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팽귄클래식코리아

연예인에 열광하고 연예인을 동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내가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무엇, 즉 선천적인 타고난 끼와 외모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소녀시대를 향한 삼촌팬들의 마음은 어떨까. 또한 조인성을 바라보는 젊은 여성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런 마음 속에는 젊음에 대한 환상과 이상적인 대상을 소유할 수 없다는 데에서 기인한 아쉬움이 담겨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열광함으로써 계층적 대리만족을 느낀다.


여기에는 일종의 쾌락주의도 가미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 전반적으로 쾌락주의보다는 금욕주의에 가까운 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오래된 전통 문화에서 기인한 바 강력한 여론의 힘도 한 몫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쾌락주의에도 육체적·정신적 쾌락이 있을 터인데, 연예인에 열광하고 동경하는 데에는 육체적 쾌락주의의 발호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일반 사람이라면 절대 행하지 못하거나 하기 힘든 옷차림이나 행동들을 그들이 대신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대중 앞에 서지만, 대중 안의 개인들에게는 각각의 쾌락 욕구를 대신해줄 비밀스러운 초상화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초상화는 분명히 '나'이지만, 시시각각 늙어 변해가는 내가 아닌 절대 늙지 않는 영원한 젊음의 나인 것이다. 


잔잔한 바다에서 몰아치는 쾌락의 폭풍과 파도


'심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의 1890년 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쾌락주의와 미적 숭배의 명과 암을 그리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도리언 그레이'와 그의 '초상화'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한 번만 봐도 누구나 반하게 되는, 미(美)를 극치로 끌어올려 창조한 신의 완벽한 작품이다. 바질이라는 화가 또한 그에게 반했고 그의 모습을 초상화로 남긴다. 그의 미를 완벽히 구현한 작품이었고, 도리언 그레이는 그 작품을 집에 가져간다.


여기에 헨리라는 바질의 친구이자 현란한 말솜씨의 쾌락주의자가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의 모든 사건의 발단, 즉 도리언 그레이의 사고를 완전히 바꿔 놓은 사람의 등장이다. 이 소설이 쓰인 19세기의 영국은 세계 최고의, 최대의, 최선의 국가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고, 산업이 태동해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했다. 또한 이 시기에 영국의 전통이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의 탄생인 것이다. 


당시 영국에는 두 명의 명 총리가 있었는데, 한 명은 장중하고 엄숙하며 도덕주의자인 '글래드스턴'이고 다른 한 명은 재기발랄하고 영민한 디즈레일리였다.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타이틀이 있기에,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영국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빅토리아 여왕의 서민적이고 청교도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이런 엄숙주의에서도 사교계는 활개를 보였고, 그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헨리인 것이다. 반면 바질은 그 시대의 전형적인 엄숙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리언 그레이는 어떤가? 그 어느 것에도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상징이었다. 


이런 순수의 도리언 그레이는 처음엔 바질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너무나도 지루하고 재미없는 바질에게서는 눈에 보이는 어떤 영향도 받진 못한다. 그런 가운데 그의 친구 헨리가 나타나고 그의 현란한 말솜씨와 물 흐르듯 하는 논리적 쾌락의 윤리학에 심취한 도리언 그레이는 반해 버리고 만다. 이후 그의 삶은 마치 잔잔한 바다에서 순식간에 거대한 쾌락의 폭풍과 파도가 몰아치는 것과 같이 된다. 


"저 그림이 변하고, 내가 항상 지금과 같을 수만 있다면!"


오스카 와일드. 19세기 영국의 엄숙주의 하에서도, 그는 굉장히 세련됐다. ⓒ Napoleon Sarony

쾌락주의자로 돌변한 도리언 그레이는 너무나도 완벽한 초상화를 보며, 훗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갈수록 늙고 볼품없어질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그 초상화를 질투하며 기도한다. 


"난 소멸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모든 걸 질투해요. 당신이 나를 보고 그린 이 초상화까지 질투한다고요. 어째서 내가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속에 담겨 있죠? 매 순간이 지날 때마다 내가 빼앗기는 그 어떤 것이 저 그림 속에 담겨 있어요. 아, 만약 그 반대일 수만 있다면! 만약 저 그림이 변하고, 내가 항상 지금과 같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왜 이 그림을 그린 거예요? 훗날 이 그림은 나를 조롱할 거예요. 끔찍하게 조롱할 거라고요!"(본문 중에서)


연예인을 보며 열광하고 동경하는 감정과는 반대의 감정을 보이고 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그들(계속해서 새로운 젊음이 브라운관을 채우기에)을 질투해본 적이 있는가. 나도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간직하고 싶다. 성형을 하는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위의 이유도 존재하는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질투는 일반인보다 연예인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연예인들이 성형을 하는 이유는 대중들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젊었을 적 모습에 질투가 난 것이다. 지금의 나대신 젊었을 적의 내가 변하게 할 수는 없기에, 지금의 나라도 변하지 않게 하려는 습성인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바람대로 그의 초상화는 변하기 시작한다. 어떤 화학 작용도 가미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반면에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은 한결같이 눈부시다. 그러나 그는 쾌락주의에 물들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쾌락의 도를 지나쳐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가 타락할수록 그의 초상화는 점점 더 볼품없어지고 일그러진다. 그의 타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 초상화의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었고, 그의 진짜 영혼의 모습이었다. 타락한 영혼의 모습.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눈부신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모든 것들에 대한 쾌락을 맛본 뒤에는 시들해진다. 쾌락을 향한 끝없는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태양을 향해 가던 이카루스처럼 날개가 꺾인 것이다. 그는 추락하고 결국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쾌락을 지나, 타락을 지나, 죄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의 끝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예술에서 도덕을 논하지 말라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평론가들은 싸잡아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고 한다. 당시 사회를 형성했던 틀에서 완연히 벗어나 있던 작품의 내용, 즉 쾌락주의를 옹호하고 사회규범을 조롱하고 도덕의 타락을 이야기했고 더불어 이 내용과 상징성들이 작가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그 이유였다. 이에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로 맞선다. 작가 서문에 실려 있는 말이자 그의 성향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잘 썼든지, 잘못 썼든지 둘 중 하나다. 단지 그뿐이다."(작가 서문 중에서)


그렇다. 그는 심미주의자였기에, 예술(책)을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단지 그 예술 작품이 미(美)하냐 비미(非美)하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이 작품을 굳이 도덕의 잣대로 살펴본다고 해도 이 책이 출판된 당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던 평론가들이 바보라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은 도리언 그레이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초상화를 칼로 찢으면서 끝을 맺는다. 오스카 와일드는 미를 신봉하고 쾌락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 극단에는 비참한 말로가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아직 독재의 여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예술적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콘텐츠들에 메스를 들이대고 비난을 퍼붓는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이런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엄숙주의는 자칫 쾌락의 극단을 야기할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대로 예술에서 도덕을 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예술은 예술가의 손에 맡겨야지, 실용과 합리가 그곳에 고개를 들이밀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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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축구]


ⓒ연합뉴스

초등학생, 중학생 때까지 참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즐겼다. 매일같이 축구를 하며, 어떻게하면 더 잘할 수 있을 연구하곤 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가족이 둘러앉아 응원했다. 축구를 못하게 되면 울었을 정도이니, 짐작이 가시리라. 그렇게 어린 시절을 축구와 함께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도 축구는 계속 했다. 다만 예전같이 재미있지가 않았다. 어릴 때의 '재미'를 위한 축구가 점차 퇴색되어 갔기 때문이리라. 머리가 커지다보니, 축구를 함에 있어 어떤 위계 질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축구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과의 명백한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 내지 박탈감이었다. 즉,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축구를 마지막으로 하게 된 군대에서까지 계속된다. 


이후 나의 축구를 향한 관심은 다르게 표출된다. play(경기)에서 watch(TV)가 되고 다시 play(게임)가 되고 지금은 그냥 watch(방관)이 되었다. 직접 경기에 출전해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축구를 하다가,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직접하는 건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는 것마져 지쳐서, 축구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 저것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몸은 굳어져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어디 가서 축구 좀 아는 사람 정도의 지식만을 가진 채 방관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단적인 예로,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을 할 때마다 전 세계 누적 시청수가 몇 백억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그뿐이랴? 유럽선수권대회와 유럽 4대 리그 경기들도 이와 버금가는 인기를 구사한다. 당연히 그곳에서 오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축구는 더이상 '사람들에 의해서' 굴러가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축구'가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지경에 이르렀는가? (나름 추측, 연구, 조사를 해보았다. 이 가운데 추측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자세하고 학문적인 해석을 원하신다면 따로 책을 구입해서 보는 게 좋은 듯.) 


축구의 종주국은 영국이다. 영국은 또한 산업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가? 그렇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와 축구가 시작된 시기는 엇비슷하다. 본래 옛날부터 공을 가지고 하는 놀이나 경기가 있어왔지만, 거기에 정형화된 규칙이 적용되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리게 된다.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에 하릴 없이 노닐다가 공을 발견한다. 그렇게 공놀이를 하게 된다. 이를 본 관리자는 자신이 나서서 규칙을 만들기도 하고, 심판을 보기도 한다. 분별없이 쉬는 시간을 허비하는 노동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여하튼, 걔 중에는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잘하진 못해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다. 그들은 동호회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클럽이 생기기 시작한다. 초창기에 이들은 노동자 생활과 축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영국 전역의 산업혁명 중심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지금의 맨체스터, 리버풀 등은 산업혁명 당시의 중심지였다. 


산업혁명의 열기는 전 세계를 덮기 시작하고, 자연스레 축구의 열기도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다. 점차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어가자, 돈이 몰리고 전업 축구 선수가 출현하고 스타가 탄생한다. 동호회 모임 대회는 도시 대항전이 되고 전국 대회가 되고 급기야는 전 세계 선수권 대회가 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22명의 몸좋은 선수들의 경기에 열광한다. 그 크기에 압도되고,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감동한다. 그리고 압도되고 감동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덩달아 신난다. 비로소 축구는 축제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축구의 본질은 사라진다. 


축구는 사람들 손에서 시작했지만, 곧 그 손을 떠나 세상을 횡행한다. 소설가가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사실 그 캐릭터는 이미 소설가의 손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지만 대중에게 내놓는 순간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축구는 그렇게 사람들 손에서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이제 축구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돈으로 지배하고, 축구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로 지배하고, 결국은 축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정신적 지배. 


사실 축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축구를 피해갈 수 없다. 관련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물질적 이득을 주겠고,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이득을 준다. 그리고 이들의 수는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들은 고립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90% 이상 추측에 의한 해석이니, 재미로만 봐주세요. 

올바른 해석을 알고 계신 분께서는, 가차없는 해체와 비판, 비난, 비평을 해주세요. 


언젠가는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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