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 대작전(?)은 시작부터 꼬였다. 그렇게 중요한 행사였으면 사전 답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거기부터 이미 문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지도로 보니 지하철역에서 금방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먼 건 둘째치고 엄청난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헥헥 거리며 오르니 바로 옆에 보이는 건물...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다니 야속했다. 


더 큰 문제는 레스토랑의 분위기였다. 그래도 프로포즈를 많이 해봤다고 하니 아늑할 줄 알았는데, 여타 레스토랑과 별 반 다른 게 없었다. 아...아... 사전 답사... 그렇게 숨도 돌릴 틈 없이 2층으로 안내되어 종업원들의 지도(?)를 따랐다. 나름 비밀스럽게 하려고 한 것인데, 방이 몇 개 있더라. 프로포즈 방이 한두 개도 아닌 몇 개가 붙어 있더라. 


어영부영 시작된 프로포즈. 마지 못해 허락한 듯한 여자친구. 말을 들어보니 옆 방에서도 프로포즈가 진행 중인지 이 방과 똑같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더란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음식은 상당히 괜찮았지만, 그 가격이면 여자친구 기분 상하지 않게 훨씬 기억에 남을 만한 프로포즈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여자친구는 소박하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그런 프로포즈를 원했다. 난 나 좋으라고 나 편하라고 그런 상업적인 이벤트에 홀라당 속아넘어간 것이었다...


최악이라면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평생에 한 번 있는 큰 이벤트이다 보니 얼굴을 붉힐 수 만은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여자친구의 진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여자친구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거에 의의를 가지자고. 그래서 다음부터는 돈이 아닌, 진심으로 함께 하자고. 미안하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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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난 주에 20년 만에 친구를 만났어요. 정녕 20년 동안 보지 못했었죠.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내내 제일 친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각자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그 친구는 이사까지 갔어요. 그동안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좋더군요. 신기한 건, 정말 오랜만에 봤는데도 어색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인 듯 했지요. 


며칠 전에는 여자친구와 사귄 지 1800일 되는 날이었어요. 분명 의미 있는 날이지만, 기념할 만한 무엇도 하지 않았어요. 귀찮아서? 사랑이 식어서? 원래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서? 그렇지는 않아요. 앞으로 새로 만들 기념일이 있기에, 이 정도의 기념일은 지나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단순한 연인 이상의 무엇을 느끼는 것 같아요. 친구는 물론이고, 동반자나 분신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서로 말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니?" 


그럴 때면, 우리는 만날 운명이었다는 결론에 이르죠. 하늘이 내린 사랑. 수많은 인연들 중에 우연히 만나 함께 하고 사랑을 하고 서로를 자신보다 사랑하게 된,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 없는 우리의 모습은 하늘이 내린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현생이든 전생이든 언젠가 만나 사랑했던 던 게 분명해요.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거죠. 그러고는 금세 친근해지는, 오래전 헤어졌던 오래된 친구라고 해도 무방하겠어요.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고 반갑잖아요? 항상 그립고요.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 같은 저의 사랑 방식이 그녀에게는 어떻게 비춰질 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약속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겠다고요. 불 같은 사랑은 분명 상대로 하여금 엄청난 걸 느끼게 해줄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요. 다만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답니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동반자로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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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자친구 생일 데이트가 있었다. 생일 당일은 아니었지만, 주말이었기에 겸사겸사. 그녀의 생일을 챙겨준 건 2011년부터 5년째.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만족하는 생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름대로 준비했다. 사실 준비라고 해봤자 큰 게 아니었다. 


베이징 카오야(북경 오리)를 꼭 먹고 싶다고 해서 중점적으로 검색했다. 원래는 어느 음식점에서 먹고 싶다는 것까지 말했는데, 내가 다른 곳을 골랐다. 그녀가 말한 곳은 연희동의 '진북경', 내가 고른 곳은 경리단길의 '마오'. 경리단길 데이트가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였다. 결과적으로는 잘 모르겠다ㅠ


왜냐하면, 그날이 너무 더웠다. 지난 주 토요일 말이다. 정말 너무 더웠다. 나름 코스를 짜서 경리단길 한바퀴를 돌 생각이었다. '마오' 근처에 있는 유명한 케이크집에 들려 줄을 서면서까지 케이크를 득템하고, 점심 시간에 맞춰 '마오'에 간 다음, 케이크를 먹으면서 촛불이라도 불어볼 요량으로 알아둔 카페로 갔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괜찮은 카페로! 결국 생각해 놓은 경리단길 한바퀴를 돌았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큰 무리 없이 하루를 재밌게 보냈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냐면, 모두 지난 4년 간의 큰 무리가 '있었던' 여자친구의 생일 데이트 때문이다. 정말 바보 같았던 지난 날들을 생각해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한편으론 너무 너무 너무 미안하다. 


생일 케이크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었던 적이 있고, 하루 데이트 플랜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뭘 할지 몰라 헤맨 적도 있다. '이번에는 나한테 맞겨' 하며 최악의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심지어 생일 케이크를 같이 고른 적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날이었다. 


그 좋은 날이 부담스러운 날이 되는 건 정말 싫었다. 그러던 게 이번에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장소, 선물, 케잌 등 많은 고민을 했지만 좋아할 생각을 하니 얼마나 좋던지? 정말 찌는 듯이 더웠던 것만 빼면, 그래서 여자친구가 열사병 직전까지 갔던 것만 빼면, 최고의 생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난 뭘 하든지 남들보다 많이 정말 많이 느린 편이다. 행동이나 생각이 느린 게 아니라, 무엇을 이해하고 깨닫는 게 느리다는 것이다. 생일 챙겨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때는 몰랐던 걸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한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여자친구가 그런 모습을 이해해주고 알아줘서 정말 다행이다. 그걸 알아주지 않는 다면 난 마냥 느리고 답답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이번 생일도 소소했다. 아무리 소소한 걸 좋아하는 우리라고 하지만, 생일 때 만큼은 근사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래도 아직은, 소소한 걸 즐길 수 있는 지금은, 소소한 걸 즐기고 싶다. 나중에는 소소하고 싶어도 소소하지 못할 때가 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그리고 아직은 귀엽고 싶다. 이 역시도 마찬가지. 다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나의 느린 행보도 그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미국산 가정용 미싱과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 4권을 선물했다. 미싱은 직접 구매하고 내가 나중에 돈을 주었는데, 아무래도 선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따로 선물을 했다. 그런데, 만화책이라니... ㅋㅋ;; 그래도 여자친구가 평소에 너무 보고 싶어 했던 거라 서로 만족했다. 난 이런 게 지금만 할 수 있는 거라고 본다. 지금만의 우리만의 '소소'함과 '귀여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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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잖은 내 이야기에 그녀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준다. 왜 웃어준다는 표현을 썼냐면, 그녀는 평소에 웃을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웃기는커녕 세상의 추악함에 하루라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정말 잘 웃는 아이인데. 거 참 희한하네. 


그녀는 참 똘망똘망한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정말 잘했고, 회사 다니고 서는 일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고 한다. 심지어 집에서도 그러는데, 컴퓨터 포맷까지 혼자 척척 해낸다.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인간의 표본이 아닌가. 


이 모든 게 엄연한 사실인데, 분명히 그러한데, 내 앞에서는 얘가 가끔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조금 멍청하게 웃고(으허허허), 썰렁한 개그도 하고, 자기가 한 개그에 자기가 흠뻑 빠져 웃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등등. 똘망똘망한 애를 바보로 만든 것 같아 미안하네. 


얼마 전에는 실로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이 동네에서 산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이리도 안 가본 곳이 많다니. 태양이 떨어진 야밤에 30분 가량 돌아다니면서 드는 생각, '우리 동네가 이렇게 예뻤나?'


그녀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같다. 5년 동안 보면서도 아는 게 참 없어서 앞으로 더 알아가야 하고 알아가고 싶고 그 날들이 기대된다. 또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기에 이것저것 같이 해볼 생각을 하니 좋다! 


연인에 그런 말이 있던데.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가라' '서로를 바라보며 가라' 둘 다 하면 안 되나? 우린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건, 그 곳에 우리의 꿈이 있어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 테지 말 그대로 눈을 같은 곳에 두는 건 아닐 테다. 같이 가자. 


두서 없는 이야기들은 그녀와 나, 우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뭔가 형식이 있지 않은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면서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다는!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는 자유를 만끽하는 게 우리들이 사는 방법이다. 


자, 내 여자친구 소개는 충분히 되었는지? 아무래도 이번 한 번으로는 충분치도 않고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을 듯. 그래서 매주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해보는 걸로^^ 이런 글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반말은 죄송, 다음부터는 존댓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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