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20년 만에 친구를 만났어요. 정녕 20년 동안 보지 못했었죠.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내내 제일 친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각자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그 친구는 이사까지 갔어요. 그동안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좋더군요. 신기한 건, 정말 오랜만에 봤는데도 어색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인 듯 했지요. 


며칠 전에는 여자친구와 사귄 지 1800일 되는 날이었어요. 분명 의미 있는 날이지만, 기념할 만한 무엇도 하지 않았어요. 귀찮아서? 사랑이 식어서? 원래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서? 그렇지는 않아요. 앞으로 새로 만들 기념일이 있기에, 이 정도의 기념일은 지나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단순한 연인 이상의 무엇을 느끼는 것 같아요. 친구는 물론이고, 동반자나 분신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서로 말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니?" 


그럴 때면, 우리는 만날 운명이었다는 결론에 이르죠. 하늘이 내린 사랑. 수많은 인연들 중에 우연히 만나 함께 하고 사랑을 하고 서로를 자신보다 사랑하게 된,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 없는 우리의 모습은 하늘이 내린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현생이든 전생이든 언젠가 만나 사랑했던 던 게 분명해요.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거죠. 그러고는 금세 친근해지는, 오래전 헤어졌던 오래된 친구라고 해도 무방하겠어요.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고 반갑잖아요? 항상 그립고요.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 같은 저의 사랑 방식이 그녀에게는 어떻게 비춰질 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약속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겠다고요. 불 같은 사랑은 분명 상대로 하여금 엄청난 걸 느끼게 해줄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요. 다만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답니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동반자로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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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말 한 마디 때문에>



<말 한 마디 때문에> 표지 ⓒ아시아



성경 야보고서 3장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만일 말의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라는 구절이 있다. 말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리고 말이란 게 필수적으로 대상이 필요하기에, 말이 중요하다는 것은 '공동체에서'라는 뜻일 게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일컫는 인간에게 공동체는 당연한 귀결인데, 말, 말, 말이야말로 당연한 요소이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빛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말을 잘하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반대로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말은 때로는 그 어떤 도구보다도 유용하게 쓰이고, 때로는 그 어떤 독보다도 무서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칼과 사람을 죽이는 칼이 있다고 하는데, 말이야말로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 한 마디 때문에' 일어나는 천태만상


중국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통하는 류전윈의 신작 <말 한 마디 때문에>(아시아)는 제목 그대로 중국의 한 농촌(옌진)에서 '말 한 마디 때문에' 일어나는 천태만상을 다룬다. 소설은 말 때문에 일어나는 인간계의 가지각색 기상천외한 일들 만큼이나 특이한데, 형식이 복잡하다고 해야 할지 불규칙적이라고 해야 할지 중구난방이라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만큼 특이하다. 


예를 들어 한 장(약 30페이지)에서 몇 개에 달하는 에피소드들이 그것도 서로 상관없는 에피소드들이 연달아 나오는 건 물론이고, 붙어 있는 앞 문장과 뒷 문장이 서로 연계되지 않는 것들도 부지기수이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에 번역이나 편집의 실수가 아니라, 어떤 의도 하에 그렇게 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저자의 집필 의도를 최대한 살려주려 했을 거다. 


그렇다면 저자의 집필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왜 저자는 이토록 정신 없이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을 무질서하게 나열했을까? 단순히 말 한 마디 때문에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사연들을 그에 맞게 무질서하게 풀어 놓았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려 했던 것일까. 


물론 그런 의도도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 만은 아닐 것이다. 류전윈 작가는 현대 중국의 신사실주의 소설을 대표한다. 그의 소설은 거의 이름 없는 소시민의 일상을 다룬다. 그는 일전에 한국에 와서 강연을 열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보다 내가 당장 오늘 먹을 두부 한 모를 살 수 있느냐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말에 관한 고독, 고독 속에서 진정한 친구 찾기


이 소설 <말 한 마디 때문에> 역시 다르지 않다. 두부 한 모가 중요하고,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소설에서 정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대략 20세기 초반의 중국 농촌이 배경이라고 했을 때, 주인공들인 이름 없는 하층민들의 상태는 어떠할까? 그들의 육체와 정신은 피폐해질 데로 피폐해져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더불어 말에 관한 고독, 고독 속에서 진정한 친구 찾기, 진정한 친구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숙고 등이 소설 전반에 깔려 있다. 이런 사항들을 합해 추리면 한 마디가 나오는데, 바로 '혼돈'이다. 이 소설의 형식과 내용도 혼돈이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과 말도 혼돈이다. 즉,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혼돈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 고립무원이자 혼돈인 세상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는 고립무원의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혼돈의 가장자리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힘 없고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이 그 혼돈에서 탈출하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농촌 탈출 러쉬를 경제적 관점이 아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신뢰를 잃은 세상이 안타깝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뼈아픈 한 마디와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넨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일생을 살면서 괜찮은 친구를 하나라도 얻었나?"

"가자, 내가 널 따스한 곳으로 데려다줄게."


진심어린 한 마디를 유일하게 나눌 수 있던 딸을 잃고 정든 고향을 떠나는 주인공. 과연 누가 이토록 삭막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이미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가? 인터넷을 통해 진심 어린 한 마디를 대신할 수 없는 의미 없는 만 마디를 매일 같이 해대며 혼돈의 가장자리 끝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가?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따스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진심 어린 따뜻한 한 마디조차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봐야 한다고 배웠기에. 세상은 정말 무서운 곳이라 누군가 와도 함부로 말을 섞으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세상이 그렇게 신뢰를 잃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침들이 있었을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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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바람>



영화 <바람> ⓒfilm the days



20대 중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불만이 겹쳐 우울증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누구의 위로도 그 모든 감정들을 추스를 수는 없었다. 단지 현재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미래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니 과거로 도망치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갑갑하고 불편한 현실에서 도망쳐 과거로 천착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지금은 20대 중반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당시에는 어떤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몇몇 시절들을 꼽아본다. 대학교 2학년 군대 가기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 3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 때, 유치원 때. 그리고 우울증을 느꼈던 20대 중반의 그때. 이들 시절에는 어김없이 내 옆에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들 또한 이 당시의 친구들이다.

 

지금 내 옆에는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친구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힘들어 한다. 그 친구 덕분에 지금의 이 어려움들을 견디고 있지만 가끔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지금 또한 미래의 나에겐 돌아가고 싶은 과거라는 걸.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시절


영화 <바람>은 한 남자의 돌아가고 싶은 과거인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누구보다 폼 나는 시절이었다. 과연 그는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모티브는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 쓰레기 역 ‘정우’의 실제 이야기이다. 자연스레 영화 <바람>의 주인공은 배우 정우가 맡았다.



영화 <바람>의 한 장면.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시절. ⓒfilm the days


 

짱구(정우 분)는 엄한 집안의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폼 나는 학창시절을 보내게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럼 ‘바람’이 통했는지 집안에서 유일하게 명문고가 아닌 골칫덩이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부산 바닥에서 폭력 학교로 유명한 광춘상고에 진학하게 된 짱구는, 불법폭력써클 ‘몬스터’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 무리들과 함께 하게 된다면, 편한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그토록 바라던 폼 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짱구처럼 폼 나는 바람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를 회고해보면 분명히 짱구의 바람과 똑같은 바람이 존재했었다. 주위에 남학생들만이 존재하는 남고에서, 편안한 학교생활을 넘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싸움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폼 잡으면서 학교를 활보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짱구의 바람은 곧 나의 바람이기도 했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학창시절


하지만 짱구는 신학기 조회 시간에 거행되는 몬스터의 후임 물색 작업에서 ‘간택’되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카리스마를 내뿜으려 해봤지만 타고난 폼이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짱구.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소위 잘 나가고 싸움 잘했던 형이 같은 학교에 있었기에, 학교생활은 편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가 엉겁결에 몬스터와 다른 불법폭력써클 간의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짱구를 비롯한 친구들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고, 이로 인해 몬스터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학교 ‘일진’이 된 짱구. 아무리 봐도 순박하고 착한 짱구인데, 엄연히 폭력써클의 일원이 되었기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 부적절한 합이 얼마나 웃음을 자아내는지.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이 난다.



영화 <바람>. 폼에 살고 폼에 죽는 학창시절. ⓒfilm the days


 

1997년 데뷔한 ‘젝스키스’의 노래 중에 <폼생폼사>라는 노래가 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사나이라면 사랑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인데, 이는 당시 고등학생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사랑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허세’와 ‘폼’을 중요시했던 학창 시절을 대변하는 노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이, 당시(1997년 당시가 아닌 모든 이들의 학창시절)에는 허세와 폼이 하나의 문화였고 모든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그것만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바람>은 그런 바람을 한 치의 ‘오버’나 ‘부족함’없이 보여주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잘 나가던 짱구. 무서웠던 선배들이 졸업하고 자신이 직접 조회 시간에 후임을 물색하는 위치가 되었다. 세월 참 빠르고 ‘찌질했던’ 옛날이 생각나게 만든다. 그런데 진짜 옛날이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긴급 전화. 당장에 집으로 뛰어간다. 그 뒤를 급하게 뒤쫓는 친구들. 곧 아버지가 간경화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건강에 치명상을 입은 아버지. 시무룩해지고 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짱구. 하지만 아버지가 당장의 급한 상황을 넘기게 되자 짱구는 다시금 돌아가게 된다.

 

나의 진짜 '바람'은 소중한 가족


사람은 정작 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일이 닥쳤을 때의 슬픔과 두려움과 밀려드는 후회를. 짱구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어릴 때 자신을 ‘짱구 박사’라고 부르곤 했던 아버지의 아빠 미소와 다정한 모습을 잊어먹고 있었다. 그렇게 따랐던 아빠였는데. 지금은 왜 그리도 싫은지. 왜 그리도 불편한지.

 

결국 짱구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만다. 그리고 짱구의 학창시절도 끝나고 만다. 허세와 폼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했던 그 학창시절이 말이다.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씁쓸한 기억 뿐. 단, 소중한 친구들과 소중한 가족들이 남았다.

 

학창시절 짱구의 ‘바람’은 폼 나는 폭력써클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폼은 허세의 다른 말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허세도 폼으로 읽혔지만 말이다. 반면 짱구에게 가족은 폼의 반대말이었다. 엄격한 집안에서 유일하게 공부 못하고 촐싹거리기만 하는 막내아들인 짱구가 폼 날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빨리 독립하고 싶고 여차하면 가출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학교생활에서라도 폼 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짱구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곧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슬픈 매개체였다.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였지만, 또 영화로써도 거의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감독이 원래 짰던 시나리오를 던져버리고 완전히 다시 썼다는 것도 수긍이 간다. 그 정도로 학창시절의 ‘바람’은 그 무엇으로도 쉽게 떨쳐낼 수 없던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짱구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꾸며 꿈속에서 말하는 장면이 생생하다.



영화 <바람>의 한 장면. 나의 진짜 '바람'은 소중한 가족. ⓒfilm the days



“아빠...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못했다. 아빠... 아빠... 사랑한다.”

 

그때 그 시절, 참 힘들었다. 매일같이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공부에 매진하고, 그러면서도 양육강식의 남자들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발버둥치고, 점점 멀어져 가는 가족들과의 관계에 괴로워하고, 어김없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고 현재에 대해 불만에 차 있었다. 과연 지금 그때 그 시절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바람’을 갖고서 살아가게 될까. 영화는 그 정답이 ‘가족’이라고 말한다. 반면 나는 대학교 때까지는 ‘공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으로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그 바람은 더욱 더 확고해질 것 같다. 가족(지금의 가족, 앞으로의 가족)만큼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아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이는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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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굿 윌 헌팅>



<굿 윌 헌팅> ⓒ미라맥스 필름



옛말에 '한 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 명의 진정한 친구, 그리고 백 권의 좋은 책'을 말할 수 있으면 성공한 삶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인생에서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란 정말 힘든 법이다. 그런데 이 옛말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부모의 존재이다. 부모를 '두 명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의 교육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 


부모라는 최고의 스승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아니 오히려 부모에게서 어마어마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입었다면 어떤 인격이 형성될 것인가? 그에게는 진정한 스승과 친구, 그리고 사랑이 누구보다도 필요하다. 영화 <굿 윌 헌팅>은 진정한 스승과 친구, 그리고 사랑을 만난 어느 불운한 천재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미국 보스턴 남부 빈민촌, 그리고 MIT.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둘이 한 청년에 의해 엮어진다. 

윌 헌팅(맷 데이먼 분)은 남부 빈민촌에서 살며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게시판에 적어 놓은 수학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 버린다. 사실 그 문제는 수학과 학생들 중에서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였다. 수학과는 발칵 뒤집히고 램보 교수는 그 학생을 찾아낸다. 


헌팅이 천재라는 걸 알게 된 램보는 그를 본격적으로 키워보려 하지만, 헌팅은 그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사고를 치는 건 둘째 치고 너무나 어려운 문제를 너무나 쉽게 풀어버리는 게 문제였다. 헌팅에게는 그 어려운 문제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보다 그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게 먼저였다. 램보는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숀 맥과이어 교수(로빈 윌리엄스 분)를 찾아간다. 


헌팅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어렸을 적 당한 심한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게 되었다. 그와 비슷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있을 뿐이다. 척키 슐리반(벤 애플렉 분)은 진정한 친구이다.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미라맥스 필름



언젠가부터 스승의 개념이 '멘토'라는 개념으로 대체된 것 같다. 스승은 아무래도 다가가기 힘들고 일방적인 가르침의 개념이 있는 반면, 멘토는 상대적으로 동등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개념보다 상담이나 조언에 더 힘이 실린다. 천재 헌팅은 스승보다는 멘토가 필요했던 것 같고, 램보는 헌팅에게 멘토가 될 수 없었다. 과연 맥과이어 교수는 헌팅에게 멘토가 될 수 있을까?


헌팅은 맥과이어를 램보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맹공을 퍼붓는다. 상담 시간에서 자신의 얘기를 해보라는 맥과이어의 말에 천재적 지식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상담은 아무런 진척도 없이 끝나기 마련이고 서로 지쳐간다. 


"너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면서 내 그림을 통해 내 삶을 망쳐버렸어. 너는 고아야. 만약 내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었기 때문에, 고아로서 겪었던 너의 어려움과 고아인 네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떠들면 어떻겠느냐?... 개인적으로, 나는 네가 떠들어 대는 얘기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 그런 얘기들은 엿 같은 책만 들추면 다 나오는 얘기들이니까. 그런 것으로부터는 '너'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어... 나는 '너'를 알고 싶어. 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바로 그런 얘기들이 내 마음을 확 잡아 끌지. 그러나 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아."


맥과이어의 진정한 마음을 알게 된 헌팅은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맥과이어라면 모든 걸 이해해줄 거라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을 인도해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천재 헌팅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결여된 것은 엄청 많았다. 하필 그것들이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라는 것. 사랑, 우정, 믿음, 신의...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미라맥스 필름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내가 너희 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 때야. 안녕이라는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적어도 그 순간 만은 행복할 거야."


헌팅의 진정한 친구 슐리반의 대사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친구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의 덕목이라는 걸 안다고 해도 실행에 옮기는 게 쉬운 일인가? 한편 맥과이어 교수는 헌팅과의 인생 상담을 마무리 지으며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는다.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말이다. 


"그때 말을 걸지 않았으면 난 평생 후회했을 거다. 낸시와의 18년 결혼 생활도, 아내가 아파서 6년이나 일을 관뒀던 것도, 또 병상을 지켰던 2년도 난 후회하지 않아. 그깟 시합 못 본 건 아무 것도 아냐, 후회하지 않아."


헌팅은 사랑, 우정, 믿음, 신의와 같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인생 필수품들을 얻을 수 있을까? 또는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헌팅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자칫 이런 류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오글거림(?)'이 전혀 없다. 진지한 말은 진부하지 않은 명언이 되고,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내게서도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난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떠나보내고 6개월 만에 '로빈 윌리엄스'를 떠나보냈다.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영화 안팎에서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줄 것만 같았던 그가 말이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을 지 몰라도 <익스펜더블>의 오래된 영웅들처럼 언제나 건재함을 과시할 것만 같았는데,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그가 안녕이라는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 버린 지금, 그 순간 만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진짜' 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일까? 안타깝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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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수꾼>


영화 <파수꾼>.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이지만, 표지에는 두 명뿐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필라멘트 픽쳐스

좁혀지는 미간, 꿈틀대는 눈썹, 뿜어져 나오는 한숨, 쯥쯥거리는 입술, 바싹 당겨지는 뒷목. 영화 <파수꾼>을 보고 난 후 남겨진 것들이다. 10대 친구들을 그린 이 '성장영화'를 보며 이런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서 나의 오욕의 학창시절을 투영했기 때문일까. 영화 자체가 소름끼치게 하였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은 독립영화에 속한다.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소규모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눈을 속이는 현란한 특수효과나 가슴을 뻥뚫리게 하는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는 없다. 대신 디테일하기 그지없는 미시적 심리묘사와 짜임새있는 스토리가 송곳에 찔린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필자가 독립영화를 처음 본 기억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주인공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케이블 TV에서 보내줬던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휴가나와서 하필이면 군대 영화를 보다니. 그럼에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면서 계속해서 나만의 해석을 덧붙였지만, 여전히 그 재미는 반감되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2008년에 <똥파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2011년, <파수꾼>을 접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인데, '파수꾼'이라는 단어와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같았기에 자연스레 접하게 된 케이스이다. 거기에 3년마다 찾아오는 명작 독립영화라는 일종의 징크스가 작용했을지도.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학생 3명이라는데 과연 어떻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궁금하였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를 접하기 전에 영화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아주 간단한 거였는데, 바로 제목이었다. 한글 제목은 <파수꾼>이지만, 영어 제목은 <Bleak Night>였던 것이다. 풀이하면, 암울하고 절망적이고 음산하고 황량한 밤 정도가 되겠다. 그들이 누군가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 그려졌다.


영화는 역순으로 진행된다. 자살한 기태(이제훈 분)의 아버지가 기태의 죽음을 쫓아 기태의 생전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그렇게 찾아낸 기태의 친구 희준(박정민 분). 그는 기태가 자살하기 몇 주전에 전학을 갔지만, 그 전까지는 기태와 가장 친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 동윤(서준영 분). 그는 중학교때부터 기태와 가장 친한 친구였고, 희준이 전학간 사이 기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세 친구는 단짝이었다. 그들은 철로가 끝날 때까지 같은 걸어갈 수 있을까. ⓒ 필라멘트 픽쳐스



주지한대로 주인공은 세 명의 단짝 친구들이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때부터 친구였고, 희준은 고등학교때 알게된 친구이다. 이들 셋은 언제나 붙어다닌다. 그런 그들의 관계에 약간의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윤과 희준이 좋아하는 세정과 보경이와 함께, 남자 셋 여자 셋 월미도 여행을 떠난다. 기태는 진심으로 친구들의 사랑이 성사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보경이는 희준이 아닌 기태를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보경은 기태에서 고백하고 이 장면을 본 희준은 기태에게 따지고 든다. 이에 기태는 언짢음을 느낀다.


이어서 학교에서의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기태 앞에서 부모님 얘기를 하지 말자는 동윤과 다른 친구의 눈짓을 본 기태가 또 다른 의미의 언짢음을 느낀다. 또한 기태는 싸움을 제일 잘하는 일명 '짱'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부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때부터 단짝인 동윤을 제외하고, 희준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에 역시나 언짢음을 느끼는 희준이지만, 기태는 그런 희준에게 자신의 속마음과는 다른 서툰 감정 표현을 하고 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툰 표현들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으로 이들의 관계는 점철되고 만다.


결국 기태와 그의 불량한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지 못한 희준은 전학을 가버리고, 동윤은 그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재를 하지 못한 채 희준의 편만을 든다. 이에 기태는 동윤에게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그의 여자친구인 세정이 과거에 안 거쳐간 남자가 없었다는 것. 이어서 기태는 세정에게 말한다. 동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동윤은 기태를 찾아가서 대판 싸운 끝에 절교를 선언한다. 이 도중에 기태의 불량친구들 또한 기태를 떠나간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자살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프로이트는 방어 기제를 '미성숙한 방어 기제'와 '성숙한 방어 기제'로 나누었다. 미성숙한 방어 기제로는 부정, 투사, 행동화, 건강 염려증, 퇴행, 수동 공격적 행동, 신체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기태가 사용하는 방어 기제는 행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미성숙한 자아와 어미니가 안 계시는 상황,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이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극 중의 내용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그와 관련하여 갈등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태가 말한다.


"난 집에 가면 내가 밥 해먹어. 가끔 아버지 얼굴 보면 인사하고 아침에 눈 떠보면 지각이라서, 왜 안 깨웠냐고 막 화내거든. 안 계시잖아. 엄마가. 아무도 없어. 그 정도야. 그 정도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우리 집 관련된 얘기야. 됐지? 됐냐고?"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기태의 자살이 결국은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사소한 오해와 갈등으로 그들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 필라멘트 픽쳐스



기태는 희준이 좋아하는 보경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기태는 계속해서 희준에게 다가가 사과를 한다. 그의 표현 방법이 조금은 서툴고 거칠지만 희준이 받아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희준은 시종일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 조금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태는 계속해서 엇나가고 만다. 급기야 희준을 향한 분노가 극단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다. 이번엔 희준이 말한다.


"너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내가 언제까지 네 앞에서 꼬리 흔들며 살아야 되는데? 내가 네 앞에서 그렇게 맞고도 오기로 버텨온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알량한 자존심. 나도 한 번 부려봤다. 왜, 안 되냐? 저 친구들도 네 옆에 있는 거 아니야. 착각하지마. 너랑 학교 다니면 편하니까 붙어있는 거지. 나도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고, 알아?"


영화를 보는 내내 희준을 향한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인간 관계란 것이 칼로 무자르듯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죽고 못사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일로 인해 단번에 그 친구와 절교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매일같이 사과를 했지만 나는 무엇인지 모를 오기로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의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성숙한 지금의 내가, 미성숙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의 사과를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불안한 관계, 그 끝은...


우리가 믿고 있는 깊숙한 관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친구는 무엇일까. 진정한 친구와의 깊숙한 관계는 불안정한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일까. 이 영화는 자칫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만연한 불안은 관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려 끝까지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고 상대를 대하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기태는 겉으론 한없이 강한 척 하며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면서도 나약했다. 그는 희준에게 거듭 사과를 하며 불안을 감추려 한 것이다. 하지만 희준은 자신의 불안을 완전히 굳혀서 기태를 대한다. 희준의 입장에서는 기태야말로 자신의 불안을 극도로 내보이며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또한 미성숙하기 그지없었다.


미성숙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동윤. 그야말로 제일 미성숙한 인물일 것이다. 시종일관 기태와 희준의 갈등 속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일방적으로 희준의 편만을 들었을 뿐. 또한 기태의 마지막 사과를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제일 성숙해 보였던 그였기에, 그의 말은 꽤나 반전이었다. 동윤의 말이다.


"너한테 기분 상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똑바로 들어.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지껄일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알아?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네 진정한 친구였단 생각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역겨우니까... 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있잖아 가식적인 인간 싫다고. 근데 네가 제일 가식적이야. 네가 역겨우니까 다 너 떠나는 거야...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혼자 남게된 동윤.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는 없었다. ⓒ 필라멘트 픽쳐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빛을 갚는 다는 속담이 있다. 죽마고우도 말 한 마디에 갈라진다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말'의 힘은 대단하다. 말은 '관계'에 있어 그 시작과 끝을 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파수꾼>은 10대 친구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고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세대를 초월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bleak night에 던져진 이들은 비단 미성숙한 그들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규명하고 있는 거대한 bleak night에 던져진 우리들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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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신작 영화]



<친구 2>

2013년 11월 14일 개봉, 곽경택 감독, 유오성·김우빈·주진모 주연, 느와르


2001년에 개봉해 전국 820만 명을 모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친구>가 다시 돌아왔다. 마초 영화의 1인자 곽경택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주인공 친구들 4명 중에 '준석이'(유오성 분)만이 돌아왔다. '동수'(장동건 분)은 준석이에게 죽었으니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했다. 


이야기는 동수가 죽은 지 17년 후의 이야기라고 한다. 즉, 준석이가 동수를 죽이게 된 죄로 17년 간 감옥에서 복역한 후 돌아온 것이다. 한편 그의 아들로 '철주'(주진모 분)는 아버지가 복역하게 된 후 흐터졌던 조직을 다시 결합시키기 위해, 감옥 안에서 만난 준석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성훈'(김우빈 분)을 오른팔로 둔다. 사실 성훈은 죽은 동수의 숨겨진 아들이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자란 성훈. 자기 아버지의 절친이자 자기 아버지를 죽인 준석을 아버지처럼 따른 것이다. 어느 날 성훈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철주. 과연 어떻게 될까? 눈물과 우정과 배신과 딜레마 등이 뒤엉켜 난무할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 재개봉되는 영화들이 참으로 많다. 특히나 1990년대, 2000년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들을 다시 재개봉하여 적은 돈으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에 부응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12년 만에 돌아온 <친구 2>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솔직히 그 저의를 잘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할 것이고, 곽경택 감독의 슬럼프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10여 년 사이에 조폭 영화도 많이 바뀐 것이다. 얼마 전 <신세계>처럼, 단순히 배신과 욕망이 점철된 스토리가 아닌 그보다 더욱 지독한 딜레마가 가미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스토리 상으로 보았을 때 <친구 2>에도 딜레마가 나온다. 바로 성훈의 딜레마이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아버지처럼 따른다. 그런데 너무 식상하다는 점이 흠이다. 





<더 파이브>

2013년 11월 14일 개봉, 정연식 감독, 김선아·마동석·신정근 주연, 스릴러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웹툰 원작 영화가 다시 돌아왔다. 다만 원작의 파워도 영화의 파워도 많이 밀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같은 날 개봉하는 <친구 2>에게 밀리는 감은 보이지 않는다. 

<친구 2>가 워낙에 기대가 되지 않는 작품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친구 2>와 개봉관 수와 러닝타임까지 비슷하다고 한다. 거기에 <친구 2>는 롯데엔터테인먼트, <더 파이브>는 CJ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한다. 국내 영화 배급사 빅2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친구 2>나 <더 파이브>나 결국에는 저번 주에 개봉한 <토르: 다크 월드>에 밀릴 것으로 예상해본다. <더 파이브>는 홍보가 많이 되지는 않은 듯한 느낌이다. 배급사가 돈이 없어서 그러진 않은 것 같고, 그냥 영화 자체가 계절에 안 맞는 것인가? 감독이 특이하다. 원작 웹툰의 작가가 영화의 감독을 맡았다. 아무래도 웹툰을 그리며 영화까지 염두에 둔 것 같다. 


스토리는 인기 웹툰이 원작인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최악의 연쇄 살인마가 나오고, 그에 의해 행복이 송두리째 찢겨나간 한 여인이 나온다. 그 여인이 핏빛 복수를 시도한다. 그리고 꼭 5명이 모여야만 복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어져갈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들에는 기대가 간다. 김선아, 마동석, 신정근, 온주완 등. 개성있는 연기파 배우들이 모였다. 단순히 네임벨류로 캐스팅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고 믿음이 간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친구 2>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왠지 모르게 2등 싸움이 될 것 같은 슬픔 예감이 드는 <친구 2>와 <더 파이브>의 대결. 나름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더 파이브>에게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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