윤영화는 차대은 국장의 말을 무시하고 곧 대통령의 사과가 있을 것이라며 테러범을 달랜다. 영화는 다시금 긴박하게 흘러간다. 차대은 국장의 제보로 윤영화 앵커의 비리가 밝혀지고 인질들이 있던 마포대교가 무너지면서 윤영화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때 테러범이 잡혔다면서 <더 테러 라이브>는 갑작스레 막을 내리게 된다. 

재미와 긴장은 시작 부분에 쏠려 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 롯데엔터테인먼트

각자의 욕망들이 격렬히 부딪히는 이 자리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원인을 제공한 자와 과정을 즐긴 자, 결과를 도출한 자들이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테러는 테러범 하나의 손이 아닌, 관련된 자 모두의 손으로 행해지게 된다. 


마지막 반전을 감안하고서라도 영화는 시작과 거의 동시에 긴장을 수반한 재미의 최고점을 찍고 뒤로 갈수록 내림세를 보인다. 중후반쯤에 보여주는 신파적 요소는 스릴러에서 재난 영화로의 급전환을 시도한 것처럼 보였다. 

그 이후였을까. 차마 화면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 있던 음악의 효과가 반감되고, 격렬하게 춤추던 카메라가 멈추며, 윤영화와 테러범을 두고 옥신각신하던 관계자들이 모두 퇴장해 텅 빈 공간만 남는다. 대신 땀나게 꼭 쥐었던 손이 풀리고, 다가올 허무함을 느낄 준비를 한다. 

그런데 허무함보다 슬픔이 밀려온다. 당연한 보상과 사과 한 마디를 받고 싶어 절규하는 하층민의 모습을 보며, 시민들의 목숨을 시청률의 수단으로 삼는 방송국 국장의 모습을 보며, 지하 벙커에 숨어 결국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대통령을 생각하며, 대통령의 사과를 대신하는 윤영화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그들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마지막에 가라앉는 건물에서 비치는 윤영화의 눈빛은 슬픔으로 가득 차있다.



"오마이뉴스" 2013.8.4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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