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바스커빌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 표지 ⓒ열린책들



소싯적에 추리소설 한번 읽지 않은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추리소설 접한 사람치고 한번 푹 빠져 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아마 그 시작은 대부분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일 텐데, 그 시리즈는 하나의 통과의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래 동화에 버금가는 친화력으로 무장해 수많은 이들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했다. 물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소싯적에 추리소설에 한번 푹 빠진 적이 있다. 그때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Y의 비극> <환상의 여인>의 '3대 추리소설'이니 '10대 추리소설' 따위를 열심히 찾아보곤 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셜록 홈스 시리즈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단 하나의 소설만 빼고. 그건 다름 아닌 셜록 홈스 시리즈 최고의 소설로 통하며, '10대 추리소설' 중 하나에 들곤 하는 <바스커빌가의 개>이다. 


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심상치 않은 기운은 소설의 내용과 분위기에 그대로 투영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빨려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 전에 내외적으로 소설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어 흥미를 더한다. 소설의 배경이 셜록 홈스가 죽었을 때라는 점이나, 여타 셜록 홈스 시리즈의 책과는 너무도 다른 느낌 때문에 코난 도일이 쓴 게 아니라는 의혹 등이 그렇다. 


현실로 다가온 바스커빌가의 '악마 개' 전설


영국 남서부 쪽에 위치한 다트무어, 바위가 많은 고원인 그곳의 황무지엔 바스커빌 홀이 있다. 오래된 가문 바스커빌가의 본가인 그곳엔 전설로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다. '악마 개'가 바스커빌가의 망나니 선조를 물어 죽인 전설이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 직계 후손인 찰스 바스커빌 경이 악마 개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전설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에 찰스 경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모티머 박사가 홈스와 왓슨을 찾아온다. 찰스 경의 죽음을 조사함과 동시에 그의 유일한 상속인인 헨리 바스커빌 경을 보호해 달라고 말이다. 홈스는 오랜 숙고 끝에 왓슨을 바스커빌 홀로 파견한다. 홈스는 당장 시급한 일 때문에 나설 수 없으므로. 


거기에는 오랫동안 바스커빌가를 모셔온 가문의 배리모어 부부가 있고, 근처에는 래프터 홀의 프랭클랜드 씨, 메리피트 저택의 스태플턴 남매가 있다.  찰스 경과 가깝게 지냈던 이들인데, 홈스는 이들 모두가 여전히 미지의 요소이기 때문에 빠짐없이 살펴 보고하라고 이른다. 그리고 황무지엔 살인범 탈옥수도 숨어들었다고 하는데...


왓슨이 바스커빌 홀에 온 이후 소설은 다른 양식을 따른다. 오로지 왓슨의 보고서와 일기에 의존한다. 홈스의 명쾌하고 기가 막힌 추리와는 다른, 지극히 조심스럽고 어딘지 어설픈 추리다. 나름 재밌지만 홈스가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드시 홈스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언제쯤 어떤 식으로 등장하게 될까?


위대한 추리소설, <바스커빌가의 개>


<바스커빌가의 개>는 위대한 '추리소설'의 요소를 갖췄다. 위대한 추리소설이라하면,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정녕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엄청난 '추리'를 해내는 것이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상황을 만들어야 하겠다. <Y의 비극>이나 <노란 방의 비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굉장한 마니아가 존재할 것이다.


또 하나는 추리도 추리지만 '문학'적으로 굉장한 성취를 보이는 것이다. 추리소설이라는 딱지를 떼고서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수준이랄까. <바스커빌가의 개>를 포함한 <환상의 여인>, <기나긴 이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추리소설보다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갖는 위대한 양식 중 하나는 단연 '분위기'이다. 다트무어라는 지역이 주는 특징인 '바위가 많은 고원', 그런 곳의 음울하고 황량한 '황무지', '탈옥수'가 주는 불안, 그리고 바스커빌가의 전설 '악마 개'가 선사하는 초자연적 두려움까지. 이는 단연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고딕소설'의 일환이다. 


추리소설이라는 하위 장르가 아닌, 그보다는 상위 개념인 고딕소설이라는 장르. 코난 도일은 고딕소설의 요소를 상당 부분 차용해 이 추리소설을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고딕소설의 클리셰가 엄청 눈에 띄는데, 그게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게 백미다. 이 소설은 고딕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엄연히 추리소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셜록 홈스 시리즈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 대영제국이 느낀 으스스함을 담다


낭만주의 소설 양식 중 하나인 고딕소설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루는데, 당대에 성행했던 이성주의와 계몽주의 등에 억압된 비합리성과 감성에 대한 갈망이 표출된 것이라 한다. 유명한 작품으로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등이 있는데, 이 소설에선 '바스커빌가의 악마 개'가 그 주체라고 하겠다. 


'악마 개'의 시작은 18세기 중반, 고딕소설로 표출될 억압된 욕망의 갈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 사람들의 갈망이 만들어낸 허상은 허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때론 허상이 실상보다 무서운 법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서운 게 아닌가. 


소설이 만들어진 때가 1901년이니 복잡다단한 당시의 세계가 투영되었을 것이다. 보어전쟁이 한창인 당시, 17세기부터 전 세계를 호령한 대영제국은 서서히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 힘이 예전만 못한 것. 그런데 그 대상이, 그 적이 누구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사방이 적인 게 아닐까. 소설은 그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소설이 갖는 으스스한 분위기는 고스란히 당대 영국이 느끼는 으스스함이었을 것이다. 홈스와 왓슨은 과연 이 초자연적인 사건들과 알 수 없는 으스스함의 원인을 찾아 훌륭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역시 그러하겠지만, 이번에는 그리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영국이 홈스를 사랑하는 이유, 홈스가 반드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 홈스가 죽으면 안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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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음의 방정식>


<음의 방정식> 표지 ⓒ문학동네


올해로 데뷔 30년 차를 맞은 일본 최고의 작가 중 한 명.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겸비한, 탁월한 스토리텔러. 사회 병폐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인간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릴 줄 안다. 그를 대표하는 추리소설을 비롯해, 사회, 역사, 청소년, SF소설을 두루 섭렵했다. 남성 작가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면 여성 작가엔 그가 있다. 다름 아닌 미야베 미유키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 둘의 추리소설을 최소 1편 이상은 접해보았는데, 공통점이라 한다면 탁월한 가독성에 있다. 이는 곧 대중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곧 작품성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다작(多作) 작가라는 것. 엄청난 작품 수를 자랑하는 이들인데, 출간되었다 하면 거의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럼에도 거품 논란 없이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작품성을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둘 중에 굳이 고르라면 미야베 미유키를 고르겠다. 워낙 방대한 작품 세계를 자랑해 한 권의 분량이 많아서 그의 소설을 덜 접한 게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작품 개개가 더 믿음이 간다. 더 공력을 들였다는 게 느껴지고, 생각할 요소들이 더 많다. 그리고 소설에서 작가의 생각과 시선이 느껴진다. 


다시 돌아온 미야베 미유키의 교내 미스터리 


<솔로몬의 위증>은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의문의 추락사를 바탕으로, 무너지는 학교라는 성역과 예민한 10대들의 심리를 담아냈다. 그렇게 현대사회의 속살을 집어내려 했다. 학교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곳이 아닌가. <솔로몬의 위증> 이후 20년, 당시 10대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후지노 료코가 변호사가 되어 다시 한 번 교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왔다. 


<음의 방정식>(문학동네)은 <솔로몬의 위증>에 이은 교내 미스터리 소설이다. 신흥 사학인 학교법인 세이카 학원이 배경이다. 이 학교는 A, B, C, D반으로 나뉘는데, 곧 등급 순이다. 이 등급은 고등부에 올라가서도 답습되고 대학 진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건은 D반이 교내에서 '피난소 생활 체험캠프'를 열었던 토요일 밤에 일어난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피난소를 가정해 교실에서 침낭을 깔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소등 후 밤 열한 시쯤 히노 선생이 D반 남학생 일곱 명이 모여 있는 3층 교실로 순찰을 왔을 때였다. 히노 선생은 과제를 하나 낸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는 가정 하에 한 명을 희생 시켜야 하면 누구를 선택하겠냐는 것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아이들은 당황했지만 웃으며 지나쳤다. 하지만 리더 시모야마 요헤이가 도망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이 밝혀졌다. 하지만 히노 선생은 일련의 사태를 모조리 부인한다. 선생과 학생 중 한 쪽은 거짓말을 한 것이리라. 얼마 후에는 아키요시 쇼타가 더는 못 참겠다는 메모를 남겨 놓고 수면유도제를 있는 대로 긁어모아 삼키는 자살 소동도 있었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사회의 거울이자 바탕이 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스승과 제자. 인생에서 한 명의 진정한 스승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꼭 학창 시절에 국한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 소양과 지식을 그때 배우기 때문에 인생의 스승 또한 그 시절에 만나기 쉽다. 그만큼 그때의 스승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반증하는데, 반대로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윽박 지르고 위협하고 지배하려 하고 억압하려는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그런 스승과의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제자에 대한 스승의 기억도 마찬가지겠지만, 스승은 한 명이고 제자는 다수이니 상대적으로 옅다. 


그렇게 볼 때 이 사건에서 거짓말을 한 이는 스승일 가능성이 크다. 정황 상으로도 한 명인 스승과 다수인 제자이니, 다수 간의 협의가 힘든 만큼 잘 맞추면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자라는 입장에서 볼 때 제자를 골탕 먹이려는 행동을 하진 않을 거라 생각된다. 


제는 여기에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자들은 스승의 위협과 억압을 막기 위해 스승을 골탕 먹이려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게 사건 자체보다 그 원인에 있다고 보았을 때, 진짜 나쁜 짓을 한 건 스승이 된다는 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지점을 작가는 교묘히 잘 건드렸다. 


"음의 방정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선생과 학생,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 이끄는 쪽과 따르는 쪽, 억압하는 쪽과 억압받는 쪽의 조합부터 잘못되었고, 그러니 어떤 숫자를 넣어도 마이너스 답만 나온다." (본문 116쪽)


사회의 거울이자 바탕이 되는 학교. 그런 곳에서 교묘히 오가는 알력. 빙산의 일각과 같은 사건 뒤에 훨씬 더 크고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문제.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학교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고 있을 것이다. 언제 쯤이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답이 나올 수 있을까. '음의 방정식'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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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용의자 X의 헌신> ⓒ현대문학

10년 전쯤 우연한 계기로 추리소설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그 계기가 된 작품은 <장미의 이름>(열린책들)이었는데, 너무나 어려워 프롤로그를 이해하는 데만 한 달여가 걸렸던 기억이 난다. 겨우겨우 끝을 보고 다른 추리소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조금은 덜 어려운걸로다. 


흔히들 말하는 세계 3대 추리소설('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Y의 비극', '환상의 여인')을 다 섭렵했고, 그 밖에 수많은 추리소설들을 훑었다. 추리소설만 보다보니 이것저것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나의 독서 편력에 대해 질문을 해보았다.


"왜 동양 추리소설은 읽지 않는 거지? 아니면 없는 건가? 조사해보자."


(개인적으로) 중국과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추리소설을 찾기 힘들었다. 반면에 일본에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있었다. 그의 <점과 선>(모비딕)을 읽었다. 절묘한 트릭은 물론이고, 사회성 짙은 내용이 일품이었다. 심리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이 상당히 가미되곤 하는 동양의 추리소설에서 조금은 더 글로벌해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 분의 사회성 짙은 내용을 이은 작가가 얼마 전 화제를 불러일으킨 <화차>(문학동네)의 '미야베 미유키'라고 할 수 있을테고, 절묘한 트릭과 글로벌해진 느낌을 이은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의 추리소설 독서 편력은 서양에서 시작해 동양으로 왔고, 그 중에서도 일본의 마쓰모토 세이초를 지나 미야베 미유키를 살짝 경유해서 히가시노 게이고에 이르렀다. 그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현대문학)은 추리소설에서 발을 떼려한 나의 발길을 돌려 비록 한동안이지만 다시금 순수한 욕망으로 가득 차게 해주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용의자 X의 헌신>를 내놓기 전,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와 형사 구사나기 콤비의 두 단편집을 내놓은 바 있다. <탐정 갈릴레오>(재인), <예지몽>(재인)이라는 작품인데,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의 추리를 앞세워 초자연적인 사건을 과학적으로 풀어나갔다. 


그런 그들에게 현실의 인물에 의한 현실의 사건이 등장한다. 사건 해결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바, 단편집이 아닌 장편소설인 점도 이에 한몫한다. 그들의 대학교 동창이자 천재 수학자인 아시가미 테츠야의 살인 사건이었다. 수학을 제외한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었던 그의 욕망에 과연 무엇이 다가갈 수 있었을까?


양립할 수 없는 창과 방패


그 시작은 기막힌 우연이었다. 한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온 모녀(야스코와 미사토)가 옆집으로 인사를 간다. '딩동' 하는 벨소리에 하던 일을 멈춘 남자가 나왔다. 그는 막 목을 매 자살을 하려고 하던 중이었기에 심드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모녀에게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수학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그에게 수학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눈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더 이상 수학의 길을 가지 않아 삶을 포기하려 한 그에게 또 다른 삶의 이유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렇게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살충동은 사라졌고 세상은 다시 밝아졌다. 그 모녀를 돕는 것은 이시가미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게 어떤 일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자신도 없는 것 아닌가? 그는 은혜를 갚기 위해 그 모녀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려 한다. 그것도 살인죄를. 


어느날 그 모녀에게 전 남편이 찾아왔고 소란 끝에 야스코와 미사토는 힘을 합쳐(?)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이시가미는 이를 알아차리고, 천재적인 수학 실력을 발휘해 범행의 은폐를 도와준다. 너무나도 논리적이고 빈틈없는 알리바이에 구사니기 형사는 유가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천재와 천재는 20여년 만에 조우한다. 창과 방패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수학의 새로운 문제 하나가 생각났어. 시간 날 때 좀 생각해주지 않을래."

"뭔데?"

"사람이 풀기 힘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려운지. 단, 해답은 반드시 있어. 어때, 재미있지 않나?"

"흥미로운 문제야. 생각해보지."(본문 중에서)


여기서 이기게 되는 이는 누구일까. 모녀를 위해 대신 희생을 하려하는 이시가미는 오히려 지게 되길 바라고 있을까? 친구이기 이전에 천재인 이시가미를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내재된 유가와의 추리는 어떻게 끝을 맺을까? 그들이 갖고 있는 묘한 욕망의 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사실, 소설의 초반에서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다. 결정적인 트릭을 제외한 다양한 트릭들도 이미 제시된다. 이런 설정은 추리소설을 보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설정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이 외에 것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인간'을 그리는 작가의 붓끝을 쫓아가다 보면 알 수 있다. 


이시가미는 혼자였다. 그것도 소설 속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말이다. 야스코는 전 남편과 헤어지고 미사토와 둘이 살았다. 또 그녀에게 다가서는 한 남자 구도가 있었다. 유가와에게는 구사나기 형사가 있었고 말이다. 그들에게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잘 끌고 나갈 수 있는 조력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시가미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수학에 쏟았던 욕망의 에너지도 고갈되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야스코와 미사토는 새로운 욕망의 에너지원이었다. 완전히 망가져버린 이시가미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다시 태어났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아가는 의미를 잃고 있었다. 수학만이 유일한 즐거움인 자신이 그 길을 가지 않는다면 자신은 이미 존재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모녀였다. (중략) 수학의 문제가 풀려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본문 중에서)


그 순수한 욕망이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일에 관련되었을 때 그 주인은 이를 간파하지 못했다. 너무나 순수했기에. 백지에 검정색을 칠하든 빨간색을 칠하든 노란색을 칠하든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칠하는 행위 자체에 감사했으므로. 


인간을 그린다는 것은 곧 욕망을 그리는 것과 같다. 사랑과 배신, 우정, 삶과 죽음은 모두 욕망에 기인하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 휴먼드라마에도 이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더불어 재미와 감동도 얻어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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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2013년 9월, 332쪽, 14000원, 도진기 지음, 추수밭(청림출판) 펴냄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추수밭

얼마 전에 인기리에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표절 시비가 붙었던 적이 있다. 4~6회 분에 해당하는 '쌍둥이 살인 사건'이 2012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의 도진기 작가 '악마의 증명'을 표절했다는 논란이었다. 이 논란은 논란으로 그치고 더이상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악마의 증명'이란 단편소설은 대중의 뇌리 속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소설을 지은 도진기 작가도 부각이 되었는데, 이미 그는 유명인사(?)였다. 그는 무려 현직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는 도중에, 어린 시절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경력을 살려 2010년 추리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매년마다 꾸준히 추리소설을 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법률가와 소설가의 특징을 잘 살린 책을 한 편 내놓았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상상할 수 없고, 부제로 봤을 때 재판에 관련된 독특한 형식의 이야기라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피고인을 천국으로 보내려하는 소크라테스 변호사와 지옥으로 보내려는 욱 검사(?), 그리고 재판장 염라대왕이 등장하고 여러 콘텐츠들의 캐릭터들과 그들이 맞이한 법에 관련한 상황들이 나온다. 


저자는 이런 상황들을 상상력으로 재밌게 풀어냄과 동시에 법률적 정확성을 지키고 있다. 그렇게 이 책에 실린 법의 원리는 22가지에 달한다. 법의 원리들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 재미있고 잘 읽히는 수십편의 법정 드라마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가장 오래된 교양>-3천년 인문학의 보고, 성서를 읽는다

2013년 9월, 552쪽, 22000원, 크리스틴 스웬슨 지음, 김동혁 옮김, 사월의책 펴냄


<가장 오래된 교양> ⓒ사월의책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성서'임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단지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책일 뿐이다. 다른 의미로 성인(聖人)이 저술한 책이라는 뜻이 있듯이, 인류 보편적으로 애용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성서는 정확히 어떤 책일까. 단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듯 하느님의 말씀일까. 아니면 유대인들의 역사를 다룬 책일까. 아니면 이 둘을 묶어놓은 책일까. 사실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성서에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가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현대에서도 논란을 일으킬 만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또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교양>은 이런 성서를 '인문학의 보고'라 칭한다. 모순투성이로 수많은 논쟁거리를 선사하지만, 그만큼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한 사람에 의해서 쓰인 것이 아닌 수 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쓰였기 때문에, 도서관과도 같은 지식이 쌓여 있다. 이 책을 통해 성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큰 재미일 듯. 



<에덴 추적자들>-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

2013년 9월, 416쪽, 22000원, 브룩 윌렌스키 랜포드 지음, 김소정 옮김, 푸른지식 펴냄


<에덴 추적자들> ⓒ푸른지식

'에덴'이라 함은 기독교 구약 성경에 나오는 지상 낙원이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추방당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과연 에덴은 실제로 존재했는가? 왠지 과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에덴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에덴 추적자들>는 그 14명의 추적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신학자, 대학교수, 의사 , 건축가, 과학자, 고고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 종교학자 등이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에덴을 찾으려 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에덴을 찾으러 가는 그 흥미진진한 탐험의 과정. 그리고 그들은 왜 에덴을 찾으려 하는가? 


사실 과학과 종교는 양립하기 힘들다. 창조론과 진화론(무신론)이 끊임없이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일면 과학적, 즉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이 창조론의 대표 심볼인 에덴을 찾아나서고 있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에덴 추적자들은 실제로 에덴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읽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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