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경성의 건축가들>


<경성의 건축가들> 표지 ⓒ루아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현재와 과거가 멋지게 어우러진 건축물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이다. 정조의 효성과 개혁 의지가 담긴, 생활 공간으로서의 읍성과 전쟁 대비 공간으로서의 산성 복합 도시이기도 한 화성은, 전통이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 서양의 도시 개념을 얹힌 완벽함을 자랑한다. 


서울 한양도성의 '사대문'은 또 다른 완벽함을 지녔다. 조선 건국 당시 인의예지의 유교 이념을 고스란히 입혔다.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 그것인데,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고 보호할 자신감이 엿보인다. 거기엔 어떤 의심도 없고 어떤 반감도 없다. 어떤 혼란도 없을 시대 가치의 구현이겠다. 


수원 화성과 서울 사대문이 이처럼 나름의 완벽함을 자랑하는 건, 시대의 굳건함과 건축주 또는 건축가의 굳건함 덕분이리라. 새로운 시대 조선의 시작, 조선 6백 년간 가장 완벽한 왕이었을 정조. 하지만 그런 시대가 영원할 순 없고, 그런 사람이 언제까지고 있을 순 없고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경성의 건축가들>(루아크)은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없고 의심만 있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따라 돈에 따라 사람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완벽한 것에 눈이 가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것에 눈이 가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사물이 아닌 사연으로 바라보는 건축물


책을 통해 소개되는 한국의 1세대 근대건축가들, 그들은 많은 수가 1916년 일제가 설립한 경성공업전문학교를 나와 총독부 산하 설계조직에 취직했다. 하지만 조선인으로서의 차별은 당연했던 바, 1920년 회사령이 철폐된 이후엔 조선인 건축주를 만나 독자적으로 설계를 하고자 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차별이 아니라, 건축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이다. 그들은 적어도 배를 곯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친일'의 냄새가 나야 할 텐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건축가 자체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기술가였기 때문이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저자는 그 지점에 주목한다. 그들도 당시 독립운동이나 친일이 아닌 무수한 회색지대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타협과 저항 사이에서 갈등하고 싸우고 변화하고 좌절했다고 말한다. 


최초이자 최고의 건축가라 일컬어지는 박길룡, 건축으로 저항했던 강윤, 천재 친일파 이천승, 우리말 건축용어의 대부 장기인,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외국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와 윌리엄 보리스 등 13명의 건축과 삶은 신산하고 안타깝고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그 시대의 그들에게 '이해'의 눈길이 간다. 


여기에서 '이해'란 최소한 친일을 향한 것은 되지 못한다. 회색지대에 있던, 타협과 저항 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심정과 상황 그 자체에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그건 이 건축가들의 건축물이 사물이 아닌 사연으로 비춰야 가능할 듯하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고작 건물 한 채인 그 이면의 사연이. 


경성제국 대학 본관이었던 대학로의 예술의 집, 미쓰코시백화점이었던 신세계백화점, 경교장이었던 전시관, 시민회관 자리에 들어선 세종문화회관, 조선은행 본점이었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이왕가미술관이었던 덕수궁 현대미술관, 명치좌였던 명동예술극장... 이중 최소한 두세 건물은 우리가 익히 봐서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또한 많은 근대 건축가들이 전통 가옥을 비판하며 서양 가옥을 위시한 건축 양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 서양 양식이라는 게 전부라면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일제를 통해 들어온 것이 대부분, '서양 따라하기'의 일제를 다시 따라했으니 저자의 말마따라 'B급'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게 그 시대 건축가들의 숙명이었던 것을, 직업소명에서든 시대소명에서든 이쪽에도 저쪽에도 설 수 없었던 건축가들의 생존 방법이었던 것을. 


천재 시인 이상의 정체


무엇보다 새롭게 다가오는 건 천재 시인 이상의 정체(?)이다.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총독부 설계조직에 취직해서 일했던 건축 재원이다. 다만 그는 총독부에 근무하는 조선인 건축가들이 퇴근 후 건축 부업을 할 때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건축가들이 근대건축물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을 완성했을 때 첫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시를 발표하고 그림으로 전람회에서 입선을 한다. 


이상은 1933년 스물네 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총독부 건축기수 자리에서 사직했는데, 이때까지 그의 삶은 문학보다 건축에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4년 동안 건축잡지가 아닌 대중신문으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하는데, 그야말로 '이단아'로 극과 극의 평을 받는다. 


저자는 건축가로서 아쉬워한다. 그가 계속 건축을 하며 독자적인 설계를 하고 작품을 남겼다면 어땠을지 하고 말이다. 저자는 그랬다면 당대 건축가들이 인식했던 물질문명의 근대를 넘어서는 건축이 나왔을지 모를 거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이상만이 표현하고 구현해낼 수 있는 어떤 것이 건축으로 실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당연하게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이상을 두고 문학가 김기림은 한국문학이 50년은 후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가장 완벽한 근대 시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문학성의 기반엔 다른 무엇도 아닌 '건축'이 있었다. 그를 '경성의 건축가들' 중 하나로 당당히 올려놓은 저자의 패기와, 문학가 이상이 아닌 건축가 이상의 삶을 끌어올린 저자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건축가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건축물과 이론, 생각, 교재 등의 흔적은 남아 있다. 이름도 모습도 고스란히, 이름만 또는 모습만 고스란히, 아니면 터라도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것들은 단지 그것들로만 남아 있지 않을 거다. 우리는 그것들로 말미암아 사람을 사회를 시대를 역사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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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라우더 댄 밤즈>


'폭탄보다 거대한' 게 과연 무얼까?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라, 충격일까 슬픔일까 둘 다일까. 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린나래미디어


투철한 종군 사진 작가 이자벨, 그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이다. 남편 진은 그녀의 3주기에 맞춰 기념 전시를 열기로 한다.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큰아들 조나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진과 작은 아들 콘래드가 함께 사는 집,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어색하기보다 서먹하고, 서먹하기보다 반목이 존재한다. 이자벨이 죽기 전에도 그랬을까, 이자벨이 죽고 나서일까. 


한편, 이자벨의 동료였던 리차드는 이자벨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죽음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말한다. 그게 도리에 맞거니와 이자벨도 그걸 원했을 거라면서. 조나는 알고 있지만 콘래드는 아직 모르는 그 비밀을, 진은 말하고자 하고 조나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그 와중에 조나는 엄마에 대한 진짜 비밀을 알게 되는데...


영화 <라우더 댄 밤즈>는 북유럽 태생답게 건조하고 싸늘하고 잔잔한 느낌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무채색의 예리한 칼날이 도처에 있어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듯하다. 제목부터가 '폭탄보다 거대한'이 아닌가. 이 제목이 수식하는 단어는, 그 행간에 감춰진 단어는 아마도 '충격'보다는 '슬픔'이 아닐까 예측해본다. 강렬한 제목과 무미건조해 보이는 분위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이자벨, 진, 조나, 콘래드. 이 가족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자, 이 영화의 모든 것일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를 지닌 '문제적 가족'


이 문제적 가족의 균열은 종군 사진 작가 이자벨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직업 특성 상 집에는 거의 있지 못하고 세계 각지의 위험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지 않겠나. 남편도 남편이거니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문제다. 특히 작은 아들은 한창 학창시절을 보내며 사춘기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때인데. 더구나 위험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치기 일쑤이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군 사진 작가'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자벨, 그녀의 죽음. 그녀의 살아생전에도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가족은 문제가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문제들. ⓒ그린나래미디어



그 모든 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가슴앓이를 하는 이는 다름 아닌 남편 진. 그는 '가족'을 위해 연기자 생활을 접었기에 그녀를 보는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 가족을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것이나 다름 없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아주 복잡한 심정이다. 걱정도 되면서 화도 나는, 그녀에 대한 걱정이 곧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자신을 선택과 현재를 보며 그녀의 선택과 현재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소용돌이치는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큰 아들 조나는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러며 엄마 살아생전 아버지와의 이혼을 중용하기도 했던,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무관심보다는 적대감에 가까운, 대면대면한 사이랄까. 한편 그는 이제 갓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그래서 어느 때보다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지만,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내를 자꾸만 피하게 되고, 오히려 옛 연인에게 더 마음이, 그런 자신이 괴롭다. 그 와중에 엄마의 살아생전 비밀을 알게 되니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 그렇지만 엄마를 그렇게 기억하긴 싫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아들 콘래드는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모른다. 살아생전 비밀도 당연히 모른다. 그저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 품이 그리울 뿐이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지만 쳐다보기도 말을 섞기도 싫다. 사춘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엄마가 없기에 더 삐뚫어진 것 같다. 자꾸 대화를 위한 대화를 원하는 아버지가 더 싫어진다. 대신 오랜만에 돌아온 형과 자주 대화한다. 한편 그는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다. 좀 노는 아이인 것 같아 새차게 다다갈 순 없지만 용기를 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이 가족의 문제는 평범한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다 사연이 있을 테니까, 그 사연의 크기와 종류가 다를 뿐이다. ⓒ그린나래미디어



이 가족은 사실 그리 문제적이지는 않다. 평범한 가족일 뿐이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는 그런 가족, 즉 대다수 가족에게서 보이는 문제들을 이들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엄마의 직업이 남달랐었다는 것. 이제는 엄마가 없다는 것. 엄마의 죽음이 특별했다는 것. 무엇보다, 문제를 풀 겨를 없이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엄마가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남은 이들끼리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 3년이나 풀지 못하고 지속되어 왔다는 것. 


가족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뭔가 있어 보인다. 구성, 분위기,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포스가 그동안 많이 접해왔던 할리우드 영화와는 너무 다르다. 치밀한 복선과 꽉 찬 서사, 물 흐르는 듯한 전개, 확실한 기승전결을 이 영화에선 찾기 힘들다. 그래서 자칫 겉만 있어 보이려고 하는 영화로 비치기 십상이다. 별 것 아닌 내용을, 쉽게 보지 못한 것들로 만들어, 신선함만 부여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가족이 지닌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것 같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들의 사적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남은 가족들이 대통합을 이루지도 못한 것은 물론이다. 3년 만에 만나 한순간 대통합을 이룬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오히려 엄마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어 아픔과 슬픔과 당혹감만 커졌을 뿐인 것 같다. 


문제의 해결보다 시급한 건, 문제의 인식. 그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아는 것. 그 존재 자체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 이상은 자연스러운 것. ⓒ그린나래미디어



'그런데'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런데 가족이 무엇인가. 가족 구성원들 서로서로의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해결하는 것이 목적인가? 개개인의 사적 문제를 일일이 알고 같이 고민하며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만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인가? 우린 사실 가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큰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작은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며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지, 아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어떤 생각으로 가족들을 대하게 되는지,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연기자를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다.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먼저 아는 것이다. 공유하는 것이다. 해결하려고 달려들기 전에 일단 알아야 한다. 뭐가 문제야?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네. 자, 해결됐지? 그럼 이제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족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부탁해. 대다수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역할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역할을 등한시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은 지옥이 될 수 있다. 


거기엔 분명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해야할 것들이 있다. 그건 그리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가족을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도우려 하고, 조금 더 생각하면 된다. 집에 가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푹 쉬고 싶고 가족들의 품 안에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싶다. 더불어 가족들을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 딱 그런 마음을 가족들 모두가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가족들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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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smilal.tistory.com/768


정작 필요할 때 곁에 있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을 때도 있고, 필요할 때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죠. 아마 필요한 걸 아는데 일부러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결론은 필요할 때 곁에 있지 못했다는 것이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서로 많은 걸 이해하고 많은 걸 배려한다지만 이럴 때는 그러기 힘들 거예요. 서로 마음이 아파요. 곁에 있어주지 못한 거에 대해서, 왜 곁에 있어주지 못했냐에 대해서.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요. 뼈에 사무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았죠. 정말 나쁜 놈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 여자친구는 참으로 당당하고 강해요. 하지만 그만큼 여리고 약하죠. 그런 여자분이 많죠? 그런 아이인데, 언젠가 고시원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저는 바래다 주고 집에 왔죠. 새벽 2시쯤이었어요.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너무 무섭다고. 옆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 같다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와줄 수 없냐고 그랬어요. 그런데 바로 안 와도 된다고 해요. 저는 비몽사몽에 그녀의 말을 대충 들으며 제 마음대로 해석한 것 같아요.


'와도 되고 안 와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되겠다'


천추의 한이 되는 생각이자 완전히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그녀는 무섭기 그지 없지만, 새벽에 저를 불러내기 너무 미안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거죠. 저는 그걸 알아채지 못한 거고요. 아니, 계산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그 이후 제 스스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정도도 못해주는 게 무슨 남자친구인가. 스스로 반문했죠. 과연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는 한 건가. 


얼마 전에는 이랬어요. 그녀가 와달라고 만나자고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계속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속이 안 좋고, 몸과 마음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고 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몸이 안 좋으면 어서어서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그런 생각을 갖고 그녀한테 집에 어서 가라고 말했어요. 저는 회사 사람들과 꼭 필요하지 않은 회식과 회의를 밤늦게까지 했죠. 그날 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만나서 위로해주라는 뜻이었다고 해요.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미안했나 봐요. 돌려서 뜻을 표현한 걸 제가 알아 듣지 못하고 곡해한 거죠. 


저희가 참 오래된 연인인데, 저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줄 걸 강하게 요청할 수는 없어요. 역지사지로, 저라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상대방을 그만큼 아끼는 마음을 갖고 있는 거죠... 괜히 시간 뺏는 것 같고, 귀찮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미안하고... 저야말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정작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요. 우리 소통을 잘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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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당신의 말>



<당신의 말> ⓒ넥서스Books



스마트폰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활동이 왜 필요한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그건 말 그대로 '필요성' 때문인 것 같다. 시대가 점점 최첨단으로 갈수록 인간이 직접 해야 할 일은 줄어든다. 예를 들어 모르는 게 있으면 굳이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 없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는 인간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학교나 기업 등에서는 오히려 평균적으로 가장 떨어지는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자 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통해 글쓰기 능력을, 면접을 통해 말하기와 듣기 능력을, 적성 검사 등을 통해 읽기 능력을 평가한다. 그렇지만 이 능력들은 공부하거나 일을 할 때 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이 중에서도 아마 제일 떨어지는 능력이 글쓰기 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역설적으로 그 만큼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고. 또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능력이 말하기 일 것이다. 면접이 합격 여부를 거의 좌지우지한다고 하지 않는가?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하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능력이 떨어짐을 의미하기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진짜 어려운 건 바로 '말하기'


그렇다. 사실 우리는 매일 매일 엄청난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진짜 어려운 건 바로 '말하기'다. 잘 하지 않아서 어렵고 못하는 글쓰기와는 달리, 말하기는 너무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옥석을 가리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책 <당신의 말>(넥서스BOOKS)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말이 심장까지 가는 길이다'. 


그런데 지금 나와 있는 많은 말하기 책은 하나 같이 자기계발에 관련되어 있다. 굉장히 실용적인 의미에서 면접, 토론, 연설, 프리젠테이션과 같은 상황에서의 말하기이다. 이 책 <당신의 말> 또한 이런 상황에서의 말하기에 치중되어 있다. 8명의 저자가 8장의 파트를 맡아서 각자 전공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워낙 많은 저자들이 참여하다 보니, 주제를 떠나 콘텐츠 자체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좋은 글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글이 있다는 뜻이다. 자기계발 분야의 책인 만큼, 굉장히 자세하게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관념적인 글은 이 책에서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4장부터 8장까지가 책의 성격에 맞는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상당히 비실용적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1장부터 3장까지는 제목에 '마음', '불순물', '매력'이 들어가 있고 4장부터 8장까지는 제목에 '원하는 것', '면접', '토론', '청중', '말솜씨'가 들어가 있다. 4장부터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실용적인 말하기의 핵심이 들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실용적인 글쓰기나 말하기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지만, 적어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것이니 눈높이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특정한 상황이 아닌 일상 생활의 말하기


이 중에서도 특정한 상황이 아닌 일상 생활에서도 두루두루 쓰일 수 있는 장은 4장과 8장 정도가 될 것이다. 면접, 토론, 프리젠테이션을 항상 하지는 않으니까. 대신 말솜씨를 키워 원하는 것을 얻는 건 매일 매일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반응을 얻을까' 고민한다는 것이다. 먼저 소통하고 이해한 뒤 제안을 한다. 즉, 나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야 한다. 이 장에서 시종일관 강조하는 게 바로 '상대방', '청중', '청자'이다. 내가 아닌 내 말을 듣는 사람.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걸 먼저 알아채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어떻게 잘 말할 수 있을까? 왠지 갑과 을의 대화인 것 같아 씁쓸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답인 걸 어찌하랴?


8장에서 말하는 말솜씨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잘 듣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말을 함에 있어 힘을 빼는 것.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흔히 듣기 하면 수동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듣기야 말로 오히려 민첩하게 상대의 말에 반응해야 하는 전략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이라 말한다. 발상의 전환이지만, 사실적인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를 말함에 있어 저자는 모든 사례를 온통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 놨다. 어디를 가서 처음 보는 누군가와 말하게 되었을 때, 느긋하게 말하고 말에 힘을 빼고 말하고 있는 척 말하지 말고.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만큼 재미도 있고 책의 성격에도 맞는다. 


상당히 관념적인 1장으로 책을 시작해 굉장히 실용적인 8장으로 책을 끝낸 걸 보니, 일부러 편집을 이렇게 해 놓은 게 와 닿는다. 무작정 실용적인 말하기로 책을 뒤덮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였을 것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말 한 마디의 중요성에 대한 텍스트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구설수'로 대표 되는 '말'에 대한 논란이 끊임 없이 TV를 통해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주워 담을 수 없는 결정적 말 한 마디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그건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아니 사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도 들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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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동녘라이프

사랑은 참 힘들다. 사랑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나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 건지, 행복하지 않은 사랑을 계속 해야 하는 건지, 그럼에도 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은지, 왜 웃음보다 울음이 기쁨보다 슬픔이 자주 찾아오는지... 


사랑은 참 어렵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그 이론은 단 한 사람한테 해당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만큼 그들이 하는 사랑도 모두 다 다르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겠지만 완벽한 정답은 없다. 사랑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 나를 버릴 때 나는 기꺼이 삶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을 자신 만의 콘텐츠로 형상화 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지만, 실상은 사랑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 가장 적확한 이론이 담겨져 있는 책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 사랑에 대한 이론이 없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삶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분명 비슷하게라도 만들어냈을 것이 분명하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동녘라이프)는 나온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애의 교과서이자 사랑의 지침서임에 분명하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책 중에서 사랑에 대해 가장 적확한 이론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이 조명하는 건 남녀 간의 차이이다. 


이 책이 시종일관 천명하는 건 남녀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여자는 '이해'와 '관심'을, 남자는 '인정'과 '격려'를 원한다. 이는 얼핏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엄청나다 못해 거의 모든 걸 가르는 큰 차이이다. 


남녀 간의 차이를 조명하다


이건 실제 연인·부부관계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바인데,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문제를 이야기할 때 남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여자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차분히 들어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원할 뿐이다. 


또 다른 자주 반복되는 상황을 보면, 여자는 자신이 받았으면 하는 이해와 관심을 남자에게 쏟아붓곤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려 하며 염려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자칫 남자를 짜증스럽게 하기 쉽다. 여자로부터 조종 당하고 느끼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반면 남자는 여자가 상심해 있을 때 문제의 중요성을 축소화시켜 '그까짓 것' 처럼 보이게끔 해 떨쳐버리도록 도와주고자 하거나, 자신이 그러는 것처럼 여자를 방치시킴으로서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여자로 하여금 무시 당하고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 


위의 상황들은 모두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들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의 본능에 가까운 생각이나 행동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알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이해해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차이를 끊임없이 각인 시키며, 그것을 기반으로 해 일종의 컨설팅을 해준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저자가 컨설팅 하거나 저자 본인의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 현실적이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 한다. 그리하여 이론과 방법, 사례와 실천의 사 박자가 두루 갖추어진 교과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연애의 교과서'를 넘어선 '관계의 교과서'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을 한 적이 무수히 많다. 이 정도로 많은 횟수는 근래 들어 처음 있을 정도이다. 아니, 그 어떤 책을 읽을 때에도 이토록 진실된 반응을 보인 적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이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연애의 교과서'라는 다소 고루하고 과분한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손색이 없다. 사실은 타이틀이 잘못 붙어 있는 것 같다. 다 읽고 느끼는 바는 '관계의 교과서'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겠다 하는 것이다. 물론 남자와 여자에 대한 특징을 연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통용되는 바이다. 


이 책은 남자가 남자를 또는 여자를, 반대로 여자가 여자를 또는 남자를 대할 때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 속속들이 알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연애'에만 천착되어 있었다면, 단연코 이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봐두어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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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디태치먼트>





미국에서 2011년에 개봉해 이미 3년이나 지난 작품이자 청소년들의 청소년들에 의한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이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작품이지만, 시기에 상관없이 통용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청소년보다 어른들이 보아야 할 영화라고 생각된다. 영화는 <디태치먼트>. 우리나라 말로 '무심함' '거리를 둠'을 뜻한다. 


현실과 흡사한 영화 속 모습


헨리(애드리안 브로드 분)는 뉴욕 외곽에 위치한 한 학교의 대리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알고 보니 그 이유가 그 구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학교 때문이었다. 그 학교는 소위 문제아들의 집합소였고, 그 문제아들의 상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것이었다. 단적인 예로, 어떤 학생이 선생님한테 협박을 하는데 흑인 갱단을 불러서 처참하게 강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상당수 선생님들이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고, 남아 있는 선생님들의 상태는 가히 좋지 않았다. 헨리는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이 영화의 시작 포인트는 학생들의 진저리 처지는 모습과 헨리의 대처법이다. 


헨리는 단 한 가지의 규칙을 말한다. "여기 있기 싫으면 오지마." 그리고 역시나 학생들은 헨리에게 험한 협박을 가하려 한다. 이에 헨리는 무심한듯 대처하며 이해한다고 조용하게 말한다. 카리스마 때문일까? 애정 때문일까? 아이들은 헨리에게 마음을 연듯 보인다. 





영화가 보여주는 초반 모습은 현실과 흡사하다. 현실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학생일 때를 생각해보면, 학생이 선생님에게 단순히 반항하는 행동을 넘어서서 욕설과 함께 협박까지 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선생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도 거리를 두고 무심하게 학생들을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헨리도 그런 마음가짐인 것처럼 보인다. 


헨리가 보여주는 소통법


하지만 헨리에게는 인생을 관통하는 무시무시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그 트라우마의 원인은 그의 할아버지인데, 기관에 맡겨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할아버지를 통제하지 못해 헨리를 불러서 처리하곤 하는데, 이에 헨리는 참지 못해 관리원에게 엄청난 욕설을 퍼붓곤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헨리는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훔치곤 한다.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고 못났고 미안하고 처량하고 억울하기 때문일까?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소녀는 집 없이 떠돌며 몸을 팔아 연명하고 있었다. 소녀는 무작정 헨리에게 들이댄다. 그리고 다음에 또 한 번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잠자리와 먹을 거리를 제공한다. 그럴 때도 헨리는 역시나 무심한듯 조용하게 대처한다. 





헨리의 무심한듯 조용하게 대처하는 소통법은 무엇을 보여줄까? 그의 소통에는 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접근하지 않는다. 위나 아래에서 바라보지 않고 수평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그녀)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은 채, 그 자체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굉장히 어렵다. 자신이 상처 받지 않을 강한 중심이 있어야 하고, 임기응변이 있어야 하며, 무심한듯 거리를 두면서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모순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교육, 소통, 삶에 대한 이야기


헨리는 같이 살게 된 소녀 에리카에게 에이즈 검사를 시키며 전에 없는 관심을 쏟고 에리카는 헨리에게 아침 저녁을 밥을 해주며 보답한다. 또한 이들은 함께 데이트도 즐기고 서로 선물도 챙겨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헨리는 에리카에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털어 놓는다. 헨리는 7살 때 눈 앞에서 자살한 엄마를 발견한다. 그리고 엄마가 자살한 이유는 바로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한편 헨리가 얼마간의 관심을 보였던 한 여학생 메디리스가 어느 날 헨리에게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은 텅 빈 교실에 있는 텅 빈 얼굴의 헨리 사진이었다. 이를 칭찬하는 헨리와 오열하며 자신을 붙잡아 주라는 메드리스. 하지만 헨리는 누구에게서나 거리를 두고 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받아줄 수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헨리는 에리카조차 보호 시설로 떠나보내게 된다. 과연 에리카와 메드리스는 어떻게 될까? 헨리는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지만, 비극으로 훨씬 더 치우쳐 있다. 거대한 비극에서 헨리가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그 자신조차 엄청난 트라우마로 인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니 말이다. 감독은 지루할 만큼 플래시 백을 자주 등장 시켜 그의 트라우마를 부각 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그를 그리워하고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그 이후 나타나는 비극과 그에 대한 대처 또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영화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이고, 소통에 대한 이야기이며,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분명 그러한데, 마지막 장면의 스산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헨리는 텅 비고 어질러진 교실에서 홀로 

애드거 앨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의 일부분을 읊는다. 애수에 잠긴듯한 어셔가는 텅 빈 교실일 테고, 구역질 나는 마음의 냉정함은 헨리의 무심한 마음일 테다. 어쩌다가 교실이 견뎌내기 어려운 우울함이 영혼을 잠식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일까...


마침내 저녁 어스름이 나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때

애수에 잠긴듯한 어셔가가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눈에 얼핏 보았을 뿐인데도

견뎌내기 어려운 우울함이 내 영혼을 잠식하는 듯 느껴졌다. 

나는 그 지역의 단순한 풍경을 둘러보았다. 

성벽과 하얗게 죽어버린 나무 등치와 저항할 수 없는 영혼의 짓누름을, 

거기에는 영혼을 침잠시키고 마음을 병들게 하는 구역질 나는 마음의 냉정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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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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