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의 두 번째 타자로, '멀티 버스'의 시작을 알린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다. 엄청난 기대감을 오롯이 받을 텐데, 그에 부응할까?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몇 년 전에 이미 개봉일이 잡혀 체계적으로 사전 마케팅을 해오며 기대감을 한층 부풀어 올렸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가 대망의 막을 올렸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포문을 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3'의 두 번째 타자로, 2016년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다. MCU의 14번째 영화이기도 한 바, 현재 22번째까지 예정되어 있는 MCU의 주요 연결고리이자 새로운 세계관의 시작이기도 하다. 즉, '멀티 버스'의 시작이다. 


어벤져스와는 다른 차원의 적에 대항하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은 현실에서 온 '마법사'다. 그렇다는 건 누구나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영화는 거기까지 제대로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신, 아이들이라면 정녕 넋을 놓고 황홀하게 바라볼 장면들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키포인트이자 사실상 전부가 바로 그 장면들이다. 더불어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여러 비쥬얼 쇼크들이다. 


전형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이 영화는 '전형적'이다. 전형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이다. 결과가 보여주는 바, 여기에서의 '전형적'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비춰질 수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항상 세계관과 속편과 (시리즈) 후속편을 염두에 두는 MCU 영화답게 진행된다. 또한 새로운 캐릭터와 세계관의 시작을 알려야 하는 영화이다 보니,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상당히 늦다. 모든 걸 다 보여주려 하지 않고, 군데군데 그리고 마지막까지 여지를 남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MCU 영화다. MCU 영화라는 단어가 생긴 것과 더불어 어느새 '전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이다. 이 수식어가 시리즈 자체에 악영향이 아니라 선영향을 끼칠 것 같다. 


천재 신경외과의 스티븐 스트레인지,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쿨하다. 가히 그 천재적인 솜씨로 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지만, 동료 의사를 거의 묻어버리다시피 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실력으로 똘똘뭉친 오만방자함 그 자체인 것이다. 비오는 어느 날, 여지 없이 비싼 것들을 걸치고는 비싼 차를 끌고 미친 듯한 속도로 길을 떠난다. 당연한듯 사고를 당해 하필 두 손만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는 스트레인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온갖 방법으로 손을 고치려 한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수술을 해보기도 하고, 엄청난 노력으로 물리치료를 해보기도 한다. 다 부질 없다. 그 와중에 찾아낸 어느 환자의 기록. 그 환자는 예전 절대 가망없을 거라 판단하고 수술을 거부했던 환자였다. 지금 그는 살아있는 건 당연하고 걸어다닐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스트레인지는 그를 찾아가 비법을 묻는다. 그가 가르쳐준 건, 네팔의 카마르-타지였다. 스트레인지는 당장 그곳으로 떠난다. 그의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별 것 없는 스토리, 말할 게 없는 연기, 공감할 만한 유머


마블의 히어로 영화가 갖는 여러 요소를 갖추었다. 정작 들여다보면 별 게 없는 이야기, 캐릭터가 워낙 강해 연기랄 게 없는 하고, 중심에 선 인물의 유머는 빛을 발한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토리는 더 이상 알려드릴 게 없다. 스트레인지는 그렇게 '단시간'에 엄청난 능력을, 마블 히어로 최강의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역시 마블 히어로 최강 최악의 빌런을 그만의 방식으로 물리친다. 그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아가모토의 눈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절정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지구를 지키는 소서러 슈프림인 '에이션트 원'을 배신하고 떠나 다크 디멘션의 힘을 업고 그들을 치려는 케실리우스의 주장이다. 그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적이기 때문에, 영원한 시간을 약속하는 다크 디멘션이야말로 우리들이 따라야할 진정한 '선'이라고 말한다. 그 앞에서 한낫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은 맥이 풀릴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어렴풋이 내비치려 하지만, 거기서 끝나고 만다. 스트레인지는 그에 반대하고, 영화는 다시 비쥬얼 쇼크를 준비한다. 


연기도 뭐라 말할 게 없다. 캐릭터에 배우들이 완벽하게 이입했다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함 그 이상인데, 수없이 많은 상을 타며 압도적인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들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찌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연기' 경력에서만큼은 흠으로 남을 수 있는 배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무리 없이 오로지 캐릭터에 맞춰져야 하는, 연기력이 출중한 이들에겐 힘들 수 있는 역할을 하나 같이 잘 해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레이철 맥아담스, 틸다 스윈튼, 매즈 미켈슨, 치웨텔 에지오포가 그들이다. 


반면 베네딕트 컴배비치만이 할 수 있는 유머는 영화의 격을 높이는 데 크게 한몫했다. 비록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생각나게 하는데, 한층 더 대중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만한 유머라는 말이다. 스트레인지 역할에 베네딕트 컴배비치보다 적절한 배우가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오직 비쥬얼 쇼크, 그리고 적재적소의 묘미


전에 없는 비쥬얼 쇼크를 선보인다. 가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 여파가 오래가진 않는다. 이제까지 봐왔던 여러 영화들에서 봐왔기에. 다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묘미를 선보였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비쥬얼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것밖에 남는 게 없고, 그것이 단연 압권이다. 사정없이 뒤틀리는 시공간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하는데, <인셉션>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물론 훨씬 정교해지고 스케일이 커졌다. 이런 류의 시공간의 뒤틀림은 영화의 액션 장면에 도맡아 출현한다.


스트레인지가 손을 치료하기 위해 네팔로 찾아가 에이션트 원에게 수련을 받는 장면은 단연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한다. 물론 액션 영화에서 동서양의 만남이 종종 있어 왔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닥터 스트레인지>와 <매트릭스>만큼은 따로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그뿐인가? 오만방자한 스트레인지에게 에이션트 원이 세계의 진면목을 알려주기 위해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장면은 <인터스텔라>가, 영화의 숨은 조연 '리비테이션 망토'는 <해리포터>가 연상된다. 이처럼 대놓고 따라하는 영화는, 패러디 영화를 제외하곤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건 '재미' 덕분이다. 여기저기에서 가져온 것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느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치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게 재미의 요소인 것이다. 이는 MCU 영화가 추구하며 보여주는 퍼즐 맞추기 느낌과 궤를 같이한다. 찾아보는 재미와 함께, 얼마나 더 멋지고 화려하게 재탄생시켜 구현해냈는지 구경하는 재미를 보장한다. 비쥬얼의 신세계나 신기원을 열어젖히진 못했을지라도, 그동안 봐왔던 비쥬얼의 집대성, 그리고 한층 발전한 비쥬얼 쇼크나 향연을 질릴 만큼 보여주기에 그 자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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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역사상 최고의 게임 중 하나인 '워크래프트'가 드디어 영화로 나오다. 여러 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을 텐데, 개봉을 강행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게임을 한 번쯤 해본 사람이라면, 안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였을까.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포스터. ⓒUPI코리아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직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지 않아 PC방도 없었던 그때, 친구들 사이에서 '워크래프트 2 해봤냐, 엄청 재밌다'는 말이 돌았다. '워크래프트'의 존재도 몰랐는데 2가 나왔다니 어리둥절했지만,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실시간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스타크래프트로 옮겨 갔지만, 어린 시절 받았던 그 충격적인 영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에게 '워크래프트 2'는 최고의 게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는 3이 나온 지도 오래고 4번째 시리즈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나온 지도 오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세계 온라인 게임의 절대강자다. 


1억 명 이상의 엄청난 팬을 거느린 이 게임을 영화계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가 없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출시되고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인기를 끌자, 2006년 영화화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10년이 지나 개봉했다. 인기를 가늠해본 것일까, 작업 자체가 힘들었던 것일까. 그 사이 워크래프트의 인기는 미국, 한국 등에서 중국으로 넘어가 있었다. 


원작 게임에 충실한 게임 영화 


영화적으로 스토리 전개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전개가 너무 빠르고 불진철했다. 게임을 아는 이는 빨려들듯 영화에 열중할 수 있었지만, 게임을 모르는 이는 시작부터 삐그덕 댔을 것이다.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의 한 장면. ⓒUPI코리아



지금에 와서 개봉하는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팬서비스 차원이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마니아 층만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누가 봐도 미국, 한국 등에서는 흥행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당연한 듯 흥행에 참패했다. 반면, 중국에서는 흥행하게 되어 있었다. 당연한 듯 흥행에 대성공했다. 어떤 내용일까. 


영화 콘텐츠는 나날이 하향 평준화 되고 있는 듯하다. 더 이상 새로운 걸 내놓기가 힘들다. 리메이크와 속편이 점점 많아 지고 있는 이유다. 그 와중에 소설, 만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들은 예전부터 많았고 상당수가 잘 되었다. 게임도 시대를 선도하는 콘텐츠 중에 하나이기에 영화계에서 눈독을 들여왔는데, 잘 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기억나는 게 <툼 레이더>나 <레이던트 이블> 정도? 그만큼 불모지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였을까.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다른 게임 원작 영화보다 더 게임에 충실했다. 게임 자체의 방대한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많은 위험을 감수했을 건 불 보듯 뻔하다. 더욱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너무 빨랐다. 게임을 아는 이는 빨려들듯 영화에 열중할 수 있었지만, 게임을 모르는 이는 시작부터 삐그덕 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게임은 자주했지만 스토리는 잘 몰랐음에도 빠른 전개가 나쁘지 않았다. 감히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판타지 시리즈인 <반지의 제왕>와 비교하자면, <반지의 제왕> 같이 느리고 진중한 전개보다 차라리 더 좋았다. '아는 사람끼리 왜 이래'라고 하면 알까?


기대하지 않고 봤기에 의외로 괜찮은 스토리


은근히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들이 의외로 복잡하다. 스토리를 기대하기 힘든 와중에 괜찮았다. 그나마 건진 수확이라 하겠다.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포스터. ⓒUPI코리아



'드레노어'에 사는 오크 종족, 그 정예부대는 행성이 황폐해지자 차원의 문을 열어 인간을 비롯한 얼라이언스의 땅 '아제로스'로 쳐들어간다. 오크 종족의 대마법사이자 여러 부족장들 위에 군림하는 굴단의 사악한 지옥 마법에 의해서였다. 인간, 엘프, 드워프 등의 7종족이 어울려 사는 '아제로스'에서 오직 인간만이 오크 종족을 상대한다. '전쟁의 서막'답지 않은 빠른 전개, 그리고 '전쟁의 서막'다운 소규모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종족의 린 왕, 수호자 메디브와 사령관 로서는 전쟁을 진두지휘한다. 그 와중에 수호자의 제자 카드가와 오크의 노예에서 로서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 가로나가 큰 역할을 한다. 한편, 오크 종족은 내분에 휩싸인다. 정예부대를 이루고 있는 3종족 중에서 비교적 약한 축에 속하는 서리늑대 부족의 장인 듀로탄이 굴단의 지옥 마법을 못마땅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생명력으로 시전되는 지옥 마법으로 자신의 고향이 황폐화된 걸 깨닫고 인간 종족과 연결을 시도한다. 과연 성공할까. 


여기에 수호자와 제자, 듀로탄과 그의 절친 그리고 아내와 자식, 가로나와 로서 그리고 굴단, 은근히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들이 의외로 복잡하다. 스토리를 기대하기 힘든 와중에 괜찮은 설정이다. 또한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연상케 하는, 뜻밖의 죽음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마무리도 '전쟁의 서막'의 선을 지켰다. '이 영화는 시리즈의 1탄입니다. 곧 2탄이 나옵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보았기에 그나마 건진 수확이라 하겠다. 


굉장히 불친절하고 허점이 많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욕하면서 보고 싶었다.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의 영화들, 기대를 하고 봤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엑스맨: 아포칼립스>이 하나같이 실망스러웠기에, 훨씬 못 미치는 평가를 받은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앞엣것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한 게 없었다. 어줍잖은 철학을 넣는 것보다 넣지 않는 게 낫다. 


여러 부분에서 괜찮았지만, 굉장히 불친절하고 허점이 많다. 특히 스토리 전개와 화면 전환의 유기성에서 상당히 형편 없었다. <반지의 제왕>의 친절함이 새삼 그리웠다.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포스터. ⓒUPI코리아



그렇다고 이 영화를 치켜세울 마음은 없다. 굉장히 불친절하고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시리즈가 계속되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 (중국을 제외한) 1편의 흥행 참패로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이 챙겨보진 않을 듯하니 이대로의 느낌으로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스토리 전개와 화면 전환의 유기성은 어떤가. 가장 거슬리는 부분 중 하나였는데, 몇 마디 말로 대신하는 주요 장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오크와 인간의 '전쟁'인데, 전쟁은 나오지 않고 '전투'만 나왔다. '얼라이언스'의 아제로스인데, 인간만 나온 건 애교로 봐줄 정도다. 시리즈의 1편이라는 걸 강하게 인지하고 캐릭터 각각에 지나치게 생명력을 불어넣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반지의 제왕>의 친절함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증의 시리즈 <반지의 제왕>이다.


중국의 존재로 아마 시리즈는 이어질 것 같다. 1편을 본 입장에서 2편도 보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공부할 필요성을 약간 느낀다. 그러며 '게임'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뭔지 모를 포근함까지 느껴진다. 고맙다고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또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콘텐츠는 계속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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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엑스맨: 아포칼립스>


영화는 끝내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유치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 포스터 ⓒ20세기폭스코리아



'엑스맨' 시리즈는 달랐었다. 여타 히어로 시리즈와는 달랐었다. 돌연변이와 인간, 돌연변이와 돌연변이의 구도를 통해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고, 그들의 탄생과 관계가 인류사의 여러 굴곡점과 얽히게 하여 잘 짜인 스토리를 선보였으며, 장대한 스케일에 맞는 엄청난 비주얼을 선사했다. 


또한 시리즈 마니아를 양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캐릭터를 들 수 있겠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각자의 능력과 개성있는 성격을 보여주었는데, 무엇보다 촘촘히 짜인 그들 간의 관계도가 매력 있었다. 정녕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 시리즈다. 21세기 할리우드를 이끌 기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 재능을 '엑스맨'으로 만개한 브라이언 싱어이 탄생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 '엑스맨' 시리즈도 <엑스맨: 아포칼립스>로 잠정적 끝을 보았다. 현재 엑스맨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프리퀄 3부작이 19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로 끝을 맺었다. 과연 유종의 미를 잘 거두었을까. 시리즈를 계속 봐온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나 출연진, 또는 사상 최고의 블록버스터라는 광고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끝내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유치하고 졸렬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도 '엑스맨' 시리즈 최악이라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보다는 낫지만 그 바로 위에 위치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이니까, 브라이언 싱어니까, 엑스맨이니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는 끝내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유치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는 최초의 돌연변이 아포칼립스가 수천 년 전에 가까스로 봉인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진행되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대략 짐작이 갔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곤 이어지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위한 시간, 자그마치 영화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어김 없이, 그러나 터무니 없이, 왜 깨어나는지도, 누가 깨웠는지도 모르게 아포칼립스는 깨어난다. 그러고는 곧 '공포의 외인구단' 만들기에 돌입한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어김 없이, 그러나 터무니 없이, 왜 깨어나는지도, 누가 깨웠는지도 모르게 아포칼립스는 깨어난다. 그러고는 곧 '공포의 외인구단' 만들기에 돌입한다. 그는 분명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아닌가. 그런데 <소림축구>에서 가진 건 강철다리밖에 없는 씽씽이 특출난 능력을 지닌 이들을 찾아 설득하는 것처럼 돌연변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각성을 시켜주며 같이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합류한 이가 스톰, 아크엔젤, 사일록 그리고 마그네토이다. 신과 같은 존재가 그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하나하나 찾아가 설득해야 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반면, 찰스 자비에 교수와 그가 세운 자비에 학교에 관계된 이들을 소개시켜 주는 장면은 납득이 가거니와 프리퀄 이전의 '엑스맨' 본편과 이어지는 촘촘한 그물 관계도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다분히 '엑스맨' 시리즈를 챙겨봤던 이들을 위함인 것 같은데, 반대로 <엑스맨: 아포칼립스>로 처음 접한 이들에겐 굉장히 생소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영화의 초중반까지는 패스하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랄까. 시리즈에 대한 감독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마지막에선 역풍을 맞았다고 본다. 


이 시리즈는 몰라도 이 영화는 물 건너갔다


더 큰 문제는 이 시리즈가 아닌 이 영화가 갖는 스토리의 매끈함에 있다. 시리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영화가 산으로 간 듯하다. 시리즈 전체를 마무리 함에 디테일을 쏟아부어 잘 처리했고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렇지만 영화의 짜임새를 엉망으로 만들면서까지 그래야 했을까 싶은 것이다. 아포칼립스가 외인구단을 만들고 자비에 학교를 소개하고는, 준비도 없이 바로 전투에 돌입하는 장면에서 확 와 닿았다. 이 시리즈는 몰라도 이 영화는 물 건너갔다는 걸. 


아포칼립스가 외인구단을 만들고 자비에 학교를 소개하고는, 준비도 없이 바로 전투에 돌입하는 장면에서 확 와 닿았다. 이 시리즈는 몰라도 이 영화는 물 건너갔다는 걸.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누구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하고, 누구는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라'고 한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격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작업에 임했나 보다. 그것이야말로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적정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그러면 뭐 하나라도 건질 게 있는지 찾아보자. 시리즈 전체로 봤을 때 나쁘지 않을, 오히려 괜찮은 수준이라는 건 인정한다. 조직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했다고 한다면, 마냥 비난할 수만도 없고 그것 또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테니까. 그런데, 이 영화 한 편만 보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가 고수했던, 선악 구분이 없는 이들의 안타까운 대립과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개인, 소수자가 다수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고 또 처분되는지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거야말로 '엑스맨' 시리즈 전체를 더 살리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무슨 이유를 갖다 대도 아포칼립스가 왜 등장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수시로 등장하는, 도저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행동들. 왜 그(그녀)는 그런 행동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하면서, 한편으로 시리즈 전체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순적인 양상을 보인 것이다. 만약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시리즈의 마지막이 아니라면 그라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것들이었다. 


도저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행동들. 왜 그(그녀)는 그런 행동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했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솔직히 '엑스맨' 시리즈를 볼 때 그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유치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기 일쑤이다. 어릴 때 상상하던, 또는 여기저기에서 봐왔던 류의 능력들이 서로를 겨냥하며 싸우는 게 유치하지 않다면 거짓말이 아닌가. 그렇지만 '엑스맨' 시리즈에는 철학, 사상, 인문, 정치까지 아우르는 주제가 있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엑스맨'은 아무것도 아닌 영화가 되고 만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이 그랬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다시 돌려놨는데, 다시 그런 영화가 되고 만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시리즈를 끝내는 건 안 된다. 이 시리즈를 위해서가 아닌 이 영화를 위해서 한 편 더 나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야 이 영화가 살고, 결론적으로 이 시리즈가 사는 것이다. 너무 팬심이 발동한 걸까? 다른 영화였다면 쓰레기라며 짜증만 냈을 것인데, '엑스맨'이기에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엑스맨'의 팬이라면 어느 면에서는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이고, '엑스맨'을 잘 모르거나 단순히 블록버스터를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무조건 보지 말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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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따듯한 영화사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해 본다. 이제 막 21세기에 들어선 그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남자들만의 세계인 남(자)고(등학교)라는 생소함과 막연한 두려움은 어느덧 '이런 게 바로 학창시절이지'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만들 만큼의 재미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공부만 열심히 하는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당시 한창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으로 뭉쳐진 우리는 매일 같이 몰려 다녔다. 우리들은 싸움이면 싸움,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게임이면 게임 못하는 게 없었다. 한마디로 어딜 가든 무서울 게 없었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그때의 우리들에게는 빛이 났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는 바로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다. 같은 고등학생이라도 1학년, 2학년, 3학년이 다른데 18세인 2학년이 제일 방황하기 쉬운 때인 것 같다. 군대에서는 일병, 상병 때가 제일 열심히 하고 그만큼 시간도 잘 간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은 그 반대이다. 대학생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고, 그렇다고 마냥 놀기에는 어중간하다. 뭘 하든 안 하든 애매하기 그지 없는 시기이다. 


"네가 걔네랑 같이 논다고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


영화는 '동도'라는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생이 주인공이다. 그는 비디오 보는 걸 낙으로 삼는데, 19세 미만 관람불가를 빌려오는 게 일탈의 전부이다. 키는 작아서 무시 받기 딱이고, 공부도 잘 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반의 일진인 '현승'과 인연이 닿아 친해지게 된다. 친구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현승 덕분에 동도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일진 후배들에게 인사까지 받기에 이른다. 


고등학교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그런 학교 생활을 하게 된 동도. 평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까지 내팽개치고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잦아진다. 자연스레 술과 담배를 배우고 급기야 정신 상태까지 물들게 된다.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된 양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따듯한 영화사



"야, 네가 걔네랑 같이 논다고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 정신 차려 인마! 너랑 안 어울려. 관두라고. 허접해 보인다고, xx야. 똑바로 좀 살아라. 응?"


특히 일행의 절대적 카리스마 '동철'은 동도 뿐만 아니라 일행에게 큰 힘이 된다.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철의 독재에 가까운 카리스마는 일행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친구끼리 복종을 강요하는 동철과 친구끼리 절대적 평등을 주장하는 현승의 줄다리기는 계속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학원액션


고등학생들의 일탈 아닌 일탈을 다룬 영화들은 우리를 자주 찾아 왔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 해도 2001년의 <친구>, 2004년의 <말죽거리 잔혹사>, 2009년의 <바람>, 2011년의 <파수꾼> 등이다. 여기엔 공통적으로 절대적 카리스마를 가진 친구들이 나오고,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훨씬 약한 친구들이 나온다. 이들은 서로 친한 친구가 되곤 하는데, 그 끝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는 위의 학원액션 장르의 스토리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파수꾼>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그것을 빗겨가 다른 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영화를 통해서 뭔가 말하려고 하거나 훈계를 늘어놓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고등학교 2학년의 가장 일반적이자 당연한 일탈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감독도 이 영화의 흐름에 제동을 걸거나 방향을 틀려고 하지 않는다. 물 흐르듯 전개된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따듯한 영화사



이 영화는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교실도 나오지 않는다. 거의 방과 후를 그리고 있다. 또 주인공들의 집은 '동도'와 '동철'만 나오는데, 동도는 편모 슬하이고 동철은 편부 슬하이다. 동도의 엄마는 악착 같이 돈을 벌어 동도의 뒷바라지를 하는 반면, 동철의 아빠는 백수로 지내며 깡패 같은 동철의 형한테 눌러산다. 동철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후반 전개, 그렇지만 연기는 빛났다


이번 학원액션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개인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단이 되었다.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동철이 좋아해 마지 않는 연희, 그런데 연희는 동철보다는 다른 친구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그녀를 멀리서 흠모하는 동도까지. 이 상황을 직감적으로 눈치 챈 동철은 이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된다. 



영화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한 장면. ⓒ따듯한 영화사



영화는 이 점에 있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아쉬운 전개를 보인다. 어떻게든 사건을 만들어 극적 연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지 못해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 전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전개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 '연희'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다. 애초에 그녀가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남자 아이들과의 관계 축을 따로 설정했으면 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빛날 수 있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들의 연기이다. 찌질하고 약하고 소심한 동도의 이재응, 남자의 진짜 의리를 보여준 현승의 차엽, 정절의 카리스마 동철의 이익준. 이재응을 제외하고는 눈에 익지 않은 배우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누구보다도 빛난다. 특히 동철의 이익준은 흡사 <말죽거리 잔혹사> 우식의 이정진을 보는 듯했다. 그 삐뚤어진 카리스마를 10년 만에 재현해낸 것 같다. 


큰 기대 않고 감상한다면 그 은근함에 감탄까지는 안 할지라도 집중하며 보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할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들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게 만든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기 싫기도 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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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길찾기


우리나라 만화계의 경우, 여타 문화 전반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귀엽고 미성숙한 모습의 그림체, 혼을 쏙 빼놓는 액션 위주의 스토리 등. 그래서인지 몰라도 만화를 생각하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림체는 예뻐야 하며 어린 친구들만 봐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을 내버리곤 했다.


하지만 일본의 만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및 유럽) 만화계는 일찍이 그 방향을 크게 틀었다. 이른바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장르가 출현했고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문학과도 견줄 수 있는 스토리와 철학이 아닌 만화는 거의 퇴출되다시피 하였다. 그들에게 만화는 더이상 우리나라처럼 미풍양속을 해치고 어린 친구들에게나 읽히는 B급 내지 하류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그림체에 액션 위주의 스토리를 추구해도, 그 안에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굳이 철학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생각할 거리'가 있다. 이는 어린 친구들을 위한 교육용 만화와는 전혀 다르다.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리를 시각적으로 더 잘 전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학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모든 상상력을 그림에 쏟아 붓다


그런 면에서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라는 부제가 달린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이미지프레임)는 일반적인 만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분히 교육적이고 정보전달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제나 소재가 결코 쉽게 다뤄질 수 없다는 면에서, 작가의(나아가 출판사의) 문제의식이 깊숙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만화를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스토리에서의 상상력은 완전히 배제한 채, 그 모든 상상력을 그림에 쏟아 붓는다. 한국현대사에서, 겉으로는 가장 화려했지만 안으로는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저질의 시대였던 1970년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대의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인지, 작가의 그림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너무나 불편해서 피해버리고 싶지만, 반드시 인지해야 할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을 정말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챕터마다 한국현대사에서 결코 지울 수도 지워서도 안 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려진다. 위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스토리라인에서 상상력을 배제한다. 그 대신 수많은 현대사 관련 책들을 인용해서 사건들의 디테일을 채웠고, 더불어 작가가 직접 당시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 인터뷰까지 하였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의 한 장면. ⓒ길찾기


요즘 한창 네이트 웹툰에서 연재 중인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도 상당히 많은 책들을 참조하고 인용하고 있는데, 그 차이는 명확하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가 몰랐던 혹은 눈 감고 지나치려 했던 정보의 정확한 전달과 문제 의식 고취를 최우위에 두고 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이를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눈에 띈다. 굳이 나누자면, 팩트와 팩션이라고 할까.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 역사


이 만화는 분명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작가도 말했듯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용히 울부짖고 있는 피해자들을 그냥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만화를 본다고 해서, 그렇게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당장 뭔가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과 행동 앞에 '앎'이 오는 것 아니겠는가. 먼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면 누군가들은 말한다. 직접 그 시절에 살아보지도 않고 직접 그 상황에 맞딱뜨려 보지도 않고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투철한 정신과 박학한 이론으로 무장해도, 조용히 있어야만 하는 걸 알고 있느냔 말이다. 그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미래로 전달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것이 조작되고 삭제된 현실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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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 포스터 ⓒ쇼박스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단종1)에 당시 왕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이 일으킨 친위 쿠데타. 3정승(황보인, 김종서, 정분)을 비롯해 여러 대신들을 죽이고 반대파를 숙청하여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일찍이 이방원이 일으켰던 왕자의 난과는 다르게 명분다운 명분이 없었다. 기껏 명분이 김종서를 죽이고 나서 말했던 김종서의 모반이었다.

 

이 나라가 이 씨의 것이냐 김 씨의 것이냐?”

 

영화 <관상>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다. 그 한 가운데에 조용히 살아가는 천재 관상쟁이 내경(송강호 분)이 뛰어든다. 그리고 그의 처남 팽헌(조정석 분)과 아들인 진형(이종석 분)이 같이 한다. 역적 집안이었기에 조용히 살고 있었던 그들은 서울에서 온 기생 연홍(김혜수 분)의 관상 일에 대한 제안에 따라 서울로 진출한다. 아들 진형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하기 위해 서울로 진출한다.

 

이들 부자가 공통적으로 했던 생각은 이렇게 재능을 썩인 채 살아갈 순 없다.”였다.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 망정,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 한 것이다. 한편 팽헌은 진형을 아버지 내경보다 더욱 각별히 생각한다. 이는 뒤에서 영화에 (나아가 조선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관상>의 한 장면 ⓒ쇼박스


실없는 웃음의 향연


영화는 초반을 넘어 중초반까지(40~50) 내경과 팽헌이 아닌 송강호와 조정석 콤비가 이끌어 나간다. 아무리 봐도 그들은 송강호와 조정석이었다. <넘버 3>때부터 일관되게 능청스러운 송강호와 <건축학개론>으로 능청스러움의 계보를 이은 조정석의 코믹 연기 콤비.

 

최소한 이들의 연기는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했다. 아니, 비극적인 이 영화에서 유일한 웃음을 담당했다. 그러나 실없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다. 다가올 거대한 비극을 예견했던 것일까? 실없음을 넘어 쓸쓸하기까지 하다.


<관상>의 한 장면 ⓒ쇼박스


중초반까지의 실없는 웃음들의 향연이 끝나고 내경 일행이 서울로 진출한 이후, 내경의 천재적인 관상 능력을 알아본 이들의 의해 영화는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의 능력을 써먹으려는 자들과 그의 능력의 무서움을 알아보고 후환을 제거하려는 자들이 그를 회유하고 협박하는 것이다.

 

내경 일행이 서울로 진출했을 때는 문종이 죽어가던 때였다. 문종은 내경의 관상 능력을 높이 사 세자를 지켜줄 요량으로 역적이 될 만한 상을 알아보도록 한다. 자연스레 김종서와 가까워진 내경. 그는 호랑이상인 김종서(백윤식 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이리상인 수양대군(이정재 분)을 보고 역시나 경악을 금치 못한다. 명확하게 역모를 꾸밀 상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본다는 그의 관상 능력으로 볼 때, 계유정난이라는 실제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었다.

 

궁금하지 않은 인물과 스토리를 다루는 방법


여기서 영화는 딜레마에 빠진 듯 보인다. 그리고 이 딜레마를 어느 정도 잘 다룬 것 같다. 누구나가 다 알고 있어 궁금하지 않은 인물과 스토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먼저 인물 같은 경우는 음악으로 다룬다. 코믹스러운 내경과 팽헌의 모습에서는 통통 튀고 장난스러운 음악을 선보인다. 김종서와의 첫 대면에서는 웅장하고 장엄하며 평화스러운 음악을 선보이고, 수양대군과의 첫 대면에서는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위압감과 불량스러움의 음악을 선보이는 식이다.

 

대면하기도 전에 상기된 명확한 정보로 인해 누군인지 알고 있지만, 이를 음악으로 커버해 안정감을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뻔한 설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안정감을 부여한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관상>에서의 김종서와 수양대군 ⓒ쇼박스


반면, 영화가 시작할 때 나오는 늙은 대감의 정체와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명회의 존재는 괜한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연홍의 존재는 아쉬웠다. 내경으로 하여금 서울로 오게 하고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하는 역할이었을까? 영화가 아닌 드라마였다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감초 역할로 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토리의 경우는 어떨까? 스토리 역시 명확한 정보로 인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결국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죽일 것이고, 김종서에 붙었던 내경 또한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볼 것이 당연하다. 이를 어떤 식으로 커버할 것인가? 영화는 이를 팽헌과 진형으로 해결하려 한다.

 

진형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던 팽헌은 어느 날 진형이 테러를 당한 것을 보고 이성을 잃는다. 김종서가 관리명단의 이름에서 한 사람을 뽑아 단종에게 올리면 단종이 그 위에 점을 찍어 그 사람을 관리로 임명한 황표정사에 대해서 진형이 단종에게 그 폐단을 솔직히 발언하자, 김종서의 부하들이 진형에게 테러를 가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는 조작된 것이었지만, 팽헌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수양대군에게 달려가 김종서의 거사를 밀고한 것이었다. 마치 영화에서 팽헌과 진형이 이 사건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질감이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내경 집안이 역적이었다는 걸 초반에 굉장히 부각시켜놓고선 후반으로 가면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 단지 내경과 팽헌과 진형의 서울행을 위한 이유 때문이었나?

 

내경이 서울로 올라와 일사천리로 김종서의 핵심 멤버가 되어 거의 수양대군의 한명회와 동급의 참모 역할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관상>이 아닌 <계유정난>이 되어버렸고, ‘관상쟁이내경의 존재는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수양대군은 왜 진형을 죽이게 되는지 알 수 없다. 훌륭한 왕이 될 상이라는 내경의 말을 듣고 그 보답이라며 활을 쏴 죽이게 되는데, 이후의 모습을 보니 내경과 진형의 진한 가족애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여러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 위에 놓고, 격렬히 부딪히면서도 죽지 않고 살리려는 감독의 의지가 돋보였다. 돋보였지만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살려야 하는 캐릭터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보여줘야 하는 사건들도 많았다. 그래서 컷은 짧게 짧게 그러나 굉장히 많이 나왔지만, 자연스레 러닝 타임이 늘어나 지루한 부분이 종종 보였다. 에필로그는 에필로그다웠지만, 영화에 어울리는 에필로그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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