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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킹스 스피치>


역사상 유명하다고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몰랐다. '말더듬이' 왕의 진심을 다한 국민으로의 연설을. ⓒ(주)화앤담이엔티



허를 찔렸다. '말더듬이'라는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상태가 이리도 긴장감을 유발할 줄이야. 자신이 말더듬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극히 중요한 연설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하다니.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한가. '이게 뭐라고 이리도 떨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짧지만 강렬한 시작 장면에서 느낀 감정들이다.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이자 전임 국왕 조지 6세의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겨 감동을 자아내고자 했는데, 제대로 성공시키며 감격을 주었다. 우린 그 감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말더듬이 왕 조지 6세의 진심을 다한 연설 하나만으로. 


조지 5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8세는 역사상 유명한 스캔들을 일으키며 하야하고 동생 조지 6세(콜린 퍼스 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생각지도 못한 왕 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가 너무 부담스러운 조지 6세, 특히 라디오야말로 왕 노릇의 절대적 기반이 된 시대에 '말더듬이'로서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너무 높다.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 분)로부터 치료를 받아오긴 했지만, 큰 진전이 없는 것 같기도 했거니와 기상천외한 치료 방법에 기가 질려 오다가다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조지 5세가 돌아가셨을 때나 형 에드워드 8세가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줬을 때 심리적 위기가 찾아와 관계가 틀어지지만, 로그에 대한 믿음으로 계속해서 찾아가는 조지 6세다.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일회용 영화


정말 잘 만든 영화다. 더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일회용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주)화앤담이엔티



흔히 무난하고 무탈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를 '웰메이드 영화'라고 하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참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든다. 드라마 요소가 적절히 배합된 실화를 바탕으로 꼼꼼히 손 본 듯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프로페셔널하고 충실하게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며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 영화에서 그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와 색채를 최대한 배제한 듯한 감독, 독특하다기보다 정형화된 안정감이 인상적인 장면 미장센까지, 모두가 영화만을 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느낌이다. 


결과는 흥행과 비평 양면의 완벽한 대박. 단도직입적으로,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사실상 여주가 없는 영화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다.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4억 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제작비 대비 26배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엘리자베스 2세도 극찬을 보냈다고 하니, 누가 보아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이면 족할 그런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겠다.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보면서 이야기와 숨겨진 이면을 확대재생산하며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를 보는 행위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좋은 영화임에도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굳이 찾아보라면, 실제와 영화 속 이야기를 비교해 보는 정도? 하지만 그건 결코 영화가 중심이 될 순 없겠다. 영화의 주요 모토인 조지 6세의 말더듬이 원인과 치료 과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그것 또한 의미는 있겠지만 영화가 중심이 될 순 없겠다. 여러모로 <킹스 스피치>는 정말 잘 만든 일회용 영화다. 그렇다고 킬링타임용은 아니다. 


 돌리지 않고 정면만 바라본 선택


이 영화가 가장 잘 한 점이 바로 조지 6세와 라이오넬 로그다. 이 두 사람에 방점을 찍고 다른 곳을 보지 않았다. ⓒ(주)화앤담이엔티



이야기가 산으로 갈 만한 요소들이 도처에 깔렸다. '왕의 연설'이라는 하나의 극점을 향해 치달렸으니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눈을 돌렸다면 영화의 만듦새는 여지 없이 흐트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유혹이 꽤 강했을 텐데, 그 요소들이 꽤 재밌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시대극이니만큼 조금만 건드려도 봇물처럼 뿜어져 나올 게 아닌가. 그것도 현존하는 영국 여왕의 직계 선대에 관한 이야기이니.


완전히 바뀐 세상에 대처하는 왕실의 모습, 에드워드 8세의 세기의 스캔들, 스탠리 볼드윈이나 네빌 체임벌린이나 윈스턴 처칠과 같은 역사적 인물,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황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산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꿋꿋이 한 길을 걸어간다. 조지 6세의 말더듬이 치료, 그리고 라이오넬 로그.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 않은 선택, 필자를 포함해 약간의 불만이라도 갖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다. 너무 한 개인에 천착해 지극한 목적 지향이 된 게 아닌가. 그리하여 대작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음에도 소품의 면모를 띠게 된 게 아닌가. 


영화는 온몸으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치밀하고 꼼꼼한 각본은 결코 그 부분들을 간과하지 않는다. 한 장면, 한 표정, 한 마디가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와 닿아 꽂히는 것이다. 조주연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을 잘 살펴야 한다. 어느 영화인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겠냐만, 이 영화는 그 강도가 조금 더 쎄다고 하겠다. 


영화 자체가 가진 압도적 힘


비록 일회용 영화라곤 하지만,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이 엄청나서 계속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재와 주제가 가진 힘. ⓒ(주)화앤담이엔티



<킹스 스피치>는 계속해서 다시 보며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는 대신, 영화 자체가 가진 힘 때문에 종종 다시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와 비슷하다고 할까. 이 영화로 지도자의 덕목을 엿볼 수도 있고, 믿음이란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으며, 치료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이 영화가 채택한 소재와 주제가 갖는 힘이 엄청나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이 영화가 문득 떠오르는 이유다. 다름 아닌 '지도자의 덕목'이다. '조지 6세가 로그와 더불어 믿음과 끈기로 말더듬이 장애를 극복하는 휴먼 스토리'라는 큰 이야기 이면에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것들이다. 그것들이 이 영화를 찾게 만든 이유일 테다. 


조지 6세, 그는 어렸을 때 강압적인 아버지로부터 '교정'을 당했다고 한다. 안짱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부목을 착용했고 왼손잡이였던 그는 오른손잡이로 교정해야 했다. 또 유모의 방치로 위염을 앓기도 했다고. 그 때문에 말을 더듬었는지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왕이 되기에는 힘든 겉모양(?)을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치열한 고민과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조금 더 국민에게 다가 갔던 것이다. 오히려 콤플렉스가 '왕'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위압감과 오만함을 털어내주었다. 


언어 치료사 로그의 존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학위도 없고 당연히 정식 언어 치료사라는 타이틀도 없는 로그를 실력 하나로 뽑아 가까이 하는 대범함을 지닌 조지 6세. 그는 지극히 자신의 진심을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기 위해 치료를 받았다. 로그는 그의 말더듬이를 치료하려고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심리를 들여다보며 '안'부터 치료하고자 했다. 말더듬 장애의 근원을 찾는 게 맞다고 본 것이다. 고로 여기서 부각되는 건 '목소리'겠지만, 중요한 건 '진심'이겠다. 목소리는 진심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조지 6세의 진심은 무엇일까. 


"왕은 국민을 대변하기 때문에 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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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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