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독자에게]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표지 ⓒ아시아



영화와 더불어 단언컨대 우리가 가장 많이, 자주 접하는 대중매체 콘텐츠는 드라마이다. 아니, 영화는 극장이라는, 직접적인 돈이 지불되는 제한된 곳이 메인 매체인 반면 드라마는 TV라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무한정의 곳이 메인 매체이기에 가장 친숙한 콘텐츠인 게 자명하다 하겠다. 


즉, 드라마는 우리의 삶의 깊숙히 들어와 있다.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라면 삶 그 자체와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드라마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라고 해도 알게 모르게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보다 그 영향력에 비해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가 정통적으로 상정했던 시청자층의 협소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드라마를 오직 TV로만 접할 수 있었을 때는 오히려 영화보다 영향력이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아침, 저녁, 밤 시간대에 주로 방영한 드라마, 그 드라마의 주시청자는 주부였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회에서 빅마우스 역할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었다. 


시대가 지나 대중매체가 다양해짐에 따라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영화는 여전히 제약이 있는 반면, 드라마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드라마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시청자층은 다양해지고 다양한 시청자층을 수용할 다양한 드라마를 선보이게 되었다. 웰메이드 영화처럼 웰메이드 드라마도 탄생했다. 


드라마 분석과 연구와 비평


드라마를 무시하기는커녕 한국드라마는 일본, 중국을 포함 아시아를 완전히 점령했다. 드라마에서 파생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유행을 선도했다. 단순히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왔던 드라마는 우리의 세상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 대한 분석과 연구와 비평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는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드라마가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가미해 분석한 책이다. 드라마는 시대를 선도하기도 하고 시대에 각고히 발맞춰 가기도 한다. 반면 절대 시대에 뒤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만들면 온국민이 한 번쯤은 본다는 가정 하에 영화나 책처럼 종종 있는 허투루 만들어진 콘텐츠가 절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한국드라마를 중심으로 미국, 영국, 일본드라마도 종종 다루며 멜로, 가족, 판타지, 범죄의 네 가지 장르로 나눠 분석한다. 지금은 전방위적으로 퍼져 나갔지만 '한류열풍'의 원조는 한국드라마일진대, 그들 거의 모두가 멜로이다. 멜로와 필적할 만한 제작 편수를 자랑하며 흥행불패에 가까운 신화를 써내려온 가족드라마.


201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제작 편수를 늘리며 새로운 흥행신화를 써내려가고 그 환상성에 우리의 이야기를 잘 녹여내며 호평을 받고 있는 판타지드라마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자리잡아 가장 대중적으로 만들어지고 또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인 범죄는 우리나라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상륙한 모양새이다. 


드마라를 통해 현 시대를 들여다보다


이 책은 드라마 장르의 구분에 따른 분석, 드라마의 변천사, 드라마와 함께 해왔던 함께 하고 있는 시청자와의 조우 등을 소재와 주제로 삼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드라마가 만들어진 당대의 시대상을 요밀조밀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시청률의 압박은 심할지 모르지만, 영화보단 덜 상업적일 테고 영화보다 더 소통지향적일 테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드라마'에 한정해 누군가의 연구와 누군가의 드라마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또한 추천사를 통해 드라마 마니아, 드라마 작가지망생, 드라마 비평이나 논문을 준비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 책에서 '드라마'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즉, 드라마를 통해 다른 무엇, 현 시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드라마는 대상이 아닌, 대상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책은 드라마 자체를 들여다보는 데에도 훌륭히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난 편집자로서 그 점을 인지했고 저자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는 목적으로서의 드라마와 수단으로서의 드라마 모두를 들여다보는 데 문제 없이 가능한 훌륭한 책이다. 


멜로드라마와 판타지드라마


저자의 멜로드라마와 판타지드라마를 대하고 분석하는 시선은 대단히 균형 잡혀 있고 공감간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멜로드라마를 가장 무시하고 하찮게 여길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 고정관념 속에서 저자는 그 인기요인과 위험성을 분석한다. 패턴으로 고착화되어 간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있지만, 반복적으로 누적된 경험으로서의 관습이 기대와 만족감을 주기에 마니아층과 팬덤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로맨스가 생기고 사랑에의 금기를 내보이는 데에도 변화가 있다는 점을 인지한다.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사랑을 모두 성취하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결혼의 신성함과 순결은 더 이상 도덕적 관념의 틀 안에서만 해석되지 않게 되었으며, 중년과 노년의 로맨스와 재혼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망측한 짓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불륜, 동성애 등은 금기의 선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저자는 드라마가 판타지라 말한다. 드라마가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며 판타지의 환상성이 우리 안의 결핍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별에서 온 그대>의 사랑에의 욕구, <너의 목소리가 들여>의 행복에의 욕구, <시그널>의 정의에의 욕구. 드라마는 판타지이고 판타지는 우리 안에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드라마 관계자들은 사람들의 결핍과 결핍에 따른 욕구를 면밀히 분석해 현실적인 대리만족과 현실참여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여렴이 없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분들을 향한 헌사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그런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이다. 언젠가 세상은 보다 좋게 바뀔 것이다. 아니, 이미 세상은 보다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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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스탠바이, 웬디>


영화 <스탠바이, 웬디> 포스터. ⓒ판씨네마㈜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베이 에리어 장애인 센터, 그곳을 책임지는 스코티(토니 콜렛 분)는 모든 친구들을 알뜰살뜰 챙긴다. 자폐증세가 심한 웬디(다코타 패딩 분)도 그중 한 명인데, 그녀는 정해진 시간마다 요일마다 장소마다 정확히 해야 할 일만 정해놓고 생활한다. 웬디는 언니 오드리의 집으로 들어가 조카 루비를 보는 꿈과 함께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입상하는 꿈을 갖고 있다. 


감정조절이 자유롭지 않은 웬디가 과연 아이를 잘 볼 수 있을지, 스코티는 그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오드리는 솔직히 두렵다. 오드리는 세상 누구보다도 웬디를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녀와 함께 살 순 없는 것이다. 한편 웬디는 스타트렉 광팬으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평한다. 그녀는 진정한 팬들만 한다는 창작활동도 하고 있다. 


와중에 파라마운트사에서 스타트렉 대본 공모전을 실시한다.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웬디는 열심히 대본을 완성하였는데, 그만 제출 날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자폐증세가 그녀를 덮치려는 순간 '대기하라(stand by)'를 되새기며 가라앉히고 생각해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파라마운트사가 있는 LA까지 직접 대본을 들고 가기로 결심한다. 아무 도움 없이 반려견 피트와 함께 600km의 대장정에 오른다. 


웬디의 위대한 걸음걸음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스탠바이, 웬디>는 세상과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는 웬디의 세상을 향한 걸음걸음에 대한 영화이다. 유일한 혈육인 오드리조차 그녀를 케어할 수 없고, 그녀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 스코티의 눈조차 마주치기 힘든 그녀다. 그런 그녀가 그 먼 여정을 혼자, 아니 보호가 필요한 피트와 함께 떠났다는 것 자체가 정녕 위대한 일이라고 하겠다. 위대한 내디딤이랄까. 


영화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으로 제28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타는 등 당대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사랑을 받은 바 있는 벤 르윈 감독의 작품이다. <세션>은 소아마비로 전신을 사용할 수 없는 한 남자의 섹스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섹스 테라피스트와 함께 이뤄나가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그 '위대함'은 신선하다 못해 장엄했다. 


이 영화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도무지 할 수 없을 것만 갖은 일을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건 성장이라는 테마의 인간 승리를, 또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에 가까운 예쁜 동화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다. <스탠바이, 웬디>는 어느 쪽일까. 


웬디와 <스타트렉>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현실에 기반한 허무맹랑 판타지에 가깝다는 말이다. 실상은 웬디처럼 자폐증세를 가진 이들, 나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과는 거리가 있는 이들의 홀로서기가 과연 가능한가? 특히, '관계'에 있어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는 자폐증에 있어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겠다. 


그래서, 영화는 <스타트렉>이라는 기가 막힌 소재를 가져온다. <스타트렉>이 무엇인가. 단순히 우주 배경의 SF 시리즈인가? 아니, 이 시리즈는 미 개척지 우주 탐험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의 지구인과 외계인의 갈등과 이해를 중점으로 다룬다. 다양한 군상들의 '관계'를 통해 인간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핵심 포인트인 것이다. 


웬디가 다름 아닌 <스타트렉> 대본 공모전 때문에 절대적으로 지키는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불문율을 스스로 깨고 가본 적도 없거니와 가볼 생각도 못했던 600km의 대장정을 떠나는 건, 그야말로 여러 모로 기가 막힌 대비 설정이다. <스타트렉>을 향한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철저한 판타지에 가까운 <스탠바이, 웬디>는, <스타트렉>이 갖는 철저한 현실세계 지향성도 갖는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판타지나 공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고, 이 영화는 자폐아의 대장정이 아닌 남들과 다름 없는 평범한 삶 즉, 친언니네로 들어가 조카를 보며 함께 사는 삶에의 진짜 목표가 있다. 


사랑스러운 대장정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판씨네마㈜



괜찮은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장 마크 발레가 연출하고 리즈 위더스푼이 원 톱으로 이끈 영화 <와일드>에서 정말과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진 주인공은 홀로 대장정을 떠나며 무언가를 건져올리려 한다. 그 아무리 험한 장정이라해도 그녀가 겪었던 일보단 덜한 것 같다. 과정에 역점이 있다. 


<스탠바이, 웬디>에서 주인공의 대장정은 절대적인 목표가 수반되어 있다. 과정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누구는 못살게 굴고 누구는 살게 군다. 물론 대부분이 관심조차 두지 않지만. 그리고 이 세상 누구보다, 아니 이 세상에서 유이하게 그녀에게 무한한 관심을 두는 두 여인이 그녀를 쫓는다. 


스코티와 오드리가 그들이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이 과정에서 깨닫는 게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기본이 되는 '믿음' '신뢰'를 웬디에게 보내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 웬디도 충분히 홀로서기를 할 수 있구나, 누군가를 돌보는 게 충분히 가능하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여느 하이틴 영화 같은 말랑말랑함이 가미된, 단순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이 영화는 사실 굉장히 잘 직조된 세밀한 섬유 같은 영화였던 것이다. 반드시 행복한 엔딩을 맞보길 바라면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웬디와 피트의 여정과 함께 하길. 그리고 그들을 응원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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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루비 스팍스>


영화 <루비 스팍스>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10년 전에 전설의 베스트셀러를 내놓고 다음 책을 내놓지 못한 채 슬럼프에 빠진 천재 작가 캘빈 웨어필드(폴 다노), 여자는커녕 사람 자체를 만나지 않고 지낸다. 그저 친형과 자주 만나고 정신과 의사를 자주 찾아가며 아빠와 사별한 후 재혼한 엄마를 아주 가끔 볼 뿐이다. 10년 전에 내놓은 베스트셀러로 가끔 독자와 출판 관계자를 만난다. 


그가 요즘 어느 여자에 대한 꿈을 자주 꾼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야말로 꿈에나 그릴 그런 이상형의 여자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루비 스팍스(조 카잔 분). 캘빈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에 대해 하나하나 창조하며, 그녀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밤낮 없이 쓰기 시작한다. 


와중에 집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최근에 여자를 들인 기억이 없는 혼자 사는 집에 하이힐이 있질 않나 브래지어, 팬티가 있질 않나. 그러곤 어느 날 아침엔 급기야 루비가 집에 나타난 것이다. 이제 막 일어난 차림으로 시리얼을 먹으면서  '어젯밤엔 혼자 잤잖아'라고 말하며. 캘빈은 이제 자신이 미쳐버렸다고 단정한다. 그녀는 진짜일까? 가짜가 분명해 보이는데? 도무지, 절대, 믿을 수 없다. 


6년 만에 국내 지각 개봉


영화 <루비 스팍스>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루비 스팍스>는, 괴짜 가족의 좌추우돌 로드 무비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전 세계 영화비평계를 강타하고, 영화 내외적으로 한층 성숙한 면모를 선보인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로 돌아왔던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부부 감독의 '오래된 신작'이다. 이 영화는 북미에서 2012년에 개봉했지만 우리나라엔 6년 만에 개봉했다. 


한때(지금도) 재개봉이 대대적으로 유행해 수많은 명작들이 다시 우리를 찾아 왔다. 지각 개봉은 재개봉과 결을 같이 하는 듯한데, 작년에 7년 만에 한국을 찾아와 35만 명이 넘는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 <플립>이 대표적이다. 이번 5월 30일에 개봉할 <라이크 크레이지>도 7년 만에 지각 개봉하는 작품이다. 


이들 지각 개봉 작품들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로맨스'. 그리고 국내에 개봉하지 않았을 뿐 여러 경로로 국내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이미 받았었고 받아 왔다는 점. 하지만 <플립>의 경우 관객들의 절대적 지지에 '못 이겨' 강제로 지각 개봉한 측면이 없지 않기에, 이후 지각 개봉한 작품들은 그 인기에 기댄 후발 주자 측면이 없지 않다. 


판타지에서 현실로


영화 <루비 스팍스>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특이하게 시작된 특별한 사랑의 모습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랑의 모습과 비교 비유되는 양상을 보인다. 꿈 속 여인이 소설로 옮겨지고 급기야 현실화되는 말도 안 되는 판타지. 하지만 판타지는 곧 급격히 현실이 된다. 즉, 현실적인 커플의 모습을 띄는 것이다. 


흔하디 흔한 커플의 모습은 어떤가. 급격히 가까워져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만, 맥 없이 식어버린 열정은 한순간에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제목처럼 여자 루비가 아닌 찌질한 남자 캘빈의 시선을 내보인다. 그는 루비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되,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놀았으면 한다. 또 너무 활기차지도, 너무 우울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의 입맛대로, 극단적이지 않은, 이미지화 시켜놓은 대상이 거기에서 벗어나면 무시하고 떠나버리는, 그야말로 판타지적인 완벽함을 바라는 것이다. 영화는 캘빈의 모습을 남자 특유의 찌질함으로, 그 남자의 찌질함을 말도 안 되는 판타지로 병렬시킨다. 결국 그 판타지는 캘빈이 쓰는 소설의 내용대로 현실의 루비가 바뀌는 판타지로 대치되는 것이다. 


자칫 위험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영화 <루비 스팍스>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루비 스팍스>는 흥미로운 소재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남녀 관계의 비공개적인 정석의 발판 위에 있음에도, 위험하고 재미없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 '찌질한' 남자라는 도식화, '완벽한 이상형' 여자라는 대상화, 그리고 그런 남녀 간의 만남과 헤어짐과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라는 재단화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우린 알고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매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이의 흑역사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위험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象)의 정립이 아니고. 그럼에도 6년 만에 지각 개봉을 하면서까지 우리 앞에 소환시킨 이유는 뭘까. 적어도 영화 내적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지극히 공식적이고 전형적인 신파 로맨스로 하찮은 눈물을 몇 방울 훔치는 영화보다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 외적인 이유는 몇몇 눈에 띈다. 이 영화로 실제 연인이 되었다는 주인공 폴 다노와 조 카잔, 그리고 이 둘의 6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지도 상승, 또 작년 개봉해 좋은 평을 들었던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감독의 숨겨진 로맨스 작품이었다는 점 등 말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라고조차 해주지 못하겠다. 다만, 이들과 같은 이유로 남녀관계에 힘들어 하고 있는 이들에겐 적확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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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웜 바디스>


2010년을 전후해 전성 시대를 열었던 패러노멀 로맨스의 마지막 흥행작이라 할 수 있는 <웜 바디스>. ⓒCJ엔터테인먼트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판타지적인 캐릭터가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패러노멀 로맨스'의 현대 시작점이 말이다. 이후 <렛 미 인> <늑대소년> <웜 바디스> 등이 잇달아 우리를 찾아왔다. 내년 초에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최고 기대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도 찾아올 예정이다. 거의 30여 년 전에 전 세계를 강타한 팀 버튼의 <가위손>도 생각난다. 


'결국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이 영화들, 각종 장르의 탈을 쓴 로맨스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그 대상이 어른도 아닌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들이다. 영화 산업의 변화와 함께 시대의 흐름까지 엿볼 수 있다. 적어도 이 영화들이 한창 나왔던 2010년 전후는 10대들의 시대였다는 것. 


<웜 바디스>는 패러노멀 로맨스 전성 시대의 사실상 마지막 흥행작이다. 흥행작이면서 괜찮은 평을 얻었던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현대적 공포물의 대명사격인 좀비가 인간과 사랑에 빠져 로맨스를 펼친다는 설정에 더 이상 어떤 패러노멀 로맨스가 나설 수 있겠는가. 물론 무수한 영화들이 나 몰래 찾아왔다가 스쳐지나 갔을 것이다. 


좀비 1인칭 시점의 파격


좀비 1인칭 시점이라는 파격을 훌륭히 소화한다. ⓒCJ엔터테인먼트



자기가 누구였는지 알 길이 없는 좀비 R(니콜라스 홀트 분)은 좀비 뿐인 공항에서 생활한다. 그의 집은 멈춰버린 비행기 안, 그래도 전(前)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듯하다. 좀비들이 하는 생각은 배고프다는 생각, 하는 일은 인간 사냥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좀비 사냥을 온 인간들과 대면한다. 


치열한 싸움 끝에 R은 어느 젊은 남자를 죽이고 뇌를 먹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뇌를 먹을 때면 그 인간의 기억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좀비인 자신도 한때 인간이었다는 걸 잊지 않게 한다. 그러곤 남아 있는 젊은 여자에게로 향하는 R, 하필 그 여자가 방금 먹은 뇌의 주인의 여자친구 줄리(테레사 팔머 분)가 아닌가. 


그 때문인지, 아니면 잠깐 인간의 기억이 들어왔을 때 그녀에게 반한 건지 R은 줄리를 죽이는 대신 보호한다. 피냄새로 인간과 좀비를 판별하는 좀비의 특성을 이용해, 그녀에게 죽은 인간의 피를 묻힌 것이다. R과 줄리는 비행기 안에서 기거하기 시작한다. R은 인간의 감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 같진 않고 말도 더듬더듬 할 줄 안다. 무엇보다 줄리를 아끼고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들의 앞날이 예견되기에 과정이 궁금하다. 


영화는 거의 좀비 R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기본적으로 죽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각 같은 걸 하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이미 그런 걸 포함한 여러 개연성은 포기한 채 시작한 영화이기에 그런 영화라는 걸 익히 잘 알고 있기에 코믹하고 사랑스럽게 다가올 뿐이다. '이게 말이 돼?'라고 묻는 건 의미없는 일이다. 


좀비의 인간 되기


좀비의 인간 되기 프로젝트라는 파격도 역시 훌륭히 소화한다. ⓒCJ엔터테인먼트



좀비 대 인간의 구도, 좀비 콘텐츠의 시작부터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선이다. 좀비한테 물려 좀비가 되거나, 아예 좀비조차 되지 못하고 죽거나. 결국 인간으로서 계속 살아가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좀비는 어떨까. 좀비라고 좀비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다시 인간이 되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 


이 영화의 판타지적 로맨스의 이면에는 좀비의 인간 되기 프로젝트가 있다. 역으로 그 프로젝트의 필수적 요소가 다름 아닌 로맨스인 것이다. 그렇게 죽어버린 심장이 다시 뛰고 점점 인간이 되어가는 좀비들이다. 휴머니즘으로 넘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리라. 그럴 때면 당연하게도 공공의 적이 있어야 한다. 


<웜 바디스>에도 등장한다, 공공의 적이자 궁극의 적. 그들은 인간의 형체가 아닌 뼈의 형태만을 가진, 인간은 물론 같은 좀비들한테도 무서운 존재인 '보니'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인간의 적인 건 물론, 인간이 되고자 하는 좀비들의 적이다. 휴머니즘의 가장 큰 걸림돌. 그들이 없으면 휴머니즘의 의미와 목적과 연대가 옅어지지만, 그들이 없어야만 휴머니즘으로의 길을 갈 수 있다. 


인간이 되는 길은 어려운 듯하면서도 쉽고 험난한 듯하면서도 평탄하다. 제목 그대로 몸에 피가 돌고 심장이 뛰어 체온을 유지하게 되면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선 살아가는 데 '당연한' 이치,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신비하기까지 한 일인지는 부연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거기엔 육체적인 필요뿐 아니라 정신적 필요도 있어야 한다. 


가장 애틋하고 절실한 로맨스


파격의 결정체, 좀비와 인간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마저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상될 정도로 잘 소화해낸다.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명명백백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 서로 죽고 못사는 앙숙인 몬태규 가문과 캐플릿 가문, 그리고 첫눈에 반해 버린 몬태규의 로미오와 캐플릿의 줄리엣. 당연한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두 사람. 로미오의 R, 줄리엣의 줄리는 이보다 더 끔찍한 태생적 반대에 부딪힌다. 좀비와 인간. 


이보다 더 애틋하고 절실한 로맨스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달달한 틴에이저의 로맨스,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몇 겹의 판타지적 로맨스 외피 안에는 사랑의 100% 가능성을 향한 강력한 주장이 있는 것이다. '이것도 사랑일까'라고 자문하고 고민하는 것도 사치인 그의 사랑, 좀비의 사랑. 


많고 많은 로맨스 영화들을 우리는 '판타지'라고 부른다. 거기엔 '저런 사랑이 현실에서 가능한가. 절대 말도 안 된다'라는 비꼼의 정서가 담겨 있다. 그때부턴 사랑의 고귀함과 위대함, 사랑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락만 남을 뿐이다. 반면 이 영화는 어떤가. 오히려 오락에서 시작해 사랑의 본질로 나아가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 로맨스의 외피를 쓴 판타지 영화보단 차라리 이런 판타지의 외피를 쓴 로맨스가 낫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이 영화로 진정한 사랑을 논하긴 힘들 것이다. 판타지적 외연이 주는 포스가 워낙 강렬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가져다 붙이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이 영화의 로맨스가 사랑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만듦새야 어떻든 우리가 진정 행해야 할 사랑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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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지랄발광 17세>


입소문 덕분에, 또는 때문에 DVD로 직행할 운명이었던 <지랄발광 17세>가 개봉해 맹위를 떨쳤다. ⓒ소니 픽쳐스



"선생님, 시간을 뺏고 싶진 않은데 저 자살할 거예요."


네이든이 귀중한 점심 시간을 빼앗으면서까지 담임 선생님을 찾아와 다짜고짜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담임은 "나도 지금 막 유서를 쓰는 중이었어"라며 네이든을 세차게 나무라는데, 그래도 거기에 사랑이 묻어나 있어 다행이다. 


네이든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당연히 학교를 가기 싫어 했는데, 아빠는 다정하기 그지 없게 그녀를 대해주었던 반면 엄마는 마구잡이였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같은 친구 크리스타가 다가왔는데, 이후 몇 년간 그녀의 말마따나 최고의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찾아오는 아빠의 죽음으로 최악의 나날이 시작된다. 


엄마는 집안의 어른이랍시고 간섭을 일삼지만 사실 가족에겐 관심이 없다. 그저 잘 커준 오빠 데리언에게만 의지할 뿐이다. 데리언은 잘 생기고 키도 크고 공부도 잘 하고 착하게 컸다. 반면 네이든은 자신이 너무 싫어한다. 못 생기고 몸매도 별로고 공부는 꽝이고 성격은 개차반이다. 그래도 그녀에겐 크리스타가 있다. 


하지만 데리언이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연 어느 날 크리스타와 눈이 맞는다. 이보다 더 최악이 있을까. 더해 네이든은 소년원을 다녀온 노는 오빠에게 한눈에 반해 추파를 던지는데 거들떠도 안 본다. 자주 찾아가 상담을 받을라치면 매몰차게 대꾸하는 담임은 어떻고? 정말 살 맛 안 난다. 가장 끔찍한 건 오빠 데리언과는 정반대의 이런 외모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죽어야겠다. 


우리나라에선 찾기 힘든 할리우드 하이틴 영화


우리나라에선 이제 더이상 하이틴 영화를 찾기 힘들다. 반면 할리우드에선 매년 찾아온다. <지랄발광 17세>는 할리우드에서도 찾기 힘든 수작 하이틴 영화다. ⓒ소니 픽쳐스


매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장르 중 하나가 '하이틴'이다. 10대 후반쯤에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어 흥미와 공감을 이끄는 데 목적이 있다 하겠다. 하지만 요근래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씨가 말랐고, 할리우드에서는 흥행과 비평에 망조가 낄 것 알면서도 개봉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우리나라엔 수입되기 힘든 것이다. 


와중에 <지랄발광 17세>라는 파격 제목의 하이틴 영화가 찾아왔다. 북미에서는 작년에 개봉했으니 반년 이상의 시간차로 개봉한 것인데, 아마 우여곡절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7년 만에 개봉한 <플립>과 영화 외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관객들이 원해서 개봉에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아지면 좋겠다, 싶다. 


이 영화는 그럼에도 흔한 하이틴 영화의 서사 방식과 캐릭터 구성을 따른다.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는 주인공, 코미디 요소가 적절한 좌절을 겪고 감동적인 코드가 다분한 성장을 완성한다. 그 사이, 모든 게 해결되기 직전에 상당히 극단적인 선택과 그에 따른 위기가 함께 한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었지 하며 공감하는 것이다. 


공감의 판타지 


'공감'이 최종 목표일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상당히 판타지적이다. 이 영화는 그 부분들이 예쁘다. ⓒ소니 픽쳐스



네이든의 담임 브루너가 네이든을 좋아하는 어윈의 존재가 눈에 띈다. 네이든이 심심하면 찾아가 시비를 거는듯 노는듯 고민을 상담하는 대상인 담임. 대개 성장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진지한 문답이 오가곤 한다. 하지만 이들의 문답은 선문답 내지 동문서답에 가깝다. 여타 하이틴 영화에 비해 비현실적인 모습에 가까운데, 공감을 목적으로 하지만 결국 판타지에 가까운 하이틴 영화에 맞는 것 같다. 


어윈 또한 네이든의 깨달음과 성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도 무지막지하게 좋고 공부도 잘 하는데 친구도 많고 만화도 잘 그리고 영화제에 출품도 할 정도의 실력 있는 감독이기도 한... 그런 어윈이 별 것 없는 네이든을 좋아한다는 사실보다, 그런 어윈도 네이든과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 그 나이에는 고민과 사랑이 전부라는 것. 


네이든의 좌절과 성장과 깨달음은 하나에서 파생된다. 그녀는 말한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였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지랄발광'을 하며 다녔는데, 사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걸 담임과 어윈에게서, 그리고 극단적인 경험을 하고서 깨닫는다. 평범함의 진리가 주는 성장, 평범함이야말로 특별함이 모여 평균을 이룬 집합체라는 깨달음,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고민을 떠앉고 있다는 눈물겨움.


평범함의 진리를 깨닫는 씁쓸함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평범함의 진리. 평균이 가장 보기 좋다는 주장. 틀린 말은 아니나 씁쓸하다. ⓒ소니 픽쳐스



무진장 재미있고 상당한 깨달음과 먹먹한 감동이 함께 한 <지랄발광 17세>, 이 영화가 주는 깨달음과 감동에 동의하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게 우리가 누구나 거쳐야 할 통과의례야 한다는 게 슬프기까지 하다. 사랑받고 싶고, 주목받아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만은 없다는 사실, 나만의 고민과 깨달음이 사실 모두 하고 있고 했었다는 사실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와 비로소 세상을 겪게 되었을 때의 환희도 존재하겠지만, 반드시 세상에 편입되어야만 비로소 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게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 그거야말로 세상을 구성하고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기본 진리라는 것이 더욱 슬프다. 


어렸을 땐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줄 알았고, 당연히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특별하기는커녕 평범하기조차 힘들다는 걸 깨달았고, 언제부턴가 평범해지는 게 꿈이 되었다. 대표적인 성장 소설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이 모두 평범함으로의 나아감을 모토로 한다. 이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 남들을 본받고 남들을 따라하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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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017년의 시작 <너의 이름은>


일본에서 역사적인 메가히트를 기록한 <너의 이름은>이 한국에 상륙했다. 개인적으로 <시달소> 이후에 최고의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저팬'과 '애니메이션'의 합성어인 '저패니메이션'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힘이 강하다. 더구나 이 단어가 일본 내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가르키는 말이라니, 그 대단함이 새삼 엄청나 보인다. 


저패니메이션은 1900년대 초에 최초로 생겼지만, 그 본격적인 전성기는 1960년대 그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에 의해서이다.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그는 일본 최초의 TV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을 만들었다. 이후 여러 명작들 덕분에 그 대상이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확대된 저패니메이션이다. 1980년대에는 현대까지 저패니메이션에 최고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출현했다. 그는 극장을 점령하며 저패니메이션의 영향력을 그 어떤 문화보다 우위에 서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사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저패니메이션의 주류는 <아키라>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사이버 펑크였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심오했다. 그 이후 주류는 2000년대 중반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였을 것이다. 하야오의 압도적인 메시지와 작화와 캐릭터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섬세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작화, 감수성 어린 캐릭터가 주를 이룬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그 중심에 아마도 호소다 마모루와 신카이 마코토가 자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디지몬> 시리즈로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완전히 파악하며 확실한 인지도 위에서 주류를 형성한 호소다 마모루, 빛에 대한 집착과 함께 차근차근 자신만의 감수성 세계를 공고히 하며 명실상부 현재 저패니메이션 NO. 1에 오른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초창기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 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최신작인 바로 이 작품 <너의 이름은>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두 작품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청춘로맨스에서 판타지까지


꿈 속에서 서로의 모습이 바뀌는 체험을 하는 남과 여, 이들의 청춘로맨스는 판타지로 나아간다.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메가박스㈜플러스엠



두메 산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 있는 거 빼고 다 없는 이 시골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 '다음 생에는 도쿄의 남자로 태어나길' 바라는 그녀. 그건 다음 생에나 가능한 일이고, 그저 도쿄에 놀러가는 건 가능하겠다. 얼마후 꿈을 꾼다. 다름 아닌 '도쿄의 소년 타키'가 되는 꿈. 자신이 꿈 속에 있다는 걸 인지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다른 성의 몸인 만큼 모든 게 쉽지 않다. 


한편, 도쿄의 소년 타키도 꿈을 꾼다. '두메 산골의 소녀 미츠하'가 되는 꿈 말이다. 미츠하처럼 그도 역시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다른 성의 몸인 만큼 모든 게 서툴다. 더구나 타키는 미츠하가 도쿄를 동경했던 것처럼 두메 산골을 동경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꿈을 꾸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꿈에서 깨어 보면 전날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꿈이 아닌 서로 몸이 바뀌었던 것. 그 사실을 안 그들은 이 상황의 난감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를 인식하며 서로를 도운다. 


어느 날 더 이상 바뀌지 않게 된 그들. 참지 못할 궁금증이었을까, 운명적인 끌림이었을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찾아간다. 이보다 더 엄청난 인연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 인연을 훨씬 더 뛰어넘는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 청춘로맨스 판타지가 끝나며 시작되는 새로운 판타지에는 감동과 눈물이 있을 것이다. 


무스비에서 기억으로, 방점은 감동과 눈물


영화를 관통하는 두 주제, 무스비(인연 또는 결연)와 기억. 방점은 감동과 눈물에 있다. 초반의 웃음이 자연스럽게 감동과 눈물로 이어지는 것이다. ⓒ메가박스㈜플러스엠



남자와 여자의 몸이 바뀌는 스토리는 사실 획기적이지 못하다. 획기적이기는커녕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이디어다. 단순하게 기억으로만 더듬어 봐도 최소한 20년도 더 전에 나온 스토리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왜 주인공들의 몸을 바꾸었을까. 


아무래도 '판타지'에 방점이 찍히겠지만, 뒤에 맞게 될 감동과 눈물에 그 방점이 찍히는 게 맞을 것이다. 그는 이 트랜스 섹슈얼 판타지를 흥미를 끌 만한 그 자체의 독특함과 더불어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겠다. 모르긴 몰라도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의외로 이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너의 이름은>의 감동과 눈물은 미츠하의 할머니가 되뇌는 '무스비'라는 단어에 집약되어 있는 것 같다. '매듭'이 본 뜻인 바 '인연'이나 '결연'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타키와 미츠하가 몸이 바뀌는 신기한 체험을 한 게, 운명이라기보다 인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몸이 바뀐 게 운명이라면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게 된 것도 운명이 아닌가. 그건 그들 사이에 끈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반면 이들 사이엔 무스비가 존재한다. 짧고 약하고 알아보기 힘들지만, 어떻게든 이어질 끈이 있다. 그 끈의 끝에는 그 또는 그녀가 존재한다. 나의 인연이 말이다. 영화는 이제 '기억'으로 넘어간다. 인연임을 알지만 누구인지 모르며, 내 인연일 누군가가 그곳에 있음을 알지만 이름을 알지 못한다. 너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나에게서 그(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 없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도 의도한 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재로 인한 재앙이니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을 텐데. ⓒ메가박스㈜플러스엠



감동과 눈물을 담당하며 '무스비'와 '기억'라는 추상적 개념을 현실로 옮긴 사건은 1200년 만에 찾아온 아름다운 혜성과 관련 있는데, 감독은 그 모티브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증유의 사건, 하지만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인재(人災)'라는 진짜 재앙. 우리한테는 세월호가 그 자리에 있다. 


자연의 엄청난 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재앙이었다면, 그 안에 인간의 의한 어떤 안타까움이 없었다면, 그저 슬퍼했을 것이다. 그저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힘이 작용했다면, 그래서 더욱 악화되었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분노는 오래 가지 않는다. 분노하면 할수록 더 빨리 잊혀진다.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은 '기억'하는 것이 그 사건을 대하는 또 다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 기억의 주체는 '사건'이 아닌 '이름'이다. 지극히 동의한다. 활활 타오르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그런 불꽃이 아닌, 마그네슘 촛불처럼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사그라지지 않는 그런 불꽃을 들어야겠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 사건을 중심으로 모든 얼개를 맞춘다. 그 사건에,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주인공들이 펼치는 모험에, 안타까움과 가슴졸임과 환희에, 누구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에 누구도 가슴 한 켠이 시려오는 경험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세월호를 비롯해 수많은 재앙들, 그 중에서도 충분히 빗겨갈 수 있었을 인재(人災)들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 사건들을 다시, 또다시 대할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하고 생각한다. <너의 이름은>은 바로 그 부분을 건드린다. 처음엔 감성적으로, 나중에는 현실적으로, 마지막엔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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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하면 기괴하고 매력적이며 풍부한 상상력과 판타지가 넘치는 영화들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가 '천재'라는 타이틀을 넘어서 '대가'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그 속에서도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죠. 단지 표현하는 방법이 특이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표현의 한 가운데에는 그만이 창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물론 평범하지 않은, 아니 엄청 특이한 캐릭터일 것입니다. 


'조니 뎁'은 팀 버튼이 원했던 특이한 캐릭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표정과 행동이 딱 들어맞죠. 예를 들어보자면, 이들이 합작한 영화는 아니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보시면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익살스럽고 장난끼 가득한 표정에, 요리조리 잘 피해다니면서 깐족거리는 잭 스패로우 선장 캐릭터 말입니다. 딱 그 캐릭터죠. 사실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 선장은 팀 버튼과의 수많은 합작에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니 뎁(왼쪽)과 팀 버튼(오른쪽). 이름조차도 잘 어울립니다.



이 둘은 5살 차이 나는 콤비인데요. 팀 버튼이 1958년생이고, 조니 뎁이 1963년생입니다. 그렇지만 데뷔년도는 비슷했습니다. 팀 버튼이 1982년, 조니 뎁이 1984년이죠. 그렇게 탈없이 자신들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던 그들은 1990년에 조우해 <가위손>을 만들어 냅니다. 가히 전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죠. 


팀 버튼의 경우는 데뷔부터 자신만의 독특하지만 확고한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조니 뎁의 경우는 아주 색다르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잘 헤쳐나간 듯 보입니다. 이후 이들은 1990년대에만 <가위손>을 비롯해 3편을 합작했고, 2000년대에도 3편을 합작합니다. 그리고 2010년대에만 벌써 2편을 같이 했죠. 과연 이들이 같이 작업한 영화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가위손(1990년, 폭스)





에드 우드(1994년, 디즈니)





슬리피 할로우(1999, 파라마운트)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년, 워너브라더스)





유령 신부(2005년, 워너브라더스)





스위니 토드(2008년, 파라마운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년, 디즈니)





다크 섀도우(2012년, 워너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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