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제노사이드>


<제노사이드> 표지 ⓒ황금가지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출간된 때가 2012년이니까 4년 반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이 있다. 일본의 일급 엔터테인먼트 소설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그 표지와 두께에 압도 당해, 무엇보다 '제노사이드'라는 단어에 압도 당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먼저 얼마 전 그의 데뷔작이자 역시 읽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로 압도 당해 읽지 못했던 <13계단>을 독파하고 이 작품으로 넘어 왔다. 명불허전. 


다카노 가즈아키는 '추리 소설가'로서 명성이 자자한대, <제노사이드>는 장르를 완전히 초월해 버리는 나아가 단일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지식의 한계까지 초월해 버린다. 치밀한 조사로 뒷받침되는 무궁무진한 자료들과 그에 뒤지지 않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치지 않게 해주는 필력은 여전하다. 그의 팬이 되어버리기에 충분한 소설. 


'제노사이드'라고 하면 어떤 이유로 특정 종족이나 집단의 구성원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인류 사회가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를 뜻한다. 소설은 제목에 걸맞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는 명제를 다룬다. 그 한 가운데 있는 것인 '선과 악'이다. 여기서 악은 제노사이드가 아닐까 싶고, 선은 그에 맞서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인류에 위협되는 신인류 출현, 그를 둘러싼 믿기 힘든 이야기


소설은 서로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두 주인공, 특수부대 출신의 사설 경호업체 피고용인 미국인 '예거'와 약학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평범한 일본인 '겐토'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미국 대통령 '번즈'를 비롯한 미국 정부 수뇌부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접점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들 사이엔 다름 아닌 '신인류'가 있다. 


아프리카의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즉 신인류가 출현해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됨은 물론 전 인류 멸망의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번즈.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하며 재빨리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일에 착수한다. 예거를 비롯한 특집 정예 요원 4명을 훈련시켜 현장에 급파한 것. 극비리에, 돈은 두둑히. 아들이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예거는 앞뒤 볼 것 없이 뛰어든다. 


한편, 석연치 않게 급작스레 아버지를 잃은 겐토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알 수 없는, 알기도 힘든 연구에 착수한다. 미심쩍고 어이 없지만 모든 걸 알고 예견한 듯한 유언이 마음에 걸려 진행하게 된다. 먼저 이 연구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살아생전 연구와 연결해보니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검색된 건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질환. 예상 밖의 결과에 앞날이 까마득하다. 


아프리카에 출현한 것으로 생각되는 신인류, 미국 및 인류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는 신인류를 제거하려는 미국 정부,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에 걸려 투병하는 아들을 둔 예거의 신인류 제거 임무,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유언에 따라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 치료약 개발하게 된 겐토. 이어질듯 엇갈리는 이들을 스무스하게 이어주는 건 작가의 몫일 것이다. 그걸 감탄하면서 재미있게 읽어주는 건 독자의 몫이고. 


엔터테인먼트+사회고발성 메시지+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조사


데뷔작 <13계단>에서 보여주었던 '엔터테인먼트+사회고발성 메시지+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조사에 의한 전문적 식견'의 장점이 <제노사이드>에서 폭발한 느낌이다. 소설은 첫장을 열고 나서 '본격적 월드와이드 블록버스터'라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아무 생각 없이 읽는다 해도 정말 재밌는 오락 한 판 내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더할 나위 없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본문 415쪽)


정곡을 찌르다 못해 진리에 가까운 이 대사 하나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단순히 사회고발성 메시지를 훨씬 넘어서는 세상을 향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과 대답들이 등장인물들을 거치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작가가 끼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이 흐름에 방해는 할지언정 소설 자체를 훼손하진 못한다. 이 방대함에 모든 걸 끌어안고 가는 것 같다. 


방대함에는 자료와 조사에 따른 전문적 식견이 큰 몫을 차지한다. 작가는 약학, 밀리터리, 국제정세, 정치, 인류, 역사, 철학, 추격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일반인이라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사항들을 거침 없이 풀어놓는다.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는 듯. 그걸 상쇄시킬 만한 필력과 시나리오를 위해 자료 조사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했을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하튼 그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사실 이해하지 않아도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은 겐토의 연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연구는 이 소설을 지탱하는 '선과 악'에서 '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연구 자체가 아닌 연구를 하는 마음가짐. 반면 15년 전의 미국 부시 정부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번즈 정부의 파렴치한 짓은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걸 말하고 전하고자 하는 모든 걸 전한 작가, 다양한 재료들을 재고 재단하고 붙이고 합치는 능력은 신이 내린듯. 개인적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걸 보고 싶지만, 영화로는 절대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할 것 같다. 그나마 소설이기에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걸 이만큼이나 뽑아서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은 '선'에 있지 않고, '선'으로 가는 길에 있는 게 아닐까.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일찍이 지구상에 있던 다른 종류의 인류, 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나는 보고 있네." (본문 472쪽)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보여질 수도 있는 발언. 하지만 충분히 타당한 생각이자 가설이다. 최소한 그 어떤 이유로든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인 '제노사이드'는 인간만이 저지르는 행위가 아닌가. 인간이 악마의 탈을 쓰고 하는 행위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노사이드'이겠지만, 또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행위가 '제노사이드'이기도 하다. 인간은 악한 존재인가. 번즈가 하려는 행위, 즉 신인류를 싹부터 제거해버리려는 행위는, 비록 그 대상이 '1'에 불과하지만 종족 자체를 말살해버리려는 것이기에 '제노사이드'이다. 어찌 이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의 정의일 수 있을까. 소름이 끼치지만 부정하기도 힘들다. 


세상을 바꾸는 건 항상 소수, 그들은 극비리에 벌이려는 이 제노사이드를 저지할 수 있을까? 무슨 힘으로?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선'에 의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노사이드'를 일으키는 이가 정치적인 것과는 다르게, 그걸 저지하려는 이들은 비록 고민은 할지언정 순수한 마음이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게 맞는 것 같아서,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선'은 '선'에 있지 않고, '선'으로 가는 길에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은 선이냐 악이냐로 절대 재단할 수 없다. 다만 어디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제노사이드'라는 행위가 용서할 수 없는 짓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선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행위 이면에 무수히 많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요소들이 뒤엉켜 있음은 물론이겠다. 그 길로 계속 나가야함도 물론이다. 선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길로 계속 가려고 하되 숙고와 질문과 돌아봄을 멈추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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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아우름

2014년 9월,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빠뜨린 사고가 일어났다. 데뷔 2년 차로 인지도를 점점 올리고 있던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그동안 걸그룹, 보이그룹을 막론하고 자동차 사고가 참 많이 났었는데, 이번에는 얘기가 달랐다. 5명의 멤버 중에서 2명이 사망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매니저의 과속으로 인한 바퀴 손실이었다. 전날 대구에서의 녹화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고 한다. 이미 매니저에게 과실을 물어 선고가 된 상황에서 진짜 원인을 찾아봐야 무슨 소용이겠냐 마는, 빡빡하다 못해 살인적인 스케줄이 소녀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걸그룹은 감당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다. 비록 그 자신들이 그 길을 선택했다고 해도.


대한민국 걸그룹의 민낯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문학동네, 이하 '걸그룹'>은 대한민국 걸그룹의 민낯을 다룬다. 신문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저자 이학준이 1년 동안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매니저로 자처하면서 그 속살을 적나라하게 들어내려 한다. 왜? 케이팝의 신화, 그 뒤에 감춰진 속살을 보기 위해서 란다. 그리고 십대에 불과한 아이들이 인생을 모두 이해한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그런 아이돌 스타들의 진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서 라고 한다. 그는 이것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요량이었다. 


일단 물질적인 결과물은 훌륭하게 보여준 듯하다.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이라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세계 유수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이렇게 책으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영상과 텍스트, 감독이자 기자인 저자가 이루고자 했던 바를 완벽하게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 그가 보고자 했던 '케이팝 신화의 감춰진 속살'을 봤을까? 단순히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힘들고 아프고 치열하고 처량하다 못해 지옥 같다는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동안 YG를 위시해 많은 아이돌이 데뷔도 하기 전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속살을 드러냈다. 물론 상당 부분 만들어진 모습일 테고 진짜 모습이 아닐 터다. 그래도 그들의 아픔과 힘듦은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보자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어디서 많이 보고 들었던 걸 재탕하는 느낌이랄까? 책을 보는 중간 중간 의식한 듯한 말을 많이 하는데, 아무리 진짜 속살을 보려고 해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이상 완벽하게 진짜 민낯을 보긴 힘들 거라는 점을 돌려서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책은 이 다큐멘터리는 나올 이유가 없다. 애초에 기획부터 잘못 된 것이다. 뭔가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게 뭘까. 


관계에 주목해 민낯의 다른 면을 보다


그래서 저자는 그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9명이나 되는 멤버들이고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그룹이다 보니 그 안에서 치열한 경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나인뮤지스'라는 그룹은 모델돌이라는 호칭을 붙일 만큼 반 수 이상이 모델 출신이어서, 모델파와 비모델파의 경쟁과 대립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졸업'이라는 시스템으로 기수를 나누어 경쟁을 부추겼다. 회사 입장에서는 '나' 아니면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기에 그 경쟁은 멤버들의 피를 말리게 했다. 


나인뮤지스는 2010년에 데뷔해서 2015년으로 데뷔 6년 차를 맞이하는 중견 걸그룹이다. 미쓰에이, 시스타, 걸스데이 등과 같은 년에 데뷔했다. 이 중에 미쓰에이 같은 경우는 데뷔와 동시에 특급 속도로 최고의 반열에 올라갔지만 나인뮤지스는 상당 기간 동안 정상을 맛보지 못했다. 데뷔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명이 탈퇴했는데, 그녀는 교통 사고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이였다. 또한 좋지 않은 계기로 리더가 바뀌는 사태도 있었다. 그녀는 잘 이겨냈지만 결국 탈퇴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관계는 멤버와 회사 간에도 존재한다. 더 들어가서는 매니저들이다. 안무, 음악, 스타일 등 수많은 매니저들이 존재하는데 그들과 멤버들 간의 관계란 참으로 묘하다. 매니저들도 피고용인의 입장이지만, 사실상 회사를 대변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멤버들에게 살갑게 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은 언제든 경쟁에서 도태되어 다시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확실한 차별 요소를 가지고 촬영에 임했고, 그걸 영상과 책으로 옮겼다. 


책을 읽고 남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걸그룹의 뒷모습,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진짜 모습을 왜 봐야 하는지? 치열하거나 힘듦 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기에, 그들의 치열하고 힘든 데뷔까지의 삶을 보고는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는다. 차라리 탐사보도를 해 그야말로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추악한 모습을 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어정쩡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제일 거슬리는 건 윤문을 심하게 한듯한, 도무지 저자 본인의 글이라고 믿기 힘든 문체이다. 특히 장을 새롭게 들어갈 때마다 계속되는 감성적이고 매끈한 묘사들. 이 묘사들이야말로 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 제일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저자가 최소한의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이 보여 읽는 내내 불쾌하진 않았다. 멤버들, 매니저들, 회사, 대중, 언론을 차별하지 않고 두루두루 까면서(?) 걸그룹 띄어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저자의 기막힌 기획과 실행력,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잔잔한 연민에게 소소한 박수를 보내며 더 이상은 이런 종류의 콘텐츠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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