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여러 수작 단편을 쏟아내고는 멋진 장편 데뷔작 <우리들>을 들고온 윤가은 감독이다. ⓒ엣나인필름



두 명이서 가위바위보를 해 함께 하고 싶은 한 명씩을 데려와 편을 가르는 방법을 택한 어느 체육 시간 피구 게임, 선이는 어느 쪽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최후의 일인이 되었다. 왕따는 아닌 듯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외톨이인 듯하다. 키도 크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는 보라는 그런 선이를 이용해 먹기도 한다. 


보라의 부탁으로 방학식 날에 홀로 남아 반 전체를 청소하는 선이, 전학을 왔다는 지아를 우연히 마주친다. 보라의 치졸한 속임수 때문에 다리 위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선이, 다리를 지나던 지아와 우연히 마주친다. 둘은 금새 친해지고 선이는 보라를 주려던 수제팔찌를 지아에게 준다. 둘은 생애 다시 없을 것만 같은 방학 한때를 보낸다. 


지아의 부모님은 지아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이혼을 하셨다. 그 때문인지 선이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살가운 시간을 갖는 모습을 본 후 왠지 모를 적대감이 생기는 지아다. 그래도 그건 금새 풀었다. 하지만 지아가 영어학원을 다니고, 그곳에 다른 누구도 아닌 보라가 있었고, 개학을 하며 지아가 정식으로 전학을 오게 되며, 선이와 지아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다. 지아는 선이를 본 척도 않고 보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후 선이와 지아와 보라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계속되는데...


어른들이 무시했던, 아이들의 무시무시한 세상


누구나 지나왔을 어린 시절, 여러모로 '무시무시'했던 그때를 어린이 되고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엣나인필름



2016년 최고의 수작 중 하나라 할 만한 영화 <우리들>. <손님> <콩나물> 등으로 단편영화계에 신기원을 이룩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독립예술영화계에선 거물로 통할 만한 '엣나인필름'이 배급을 맡아 온전한 '독립영화'라고 할 순 없을 것 같지만, 대신 '예술영화'로 포지션하여 다양성영화의 훌륭한 계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윤 감독은 앞선 두 대표 단편에서 어른이 되기 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우리들>로 그 재능과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무시하곤 한다. 한없이 동물에 가까운 본성을 지닌, 아직 이성적 존재 인간이 덜 된, 생각 따윈 없고 본능을 따를 뿐인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찌들대로 찌들고 죄질대로 진 어른 세상의 해법이 무지의 순수한 아이들에게 있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우린 이 영화에서 아이들의 치명적 관계 유착과 되물림, 권력에의 의지와 빌붙음을 목격할 수 있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세상, 그중에서도 지독하기 그지 없는 막장 인간들의 관계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을 말이다. 차라리 어른들의 세상이 더 유치한 것 같은 이유는, 그만큼 아이들의 세상을 무시했다는 방증이겠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불러온다. 특히 영화에서 선이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안기는 선이의 남동생, 어리디어린 윤이는 너무나도 귀여워 '보는 맛'이 날 정도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무시한 것처럼 선이는 자신보다 어린 윤이를 무시했다. 영화는 올려다보는 깨달음이 아닌 내려다보는 깨달음이라는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예리하고 섬세하고 긴장감 있게 파고드는 '관계'


영화 <우리들>의 첫 번째 주요 키워드는 '관계'다. ⓒ엣나인필름



'관계'라는 미묘하기 짝이 없는 건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평생을 가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어떤 관계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바르지 못한 것인지, 괜찮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오랫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그나마 괜찮은 관계가 무엇인지 모색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관계의, 관계에 의한, 관계를 위한 것이다. <우리들> 또한, 아니 <우리들>야말로 '관계'를 예리하고 섬세하고 긴장감 있게 파고드는데, 지극히 아이들의 시선과 생각과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메리트가 크게 다가온다. 빈 곳 없이 잘 표현해낸 주인공 아이들의 노력 덕분이겠다. 


2011년 최고작 <파수꾼>이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관계에 대한 천착 때문이다. 다만 <파수꾼>이 '관계'가 주인공에 다름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관계에 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필히 비극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파수꾼>, 반면 희극에의 희망이 있는 <우리들>. 개인적으로 손이 가는 영화는 앞엣것이다. 


생애 다시 없을 한때를 보낸 이들에게 파국이 찾아오는 건 한순간이고 그 이유도 하찮기 그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한 번 틀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 그런데, 그러면 누구랑 노나? 친구가 가장 소중할 때에 말이다. 매일 가장 친한 친구랑 티격태격하며 자주 맞고 다니지만, 그 친구가 아니면 누구랑 노냐는 윤이의 말이 가슴 깊숙히 와 닿는다. 


문제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누군가는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관계가 틀어짐에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동등하게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반드시라고 할 만큼 한 명이 자신을 굽히고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따위의 깨달음을 알 것 같진 않고, 아이들이 그런 깨달음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또 하나의 키워드 '권력'


영화 <우리들>의 두 번째 주요 키워드는 '권력'이다. ⓒ엣나인필름



'관계'와 함께 <우리들>의 중요한 키워드는 '권력'이겠다. 관계가 선이와 지아를 천착하는 거라면, 권력은 보라를 중심으로 역시 선이와 지아를 천착하는 것이겠다. 앞서 주지했듯 보라는 한 마디로 모든 걸 가진 아이다. 그리고 모든 걸 가져야만 하는 아이다. 그녀에게 존재감 없는 외톨이 선이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그럼에도 선이는 보라와 보라가 이끄는 소그룹을 선망한다. 


와중에 방학 중 선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개학해 정식으로 전학을 오게 된 지아, 선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걸 숨기고 거짓말로 점철한 채 영어학원을 다니며 친해진 보라와 함께 한다. 아니, 보라가 지아를 자신의 그룹에 끼워준 것이겠다. 지아가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 중에는, 전 학교에서 왕따였다는 것과 엄마가 영국에 계신다는 것과 영국에 가봤다는 것 등이었다. 


선이는 그 모든 걸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폭로한다. 첩첩산중으로, 보라는 이미 자신의 영원한 공부 1등 자리를 뺏어간 지아와 격렬히 대치 중이었다. 자연스레 보라와 선이가 한패가 되고 지아가 외톨이가 되는 형국으로 권력이동이 실시된다. 관계 못지 않게 권력의 속성이란 게 참으로 하찮고 한순간이다. 그런 중에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킬 요량이 많지 않다. 선이, 지아, 보라 중 누가 가능할까. 


영화에서 선이가 자신과 지아에게 물들여준 봉숭아물, 보라의 매니큐어를 따라한 지아의 매니큐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와 권력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건 선이와 지아가 함께 한 봉숭아물일까, 보라와 보라를 따라한 지아의 매니큐어일까. 나는 '당연히' 권력과 관계를 응원한다. 선이와 지아가 함께 한 봉숭아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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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따듯한 영화사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해 본다. 이제 막 21세기에 들어선 그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남자들만의 세계인 남(자)고(등학교)라는 생소함과 막연한 두려움은 어느덧 '이런 게 바로 학창시절이지'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만들 만큼의 재미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공부만 열심히 하는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당시 한창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으로 뭉쳐진 우리는 매일 같이 몰려 다녔다. 우리들은 싸움이면 싸움,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게임이면 게임 못하는 게 없었다. 한마디로 어딜 가든 무서울 게 없었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그때의 우리들에게는 빛이 났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는 바로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다. 같은 고등학생이라도 1학년, 2학년, 3학년이 다른데 18세인 2학년이 제일 방황하기 쉬운 때인 것 같다. 군대에서는 일병, 상병 때가 제일 열심히 하고 그만큼 시간도 잘 간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은 그 반대이다. 대학생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고, 그렇다고 마냥 놀기에는 어중간하다. 뭘 하든 안 하든 애매하기 그지 없는 시기이다. 


"네가 걔네랑 같이 논다고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


영화는 '동도'라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생이 주인공이다. 그는 비디오 보는 걸 낙으로 삼는데, 19세 미만 관람불가를 빌려오는 게 일탈의 전부이다. 키는 작아서 무시 받기 딱이고, 공부도 잘 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반의 일진인 '현승'과 인연이 닿아 친해지게 된다. 친구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현승 덕분에 동도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일진 후배들에게 인사까지 받기에 이른다. 


고등학교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그런 학교 생활을 하게 된 동도. 평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까지 내팽개치고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잦아진다. 자연스레 술과 담배를 배우고 급기야 정신 상태까지 물들게 된다.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된 양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따듯한 영화사



"야, 네가 걔네랑 같이 논다고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 정신 차려 인마! 너랑 안 어울려. 관두라고. 허접해 보인다고, xx야. 똑바로 좀 살아라. 응?"


특히 일행의 절대적 카리스마 '동철'은 동도 뿐만 아니라 일행에게 큰 힘이 된다.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철의 독재에 가까운 카리스마는 일행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친구끼리 복종을 강요하는 동철과 친구끼리 절대적 평등을 주장하는 현승의 줄다리기는 계속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학원액션


고등학생들의 일탈 아닌 일탈을 다룬 영화들은 우리를 자주 찾아 왔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 해도 2001년의 <친구>, 2004년의 <말죽거리 잔혹사>, 2009년의 <바람>, 2011년의 <파수꾼> 등이다. 여기엔 공통적으로 절대적 카리스마를 가진 친구들이 나오고,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훨씬 약한 친구들이 나온다. 이들은 서로 친한 친구가 되곤 하는데, 그 끝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는 위의 학원액션 장르의 스토리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파수꾼>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그것을 빗겨가 다른 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영화를 통해서 뭔가 말하려고 하거나 훈계를 늘어놓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고등학교 2학년의 가장 일반적이자 당연한 일탈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감독도 이 영화의 흐름에 제동을 걸거나 방향을 틀려고 하지 않는다. 물 흐르듯 전개된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따듯한 영화사



이 영화는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교실도 나오지 않는다. 거의 방과 후를 그리고 있다. 또 주인공들의 집은 '동도'와 '동철'만 나오는데, 동도는 편모 슬하이고 동철은 편부 슬하이다. 동도의 엄마는 악착 같이 돈을 벌어 동도의 뒷바라지를 하는 반면, 동철의 아빠는 백수로 지내며 깡패 같은 동철의 형한테 눌러산다. 동철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후반 전개, 그렇지만 연기는 빛났다


이번 학원액션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개인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단이 되었다.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동철이 좋아해 마지 않는 연희, 그런데 연희는 동철보다는 다른 친구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그녀를 멀리서 흠모하는 동도까지. 이 상황을 직감적으로 눈치 챈 동철은 이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된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따듯한 영화사



영화는 이 점에 있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아쉬운 전개를 보인다. 어떻게든 사건을 만들어 극적 연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지 못해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 전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전개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 '연희'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다. 애초에 그녀가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남자 아이들과의 관계 축을 따로 설정했으면 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빛날 수 있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들의 연기이다. 찌질하고 약하고 소심한 동도의 이재응, 남자의 진짜 의리를 보여준 현승의 차엽, 정절의 카리스마 동철의 이익준. 이재응을 제외하고는 눈에 익지 않은 배우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누구보다도 빛난다. 특히 동철의 이익준은 흡사 <말죽거리 잔혹사> 우식의 이정진을 보는 듯했다. 그 삐뚤어진 카리스마를 10년 만에 재현해낸 것 같다. 


큰 기대 않고 감상한다면 그 은근함에 감탄까지는 안 할지라도 집중하며 보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할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들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게 만든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기 싫기도 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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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수꾼>


영화 <파수꾼>.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이지만, 표지에는 두 명뿐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필라멘트 픽쳐스

좁혀지는 미간, 꿈틀대는 눈썹, 뿜어져 나오는 한숨, 쯥쯥거리는 입술, 바싹 당겨지는 뒷목. 영화 <파수꾼>을 보고 난 후 남겨진 것들이다. 10대 친구들을 그린 이 '성장영화'를 보며 이런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서 나의 오욕의 학창시절을 투영했기 때문일까. 영화 자체가 소름끼치게 하였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은 독립영화에 속한다.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소규모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눈을 속이는 현란한 특수효과나 가슴을 뻥뚫리게 하는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는 없다. 대신 디테일하기 그지없는 미시적 심리묘사와 짜임새있는 스토리가 송곳에 찔린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필자가 독립영화를 처음 본 기억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주인공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케이블 TV에서 보내줬던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휴가나와서 하필이면 군대 영화를 보다니. 그럼에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면서 계속해서 나만의 해석을 덧붙였지만, 여전히 그 재미는 반감되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2008년에 <똥파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2011년, <파수꾼>을 접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인데, '파수꾼'이라는 단어와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같았기에 자연스레 접하게 된 케이스이다. 거기에 3년마다 찾아오는 명작 독립영화라는 일종의 징크스가 작용했을지도.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학생 3명이라는데 과연 어떻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궁금하였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를 접하기 전에 영화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아주 간단한 거였는데, 바로 제목이었다. 한글 제목은 <파수꾼>이지만, 영어 제목은 <Bleak Night>였던 것이다. 풀이하면, 암울하고 절망적이고 음산하고 황량한 밤 정도가 되겠다. 그들이 누군가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 그려졌다.


영화는 역순으로 진행된다. 자살한 기태(이제훈 분)의 아버지가 기태의 죽음을 쫓아 기태의 생전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그렇게 찾아낸 기태의 친구 희준(박정민 분). 그는 기태가 자살하기 몇 주전에 전학을 갔지만, 그 전까지는 기태와 가장 친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 동윤(서준영 분). 그는 중학교때부터 기태와 가장 친한 친구였고, 희준이 전학간 사이 기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세 친구는 단짝이었다. 그들은 철로가 끝날 때까지 같은 걸어갈 수 있을까. ⓒ 필라멘트 픽쳐스



주지한대로 주인공은 세 명의 단짝 친구들이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때부터 친구였고, 희준은 고등학교때 알게된 친구이다. 이들 셋은 언제나 붙어다닌다. 그런 그들의 관계에 약간의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윤과 희준이 좋아하는 세정과 보경이와 함께, 남자 셋 여자 셋 월미도 여행을 떠난다. 기태는 진심으로 친구들의 사랑이 성사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보경이는 희준이 아닌 기태를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보경은 기태에서 고백하고 이 장면을 본 희준은 기태에게 따지고 든다. 이에 기태는 언짢음을 느낀다.


이어서 학교에서의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기태 앞에서 부모님 얘기를 하지 말자는 동윤과 다른 친구의 눈짓을 본 기태가 또 다른 의미의 언짢음을 느낀다. 또한 기태는 싸움을 제일 잘하는 일명 '짱'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부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때부터 단짝인 동윤을 제외하고, 희준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에 역시나 언짢음을 느끼는 희준이지만, 기태는 그런 희준에게 자신의 속마음과는 다른 서툰 감정 표현을 하고 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툰 표현들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으로 이들의 관계는 점철되고 만다.


결국 기태와 그의 불량한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지 못한 희준은 전학을 가버리고, 동윤은 그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재를 하지 못한 채 희준의 편만을 든다. 이에 기태는 동윤에게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그의 여자친구인 세정이 과거에 안 거쳐간 남자가 없었다는 것. 이어서 기태는 세정에게 말한다. 동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동윤은 기태를 찾아가서 대판 싸운 끝에 절교를 선언한다. 이 도중에 기태의 불량친구들 또한 기태를 떠나간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자살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프로이트는 방어 기제를 '미성숙한 방어 기제'와 '성숙한 방어 기제'로 나누었다. 미성숙한 방어 기제로는 부정, 투사, 행동화, 건강 염려증, 퇴행, 수동 공격적 행동, 신체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기태가 사용하는 방어 기제는 행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미성숙한 자아와 어미니가 안 계시는 상황,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이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극 중의 내용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그와 관련하여 갈등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태가 말한다.


"난 집에 가면 내가 밥 해먹어. 가끔 아버지 얼굴 보면 인사하고 아침에 눈 떠보면 지각이라서, 왜 안 깨웠냐고 막 화내거든. 안 계시잖아. 엄마가. 아무도 없어. 그 정도야. 그 정도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우리 집 관련된 얘기야. 됐지? 됐냐고?"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기태의 자살이 결국은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사소한 오해와 갈등으로 그들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 필라멘트 픽쳐스



기태는 희준이 좋아하는 보경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기태는 계속해서 희준에게 다가가 사과를 한다. 그의 표현 방법이 조금은 서툴고 거칠지만 희준이 받아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희준은 시종일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 조금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태는 계속해서 엇나가고 만다. 급기야 희준을 향한 분노가 극단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다. 이번엔 희준이 말한다.


"너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내가 언제까지 네 앞에서 꼬리 흔들며 살아야 되는데? 내가 네 앞에서 그렇게 맞고도 오기로 버텨온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알량한 자존심. 나도 한 번 부려봤다. 왜, 안 되냐? 저 친구들도 네 옆에 있는 거 아니야. 착각하지마. 너랑 학교 다니면 편하니까 붙어있는 거지. 나도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고, 알아?"


영화를 보는 내내 희준을 향한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인간 관계란 것이 칼로 무자르듯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죽고 못사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일로 인해 단번에 그 친구와 절교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매일같이 사과를 했지만 나는 무엇인지 모를 오기로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의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성숙한 지금의 내가, 미성숙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의 사과를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불안한 관계, 그 끝은...


우리가 믿고 있는 깊숙한 관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친구는 무엇일까. 진정한 친구와의 깊숙한 관계는 불안정한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일까. 이 영화는 자칫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만연한 불안은 관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려 끝까지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고 상대를 대하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기태는 겉으론 한없이 강한 척 하며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면서도 나약했다. 그는 희준에게 거듭 사과를 하며 불안을 감추려 한 것이다. 하지만 희준은 자신의 불안을 완전히 굳혀서 기태를 대한다. 희준의 입장에서는 기태야말로 자신의 불안을 극도로 내보이며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또한 미성숙하기 그지없었다.


미성숙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동윤. 그야말로 제일 미성숙한 인물일 것이다. 시종일관 기태와 희준의 갈등 속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일방적으로 희준의 편만을 들었을 뿐. 또한 기태의 마지막 사과를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제일 성숙해 보였던 그였기에, 그의 말은 꽤나 반전이었다. 동윤의 말이다.


"너한테 기분 상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똑바로 들어.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지껄일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알아?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네 진정한 친구였단 생각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역겨우니까... 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있잖아 가식적인 인간 싫다고. 근데 네가 제일 가식적이야. 네가 역겨우니까 다 너 떠나는 거야...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혼자 남게된 동윤.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는 없었다. ⓒ 필라멘트 픽쳐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빛을 갚는 다는 속담이 있다. 죽마고우도 말 한 마디에 갈라진다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말'의 힘은 대단하다. 말은 '관계'에 있어 그 시작과 끝을 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파수꾼>은 10대 친구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고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세대를 초월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bleak night에 던져진 이들은 비단 미성숙한 그들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규명하고 있는 거대한 bleak night에 던져진 우리들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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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영화는 토끼 사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아이들이 토끼 사냥하듯 한 친구를 몰아서 쓰러뜨리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다음 날 그 친구는 시체로 발견되고 학교에서 다른 한 친구가 용의자로 심문을 받는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용의자 친구 준(이다윗 분). 


그는 학교 지하의 숨겨진 곳으로 가 죽은 친구 유진(성준 분)을 입에 올리며 졸업 축하 파티를 하려는 몇몇 친구들에게 비아냥 댄다. 그 친구들 또한 맞받아친다. 이들은 서로에게 죽은 친구를 죽인 놈은 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준은 가져온 수제 폭탄으로 그들을 위협하며 솔직히 말하라고 한다. 그러며 영화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 잘 살려내


영화 <명왕성>은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을 잘 살려 충실히 계보를 이어나간 듯 보인다. 독립영화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스토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시공간 뒤틀기이다. 먼저 현재를 보여주고, 이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법 말이다. 


또한 사회 부조리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고, 관심 밖의 소외된 일들이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경우에도 눈을 돌리곤 한다. <명왕성>은 사회 부조리와 함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끝모를 경쟁에 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그리는 동시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군대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와 청소년기의 미성숙한 소통에 의한 파멸을 예리하게 집어낸 <파수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결정적으로 이들 독립영화가 추구했던 시공간 뒤틀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


준은 일반 고등학교에서 명문사립고로 전학을 왔다. 전 학교에서는 1% 안에 들었지만, 이곳에 오니 성적이 형편 없다. 룸메이트 유진은 전교 1등인데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데 과학 시간에 그와 반대되는 명왕성 이론을 주장하고 만다. 선생님이 질문한 명왕성의 퇴출 이유를 두고 유진은 당연한 듯이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제일 멀리 있고, 크기와 질량이 매우 작으며,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준은 작고 소심한 목소리지만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던진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본다면 명왕성은 퇴출일거야... 하지만 그 기준이 뭐지? 당연한듯 태양계를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는 건 옳지 않아."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그렇지만 준은 좋은 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반대한 태양계 중심 사상에 찬성하는 자기 모순적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전교 톱 10의 스터디 그룹 오답 노트. 준은 룸메이트이자 전교 1등, 그리고 스터디 그룹의 수장격인 유진에게 찾아가 오답노트를 구걸한다. 


이에 스터디 그룹 아이들은 준에게 아주 악질적인 미션을 부여한다. 행인 퍽치기와 성추행격 행위, 그리고 선생님에게 복수하려는 이유에서의 수제 폭탄 제조까지.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유진은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데...


영화는 기존의 여러 학원물 콘텐츠에서 차용한 듯한 분위기와 캐릭터, 그리고 문제의식을 여기저기 잘 버무려놨다. 한 발 더 나아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데, 이는 자칫 판타지로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죄책감 없이 이를 너무나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19살 고3에 불과한 학생들이 피말리는 경쟁 시스템에 내몰려 서로를 죽이는 비극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명왕성을 퇴출시키듯, 톱 10 안에 올라온 학생을 아주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살인까지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란... 


"난 19살 밖에 안 되었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돼!"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 고발


영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는 형식을 띤다. 비록 무한 경쟁에 내몰렸다고 하지만, 거기에 어떠한 편법이 존재하지 않고 정당함을 기반으로 한다면 충분히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방법임과 동시에, 획일성과 절대성을 띄지 않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어찌 보면 당연한 본성이 꿈틀댄다. 한 번 높이 올라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테지만, 떨어져 남들의 아래로 내려간다는 사실 너무나 싫고 두렵고 아니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는 횡포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리라. 


영화 <명왕성>은 그 방법으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인 살인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확실히,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인해 <명왕성>은 단순히 학원 부조리 비판 영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부조리 비판으로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7등인 준을 보고 유진이 말한다) 1등 하는 거 어렵지 않아. 너 위로 66명만 죽이면 돼."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이 영화의 감독은 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큰 그림을 잘 그렸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직하게 끝까지 끌고 나갔다. 비록 예측이 가능하지만 문제의식 또한 잘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영화로써 가지는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왕성 퇴출 이론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단지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했고, 그래서 준이 천체과학에 특기가 있는 부분은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그리고 준이 갑자기 그리고 악질적인 미션을 수행하면서까지 오답노트를 가지려 하는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준이 아이들을 찾아가 함께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한다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유진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게 된 이유도 충분치 않다. 이 또한 준과 마찬가지로, 유진이 죽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장치 없이, 인기 절정의 출연진 없이 이 정도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앞날이 밝다는 확고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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