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초록물고기>


'거장' 이창동 감독의 시작 <초록물고기>. 우리는 이 영화에서 지금으로선 기가 막힌 한석규, 송강호의 동반 출현을 볼 수 있다. ⓒ시네마 서비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1997년 2월 초에 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한 영화감독의 데뷔작, 심상치 않다. 이런 영화가 이전에 있어나 싶다. 흥행 미풍, 호평 일색이다. 제목은 <초록물고기>, 감독은 이창동. 거장의 출현을 알린다. 당시 그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1983년에 데뷔한 중견 소설가였다. 이 작품 이전에 <그 섬에 가고 싶다> 각본과 조연출을 성공리에 마치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각본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러니 초짜가 아닌 중고 신인의 데뷔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의 사건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중심엔 이창동 감독이 있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단 5편의 연출작을 남기는데,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초록물고기>부터 시작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까지, 앞의 세 편으로 이미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박하사탕>인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가 설경구일 때가 있었다. 거장의 눈썰미는 시나리오와 더불어 배우에게도 가 닿아 있는 것 같다. 설경구를 비롯해 송강호, 문소리, 정진영 등은 오로지 그의 눈썰미에 의해 뽑혀 함께 한 배우들이고 하나 같이 대배우가 되었다. 우린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와 송강호와 문성근이 함께 하는 마법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외형은 느와르, 내형은 누구나의 이야기


소시민적 이야기에서, 느와르로, 누구나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리얼리즘 진한 작품. 소설 한 편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네마 서비스



시작은 제대 귀향 기차. 막동(한석규 분)은 우연히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 미애(심혜진 분)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듯, 하지만 그녀의 스카프만 얻었을 뿐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다.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일산의 옛날 집으로 돌아온 막동, 뭐라도 해보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기술도 없다. 큰형, 작은형, 막내여동생을 찾아 다니며 회포나 풀 뿐이다. 계란장사를 하는 작은형과의 한바탕은 그에게 참으로 귀한 재산이다.


와중에 걸려온 여인의 전화, 수소문해보니 귀향 기차에서 만난 미애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이트클럽 전속 가수이자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보스 배태곤(문성근 분)의 여인이다. 배태곤의 눈에 띈 막동, 곧 그의 아래로 들어가 승승장구한다. 보스 몰래 하는 미애와의 사랑도 꽃피운다. 


그런데, 소싯적 배태곤의 보스였던 김양길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사태는 일변한다. 일대를 주름잡던 배태곤의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든 것. 급기야 배태곤은 김양길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대로 있을 배태곤이 아니다. 그는 막동에게 극비리에 중요한 임무를 떠앉기는데... 막동의 앞날은 어떨까. 


리얼리즘의 대가 이창동, 그는 소시민을 잘 그려내기로 정평이 나 있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또는 중심에 서지 못한 이를 내세워, 그로 하여금 대표성을 띨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초록물고기>는 외형은 느와르이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나의 이야기, 드라마이다. 막둥이가 살아가는 동향, 그의 가족들 모습, 그를 둘러싼 환경들이 모두 그렇다. 


조폭 영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명작


흔한 조폭 영화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삶의 지독한 아이러니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명작이다. 소시민과 재개발과 조폭. ⓒ시네마 서비스



벌써 20년이 되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도 하다. 기억 속 <초록물고기>는 같은 해 개봉해 숱한 화제를 뿌린 문제작 <넘버 3>와 비슷하다. 한석규와 송강호가 나오는 조폭 영화라서 그런지, <넘버 3>가 뇌리에 더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초록물고기>를 보기 전에, 현재 한국 배우 빅3인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을 한 영화에서 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건 <넘버 3>인데. 


그런 기대, 조폭 영화를 볼 때면 으레 가지게 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면 이게 무슨 <전원일기>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날것의 소시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막동이와 작은 형이 함께 계란차를 타고 경찰차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한창훈 소설가의 <오늘의 운세> 한 장면을 그대로 차용한 것 같은데, 장면으로 보니 정말 많이 웃겼다. 한편 한창훈 소설가가 천착하고 있는 것도 아무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이들의 '소외'이니 만큼, 그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회사 사정 상 파주와 일산 쪽을 자주 가는데, 오래전에 신도시가 들어선 그곳이지만 아직도 허허벌판이 눈에 많이 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에 나오는 배경과 완연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개발이 한창인 당시, 배태곤이 추진하는 게 다름 아닌 재개발 관련 사업. 신도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아니 피해를 볼 여지가 있는 소시민인 막둥이가 배태곤을 도와 신도 개발 사업을 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한 삶이 아닌, 삶이란 아이러니하다 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


'좋은 영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초록물고기>는 단연코 좋은 영화인 바, 이 기회에 한 번 보심이 어떨지. 당당하게 추천한다. ⓒ시네마 서비스



재개발과 소시민, 그리고 소외를 다루는 한편 정통적인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영화가 갖는 위대함이라 하겠다. 잘 빠진 느와를 한 편을 보는 것도 힘든데,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생 드라마를 엿볼 수 있다니 말이다. 와중에 제대로 된 한국형 느와르인 <달콤한 인생>이나 <비열한 거리>의 만들어진 듯한, 적어도 '내'게 피부로 와닿는 공감은 선사하지 못하는 부분을 <초록물고기>는 채워준다. 


그 중심엔 막동이라는 캐릭터가 있겠다. 배태곤이 그에게 꿈을 묻는다. 그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단다. 소박하다면 소박하지만, 가족들이 한데 모여야 한다는 점에선 요원할 수도 있겠다. 그 꿈이 소박할수록 그가 가고 있는 길은 험난해진다. 그리고 비극은 점점 다가온다. 


영화는 말한다. 사람이 허무하게 죽어 나자빠지는 느와르, 절절한 배신이 난무하는 느와르와 소박하기 그지 없는 꿈을 꾸는 소시민의 생각, 행동,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느와르는 하나의 장르가 아닌, 먹고 사는 삶에서 파생된 여러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부분을 이 영화가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기도 한다. 당대의 생생한 모습을 우린 스크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런 리얼리즘 작품에서 절절히 확인할 수 있는 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된다. 우린 알 수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이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라는 걸. 그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우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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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닭털 같은 나날>


<닭털 같은 나날> ⓒ밀리언하우스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곤 한다. 매일 지근거리에서 보게 되는 부모님의 삶을 보면서, 절대 부모님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설마 그렇게 살게 될까 하며 지나가 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너무나 재미없고 단순하며 천편일률적이고 희망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나을 거 없는 다를 거 없는 삶이란 말이다. 


반면 부모님 세대의 다음 세대는 상당히 많은 이들이 대학을 나왔고 지식의 함량이 출중하다. 생각하는 것도 웅대하진 않아도 소시민적이지는 않다. 적어도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삶을 그리고 더 나은 삶을 당연하게 기대한다. 이는 부모님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자녀 세대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고 자부하는 당신들이다. 


그런데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대학을 나와도 지식 함량이 커져도 경쟁력이 월등해져도 살아가는 건 여전히 지리멸렬하다. 굳이 부모님 세대와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보이는 나날들이 같고 생각이 같고 인생이 같다. 중국 작가 류전윈의 <닭털 같은 나날>은 베이징에 사는 한 부부의 일상을 통해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을 나왔고, 성취욕 또한 강했다.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고, 웅대한 이상도 품고 있었다. 관공서의 처장이나 국장, 사회의 크고 작은 기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몇 년 후,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본문 중에서)


남편 린은 새벽부터 국영 상점에 줄을 서서 두부를 사곤 한다. 언제 한 번은 밤에 계량기가 돌지 않을 정도로 살짝 수도꼭지를 열어 양동이에 몰래 물을 받은 적도 있다. 또한 몇 년 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집에 살다가 빈민촌으로, 임시 가옥으로, 옮겼다가 결국 지금의 방 하나 있는 집을 얻었다. 그렇다. 그는 가난한 소시민 가정의 가장이다. 


아내 리는 출퇴근 시간만 4시간 이상이 걸리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일 자체는 편하기 그지 없지만 출퇴근이 너무 힘들다. 남편 린은 이를 해결해 주기 위해 수를 쓴다. 회사의 부국장에게 부탁해 그의 동창생이 인사 책임자로 있는 회사에 아내를 소개 시키려고 계획이다. 그런데 린은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부탁하러 가면서 '코카콜라' 한 박스라는 웃지 못할 선물을 들고 가기도 한다. 


소설은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고 계속 되며 빠르게 전개 된다. 우리네 일상이 지리멸렬함 속에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의 연속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순간 순간 다가오는 소소한 문제들을 생각하고 처리하다 보면,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는 이상(理想)만이 판치는 비현실적인 세계일 뿐이다. 현재는 오직 생존만이 있을 뿐이다. 살아가기 위해 뭐든 해야 하지 않는가?


모든 것에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참을 수 없는 것은 '두부가 상하는 것' 같은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다. 과거에는 처자식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을 농민의식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 처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누구를 돌보겠는가? 그리고 처자식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누가 날마다 따뜻한 잠자리를 보장할 수 있겠는가? 아내와 아이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과거에는 웅대한 이상을 품어도 양해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치하고 성숙하지 않아, 사물의 발전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살기 위해 먹기만 하겠는가. 먹기 위해 사는 때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쇼핑도 하고 소풍도 즐기며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매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과정은 어떻든 간에 결과가 좋으면 되는 거라는 생각만 하며 살아 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런 생각은 현실의 장벽 앞에 슬며시 사라지고 만다. 


어느 날 린의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그는 린의 은사로서 린에게 매우 잘 대해주던 분이셨다. 그런데 린에게는 선생님을 모실 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은 물이나 얻어 마시고, 오히려 참기름 두 통을 린에게 선물로 준 뒤 나가야 했다. 또한 그들에게는 가정부가 하나 있었는데, 돈을 아끼는 방편으로 쫓아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리의 출퇴근 문제가 해결되었다. 회사에서 통근 버스를 리의 집 근처까지 배정해준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이유가 리에 있지 않았고 사장 처제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모욕을 받은 느낌까지 들었다. 결국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는 않는 다는 자기 합리화로 어물쩡 넘어가고 만다. 


이어서 비슷한 느낌의 일이 터진다. 딸 아이가 A 회사에서 운영하는 좋은 유아원에 가길 원하는데, 그곳은 가기가 너무나 힘든 곳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사회적 급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포기하고 있던 찰나, 앞집에서 손을 써주어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앞집 아이가 잘 울어서 적응하지 못할까 봐 린과 리의 아이를 짝지어서 들여보낸 것이었다. 결국 이 또한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는 않는 다는 자기 합리화,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생각으로 넘어가고 만다. 


"사실 세상일이란 게 참 간단한 거야. 하나의 이치를 깨닫고 그 이치에 따르면, 삶이 흐르는 물처럼 순탄하거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면 아주 편해. 세상이 편해지면 지구도 그에 따라 추웠다 더웠다 하는 거라고." (본문 중에서)


살아가기 위해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자존심을 버리고 꿈도 꾸지 않는 이들을 비웃을 사람을 없다. 그들을 나무라거나 손가락질 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한테도 있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그럴 권리도 있고 나아가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조금 꺼려지는 이유는, 생존과 이상(꿈)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생존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나 하나는 괜찮지만 최소한 나의 가족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와 따뜻한 잠자리를 주어야 하기에. 소설 제목처럼 닭을 잡은 뒤에 피와 털이 난무하는 비참한 현실이나 허섭쓰레기 같은 일상이 내 삶을 온전히 지배하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이상을 선택한 사람들은 정녕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들은 현실의 토대 위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범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이상까지 떠 받들며 살아가는 이들은? 이들이야말로 위대한 이들이 아닐까?


퇴근길 버스 안에서 집에 쌓아둔 배추더미를 널어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하루 종일 그를 상심하게 했던 선생님의 일은 기억 저편으로 묻히고 말았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은 역시 배추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는 또 생각했다. 배추를 다 정리하면 아내가 전자레인지로 닭을 구워줄 것이고 맥주를 내줄 것이다. 그것으로 그는 아무 불만이 없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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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세일즈맨의 죽음>


<세일즈맨의 죽음> 표지 ⓒ 민음사

한 집안의 가장이 자살로 생명 보험금을 타내, 가난에 찌든 가족들을 살려냈다는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요즘에야 수많은 보험사기 극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치부되곤 하는 이런 레파토리에는, 사실 굉장히 신파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즉, 어느 정도 감동적인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이 레파토리가 1949년 퓰리쳐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도 쓰인 걸 보면, 그만큼 보편적인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이라... 당시 미국은 1929년 뉴욕 월가로부터 시작된 세계 대공황으로 국가 창설 이래 유래 없는 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그나마 내몰리지 않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청산할 길 없는 빛에 허덕였다. 이들 중 대부분은 본래 가진 것 없는 소시민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997년 말에 터진 IMF 위기 때, 가장 부각된 사건은 대기업들의 줄도산이었다. 반면에 소시민들의 파산은 어찌 보면 너무나 일반적이었기에 부각이 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그때의 여파가 15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우리 가족의 삶에도 그 이전과 이후로 많은 차이가 있었다. 


2008년에 터진 세계 금융 위기는 1929년 세계 대공황과 가장 유사한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최고의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시기에서 터진 위기라는 것과 그 시발점이 미국 자본주의의 맹아인 월가인 것 등 말이다. 그때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이 위기는 2010년대에도 쭉 이어질 것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미국은 어떠한 방법이든 강구할 것이다. 그것이 제3차 세계대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평생을 일해서 집을 얻었는데... 그 속에 사람이 없어


각설하고, 어떤 위기가 터지든 제일 피해가 가는 계층은 가진 것 없는 소시민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는 세일즈맨이자 소시민이다. 그래도 그는 한때나마 잘 나갔다. 세계 대공황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각종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세계의 자본가 역할을 하던 시기였다. 넘쳐 나던 물자 공급은 그것을 수요자에게 연결해주는 세일즈맨을 필요로 하였고, 이에 세일즈맨은 실력보다 인맥에 기댄 전략으로 전국을 누볐다. 윌리는 그런 시대에 알맞은 세일즈맨이었던 것이다.


윌리 : 생각해 봐. 집을 사려고 평생 일했어. 마침내 내 집이 생겼는데 그 속에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요. 

린다 : 여보, 인생은 버리며 사는 거예요. 항상 그런 거지요.(본문 속에서)


희곡은 늦은 밤 윌리의 귀가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60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물건을 팔기 위해 전국을 누빈다. 하지만 예전의 명성은 온데간데 없다. 그가 자랑하던 인맥을 구성한 사람들은 이제 죽거나 아무런 힘이 없다. 30년이 넘게 충성스럽게 일한 그의 회사에는 그보다도 훨씬 능력 있고 젊은 세일즈맨들이 넘쳐 난다. 위기에 직면한 나라와 회사는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잘 나갔던 예전을 떠올리며 현실 도피의 모습을 보인다.


길지 않은 나의 인생에서도 좋았던 때가 있고 힘들었을 때가 있다. 너무나 힘들었을 때, 혼자 있게 되면 생각나곤 했다. 마냥저냥 좋았던 어릴 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시절 등이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고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현실에서 보았을 때, 그때 그 시절은 생각 속에서나마 나의 존재가치를 높여주는 매개체로 작용했던 것이다.


힘들수록 과거로 도피하는 윌리


윌리는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과거로 도피한다. 돈벌이는 점점 줄어드는데 구입하고 수리하고 빚을 갚는 데 들어가는 돈은 더욱 늘어나고, 수 십 년에 걸쳐 빛을 갚아 내 것이 된 집이건만 회사에서 잘리니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어릴 때는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으로 세계를 제패할 것만 같았던 아들은 비렁뱅이 신세가 되어 있다. 그럴수록 그는 어느 정도 부유하고 대접 받고 걱정 없던 과거로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미국 역사의 한 단면을 그려 보이기까지 한다.


즉, 미국이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기 직전의 시기를 그의 어린 시절에 빗대었고, 미국이 세계 최고의 국가로 호령하고 있던 시기를 역시 그의 잘나갔던 시절에 빗대었다. 그리고 미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당시는 윌리 또한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시기인 것이다. 시대와 국가, 그리고 개인이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그런 설정인 동시에, 만들어진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보편성에 깊은 소회가 들게끔 한다.


윌리 : 오, 형님. 어떻게 하면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빛과 가족애로 가득했고 겨울엔 썰매 타느라 두 볼이 붉어지는 줄도 몰랐죠. 언제나 어떤 즐거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고 뭔가 좋은 일이 앞에 있었어요. 집 안에서 나는 여행 가방을 들 필요조차 없었고 빨간 자동차는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어떻게 해야 내가 그 애에게 뭔가 남겨 주면서 나를 더 이상 혐오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본문 속에서)


베이비부머라고 불리는 1950~60년대 생은 1970~80년대의 호황과 함께 성장했다. 전쟁으로 바닥을 친 국가가 가야 할 길은 오르막뿐이었고, 그에 속한 개인들이 가야할 길 또한 같았다. 1970년대 생은 1997년 IMF에 직격탄을 맞았다. 국가의 위기 속에서 그들의 인생 또한 상당한 파멸을 면치 못했다. 1980년대 생 또한 또 다른 국가 위기인 2008년 금융 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들의 운명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옛날을 생각하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복고'가, 한때의 유행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윌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위기가, 어려움이 지속될수록 '복고'의 열풍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더 이상 읽히지 않기를...


남들이 보기에 윌리의 상태는 심각했다. 헛것을 보고 환청이 들리는 상황이 정상적이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지 않은가? 극 중, 윌리의 꿈속에 계속해서 나오는 윌리의 형은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알래스카로 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직장에서 평생 동안 일을 한 윌리가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옛 일일 것이다.


그에게 후회되는 옛일이 하나 더 있다. 외간 여자와의 외도 장면을 그의 장남 비프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어린 시절의 그 충격으로 비프의 삶은 완전히 어긋나게 된다. 물리학적으로는 아버지를 찾아오느라고 수학에서 낙제를 받아 졸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정신적으로는 그토록 좋아하고 존경하던 아버지라는 마음의 기둥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었다.


무너진 윌리의 삶, 무너진 비프의 삶, 무너진 가족의 삶... 이는 시대의, 국가의 붕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 위의 언급을 부정하는 것일까? 윌리 개인의 잘못에서 시작된 붕괴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윌리의 말을 들어보자.


윌리 : 그 여잔 아무것도 아니야. 난 외로웠어. 너무 외로웠을 뿐이야.(본문 속에서)


윌리가 외로웠던 건 전적으로 그의 잘못은 아니다. 시대의 아픔인 것이다. 운명공동체로 묶여진 시대, 국가, 개인의 삶이 서글프다.


윌리는 결국 허상 속의 형의 손짓을 따라 죽음의 길을 간다. 죽는 순간까지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은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바이지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은 없다. 그의 비극(비극이라고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으로 살아있는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고, 이런 비극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짧은 비극이 시공을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위기가, 어려움이 찾아올수록 이 작품은 더욱더 사랑을 받을 것이다. 작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작품이 더 이상 사랑 받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린다 :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본문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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