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창동 감독의 <버닝>


영화 <버닝>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한국이 자랑스럽게 전 세계에 내놓을 몇 안 되는 영화감독 중 하나인 이창동, 그의 영화는 탄탄하다. 90년대 초반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 이미 주목받는 소설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던 바,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이 한껏 발휘된 케이스라고 하겠다. 한국 시인계의 총아였던 유하 감독, 영화계와 소설계를 오가는 천명관 작가가 생각난다. 


80년대 초중반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이창동, 그는 영화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주로 해왔던 작업은, 영화로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빈틈 없는 서사와 대표성을 짙게 띠는 캐릭터와 함께. 


그의 8년만의 신작 <버닝>은 그동안의 이창동 영화와 다른 듯하다. 가히 그 대표성 짙게 띠는 캐릭터들이 극을 주도하고 이면을 들여다보는 건 여전하지만, 빈틈 없는 서사를 보여주는 대신 문학적 메타포와 영화적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보는 사람이 답을 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종수, 해미, 그리고 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다 군대를 다녀와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복학을 준비 중인 소설가 지망생 종수(유아인 분)는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를 만난다. 카드 빛을 갚지 못해 가출해 행사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전하는 해미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려 한다. 그러며 종수에게 고양이를 부탁하는 것이다.


한편, 종수는 아버지한테 일이 생겨 북한이 눈앞에 잡힐듯 보이는 파주 본가로 이사한다. 여행이 오래 걸릴 것 같았던 해미는 문제가 생겨 금방 돌아온다. 근데 혼자가 아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부자인 것만은 확실한 벤(스티븐 연 분)과 함께다. 그와 그녀는 나이로비 공항에서 며칠간 함께 갇혀 있던 동지란다. 종수는 해미와 어릴 적 동네 친구였고 얼마 전에는 두 번째 만남에 섹스를 했던 사이란 말이다. 


이후 세 명은 벤의 집에서, 종수의 집에서 모임 아닌 모임을 가진다. 종수의 뜻은 반영되지 않은 모임이었고, 종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말과 행동이 오갔던 모임이었다. 그 두 번의 모임 이후 해미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종수는 벤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무엇을 감지하고 그를 추적하는 한편 그가 호언장담한 말을 추적하는데...


하루키적 메타포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저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했다. 단순히 그래서일까, 감독이 더더욱 의도한 걸까, 영화 전체가 '하루키적'이다. 영화의 장면장면이 고스란히 하루키만의 묘사와 대사로 옮겨지고, 영화 전체가 고스란히 하루키만의 소설로 옮겨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보다 더 완벽하게 소설을 영화로 옮기기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마냥 즐기기, 있는 그대로 즐기기 쉽지 않은 영화이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볼 수 없고 그렇게 보아서도 안 되는 영화이다. 이창동 감독이 제대로 벼른 것이다. 하루키 특유의 허세를 수직 또는 수평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오그라들어 제대로 들어주기가 민망할 정도의 대사들이 그대로 굉장히 중요한 메타포다. 


종수, 해미, 벤의 세 주인공 자체가 메타포이다. 소설가 지망생임에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비(非) 메타포적인 삶을 영위하는 종수는 눈앞만 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을, 번 돈으로 빛을 갚지 않고 메타포적인 삶의 의미를 찾아 아프리카를 찾는 해미는 길을 잃었거나 다른 길을 찾거나 길을 이탈하고 싶은 청춘을, 무위도식의 삶을 살아가는 벤은 끝에 다다른 자가 느끼는 허무함을 표출하는 청춘을 의미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 어떤 청춘도 불안하고 불만 있고 불행하다. 평범함이 되어버린 밑바닥은 햇빛이 작렬하는 위를 바라보고 동경하는 것이, 더 이상 내려갈 길이 없어 방황하는 이는 도무지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디디기 힘든 것이, 더 이상 올라갈 길 없어 허허로운 이는 채우고 태우고를 반복하는 것이. 


무(無)에의 바람과 몸짓만


영화 <버닝>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다분히 종수의 시선이다. 겉으로 보여짐은 종수 아닌 해미와 벤이 더 많을지 모르지만, 화자이자 주체는 종수인 것이다. 종수는 가장 평범에 가깝다. 그저 묵묵히 일상을 영위하며 앞을 고민하고 종종 뒤를 돌아본다. 그에게 벤과 해미는 앞과 뒤이고, 미래와 과거이며, 동경의 대상과 부러움의 대상인가. 무엇보다 소설가 지망생인 그에게 그들은 눈앞에 생생히 살아숨쉬는 소설적 메타포가 아닌가. 


이 셋을 두고 혹자는 연대의 희망이 보인다 하였고 혹자는 분노가 보인다 하였다. 셋은 철저히 다른 듯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이라는 연대의 희망이? 그러하기에 따로 또 같이 불안과 불만과 불행을 태워버리듯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몸짓도, 먹고 살자는 몸부림도 사라져버린다, 의미가 없다. 불에 타 재가 되어버리고, 해가 져 어둠에 묻혀버리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그런 무(無)에의 격렬한 바람과 몸짓만이 보일 뿐이다. 


와중에 홀로 실재하고 있는 듯한 종수는 어떨까. 여기저기 들쑤시며 사라져버린 이의 행적을 찾고, 매일 새벽에 달리고 달리며 사라졌을 것같은 비닐하우스를 찾고, 이 두 증발의 매개체가 될 사람을 추적한다. 어느새 생업을 포기한 종수는 이 추적들을 통해 본인의 또 다른 실존인 소설가로서의 길을 닦는다. 추적이 먼저인지 소설가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그는 나아가는 듯 보인다. 이 모습에서 굳이 희망을 엿보는, 엿보고 싶은 이도 있을 테다. 


그건 또 다른 실재과 실존으로의 나아감인가, 해미나 벤처럼 현실 아닌 곳으로의 도피인가. 우리는 단서를 달고 있지 않은가, 자기 위로를 하고 있지 않은가. 현실이 투박하고 질척이고 두루뭉술할 때 사실은 선명하거나 희미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이다. 거기엔 분노도 희망도 연대도 자리하기 힘들다. 자칫 공허만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이 시대 청춘을 잠식하는 거대한 공허이자 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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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초록물고기>


'거장' 이창동 감독의 시작 <초록물고기>. 우리는 이 영화에서 지금으로선 기가 막힌 한석규, 송강호의 동반 출현을 볼 수 있다. ⓒ시네마 서비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1997년 2월 초에 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한 영화감독의 데뷔작, 심상치 않다. 이런 영화가 이전에 있어나 싶다. 흥행 미풍, 호평 일색이다. 제목은 <초록물고기>, 감독은 이창동. 거장의 출현을 알린다. 당시 그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1983년에 데뷔한 중견 소설가였다. 이 작품 이전에 <그 섬에 가고 싶다> 각본과 조연출을 성공리에 마치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각본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러니 초짜가 아닌 중고 신인의 데뷔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의 사건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중심엔 이창동 감독이 있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단 5편의 연출작을 남기는데,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초록물고기>부터 시작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까지, 앞의 세 편으로 이미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박하사탕>인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가 설경구일 때가 있었다. 거장의 눈썰미는 시나리오와 더불어 배우에게도 가 닿아 있는 것 같다. 설경구를 비롯해 송강호, 문소리, 정진영 등은 오로지 그의 눈썰미에 의해 뽑혀 함께 한 배우들이고 하나 같이 대배우가 되었다. 우린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와 송강호와 문성근이 함께 하는 마법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외형은 느와르, 내형은 누구나의 이야기


소시민적 이야기에서, 느와르로, 누구나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리얼리즘 진한 작품. 소설 한 편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네마 서비스



시작은 제대 귀향 기차. 막동(한석규 분)은 우연히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 미애(심혜진 분)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듯, 하지만 그녀의 스카프만 얻었을 뿐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다.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일산의 옛날 집으로 돌아온 막동, 뭐라도 해보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기술도 없다. 큰형, 작은형, 막내여동생을 찾아 다니며 회포나 풀 뿐이다. 계란장사를 하는 작은형과의 한바탕은 그에게 참으로 귀한 재산이다.


와중에 걸려온 여인의 전화, 수소문해보니 귀향 기차에서 만난 미애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이트클럽 전속 가수이자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보스 배태곤(문성근 분)의 여인이다. 배태곤의 눈에 띈 막동, 곧 그의 아래로 들어가 승승장구한다. 보스 몰래 하는 미애와의 사랑도 꽃피운다. 


그런데, 소싯적 배태곤의 보스였던 김양길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사태는 일변한다. 일대를 주름잡던 배태곤의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든 것. 급기야 배태곤은 김양길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대로 있을 배태곤이 아니다. 그는 막동에게 극비리에 중요한 임무를 떠앉기는데... 막동의 앞날은 어떨까. 


리얼리즘의 대가 이창동, 그는 소시민을 잘 그려내기로 정평이 나 있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또는 중심에 서지 못한 이를 내세워, 그로 하여금 대표성을 띨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초록물고기>는 외형은 느와르이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나의 이야기, 드라마이다. 막둥이가 살아가는 동향, 그의 가족들 모습, 그를 둘러싼 환경들이 모두 그렇다. 


조폭 영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명작


흔한 조폭 영화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삶의 지독한 아이러니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명작이다. 소시민과 재개발과 조폭. ⓒ시네마 서비스



벌써 20년이 되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도 하다. 기억 속 <초록물고기>는 같은 해 개봉해 숱한 화제를 뿌린 문제작 <넘버 3>와 비슷하다. 한석규와 송강호가 나오는 조폭 영화라서 그런지, <넘버 3>가 뇌리에 더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초록물고기>를 보기 전에, 현재 한국 배우 빅3인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을 한 영화에서 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건 <넘버 3>인데. 


그런 기대, 조폭 영화를 볼 때면 으레 가지게 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면 이게 무슨 <전원일기>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날것의 소시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막동이와 작은 형이 함께 계란차를 타고 경찰차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한창훈 소설가의 <오늘의 운세> 한 장면을 그대로 차용한 것 같은데, 장면으로 보니 정말 많이 웃겼다. 한편 한창훈 소설가가 천착하고 있는 것도 아무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이들의 '소외'이니 만큼, 그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회사 사정 상 파주와 일산 쪽을 자주 가는데, 오래전에 신도시가 들어선 그곳이지만 아직도 허허벌판이 눈에 많이 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에 나오는 배경과 완연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개발이 한창인 당시, 배태곤이 추진하는 게 다름 아닌 재개발 관련 사업. 신도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아니 피해를 볼 여지가 있는 소시민인 막둥이가 배태곤을 도와 신도 개발 사업을 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한 삶이 아닌, 삶이란 아이러니하다 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


'좋은 영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초록물고기>는 단연코 좋은 영화인 바, 이 기회에 한 번 보심이 어떨지. 당당하게 추천한다. ⓒ시네마 서비스



재개발과 소시민, 그리고 소외를 다루는 한편 정통적인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영화가 갖는 위대함이라 하겠다. 잘 빠진 느와를 한 편을 보는 것도 힘든데,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생 드라마를 엿볼 수 있다니 말이다. 와중에 제대로 된 한국형 느와르인 <달콤한 인생>이나 <비열한 거리>의 만들어진 듯한, 적어도 '내'게 피부로 와닿는 공감은 선사하지 못하는 부분을 <초록물고기>는 채워준다. 


그 중심엔 막동이라는 캐릭터가 있겠다. 배태곤이 그에게 꿈을 묻는다. 그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단다. 소박하다면 소박하지만, 가족들이 한데 모여야 한다는 점에선 요원할 수도 있겠다. 그 꿈이 소박할수록 그가 가고 있는 길은 험난해진다. 그리고 비극은 점점 다가온다. 


영화는 말한다. 사람이 허무하게 죽어 나자빠지는 느와르, 절절한 배신이 난무하는 느와르와 소박하기 그지 없는 꿈을 꾸는 소시민의 생각, 행동,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느와르는 하나의 장르가 아닌, 먹고 사는 삶에서 파생된 여러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부분을 이 영화가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기도 한다. 당대의 생생한 모습을 우린 스크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런 리얼리즘 작품에서 절절히 확인할 수 있는 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된다. 우린 알 수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이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라는 걸. 그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우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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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박하사탕> ⓒ이스트필름


1999년 어느 봄날,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야유회 중인 일행들에게 걸어간다. 알고보니, 그 남자는 동창 야유회에 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초대받지 못했다. 아무도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는 갑자기 깽판 수준의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망치려 한다. 그리고 갑자기 물 속으로 뛰어들더니 고성을 지르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윽고 남자는 철길 위에 올라가 고성을 지르기에 이른다. 역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때 나타난 기차. 점점 다가온다. 남자는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제야 동창들은 하나 둘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남자는 한국 영화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외친다. "나 돌아갈래!"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기차가 철길을 되돌아 가듯, 그의 과거로 돌아가 본다. 그의 과거는 곧 한국이 겪어온 격동의 현대사였다. 


영화 <박하사탕>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가 영문 모를 괴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자살하는 장면. 가히 충격적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추해볼 수 있는 건 "나 돌아갈래!"라는 단어이다. 그는 언제, 어디로, 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억울해서일까? 안타까워서일까? 아쉬워서일까?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보아하니, 질적으로 다른 절박함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과거를 따라가 그의 삶을 직시할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위에서 보여준 첫 테이크를 필두로 총 7 테이크로 구성되어 있다. 역연대기순이다. 


<박하사탕>의 한 장면. "나 돌아갈래!" ⓒ이스트필름


내 인생 망쳐놓은 놈들


사흘 전, 남자 김영호(설경구 분)은 비내리는 바닷가에서 총을 구입해 자살하려 한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상사의 차를 향해 총격을 가한다.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밤이 되자 그는 허름한 비닐하우스로 돌아온다. 그의 보금자리이다. 이혼으로 쫓겨난 듯 보인다. 그런데 누가 찾아온다. 남자는 그에게 일갈한다. 그가 돈 받으러 온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나, 마지막 돈 탈탈 털어가지고 이거 하나(총) 구했어. 딱 한 놈만 죽이려고. 나 혼자 죽긴 너무 너무 억울해서 딱 한 놈만 내 저승길에 동행하자. 내 인생 이렇게 망쳐 놓은 놈 중에 딱 한 놈. 그런데 말이야. 어떤 놈을 죽일까. 그것 참 고민 되더라고. 딱 한 놈 고르려니까 그게 너무 어려운거야. 내 인생 조져놓은 놈들이 너무 많아서 그 한 놈을 못 고르겠더라고."


그런 남자에게 찾아온 이는 윤순임(문소리 분)의 남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며 윤순임이 죽어가고 있다며 김영호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김영호는 박하사탕을 사서 윤순임을 보러 간다. 그들은 과거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린다. 윤순임의 남편은 김영호에게 사진기를 건네준다. 김영호는 트라우마로 인해 발을 절뚝거리며 사진기를 팔아버린다.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아직 그의 과거 여행은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의 과거가 눈물로 혹은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다


다음으로 나오는 세 개의 테이크는 그의 폭력 성향이 어떻게 기인되었는지 보여준다. 5년를 거슬러 올라간 1994년, 김영호는 여직원 한 명을 둔 어엿한 사장님이다. 뻔한 설정일지 모르나, 그는 여직원과 바람을 피며 육체적인 관계까지 갔다. 피장파장이라고, 그의 아내(김여진 분)도 역시 바람을 피고 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김영호는 그 현장을 급습하고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다. 너무나 심한 폭력이었기에, 아무래도 뭔가가 있어보인다. 역시,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경찰이었단다. 그렇다는 건 혹시? 1980년대에도 경찰이었다는 것인데. 


<박하사탕>의 한 장면. 악질 고문관 김영호. ⓒ이스트필름


아니다 다를까. 다음 테이크와 그 다음 테이크는 각각 1987년과 1984년. 김영호의 경찰 생활을 보여준다. 신혼부부지만 무뚝뚝한 김영호. 그는 경찰서에서 최악의 고문관이다. 1980년대 당시는 민주화 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때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사범들이 잡혀들어 왔다. 자의든 타의든 국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경찰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정치사범들의 자백을 받고 그 뒤를 캐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은 무지막지한 고문이었다.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낸다는 고문. 


신입 경찰 시절에 김영호는 어리숙하고 착하기만 하였다. 고문은 커녕, 선배들이 고문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지도 못하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강압에 못이겨 시작한 고문이 적성에 맞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안에 내재된 몬스터가 깨어났던 것일까? 아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의 행동이 그에게서 기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낳았다는 것이다. 그 시대라 하면, 신군부 독재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의 안에 내재된 몬스터 또한 이전의 군대에서 받았던 폭력이 누적되었던 것이다. 


김영호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으로 급파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즉 자신들이 민간인을 죽이러 간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총을 쏘며 달려간다. 그러다가 김영호는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총알에 발목이 관통당하고 만다. 너무 아파 쉬고 있는 그의 앞에 소녀가 나타난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한 분위기. 역시나 김영호는 실수로 소녀에게 총을 발사하고, 그 자리에서 소녀는 즉사한다. 김영호는 울부짖는다. 그 울음은 19년 뒤, 철길 위에서의 눈물과 겹친다. 그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바로 여기 였을 것이다. 


<박하사탕>의 한 장면. 김영호, 실수로 소녀를 죽이다. ⓒ이스트필름


시대가 낳은 괴물,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


김영호는 분명 시대가 낳은 괴물이다. 그는 본래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푸른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감성어린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 시절엔 그랬듯, 지금도 그러듯 타의로 군대에 가게 되고 타의로 다치게 되었으며 역시 타의로 한 소녀를 죽이게 되는 것이다. 그 타의란 다름 아닌 시대, 시대를 만든 이였다. 그렇지만 그가 초반에 찾아온 윤순임의 남편을 향해 일갈하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시대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개인으로부터 받음 아픔들이 그를 더욱 아프게 했으니까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악다구니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악다구니가 되어서 더욱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고. 또는 이 나라는 글러먹었어. 이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비열해져야 돼. 도덕군자 운운하다가는 언제 낙오자가 될지도 몰라. 


이 영화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대표격인 김영호를 내세워 비판하고 있는 동시에, 그들 또한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이다. 격동의 시대에서 정말 힘들게 살아온 것 다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능력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시대의 흐름을 역류해서 위대한 성취를 한 분들도 분명 계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개인의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다. 김영호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소시민인 것이다. 제목 '박하사탕'은 그런 소시민적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윤순임이 죽어갈 때 김영호가 사들고 간 '박하사탕'. 그들의 눈물. 사흘 뒤 철길 위에서의 눈물. 김영호가 정말 돌아가고 싶었던 때는 '박하사탕'으로 기억되는 '순수의 시대'였던 게 아닐까. 그렇지만 과연 '순수의 시대'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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