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3'에 이어집니다.

숨가쁘게 달려온 '출간 연재'가 끝났습니다^^ 혹시! 더 원하시는 분이 많다면 더 이어나가보도록 하겠지만, 책을 구입해서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ㅋ 그리고 시리즈가 계속 이어나간다고 하니~ 소장해보심이? 저는 다 구입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출간 연재'를 카카오 채널에서 연재해 왔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블로그와 카카오 채널에 동시 연재 해보았어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해보고 싶네요^^



나는 상자로 돌아가서 무서운 기구를 꺼내고, 개구기도 함께 꺼내서 앞니에 끼우고 말의 입이 크게 벌어질 때까지 톱니바퀴로 개구기를 열었다. 그러자 모든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문제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입의 반대쪽에도 첫 번째 것과 똑같은 거대한 가지가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이제 나는 그것을 두 개나 잘라내야 했다.

늙은 수말은 다 알아차린 것처럼 눈을 감다시피 하고 참을성 있게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발가락을 꼬부린 채 작업을 계속했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이빨이 부러지자 하얀 테를 두른 눈이 크게 뜨였지만, 그 눈에는 가볍게 놀란 표정이 떠올랐을 뿐이다. 말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반대쪽 뼈를 잘라내는 동안에도 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개구기가 턱을 억지로 벌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말은 따분해서 하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기구를 치우는 동안 존 노인은 풀밭에서 뼛조각을 집어 들고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가엾은 녀석. 잘했소, 젊은 선생. 이젠 녀석들도 기분이 훨씬 좋아지겠지.”

돌아오는 길에 건초꾸러미에서 해방된 존 노인은 아까보다 두 배나 빨리 걸을 수 있었고, 쇠스랑을 지팡이처럼 사용하여 맹렬한 속도로 언덕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나는 기구 상자를 몇 분마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기면서 숨을 헐떡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절반쯤 올라갔을 때 기구 상자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 기회에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렸다. 존 노인이 초조하게 중얼거리는 동안 나는 뒤에 남겨두고 온 말 두 마리를 돌아보았다. 말들은 여울로 돌아가 놀고 있었다. 활기차게 서로 쫓아다니고 발로 물을 튀겼다. 벼랑은 그 장면에 어두운 배경막을 이루었다. 반짝이는 강물, 청동색과 황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나무들, 향기로운 초록색 풀밭.

농가 마당으로 돌아오자 존 노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한두 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고맙소, 젊은 선생.” 그러고는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내가 일을 무사히 끝낸 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구 상자를 자동차 트렁크에 집어넣고 있을 때, 아까 언덕을 내려가는 도중에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양지바른 구석에 여느 때처럼 쾌활하게 앉아, 수북이 쌓인 자루에 등을 기대고 낡은 군용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그 늙은 짐승들을 보러 내려갔었군요?”

“영감님은 규칙적으로 그 말들을 찾아갑니까?”

“규칙적이라고요? 날마다 가죠. 날마다 영감님이 거기로 터벅터벅 내려가는 걸 볼 수 있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어요. 그리고 갈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가져가지요. 곡식자루나 잠자리에 깔아줄 짚이나.”

“그런 일을 12년 동안이나 했군요?”

남자는 보온병 마개를 열고 홍차 한 잔을 따랐다.

“그동안 말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녀석들을 말고기 장수한테 팔았다면 목돈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지 않나요?”

“맞아요. 이상한 일이네요.”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은 병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줄곧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날 아침에 파넌과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았다. 그때 우리는 가축을 많이 키우는 사람이 개개의 동물에게 애정을 느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방금 다녀온 목장에는 축사마다 가축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존 노인은 가축을 수백 마리나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날씨와 상관없이 날마다 그 언덕을 내려가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왜 그는 그 늙은 말들의 말년을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채웠을까? 왜 그는 자신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마지막 안락과 평안을 그 말들에게 주었을까?

그것은 정녕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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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2'에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들은 까불면서 장난을 치려고 존 노인의 주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발을 구르고, 머리를 흔들고, 그의 모자를 주둥이로 눌러서 눈을 덮어버리기도 했다.

“그만 해!” 그가 외쳤다. 하지만 그는 암말의 갈기를 잡아당기고 수말의 목을 쓰다듬었다.

“이 말들이 마지막으로 일을 한 게 언젭니까?” 나는 물었다.

“한 12년쯤 됐을 거요.”

나는 존 노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12년 동안 말들은 줄곧 여기 있었나요?”

“여기서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놀고…… 은퇴한 거나 마찬가지요. 그때까지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만한 보상은 받을 만하지.” 그는 잠시 어깨를 웅크리고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말없이 서 있다가 마치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했다. “내가 노예처럼 일하던 무렵엔 이 녀석들도 노예나 같았지.”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연푸른 눈 속에서 그가 동물들과 함께 나눈 고통과 고난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감추어졌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2년이라니! 도대체 이 말들은 몇 살이나 됐습니까?”

존 노인의 입이 한쪽 구석만 말려 올라갔다.

“당신이 수의사니까 나한테 알려줘 보시오.”

나는 이빨의 마모도와 경사도 같은, 말의 나이를 판정하는 여러 단서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얌전히 서 있는 암말의 윗입술을 뒤집고 이빨을 살펴보았다.

“맙소사!” 나는 놀라서 숨을 헐떡거렸다.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앞니는 엄청나게 길었고, 앞으로 튀어나와 약 45도 각도로 위·아랫니가 서로 만나고 있었다. 어금니에 홈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닳아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웃으면서 존 노인을 돌아보았다.

“나이가 몇 살인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영감님이 말씀해주셔야겠는데요.”

“암말은 서른 살쯤 됐고, 수놈은 한두 살 어려요. 암말은 새끼를 열다섯 마리 낳았고, 이빨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것 말고는 병을 앓은 적이 없다오. 이빨을 몇 번 갈아주었는데, 이제 또 갈아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둘 다 쇠약해지고 있어서, 건초를 씹다가 입에서 조금씩 흘리고 있지. 수놈이 더 심해서 먹이를 씹는 것도 이 녀석한테는 아주 힘든 일이오.”

나는 암말의 입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혀를 잡고 한쪽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어금니를 재빨리 조사해보니 내가 의심한 대로 윗니의 바깥쪽 가장자리가 너무 많이 자라서 톱니처럼 깔쭉깔쭉해 볼을 자극했다. 아래쪽 어금니의 안쪽 가장자리도 비슷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혀의 피부가 약간 벗겨져 있었다.

“제가 곧 암말을 편안하게 해주겠습니다. 저 날카로운 이빨 가장자리를 줄로 갈아내면 신품과 마찬가지로 좋아질 겁니다.”

나는 기구 상자에서 줄을 꺼낸 다음, 한 손으로는 말의 혀를 잡고 뾰족한 부분이 충분히 줄어들 때까지 이따금 손가락으로 확인하면서 이빨의 거친 표면을 갈아냈다.

“이 정도면 되겠어요.” 잠시 후에 나는 말했다. “너무 매끄럽게 갈고 싶지는 않네요. 그러면 말이 먹이를 으깨지 못할 테니까요.”

존 노인은 약간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소. 이젠 다른 녀석을 좀 봐주시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저 녀석이 훨씬 더 잘못되어 있다오.”

나는 수말의 이빨을 만져보았다.

“암말과 똑같은데요. 이 녀석도 금방 고쳐놓겠습니다.”

하지만 줄을 밀 때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줄이 입 뒤쪽까지 완전히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줄을 막고 있었다. 나는 줄질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최대한 밀어 넣어 탐색해보았다. 그리고 이상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될 장애물이었다. 그것은 입천장에서 아래쪽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뼈 같았다.

이제는 제대로 봐야 할 때였다. 나는 회중전등을 꺼내 혀 뒤쪽을 비추었다. 이제 문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위쪽의 마지막 어금니가 아랫니 위에 겹쳐져서 뒤쪽 가장자리가 이상할 만큼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8센티미터쯤 되는 칼 모양의 미늘이 잇몸의 부드러운 조직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뽑아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도 당장. 나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는 것을 겨우 억눌렀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가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긴 손잡이가 달린 그 가위에는 가로대로 작동하는 나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보기만 해도 오싹했다. 나는 누군가가 풍선을 부는 것도 무서워서 못 보는 사람인데, 이것은 그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우선 가위의 날카로운 날을 이빨에 고정시키고 가로대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린다. 곧 이빨이 거대한 지레장치 밑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언제라도 이빨이 부러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빨이 부러질 때는 누군가가 귀에 대고 소총을 발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개 큰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이때였다. 하지만 다행히 이 말은 얌전한 늙은 말이니까, 뒷다리로 일어나서 춤을 추며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자란 부분에는 신경이 공급되지 않으니까, 말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소음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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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1'에 이어집니다. 



데너비 농장은 그냥 규모가 큰 농장이 아니라 한 남자의 인내와 기술이 낳은 기념비적 농장이었다.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집, 넓은 축사들, 낮은 산비탈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목초지는 모두 존 스킵턴 노인이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이룩한 성취의 증거였다. 그는 교육도 전혀 받지 못한 농장 일꾼으로 출발하여 이제 부유한 농장주가 되어 있었다.

그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존 노인은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했을 만큼 힘든 일을 평생 계속해왔다. 그 생애에는 아내나 가족이 들어갈 여지도 전혀 없었고 육체적 쾌락을 누릴 여유도 없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에게는 농사 문제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있었고, 그것이 존 노인을 이 지역의 전설로 만들어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 길로 갈 때 나는 다른 길로 간다”는 그가 즐겨 인용하는 격언이었고, 다른 농장들이 파산으로 내몰리고 있던 어려운 시기에도 그의 농장들이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 데너비는 존 노인의 여러 농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데일 저지대에 각각 150헥타르쯤 되는 넓은 경작지를 두 개나 갖고 있었다.

그는 승리를 얻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랫동안 승산 없는 싸움을 했고, 너무 격렬하게 자신을 몰아대서 이제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온갖 사치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밑에서 일하는 일꾼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도 존 영감보다는 나은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 잠시 멈춰 서서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 집을 바라보았다. 혹독한 기후를 300년 넘게 견뎌온 그 저택의 우아함에 나는 새삼 감탄했다. 사람들은 데너비 저택을 보려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납으로 씌운 높은 창문이 달려 있고 이끼가 자란 낡은 기와 위로 거대한 굴뚝들이 우뚝 솟아 있는 우아한 장원 저택의 사진을 찍었다. 방치된 정원을 지나고 넓은 계단을 올라가 거대한 문 위에 돌로 만든 넓은 아치가 씌워져 있는 입구까지 가보는 사람도 있었다. 옛날에는 중간 문설주가 있는 그 여닫이 창문에서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아름다운 여인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고, 주름장식이 달린 저고리와 반바지를 입은 기사가 끝이 뾰족한 갓돌을 얹은 높은 담장 아래를 걷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존 노인이 초조하게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단추도 다 떨어지고 누더기가 된 그의 코트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허리에 두른 기다란 삼실 한 가닥뿐이었다.

“잠깐 들어오시오, 젊은 선생.” 그가 외쳤다. “갚아야 할 외상값이 조금 있다오.”

그는 앞장서서 집 뒤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요크셔에서는 청구서가 항상 ‘약간의 외상값’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우리는 판석이 깔린 부엌을 지나 우아하고 널찍하지만 가구라고는 탁자 하나와 나무의자 몇 개와 부서진 소파 하나밖에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존 노인은 벽난로로 다가가서 시계 뒤에서 종이 다발을 꺼냈다. 그리고 종이 다발을 뒤져서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은 다음, 수표책을 꺼내 내 앞에 탁 내려놓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청구서를 꺼내 거기에 적힌 금액을 수표에 옮겨 쓴 다음 서명해달라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중하게 정신을 집중하여 글씨를 썼다. 이목구비가 작고 세파에 찌든 얼굴을 낮게 숙여서, 낡은 헝겊 모자의 앞챙이 펜에 닿을 지경이었다. 바지가 다리 위쪽으로 치켜 올라가서, 의자에 앉으면 앙상한 장딴지와 복사뼈가 드러났다. 그는 양말도 신지 않고 맨발로 무거운 장화를 신고 있었다.

내가 수표를 주머니에 넣자 존 노인은 벌떡 일어났다.

“강까지 걸어가야 할 거요. 말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는 거의 뛰다시피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갔다.

나는 기구 상자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꺼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닐 때마다 내 환자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상자는 납으로 가득 찬 것처럼 무거웠고, 담장으로 둘러싸인 목초지를 지나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가벼워지지는 않을 터였다.

존 노인은 쇠스랑으로 건초꾸러미를 푹 찔러서 자루를 어깨 위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경쾌한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통용문을 차례로 지나갔고, 목초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를 때가 많았다. 존 노인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나는 숨을 조금 헐떡거리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그가 나보다 적어도 쉰 살은 더 많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절반쯤 왔을 때 우리는 오랜 전통의 ‘담쌓기’ 작업을 하고 있는 남자들과 마주쳤다. 데일스의 푸른 언덕 비탈 곳곳에 무늬를 그리고 있는 돌담에 뚫린 구멍을 보수하는 작업이었다. 남자들 가운데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그는 쾌활하게 외쳤다.

“안녕이고 뭐고 어서 일이나 해.” 존 노인은 투덜거리며 대꾸했고, 사내는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비탈을 다 내려가 평지에 도착하자 나는 기뻤다. 내 팔은 몇 센티나 늘어난 것 같았고,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존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였다. 그가 어깨에 걸쳤던 쇠스랑을 흔들자, 갈퀴에 꽂혀 있던 건초꾸러미가 풀밭에 쿵 떨어졌다.

말 두 마리가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좁은 강변은 초록빛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잔디밭으로 차츰 변했다. 그 강변 바로 너머에 자갈이 깔린 여울이 있었다. 말들은 그 여울에 발목까지 물에 잠긴 채 서 있었다. 말들은 우리가 접근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서로 코와 꼬리를 맞대고 턱을 상대의 등에 부드럽게 문질렀다. 건너편 강둑 위로 튀어나온 높은 벼랑이 바람을 막아주었고, 우리 양쪽에는 참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숲이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말들이 아주 멋진 곳에 있군요.” 나는 말했다.

“그래요. 더운 날씨에도 여기서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고, 겨울이 오면 헛간으로 가지요.” 존 노인은 문이 하나뿐인 건물을 가리켰다. 벽이 두껍고 지붕이 낮은 건물이었다. “말들은 제 마음대로 오갈 수 있지.”

그의 목소리에 말들이 뻣뻣하게 굳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쳐서 강물에서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말들이 정말로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말은 밤색이었고 수놈은 적갈색이었지만, 회색 털이 너무 많이 섞여서 둘 다 회색이나 흰색 얼룩이 있는 말처럼 보였다. 특히 얼굴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하얀 털이 얼굴 전체에 흩뿌려져 있고 눈은 움푹 들어가고 눈 위에 깊은 구멍이 있어서, 정말로 고귀해 보였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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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제임스 헤리엇'이라는 영국 수의사의 이야기 시리즈가 국내에 다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계속해서 재출간되었는데, 2010년대에도 어김 없이 돌아왔다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판매가 되었고,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2,0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해요. 


이번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이 1탄이고, 올해 말에서 내년까지 계속 이어진다고 해요. 네이버 책/문화판에서 10.11~10.20까지 '출간 전 연재'가 있었고, 제 블로그에서 특별히 4회에 걸쳐 '출간 연재'가 있겠습니다. 사실 맛보기죠~ 아시아 출판사에서 협조해주셨습니다^^ 본문 36화 중에, 25화에 해당됩니다. 다시 4회를 쪼갰어요. 오랜만에 정말 재밌는 글 읽은 것 같아요. 많이 봐주세요!



나는 아침 식탁에 앉아서 아침 햇살에 가을 안개가 차츰 사라지는 것을 내다보았다. 오늘도 맑은 날씨가 될 것 같았지만, 낡은 건물 안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어서 몇 달 동안 계속될 혹독한 겨울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상기시켜주듯 오슬오슬 추웠다.

“여기 이런 기사가 실려 있군.” 파넌이 《대러비 타임스》지를 커피포트에 조심스럽게 세우면서 말했다. “농부들은 키우는 동물들한테 동정심이 전혀 없다고.”

나는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잔인하다는 뜻인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농부에게 가축은 영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친구는 주장하고 있어. 가축을 대하는 농부의 태도에는 어떤 감정도…… 애정이 전혀 없다는 얘기지.”

“농부들이 모두 킷 빌턴 같다면 도저히 해나가지 못할 겁니다. 모두 미쳐버릴 거예요.”

킷 빌턴은 트럭 운전수였는데, 대러비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족의 식용으로 마당 한구석에 돼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돼지를 잡아야 할 때가 오면 킷이 사흘 동안 흐느껴 운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그가 돼지를 잡았을 때 우연히 그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와 딸은 고기를 삶아서 소금에 절이기 위해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었지만 킷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화덕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100킬로그램이나 되는 곡식자루를 번쩍 들어서 트럭 짐칸에 던질 수 있는 거구의 사내였지만, 내 손을 움켜쥐고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헤리엇 선생님. 그 돼지는 기독교도 같았어요. 정말로 꼭 기독교도 같았다니까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파넌은 몸을 앞으로 구부려서 홀 부인이 손수 구운 빵을 한 조각 잘랐다. “하지만 킷은 진짜 농부가 아니야. 이 기사가 다루고 있는 건 많은 동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가축한테 휘말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거지. 쉰 마리의 암소한테서 젖을 짜는 낙농가가 그 암소들을 정말로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암소들은 단순히 우유를 생산하는 기계에 불과할까?”

“흥미로운 문제군요. 원장님은 가축의 수를 강조하신 것 같은데, 고지대에는 가축을 몇 마리만 키우는 농부도 많습니다. 그들은 암소한테 이름을 붙여주지요. 데이지라든가 메이벨이라든가. 요전 날에는 키펄러그스라고 불리는 암소도 만났습니다. 이런 농부들은 자기가 키우는 가축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가축을 키우는 농부들이 어떻게 애정을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파넌은 식탁에서 일어나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아마 자네 말이 맞을 거야. 어쨌든 오늘 아침에는 자네를 정말로 많은 가축을 키우는 농부한테 보낼 거야. 데너비 농장의 존 스킵턴이라는 사람인데, 이빨을 갈아야 할 말이 있다는군. 늙은 말 두어 마리가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인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니까 기구를 모두 챙겨서 가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복도를 지나 작은 방으로 가서 치과용 기구를 조사했다. 큰 동물의 이빨을 치료해야 할 때면 언제나 중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고, 말이 짐수레를 끌던 시대에는 그것이 정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어린 말의 낭치(狼齒: 앞어금니 앞쪽에 있는 작은 어금니)를 뽑는 일이었다. 이 이빨이 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의 어금니 바로 앞에 작은 낭치가 있었다. 어린 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낭치가 책임을 뒤집어썼다.

퇴화하여 흔적만 남은 작은 이빨은 말의 건강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고 문제는 아마 기생충 때문일 거라고 수의사들이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 농부들은 완강했다. 어쨌든 그 이빨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끝이 둘로 갈라진 금속 막대를 이빨에 대고 나무망치로 때려서 이를 뽑았다. 낭치는 제대로 된 뿌리가 없기 때문에 뽑아도 별로 아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가 망치로 한 번 때릴 때마다 말은 대개 두세 번쯤 앞발을 들어 올려 우리의 귀 주위에서 휘두르곤 했다.

이 일을 끝내면, 단지 농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잠깐 마술을 행했을 뿐이라고 말해주곤 했지만, 곤혹스러운 것은 그 후 말의 상태가 호전되고 그때부터는 계속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농부들은 우리가 치료비를 더 많이 청구할까 두려워 대개는 우리의 수고가 성공한 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지만, 이 경우에는 조심성을 모두 던져버렸다. 그들은 시장 건너편에서 우리를 보면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이봐요, 당신이 낭치를 뽑아준 말을 기억하슈? 그 말이 아주 좋아졌어요. 낭치가 문제였던 거요.”

나는 치과용 기구를 떨떠름한 눈으로 다시 살펴보았다. 60센티미터 길이의 팔이 달린 겸자, 날카로운 턱을 가진 가위, 개구기, 망치와 정, 줄. 마치 종교재판소의 조용한 구석에 있는 고문 기구들 같았다. 우리는 손잡이가 달린 길쭉한 나무상자에 그 기구들을 넣어서 갖고 다녔다. 나는 꽤 많은 기구를 골라서 나무상자에 담고 자동차로 가져갔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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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물결의 비밀>


<물결의 비밀> 표지 ⓒ아시아



아시아. 세계 최대의 대륙으로, 세계 육지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인구도 가장 많다. 세계에서 10억 넘는 인구를 자랑하는 나라가 둘 있는데,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이다. 세계 경제도 쥐락펴락한다. 2015년 현재 세계 경제 순위(GDP 기준) 2, 3, 7, 11위가 각각 아시아의 중국, 일본, 인도, 한국이다. 이밖에도 역사, 문화, 예술 등에서 아시아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그런데, 우린 아시아를 잘 모른다. 잘 모를 뿐더러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속해 있음에도 낯설고 어색하다. 신비롭고 흥미롭긴 하지만 한없이 멀고 멀다. 그래도 우린 아시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을. 무작정 가까이 다가갈 순 없다. 섣불리 다가갔다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땐 그 문화 역사의 총체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학'을 통하는 게 좋다. 


우리는 '아시아 문학'을 아시아 문학이라 부르지 않는다. 중국 문학과 일본 문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접하지 않거니와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접근하기가 힘들다. 이번에 아시아 출판사(계간 아시아) 10주년 기념으로 나온 <물결의 비밀>은 아시아 문학을 훑기에 적절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12명의 아시아 작가 대부분을 모를 텐데, 해당 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중 필리핀의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인도의 마하스웨타 데비와 사다트 하산 만토, 터키의 야샤르 케말 등은 '대문호'라는 칭호가 자연스러운 작가이다. 아시아의 정수를 맛보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시아의 역사와 굴곡을 담다


책에 실린 12편을 모두 자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니 기억에 남는 몇 편을 소개해본다. 단연 압권은, 표제작이기도 한 '물결의 비밀'이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소설가 바오 닌의 작품으로, 베트남전쟁의 일면을 보여준다. 3쪽 정도의 아주 짧은 분량에 '아시아'의 치명적인 역사와 굴곡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시작이자, 책의 시작인 한 문장이 가장 잘 표현해냈다. 곧 아시아다. 


"강물은 시간처럼 흐르고, 시간처럼 강물 위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가. 그 어느 때보다 밤이면 내 고향 강물은, 그 표면은 셀 수 없이 많은 신비한 반점들로, 내 생애 은밀한 비밀들로 반짝반짝 빛났다." (9쪽 중에서)


'물결의 비밀'을 포함해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이 해당 나라, 나아가 아시아의 역사와 굴곡을 담았다. 처연하고 슬프고 신비롭고 강렬하다. 반면 그러지 않은 소설이 있는데, 그런 소설들이 균형을 잡아주었다. 리앙(대만)의 '꽃피는 계절', 야샤르 케말(터키)의 '하얀 바지' 등이다. 이 소설에는 아시아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가 보이고 분위기가 감지된다. 쉬어가는 페이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로 완벽하다.


날선 비판과 농익은 유머의 조화


찻 껍찟띠(태국)의 '발로 하는 얼굴마사지'와 레 민 쿠에(베트남)의 '골목 풍경'은 날선 비판 위에 올려진 농익은 유머가 조화를 이루었다. 12편 중에서 가장 잘 읽히는 소설들이다. 재미를 보장하되 감동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읽고 나면 처연함과 쓸쓸함이 몰려온다. 강렬한 여운은 덤이다. 


사다트 하산 만토(인도)의 '모젤'은 첨예하기 이를 데 없는 종교 대립을 다루었다. 인도의 시크교와 이슬람교이다. 그 대립에 '사랑'이 끼어든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이 종교를 초월한다. 죽음이 눈 앞에서 춤추는 극한의 대립 상황에서도 '당신의 종교 따위'라며 유머를 발산하는 주인공 모젤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돈 키호테'만큼 생동감 있는 캐릭터다. 


"모젤은 티얼로천의 터번을 자신의 몸으로부터 밀어냈다. "치우세요... 당신의 종교 따위." 그러고 나서 풍만한 가슴 위로 힘없이 팔을 떨어뜨렸다." (292쪽 중에서)


힘들고 힘든 이야기, 그래도 알아야 한다


세계 문학이란 뭔가. 서양 문학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옛 것은 추앙 받고, 고루한 건 신성시 되고, 새로운 건 시대를 선도한다고 말한다. 아시아 문학이란 뭔가. 세계 문학을 양분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실상은 신비롭고 낯설 뿐이다. 옛 것도 고루하고, 새로운 것도 고루하다고 말한다. 아시아가 겪어 온 굴곡이 너무나도 험하기에, 그 굴곡과 참상을 고스란히 표현해내는 아시아 문학은 받아들이기 힘들기 마련이다. 


여기 12편도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힘들었던 옛날, 여전히 힘든 오늘날, 굳이 힘든 이야기를 찾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모르고 다른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순 없거니와, 다른 누가 우리를 멋대로 재단하는 걸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럴 때 우리조차 우리를 다른 누구의 재단에 맞춰 재단해버린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그 첫걸음을 문학으로 떼는 건 괜찮은 방법이다. 쉽지 않을 선택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물결의 비밀>에는 비록 읽고 생각하기 어렵고 힘들지만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소설들이 집합했다. 부디 소중한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진짜'를 찾으면 많이 퍼뜨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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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말 한 마디 때문에' 그리고 '창작의 힘'


'오마이뉴스' 서평기자단으로 활동한 지 3년 째 인데요. 매주 2권 씩 신간을 직접 골라 받고, 그중 반드시 1권 이상을 써서 기사로 올려야 하죠. 제가 매주 월요일 또는 금요일에 올리는 신작 도서가 바로 이런 루트로 해서 받은 책들입니다. 지금까지 족히 250권은 될 듯한데요. 절반의 책만 소개해 드리고 절반은 그냥 처박혀 있어 그동안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제가 직접 고른 책이 무엇인지 두 권을 간단히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직접 찍은 사진도 함께요^^


처음이라 어설프고 재미도 없을 것 같긴 한데, 좋은 책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 이렇게 올려봅니다. 매주 수요일에 지난 주 받은 2권의 책을 직접 찍은 사진 3컷(표지, 책등, 뒷표지)으로 소개할게요. 그 중에는 핫한 베스트셀러도 있을 것이고, 전혀 주목 받지 못한 평범한 책도 있을 거예요. 참고로 제 신간 취향은 주로 역사/인문/만화/소설입니다. 감안하고 봐주세요^^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아시아 출판사의 <말 한 마디 때문에>(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마음산책 출판사의 <창작의 힘>(유경희 지음)


<말 한 마디 때문에>는 소설이고, <창작의 힘>은 예술인 것 같아요. 

표지와 제목은 <말 한 마디 때문에>가 마음에 들고, 뒷표지는 <창작의 힘>이 마음에 드네요. 

이 둘 중에서 <말 한 마디 때문에>를 다음 주 서평 주인공으로 뽑았습니다. 

뭐가 재밌을지, 의미가 있을지, 서평의 가치가 있을지 알 수가 없지만 

제목에서 풍겨 나오는 걸로 판단했을 때 이야기할 게 많아 보입니다. 

전하는 메시지도 많을 것 같고요. 중국 소설이라 색다른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의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 사이트로요~

<말 한 마디 때문에> 알라딘 서점

<창작의 힘> 알라딘 서점


많은 분들이 책을 잘 고를 수 있는 그날까지! 언젠가 '북큐레이터'를 해보고 싶군요!


초점이 맞지 않죠ㅠ 이런 걸 워낙 안 해봐서,, 더 노력해서 좋은 사진으로~




<말 한 마디 때문에>는 '아시아 문학선'이라는 시리즈의 12번째 책이군요^^




너무 멀리 찍어서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ㅠㅠ 특히 <창작의 힘>은 아예 안 보여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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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추리 소설 推理小說


먼저 사건의 결과를 보여 주고, 그 원인과 과정을 주인공이 논리력과 인과 관계의 정합성을 통해 추적하는 서사 구조를 가진 소설. 


독자의 흥미를 위해 곳곳에 사건의 실마리를 배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낱낱의 사건처럼 보이던 것이 하나의 인과 관계로 해명되면서 지적 쾌감을 얻게 해주는 경우도 많다. 흥미 위주의 대중 소설이라는 일반적 통념에도 범죄 소설이나 탐정 소설과 같이 독자적 규범을 만들어 내며 장르 문학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추리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시작되었다. 「황금벌레」, 「검은 고양이」, 「도난당한 편지」 등은 특히 단편 소설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그의 대표적인 추리 소설들이다. 이후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독립된 소설 장르로 정착되었다. 영국의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1976년 85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쥐덫』,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 『ABC 살인 사건』,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등 장편 66권, 단편집 20권을 발표하여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한국의 경우, 김내성이 『마인』, 『백가면』, 『태풍』 등을 발표하며 싹을 틔웠고, 현재는 김성종 등 몇몇 작가가 나름대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대중문학연구회 엮음, 『추리소설이란 무엇인가?』, 국학자료원, 1997. / 김창식, 『대중문학을 넘어서』, 청동거울, 2000.


 <100년의 문학용어 사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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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델리로 돌아온다. 외국에서 사창가를 헤매고 돌아다니다 진력이 나면 내 애인 바그마티에게로 돌아오듯······. 델리와 바그마티 사이에는 공통점이 매우 많다. 오랫동안 난폭한 사람들에게서 시달림을 받아온 델리 사람들은 역겨우리만큼 추한 가면 밑에 마음 흘리는 매력을 숨길 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나도 그 가운데 하나지만,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만이다. 


<델리> 중에서,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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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쿠쉬완트 싱의 <델리>


<델리> 표지 ⓒ 아시아

행정사회적인 의미인 도(都: 도읍)와 경제적인 의미인 시(市: 저자) 두 가지 의미가 합쳐져 탄생한 '도시'. 많은 소설가들이 도시를 이야기했다. 서울을 이야기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더블린을 이야기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파리를 이야기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파리와 런던을 이야기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등. 


거기엔 도시에 대한 사랑, 증오, 애정, 질투 등 그야말로 애증의 모순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어느새 '삭막함'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도시를 어찌 멀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편 세련되고 매력적인 도시를 어찌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시에는 떨쳐내고 싶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듯하다. 


쿠쉬완트 싱의 <델리> 또한 작가의 델리에 대한 애증의 모순적인 감정이 강력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의 그 감정을 '바그마티'라고 하는 남녀추니를 통해 드러낸다. 남녀추니란 선천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소설 속에서 바그마티는 남녀 모두를 상대하는 창녀로 출현한다. 그녀(그)는 델리라는 도시, 델리의 험난한 역사, 그리고 델리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처했던 상황까지 커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소설로 읽는 충분한 재미


소설은 그런 바그마티에 대한 애증 그리고 델리에 대한 애증을 강하게 표출하는 지식인 화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주업으로 역사 건축물을 안내해주곤 하는데, 그러며 자연스레 시제는 과거로 향한다. 그렇게 델리의 600년 과거와 현재를 단편적으로 오가며 서술되는 소설은 막힘없이 진행되는 가독성이 있다. 물론 거기엔 충분한 재미, 즉 소설로서 읽는 재미가 있다. 


여기서 재미란 여러 가지가 있겠다. 작가의 유머를 한층 가미시킨 재밌는 문장, 과거를 여행할 때마다 계속해서 시선이 바뀌어(황제, 왕자, 환관, 시인, 방랑자, 군인 등) 지루함이 없는 부분, 사랑, 열정, 섹스, 미움, 복수, 폭력 등이 난무하는 리얼리티와 판타지티의 공존, 그리고 그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에서 오는 신기함까지. 소설이 갖춰워야 할 모든 걸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동은 당연히 따라온다. 


하지만 재미만 있는 건 아니다. 대중성만 갖췄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25년 동안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게 해주는 소설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읽기 전에 읽는 동안 읽고 난 후 숨이 턱턱 막힐 수 있겠지만,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그렇게 하게 놔두지 않는다. 독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보여주고 만지고 느끼게 해주며 결국 델리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들게끔 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재미의 한 부분인 '그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과 작가가 25년 동안을 준비한 끝에 내놓은 소설이 보여주는 내공의 깊이가 한 라인에 서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델리의 600년 역사는 그 시선들이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참혹하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민초는 참상과 고된 삶을 이어가고 반역자들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호의호식한다. 그뿐이랴? 그건 현재까지 이어진다. 


"인도 최초의 독립전쟁이라 할 수 있는 세포이 항쟁 이후 국왕은 폐위당해 버마로 쫓겨나고 왕족은 몰살당하고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독립투사들은 대포에 맞아 갈가리 찢겨 죽거나 영국인들의 유흥거리로 전락한 교수형을 당했다. 반면에 영국인들의 개가 되어 첩자 노릇을 했던 간악한 귀족들은 대를 이어 누릴 부귀영화를 보장받았고, 돈에 눈멀어 영국군의 앞잡이가 되었던 무지한 자들은 상류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추악한 델리, 반면 아름답고 경이로운 과거의 델리


여전히 제3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수도 '델리'. 지금 델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작가는 현재의 델리를 여지 없이 보여준다. 떠들썩하고 초라해 보이는 시장과 오두막집들, 정화되지 않은 오수에서 풍겨나는 악취에 구역질이 치밀 수 있는 비좁고 꼬불꼬불한 샛길, 어디에서나 가래와 시뻘건 베텔즙을 밷어내고 변의를 느끼면 아무 데서나 일을 보며 상스러운 욕지거리로 친밀감을 표시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사타구니를 긁적거리는 사람들까지. 


추악한 델리. 반면 작가가 보여주는 과거의 델리는 비록 갈가리 찢겼지만 아름답고 경이롭다. 작가는 이렇게 델리의 과거와 현재 또한 대비 시켜 보여준다. 소설 전체가 수많은 대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은 어떨까? 델리와는 다를까? 답은 '똑같다.' 과거 '이촌향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서울로 올라와서 한평생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서울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한 지 오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빈민과 소외 계층이 다수 존재하고 이들을 짓뭉개 버리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서울은 역사적으로도 찬란한 문화의 꽃임을 자청했고 실로 그러했지만, 꽃이 꽃이게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현재의 서울을 추악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아름답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그런 서울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쿠쉬완트 싱은 델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과연 그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 


델리 - 10점
쿠쉬완트 싱 지음, 황보석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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