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후기] 잊지 못할 2017년 여름휴가, '소야도'


스무 살까지 나에게 여름 휴가는 똑같았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러 찾아뵙기 전에 묘지 관리 및 벌초도 할 겸 강원도로 간다. 아버지 형제분들 가족과 함께, 음력으로 추석인 8월 15일을 전후한 1박 2일 내지 2박 3일의 짧은 기간으로 말이다. 벌초를 하고 근처에 유명한 막국수를 먹고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주문진에 가서 회를 먹는다. 끝. 


그래도 어릴 땐 너무 좋아 일 년을 기다리곤 했다. 또래 친척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고, 북적거리며 먼 곳으로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재밌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방학을 이용해 4박 5일씩 있으면서 물놀이도 하고 산도 타고 여러 곳을 두루두루 다니는 등 제대로 된 휴가를 보냈었다.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좋은 추억들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때 그 어린 아이들이 이제는 다 어른이 되어 서먹서먹해진 건 둘째 치고 예전처럼 마음 놓고 재밌게 놀 수 없게 되었다. 각자의 스케줄 때문에 완전체로 모이지 못하는 부분도 한 몫 하겠다. 한 번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다음에도 왠지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게 모임 아니겠는가.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도 참여를 했는데 더 나이가 먹고부터는 함께 하지 못했다.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후엔 휴가다운 휴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 지금의 아내인 여자친구와도 제대로 된 휴가를 함께 보내지 못했다. 그 역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인데, 결혼 이후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좋은 시간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련다. 


설렘과 기대, 걱정과 부담의 여름휴가


소야도로 2017년 여름휴가를 떠나는 길. ⓒ이유정



결혼을 하고 나선 여름 휴가를 처가댁과 함께 하게 되었다. 치밀하고 꼼꼼하신 장인 어른(이하 '아버님')의 주도 하에 모든 걸 다 챙겨주시는 헌신적인 장모님(이하 '어머님')께서 아내와 나를 케어해 주신다. 작년에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당일 코스로 새만금간척지 근처를 다녀왔었다. 끝없이 펼쳐진 방조제를 달리며 정신의 피로를 풀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대망의 2017년 올해는 휴가가 오기 한참 전에 스케줄을 맞추고 어디로 가서 어떤 곳에 짐을 풀고 어떤 일로 하루하루를 보낼지 미리 대략이라도 생각을 해두었다. 물론 장인 어른의 주도 하에 말이다. 나에게 있어, 머리가 다 크고 나서 이런 제대로 된 휴가는 아마도 처음일듯. 설렘과 기대가 한껏 부풀었었다. 


반면 아버님, 어머님과의 휴가도 당연히 처음이니, 걱정과 부담도 한껏 부풀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래도 자주 만나는 편이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아니라 그렇게 큰 걱정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내와 나만의, 또는 나만의 휴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다른 불만 또한 없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설렘과 기대가 7이라면 걱정과 부담, 그리고 다른 불만이 3 정도였을 게다. 한편, 아내는 너무너무 좋아했다.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우리끼리 휴가를 가게 된다면 우리가 아닌 아내만 챙겨야할 게 너무 많은데, 처가댁과 함께 가니까 생각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터무니 없이 적게 되는 게 아닌가. 그녀는 진정한 휴가를 보내게 될 거라고, 무진장 편하고 재미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아내의 말을 믿어 보기로!


'소야도', 그곳은 완벽한 휴가처


완벽한 휴가처 '소야도' ⓒ이유정



우리가 갈 곳은 인천 바다에 떠 있는 '소야도'로 정해졌다. 대부도에서 배 타고 2시간 안팎의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섬. 이른 아침 적당한 시간에 출발해, 적당한 기다림으로 기대와 설렘을 극대화 하고, 그를 실현해줄 배도 타고는 소야도로 향했다. 너무나도 맑은 날씨와 어울리는 천연의 자연 환경이 우리를 반겼다. 


아내와 난 챙겨야 할 게 너무 없었다. 그저 우리 둘의 옷가지와 몇몇 놀이품들만 챙기면 되었다. 반면, 아버님께서는 모든 경비는 물론 휴가 장소, 숙박 장소, 매일매일의 스케줄, 차 운전까지 도맡아주셨다. 어머님께서는 매일매일 삼시 세끼를 완벽하게 책임져 주셨다. 집에서도 잘 챙겨먹지 않는 삼시 세끼를 그곳에선 4일 동안 꼬박꼬박 챙겨먹었고 모르긴 몰라도 살이 많이 찌지 않았을까 싶다. 


막상 가본 소야도, 그리고 우리가 묵게 된(묵을 수밖에 없는) 곳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주 작은 섬인 소야도에는 무수한 자연 환경이 있을 뿐 카페나 슈퍼마켓, 식당 같은 이른바 문명인의 필수처가 없었다. 처음엔 '당황&황당', 그리곤 '적응'을 거쳐, 지금에는 사무칠 정도로 그리워지는 '만족'이 이어졌다. 그렇다. 그곳은 완벽한 휴가처였다.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한 때를 선물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우린 매일 똑같은 스케줄을 함께 가졌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는 다시 잠들거나 놀면서 오전 내내 방을 떠나지 않는다. 이윽고 점심까지 챙겨 먹고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해변(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몇 시간 동안 물놀이를 하고는 물이 슬슬 빠지는 때부턴 본격적 조개잡이에 진입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조개를 잡고 복귀해 자다가 저녁을 먹고 고스톱을 친다. 적당히 치다가 일찍 잠을 청한다. 아니, 하루 종일 너무 놀았기에 일찍 잠들 수밖에 없다. 


정녕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놀았던 해변. ⓒ이유정



개인적으로 난 원래 낮잠도 잘 안 자고 일찍 잠자리에 들지도 않으며 하루 종일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불안'을 난 그런 식으로 해소하려 하는 것일 테다. 한시라도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의 연속. 당연히 이번 휴가 때도 노트북과 책과 핸드폰을 가져가 무엇이라도 하고자 했다. 


과정과 결과는 내 예상과 정반대. 난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상 생활을 영위할 때 하곤 했던 또는 해야만 했던 것들 말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의 불안 때문에 해야 했던 것들과 누군가의 부탁 또는 명령에 의해 반드시 해야만 했던 것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가서도 휴가 이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과 휴가 이후에 밀려들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아내가 그랬다. 어쩐 일로 이렇게 낮잠을 자느냐고. 왜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고. 표정이 참 편해보인다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그곳이 너무 너무 좋다고 하셨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해주는 진정한 평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고. 그저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 가만히 있어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돈을 쓰러 휴가를 간다. 그래서 휴가갈 만한 곳에는 역설적으로 문명의 이기들이 그 어느 곳보다 많이 들어차 있다. 많이 생각할 것도 없이 제주도만 보아도 단 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반면 이곳은, 소야도는, 오로지 펜션들만 눈에 간간히 띌 뿐이었다. 그 주인들조차도 생필품은 옆의 큰 섬 덕적도나 멀리 인천에서 가져온다고 했다. 이런 곳이 어디있을까 싶다. 정말 다시 없을 휴가를 만든 장본인이다. 


내년이 기다려진다, 진정 휴가다운 휴가


다시 오고 싶은 그곳, 진정한 휴가가 무엇인지 알려준 그곳. ⓒ이유정



내년 여름 휴가가 벌써 기다려진다. 다들 이 곳을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어해서, 다음에도 이곳 소야도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여름 휴가를 떠날 것 같다. 그때는 노트북 따윈 들고 오지 않을 것 같다. 일상에서, 회사에서 했던 수많은 생각들도 들고 오지 않을 것이다. 


휴가가 아니더라도 아버님, 어머님, 아내와 함께 떠나는 그 어떤 여행이라도 기다려진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하든 함께 하는 사람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한가족이라는 걸 떠나서라도 그들은 나에게 가장 재밌고 가장 편하고 가장 좋은 사람들이다. 한가족인 게 너무나 좋다. 언제든 함께 할 수 있으니. 


진정 휴가다운 휴가. 일을 위한 재충전도 중요하지만 그 따위 건 잠시 접어두고, 진정 함께 하고픈 이들과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곳에서 보내는 것. 난 이번 기회로 일을 하는 와중에 휴가를 다녀오는 게 아니라, 휴가를 위해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자 한다. 


혹시 기존의 나처럼 불쌍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서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따로 또 같이 즐길 수 있는 이들과 함께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고 와라. 그리고 그런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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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캡틴 판타스틱>


숲 속으로 들어간 '캡틴 판타스틱' 벤과 6명의 아이들, 그들에게서 대안적 삶과 교육의 완벽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들에게 어떤 앞날이 펼쳐질까. ⓒ(주)더쿱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은 숲 속, 누군가가 사슴과 대치하고 있다. 달려들어 사슴의 목을 베는 그. 새카맣게 칠한 얼굴에 뭔가 이루었다는 표정이 읽힌다. 곧 근처에서 숨어 있던 사람들이 나온다. 다들 어리다. 그리고는 어른 남자 한 명이 나와 사슴의 심장을 빼낸다. 사슴을 쓰러뜨린 이의 얼굴에 피를 바르며 심장을 먹게 하곤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식의 말을 건넨다. 숲 속 부족의 성인식 같다. 


첫 장면만으로는 영화의 성격을 전혀 알 수 없는 이 영화, <캡틴 판타스틱>이다. 알고 보니 그들은 한 가족, 아버지와 아이들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숲 속 부족이 아닌, 숲 속으로 들어간 가족이다. 6명의 아이들은 아버지 '캡틴 판타스틱' 벤의 철처하고 완벽한 통제 교육 하에 훈련, 책읽기, 음악, 토론, 생존 등에서 한계 이상의 능력을 뽐낸다. 그 기저에는 현재 '바깥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과 좌파적 이상주의가 깔려 있다. 


아이들을 위한 대안 교육, 올바르고 제대로 된 인생을 위한 대안 삶의 완벽한 모습이 엿보인다. 아무래도 벤이 절대적인 신념 하에 기획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삶인 듯, 아이들도 군말 없이 힘들고 어렵고 격렬한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따른다. 첫째의 미국 유수 대학 합격 소식과 넷째의 반항아적인 기질이 불안하지만, 캡틴 판타스틱의 카리스마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이들에게 어떤 앞날이 펼쳐질까. 


누구나의 '인생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미, 메시지, 연기, 내용, OST, 그리고 결말까지 완벽한 영화 <캡틴 판타스틱>. '인생 영화' 리스트에 올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줄 안다. ⓒ(주)더쿱


영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영화가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다. 출중한 영화적 재미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고, 그리 어렵지도 그리 쉽지도 않은 메시지가 단번에 전해지고, 연기와 내용과 OST까지 완벽하며, 무엇보다 너무나도 '조화'로운 결말이 가슴을 치며 깊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 한 콘텐츠에서 파격의 불안감과 혁신의 환희를 엿볼 수 있다는 게 기적이다. 


완벽할 것 같은 이 가족에게도 큰 위기가 닥친다. 어느 정도 예견된 위기인데, 바로 엄마의 부재다. 3주나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는 엄마, 비록 아버지의 통제 하에 철저히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걱정 없어 보이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그립다. 벤은 시내로 가서 부인의 소식을 듣는다. 정신병에 걸려 동생 집에 지냈던 부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아이들에게 알리는 벤, 울부짓는 아이들, 급기야 넷째는 아버지가 엄마를 죽게 했다며 분노한다. 오랫동안 세상과 동떨어진 삶으로 미쳐서 자살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다시 벤의 통제 하에 교육 받는 아이들. 기존의 한계를 넘는 힘듬에 불안, 불만, 그리움 등이 스며든다. 머지 않아 와해될 것 같은 흔들림이 보인다. 


와중에 부인의 유서를 읽는 벤, 딸의 장례식에 오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분노 어린 장인어른의 말을 무시하고 아이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바깥 세상의 횡포에 맞서,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그들 뿐이다. 이 행동은 그들의 삶에 턴포인트가 될 것이다. 유서는 '절대 매장은 안 된다. 불교식으로 화장해달라. 뼛가루는 변기에 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엄마를 구하는 데 성공할까?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는 것'의 어려움


완벽해 보이는 벤의 가족들이지만, 그들은 참으로 극단적이다. 바깥 세상 사람들도 그들의 방식을 '틀렸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바깥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틀렸다'고 한다.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주)더쿱


멀고먼 길을 떠난 이 가족, 제대로 된 바깥 세상 구경이 처음인 듯하다.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겪는 아이들, 벤이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교육의 시작이다. 현대인들의 삶과 교육에 대한 벤의 극단적인 대안 방식, 바깥에 나오니 그들이 '틀린' 것 같다. 가족들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 또한 바깥 세상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훨씬 더 우월하고 또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잘못된 삶을 살고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 채 더 심한 극단으로 치달을 것만 같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것, 완벽한 듯 보이는 것만 있을 뿐이다. 분명 벤의 가족은 완벽에 가깝다. 육체, 정신, 지혜, 지식 면에서 또래 아이들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첫째가 미국의 최고 대학들에 모두 합격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버지 몰래 따로 교육을 받았겠지만, 그 기반은 분명 아버지의 교육 덕분이지 않은가. 그런데 완벽하진 못하다. 


6명의 아이들 중에서도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첫째, 그의 바깥 세상 체험은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받은 교육으로는 바깥 세상을 설명할 수도, 바깥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책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순 없다고, 아니 정말 사소한 것조차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고,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조차 되지 못한다고. '다름'의 대안을 넘어선 '틀림'의 극단이 불러온 폐해다. 


'올바른' 극단이 '올바르지 못한' 극단을 만나 혼란에 빠진다. 곧 수습하고는 더욱더 확고한 올바름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발견해낸다. 아니, 발견해내야 한다. 자신들이 무조건 올바르지 않다는 걸. 올바르고, 올바르지 못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정녕, 굳이, 그들이 올바르다는 걸 증명하려면 스스로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름'의 시선을 장착해야 한다. 그렇지만 참 어려울 거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는 게. 


이 영화가 전하려는 '조화'의 모습


이 영화의 위대한 점은 '조화'에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가족을 끌어내리는 꼴이 아니라, 성장의 방정식으로 더 완벽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녕 어려운 것일 텐데. ⓒ(주)더쿱



끊임없이 소용돌이 치는 머릿속,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벤의 신념이 투영된 교육 방식이 정녕 완벽해 보인다. 비단 교육뿐 아니라 삶까지도. 문명 이전에, 인간 본성에 가까운 삶인 것 같다. 올바르고 훌륭해 보인다. 그런데, 이미 문명은 발달할 대로 발달해 있다. 너무나도 올바르고 훌륭하고 완벽한 그들은 바보가 될지 모른다. 그들은 '위대'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완벽한 '정답'일 수 없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현대인 대다수의 삶은 어떨까. 누군가는 충만한 행복으로, 누군가는 불만어린 시선으로, 누군가는 회의와 만족의 모순으로 살아간다. 아마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게, 인류 문명 전체에게 비웃음을 날릴 것이다. 속물들이라고, 비인간적이라고, 형편없다고. 인류는 결코 만물의 영장일 수 없다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다. 위대하지도 않고 정답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다고 해도 말이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고민이 있기에, 극단을 멀리할 수 있다. 균형 감각과 다양성이 있다. 


오래 전부터 '상대적' '조화'라는 말을 신념 비슷한 걸로 삼아왔다. 이를 추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어떻게? 어떤 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했다. 그 방법을, 그 모습을. 다름 아닌 영화 <캡틴 판타스틱>이 전하려는 '조화'의 모습이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고. 자신의 극단적 신념에서 '다름'을 '틀림'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의 괜찮은 요소들을 배치한다. 올바르고 훌륭하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은 가지고 가되, 그로 인해 출현하는 절대적이고 적대적인 배제와 자만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특유의 균형 감각과 다양성에 올바르고 훌륭하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을 최대한 흡수하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라고? 그럼 여기에 디테일하고 회의적인 면을 장착하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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