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예쁜 영화'의 정점에 서 있는 '웨스 앤더슨'의 정점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이십세기폭스사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예쁘다. 파스텔 톤과 원색의 환상적인 색감 조합과 완벽한 좌우대칭형 수평 구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예쁨을 선사한다. 그 앞에 '예술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그 정점에 있는 영화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아닌가 싶다. 


세계대전 분위기가 타오르고 있던 1927년, 알프스에 위치한 가상 국가 주브로브카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는 그 화려하기 그지 없는 외관답게 전쟁과는 무관한 듯한 느낌이다. 호텔의 모든 것에 관여하는 총지배인 구스타브, 그가 총애하는 신입 로비 보이 제로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주요 고객이자 구스타브의 연인인 세계 최대 부호 마담 D.가 피살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떠난다. 마담 D.가 아낀 엄청난 그림을 가족이 아닌 구스타브에게 남긴다는 유언과 함께, 마담 D.의 엄청난 유산을 노리던 아들 드리트리에 의해 용의자로 몰린다. 구스타브와 제로는 살인 누명을 벗고 다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돌아가기 위해 모험 아닌 모험을 겪는다. 


앤더슨 터치, 앤더슨 스타일, 앤더슨 월드


단 8편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웨스 앤더슨. 그 옆에 붙는 수식어들이 다양하다. ⓒ이십세기폭스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명실공히 2014년 최고의 작품으로, 당시 미국 아카데미와 전미비평가, 영국 골든글러브와 런던비평가,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주요 상을 휩쓸었다. 이 영화와 함께 당시 주목을 받았던 영화들에는 <라라랜드> 데미언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 <레버넌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 그리고 <보이후드> 등이 있었다.


웨스 앤더슨은 결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는 아니다.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앤더슨 터치'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 손길의 특별함에는 '앤더슨 스타일'이라고 불리워지는 게 마땅한 그만의 미학(미장센)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린 이 영화를 통해 그 절정을 맛볼 수 있다. 


그는 단 8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는데, 이제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세계'를 정립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예쁘다'를 연발하지 않을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화면이 전혀 역동적이지 않지만 우리의 눈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한 화면 안에 배치되어 있는 완벽한 구도의 물상들을 쫓아가기 바쁘다. 그러고선, 정물화처럼 보이는 화면 전체까지 훑어야 한다. 모든 화면들이 이러니 달리 도리가 있겠는가. 바쁘게 움직여야지. 


고급진 미장센을 추구하는 감독들은 많다. 화면에 들어가는 모든 물상들을 허투루 하지 않고 완벽하고 꼼꼼하게 배치하는데, <싱글맨>의 톰 포드 감독이나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이 바로 생각난다. 하지만 웨스 앤더슨의 경우, 배우조차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물상 중 하나로 보일 정도의 미장센을 보인다. 


그 화면 구성이 사실 현대적이거나 앞서 예를 든 대표적 미장센 감독들과는 다르게 세련되지도 않다. 예쁘다는 걸 빼면, 그 자체로 근현대 또는 근대적이라고까지 할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배경 또한 20세기 초중반이니만큼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화면 구성뿐만 아니라 화면 구도나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기법과 소품, 하다 못해 캐릭터 특성까지도 그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고전주의자가 아닐까. 


완벽한 미학과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균형'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경우, 마냥 예쁘기만 하지 않다. 그밖에 이야기나 연기에도 공을 들여 균형을 맞추었다. ⓒ이십세기폭스사



아무리 완벽한 미학을 선보인다 하더라도, 오로지 그것뿐이라면 이와 같은 명성을 획득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쓴 걸로도 유명한대, 영화의 모든 것을 완벽히 정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완벽한 지배인 구스타브의 모습과 흡사하다.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그와 함께 하는 배우들은 하나 같이 유명한 연기파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워낙 예쁘고 흐트러짐 없는 화면을 선보이기 때문일 텐데, 전작 <문라이즈 킹덤>에서도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예쁜 화면들과 그에 맞는 특이한 캐릭터들이 압도해버려서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경우는 어떨까. 


이중도 아닌 삼중 이야기 구조를 굳이 택해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북돋고는, 지체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 버린다. 물론 그 사이에 계속해서 보여주는 호텔의 황홀한 외관은 한 번 보면 숨이 멋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그리고 여지 없이 '황금율'까지 생각나게 하는 대칭 구도의 화면들을 쉴 새 없이 쏟아붓는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빠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진행 덕분에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도 죽지 않는다. 그 '균형'에 많은 공력을 쏟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전혀 정반대의 스타일을 추구할 것 같지만,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정해진 틀에서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앤더스과 모든 것들이 자유로울 것 같은 홍상수가 비슷하다니,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과, 반드시라고 할 만큼 각본과 연출을 병행한다는 점과, 정반대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영화적 미학이 하나 같이 좋은 영화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완벽히 정해져 있는 미학과 아무것도 정해져 있는 않은 미학은 정반대이자 하나이다. 


이보다 '예쁜' 영화는 없다


'예쁘다'를 연발한다. 황홀할 지경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더 말해 무엇하랴? ⓒ이십세기폭스사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논할 땐 웨스 앤더슨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자칫 웨스 앤더슨만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그의 영화에서는 그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오는 최악의 단점은,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예쁜 영화를 또 다른 형식으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차피 비슷한 느낌일 게 뻔하지 않은가. 


(다분히 의도된 계산에 의한 것이겠지만) 다행인 건 그가 다작을 하는 감독이 아니라는 것. 그가 처음으로 장편을 내놓은 게 1996년, 마지막으로 내놓은 게 2014년, 그리고 지금이 2017년, 20년이 흐르는 동안 내놓은 작품이 8편이니 2~3년마다 한 편씩 내놓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음 작품은 2018년에 개봉 예정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정점을 찍은 만큼, 조금은 다른 시도를 해봄이 어떨까 싶다. 물론 '쇠뿔도 당길 때 빼라'는 속담이나 '한 우물만 파라'는 격언도 있고, 그래야 진정한 장인이 된다는 사실도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예쁠수록 식상하고 진부하게 되기 쉽다. 


얼마전 <문라이트>를 말하며 '이보다 아름다운 영화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는 여러 면들이 있으니, 누군 공감하고 누군 공감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단언할 수 있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도 한 마디 하고 싶은데 '이보다 예쁜 영화는 없다'라고 하고 싶다. 그야말로 다른 무엇도 아닌 '시각적 예쁨'이다. 이 예쁨에는 절대적 면만 있을 뿐이다. 단언하건대, 가장 예쁜 영화다. 


이보다 예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웨스 앤더슨 자신뿐이다. 앞서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딱 한 가지 기대하는 게 있다면 이것뿐이다. 아니, 부탁한다. 이보다 더 예쁜 작품을 들고 와달라. 두 시간 동안 눈호강 좀 시켜주고 싶다. 그 전까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달래고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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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네온 데몬>


콘텐츠에 있어서 '기교'가 전부여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영화같은 긴 호흡의 콘텐츠는 더욱 그렇다. <네온 데몬>은 기교에 대부분의 힘을 실은 듯한데, 그조차 정교하지 못했다.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예술성이 가미된 콘텐츠를 평할 때 전문가들이 '기교가 전부'라는 말을 하며 혹평을 주곤 한다. 엔간히 출중한 능력을 믿고 기본을 제대로 연마하지 않은 채 기교를 부리는 데에 따른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엔 괜찮다고 할지 모른다. 현란하고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밑천이 드러나고 말 것이다. 


영화는 은근히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에 기교가 어쩌고 저쩌고 하기가 쉽지 않다. 노래처럼 한 번에 판단하기가 힘들다. 그런 만큼 영화에 대고 기교를 말하는 건, 대상이 되는 그 영화가 얼마나 기교에 힘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시종 일관 기교를 보여주려 애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코타 패닝'의 동생 '엘르 패닝' 주연의 <네온 데몬>이 그런 경우다. 강렬하게 시작한 영화는 시종 일관 현란한 기교로 눈을 범하려 한다. 아무래도 모델에 대한 이야기니 만큼 으레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도가 좀 심하다. 그 기교가 졸음을 선사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한숨을 토해내게 하니 말이다. 종종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모든 기교가 그러하고, 가끔 탄성을 자아낼 뿐이다. 


정교하지 못한 '아름다운 잔혹함'


영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아름다운 잔혹함, 오직 하나뿐인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블랙 스완>이 생각나게 하는데, 과연 잘 표현해냈을까.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영화는 얼핏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2010년작 <블랙 스완>을 생각나게 한다. 단순한 욕망을 넘어선 광적 집착이 가져오는 아름다운 파멸을 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건 비슷한 극초반의 분위기에서 온 '눈속임'에 불과했다. <블랙 스완>은 그 특유의 분위기를 심리 스릴러 라는 장르에 훌륭히 장착해 끝까지 끌고가는 반면, <네온 데몬>은 그 분위기가 오히려 영화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결정적인 차이는 아마 주연 배우들의 연기 내공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치명적이긴 하다. 얼마나 아름다울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2011년작 <드라이브>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른바 '아름다운 잔혹함'을 극대화시켜 보여주었는데, 잔혹함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정교한 기교를 사용했으면 아름답다고까지 했을까 싶다. <네온 데몬>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나지만, 그 기교가 정교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친절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랄까. 


이쯤에서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모델지망생 제시(엘르 패닝 분)는 혈혈단신으로 LA에 온다. 급하게 만난 사진가 지망생(듯한)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해 자신의 미모만 믿고 모델에이전시로 간다. 역시나, 그녀의 꾸미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에 누구든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디네이터, 모델, 실장, 수석 디자이너 할 것 없이. 


제시도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걸 잘 안다. 그 아름다움이 어느 누구라도 탄복해마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녀는 단번에 탑모델로 올라선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녀를 향한 시기와 질투, 무엇보다 집착이 심해진다. 혈혈단신 그녀 주위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녀는 믿고 의지할 만하다고 판단한 코디네이터 집으로 피신을 간다. 그렇지만 그 코디네이터는 그녀를 집착하는 다른 탑모델들과 친하다. 제시는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엉망, 스타일이라도 좋다면 괜찮았을 텐데...


이야기가 참으로 듬성듬성이다. 그 방면으로는 봐주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감독이 승부를 본 스타일만 남는데... 그마저 괜찮지가 못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 어쩌지.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순수함'은 선도 악도 될 수 있다. 모델이 되기 전 제시는 순수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모델이 되고선 그 순수한 아름다움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진 못했다. 겸손함이나 자신 없는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순수한 악마만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도 화장을 지우고 모델의 옷을 벗으면 소녀로 돌아온다. 모델이라는 타이틀이 순수함의 방향타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런 심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패션 업계의 뒷 얘기와 심리 스릴러는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블랙 스완>이나 <버드맨>처럼, 겉으로는 화려하기 그지 없지만 그 뒤에서는 엄청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스타일에 맞게 잘 전달해주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물론 이 감독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보여주고자 한다. 문제는 그 스타일만을 과도하게 밀고 나가는 데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스타일로 조화롭게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야기와 스타일이 아니라 이야기는 이야기고 스타일은 스타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스타일이 엄청나다면 다른 게 엉망이더라도 크게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의 향연을 잠자코 지켜봐야 하는데,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더욱이 그 절대적 양이 왜 그리 많은지, 지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난감하지 그지 없지 않은가.


기대만큼 실망이 크다


영화를 보기 전, 많은 부분에서 기대를 하게 했다. 제목, 포스터, 감독, 주연, 주제나 소재 등. 낚이지(?) 않을 수 없게 해놓고는, 결과적으로 낚인 듯.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영화는 2016 칸영화제에 상영되어 관객으로부터는 기립박수를, 평단으로부터는 혹평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평단도 관객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평하는 나는, 혹평세례를 퍼붓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나? 영화가 던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받아내지 못했나? 너무 아름다운 가운데 너무 역겨운 상극의 이미지가 던지는,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잡아내지 못했나?


고백하자면, 제목을 보고 영화 포스터를 보고 감독을 보고 주연 배우를 보고 나서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간 거다. 그만큼 치명적인 영화를 볼 기대를 한 것이고, 그 기대가 보란듯이 물거품이 된 것뿐이다. 그뿐이다. 이만큼의 기대를 하지 않고 봤으면, 그만큼의 실망도 하지 않았을 거다.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하는 제시가 내 눈엔 촌스럽기만 하다고 느껴졌을 때, 그 실망이 배가된 것 같다. 영화 안에서 그들이 보는 제시는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의 전형이다. 그들 자신은 절대 갖지 못할 그것. 그런데 영화 밖에서 보는 일반인의 입장은 다르지 않은가. 그녀도 꾸미지 않을 때보다 꾸몄을 때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쁜 것 같은데 말이다. 그들은 제시를 보고 꾸미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꾸몄을 때를 상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물론 영화는 그런 심리조차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주구장창 스타일만 고수하며 알 수 없는 '짓거리'만 철퍽철퍽 뿌려댈 뿐이다. 난 심리 스릴러를 보고 싶었지, 비주얼 스릴러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스스로 생각하고 유추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신 이와 같은 영화를 보고 싶진 않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라면 그냥 지나가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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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


어렸을 때 재밌게 본 만화이자 중국 고전 중 하나인 <봉신연의>. 영화로 나왔다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세계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참으로 오랫동안 미국의 '할리우드'가 있었다. 영화라는 게 유럽에서 생기고, 세계 3대 영화제(베를린, 칸, 베니스)가 전부 유럽에 있음에도 말이다. 거기엔 역시 '돈'이 작용했을 거다. 한편 인도의 '발리우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양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또다른 독보적인 위치에 위치해 있다. 일 년에 1000편 이상을 제작하며, 전 세계 영화의 1/4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그 뒤에도 역시 '돈'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다름 아닌 '황사머니' 중국의 출현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2008년에 있었던 미국 발 금융위기 때가 아닌가 싶다. 미국 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으며 반대급부로 중국이 전에 없는 막강한 머니파워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그에 힘입어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 2위로 급부상했으며,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인도, 미국에 이어 3위(일 년에 500편 이상)로 올라섰다. 급기야 미국 할리우드의 유수 영화들에 손을 뻗치고 있다. 북미에서 망해도 중국에서 성공해 차기작의 발판을 마련한 영화들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그 반대도 있다. 


올해 두드러졌는데, '엑스맨' 시리즈 최고의 흥행작이자 엄청난 호평을 받은 수작 <데드풀>은 중국에서 개봉을 하지 못해 8억 불의 고지를 밟지 못했다. 여타 히어로 영화들의 중국 흥행 역사를 볼 때 10억 불 돌파도 가능했을 거다. 한편 북미에서 5천만 불도 찍지 못한 망작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중국에서만 2억 불을 넘게 벌어 월드와이드 4억 불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중국이 향후 수 년 안에 세계 영화 시장 1위에 오를 거라는 전망은 기정사실화된 거나 다름 없다. 


대수롭지 않은 영화, 어마어마한 제작비


영화는 중국영화사에도 길이 남을 제작비가 들었다고 하는데, 장면 장면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중국영화에 부는 황사머니는 제작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데, 역대 최고 제작비 5위가 약 8000만 불이라고 한다. 지난 2008년에 개봉했던 <적벽대전>의 제작비가 약 7000만 불로, 당시 아시아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기록했는데 절묘하게 미국 발 금융위기 즈음이었다. 우리나라는 역대 1위가 <설국열차>의 약 4000만 불 정도이다. 참고로 중국 역대 1위는 2억 불이 넘는다고 한다. 


올해 개봉한, 개봉할 영화 중 두 편이 중국영화 역대 제작비 순위를 흔들었고 흔들 예정이다. 그 중 하나가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이다. 자그마치 8000만 불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흥행은 잘 되었는지? 시작은 좋았으나 급격하게 하락하며 채 3억 위안을 벌어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900억 가까이 들여 만들어, 채 500억을 벌지 못한 것이다. 왠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인지?


영화는 그 자체로도 참으로 대수롭지 않다. 많은 이들이 중국 4대 기서(<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 혹은 <홍루몽>)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발치에도 가지 못하는 <봉신연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거다. 만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꽤 익숙할 텐데, 대히트작 일본 만화 <봉신연의>가 떠오른다. 아마 그 만화를 재밌게 본 이라면 이 영화 또한 일말의 기대를 안고 봤을 테다. 


때는 기원전 1100년 경 상나라 말의 주왕 시대다. 본래 현명하고 참된 황제였던 주왕은 요물 달기(판빙빙 분)로 인해 주지육림에 빠진다. 그 자신 또한 어릴 때 흑룡과의 불온한 계약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주나라 희창의 태공망은 그들을 저지하고자 덤볐지만 주술에 걸려 간신히 도망쳤을 뿐이다. 이내 봉신계획을 발동하며 뇌진자, 나타, 양전으로 하여금 흑룡과 달기에 맞설 수 있는 '광명의 검'을 찾게 한다. 과연 그들은 광명의 검을 찾아 인간계에 광명을 찾아줄 수 있을까? 한편 주술에 걸린 태공망은 어떻게 될까?


이 영화, 무엇이 문제일까?


이연걸이 태공망 역을 맡았다. 판빙빙이 달기 역을 맡았다. 안젤라 베이비까지. 중국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캐스팅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이 영화.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영화는 그야말로 '돈지랄' 한 티가 한 장면도 빠짐 없이 팍팍 난다. 과장이 아니고, 사람이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CG가 차지하는 비중이 족히 90%는 될 것이다. 물론 그런 류의 중국영화는 이 영화 뿐이 아니다. 중국 역대급 흥행돌풍을 일으킨 <미인어> <몽키킹>도 거의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들은 이 영화만큼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았으면서 이 영화보다 훨씬 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들에 비해서 캐스팅이 별로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연걸, 판빙빙, 안젤라 베이비, 고천락, 향좌 등 중국이 자랑하는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캐스팅으로만 본다면 앞엣것들을 앞선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영화는 <봉신연의>라는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를,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동안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대중에게 알리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을 거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이 <봉신연의>라고만 하면 되는 수준인 것이다. 중국에선 여전히 인기가 많은 고전, 역사, 무협 이야기이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중국에선 역대급 흥행 성적을 올려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배우들의 연기가 심각한 수준이었나?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불과한 영화에서 어떻게 배우들의 연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들 손발이 오그라드는 분장을 하고 나와 CG에 몸을 맡기는 판국에 말이다. 아마 아무도 그들의 연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면 남는 건 내용이다. 도무지 봐줄 수 없는 내용이라 여긴 게 아닐까. 그리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CG의 수준도. 


주인공이 뜬금없는데, 그 주인공이 매력이 없기도 하다. 또한 '영웅의 귀환'이니만큼 귀환하기까지의 모험이 재밌어야 하는데, 모험이랄 것까지도 없는 황당한 일들의 연속이다. 가장 재밌어야 할 게 가장 지루하고 만 것이다. 그 부분만 신경 써서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이렇게까지 실망할 영화는 아니었을 거다. 러닝타임을 좀 더 늘리며 쓸 데 없이 코믹한 장면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진지한 생각과 상념에 젖을 만한 장면을 추가했어야 했다. 


이도저도 아닌 것의 절정


이런 류의 중국영화를 볼 때면 항상 기대하는 '느낌'이 있다. 다름 아닌 중국풍인데, 역시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을 벗어나지도 못한, 이도저도 아닌 느낌일 뿐이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촉산전>으로 기억한다. 15년 정도 됐으려나, 중국풍 액션에 CG가 가미된 최초의 '아름다운' 기억 말이다. 그 전에도 <풍운>이니 <중화영웅>이니 하는 영화가 있었다. 다만 스타일이 조금 달랐고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 있진 않다. <촉산전>은 달랐다. 분명 <봉신연의> 버금가는 CG가 화면을 뒤덮었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천지를 진동하는 액션에서 피어난 연인의 슬픈 사랑, 모든 걸 버리고 둘만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마음, 그에 어울리는 화면을 구성한 CG와 OST, 화면은 화려한 원색과 파스텔 톤이 조화를 이룬다. 


아마도 <봉신연의>에서 <촉산전>의 느낌을 기대했었는지 모른다. 아니, 이런 류의 중국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그 느낌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중화주의 색채를 지우고 보편적인 색채를 입히고자 하는 노력인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중국풍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니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리고 만다. <봉신연의>는 이도저도 아닌 것의 절정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무리일 거다. 여전히 거의 중국 내수 시장으로만 흥행하는 중국영화이니 만큼 세계로 뻗어나가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와호장룡>처럼 지극히 중국적인 중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끈 사례가 있다. 그렇지만 그 또한 2000년대 초반의 일이거니와, 결정적으로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영화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적인 중국영화의 세계 진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것 같은 <봉신연의>. 2부 예고편 같은 쿠키 영상까지 있는데, 과연 후속편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흥행도 참패를 한 게 아닌가. 물론 그렇게까지 돈이 들어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영화에, 그토록 엄청난 돈이 들어간 걸 보니 투자 여력이 엄청난 것 같다. 그래도, 2편은 사양이다. 그래도 나오면 혹시 보게 될려나? <촉산전>의 그 느낌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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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엽문 3: 최후의 대결>



영화 <엽문 3: 최후의 대결> 포스터 ⓒ씨네그루 키다리이엔티


셀 수 없이 많은 중국, 홍콩 무협 영화 중 사실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다. 여러 모로 <와호장룡>만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비록 이번에 '와호장룡 2'가 개봉해 그 명성에 크나큰 흠을 남겼지만). 비슷한 걸 찾아봤지만, <영웅> 정도만 눈에 띈다. 그래도 무협 영화 라면 액션이 주를 이뤄야 제 맛이다.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판타지 요소가 다분한 무협 영화가 대세였다. <동방불패>, <천녀유혼>, <신용문객잔>, <소호강호> 등. 90년대 넘어 오면서 <황비홍>이 평정했고,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그 와중에 주성치는 자신만의 길을 가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21세기의 시작인 2000년 <와호장룡>이 출현하면서 무협 영화는 급을 달리한다. 2000년대 초중반은 장이모우 감독이 이끈다. 이후엔 춘추전국시대라고 할까, 쇠퇴의 시대라고 해야 맞겠다. 


2008년에 <엽문>이 나왔다. 주인공 엽문 역을 맡은 견자단은 80년대부터 액션, 무협에서 활동해온 베테랑이지만, 소위 홍금보, 성룡, 이연걸 등에 가려진 면모가 없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 주 연 뿐만 아니라 무술감독도 겸한 영화들이 잘 되면서 4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늦게 꽃이 피었다. 엽위신 감독과 같이 한 세 글자 삼총사인 <살파랑> <용호문> <도화선>이 그것이다. 엽위신 감독과 견자단이 다시 뭉쳐 일을 냈는데 그게 바로 <엽문>이다. 이 영화는 감히 죽어가는 홍콩 무협 영화를 다시 살려냈다고 할 수 있을 만하다. 


이후 견자단은 정말 잘나갔는데, <정무문> <금의위> <삼국지> 등은 기억에 남아 있다. 역대급 흥행을 한 <몽키킹>의 '몽키킹'이 견자단이기도 하다. 급기야 올해 말에 개봉하는 <스타워즈 앤솔로지>에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었다(안타깝게도 <와호장룡 2>는 살리지 못했지만). <엽문> 시리즈는 계속되었다. 2010년에 2탄이 나왔고 올해 6년 만에 3탄도 나왔다. 



영화 <엽문 3: 최후의 대결>의 한 장면 ⓒ씨네그루 키다리이엔티



사력을 다한 액션,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없는 스토리


'최후의 대결'이라는 부제가 달린 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와 함께 사력을 다한 액션이 길지 않은 러닝 타임에 꽉 차 있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거기에 달려 있다. 액션을 보느냐, 이야기를 감상하느냐. 애초에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바라지 않고 액션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골랐다면 아주 좋은 선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이들과 쉼 없이 액션으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1, 2탄에 이어 간결하면서도 위력적이고, 많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주로 손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영춘권의 진수를 보여준다. 고만고만한 다수와의 비교적 손쉬운 대결, 절대강자와의 일대일 대결, 다수의 고수와의 어려운 대결, 그리고 또 다른 영춘권 고수와의 대결까지. 중요한듯 아닌듯 모호한 역할을 수행한 마이클 타이슨과의 일대일 대결은 극의 흐름 상 이벤트라고 불릴 만하지만, 재미는 극에 달한다. 



영화 <엽문 3: 최후의 대결>의 한 장면 ⓒ씨네그루 키다리이엔티



문제는 1, 2탄에서 보여준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기대한 이들이다. 1탄은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잘 표현해냈고, 2탄도 고뇌에 빠진 엽문을 잘 표현해냈다. 액션과 이야기를 잘 버무려낸 '은근한' 수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3탄은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액션에 너무 과하게 정성을 쏟았다. 그것도 액션과 액션 사이의 개연성이 거의 무시된 채 말이다. 제대로 편집을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엽문> 시리즈는 이렇게 끝날 것 같다


개연성 있는 이야기에 기반한 액션이라면 당연히 보는 이가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장면이라도 다르게 보인다. 그걸 정말 잘 표현해내다 못해 자칫 과할 수 있는 영화가 왕가위의 <일대종사> 같은 류다. 그 정도까진 바라지 않지만 어느 정도 이유 있는 액션을 바란 건 사실이다. 안타깝다. 


더욱이 뜬금없이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아내와의 로맨스는 조금 뭉클하게 만들었지만, 이 또한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굉장히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눈물이 금방 마른다. 비장미 있는 피날레 액션을 위한 장치였지만, 너무 늦었거니와 너무 뜬금없었고 너무 억지였다. 왠지 <엽문> 시리즈는 이렇게 끝날 것 같다. 



영화 <엽문 3: 최후의 대결>의 한 장면 ⓒ씨네그루 키다리이엔티



시리즈의 후속편이 너무 늦게 나오면 영화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전편에 누를 끼친다. <엽문 3>는 어떨까. <와호장룡 2>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편에 누를 끼친 건 맞다. 그럼에도 영화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액션 만을 본다면 시리즈를 완벽히 마무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보는 이마다 다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급의 무협 액션 영화가 계속 나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6대 4 정도로 시리즈를 잘 마무리했다는 쪽으로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문득 견자단도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데뷔한 지도 30년이 넘었고, 그의 나이도 50세가 넘었다. 물론 그는 활발히 현역으로 활동하며 무술감독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영화계 전체에서 보면 그를 이을 만한 액션 스타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무협 쪽에서 말이다. 쇠퇴해가는 무협 영화의 한 단면이라고 봐야 하겠다. 팬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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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표지 ⓒ아시아



평소 왕래를 않던 어머니가 칠백만 원 사채 때문에 도움을 청하자 권순찬 씨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대신 갚아줍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머니도 여기저기 돈을 모아 갚았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목숨을 끊고 말았고요. 그 사채꾼은 천 사백만 원을 챙긴 거죠. 어느 날, 권순찬 씨는 그 사채꾼이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와서 자리를 깝니다. 사채꾼을 상대로 일인 피켓 시위를 시작한 거죠. 


이 아파트 단지는 지은 지 이십오 년이 넘었어요. 아주 낡은 아파트인 거죠. 주민들은 참 착해요. 가난해도 서로를 챙기고 항상 안부를 묻지요. 권순찬 씨에게도 마찬가지예요. 그의 계속되는 시위에 주민들은 김치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취업을 알선해주기도 해요. 급기야 십시일반 돈을 모아 칠백만 원을 만들어 가져다 주죠. 여기서 갈등이 발생해요. 


눈앞에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기호 소설가의 짧은 이야기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여전한 이야기꾼 이기호 특유의 색채가 살아 있는 소설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굴지의 웃긴 이야기꾼이에요.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낄낄거리며' 웃게 되죠. 결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는데, 영화 감독 장진이 생각나더군요. 이야기 그리고 유머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이 소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려 했을까요. 개인적인 이유로 피켓 시위를 하는 권순찬 씨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채꾼 김석만, 권순찬 씨를 가엽게 여겨 도와주려는 주민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져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는 교수이자 작가인 나. 짧은 소설에 적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이기호 소설가라면 기대감이 충만합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칠백만 원을 권순찬 씨에게 건넸을 때 권순찬 씨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몇 개월 동안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한 채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 사채꾼을 상대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성가시다고 쫓아내지는 않고 오히려 진심을 다해 도와주려는 주민의 마음이 얼마나 고맙겠어요. 받아야 마땅하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권순찬 씨는 받지 않아요. 일거에 거절해요. 답답할 노릇이죠. 착한 사람들이기에 눈앞의 어려움을 그냥 넘어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도와줬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다고 사채꾼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사채꾼이 산다는 103동 502호에는 사채꾼의 어머니만 있다고 하는데, 그 분이 폐지를 줍고 사는 형편이라고 해요. 그런데 아들 녀석 때문에 밖에 나오질 못하는 거죠. 아들 녀석하고는 연락이 끊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안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에요. 


만약에 우리 아파트, 또는 우리 동네에 권순찬 씨와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 와서 다짜고짜 진을 쳤다고 생각해 봅시다. 상대는 몇 개월 동안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요. 몇 년 전부터 보이질 않았으니 앞으로도 보지 못하겠죠. 가여워서 도와주고는 이제 그만할 것을 중용 했어요. 그런데 거절 당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더욱이 주민 중 한 사람이 생계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고, 알게 모르게 주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에요. 


저라면 어떻게 하든 그 사람을, 권순찬 씨를 쫓아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착하지 않고, 남들이 뭐하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쫓아내려 하지 않을 거예요. 누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요. 다만 낡은 아파트가 아니라 강남의 초호화 아파트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요. 이미지에 타격을 입어 집값이 떨어지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요. 


애꿎은 사람들끼리 싸우는, 웃지 못할 우리네 모습


문제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가난하지만 이기적이지 않아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네 사회를 지탱하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죠.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권순찬 씨를 보살펴줄 수는 없어요. 평화롭고 조용한, 거의 유일한 이점만 가지고 있는 동네인데 이런 평지풍파라뇨.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죠.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결국 주민들은 권순찬 씨를 쫓아내고 말아요. 정말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어요. 정작 당사자는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애꿎은 이들끼리 싸운 꼴이잖아요. 


2014년, 작년이죠. 4월에 세월호가 침몰했어요. 사측의 명백한 범죄였죠. 그리고 제대로 대응하고 수습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도 컸어요. 그런데 싸움은 애꿎은 사람들끼리 하더군요. 유가족들, 피해당사자들이 시위를 하는 게 못마땅했나 봐요. 많은 이들이 그들을 비난하고 나섰어요. 소설에서 처럼 착한 사람들이 아니죠. 그렇지만 당사자가 아닌 애꿎은 사람들끼리 싸운 건 똑같아요. 중요한 게 바로 이 점이죠. 애꿎은 사람들한테 화내고, 애꿎은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 다름 아닌 우리네 모습이에요. 


강자라고 해야 할까요, 악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강자이자 악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또는 그들은 왜 나타나지 않을까요. 왜 애꿎은 사람들끼리 싸우는 걸까요. 누군가는 강자이자 악인을 대신해서 싸울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사실도 모르는 채 싸우고 있을 거예요. 훗날에 깨닫겠죠.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면 무관심이 답일까요?


현대 사회에서 제일 가는 악(惡)이 다름 아닌 '무관심'일 거예요. 어느 곳이든 불통의 시대를 외치는 마당에 무관심은 최악인 거죠. 그런데 관심과 소통의 결과가 이런 식이라면 어처구니 없어 지죠.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밖에 설명이 안 돼요.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 부분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과 사회의 소통, 관심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이요. 말하자면 '구조적' 차원이 아닐까요.


이 너머까지 다룰 성질의 소설은 아니지만, '계급 구조'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려 하는 것처럼 보여요. 강자와 약자의 계급 구조가 곧 악인과 선인의 이분법적 구조까지 집어삼키게 되는 때에 직면하면 답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소설 속 화자는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요.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그가 말이죠. 그로 하여금 글을 쓸 수밖에 없게끔, 그래서 사람들에게 전말을 알려주고 싶게끔 했어요. 안 그러면 이 사건에서 나쁜 놈은 보이지 않고 끝나버려요. 그는 기어코 나쁜 놈을 출현 시켜야 해요. 착한 사람들, 애꿎은 사람들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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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잖은 내 이야기에 그녀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준다. 왜 웃어준다는 표현을 썼냐면, 그녀는 평소에 웃을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웃기는커녕 세상의 추악함에 하루라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정말 잘 웃는 아이인데. 거 참 희한하네. 


그녀는 참 똘망똘망한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정말 잘했고, 회사 다니고 서는 일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고 한다. 심지어 집에서도 그러는데, 컴퓨터 포맷까지 혼자 척척 해낸다.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인간의 표본이 아닌가. 


이 모든 게 엄연한 사실인데, 분명히 그러한데, 내 앞에서는 얘가 가끔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조금 멍청하게 웃고(으허허허), 썰렁한 개그도 하고, 자기가 한 개그에 자기가 흠뻑 빠져 웃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등등. 똘망똘망한 애를 바보로 만든 것 같아 미안하네. 


얼마 전에는 실로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이 동네에서 산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이리도 안 가본 곳이 많다니. 태양이 떨어진 야밤에 30분 가량 돌아다니면서 드는 생각, '우리 동네가 이렇게 예뻤나?'


그녀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같다. 5년 동안 보면서도 아는 게 참 없어서 앞으로 더 알아가야 하고 알아가고 싶고 그 날들이 기대된다. 또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기에 이것저것 같이 해볼 생각을 하니 좋다! 


연인에 그런 말이 있던데.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가라' '서로를 바라보며 가라' 둘 다 하면 안 되나? 우린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건, 그 곳에 우리의 꿈이 있어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 테지 말 그대로 눈을 같은 곳에 두는 건 아닐 테다. 같이 가자. 


두서 없는 이야기들은 그녀와 나, 우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뭔가 형식이 있지 않은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면서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다는!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는 자유를 만끽하는 게 우리들이 사는 방법이다. 


자, 내 여자친구 소개는 충분히 되었는지? 아무래도 이번 한 번으로는 충분치도 않고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을 듯. 그래서 매주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해보는 걸로^^ 이런 글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반말은 죄송, 다음부터는 존댓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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