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악의 하루>


현 남친과 전 남친을 한 자리에서 보게 되는, 진심을 전할 여력조차 마련되지 않은 '최악의 하루' ⓒCGV 아트하우스



"긴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 거예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다 솔직했는걸요. 커피, 좋아해요? 전 좋아해요.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는."


연기를 하는듯, 넋두리를 하는듯, 어쩌다가 홀로 남겨진 은희는 정체모를 말을 내뱉는다. 그녀에겐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였다. 현 남친과 전 남친을 한 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하루를 시작할 때는 괜찮았었는데. 우연히 길을 헤매는 일본인 소설가를 만나 아무 꺼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어쩌다가 그녀는 최악의 하루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비단 그 하루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연인과 초면을 향한 연기, 생각과는 반대의 아이러니


연기 못하는 연기지망생 은희(한예리 분). 수업을 마치고 나와 우연히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난다. 은희는 일본말을 못하고, 료헤이는 한국말을 못한다. 둘 다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은희는 설명하기가 어려워 직접 함께 료헤이가 찾는 곳으로 간다. 시간이 남아 카페로 향한 그들. 물 흐르듯이 이어지지는 않지만 보기에 풋풋하고 설레기까지 한 듯한 대화가 이어진다. 왠지 편해보인다. 


은희의 '최악의 하루'에서 유일하게 최악이지 않은 때가 바로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 료헤이를 만나는 때다. ⓒCGV 아트하우스



<최악의 하루>에서 은희가 유일하게 하루 중 '최악'이지 않은 때가 바로 료헤이를 만나는 때이다. 말도 안 통하니 속마음을 제대로 얘기할 수도 없고, 모르는 사람이니 내 본 모습을 마음대로 드러낼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가 편할 수 있다. 연기 못하는 은희는 아이러니하게 일상 생활에선, 즉 사랑의 대상에겐 연기를 잘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 즉 처음 보는 사람에겐 연기를 잘 못하니 그 모습이 부담 없이 다가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연기를 하지 않은가. 


사람은 연기자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연기를 한다. 그건 주로 만나는 사람마다 달라진다. 처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건 연기보다 본능에 가깝다. 초면, 연인, 가족, 상사, 동료, 후배, 친구 등. 여기서 가장 마음 쓰이는, 즉 가장 많은 연기를 필요로 하는 이는 누굴까? 연인이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하면, 아니 사실 가장 마음이 덜 쓰이는 이는 처음 보는 사람일 것이다. 굳이 연기를 하면서까지 잘 보이거나 자신을 감추고 그에게 맞는 모습을 보이려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은희가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태도


은희는 료헤이와의 대화 중에 온 남자친구 현오(권율 분)의 메시지를 받고 서촌에서 남산으로 향한다. 현오는 아침드라마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모자,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나타났다.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은희가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 게 오버하고 있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 아주 꼴 보기 싫다. 다만 그는 아주 잘 생겼기에, 그런 모습이 꼴 보기 싫다는 거지 본판은 아주 좋아라 한다. 은희를 밤 상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현오, 언제나처럼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다 선글라스를 뺏어 도망가려는 은희를 향해 한마디 한다. "유경아!" 은희는 선글라스를 밟아 부셔버리고 산을 내려간다. 


현오와 있을 때면 은희는 장난꾸러기가 된다. 여느 커플처럼 그와 티격태격하며 귀엽게 지낸다. 아니, 그렇게 지내고 싶은데 현오는 그렇지 않다. 꼴에 티비에 나온다고 유세떠는 것 같다. 그리고 몇 마디 안 가 은희의 과거를 들춘다. 잠시 현오가 옆에 없을 때 유부남과 바람을 핀 은희, 사실 은희는 현오와 함께 있을 때면 너무 힘들다. 우울했다가 즐거웠다가, 왔다갔다 하는 게 눈에 보인다. 물론 현오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현오도 현오 자신이 병신같다고 한탄한다. 이 커플, 답이 없다. 


은희는 현오가 너무 좋으면서 너무 싫다. 마음이 떠난 것 같은데,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한 끈만 존재하는 것 같은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그렇지 않나 보다. ⓒCGV 아트하우스



씩씩거리며 산에서 내려오는 도중 서서 아래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익숙한 남자 하나가 오는 게 아닌가. 다름 아닌 은희가 바람 핀 유부남 운철(이희준 분)이다. 아까 현오를 만나러 가는 도중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고 왔댄다. 대단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은희와 운철은 커피 한 잔 하며 근황을 묻고 답한다. "진심이 어떻게 진실을 이겨요?"라며, 행복하지 않으려 헤어진 아내와 합한다는 운철. 은희는 어이가 없어서인지 슬퍼서인지 모를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갈 길을 간다. 


운철과 있을 때면 은희는 비련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당신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우린 이루어질 수 없나 봐요. 우리 다신 만나지 마요. 또 만나면 나도 나를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으니까..." 같은 대사를 읊을 것만 같다. 그건 운철도 마찬가지다. 말인지 방귄지 모를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60년대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을 대사를 읊는 게 아닌가. 그들은 마치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아니, 연기를 하는 게 맞다. 그럼으로써 좀 더 현실적인 나를 위로할 수 있다. 절대 할 수 없는 걸 그(그녀)를 만나며 할 수 있으니까. 


얄궃게도 거짓 위에서라야 전해지는 진심


이들 삼각 관계는 지구상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적어도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서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관계 설정 중 하나다. '리얼리티하다'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현실적이긴 하니 그런 말을 붙일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이렇게 연극적인지? 왜 이렇게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운철과 있을 때면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는 은희. 연기 연습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또한 은희에게 있는 여러 '진심' 중 하나일 것이다. ⓒCGV 아트하우스



연기는 거짓말과 다름 없다. 내가 아닌 사람을, 내가 처하지 않은 상황을 연기하는 것과 "연기하고 있네"할 때의 그 연기도 모두 그렇다. 그건 엄연히 '진실'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진심'을 전하고자 한다. 진심을 전하고자, 소통다운 소통을 하고자, 진실을 숨기는 게 아닌가. 만약 진실을 전하게 되면 진심과 소통은 쓰레기가 될 뿐이다. 운철이 은희에게 말한 궤변이 생각난다. "진심이 어떻게 진실을 이겨요?" 아마 진실이 갖는 힘이 훨씬 셀 것이다. 하지만 진심이 이기길 바라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연애를 하다 보면, 진실을 숨겨야 할 때가 수없이 생긴다. 얄궃게도 그래야만 진심이 전해진다. 진실을 숨긴 거짓 위에서라야 진심이 전해지는 것이다. <최악의 하루>에 나오는 모든 이들이 거짓 위에서 춤춘다. 거짓 위에서 진심을 전하고자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 딱 한 커플만 빼고. 다름 아닌 은희와 료헤이다. 그들은 비록 소설가와 연기자라는 거짓 위에서 진심을 전하는 걸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이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거짓이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 참으로 안타깝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절대적으로 진심을 위한 거짓이 존재해야 하는 건가. 


감독의 의도도 훌륭하지만 그에 맞춤복인 듯한 배우들의 열연도 최고였다. 은희, 료헤이, 현오, 운철. 3명의 각기 다른 매력과 찌질함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 그리고 그에 맞춰 마치 다른 인격인 양 변하는 은희. 은희와 현오와 운철이 한데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데, 심장이 쪼그라드는데 발가락도 쪼그라드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될 거다. 연기 속의 연기가 서로 출동하면서 일어나는, 난감함, 찌질함, 억울함, 코믹함, 시원함 등의 온갖 감정들의 폭발이다. 그 복잡미묘함을 투박한듯 보이게, 즉 아주 섬세하게 연기를 해냈다. 이런 영화라면,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겠다. 파도 파도 또다른 의미를 받으면서, 지루하지 않은 코믹함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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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500일의 썸머>


명작의 재개봉이 열풍을 넘어섰다. 여기, 6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가 있다. 기 개봉 당시의 기록을 넘어섰다. 수많은 재개봉 명작을 넘어선 것, 그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 무엇보다 겨우 6년 만에 명작의 반열에 올라 재개봉하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영화 <500일의 썸머> 포스터.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명작의 재개봉이 열풍을 넘어섰다. 재개봉을 하지 않은 영화는 명작이 아니라는 등식이 생겨날 것 같은 지경이다. 본래 재개봉은 개봉 당시 큰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입소문이 퍼져 열화와 같은 성원에 팬서비스 차원에서 시행하는 의미가 크다. 이제는 재개봉작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2015년에는 <이터널 션사인>이 30만 명 이상을 동원하는 소위 '대박'을 터뜨렸고, 2016년에는 <인생을 아름다워>가 10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 


그리고 여기, 겨우 6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500일의 썸머>가 있다. 14만 명 정도 동원했던 6년 전 기 개봉 당시의 기록을 넘어섰다. 현재까지 모든 재개봉 영화 중 2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수많은 재개봉 명작을 넘어선 것, 그것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 무엇보다 겨우 6년 만에 명작의 반열에 올라 재개봉하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6년 동안 입소문이 퍼지며 끊임없이 재조명된 게 가장 큰 이유일 테지만, 감독과 배우들의 인지도 수직 상승도 큰 몫을 차지했다. 감독 '마크 웹'은 이 영화로 데뷔했고 이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단번에 이름값을 올렸다. 영화의 질까지 따라간 건 의문이지만. 극 중에서 주인공의 여동생으로 잠깐 잠깐 얼굴을 비추는 '클레이 모레츠'는 어떤가. 영화 고르는 눈이 아직 모자라서 그런지, 흥행에서는 계속 미끄러지지만 여러 영화를 통해 그 얼굴과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무엇보다 주연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의 변화가 눈에 띈다. 그는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후 <인셉션>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조토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어엿한 '원톱' 주연 배우로 우뚝 섰다. 아마 <500일의 썸머> 재개봉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이가 바로 그일 것이다. 


100명이든 1000명이이든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화 


영화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연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00명이든 1000명이이든 이 영화를 보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톰은 운명의 상대를 '기다린다'. 어느 날 회사에서 운명의 짝으로 확신할 만한 이를 보게 되는데, 사장 비서 썸머다. 그는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기다린다. 소심해서 그런건지, 그래서 소심해진 건지는 아직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썸머는 운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운명을 믿지도 않는데,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한다. 어릴 때 이혼한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썸머도 톰이 호감이었나 보다. 톰이 충분히 먼저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썸머가 음악 취향을 물으며 먼저 다가간다.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항상 톰의 기다림과 망설임, 썸머의 다가감과 되돌아옴이다. 그러면서 썸머가 조금이라도 다가오지 않는 걸 느꼈을 때 심하게 자책하며 친구들과 동생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이 사랑이 너무 힘들다고. 썸머는 조금씩 '나쁜 년'이 되어 간다. 


정녕 찌질한 톰, 장담하건대 톰 같은 남자들 정말 많다. 필자도 그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필자를 포함한 톰 같은 남자들, 이 영화를 보고 100% 공감하며 썸머에게 욕을 퍼부었을 게 분명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톰을 가지고 논 거냐고,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지 않느냐고. 


영화는 감각적으로 톰의 썸머와의 500일을 보여준다. 그중 절반 정도는 썸머와 함께, 절반 정도는 썸머와 헤어진 후다. 사실 일상다반사의 하나인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보여줬을 뿐인데, 이 영화가 특별한 건 보는 이에 따라, 보는 이의 상황에 따라, 보는 이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끼기 때문이다. 톰의 시선에서 보면 썸머가 나쁜 년이고, 썸머의 시선에서 보면 톰이 나쁜 놈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연애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어느새 자기 이야기가 된다. 결정적으로 같은 사람이 봤어도 연애 초보일 때 보는 것과, 시간이 흘러 연애 고수 또는 연애를 잘 이어나가고 있을 때 보는 게 완전히 다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연애 이야기라고 할까. 100명이든 1000명이이든 이 영화를 보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톰의 시선, 썸머의 시선, 제3자의 시선


톰의 시선에서 보면 썸머가 나쁜 년이고, 썸머의 시선에서 보면 톰이 나쁜 놈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연애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어느새 자기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는 반드시 두 번 이상 봐야 한다. 영화 <500일의 썸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톰의 시선에서, 톰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톰은 사실 잘못한 게 없다. 그는 단지 소심한 것 뿐이다. 소심해서 망설였고 기다렸다. 더해 운명을 믿었기에 굳이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운명이란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저절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내가 무엇을 하려 한다면 그건 더 이상 운명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기에 톰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 콧대가 하늘을 찌르거나 한 게 아니었다. 


썸머의 시선에서, 썸머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영화는 오로지 톰의 시선만 볼 수 있기에 지나치기 쉽다. 그렇지만 썸머의 입장을 들여다봐야 영화가 완성된다. 썸머는 어릴 때 겪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사랑에 대해, 운명에 대해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따라 다닌다. 진정한 운명도 없고 사랑도 없다. 자유롭게 만나고 연애하고 헤어지면 되는 거다. 진지할 필요가 어디 있나. 


그런데 그런 그녀야말로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한다. 독립적이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삶과 사랑의 방식을 추구하기에 먼저 다가가는 걸 꺼리지 않는다. 먼저 다가갔기에 먼저 발을 빼는 것도 꺼리지 않을 뿐이다. 그녀가 겪었던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게 시작되어 그렇게 끝난다. 그녀는 나쁜 년이 되기 일쑤다. 그녀라고 그렇게만 흘러가길 바라겠나? 만약 그녀가 다가가기 전에 한 발 빨리 다가오는 이가 있다면? 적어도 그녀가 나쁜 년이 되는 경우는 적을 거다. 


제3자의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보면, 톰은 소심하고 찌질하다. 보기에 따라서 나쁜 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도무지 뭘 하려고 들지 않고 뭘 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큰소리 치는 건 그라니,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썸머는 오히려 불쌍하다. 시작부터 먼저 다가간 이후 매번 먼저 다가간다. 심지어 톰이 잘못을 했을 때도 썸머가 먼저 다가갔다. 그러니 지칠 수밖에. 그녀가 지쳤을 때 톰은 역정을 낸다. 그녀가 불쌍할 따름이다. 그런데 그녀의 그런 모습이 보는 이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비추니, 더더욱 불쌍하다. 그녀가 불쌍하지 않다면, 그건 연애 초보 또는 연애에 무지한 소심하고 찌질한 운명론자일 뿐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 영화를 다시 보시라. 


수많은 연인들에게 축복이 되길...


수많은 찌질한 남자들의 성장을 도모했다면, 영화는 수많은 연인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500일의 썸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던 때에 이 영화를 봤었다. 오래 있지 않아 정확히 톰과 썸머처럼 연애를 시작했고 연애를 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헤어질 뻔 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누구나 겪는 일상다반사처럼 말이다. 다행히 바로 그 분과 결혼을 했고 그녀에게 줬던 수많은 아픔들을 속죄하며 갚아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끊임없이 다가왔고 기회를 줬고 신호를 보냈고 실망을 했지만 돌아왔다.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는 나, 평생 다가갈 거라 다짐해본다. 


그렇게 찌질했던 때 본 <500일의 썸머>, 조금씩 깨달아가는 지금 재개봉에 맞춰 그녀와 함께 다시 보았다. 나는 두 번째로, 그녀는 처음으로 보는 거다. 나는 비로소 영화의 진면목을 그리고 썸머의 본 모습을 깨달았고, 그녀는 단번에 모든 걸 꿰뚫어 보았다. 이 영화는 톰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그리고 수많은 찌질한 남자들을 도모했다. 


수많은 찌질한 남자들의 성장을 도모했다면, 영화는 수많은 연인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톰은 썸머가 비틀즈에서 링고 스타를 좋아한다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삶의 궤적이 바뀌면서 영화를 적어도 두 번 정도 보았을 이들은 그걸 이해했을 것이다. 톰이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머릿속으로 들어 오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도달한다. 


비록 만나고 연애하고 헤어지는 게 일상다반사라지만, 마음이 아픈 건 변함 없다. 그러니 부디 이 영화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거를 후회하더라도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현재와 미래를 위해 '아, 그렇게 해야 겠다. 그러면 후회 없이 행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말이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하려 하고 측은하게 여기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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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필요할 때 곁에 있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을 때도 있고, 필요할 때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죠. 아마 필요한 걸 아는데 일부러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결론은 필요할 때 곁에 있지 못했다는 것이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서로 많은 걸 이해하고 많은 걸 배려한다지만 이럴 때는 그러기 힘들 거예요. 서로 마음이 아파요. 곁에 있어주지 못한 거에 대해서, 왜 곁에 있어주지 못했냐에 대해서.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요. 뼈에 사무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았죠. 정말 나쁜 놈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 여자친구는 참으로 당당하고 강해요. 하지만 그만큼 여리고 약하죠. 그런 여자분이 많죠? 그런 아이인데, 언젠가 고시원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저는 바래다 주고 집에 왔죠. 새벽 2시쯤이었어요.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너무 무섭다고. 옆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 같다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와줄 수 없냐고 그랬어요. 그런데 바로 안 와도 된다고 해요. 저는 비몽사몽에 그녀의 말을 대충 들으며 제 마음대로 해석한 것 같아요.


'와도 되고 안 와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되겠다'


천추의 한이 되는 생각이자 완전히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그녀는 무섭기 그지 없지만, 새벽에 저를 불러내기 너무 미안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거죠. 저는 그걸 알아채지 못한 거고요. 아니, 계산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그 이후 제 스스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정도도 못해주는 게 무슨 남자친구인가. 스스로 반문했죠. 과연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는 한 건가. 


얼마 전에는 이랬어요. 그녀가 와달라고 만나자고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계속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속이 안 좋고, 몸과 마음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고 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몸이 안 좋으면 어서어서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그런 생각을 갖고 그녀한테 집에 어서 가라고 말했어요. 저는 회사 사람들과 꼭 필요하지 않은 회식과 회의를 밤늦게까지 했죠. 그날 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만나서 위로해주라는 뜻이었다고 해요.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미안했나 봐요. 돌려서 뜻을 표현한 걸 제가 알아 듣지 못하고 곡해한 거죠. 


저희가 참 오래된 연인인데, 저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줄 걸 강하게 요청할 수는 없어요. 역지사지로, 저라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상대방을 그만큼 아끼는 마음을 갖고 있는 거죠... 괜히 시간 뺏는 것 같고, 귀찮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미안하고... 저야말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정작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요. 우리 소통을 잘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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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20년 만에 친구를 만났어요. 정녕 20년 동안 보지 못했었죠.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내내 제일 친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각자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그 친구는 이사까지 갔어요. 그동안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좋더군요. 신기한 건, 정말 오랜만에 봤는데도 어색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인 듯 했지요. 


며칠 전에는 여자친구와 사귄 지 1800일 되는 날이었어요. 분명 의미 있는 날이지만, 기념할 만한 무엇도 하지 않았어요. 귀찮아서? 사랑이 식어서? 원래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서? 그렇지는 않아요. 앞으로 새로 만들 기념일이 있기에, 이 정도의 기념일은 지나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단순한 연인 이상의 무엇을 느끼는 것 같아요. 친구는 물론이고, 동반자나 분신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서로 말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니?" 


그럴 때면, 우리는 만날 운명이었다는 결론에 이르죠. 하늘이 내린 사랑. 수많은 인연들 중에 우연히 만나 함께 하고 사랑을 하고 서로를 자신보다 사랑하게 된,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 없는 우리의 모습은 하늘이 내린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현생이든 전생이든 언젠가 만나 사랑했던 던 게 분명해요.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거죠. 그러고는 금세 친근해지는, 오래전 헤어졌던 오래된 친구라고 해도 무방하겠어요.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고 반갑잖아요? 항상 그립고요.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 같은 저의 사랑 방식이 그녀에게는 어떻게 비춰질 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약속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겠다고요. 불 같은 사랑은 분명 상대로 하여금 엄청난 걸 느끼게 해줄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요. 다만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답니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동반자로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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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잖은 내 이야기에 그녀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준다. 왜 웃어준다는 표현을 썼냐면, 그녀는 평소에 웃을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웃기는커녕 세상의 추악함에 하루라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정말 잘 웃는 아이인데. 거 참 희한하네. 


그녀는 참 똘망똘망한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정말 잘했고, 회사 다니고 서는 일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고 한다. 심지어 집에서도 그러는데, 컴퓨터 포맷까지 혼자 척척 해낸다.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인간의 표본이 아닌가. 


이 모든 게 엄연한 사실인데, 분명히 그러한데, 내 앞에서는 얘가 가끔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조금 멍청하게 웃고(으허허허), 썰렁한 개그도 하고, 자기가 한 개그에 자기가 흠뻑 빠져 웃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등등. 똘망똘망한 애를 바보로 만든 것 같아 미안하네. 


얼마 전에는 실로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이 동네에서 산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이리도 안 가본 곳이 많다니. 태양이 떨어진 야밤에 30분 가량 돌아다니면서 드는 생각, '우리 동네가 이렇게 예뻤나?'


그녀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같다. 5년 동안 보면서도 아는 게 참 없어서 앞으로 더 알아가야 하고 알아가고 싶고 그 날들이 기대된다. 또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기에 이것저것 같이 해볼 생각을 하니 좋다! 


연인에 그런 말이 있던데.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가라' '서로를 바라보며 가라' 둘 다 하면 안 되나? 우린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건, 그 곳에 우리의 꿈이 있어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 테지 말 그대로 눈을 같은 곳에 두는 건 아닐 테다. 같이 가자. 


두서 없는 이야기들은 그녀와 나, 우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뭔가 형식이 있지 않은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면서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다는!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는 자유를 만끽하는 게 우리들이 사는 방법이다. 


자, 내 여자친구 소개는 충분히 되었는지? 아무래도 이번 한 번으로는 충분치도 않고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을 듯. 그래서 매주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해보는 걸로^^ 이런 글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반말은 죄송, 다음부터는 존댓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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