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카트에 담긴 역사 이야기>


<카트에 담긴 역사 이야기> 표지 ⓒ노느매기



'호모 컨슈머리쿠스', 소비와 소유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인간을 일컫는 용어로, 지난 2013년 EBS 다큐멘터리에서 다뤄지며 꽤 반향이 있었다. 현대를 사는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욕망이자, 사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生)과 열심히 사는 것(買)이 동일선상에 있다는 말인데, 우리네를 돌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소비에 대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경제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문화적으로. 하지만 소비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상품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지. 과거 친일 경력이 있는 기업의 상품, 일제 침략에 앞장섰던 일본 기업의 상품 불매 운동이 가끔 있긴 하지만 일시적이지 않는가. 아니 아는 것만 못한 앎인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카트에 담긴 역사 이야기>(노느매기)의 저자는 그런 생각이 결코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우리가 사용하는 상품 하나하나의 역사를 철저히 파헤쳐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즉 우리 자신을 알아가는 길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한 방법론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소비와 상품을 통해 보는 역사, 역사에서 등장한 소비와 상품을 통해 보는 인간. 그러며 이 책은 그 뒤에 숨겨진 저질스러운 비밀 아닌 비밀도 파헤친다. 충격적이지만 재밌고, 아니 아는 것만 못한 앎이 아닌 몰랐으면 절망할 만한 내용들이다. 


'테디 베어'가 마냥 귀엽고 포근한가?


'테디 베어'를 모르는 이는 없지 않을까. 사랑스럽고 포근한, 우리의 영원한 힐링 인형이 아닌가. 테디 베어 같은 남자를 이상형으로 둔 여자가 참으로 많고, 테디 베어 같이 되고 싶은 남자도 은근히 많을 거다. 그런 테디 베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다름 아닌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테어도어 루스벨트'의 애칭 '테디'에서 생겨났다. 그가 새끼곰 사냥을 거부하는 만평을 장난감 가게를 하는 모리스 미첨이 보고 '테디의 곰'이라는 곰인형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대박이 난다. 


테어도어 루스벨트는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중 하나이다. 미국의 '큰 바위 얼굴'에 새겨진 4명의 위대한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고, 미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기에 그의 애칭을 딴 인형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건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 뒤에는 엄청난 게 도사리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사냥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의 한국 침략을 허락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허락했다. 그는 일본의 러일 전쟁 뒷배를 확실히 봐줌으로써, 결국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항공모함은 무시무시한 화력을 앞세워 전 세계를 누리고 있다. 이래도 '테디 베어'가 마냥 귀엽고 포근한가? 그 웃음 뒤에는 이런 역사가 '숨어' 있다. 이뿐이랴?


차별의 산증인 '토마스와 친구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놀았을 '토마스와 친구들' 기차 세트. 어른이 된 지금도 조그맣고 귀여운 얼굴의 기차들이 자동으로 기찻길을 가는 걸 보면 설렌다. 세계 130여 개국의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인기 있는 비결은 무얼까. 놀이도 놀이지만 교육적인 면이 가장 크다고 한다.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나. 그렇지만 이면에는 잔혹한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 


증기기관차를 의인화했다는 점에서 일단 '산업혁명'이 생각난다. 그리고 극 중 철도회사의 사장인 토핌 햇 경과 소도어 섬의 지주이자 자산가인 백작이 친구인 점에서 '명예혁명'이 도출될 수 있다. 이 혁명들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문제가 많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국의 '시민혁명'인 명예혁명은 지주, 자본가, 귀족의 타협에 의해 성사된 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의 폐해는 너무나 심하고 많다. 이 혁명들의 산물이 다름 아닌 '토마스와 친구들'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대단히 '교육적인'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폐해는 둘째치고 역사를 배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토마스와 친구들'에는 '차별'이 도사리고 있다. 쓸모없는 기관차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또한 등장인물 중에 여성과 비백인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그야말로 차별을 교육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영국의 대처 수상에게서 시작된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소비와 상품의 역사, 현명한 소비의 시작


이밖에도 책에서 소개하는 '소비와 상품에 담긴 역사'는 정말 많다. 기억에 남는 몇몇이 있다. 버버리사의 바바리는 원래 군용품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에서 유용하게 쓰였던 것이다. 포드 자동차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를 지원했으며, IBM도 나치를 지원했다. IBM의 경우, 나치에 지원한 컴퓨터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미쓰비시와 니콘은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다. 미쓰비시는 수많은 한국인을 강제 동원했으며, 니콘은 일제 군대의 눈이었다. 이들은 모두 그에 대한 사과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한편 BMW도 나치에 지원을 한 경력이 있는데, 지난 3월 창립 100주년을 맞아 공식적으로 나치 지원을 시인하고 사과를 했다. 진정한 명품기업이다. 


너무나도 많은 기업과 상품 뒤에 끔찍한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그의 태반을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하거니와, '그 당시엔 어쩔 수 없었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역사를 가지지 않은 기업과 상품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 가장 무서운데, 이는 과거 일제 시대 때를 살아간 많은 친일파를 일컬을 때 하는 생각, 말과 비슷하다.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생각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소비, 기업, 상품의 정확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게 비록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소비에 도움이 되지 않을 지라도 말이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무엇을 위함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와 상품의 역사를 앎으로써, 소비와 상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알게 되는 건 참으로 즐겁고 진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현명한 소비'의 정의를 내린다. '상품에 담긴 역사를 이해하는 소비'. 상품이 가지는 여러 가치 중 '역사적 가치'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상품에 담긴 역사를 통해 현재를 관찰하는 소비'.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명제를 생각하게 하는 정의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소비에 대입시키면 된다. 그로 인해 현재를 바라보는 올바른 눈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상품을 카트에 담는 행위가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소비'. 일종의 '나비효과'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소비하는 것들이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항상 인지하고,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으면 찾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부디 소비와 상품을 통해 본 과거의 역사, 현재의 관찰, 미래의 모습이 합당했으면 좋겠다. 비록 역사는 부정적이기 짝이 없었지만, 그 덕분에 현재, 특히 미래는 희망찼으면 한다. 결국 역사를 보는 이유는 현재와 미래를 위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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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어느 날 이름도 성도 신이라는 그가 나타났다 <신신>


<신신> ⓒ휴머니스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이 자본으로 수렴된다. 예를 들어 보자면 이렇다. 불과 30여년 전까지 못 잡아먹어서 안달했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상의 정점에 서 있는 것들, 1960년대 전 세계적인 반 사회적 열풍이었던 히피 문화, 그리고 언제나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전쟁과 테러까지. 이런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반 자본주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것까지 자본주의는 끌어안아서, 콘텐츠화 시킨다. 그리고 돈을 받고 판매한다. 무엇이든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파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쿠바 혁명의 상징이자, 반미·반자본주의의 상징인 체 게바라는 세상 무엇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상품'이다. 걸프전 당시 3류 방송이었던 CNN은 전쟁을 여과없이 생중계로 방영해 단번에 세계적인 방송국으로 올라섰다. 이와 연장선상으로, 인류 역사상 주요 전투·전쟁들은 영화, 소설을 비롯한 문화 콘텐츠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작년에 개봉해서 국가적 신드롬을 낳았던 영화 <설국열차>, <변호인>은 계급혁명과 반국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현상을 극단적으로 끌어 올려 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결국 모든 것의 궁극점에 위치해 있는 '신(GOD)'까지 도달할 것이다. 과연 '신'까지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답은 두말 않고 그렇다이다. 일례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만들어진 신>이나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은 신과 관련된 상품들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한편 엄청난 논란을 낳기도 하였다. 


자본주의는 '신'조차 상품으로 팔아먹는가?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그래픽 노블 <신신>(휴머니스트)은, 자본주의의 신에 대한 노골적인 소비성 시각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세계에 출현한 '신'. 그는 성도 이름도 신이었다. 그리고 역시 신답게 전지전능하다. 이에 전 세계가 들썩인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능력을 즉, 신다운 능력을 보여주는 이 '신신'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관심이 생각지도 못한 곳을 흘러간다. 진짜 신으로 설정된 순간 더 이상 신이 있다 없다의 논쟁은 필요가 없어지고,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며 동시에 신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수많은 콘텐츠와 상품들이 부지기수로 나오기에 이른다. 


논쟁은 신에 대한 재판으로까지 진행된다. 이 재판은 신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과연 신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 신은 세계와 인간을 창조했다. 그런데 인간 세계에는 수많은 부정적인 것들이 판치고 있다. 왜 신은 이 세계를 구하지 않는 걸까? 왜 능력이 있으면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는 걸까? 이 재판은 신의 역할, 그리고 신의 능력(과연 신은 전지전능한가?)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신을 이용해 상품을 만들고 있는 현상이다. 부조리와 부정적인 것들이 판치는 몹쓸 이 세상(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이 세상)에 출현한 신의 존재는 그 자체로 확고부동하고 완벽한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가 이를 놓칠 리는 만무하다. 출판, 전시회, 미디어, 테마파크까지. 심지어 재판조차도 신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돈을 벌려는 일종의 쇼에 불과하다. 과연 이 거대한 쇼는 어떻게 끝을 맺을까? 


예상했겠지만, 쇼의 마지막은 가짜 신을 이용한 'I-신 이어폰'의 상품 프로모션이었다. 이 가짜 신이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건 다 이 상품 덕분이었던 것이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부터 해당 지식을 바로바로 전해 들었던 '신신'은 모르는 게 없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진짜 신이 내려와 인간의 궁금증을 풀어주려 했다면 인간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엇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신'조차 상품으로 기획하여 팔아 먹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책을 덮고 나면 어안이 벙벙하다. 


'신'의 출현에 미디어가 대응하는 법


하지만 이 거대한 쇼를 기획한 이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미디어(언론)'. 자본주의 사회는 단지 충실하게 소비했을 따름이다. 미디어는 신이 출현하자 기민하게 대처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인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운' 것으로 여겨진 신신의 증거들은 '몹시 놀라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완전 놀라운' 다음에는 '놀라 자빠질 만한'... 그리고 마침내 '신신'은 신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여기서 되짚어 봐야 할 사항이 출현한다. 미디어라고 하는 심지어 '신'까지도 조작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네 삶을 지배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살고 있는 것일까? 매일같이 접하게 되는 미디어가 작정하고 일을 벌인다면, 그것을 믿지 않을 수가 있는가?


미디어는 현실 속에서 국가 최고 기관인 대통령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2088년과 2012년 대선 당시 SNS(쇼셜네트워크서비스)의 대표 주자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어렵지 않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오바마가 미디어를 이용한 건지 미디어가 오바마를 이용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미디어가 오바마를 당선 시킨 것과 마찬가지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미 미디어는 '신'과 다름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옳고 그름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미디어가 가지는 힘이 폭주하게 될 때의 쏠림 현상인 것이다. 미디어라고 언제든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떠나 '조작'을 통해 명백히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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