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낮술>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 여러 모로 보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때론 너무 웃겨서, 때론 너무 답답해서, 때론 너무 불쌍해서, 때론 너무 나 같아서. ⓒ영화사 진진



실연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혁진을 위로 하기 위해 친구들이 뭉쳤다. 의미 없는 말이 오가고 혁진은 여전히 실의에 빠져 있다. 기상이가 제안을 하나 한다. 내일 당장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 아는 형이 폔션을 하고 있으니 몸만 가면 된다는 것. 마침 장날이기도 하단다. 폔션 잡고 놀다가 강릉 해수욕장에 가서 겨울바다를 마주하며 컵라면에 소주 한잔 들이키자는 것. 술김에 생각할 것도 없이 모두 승낙한다. 


혁진은 홀로 정선에 도착한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장은 어제 끝났다고 한다. 혁진은 점심을 먹는다. 기상한테 전화가 왔는데 서울이란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일모레나 갈 수 있다고 한다. 혁진은 기상을 욕하며 반주를 한다. 기상이가 계속 전화를 건다. 이왕 거기까지 간 거 폔션에 가서 쉬라고, 내일 모레 가겠다고. 혁진의 모험 아닌 모험이 시작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은 <조난자들>의 노영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두 작품으로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상도 많이 탔다. 비록 두 작품이지만 그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본격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이다 보니 흥행하기가 쉽지 않고 영화를 계속 만들기도 쉽지 않다. 


주인공 혁진은 술을 엄청 좋아하는, 그런 이는 아니다. 다만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으니, '술 잘 마시네~'. 그럴 때마다 혁진은 좋아하며 더 마신다. 우리 모든 남자의 자화상. ⓒ영화사 진진



영화는 내가 보아 온 여타 '주류' 독립영화와는 다르다. 독립영화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이 주를 이루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문제를 건드리곤 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 <가시꽃> <마돈나> <4등>이 그랬다. <낮술>은 장르부터가 '코미디'이고 '술'이 주요 소재인 만큼 이들과는 멀 수밖에 없을 거다. 


영화에서 술 마시는 장면만 열 장면 이상이다. 장면당 5분씩만 해도 영화의 절반에 해당한다. 거기엔 어김 없이 주인공 혁진이 있는데, 술을 향한 폭주는 아니다. 그는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가, 누군가가 무슨 이유를 대서 술을 권하면 때론 즐겁게 때론 억지로 술을 마신다. 빠지지 않는 말이 있으니 "이야, 술 잘 마시네~" 


정말 찌질하지 않나. 왜 그러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런데 혁진에게서 내 모습이 보인다. 나 뿐만이랴? 여러 남자들이 보인다. 대다수이지 않나 싶다. 딱 저 한마디면 된다. 그러면 아마 대다수 남자들은 술을 거절하지 못할 거다. 술 마시는 장면만 나오면 손발이 오그라 들면서, 웃기고 슬프다가, 우울해지고, 술 진탕 마신 것처럼 허탈해진다. 그걸 의도한 거라면 정녕 잘 해냈다. 


홍상수표와는 또 다른 '진리'


남자 입장에서 술이 있는 자리에 여자가 빠질 수 없다. 혁진은 술이라면 거절을 못하는데, 또 여자도 거절 못한다. 혁진은 며칠의 여행 아닌 여행 동안 온갖 처참한 꼴을 당하는데, 온전히 술과 여자 때문이다. 애초에 실연을 당하고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정선에 가게 된 거 아닌가. 또 폔션에서 옆방 여자에게 들이대려다가, 옆방 여자의 유혹에 못 이겨 그리 된 게 아닌가. 


홍상수표 영화인듯 아닌듯, 가장 먼저 홍상수표 영화가 생각나지만 또 다르다. 또 다른 '찌질'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사 진진



술과 여자, 술자리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홍상수표 영화'. 그의 영화에 빠짐 없이 등장한다. 그의 영화에, 특히 술자리에서 꼭 등장하는 게 있으니, 허세 가득한 술자리 비평들이다. 다 상대방을 꼬시려는 수작이다. 그게 너무 눈에 드러나는데, 그래서 너무 찌질해 온몸이 가려울 정도인데, 너무 나와 똑같아서 무섭기까지 하다. 


반면 <낮술>에는 술자리 비평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고작 하는 얘기가 술에 관한 거다. '술 한잔 하러 가실까요' '술 한잔 쭈욱 들이키시죠' '술 잘 마시네' '주량이 어느 정도세요?' '거국적으로 건배' '원샷입니다' 등. 정녕 아무 의미 없는 말이 오간다. 홍상수표 술자리와는 또 다른, '진리'에 가까운 모습이다. 


'재미'의 향연, 그 뒤엔 여지없이 '술'로 인한 씁쓸함


한편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어른 남자의 로드 무비로도 읽힌다. 생각나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최고의 성장소설 중 하나로, 아이지만 스스로가 어른 같다고 자부하는 홀든 콜필드가 학교를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흘 동안 겪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다뤘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는 한편 천사 같은 이들도 만난다. 진정한 천사인 여동생 피비를 만나며 콜필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술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저 혁진의 여정에 포커스를 맞춰도 좋다. 일종의 폭소 로드 무비랄까. 그저 재밌고 재밌다. 또 보고 또 봐도 마찬가지. 단, 남자한테만 그럴듯? ⓒ영화사 진진



혁진은 어땠을까. 변태도 만나 당할 뻔하고 호의를 갖은 척 접근한 이들에게 제대로 털리기도 한다. 이상한 말을 해대는 못생긴 여자에게 명확한 거절의 뜻을 내비치니 쌍욕을 해대지 않나, 알고 보니 그 여자가 기상이의 아는 형의 사촌 여동생이라지 않나... 정말 되는 게 하나 없는, 콜필드의 여정 못지 않는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콜필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콜필드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 여정을 택한 거고 혁진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다.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너무 재밌고 생각하며 봐도 역시 너무 재밌다. 박장대소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몇몇 등장한다. 조금은 예상이 되지만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 앞에 여지 없이 '술'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일 년에 한 번은 꼭 술 때문에 인생에 남을 만한 사고를 치곤 한다. 차마 말 할 수 없는 그런 정도로 말이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술을 진탕 먹고 사고를 치곤 하는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다. 혁진이도, 아니 술을 마시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컵라면에 소주 한 잔',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환상적이다. 춥긴 너무 추울 텐데, 뜨거운 컵라면에, 속 깊이 지져주는 소주까지. 혁진이 직접 해보고 친구한테 말해줬다. "야, 너무 춥기만 하더라. (너무 추워서 컵라면하고 소주를 먹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그렇다. 술은 항상 핑계가 있다. 핑계는 핑계로만 끝나지 않고 술도 술로만 끝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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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언더 워터>


상어와 여인의 한판 승부? 상상이 안 간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는 말한다. '그냥 따라와' ⓒUPI코리아



화보용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아리따운 여인이 서핑을 즐기는... 카메라 워킹도 그에 맞춰져 있다. 적절히 치고 빠지는 역동성이 제격이다. 모든 시선이 주인공을 향해 있다.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그런데 왜 불안할까?


주인공은 의대생으로, 슬럼프에 빠져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듯 이름 모를 해변을 찾았다. 아무도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꼭 한 번씩 던지는 말, '조심해요'. 뭔가 있는 걸까. 


영화가 시작할 때 해변에서 어느 꼬마 아이가 떠내려온 카메라 헬멧을 주운다. 카메라를 가득 채운 상어의 벌린 입과 날카로운 이빨. 꼬마는 어디론가 달려간다. 상어가 출물할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상어와 주인공 여인의 한판 승부인가? 상상이 안 간다. 


상상할 필요 없다, 그냥 따라 와라


화보 찍는 초반부, 하지만 그것조차 뭔가 불안하고 초조하고 긴장된다. 상어의 존재를 미리 내비췄기 때문일까? 괜찮은 선택인듯. ⓒUPI코리아



영화 <언더 워터>는 시작부터 스토리 전개가 추측 가능하다. 상상이 잘 안 될 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있다는 것일 게다. 왠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그러나 지구 상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게 아름다운 해변에서 벌이는 여인과 상어의 사투를 아주 빼어나게 연출할 자신이 감독에게 있다는 걸로 보인다. 굳이 상상할 필요 없이 그냥 따라 와라. 


정작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선 그럴 기미가 전혀 없다. 평화롭게 서핑을 즐기는 여인 낸시(블레이크 라이블리 분). 그럼에도 불안감이 엄습하는 건, 파도가 집채보다 크고 낸시가 불안정한 상태고 시작부터 상어를 봤기 때문일 거다. 그럼 이미 긴장된 상태라는 걸까. 


그런 와중에 특히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건 카메라의 시선이다. 간간히 물 아래에서 낸시를 주시하는 듯한 시선을 보여주는 게 왠지 상어의 시선 같다. 상어가 아니라고 치더라도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곧 낸시도 느낀다. 하지만 이미 늦지 않았을까? 동물의 감은 사람의 감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영화 <테이큰>으로 회춘한 리암 리슨과 심리 게임이 가미된 액션 3부작을 비교적 괜찮게 내놓은 감독인지라,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사람을 감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순전히 배경과 카메라와 음악으로만 보여주는 신세계다. 짧은 러닝타임도 여기에 한 몫 하는데, 덕분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정신 차릴 새가 없다. 


스릴러에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가미하다


1인 고립 영화답지 않게 스릴러에 인간 승리 드라마를 가미했다. <그래비티>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는데, 과연 그 향기가 좋을까 나쁠까. ⓒUPI코리아



영화 곳곳에서 향기가 난다. 여러 영화의 향기가. 감각적이고 스피디한 전개는 <127시간>을 연상케 하고, 낸시가 고독하지 않게 곁을 지키는 갈매기 '스티븐 시걸'은 <캐스트 어웨이>의 배구공 '윌슨', <터널>의 강아지 '탱이'가 생각나게 한다. 상어가 출현하니, <죠스>나 <딥 블루씨>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짜깁기'나 '짝퉁'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외려 클리셰를 적절히 잘 가져다 썼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나아가 대단하다고 느낀 건, 이 영화가 일명 '상어 영화'의 재발견이라 불릴 정도의 퀄리티를 선보였다는 것이다. 상어는 항상 출현을 예견해주는데,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장르가 공포 아니면 액션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게끔 진행된다. 


<언더 워터>는 스릴러와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가미했다. 공포가 아닌 스릴러가 될 수 있었던 건, 낸시와 상어의 쫓고 쫓기는 일방적이지 않은 추격전이 시종일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상어에게 당해낼 수는 없는 법, 와중에 낸시는 계속 공격을 당하고 몸은 회복불능 상태로 빠르게 진행된다. 거기에 '물'과 '햇빛'이라는 자연과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화들짝 놀라기 보다 심장이 쫄깃한 상태가 지속된다. 


예측할 수 있듯, 그녀가 살아난다고 가정하면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필수다. 끝없이 계속되는 위협에도 자신을 놓치 않고 살아나가려는 불굴의 의지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어간다. 여기서 <그래비티>의 향기가 물씬 풍겨난다. 스톤 박사가 내디딘 한 발이 꽉 쥐는 낸시의 주먹과 오버랩되는 것이다. '상어 영화'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는 듯하다. 부디 이정도로만 만들어 달라. 


악랄하고 무차별한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


주인공 여인이 악랄하고 무차별한 상어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가장 궁금하다. 더욱 악랄하고 무차별하게 맞대응할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라도? ⓒUPI코리아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낸시는 유일한 여성이다. 두 명의 여성이 나오지만 낸시가 영상통화하는 여동생과 문자로만 보여지는 친구 뿐이다. 카메라 헬멧을 주은 아이, 낸시를 해변까지 태워주는 이, 해변에서 서핑 삼매경인 두 명, 낸시의 도움 요청과 만류를 무시한 이가 모두 남자인 것이다. 그들 중 세 명은 낸시의 만류를 무시하고 상어에게 먹히고 만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지. 


여자가 도움을 청할 때 무시하는 건 남자가 해야 할 짓이 아니다, 라고 배웠다. 더군다나 여자가 만류하면서 도와주려 하는데 그 또한 무시하는 처사라니, 예전이었으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자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남자들을 모조리 집어 삼킨 상어와 말이다. 


상어는 뭘까. 전투 준비가 충만한 남자의 상징일까. 여자의 도움 요청과 만류를 통한 도움을 무시하는, 남자답지 못한 남자를 해치우고 여자에게 진짜 남자의 힘을 보여주려는 걸까.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러서야 하나. 사실 낸시는 이미 전투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서핑 준비의 자세, 서핑의 도구들이 마치 전쟁을 하러 나가는 병사의 모습이다. 그녀는 전쟁에서 이길까, 질까. 불굴의 의지를 보인다는 건, 이긴다는 뜻일까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뜻일까. 


과도하고 돼먹지 못한 해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류의 여전사는 일전에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랄하고 무차별한 공격에 대응하는 건 더욱 악랄하고 무차별한 맞대응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맞대응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더욱 악랄하고 무차별한 맞대응이 아닌, 다시는 그런 식의 공격을 할 수 없게 무용지물 상태로 만드는 게 맞을 것이다. 여러 방법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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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캐롤>



영화 <캐롤> 포스터 ⓒCGV 아트하우스



1950년대 어느 날 미국, 한 남자가 레스토랑에 들어온다. 우연히 한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는 어느 여자와 같이 앉아 있다. 여자는 남자와 맞은 편 여자를 서로 소개 시켜준다. 곧 맞은 편 여자가 일어나 가고, 남자가 곧 자리를 뜬다. 그 둘은 자리를 뜨며 여자의 어깨를 살짝 집었는데, 여자가 반응을 보인 건 맞은 편 여자의 손길이다. 여자도 자리를 뜬다. 차를 타고 가면서 회상에 빠져든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테레즈(루니 마라 분), 그 날도 어김없이 개점을 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한 여자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 테레즈보다 족히 열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캐롤. 차림새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그것이다. 캐롤을 바라보는 테레즈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건 캐롤도 마찬가지다. 그 눈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로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일시적 선망이나 부러움일까. 


그렇게 그냥 지나갔으면 되었을 것을, 캐롤은 테레즈의 점포로 와 딸의 장난감을 구입한다. 짧은 대화에 오가는 눈빛. 계속해서 힐끗 거리는 눈빛은 그 농도가 한껏 짙어진 듯하다. 곧 헤어지는 그녀들, 그런데 캐롤이 장갑을 놓고 간 게 아닌가. 테레즈는 고민 끝에 캐롤의 집으로 장갑을 부쳐주고, 전화로 캐롤의 감사 답장을 받는다. 곧 그녀들은 만난다. 오랜 여정의 시작이다.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그렇다. 이 영화 <캐롤>은 1950년대 미국의 레즈비언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그녀들의 생활로 봐선 그런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다. 캐롤은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인데, 딸의 양육권이 최대 걸림돌이다. 그녀에게는 '애비'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애비와의 절친한 관계를 좋지 않게 보고 있는 듯하다. 테레즈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녀의 의사는 상관 없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낌새다. 하지만 테레즈는 그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 만은 않다. 그를 엄청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 듯하다. 


1950년대, 캐롤과 테레즈, 여자 대 여자. 이 둘은 서로 첫눈에 '반했다'. 곧 '사랑'에 빠진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런데 나는 왜 위와 같이 말하고 있는 걸까. 왜 위와 같이 강조하고 있는 걸까. 그건 그들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흔하게 접하는' 형태는 이성 간의 사랑이다. 그런데 이들은 동성 간의 사랑이 아닌가. 그것도 60여 년 전. 참으로 어렵고 조심스럽다.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렵고 조심스러운 게 사라진다.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 처음인 테레즈는 캐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 같이 점심 먹을래? 네. 우리 집에 한 번 놀러 올래? 네. 너 네 집에 한 번 놀러 가도 돼? 네. 우리 같이 여행 갈래? 네. (세상이 던질 편견 가득한 눈에 대한) 고민도 없고 (캐롤을 향한 순수한 사랑 또한) 막힘이 없다. 그런 그녀의 결정적 한 마디. 남자친구에게 말한다.


"동성 간의 사랑이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사랑인지, 일탈인지, 그럼에도 아름답다


고민도 없고 막힘도 없는 테레즈. 반면 캐롤은 다르다. 집안일이 얽히고 설켜 있다. 남편, 딸, 그리고 애비. 그녀의 남편이 계속해서 애비를 걸고 넘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캐롤이 테레즈와 가깝게 지내고 난 후, 급기야 남편이 캐롤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이유로 캐롤에게 딸의 양육권 포기를 강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상황을 미루어보아 캐롤은 동성애적인 기질이 있고, 남편은 그 기질을 비도덕적인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미국의 생각에 다름 아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캐롤과 테레즈. 캐롤은 남편에게 뒤통수를 맞고 테레즈에게 여행을 권유한다. 함께 떠나는 여행을. 테레즈는 역시 고민도 없이 '네, 같이 가요'. 그들은 여행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서로를 원하고 서로를 지극히 생각하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한다. 아니, 그들은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과연 사랑인지.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각각 남편과 남자친구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 또한 그들을 알아줄 마음이 없으며 마음도 이야기도 통하지 않고 공감도 전혀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영혼의 짝'. 성별의 문제를 제쳐두고, 그건 사랑이 아닌 일탈과 가까운 그 무엇일 수 있다. 결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결론을 어떻게 짓느냐에 달라질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영화를 보고 난 후 남는 감정은 '아름다움'이 주를 이룬다. 둘의 격정적 장면도 나오지만, 그마저도 아름답다. 그 덕분인지, '남녀 간의 사랑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라는 새로운(?) 명제가 머리 속에 자리 잡았다. 이 변화 혹은 깨달음은 인생의 크나큰 변화 혹은 깨달음이 될 수 있다. 부디 그들의 사랑이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부디 그들이 서로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캐롤이 자신을 되찾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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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심각했다. 여자친구도 지금은 웃으며 그때의 본심을 이야기 하지만, 당시에는 절대 웃을 수 없었다. 그건 명백히 여자친구의 나에 대한 시험이었다. 며칠 밤을 새도 풀리지 않을 시험. 하지만 그 시험은 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아직 우리가 사귀기 전이다. 옥신각신. 일종의 밀당이라고 할까. 우리 사이는 겉으로는 태평해 보였지만, 안에서는 태풍이 불고 있었다.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아마도 나의 사랑을 믿지 못하였나 보다. 그땐 내가 한없이 약했으니까. 역시 약한 지금보다도 훨씬 더. 


그녀는 처음에 장난 비슷하게 시작했다. 가끔씩 자기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면 그래도 자기를 사랑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진지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그 반응이 재미 있었는지, 아니면 그 반응에 실망했는지 점점 장난이 아닌 것 처럼 물어보는 거였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 저 남자예요. 어쩌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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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그녀가 장난을 치는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후이기 때문에, 나는 그 질문에 혼란이 밀려왔다. 참으로 오랜 고민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그녀는 줄기차게 물어 왔다.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셨냐고. 정말로 난감했다. 살면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앞으로 그런 생각을 할 마음도 없는데 말이다. 결국 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녀의 말에 감동을 받았고 큰 도움이 되었다. 


"난 오빠가 뭐든 상관 없어요. 오빠 자체가 중요해요."


그러며 내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다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내가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그 말에 감동받지 않을 자 누구인가.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을 고민한 뒤 나도 그녀에게 같은 말을 했다. 


"너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 없어. 너 자체가 나에겐 중요해."


당시에는 그 말에 그녀가 크게 감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에게는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그게 사실 일종의 실험이었다는 걸. 물론 오빠 자체가 중요하다는 건 당시와 지금의 변함 없는 진심이지만. 


덕분에 지금 어느 커플보다 공고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다. 웃지 못할, 그렇지만 웃음이 나오는 추억인데 중요한 걸 남겨 주었다. 그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의 사랑이 흩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그 자체로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그녀는 그녀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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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동녘라이프

사랑은 참 힘들다. 사랑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나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 건지, 행복하지 않은 사랑을 계속 해야 하는 건지, 그럼에도 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은지, 왜 웃음보다 울음이 기쁨보다 슬픔이 자주 찾아오는지... 


사랑은 참 어렵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그 이론은 단 한 사람한테 해당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만큼 그들이 하는 사랑도 모두 다 다르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겠지만 완벽한 정답은 없다. 사랑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 나를 버릴 때 나는 기꺼이 삶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을 자신 만의 콘텐츠로 형상화 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지만, 실상은 사랑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 가장 적확한 이론이 담겨져 있는 책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 사랑에 대한 이론이 없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삶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분명 비슷하게라도 만들어냈을 것이 분명하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동녘라이프)는 나온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애의 교과서이자 사랑의 지침서임에 분명하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책 중에서 사랑에 대해 가장 적확한 이론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이 조명하는 건 남녀 간의 차이이다. 


이 책이 시종일관 천명하는 건 남녀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여자는 '이해'와 '관심'을, 남자는 '인정'과 '격려'를 원한다. 이는 얼핏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엄청나다 못해 거의 모든 걸 가르는 큰 차이이다. 


남녀 간의 차이를 조명하다


이건 실제 연인·부부관계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바인데,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문제를 이야기할 때 남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여자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차분히 들어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원할 뿐이다. 


또 다른 자주 반복되는 상황을 보면, 여자는 자신이 받았으면 하는 이해와 관심을 남자에게 쏟아붓곤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려 하며 염려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자칫 남자를 짜증스럽게 하기 쉽다. 여자로부터 조종 당하고 느끼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반면 남자는 여자가 상심해 있을 때 문제의 중요성을 축소화시켜 '그까짓 것' 처럼 보이게끔 해 떨쳐버리도록 도와주고자 하거나, 자신이 그러는 것처럼 여자를 방치시킴으로서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여자로 하여금 무시 당하고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 


위의 상황들은 모두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들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의 본능에 가까운 생각이나 행동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알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이해해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차이를 끊임없이 각인 시키며, 그것을 기반으로 해 일종의 컨설팅을 해준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저자가 컨설팅 하거나 저자 본인의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 현실적이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 한다. 그리하여 이론과 방법, 사례와 실천의 사 박자가 두루 갖추어진 교과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연애의 교과서'를 넘어선 '관계의 교과서'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을 한 적이 무수히 많다. 이 정도로 많은 횟수는 근래 들어 처음 있을 정도이다. 아니, 그 어떤 책을 읽을 때에도 이토록 진실된 반응을 보인 적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이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연애의 교과서'라는 다소 고루하고 과분한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손색이 없다. 사실은 타이틀이 잘못 붙어 있는 것 같다. 다 읽고 느끼는 바는 '관계의 교과서'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겠다 하는 것이다. 물론 남자와 여자에 대한 특징을 연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통용되는 바이다. 


이 책은 남자가 남자를 또는 여자를, 반대로 여자가 여자를 또는 남자를 대할 때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 속속들이 알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연애'에만 천착되어 있었다면, 단연코 이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봐두어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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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워너브라더스


1965. 일리노이주 박람회가 열렸던 때, 남편과 함께 두 남매가 박람회에 가게 된다. 아내는 4일 간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이들이 어서 떠나주기를 바란다. 너무나 단조로운 아이오와 생활. “조용하고 사람들도 참 착하다.” 이게 전부인 삶이다.

 

그녀가 꿈꿨던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아니다. 교사 일을 하다가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그만두었지만 후회가 밀려온다. 남편은 무뚝뚝의 전형이고, 아들은 엄마의 부탁을 잔소리로 들으며, 딸은 제멋대로다.

 

전설적인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1995년 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부인. 잔잔한 일상에 파문이 일어날 시간이다. 그런데 시간은 4일 밖에 없다. 과연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아이오와에 있는 로즈먼 다리를 향하던 중 프란체스카 존슨(메릴 스트립 분)의 집에 들렀다가, 길을 묻고는 같이 다리로 향한다. 그들은 돌아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는 여자. 꽃을 꺾어주고 은근슬쩍 스킨십을 하는 남자. 농담을 주고 받으며 마음껏 웃는 남과 여. 운명적 사랑에 빠진 남과 여.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중년의 사랑(불륜)을 옹호하게 된다. 


그 어떤 판단이나 도덕이 개입되지 않아요. 그저 그대로...있는 그대로죠. 정말 아름다워요."

 

그녀는 꼭 이성과의 사랑이 아닌, 변화가 필요 했다. 일종의 일탈을 꿈꾸었다고 할까. 다른 세계의 새로운 사람과의 대면으로 설렌 것이다. 그녀는 그와 대화하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같이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 한 잔 하고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블루스도 추고 키스하고 목욕하고 그의 몸을 탐닉한다. 그녀는 그렇게 한 명의 여자가 된 것이다. 그 두려움이 동반된 설렘과 떨림이 싫지 만은 않다. 


모든 곳이 자신의 집처럼 느낀다는 남자의 말. 이것은 내 것이 여자, 이 남자는 내 것. 그런 경계선이 너무 많죠.” “모든 사람이 가족을 이루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미국의 가족 윤리에 불만이에요. 온 나라가 최면에 걸린 것 같아요.” “자신을 속이지 말아요, 프란체스카. 당신은 단순한 여자가 아니에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죄스러움을 느끼는 여자에게 남자는 "괜찮아요.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에요. 자식들에게 숨길 일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둘 간의 확고한 차이가 발견되는 대화가 계속되지만 그 둘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느낀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남자는 떠난다. 하지만 여자는 참지 못하고 새벽에 로즈먼 다리를 찾아가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겨 찾아오게끔 한다. 이후 그들은 4일 간의 여행을 떠난다. 그 둘 만의 여행. 동네에 있으면 어떤 수모를 당할 지 알 수 없다. 

 

초원과 다리... 낯익은 사람들과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기로. 그 하루가 원하는 곳으로 우릴 데려가게 뒀다.”


여자는 전에 없이 여성스러워진다. 그들은 그 몇 일 간의 휴가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의 모든 걸 알고 싶고 자신 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게 남자는 그걸 구속으로 생각한다. 남자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남자에게 있어 그 여자는 지나 가는 사람에 불과할지 모른다. 


“당신이 떠나고 나면 난 평생 여기 앉아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겠죠. 당신은 또 어디 가서 멋진 친구들과 얘길 하고 있겠죠. 내 얘기까지."


그들은 함께 떠날 것을 결심한다. 남자도 여자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여자는 여행용 짐을 싸고 그 날 밤으로 바로 떠날 준비를 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저녁 식사. 결국 여자는 같이 갈 수 없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삶보다 남편과 아이들, 가족의 삶이 더 중요하다. 그녀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선택한다. 그와 함께 가면 평생 죄를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와의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된다. 그를 사랑하기에 보낸다.


다음 날 돌아온 가족들. 아내이자 엄마로 돌아온 여자. 집안일을 하며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낸다. 어느 비 오는 날,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하게 된다. 도중에 남자를 보게 된 여자. 남자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비를 맞고 서 있는 남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여자. 당장이라도 자동차 문을 열고 그에게 가고 싶지만 결국 가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다시 만나지 못할 길을 가고, 평생 추억 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훗날 늙었을 때 남편이 말한다. 


"당신 꿈이 있었다는 거 알아. 그걸 못 이뤄줘서 미안해. 당신을 정말 사랑해."


남편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숨겨온 옛 일을. 안정과 모험. 정착과 방랑.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 확실한 느낌은 일생에 딱 한 번 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느낌을 애써 외면한 채 살아간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서로를 조금만 더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보듬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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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남자의 종말>


<남자의 종말> ⓒ민음인

'종말'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흥미롭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단어가 상당히 많이 쓰였다. 대표적으로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론이 있을 테고, 최신에는 2012년 12월 21일 종말론이 있었다. 마야달력에 이 날 이후가 없다는 논거이다. 비록 흔한 가십거리로 넘어간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그 단어에서 오는 파급력에 인간의 본성이 질 때가 많다. 


이런 힘을 이용해 유명해 지고 싶은 것이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자 하는 것이든, 그동안 '종말'이라는 단어를 쓴 거대 담론이 출현했던 것은 사실이다. 


종말 시리즈의 대표격인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호소력있는 현실 비판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논 바 있다.

 

<빈곤의 종말>로 유명한 제프리 삭스는 경제 현실 비판으로, 진정한 인간적 가치 추구를 위한 경제적 실천을 강조해 왔다.

 

이밖에도 <역사의 종말>, <질병의 종말> 등의 책이 나와 있는데, 상당히 위험하고 폭발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다. 지금 소개하는 책인 <남자의 종말>(민음인)도 미국 출간 후 여론의 반응이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갈렸다고 한다.

 

남성 우위 시대의 종언 선언


2009년은 미국에서 특별한 해라 아니할 수 없다. 최초로 미국 노동 인구 중 여성 비율이 남성을 넘어선 것이다. 20만년 동안 남성 위주였던 역사가 저물고 그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게 된 것.

 

이듬해인 2010<애틀랜틱>'남자의 종말'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칼럼이 실린다. 이 칼럼은 미국의 대학 입학률, 이혼율 등을 예로 들며 남성 우위 시대의 종언을 냉정히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 칼럼을 쓴 '해나 로진'은 관련된 칼럼, 주장, 취재 등을 종합해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들, 거시적인 이론과 주장 같은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콘텐츠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통한 분석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고 있다. 또한 억측이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은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지난 40년간 어떤 부분에서, 노동시장은 신체적 크기나 힘에 대체적으로 무관심해졌고, 그 이후 남자 노동자들은 더 이상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와 정보 경제에서 가치 있는 것은 사회적 지능과 열린 소통, 차분히 앉아서 필요한 자격증을 얻을 때까지 충분히 오래 집중하는 응력이다. 이 모든 영역에서 여자들은 남자들과 적어도 동등하며, 많은 부분에서 남자들을 능가한다. 기술은 남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했고, 육체노동은 한물갔다고 여겨지며 경제학자들이 '대인관계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는 능력이 되었다."-본문 중에서

 

남성이 월등히 유리했던, 힘의 '전쟁''노동'의 시대는 퇴조하고 있다. 반면 '정보'와 서비스' 경제 시대에서 중요한 의사 소통력, 사회적 지능, 차분히 집중하는 능력은 동등하거나 많은 여성이 낫다고 말한다. 미래의 직업은 여자의 몫이 될 것이며, 남자들은 적응이라는 과제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기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전망이다. 현재의 상태가, 정상의 자리는 영원하고도 굳건히 남성의 차지로 남을 것임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곧 사라질 시대의 마지막 숨결을 드러내는 진실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조차도 최정상 권력을 움켜쥔 남성의 지배가 느슨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본문 중에서

 

여성 우위 시대로의 전망 


분명한 건 있다. 적어도 비율로 따졌을 때, (평균적으로) 현재까지는 남성의 임금이 여성보다 높고 최고경영자, 국가원수, 국회위원 등 각계각층의 고위급 성비율에서도 남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앞서 언급했던 요직의 여성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급격히 증가할 전망이다. '남성 위주'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에서는 이미 여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27개국에서 여성 대졸률이 남성보다 높다고 한다. 소위 여성의 눈이 높아져 멀지 않아 '시소 결혼', 즉 지금의 통념 상에 있는 결혼 모델이 반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이 전유물이다시피 던 주요 직업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절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상당히 가부장적인 한국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란다. 추락을 거듭하는 남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최근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저서 <남자의 물건>에서 저자는 한국 남성에게 습관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그들의 가부장적인 형태는 사라져 가는 유물이다."-본문 중에서

 

남자와 여자, 그 본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책이다. 언제나 나오는 비판인 몇몇 사례로 성급한 일반화를 한다는 비판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종말'이라는 과감한 제목을 들어나온만큼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힐 거대담론 조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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