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발자크의 식탁>


<발자크의 식탁> 표지 ⓒ이야기나무


이런 책, 좋다. 치열한 연구, 오타쿠적이기까지 한 관심과 열정, 종횡무진 오가며 확대재생산시키는 와일드함으로 무장한 책. 일단 뿌리 부분을 완벽히 꿰고 있어야 하겠다. 그에 못지 않게 가지나 잎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바, 보는 입장에선 얻을 게 무궁무진하다. 지식은 물론, 앎에서 오는 재미도 한가득이다.


앙카 멀스타인의 <발자크의 식탁>(이야기나무)이라는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뿌리 부분은 다름 아닌 '발자크'다. 19세기 초중반 프랑스 소설가,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 말이다. 90편이 넘는 개별 소설들을 통해 당대를 완벽히 그려낸 방대한 소설 <인간 희극>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 세계는 <인간 희극>으로 집약되어 있다고 봐야 하겠다. 여기에 '식탁'이라니. 발자크의 음식 사랑을 탐구하는 책인가, 싶다. 


막상 읽어 보면, 발자크가 아닌 발자크의 소설을 들여다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 희극>을. 솔직히 말해, 발자크를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너무나 유명한 <고리오 영감> 정도? 하지만 그 기억도 가물가물하니,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럼에도 책에 손이 가고 글에 눈이 가는 이유는, (읽어보지 못한) 위대한 소설가와 음식의 만남 때문이다.


일단 이런 류의 '콜라보레이션'을 좋아한다. '딱'하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 것들의 만남은 많은 재미를 준다. 더군다나 관심은 지대하지만 막상 대한 적은 없는 발자크 아닌가. 발자크와 음식, 둘 다 따로따로 놔둬도 관심이 가는데 둘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그것도 지금의 나로선 전혀 알 수 없는 19세기 프랑스 파리가 배경 아닌가.


발자크의 대표작 <인간 희극>, 미식의 도시 파리가 보인다


저자는 발자크가 장갑과 돈과 음식에 집착했다고 한다. 그중 뜻밖의 것이 음식인데, 그는 미식가도 아니었거니와 제대로 된 식습관의 소유자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음식에 집착했던 이유는 당대의 사회상을 짚기 위해서 였다. 그에게 음식은 영양 섭취 대상이나 미식적 대상이 아니라, 그의 소설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다.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소설들에는 여지 없이 음식이 등장하는데, 인간 군상의 성격이나 재력, 집안 내력까지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있기 전, 파리에는 제대로 된 레스토랑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 자체가 그다지 훌륭한 식생활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혼란한 시기에 으레 그렇듯 신흥 부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혼란한 시기의 부담감 때문에 자신의 부를 함부로 과시할 수 없었기에, 도망간 황족들이 남겨두고 간 궁전 요리사들이 차린 레스토랑을 은근한 부의 과시 장소로 택한다. 프랑스 파리에 비로소 식산업다운 식산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미식의 도시 파리의 시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발자크가 이런 시대 변화를 누구보다 발빠르게 알아차리고 소설에 수용했다고 한다. 그가 <인간 희극> 속 등장인물들을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부터 가장 싸구려 레스토랑까지 찾아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 희극>은 파리 사회와 미식 문화에 대한 실용적인 보고서나 다름 없다. 발자크 소설이 곧 19세기 프랑스 파리였고, 19세기 프랑스 파리가 곧 발자크 소설이었다. 저자는 발자크와 발자크 소설과 프랑스 파리를 종횡무진 누비며, 발자크를 읽고 싶게 만들고 나아가 파리를 여행하며 온갖 음식들을 먹고 싶게 만든다. 


특별한 날과 평범한 날, 구두쇠와 음식 숭배자


저자는 본격적으로 <인간 희극>에 뛰어 든다. 특별한 날, 평범한 날, 구두쇠와 음식 숭배자, 그리고 침대까지. 들여다보면, <인간 희극>을 예로 드는 건지 당대 프랑스 파리를 예로 드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이다. 그만큼 발자크가 당대를 완벽히 파악하고 재연해낸 것이리라. 저자의 철저한 치밀한 연구도 한 몫 했다.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음식과 함께 특별한 연회가 있어야 함은 상식이다. 하지만 당대, 특별한 음식과 연회(술)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막 '야만'의 식생활에서 벗어난 신흥 부자들이 뭘 알겠냐는 것이다. 그건 발자크도 마찬가지. 갓 습득한 예의범절과 겉치레는 음식과 술이 섞이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뿐이다. 발자크는 가장의 권위와 취향, 야망에 탐구를 바탕으로 특별한 날의 음식과 연회를 글로 옮겼다. 다분히, 인간 군상 중 하나인 '가장'을 표현하기 위해 음식이라는 수단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매일의 평범한 일상은?


저자에 의하면 발자크는 의외로 <인간 희극>을 통해 프랑스의 중심인 파리 사람들의 음식 이야기는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리 사람들이 열정 없이 음식을 먹고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데, 음식보다 사업을 하고 음모를 꾸미고 정보를 얻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자크가 생각한 이상적인 미식은 신선한 재료를 쓰고 자연 그대로의 풍미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에 있다며, 평범한 식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시골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발자크에게 돈을 향한 강한 집착의 소유자와 음식을 향한 강한 집착의 소유자는 같은 종류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도가 지나치면 살을 위협한다는 발자크의 철학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발자크는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너무 잘 챙겨 먹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했던 아버지의 지론을 충실히 따랐다. 그는 구두쇠와 음식 숭배자를 구분하지 않고 탐욕스러운 등장인물에게 엄격한 심판의 철퇴를 내렸는데, 악인이 아니라 해도 스스로 만들어 낸 집착의 노예가 되게 하였다. 그가 생각한 미식의 천국은, 자연 그대로의 풍미가 이상적인 미식이듯 어머니의 손길로 만들어진 과도함 없는 디저트였다.


매력적인 창작 도구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발자크는 음식을 소설로 옮겨왔다. 저자는 이를 그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는데, 반면 발자크 이후에는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 프루스트가 각자의 방식으로 미식의 세계를 소설에 담았다고 한다.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굴의 맛을 감상하고 싶다면 모파상을, 노란 크림으로 가득 찬 항아리를 꿈꾼다면 플로베르를, 소고기 아스픽을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지럽다면 프루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전에 석영중 교수가 지은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예담)라는 책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여러 위대한 러시아 소설가 중 고골은 엄청난 대식가이자 식도락가로 글쓰기 외의 관심사는 오로지 음식이었다고 한다. 한편 체호프는 음식의 코드에 의존해 범속한 일상을 전달하려 했다고 하고 푸슈킨은 먹는 것을 좋아했지만 음식을 탐하지는 않아 그 소박한 식성이 소설 문체와 분위기, 주제와 소재로 나타났다고 하니, 발자크와의 접점이 보인다. 그들에게 음식은 단순히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영양물 또는 살아가는 데 가장 자주 접하는 욕망 중 하나가 아닌, 그야말로 매력적인 창작 도구가 아니었을까. 


발자크에게 음식이라는 창작 도구가 있었다면, 저자에겐 역사적 인물이라는 창작 도구가 있는 것 같다. 전기 문학 분야에서 발군의 능력을 자랑하는 저자 앙카 멀스타인은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메리 스튜어트, 프루스트, 로스차일드, 메디치를 다룬 책을 출간했다고 하는데, 한국에는 이 책이 처음 소개되었다. 근래 출간 예정인 <프루스트의 서재>가 심히 기대된다.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창작 도구가 있을 것이다. 아니, 창조 도구라고 해두자. 나와 삶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 '책과 영화'다. 삶의 거의 모든 것들을 책과 영화를 통해 풀어낼 수 있고, 표현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아내는 '음식과 공부'일 것 같다. 누군가는 돈일 테고, 누군가는 사랑일 테며, 누군가는 더 디테일한 하위 개념의 무엇일 테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 없다. 그걸 '어떻게' '어떤 이유'로 사용하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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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심야식당>


만화 <심야식당> 표지. ⓒ미우



오랫동안 미뤄왔던 만화가 있다. 꺼려해왔다는 게 맞을 거다. 너무 유명해서 일종의 반항심으로 보지 않았던가? 너무 소소한 이야기들이라 애써 무시해왔던가? 콘텐츠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아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만화를 보기 전에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몇 편 봤다. 그렇다면 왜?


스스로와의 오래된 약속에 기인한 것 같다. 여러 만화를 봐오면서 스스로와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비록 매번 그 약속은 깨졌지만. 어릴 때는 만화로 교훈을 얻고자 했다. <미스터 초밥왕> <더 파이팅> 따위의 만화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출 수 있었다. 이후엔 재미, 그리고 재미와 감동을 추구했다. 대표적으로 <드래곤볼>류가 있을 테고, <슬램덩크>류가 있을 테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는 애들 같은 거 말고 조금은 어른스러운 걸 원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들이 그랬다. 누가 봐도 단순 만화 보기의 변천사이지만, 그때그때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뜨리면서 전진한 거였다. 


그런 내가 실로 오랫동안 전진하지 못한 콘텐츠가 있다. 거대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옴니버스, 특히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는 쥐약이다. 더구나 각각의 에피소드 안에도 딱히 (내가 원하는) 스토리 라인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거기에 잔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심야식당>은 그런 나에게 매우 특별하다. 완고히 '싫어하는' 종류의 만화이면서, 강렬하고 진한 여운을 남겼으니 말이다. 


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


3년 전에 도쿄를 갔었다.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 등을 구경했더랬다.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던 <심야식당>, 지금 그곳에 갔으면 신주쿠 하나조노 근처 골목길을 꼭 가봤을 거다. 만화의 배경이 되는 곳에 말이다. 물론 밤 12시에 오픈해 아침 7시에 닫는 만큼 쉽지 않았을 테지만. 


'심야식당'이 정식 명칭은 아니다. 원래 구냥 '밥집'. 손님들이 심야에만 여는 밥집이라는 의미에서 심야식당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다. 이 밥집은 심야에만 연다. 손님이 오긴 할까? 많진 않지만 왠만큼 오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밤 늦게까지 야근한 사람이 출출할 때, 밤 늦게까지 술 마신 사람이 해장하고 싶을 때, 2차 이상의 술자리로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때 이 집을 찾을 거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만화에선 심야에 어울리는(?) 부류가 자주 등장한다. 야쿠자, 술집 운영자나 종사자 또는 출입자, AV 배우, 트랜스젠더 등. 마스터는 이 모든 이들을 품는다. 아니, 이들을 위해 밥집을 차렸나 싶다. 이곳은 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와 같다. 그들이 어디 가서도 내뱉을 수 없는 솔직한 이야기를 이곳에선 마음껏 할 수 있다. 위로도 받고 응원도 받는다.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누가 와도 차별 없는 마스터,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심야식당의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맥주, 일본주, 소주 뿐이다. 식당이라기 보다 밥집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마스터는 무엇을 주문하든지 모두 만들어준다. 오히려 원래 메뉴인 돼지고기 된장국이 가장 드물게 등장한다. 다만 손님이 뭘 시킬지 몰라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돼지고기 된장국을 내놓곤 한다.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정식이 이 메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 만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두며, 내가 꾸미고 싶은 공간도 이 심야식당과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쪽에는 책방이자 카페를 한 쪽에는 술집이자 밥집인 공간을 훗날 열고 싶다. 하루는 낮에만, 하루는 심야에만 연다. 심야식당과는 달리 손님의 상황을 보고 음료와 책을 권해준다. 역시, 손님의 상태에 따라 술과 안주를 내준다. 일종의 큐레이팅이라고 할까. 


목적은 동일하다.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특히, 일상에 지칠대로 지친 이들, 열심히 살아가지만 갈 곳이 딱히 없는 이들. 알아서 잘 살아가는 이들은, 오면 흔쾌히 받아주겠지만 많은 관심을 두진 않겠다. 심야식당의 마스터는 만화 캐릭터라 그런지 몰라도 포용력이 더 큰 것 같다. 난 현실 세계의 사람이니만큼 그렇게까지 할 순 없다. 


얼굴에 깊은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주인장인 마스터는, 어떤 비밀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때 이들과 다르지 않은 삶은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비록 만화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포용력은 어마어마하다. 어느 누가 와도 차별 없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똑같이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다 겪은 이의 깊은 삶의 내공이 묻어난다. 자연스레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진다. 


한적한 시골길에 홀로 켜 있는 가로등 같은 식당


삶을 노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 만화는 '음식'을 택했다. 음식을 열렬히 사랑해 찾아다니면서 먹지도 않고, 집에서 먹을 때도 한 상 가득은커녕 김치찌개면 김치찌개만 김치볶음밥이면 김치볶음밥만 먹을 정도로 음식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심야식당>이 변화를 가져 왔을까? '수요미식회' 이상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열풍이 시작된 지는 꽤 되었지만, 여전히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를 챙겨본다. 그중에 가장 재밌게 보는 건 '수요미식회'. 특히 맛집 3곳을 추천하는 부분을 즐긴다. 다분히 실용적인 접근인데, 개인적으론 음식에 대한 그 이상의 변화가 있진 않았다. 


<심야식당>의 경우, 음식도 음식이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도 음식에 관한 삶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변화가 있을 충분한 토양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변화가 있느냐. 음식 하나하나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고, 어떤 사연이 있을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 조금 더 풍요롭진 않아도 조금 더 풍부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살기 위해선 먹지 않을 수 없는 음식.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격언이 여기에 어울릴진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맛있게 먹고 즐겁게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한편 음식으로 여러 사람과 그들의 삶을 들여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심야식당>은 마치 한적한 시골길에 혼자 켜 있는 가로등 같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라는 책에서 김형수 작가가 한 말을 요약하는 것으로 '심야식당'의 존재 가치를 설파하며 마무리 짓고자 한다. 작가는 중학생 딸에게 말한다. "저 불빛 아래는 하루에 한 사람도 안 지나갈 수 있다. 당연히 기억하는 사람도 적겠지. 그 가로등이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쪽으로 모여들면 어떻게 될까? 우주가 파괴 되겠지?" 하루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불을 밝힌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며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만들간다고 말한다. '심야식당'을 두고, 마스터를 두고, 그곳에 오가는 손님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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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심야식당>



영화 <심야식당> 포스터 ⓒ영화사 진진



신주쿠 뒷골목, 남들은 퇴근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잠자리에 들 때쯤인 12시에 문을 여는 곳이 있다. 이름하야 '심야식당'. 7시까지 문을 여는데 은근히 사람이 많다. 손님들이 원하는 메뉴는 뭐든 만들어주기 때문일까? 음식이 맛있기 때문일까? 이성이 잠들고 감성이 깨어나는 새벽녘 시간이기 때문일까? 안 가봐서 안 먹어봐서 알 순 없지만, 매력 하나는 철철 넘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식당이 있는 걸로 아닌데,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술장사를 하지 않을까 싶다. 새벽에 집이 아닌 밖에 있으면 술밖에 찾을 게 더 있겠나. 요즘엔 24시간 하는 가게들도 많던데, 그런 곳에는 어떤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겠다. 반면 '심야식당'은 정확히 12시부터 7시까지 '음식'을 만들어준다. 언제나 사람이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영화 <심야식당>은 '심야식당'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엔 여러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아무래도 새벽이다보니 지극히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늙은 부자의 세컨드였던 여자, 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차인 가난한 월급쟁이, 고향을 떠나 가난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젊은 처자,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내를 잃은 이, 그 사람을 동정했다가 그 사람의 갑작스런 사랑 고백을 받고 고민하는 젊은 처자 등. 각각 '나폴리탄', '마밥', '카레라이스' 세 가지 음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심야식당>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세 가지 음식,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


이들과 같이 심야식당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이들이 있는데, 스트립댄서, 게이바 마담, 조폭, 요정 주인 처럼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그들이다. 또 평범한 중년 남자, 청년, 세 여인 등도 같이 한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과 평범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둘러 앉아 위화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심야식당 밖에 없을 거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마스터의 존재, 뒷골목에 자리잡은 위치, 새벽에만 문을 여는 시간, 서로 얼굴을 맞댈 정도로 상당히 좁은 크기 등이 작용한다. 


이들의 겉모습은 참으로 평범하다. 그러나 그 안은 말 못할 사정과 함께 상당한 고난 그리고 잔인함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특징이기도 한대, <심야식당> 속 인물들도 그러하다.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 고난과 잔인함을 들어주고 음식으로 위로해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돈 많은 부자의 세컨드였던 타마코. 그녀는 유언도 없이 갑자기 죽어버린 부자의 장례식을 다녀온 뒤 어김없이 심야식당을 찾는다. 마스터는 그녀에게 일본식 파스타 '나폴리탄'을 선사한다. 그걸 먹고는 행복에 젖는 타마코. 그녀에게 젊은이가 다가온다. 그 둘은 생각지 않게 좋은 인연으로 발전한다. 과연 그들의 행복은 계속될까?


돈이 없어서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미치루는 우연히 심야식당을 지나가다 들러 많은 음식을 시키곤 허겁지겁 먹는다. 그러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며칠 뒤 다시 찾아와선 백번 사과를 하고 돈이 없으니 대신 일을 시켜달라고 간청한다. 마침 손에 무리가 온 마스터는 그녀를 받아들이고, 그녀에게 마밥을 선사한다. 너무 행복한 미치루. 그녀는 이후 뜻밖의 솜씨로 마스터와 손님들을 감동시킨다. 마스터의 손이 나아가는데, 미치루는 어찌 될까?



영화 <심야식당>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대지진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해 후쿠시마로 봉사를 떠나곤 하는 아케미. 그런데 요 몇 주 째 가지 않는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프러포즈까지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대지진으로 아내를 잃고 힘겨워 한 켄조가 그다. 급기야 켄조는 그녀를 보기 위해 도쿄까지 왔는데, 아케미는 그에게 사랑이 아닌 동정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마스터는 그에게 카레라이스를 선사한다. 그 카레라이스는 다름 아닌 아케미가 후쿠시마에 가서 켄조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선사한 음식이었다. 켄조는 깨달았을까?


죽음과 맞닿아 있는 듯한 일본 사회


그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듯보인다. 일견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이 시대를 관통하는 무엇이 있다.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소품이 있는데, 누군지 모를 이의 '납골함'이다. 죽음의 상징과도 같은 납골함. 마스터는 이 납골함을 2층에 올려 놓고 매일 같이 모시며 기도를 드린다. 


작금의 일본은 사회 자체가 죽음과 굉장히 맞닿아 있는 분위기다. 영화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런 사회 분위기를 에둘러 말하고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 시작부터 돈 많은 부자의 죽음이 나온다. 그 죽음은 그렇다 치자.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치루는 돈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이다. 젊은이가 돈이 없다는 건 일자리가 없다는 뜻일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삼포세대'라고 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세'. 요즘엔 다시 인간 관계, 내집 마련 2개를 늘려 '오포세대', 거기에 다시 취업, 희망 2개를 늘려 '칠포세대'로까지 발전했다. 그야말로 달관의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치루는 달관의 경지에 도달하기 직전 마스터가 동아줄을 내려준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의 경우이고, 일본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다름 아닌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앗아간 미증류의 대재앙이 눈앞에서 벌어진 걸 본다는 건 상상을 초월한 경험일 것이다. 일본은 그런 자연 재해를 평생 안고 갈 운명이지만, 원자력 발전소까지 폭발해 끊임없이 피해를 받아야 하는 경험을 해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안전하다고 믿었던 현대 사회에서 말이다. 죽음의 사회이다. 



영화 <심야식당>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말로 위로해주는 대신 입을 감동시킨다


영화는 젊은 세대의 아픔과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넣어 뒤로 갈수록 죽음의 그림자를 더하는 수순을 밟고, 그동안 숨겨놓았던 납골함을 등장시켜 마무리를 시킨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죽음의 공포를, 일본에서의 죽음이 가지는 특유의 따뜻한 감성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건 심야식당이 모토로 삼고 있는 바와 일치한다. 물러서지 않고 피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어루만져 주거나 다독여주지 않는다. 다만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를 대접할 뿐이다. 말[口]로 상대방을 위로해주는 대신, 상대방의 입[口]을 감동시키려는 생각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여러 가지로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이지만, 그 위로 받는 영혼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려니 마음이 따뜻해지기 전에 먼저 아픔을 각오해야 한다. 말로 위로하는 대신 입을 감동시키려는 생각, 따뜻해기지 전에 아픔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 죽음으로 죽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이 사회의 한 모퉁이를 책임지고 있는 심야식당이 있어 언제나 가슴 한편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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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모던 아트 쿡북>



<모던 아트 쿡북> 표지 ⓒ디자인하우스



경제가 안 좋아지면 제일 먼저 문화 활동을 줄인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독서 활동. 같은 문화 활동인 영화나 TV가 시간 죽이기를 겸한 스트레스 해소로 오히려 수요가 느는 것과는 다르게, 책은 스트레스를 가중 시킨 다는 것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데 무슨 책을 보느냐... 그렇다면 먹고살기 힘들 때조차도 줄이지 않는 게 있을까?


있다. 먹고살기 힘들 때도 '먹는' 건 줄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니까. 먹지 않으면 죽고 말 테니까. 그래서 인가? 경제 불황기에는 먹는 사업이 (상대적) 호황이라고 한다. 이를 이용해 역으로 추적해보자면 요즘은 확실한 불황인가 보다. 


수많은 앱 중에서도 음식 관련 앱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CF를 통해 알 수 있다. 배우 류승룡을 앞세운 <배달의 민족>, 배우 차승원을 앞세운 <요기요> 등. 한편 요리 프로그램이 육아 프로그램을 이어 TV를 장악하고 있다. <삼시세끼>를 시작으로 <냉장고를 부탁해>, <수요 미식회>, <오늘 뭐 먹지> 등, 어림 잡아도 10개는 넘을 것 같다. 


음식을 먹되, 그림 또는 글과 함께 하자


그럼 한 발 더 나아가 죽지 못해 먹을 거라면 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어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맛있게 먹는 법은 사람마다 다를 진데, <모던 아트 쿡북>(디자인하우스)이라는 책이 상당히 고상한 방법을 추천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되, 그림이나 글과 함께 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먹을 것을 그린 그림, 음식을 먹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 혹은 재료나 식기를 그린 그림도. 글은 더 다양하다. 물론 음식과 관련된 글이겠지만, 시도 있고, 레시피도 있고, 산문도 있고, 소설도 있고, 노래도 있다. 이렇게 그림 또는 글과 함께하는 요리는 특별할까? 더욱 맛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특별한 질감과 풍미를 더해 주는 것 같다고 한다. 음식에 관한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면 음식에 대해 즐거움을 얻을 테고, 자연스레 음식에 완벽함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번 해보았다. 음식에 대한 기가 막힌 묘사 글을 읽거나, 완벽하게 짜인 레시피를 접하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어 본다. 음식을 만들기도 전에 묘사 글에서 이미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어떻게 만드는 지 레시피를 보고 있을 때는, 어서 빨리 요리를 해서 먹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대할 때의 행복함이란...




<모던 아트 쿡북> 중에서 ⓒ디자인하우스



반면 생각과는 다르게 그림을 볼 때는 별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거니와 냄새도 맡을 수 없는 그림에서는 별 느낌이 없다. 오히려 글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림 또는 사진의 연사체라고 할 수 있는 TV를 본다.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있으니 본능적으로 참기가 힘들다. 거기에 얼마든지 글을 얹힐 수 있다.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 그들이 하는 요리를 따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또는 글과 함께 하는 음식과 요리는 '특별하다'


이를 테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바는 정확하다. 그림 또는 글과 함께하는 요리는 특별하며 더욱 맛있게 해준다. 그걸 함께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이 책에는 다른 게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과 글은 누가 그리고 누가 썼겠는가? 당연히 유명한 이들일 테고, 그들은 여지 없이 음식과 요리를 좋아했다. 이 책을 보면 누가 어떤 음식과 요리를 좋아했고 잘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에 나온 레시피 하나만 간단히 소개해본다. 레시피를 쓴 이도, 레시피의 주인공도 너무 유명하다. 피카소의 상그리아다. 냄비에 와인 1병을 붓고 막대 계피 1개를 넣은 다음 센 불에서 가열한다. 와인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바로 오렌지 3개분의 껍질과 정향 3개를 넣고 다시 한 번 끓어오르게 둔다. 여기에 아카시아 꿀 4큰술과 코냑 2큰술, 끓는 물 반 잔 정도를 넣고, 아주 뜨거운 상태에서 두꺼운 와인 잔에 담아 낸다. 


아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전형적인 상그리아이지만, 피카소의 레시피라고 하니 왠지 특별해 보인다. 그림과 글이 함께 하는 요리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유명한 이의 그림과 글이라는 점도 있지만,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누군가도 나와 같은 요리를 하는 구나, 나와 같은 음식을 먹는구나. 



<모던 아트 쿡북> 중에서 ⓒ디자인하우스



참으로 사랑스러운 음식이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한편 저자는 음식에 대한 찬사를 아낌없이 하는데, 소개해본다. 우리가 흔히 즐기는 그런 음식에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이야. 저자는 달걀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를 건넨다. 심히 동의하는 바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둘 다 하루 중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구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할 뿐이다." (본문 중에서)


그런가 하면 버섯에 대해서는 첼리스트인 필립스의 회고록 <쇼베네 과수원에서 딴 체리>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버섯이 없으면 우리는 척박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생물이 만들어 내는 온갖 쓰레기를 분해하는 것이 바로 버섯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버섯은 땅속에서 뿐 아니라 땅 밖으로 나와서도 모든 종류의 식물에 영양을 공급하고 키운다는 점이다." (본문 중에서)


참으로 사랑스러운 음식이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저자의 사랑스러운 글과 유명 화가들의 그리 사랑스럽지는 않은 그림, 그리고 유명 작가들의 사랑스러운 글이 한데 어울린다. 결론적으로는 여기에서 사랑이 배어 나온 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한데, 독자 입장에서 자연스레 느끼게 되는 바이기도 하다. 


이제 음식을 접하기 전에, 요리를 하기 전에 한 번쯤 그림(이건 쉽지 않으니 TV 요리 프로그램으로 대체!)이나 글로 음식의 '사랑스러움'을 느껴보시라 권하고 싶다. 죽지 못해 먹고살아야 하니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맛있게 먹어보자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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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음식의 언어>



<음식의 언어> ⓒ어크로스



요즘 TV를 틀었다 하면 요리 프로그램이다. 오래 장수한 맛집 탐방 프로그램을 지나고, 영화배우 하정우로 대표 되는 먹방도 식상해질 타이밍인데 말이다. 외딴 시골에 가서 직접 삼시세끼를 해 먹고, 남의 집 냉장고를 통째로 들어와 유명 셰프들에게 즉석에서 맛있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아빠와 함께 놀러 간 아이의 귀여운 먹방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유명 포털에 '먹방 여신'이라고 치면, 수식어가 붙은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너도 나도 먹방의 왕이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여기에는 사람들의 열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다. 대표적으로 '대리만족'을 들 수 있다. 여전히 한창인 육아 프로그램이 취업도,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 젊은이들의 욕구를 대신해서 채워준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면, 요리 프로그램은 최악의 경제 상황에 시달리면서 먹을 것까지 위협 받게 된 사람들에게 대신에서 만족을 선사하는 것이다. 아니면 같은 흐름에서 최소한 먹을 거리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를 대변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여하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음식을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다 보면 자연스레 알고 싶어 진다.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인터넷에 물어보면 그 레시피가 상세히 나올 것이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될 테다. 그러면 이건 어떤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왜 생겨난 것인지. 도대체 내가 이야기하고 먹고 만드는 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지. 


케첩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의 저자 댄 주래프스키는 '케첩'에서 처음  의문이 들었다. 그는 언어학을 연구하며 홍콩에서 광둥어를 배웠는데, 그곳 사람들이 하나 같이 케첩이라는 단어가 중국어에서 왔다고 했다는 거였다. 광둥어로 케가 '토마토'를, 첩이 '소스'를 가리킨다고 하지 않는가. 얼핏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지만, 조사 끝에 나온 결론은 케첩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케첩은 원래 중국 푸젠성에서 쓰던 발효된 '생선 소스'였단다. 이 생선 소스를 중국 상인들이 퍼뜨렸고, 무역상들은 유럽에 갖고 돌아갔으며,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신을 거듭했다. 그러며 재료들이 바뀌어 갔고, 영국을 거쳐 미국까지 진출했는데, 토마토를 더한 것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설탕이 듬뿍 추가 되었고, 이는 미국의 국민 양념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세계로 수출되었다. 


그야말로 케첩 따위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가 아닌가. 이 길고 튼튼한 줄기에서 뻗어 났을 수많은 잔가지들과 꽃, 열매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저자도 궁금했는지, 독자가 궁금해 할 걸 알고 있었는지, 아주 꼼꼼히 잔가지들과 꽃, 열매들까지 눈앞에 대령한다. 글로 진수성찬을 대령한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름이 너무 생소하고 또한 다른 나라의 음식이라 큰 감흥은 없다. 


저자의 음식 사랑과 호기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국민 양념 케첩을 시작으로, 영국의 국민 음식 '피시앤드칩스'를 비롯해, 칵테일, 토스트, 칠면조(터키), 마카롱 등을 파헤친다. 거기엔 음식의 역사 뿐만 아니라 과학, 정치, 문화, 사회, 인문의 온갖 분야들이 같이 춤을 춘다. 이들은 막춤을 추는 법이 없다. 저자가 허락하지 않는다. 때로는 진득하게, 때로는 치고 빠지듯, 때로는 담백하게. 


건강에 좋은 포테이토칩을 찾는 당신, 속았다


책의 전반 주로 음식의 역사와 그에 관한 언어학적 고찰이 주를 이룬다면, 후반은 음식과 음식의 언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여행한다. 심리학부터 시작해 사회학, 역사, 과학, 미학, 심지어 마케팅까지! 가히 음식만큼, 아니 그 이상 구미가 당기는 주제와 소재이다. 


주말이면 맥주와 함께 포테이토칩을 사 들고 집에 오는데, 맥주의 탄산과 포테이토칩의 짠맛이 아주 조화롭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맥주는 싼 걸로, 포테이토칩은 비싼 걸 고른다. 어차피 안주에 불과할 터인데 그냥 싼 거 사면 되지 않느냐고 말 할 지 모르지만, 또 그렇지가 않다. 비싼 포테이토칩에는 콜레스테롤이 없고 트랜스지방도 없으며 인공적인 것이 첨가되어 있지 않단 말이다. 


저자의 조사 연구에 따르면 바로 이 모습이 비싼 포테이토칩의 마케팅 수법에 속아 넘어간 고객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비싼 칩은 포장지마다 '트랜스지방 무첨가' 같은 말로 건강을 역설하지만, 값싼 칩은 그런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 다 트랜스지방이 첨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비싼 칩은 건강을 더 많이 의식할 만한 고객들을 향해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왕 먹는 거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건강'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웃긴 건, 그들도 우리들도 포테이토칩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주말이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이 맥주의 단짝 포테이토칩을 찾을 거다. 


'음식의 맛' 못지 않게 '글의 맛'을 잘 아는 저자


이 밖에도 책의 후반부에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 터키(Turkey)와 칠면조(Turkey)는 어떻게 똑같은 음을 가지게 되었나? 밀가루(flour)와 꽃(flower) 역시 어떻게 똑같이 발음하게 되었나? 우리들의 친한 친구 마카롱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디저트, 그 시작은? 눈앞에 보지 않고 코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단지 발음으로만 '아이스크림'보다 '크래커'가 더 맛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저자는 '음식의 맛'을 아는 것 못지 않게 '글의 맛'을 잘 아는 것 같다. 형형색색 음식 사진도 없는 책을 읽으며 군침이 도는 건 난생 처음 경험했는데, 이와 더불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음식을 통해 보는 세계가 바로 이런 세계구나, (다이어트니 건강이니 떠들어 대서)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세상인데 음식으로 이런 연구까지 할 수 있구나, 음식이 정말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구나. 오랜만에 책으로 황홀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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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음식의 언어' 그리고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어크로스 출판사의 <음식의 언어>(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창비 출판사의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진중권 지음)


<음식의 언어>는 인문학이고,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은 예술 분야인 것 같아요. 

표지와 제목, 책등과 뒷표지 모두 '음식의 언어'의 압승이네요. 

저는 책표지가 꽉 차면서도 오밀조밀한 걸 좋아하는데요. 

오필민 디자이너가 그런 표지를 참 잘 만들어요. 좋습니다. 


반면 개인적으로 진중권 아저씨를 굉장히 좋아하고, 

또 이 책이 나올 수 있게 한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 다방'도 챙겨 듣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실망이 큽니다ㅠㅠ


일단 책 표지에 저자의 반쪽 짜리 얼굴을 넣은 게 최대 패착이라고 보고요. 

뒷표지에 이 책에 실린 인터뷰이들의 얼굴들이 실린 것 또한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도 그렇구요. '예술가의 비밀'이 뭔지... 


이 둘 중에서 <음식의 언어>를 다음 주 서평의 주인공으로 뽑았습니다. 

종종 음식에 관한 인문학 도서를 접했는데요. 

실망 시킨 적이 없어요^^ 요즘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도 하고요~


책의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로요^^

<음식의 언어>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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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표지 ⓒ 위즈덤하우스



필자는 15 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 왔다. 동화와 위인전으로 시작해, 역사 소설을 지나 추리 소설을 섭렵했고 대중 소설과 인문/역사를 훑었다. 그리고 최근에야 비로소 흔히 말하는 고전 문학에 발을 들여 놓았다.  


주로 손이 가는 문학 작품을 보니 미국 소설들이었다. 그것도 주로 20세기 초. 아무래도 그 무렵에 유행했던 하드보일드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당시 미국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지금 내가, 우리가, 이 시대가 쳐한 상황에 잘 먹혀 들어가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복잡한 사상이나 기호에 심취한 유럽 문학,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 문학은 거의 접해보지 못하였다. 러시아 문학계에는 세계적인 대문호들이 즐비함에도 말이다. 부끄럽게도 접한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푸슈킨의 <대위의 딸>, 체호프의 단편들, 그리고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정도이다. 손이 안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이러니한 건 몇 안 되는 이 책들 중에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필자의 필생의 책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즉, 제일 좋아하고 제일 존경하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러시아 문학은 접하지 않았을지라도 솔제니친은 잘 알고 있으니, 그 차이는 러시아 문학의 19세기 전성기와 솔제니친이 활동했던 20세기 중반 사이의 깊은 슬럼프만큼 깊다.


얼마 전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석영중 교수의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예담)를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처음부터 끝까지 먹는 얘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몇 번이나 접했던 소설이었건만 '음식'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모골이 송연해지기까지 하는 사실 아닌가. 석영중 교수는 이 소설을 두고 "먹는 얘기가 없으면 소설이 존재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의 거의 끝 부분에 다뤄지는 내용이었는데, 처음부터 자세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석영중 교수는 비단 이번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전작을 통해서도 러시아 문학을 다각도로 파고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예담)처럼 위대한 대문호를 소설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이나 인생을 두고 논했다. 또한 많은 러시아 문학들을 번역하였고, 그 와중에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음식과 먹기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는 제목대로 러시아 문학과 문학가들에 얽혀있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분명 새로운 시도이다. 러시아 문학을 완전히 섭렵한 학자가 계속해서 연구를 정진하면서 다른 것에도 눈을 돌려 새로운 분야를 창조해낸 것이나 다름없다. 해서 비록 러시아 문학을 잘 알지 못하고 아직까지 많은 관심이 가지 않음에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파트는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로 빚어진 '남의 것'과 '나의 것'의 대립에서 빚어지는 문학과 음식 이야기. 두 번째 파트는 서기 988년에 러시아에 이식 되는 동방 그리스도교로 인해 빚어지는 '육체의 양식'과 '영혼의 양식'의 대립. 세 번째 파트는 1917년 혁명으로 가시화되는 '옛 음식'과 '새 음식'의 대립. 러시아의 역사와 문학, 그리고 음식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세 파트 사이에 적절히 배치되는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 그들의 삶과 사상, 문학을 음식과 엮어 간략히 살펴 보자. 푸슈킨은 먹는 것을 좋아했지만, 음식을 탐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박한 식성이었던 것이다. 그의 소박한 식성은 그의 정확하고 간결한 문체와 소설의 소박한 분위기, 소박한 주인공과 주제 등으로 나타난다. 너무나 정확하게 들어맞는 그의 식성과 그의 문학과 전기. 아직까지는 신기하다고 말할 수밖에.


고골은 러시아 문학 전체를 통틀어서 제일 가는 대식가이자 식도락가였다고 한다. 그는 글쓰기 외에 유일한 관심사가 요리와 식도락이었고, 자연스레 오로지 먹는 일에 투신했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받은 종교교육 등으로 자신의 식욕을 끔찍히도 부끄러워 했다. 그는 신경쇠약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나고 나서부터 광신에 가까운 신앙생활에 돌입한다. 이후 '육체의 양식'을 깡그리 무시했고,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음식으로 빚어진 비참하기 그지 없는 최후였다.


체호프는 음식의 코드에 의존해 범속한 일상을 전달했고, 톨스토이는 여러 저술을 통해 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어 그는 절제의 미덕을 강조하며 쾌락으로서의 식사를 중단하였다고 한다. 이는 그가 추구했던 도덕적인 관념 체제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 음식이란 기본적인 생존 조건에 지나지 않았다. 음식에 대한 생각이 그의 삶을 지배하는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또 한 명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평생 동안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일 것인데, 그래서 그는 음식에 대해 관대했다고 한다. 고골처럼 폭식에서 단식을 경험하거나 주장하지 않았고, 톨스토이처럼 절제의 미덕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푸슈킨처럼 소박한 식성도 아니었다. 애초에 소식을 할 수밖에 없었기에.


필자가 종종 스스로에게 또는 주위 사람에게 음식과 삶에 대해서 묻는 말이 있다.


"먹기 위해 살아? 살기 위해 먹어?"


물어봐 놓고도 항상 스스로에게 계면쩍어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너무나 광범위한 철학이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들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보냈을 진데.


필자의 생각도 저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 지에 대한 답을 찾아 평생을 보내는 것보다, 그냥 내 앞에 있는 음식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 말이다.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 음식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제쳐둘 수는 없다.


"식사의 본질은 맛있게 먹고 기쁜 마음으로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데 있다."(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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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빵 굽는 고양이>


<빵 굽는 고양이> ⓒ애니북스

반복되는 일상, 그 안에는 지루함, 속상함, 기쁨, 슬픔, 좌절, 환희 등 무수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크게 두 개로 나눠서 달콤하고 쌈싸름하다고 치자. 우리는 이 반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계속되는 반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자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색다른 취미도 가져 보고, 평소 잘 못 보는 사람도 만나며, 처음 가는 곳으로 여행도 떠나곤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게 있다. 


바로 '음식'이다. 사실 음식은 우리가 가장 많이 반복하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 이지만, 지루하지도 지치지도 않는 걸 보니 거기엔 어떤 힘이 있는가 보다. 아마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본능'일 것이다. 배고프면 모든 게 맛있어 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전과 다름 없이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솜씨로 똑같은 재료를 써서 똑같은 시간을 들여 만들었음에도, 항상 미묘하게 다른 맛이 드는 것도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또 어떤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제일 큰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음식의 종류일 것이다. 


여기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때론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고 때론 일상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달래주며 때론 일상에서 얻는 환희를 나누는 이가 있다. 웹툰 <빵 굽는 고양이>(애니북스)의 주인공 정미이다. 그녀는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한치, 두치, 삼치(꽁치). 그녀에게 음식과 함께 이 세 마리 고양이는 달콤 쌈싸름한 일상을 잘 보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만화는 일상의 아주 소소한 부분들을 정갈하고 꾸밈 없이 보여준다. 만화가 이리 멋을 내지 않아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화려하고 예쁘고 귀엽고 멋있는 그림체와 배경을 주로 봐온 눈이 오랜만에 큰 움직임 없이 담담한 눈 굴림으로 호강(?)을 하고 있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보다 보니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다. 스토리를 훑고 있노라면, 마냥 편하지는 않기 때문일까. 


주인공 정미는 20대 여성으로,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실패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졸지에 백수 신세에 봉착하고 말았다. 막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음식과 고양이들과 지인들 덕분에 버텨가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처지에 있는 게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비록 만화에 불과하지만 현실에는 훨씬 더 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차마 말로 옮기기도 싫고 새삼스레 옮기기에는 너무 만연해 있다. 


그래도 주인공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니, 사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상황을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혼자서도 잘 챙겨 먹고 지인들에게 맛있는 걸 대접해 주고 고양이에게도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음식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음식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점을 포착하고 놓지 않으며 만화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동시에 만화 스토리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작용하게끔 한다. 


<빵 굽는 고양이>의 한 장면. ⓒ애니북스


음식이 좋고, 요리(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유독 '빵'을 자주 만들어 먹고 또 좋아한다.)하는 게 좋다면, 그리고 실력까지 갖춰져 있다면 그 방면으로 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결국 그녀는 제빵제과를 배우고 언니와 함께 커피숍을 차리기에 이른다. 대박일까? 쪽박일까? 그건 여기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반복되는 일상을 긍정적 에너지로 채워 나가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다. 그 앞에 어떤 것들이 있든, 내 옆에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동반자가 있을 테니까.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슬펐다가 빵을 배우게 되어 기뻤다가 카페를 하게 되어 설렜다가 주변의 멋진 카페들에 기가 눌렸다가... 그렇게 들떴다가 진정되는 날들 속에 카페 BABA 문을 엽니다." 

(본문 중에서)


이 만화는 '빵 굽는 고양이'라는 제목에 걸 맞게 빵과 고양이에 대한 상세하고 알찬 정보들로 가득하다. 따로 섹션 페이지를 통해 총 11가지의 빵 만드는 실질적 레시피를 상세히 알려주며 아울러 만화 속에서 주인공의 제빵제과 실력의 당위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또한 중간 중간에 고양이를 키우며 고양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아는 고양이의 행동들을 주인공의 말을 통해 비교적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느슨한 듯 알차고 얇지만 꽉 찬 만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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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아버지에게 있어서 음식이란]"그래, 밥은 먹었니?" 
"그래, 밥 먹어야지?"

ⓒ국제신문 DB

아버지의 인사말이자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하시는 말씀이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밥을 먹었어도, 조금 후 아버지가 식사를 하실 때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밥을 먹었다는 걸 잊어버리신 건지.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가 언제나 하는 말이었다. 잠보다 밥이 우선인 건지.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언제나 하는 말이었다. 일의 피로를 밥으로 풀으라는 듯이.

군대에 있을 때, 대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 해외에 거주했을 때 아버지께 전화를 걸면 언제나 하는 말이었다. 정말로 하실 말씀이 그것뿐이라는 듯이. 한때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듣기 싫은 말이었고, 급기야는 대꾸도 안 하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대화 단절은 어이없게도 이렇게 시작되었나 보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아버지에게 밥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밥을 먹기 위해 산다지만 대관절 밥이 얼마나 좋기에, 얼마나 중요하기에.

아버지 고향은 강원도 평창 인근 두메산골이다. 58년생이시기에, 60년대까지(그 이후에도 계속되었을 것이다) 존재했던 보릿고개를 어린 시절에 감당해야 했다. 형제들만 10명 가까이되는 대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해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서열이 중간 정도라서 위아래로 치였다. 어릴 때부터 자기 앞가림을 해야 했다. 나이가 많거나 나이가 적으면 더 챙겨주지만, 중간은 이도저도 아니지 않은가.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었을망정, 항상 굶주림에 치를 떨었다. 그 시대에 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아버지는 밥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데가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하셨던 일장연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건 내 인생에서 하나의 신조가 되어버렸다. 신조라기보다는 강박관념이라고 해야 할까. 절대 밥을 남기지 말라고. 특히 쌀 '한 톨'도 남겨서는 안 된다고. 농부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쌀. 쌀에 농부의 피와 땀만 서려 있는 건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왜 물고기를 먹을 때 어부의 피와 땀은 거론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흰 쌀밥이 아버지의 어린 시절 제삿날이나 명절에나 맛볼 수 있었던 거라는 사실을 듣고는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쌀 한 톨의 충격 아닌 충격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습관으로 이어졌고 난 밥 안 남기기로 유명해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잘 먹기로도 유명해졌다.

사실 아버지도 먹는 걸 참 좋아하신다. 가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말이다. 어릴 때 먹지 잘 먹지 못했던 한(恨)을 풀듯 거하게 드실 때는 두려움과 경외감마저 인다. 하지만 먹는 걸 좋아하시는 이유가 그것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어릴 땐 단지 없어서 못 먹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20대 시절 사진만 봐도 참으로 말랐다. 키가 175cm인데 몸무게는 60kg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먹으면서 일이 조금씩 풀리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살이 찌기 시작하셨다. 한때 80kg을 넘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70kg 정도의 적당한 체력을 유지하고 계신다. 이런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꾸준한 운동때문이기도 하지만 편식없이, 불평불만없이, 이 세상에 맛없는 음식이 없듯 음식을 즐기는 아버지의 천성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흰 쌀밥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매개체이지만 꿈에 그리던 음식이었고, 감자나 옥수수 그리고 꽁보리밥 등은 꼴도 보기 싫은 음식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감자는 지겹다고 잘 드시지 않는다. 당수치를 엄청나게 올려주는 흰 쌀밥을 많이 못 드셔서 이리도 건강하신 건지? 농담으로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슬픈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결코 미식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식도락가도 아니다. 대식가라고나 할까?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대식가이자 미식가라 할 수 있는 소설가 고골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차라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박한 식성에 가깝다. 양의 소박함이 아닌, 질의 소박함. 아버지의 식성은 어린 시절의 아픔에서 기인하지 않지만, 외형적으로는 기인한 듯 보인다. 아버지의 식성에서 화려함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버지는 '맛'을 느낄 수 없으신 게 아닌가 싶다. 느낄 여유가 없이 살아오신 것이다.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미식을 사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게 되었듯이. 아버지는 '맛있는' 음식을 드시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아픔에 기인한 절제, 맛의 대해 차등을 부여하려는 욕망을 절제한 것이다. 아버지의 음식론에서 아버지의 인생이 고스란히 보인다.

아버지에게도 분명 꿈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공부를 곧잘 하셨다던 아버지, 기억력과 암기력이 뛰어나신 아버지, 손재주가 있어서 못 고치는 게 없는 아버지, 운동도 잘 하시고 체력도 좋으신 아버지.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꿈꾸고 계신 건 무엇일까. 아버지는 생존을 위해 어린 시절 지겨운 음식들을 먹었듯이, 생존을 위해 수많은 일들을 해오셨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에 들든 마음에 들지 않든 상관없었다. 

아니, 상관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50대 중반이 넘으신 아버지. 아버지에게도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실 테고, 꼭 찾으시길 빈다. 도와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삶의 여유가 생길 테니, 아버지가 그리 좋아하시는 음식에도 호불호가 갈리길 바란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버지의 인사말의 의미를. 아버지에게 밥을 먹는다는 건,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밥 먹었니?"는 "잘 지내고 있니?", "고생많았구나" 하고 다정하게 물어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묻고 걱정하고 배려하려는 이유에서였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같이, 식사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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