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라비, 이것이 인생!>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포스터 ⓒ디스테이션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에서였다. 19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의 대중영화를 상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니 한참 전부터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건 단연 미국이다. 마치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라고 다시금 천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뤼미에르 형제 이전에 미국의 에디슨과 딕슨이 이미 영화용 카메라와 활동사진 감상 기구를 발명하였고 영화 스튜디오와 영화 제작사를 차렸다. 


하지만 시네필이라면 미국 아닌 프랑스를 동경한다. 세상이 자본주의로 획일화되어 영화 또한 그에 흡수되기 전에는 프랑스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기준이자 척도였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던 프랑스였다. 프랑스가 그 답을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 건 한참 전이다. 


프랑스 영화는 종종 상업적으로 미국 할리우드를 위협하거나 또는 훌륭하게 종속되거나 해왔다. 감독으로는 뤽 베송이나 미셸 공드리, 배우로는 마리옹 코티야르나 뱅상 카젤 등이 유명하다. 물론 레오 카락스 감독이나 이자벨 위페르 배우 등 미국에 진출하지 않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도 많다. 


특별한 결혼식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프랑스는 극강의 예술영화를 지나 범죄,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등의 장르 상업 영화에 도드라지는 형태를 보여왔다. 그중에 한국에는 2012년에 선보여 생각지도 않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 <언터처블: 1%의 우정>이다. 전신불구의 상위 1% 귀족남과 무일푼의 하위 1% 흑인백수의 기막힌 동거를 코미디와 감동 어린 드라마 조합으로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모든 작품을 함께 연출하는 올리비에르 나카체·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거니와 그들의 출세작이다. 


이들은 2005년 데뷔 후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는데 모두 코미디였다. 최근에는 감동 어린 드라마를 적절하고 훌륭히 조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듯하다. 2017년 프랑스에서 선보여 엄청난 인기를 끌고 올해 한국에 상륙한 <세라비, 이것이 인생!>이 최신작으로, 변치 않는 프랑스식 입담과 코미디와 드라마를 선보인다. 


웨딩플래너 업체를 이끄는 맥스는 17세기 고성에서의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한다. 유독 까다롭고 예민한 클라이언트 신랑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그날따라 불만 많고 불안하기 짝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연발하는 직원들 뒤치다꺼리가 힘들다. 요즘 부쩍 일 하기가 힘들어 회사를 넘길까도 생각 중이다. 


이뿐이랴? 믿고 맡겨야 할 넘버 2 아델은 땜빵으로 온 밴드 리더 제임스와 욕지거리를 주고 받으며 싸우질 않나, 맥스와 공공연한 내연 관계에 있는 조지앙은 부인과 매듭을 짓지 않고 시간을 끄는 맥스 보란 듯이 젊은 직원을 꼬시며 속을 뒤집어 놓질 않나, 처남이랍시고 내치지 않고 봐주고 있는 줄리앙은 잠옷 차림으로 출근해 한때 동료였던 신부에게 들이대려고 하질 않나... 과연 이 결혼식은 잘 끝날까?


일과 사람들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영화는 17세기 고성을 배경으로 하객과 웨딩플래더 업체 직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결혼식 하루 나절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는 단연 사장 맥스가 있고, 그가 처리하는 복잡다단한 일의 단면들이 전부다. 거기에는 정녕 개성 만점 인간군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지 작은 회사에서 관리자급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라는 게 한번 몰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거니와 정녕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성격의 다양한 종류의 일들이 터진다. 그것들을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야 할 때는 정신 차리고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그때 드는 가장 주된 생각은, 각각의 일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이 아닌 사람들 말이다. 그럼 참 편할 텐데...


<세라비, 이것이 인생!>은 잡은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 이런 바람을 역으로 살려 극대화시키며 재미를 끌어낸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들, 그 어려움은 사실 그 일들의 주체인 사람들에 있다는 공감. 내가 그 자리에 있긴 싫지만, 그 자리를 구경하는 건 정녕 재밌는 일 아닌가. 예를 들면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을 대리 경험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맞아, 꼭 저런 일이 있지. 꼭 저런 사람이 있어.' 하는 공감 경험. 


더불어 '사람'들에서 이 감독들이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있으니, 적정하고 유려하게 내놓는 사회 비판이다. 거기엔 인종의 용광로인 프랑스의 특성이 잘 배어 있어 더더욱 흥미롭다. 전작 <언터처블: 1%의 우정>과 <웰컴, 삼바>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물리적 아닌 화확적 화합으로 나아가는 특성을 지닌다. 


이 영화를 즐기는 법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맥스의 회사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수준이다. 이왕이면 작아보이고 싶어서일까. 불법으로 보이는 일, 즉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현찰로 정직원 아닌 알바 또는 계약직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상당수가 백인 아닌 인도 쪽(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사람인 듯보이고, 역으로 그쪽 사람들은 모두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선진국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 자행되는 불법, 그런데 맥스는 국세청에서 찾아온 듯한 사람한테 가서 이실직고 정부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역설한다. 걸리면 어차피 다 죽을 거, 하지만 걸릴까봐 두려워 불법을 자행하지 않아도 다 죽을 판이다. 


"우린 영세업체지만 일손이 부족해요. 정직원만 쓰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죠. 급여 100유로당 200유로를 손해보니까요. 그러니 급여를 현찰로 주고 쓰죠. 정부 지원이 없으면 어쩔 수 없어요. 정직원을 많이 쓰면 회계 감사도 받잖아요. 신규 채용 급여세 면제는 왜 안 하죠? 다들 실업률 증가네 어쩌네 떠들지만 문제 해결엔 관심이 없어요."


이 영화의 재미와 감동은 단연 인간의 다양성 그리고 자연스레 수반되는 상황의 다양성에서 온다. 하지만 서사 흐름 속 위기 또한 다름 아닌 바로 그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회사와 먼 곳의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에 뛰어든 이들의 공공연한 합의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뜬금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로맨스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 간의 자국어 대화로 엿보는 프랑스 셀프 디스라는 다양성의 일환이든 말이다. 다름 아닌 이들이 문제를 얼추 해결하기도 하는 다양성의 일환도 흥미롭다. 


다분히 프랑스식 유머와 프랑스에서만 통용될 문화가 곳곳에 배어 있는 이 영화는 사실 온전히 100% 즐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수많은 캐릭터들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기억에 남을 만한 사연들, 범보편적 공감을 살 만한 상황들이 완벽할 수 없는 이해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라는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누고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어 하고 좌절을 느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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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에델과 어니스트>


<에델과 어니스트> 포스터. ⓒ㈜영화사 진진



영화 한 편으로 한 방면이나마 역사를 훑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굉장히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주요 사건들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아야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레스트 검프> <벤자민 버튼은 거꾸로 가지 않는다> <국제시장>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이 생각난다. 


한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온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평범하거나 굉장히 특출나다. 하지만 접근 방법은 같다. 이들 모두는 우리와 다름 없는 삶을 살았거나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 우린 이 영화들을 사랑했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대체로 동질감을 느꼈다. 


자전적 애니메이션 <에델과 어니스트>는 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라 하겠다. 1920~60년대 영국의 지극히 평범한 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의 20세기 초중반 40년을 훑는 작업 말이다. 우린 이 영화로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동시에 영국의 20세기 초중반을 지탱한 가치관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는 영국의 세계적인 동화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다. 그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 이야기를 옮겨놓았다. 때는 1928년 런던, 가정부 에델과 우유배달부 어니스트는 사랑에 빠져 짧은 연애 끝에 결혼한다. 에델은 가정부를 그만두고, 그들은 25년 대출상환으로 집을 장만한다.


결혼하고서 집안살림을 하나둘 장만하는 평범한 나날들, 하지만 결혼 2년이 지나서도 아이를 갖지 못하자 37살 많은 나이의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다. 그 사이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리고, 에델과 어니스트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한편, 곧 임신을 하고는 남자 아이를 낳은 에델, 하지만 나이가 많아 더 이상의 아이를 가질 순 없다. 


아이는 자라고, TV가 시작되고, 히틀러가 전쟁태세에 돌입하고, 에델과 어니스트와 레이먼드 가족은 전쟁을 대비한다. 급기야 영국도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는 대피령에 따라 안전한 시골로 가고 집에는 에델과 어니스트만 남아 그들만의 전쟁을 치른다. 섬나라 영국까지 침공한 나치독일의 공습에 이들은 무사할까? 레이먼드도 그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게 될까?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건들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의 큰 줄기는 주로 어니스트가 읽고 들어 에델에게 얘기해주는 신문과 라디오에 있다. 히틀러가 언제 집권해 언제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했으며 언제 전쟁태세에 돌입했고 언제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을 취득했는지 언제 프라하에 했고 언제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한편, 언제 TV가 시작되었고 1930년을 전후한 당시 영국의 빈곤선 상위층이려면 주당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언제 인류가 달에 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전쟁으로 물을 5인치밖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 직후 노동당이 집권했으며 고속도로가 뚫렸고 어떤 당이 집권하든 식량 배급량은 계속 줄어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처럼 에델과 어니스트가 직접적으로 겪은 사건이 있는 반면 대다수가 이처럼 간접적으로 겪은 것들인데, 우리네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역사의 한복판에서 크고 작은 사건과 변화의 당사자로 살아가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과 변화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남을 촛불 혁명을 직접 참여했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던 반면 계속 오르기만 하는 물가와 집값, 스마트폰의 보급 등은 물론 요동치는 세계 경제와 정치와 정세 등은 우리를 직간접적으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것들이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거나 규정하진 못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규정하기에 결국 우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사람 사는 아름다움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는 일면 그런 생각을 체화시킨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다. 신문이나 라디오, 그리고 TV를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어니스트와 집안일에 몰두하며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는 또는 둘 수 없는 에델의 모습이 구도화되어 영화 내내 비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상은 에델인가? 당장의 집안일과 당장의 남편 혹은 아들의 일을 챙기며 보수적일 수밖에 없게 된 에델을? 그건 아닌 듯하다. 어니스트를 통해서 세상일에 관심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반면, 에델을 통해서 당시 평배해 있는 남녀 차별 또는 남녀 구분의 당연함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 흥행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국제시장>도 평범한 한 부부의 일생을 돌아보며 한국현대사를 들여다보는 영화인데, 이런 비슷한 시선조차 담지 않고 하나같이 나라 발전에 일조한 이야기와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신파 어린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오히려 이 같은 이야기가 훨씬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거기엔 사람은 없고 사건만 있다. 


반면 <에델과 어니스트>는 단조롭기 짝이 없고 눈물 쏙 빼는 이야기를 선사하지도 않는다. 이보다 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답다'고 서슴없이 말할 게 분명하다. 


거기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람 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네'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저 그렇게 살다간, 인류 역사를 이루는 99% 이상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그대로 김씨와 이씨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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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표지 ⓒ민음사



종종 시대를 뛰어넘는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목격한다.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우린 그런 작품을 보고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라고 평하곤 한다. 가령, 1960년대 만들어진 영화 <졸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최소 30년 후에 만들어졌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만했다. 


비쥬얼적 요소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상당한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기시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1960년대가 아닌 16세기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등을 아주 친숙하게 읽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전체에 흐르는 감각이나 생각 등에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나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거리감이나 기시감은커녕 현재를 사는 우리보다 더 감각적이고 생동하는 소설이 있다. 프랑스가 낳은 세기의 문제적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네 번째 작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다. 1959년에 발표했으니 어언 60년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촌스러움을 발견할 수 없다. 시대상이나 시대정신이 발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소설은 2010년대에도 통용되는 일반적인 사랑의 모습과 감정을 무참할 정도로 혼란에 빠뜨리고 모호하게 만들면서 파괴해버린다. 그나마 어울리는 단어로 '파격'이 있을까. 그런데, 파격 이후엔 그것을 기점으로 정립된 '정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소설, 이 작가의 것을 결코 따라하긴 힘들 것 같으므로, 홀로 그만의 견고한 성을 쌓은 느낌이다. 그야말로 사강은 괴물이 아니고 뭔가, 싶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랑 이야기, 사강이 그려낸 사강만이 그려낼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사랑은 그 시대의 사랑이 아니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이다. 이 난해하지만 평범하고 혼란스럽지만 전형적이고 모호하지만 정해진 듯한 길로 향하는 사랑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섬세함을 따라가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서른아홉의 커리어우먼 폴은 실내장식가로 일한다. 그녀는 20대 중반에 이미 결혼했었지만 파경에 이르렀고, 이후 만난 연인 로제와 오랫동안 지내고 있다. 오래된 연인은 으레 그런 것인가? 완전한 익숙함에 폴은 로제와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로제는 그녀와 연인 관계를 이어나가면서도 틈만 나면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의 하룻밤을 즐기고 있고 폴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가는 폴, 어느 날 폴은 반 덴 베시 부인의 아파트 실내 장식을 부탁받고 일을 시작한다. 그 첫날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난 눈부신 미남 시몽, 반 덴 베시 부인의 아들이다. 헐렁한 실내복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호리호리한 몸매와 까무잡잡한 살결, 섬세해 보이는 연한 빛을 띠는 눈동자까지. 


이후 시몽은 폴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한다. 자그마치 14살 차이가 나는 폴과 시몽, 폴은 시몽의 대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밖으로만 돌며 사랑다운 사랑을 주지 않는 로제이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맞는 짝은 로제인 것 같다. 반면 시몽은 치명적인 사랑을 준다. 인생의 다시 없을 황홀한 때, 주인공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시몽은 자신에게 맞는 짝이 절대 될 수 없을 것 같다. 


혼란 속에서도 평범을 꿈꾸는 현대인


이 소설은 '권태'에 빠진 연인의 불륜 또는 바람 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표피를 이룬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 권태에 빠지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소설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폴과 로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느낌이다. 


'사랑'이 보인다. 폴, 로제, 시몽 세 주인공의 사랑 말이다. 이들을 통해 엿보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은 형편없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들의 모습을 총합해 보면 사랑의 본질이 나올 것도 같다. 그렇지만 결국 사랑도 사람이 하는 게 아닌가?


우린 이쯤에서 사강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게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거기에 뜻하지 않게 운명적 체념도 엿보인다. 타고난 성격에 의한 운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면서도 죽음의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밖에 부나방처럼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게 무언가? 이것도 저것도 진정한 사랑일 수 없다. 사람의 운명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인가? 어떤 슬픔도 환희도 즐거움도 기쁨도 없다. 그저 덧없고 덧없는 무의미와 무미건조만 있을 뿐이다. 


이 소설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삶을 엿본다. 그녀의 사랑을 엿본다. 결국 그녀를 엿본다. 이토록 우울한 사랑을 이토록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낸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 깨지기 쉽고 매순간 바뀌고 극도의 혼란 속에서 평범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현대인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런 그녀가 창조해낸 불안한 매력의 이들과 사랑은 통찰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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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하와이언 레시피>


하와이의 작은 마을 호노카아, 태평하기 그지 없는 그곳에 젊은 청년 레오가 찾아온다. 무작정 쉬러 온 곳,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 포스터 ⓒ㈜영화사 진진



하와이 섬 북쪽 끝의 작은 마을 호노카아, 나이 지긋한 미국계 일본인들이 모여 산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을 듯하다. 느리고 말 없고 태평하다. 딱히 뭘 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곳에 젋디 젊은 청년 레오가 찾아온다. 그 또한 느리고 태평한 듯하기에 큰 무리 없이 스며든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에서 일하게 된 레오, 곧 동네사람들과 친해진다. 그들은 하나같이 천하태평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여유롭고 안정된 삶이다. 여자를 밝히지만 파킨슨병에 걸린 아내만을 바라보며 사는 코이치, 팝콘 기계 옆에 앉아 기계가 돌아가기만 하면 잠을 자는 제임스, 먹는 걸 너무너무 좋아하는 영화관 주인 에델리, 과묵한 레오의 상사 버즈, 딱딱 맞는 말만 하는 미용사 미즈에, 그리고 천상 소녀같은 비이. 


명장면, 명대사, 명분위기의 향연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는 명장면, 명대사, 명분위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본 적도 없는 하와이의 눈부신 하늘과 바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장면들이 명장면이다. 그 장면들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하다. 느릿느릿하고 여유로운 삶의 모습들이 장면장면 짙게 배어 있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무색하게, '급할 게 뭐가 있나'를 보여준다. 처음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고 답답하고 짜증까지 났지만, 그게 곧 극도의 부러움이 표출된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중엔 조금이나마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곳에 의외로 '사랑' 있다. 아마 레오와 누군가의 사랑일 텐데,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밖에 없는 곳에서 어떻게?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를 관통하는 스토리 라인에는 예상 외로 '사랑'이 있다. 누구와 누구의 사랑일까? 아마 레오와 누군가의 사랑일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밖에 없다. 이 잔잔한 영화에서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긴 쉽지 않을 듯한데, 어김없이 레오 또래의 여인 머라이어가 등장한다.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지는데, 그들을 보고 비이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비이는 50여 년 전 젊은 시절에 남편과 사별했다고 한다. 


딱히 이야기 선을 찾기 힘든 이 영화에서 레오와 머라이어와 비이의 삼각 관계는, 단순히 중심이 되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사실 머라이어는 중요하지 않다. 레오와 비이의 관계 때문이다. 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 보인다. 


사랑을 하는 사람의 욕망, 그리고 쉼의 위대함


노인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노인과 사랑은 한 통속으로 묶기 힘들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그것도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노인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느끼고 싶고 느끼며 산다. 비이는 젊은 레오에게 '여자'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와 함께 있을 땐 목소리며 몸짓이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천상 여자, 아니 소녀의 그것이라고 할까. 레오는 알 길이 없지만. 


그런 면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일 테다. 분위기는 천지 차이지만, 영화 <은교>가 생각나기도 한다. 노인의 욕망을 그렸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만 <은교>에서 이적요가 '사랑'이 아닌 '욕망'의 화신이었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는 은교의 '젊음'에 심취했던 것이다. 반면 비이는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러며 레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선사한다. '노인'의 욕망이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람'의 욕망인 것이다. 


쉼이야말로 살아 있는 것의 위대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모습일 거다.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한편 비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모습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대단한 일은커녕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얼핏 무지렁이 같은 이들의 집합소 같은 그곳에도 삶다운 삶이 생동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잘 보면 그들 모두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졸고, 일하고, 멍 때리고, 앉아 있고. 


우린 삶을 오해한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하고 쉬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열심히 한 만큼 그에 비례해 쉴 수 있다. 그렇지만 쉼이 함께 하지 않는 삶은 지옥 같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다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본능을 억제한 채 너무 오래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쉼이 함께 할 때 비로소 일의 능률이 오를 거라고 조언하고 싶다. 쉼이야말로 살아 있는 것의 위대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삶이 삶을 지탱하고, 사람이 사람을 지켜준다


"육체는 말과 생각의 이유에 지나지 않아"


극 중 코이치 할아버지의 말이다. 생각나는 여러 명대사 중 하나인데,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코이치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레오 곁을 떠난다. '레오 곁을 떠난다'고 말한 이유는, 그곳에선 당연한 '떠남'이 레오에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은 그런 곳이고, 우리 인생도 다를 바가 없다.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다. 


변한 건 없다. 그대로이다. 다만 그때 그 사람들만 없을뿐. 그게 인생 아닐까.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결국엔 레오도 1년 동안 정든 그곳을 떠난다. 그러곤 1년 후에 다시 찾는다. 변한 건 없다. 그곳은 그곳에 그대로 있다. 다만 사람들만 없을 뿐. 그게 인생 아닐까. 너무도 당연한 진리. 만나고 설레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파하고 추억하고 성장하는, 그런 당연한 진리를 영화는 찬찬히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호노카아 마을의 전경과 사람들이. 10여 년 전, 호주 브리즈번에서 지냈던 1년과 많은 것들이 겹친다. 그 분위기와 전경들, 나름 치열했던 궤적도 떠오른다. 그 모든 것이 삶이다. 다름 아닌 삶이 삶을 지탱하고, 사람이 사람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레오의 앞으로의 삶에는 호노카아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할 것이다. 모든 이들의 삶에 모든 이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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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표지 ⓒ책미래


족히 10년은 된 듯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호주를 1년 다녀왔다. 열심히 일하고 영어를 공부한 다음, 열심히 놀려고 했다. 그 모든 게 다 내 평생 다시 없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주에 온 다음 날, 하늘에 뜬 비행기를 보고 집에 가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적응도 채 하지 못한 채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두려웠던 것 같다. 낯선 땅이 아닌, 낯선 자유가. 


큰 기억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설픈 느낌만 남았을 뿐이었다. 자유인지 고독인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었다. 2년 뒤 다시 외국에 나갔다. 이번엔 중국으로, 많은 이들과 함께. 오히려 그곳에서 자유 비슷한 걸 느낄 수 있었다. 왜 한국인들과 함께 있는데 자유를 느끼는 것인가. 그것도 자유는 아니었나? 


생각해보니, 나에게 자유는 고독과 다름 아니었던 것 같다. 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나에겐 자유보다 울타리 안에서의 안정이 더 맞다. 장소가 아닌 사람이 중요한 거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그래서 자유를 알고 자유를 외치고 자유를 만끽할 줄 아는 사람이 부럽다.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이하 '몰타')는 내가 참으로 먼 이야기지만, 정녕 부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나라에 가서 살 생각을 하다니. 그곳에서 자유롭게 사는 걸 그렇게도 즐길 수 있는지. 나라면 못할 거다. 


아무도 모르는 세계 최고의 파라다이스 '몰타'


하루에 한 번은 되뇐다. 벗어나고 싶다고. 돈 많이 모아서 나중에 세계 여행을 떠날 거라고.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거다. 20대 때 여기저기 다녀왔으면 된 거 아니냐고 자문하면서. <몰타>의 저자가 나랑 다른 건, 후자의 생각을 애써 무시했든 점점 줄여나갔든 전자의 생각을 선택했다는 거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처지임에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자신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해본 게 아닌가 싶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생각하자고. 


그렇게 선택한 게 '몰타'라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이나 위치를 나름 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몰타는 잘 알지 못했다. 이름만 어설프게 들어 보았을 뿐, 나라의 위치도 동남아시아 쪽으로 알고 있었고 나라가 아닌 조그마한 휴양 도시 쯤으로 잘 못 알고 있었다. 몰타는 유럽의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상에 위치한 섬나라로, 나라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연영방에 속하는 나라라서 영어가 주요 언어 중 하나이다. 저자가 몰타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저렴한 물가에 영어공부를 하며 유럽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몰타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저자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몰타와 저자이기 때문이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거겠지. 저자는 몰타라는 파라다이스를 제대로 만끽한다. 기가 막힌 자연과 문화유산이 선사한 선물에 술과 파티가 빠져선 안 되겠지. 그리고 스페인에만 있는 줄 알았던 시에스타(낮잠 시간)가 몰타에도 있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람이다. 내가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던 '좋은 장소보다 좋은 사람'. 몰타에는 '좋은 분위기'도 만연해 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장소와 사람과 분위기가 일체 되어야 하겠는데, 이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으면, 다른 두 개 또한 존속하기 힘들다. 저자는 운이 좋은 건가? 나는 운이 나쁜 거고? 나도 나름 좋은 장소의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도?


'나'를 위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저자가 중요시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몰타라는 파라다이스를 제일 중요시 했을까? 그곳에서 만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중요시 했을까? 파라다이스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린 그 시간과 분위기를 중요시 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것들도 중요시 했지만, 정작 그가 중요시 했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던 것 같다.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나를 찾기 위해 간 여행이었으니까.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거, 내가 그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거, 내가 그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게 중요한 거다. 


전 세계의 누군가는 한국이 평생 잊지 못할 자유와 청춘의 중요 기착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소가 그렇게 중요할까? 아니다. 1순위는 아니다. 다만 '몰타'라는 곳은 특별할 수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통상적으로 '아무도 모른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가고자 하는 곳은 다른 사람에 눈에 비치는 내가 아닌 그냥 나일 수 있게 해주지 못하는 데 반해, 이런 곳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책에 소개된 저자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몰타가 아니더라도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해봤을 것 같은 일들이다. 그래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보단 저자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접하는 게 더 중요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몰타 같은 파라다이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곳이 아니어도 나쁠 건 없다. 어딜 가든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의 생각을 잘 알아, '나'를 위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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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중국 건축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중국 건축 이야기> ⓒ다빈치

음악, 미술, 문학, 건축, 조형, 무용 등을 총칭하는 '예술'은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이중에서, 건축은 기예를 대표한다. 그야말로 예술로 승화될 정도의 기술, 그 정점에 이른 것이다. 건축은 영어로, '모든 기술의 으뜸' 내지 '큰 기술'이라는 의미이다. 그 나라, 민족, 지역의 전반을 이해하는 데 건축이 크게 작용한다는 말은 정확하다. 


서양의 건축은 유럽에 집약되어 있다. 지금이야 여러 나라로 나뉘어 각자의 특성을 구분 짓고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동양의 건축은 어디에 집약되어 있을까? 단연코 중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동양의 정신을 상당 부분 책임져왔던 중국. 그 중에서도 건축은 한 입으로 베이징의 '자금성'이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중국 건축 이야기>(다빈치)는 제목 그대로 매우 친절하고 쉽게 그 어려운 중국 건축을 설명한다. 그 기저에는 돌, 흙, 나무, 사람이 있다. 가장 단단한 돌로 견고한 토대를 만들고, 부드러운 흙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도움을 주었다. 나무는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공간을 만드는 데 쓰였다. 이 모든 일은 사람을 위해서 사람에 의해 행해졌다. 


돌, 흙, 나무, 그리고 사람... 귀여운 중국인들의 친절한 설명


이 책은 참으로 '귀엽다'. 친절하고 쉬운 설명을 위해 귀엽고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의 저명한 디자인 작업실의 교육총감독이 힘을 보탰다. 물론 그림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중국인이기 때문에, 귀엽기는 하지만 정겹지는 않다. 귀여운 중국인들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 가보자. 


먼저 돌. 인류 문명은 돌 위에 세워졌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돌로 쌓은 집에서 살아간다. 무엇이든 '기초(基礎)'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여기서 기(基)는 '터 기' 자이고, 초(礎)는 '주춧돌 초'이다. 즉, 터의 주춧돌이 기초이고, 우리가 흔히 쓰는 기초라는 단어가 바로 건축에서 유래되었다. 돌을 찾고, 깨고, 옮기고, 가공한다. 그리고 어울리게 배치한다. 자연스럽게 흙으로 넘어간다. 


흙. 영어로는 흙을 대지, 지구라 부르며 중국에서는 천지라고 부른다. 흙은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며, 모든 생명의 종착점이기도 한 것이다. 흙을 다루고, 거르고, 빚고, 굽는다. 흙은 그렇게 땅이 되고, 벽(돌)이 되고, 기와가 되고, 그릇이 되고, 병이 된다. 그리고 생활 공간이 된다. 중국 전통건축이 어떻게 자연과 사람을 어우르는지 잘 보여준다. 이 흙이 없으면 나무는 근본을 잃게 된다. 


나무. 옛사람들은 마치 나무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와 함께 성장해왔다. '근원(根源)'이라는 말이 있다. 물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곳으로, 이는 나무에서 비롯된다. 기초는 사람에 의해 다져질 수 있지만, 근본은 오로지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 목재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나무를 심어 대대로 전해야 한다. 그리고 재목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무를 베고, 옮기고, 갈라서, 서로 잇고 쌓는다. 사람은 나무 아래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사람. 돌, 흙, 나무를 얻고 다듬어 활용하노라면 자연의 재료는 화목한 가정,  좋은 이웃 그리고 이상적인 거주지가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상적인 거주지를 얻기 위해 이웃끼리 인정에 기초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나무를 심어 목재로 쓰고, 농한기에 집을 짓는다. 좋은 사람, 환경, 날씨, 햇빛, 장소, 날을 골라 서로 돕는 것이다. 중국 건축물은 기단, 몸체, 지붕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기단은 돌로 만들고 지붕에는 기와를 올렸다. 몸체는 주로 목재를 사용해 지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부르는 합창곡


중국 전통 가옥인 사합원은, 가운데 사각형의 마당을 둘러싸고 동서남북으로 네 동의 건물을 연결한 평면구조로 외부로는 폐쇄적이고 내부로는 개방적인 독특한 가옥 형태다. 대가족의 구성원들은 각자 가옥의 공간 배치에 따라 머물렀는데, 그들의 신분은 집터가 자리 잡은 방향 및 상하 질서와 일치한다. '사람을 닮은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 책을 한 번 보면 '자연'이 보일 것이다. 중국 건축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구나. 두 번 보면 '인간'이 보일 것이다. 자연에서 비롯된 재료를 가지고 인간의 손으로 지었구나. 세 번 보면 '자연과 인간'이 같이 보일 것이다.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노력,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건축은 불가능한 것이구나. 돌, 흙, 나무, 그리고 사람. 그야말로 자연과 인간이 함께 부르는 합창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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