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문인 출신을 대표하는 유하 감독, 그를 대표하는 '거리 3부작', 그 중에서도 대표격인 <비열한 거리>다. ⓒCJ엔터테인먼트



거장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판의 대표적 문인 출신 감독으로 유명한 유하 감독. 1988년에 등단해 90년대 초 문명을 날렸다.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에 가야 한다>가 평단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베스트셀러가 되니, 영화 제작 제의가 들어 왔다. 이미 1990년에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거액의 판권 계약을 거절하고 직접 연출에 이른다.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이후 10여 년 동안 그는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10여 년 만에 들고 온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수작이었다. 새천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제목부터 센세이션했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지금은 고유명사를 넘어 보통명사가 되었다. 이후 3년 만에 기대를 안고 찾아 온 <말죽거리 잔혹사>. 이 작품으로 '유하'라는 이름이 고유명사가 되었다. 10년 간 이어질 '거리 3부작' 혹은 '강남 3부작'의 시작이다. 


이 3부작 중 2번째 작품이자 유하 감독의 대표작, '유하'를 보통명사로 만들어 줄 작품은 <비열한 거리>다.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와 같은 제목이다. 한국 느와르에서도 길이 남을 만하니, 그 제목에 큰 누를 끼치진 않을 듯하다. 


완벽한 시나리오,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으로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벼르고 벼른 듯한 완벽한 시나리오 그리고 편집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 없이 꽉 짜여 있다. 주인공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만든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까? 어딜 봐도 찾기 힘들다. 그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 기계적 출현을 의미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철저히 배제했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판에서 '순수'한 영혼의 병두. 그는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넌다. 그를 낚는 황 회장. ⓒCJ엔터테인먼트



병두(조인성 분)는 여러 동생들을 건사하는 건달이다. 스폰서를 잘못 만나 허송세월 보낸 것도 모자라 빈털털이가 되었다. 그래도 식구들을 건사하고 동생들을 챙겨야 하기에, 돈 찾아와서 형님께 바치고 일정 부분을 받고 성인 오락실을 운영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려 한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다. 형님은 돈을 적게 나눠 주고, 성인 오락실도 라이벌 조직에게 박살났다. 결국 그 때문에 후배한테 성인 오락실이 넘어가기도 했다.  

뭐든 했다고 생각하는 병두. 실상은 조직의 보스이지만 겉으론 엄연히 사업가인 황 회장은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박 검사 때문에 두 발 뻗고 살 수가 없다. 그를 '보고' 싶다. 그런데 최측근이자 병두의 형님인 상철이 못한댄다. 그 기회를 잡은 병두, 박 검사를 죽이면 황 회장이 스폰서를 서주고, 그는 다시금 메인이 되며, 식구들을 건사할 수 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으로 빨려 들어간다. 


빛나는 폭력성, 비열하지만 순수한 이들


영화는 조직폭력배의 실상을 통해 극대화된 폭력성을 선보인다. 병두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게 한, 극도로 사실적인 조폭들끼리의 싸움신이 초반에 펼쳐진다. 여러 조폭 영화들에서 봐 왔던, '준비, 시작' 류의 싸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짜고짜 덤벼 싸우다가 칼을 꺼내 급소만 피해서 찌르고 베고 찍고. 이게 진짜겠구나 싶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섬뜩한 싸움신에 버금가는, 폭력성이 빛나는 명장면이다. 


또다른 장면은, 병두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 친다. 폭력성 이상의 '욕망'이, 헤어나올 수 없는 욕망의 시작과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그가 조폭이 아니었더라도, 그와 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니까 말이다. 그 욕망이라는 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다. 가장 큰 건, 식구들 건사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위로 더 올라가고 싶다는 본능, 지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 등. 일반 회사원의 욕망과 다를 게 무언가. 


<비열한 거리>는 폭력을 극대화한다. 싸움과 살인을 대표로 내세웠는데, 그 한 가운데에 병두가 있다. 극도의 사실주의에서 오는 소름. '이것이 진짜다.' ⓒCJ엔터테인먼트



그래서 병두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비열하지만 가장 순수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가장 비열하다고 생각해 속을 끓이지만 사실 가장 순수하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황 회장을 비롯해 형님 상철, 친구 민호, 동생 종수 등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그 사실을 그만 빼곤 누구나 알고 있으니, 참으로 비극적이기 짝이 없는 캐릭터다. 


감독은 소름끼치는 싸움신과 이들의 비열한 모습을 통해, 이야말로 진짜 조폭의 세계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의도는 정확히 적중했다.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적자생존, 단순히 내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게 아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이자 형제가 되고, 어제의 식구가 오늘의 적이 되어 나를 죽인다. 그런데, 이들은 비열한가? 이들도 병두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은데, 다만 병두보다 조금 덜 순수한 것 같은데, 조금 더 순수한 병두 덕분에 살아남은 것 같은데, 이들도 비열한 건가? 진짜 비열한 건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밖에 할 수 없게 만든 누군가 혹은 운명이라는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가 아닌가?


'강남' '거리' '욕망' '폭력' 3부작


<비열한 거리>를 논할 때면, <말죽거리 잔혹사>와 <강남 1970>을 앞뒤로 둔 '거리 3부작' 또는 '강남 3부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합쳐서 '강남 거리 3부작'이라고 해야 할까. 잘 들여다보면, '욕망 3부작'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싶다. 더 포괄적이고 핵심에 가깝다. 그렇지만 큰 얘기라 미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스토커>, <아가씨>도 '욕망 3부작'이고, 박범신 소설가의 <촐라체>, <고산자>, <은교>도 '욕망 3부작'이라 칭할 수 있다. 그러니 유하 감독의 3부작은 욕망 중에서도 '폭력'을 말하는 것이니 앞엣것보다는 '폭력 3부작'이라 하는 게 맞겠다. 


우린 여기서 한 개의 '라인'을 발견할 수 있다. '강남'에서 '폭력'으로 이어지는 라인이다. 화려하게 치장된 그곳이 태초에 폭력과 욕망이 서로를 잉태하고 서로를 죽이는, 그야말로 아수라의 지옥이다. 그 정점이 바로 이 <비열한 거리>인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가야 한다. 가지 않는 것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아수라의 지옥으로 가야만 한다는, 고뇌. ⓒCJ엔터테인먼트



유하 감독의 '폭력 3부작' 앞에는 '청춘'이 따라다닌다. 그렇지만 거기에 '여성'은 없다. 여성은 남성의 전유물 또는 주위 인물로 비춰질 뿐이다. 그러는 한편 폭력의 한 가운데 던져진 남성이 유일하게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여하튼 중심이 될 순 없으니, '폭력 세계'에 발을 들여다 놓지 않게 하려는 의도의 산물일까 아니면 폭력으로 움직이는 이 '인간 세계'의 주변 인물인 걸까. 아무래도 전자가 맞지 않나 싶다. 감독이 그린 폭력 세계는, '폭력' 자체는 보편적일지는 몰라도 '세계'는 특수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라는 게, 욕망이라는 게, 반드시 시작이 있다. 누구나 그때가 있다. 그건 한 번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는, 헤어나올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인간이기에, 수위를 조절하면서 내보이지 않으면서 자신과 싸우면서 욕망에 먹히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새 욕망이 이끄는 대로 가버리면 어떡하지, 정신을 차려보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면 어떡하지, 그것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이면 어떡하지... 순간 치를 떠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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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유하 감독의 <강남 1970>



<강남 1970> 포스터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거리는 극히 양면적인 면모가 있다. 연인들에게는 팔짱을 끼고 함께 같은 곳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앞이 탁 뜨인 거리는 걷는 것으로도 힐링이 되곤 한다. 갈 곳을 정해두지 않고 정처 없이 걷는 거리는 낭만적이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 쬐는 주말 오후의 거리를 느낌이란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준다. 


과연 그러기만 할까? 거리에는 무표정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누가 쫓아오는 양 빠른 걸음으로. 그럴 때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불과하다. 한편 거리는 '무법', '야생'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 으슥한 뒷골목 거리는 누구의 손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자란 이들에게 거리는 집임과 동시에 생존을 위해 끝없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링이다.


그런 거리에는 필연적으로 욕망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끝 간 데 모를 욕망이어야만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다. 결국 또 다른 욕망에 의해 파멸 될 운명이지만, 그 또한 누군가의 욕망을 밟고 그 자리에 있을 터였다. 폭력은 그들을 그들 이게 한다. 폭력으로만 그들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 이성의 시대에 이런 욕망과 폭력의 인간들은 가장 밑바닥 취급을 받고 가장 멀리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러나 지금은 가장 이성적이고 고결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강남이다. 


폭력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그곳, 강남


유하 감독은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 2006년 <비열한 거리>로 '거리'와 '폭력'의 다양하지만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중심엔 '강남'이 있었고, 2015년 <강남 1970>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 안에 '거리', '폭력', '강남'을 비롯해 '욕망', '잔혹' 등 일명 '거리(폭력) 3부작'의 모든 것이 들었다. 거리 안에 폭력은 있다 지만, 폭력 안에 거리가 있다 고는 할 수 없기에 '거리 3부작'이 더 정확하다 하겠다. 


<강남 1970>은 제목 안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전부 들어 있다. 지금의 강남이 만들어진 때가 1970년이다. 영화는 이 시대의 강남 개발이 당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대선 자금 확보의 일환으로 핵심 중의 핵심 권력인 중앙정보부가 하달한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명령을 이루기 위해 큰 두 세력이 맞붙는데 이들은 국회의원들이고 실질적으로 행동을 하는 이들은 일명 조직폭력배 깡패들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넝마주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고아 종대(이민호 분)와 용기(김래원 분)는 자신들의 집을 부수려는 정부 용역 깡패들에게 저항하다가 붙잡힌다. 그런 와중에 쪽수(?)가 모자란 깡패들이 데려가 그야말로 지극히 우연한 계기로 깡패들의 세계에 입문하는데, 이 둘은 헤어지고 만다. 이후 그들은 실력을 뽐내며 자리를 잡아가고, 또다시 우연히 이들은 조우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은 서로 다른 세력에 있었다. 강남 개발의 큰 두 세력 말이다. 종대는 용기에게 자신 쪽으로 넘어오라고 하지만, 용기는 중간에 큰 사고를 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처지다. 대신 스파이 노릇을 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종대를 돕고, 이는 종대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인들


이 와중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있다. 종대를 거두고 키우다시피 해준 길수(정진영 분)의 딸 선혜. 종대는 선혜를 사랑하는 듯하다. 하지만 사실상 친동생과 마찬가지인 존재이기에 멀리서만 바라볼 뿐이다. 그녀가 결혼해서 남편에게 맞고 도움을 청하면 그 남편을 찾아가 죽도록 패버리는 뭐 그런 거다. 


그리고 종대와 강남 개발 사업을 하게 되는 민마담(김지수 분). 그녀는 정재계 거물들과 상대하며 엄청난 정보를 바탕으로 빠르게 강남 개발 중심에서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벌인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강남 개발의 비열한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핵심 장면들이 여기서 나온다. 정부의 강남 개발 시책에 맞춰 집값이 폭등할 것을 예측하고, 그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과 시골자락의 집과 땅을 미리 사들이는 전략. 불법 독점과 투기 협잡 등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등골을 파 먹는 파렴치한 이들의 전형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또 한 명은 용기의 부인 소정(이연두 분)이다. 그녀는 애당초 보스의 여자친구였지만, 용기와 비밀리에 연인 관계였다. 이 둘 간의 사랑은 방식은 달라도 종대와 선혜처럼 자못 애처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건 선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한 가지가 있는데, 이 둘의 비밀 연애를 선배 깡패가 봤고 용기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인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를 죽인 것이 큰 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렇지만 용기의 성격 상 언젠가 죽일 것이었기에, 사실 소정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영화의 결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감독의 의도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이 영화의 결점이 있다. 여자 캐릭터들은 말할 나위 없고 주연 급의 캐릭터들도 모두 다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인다. 영화의 스토리 상에 필요한 캐릭터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와중에는 캐릭터가 보이는 데, 끝나고 나면 아무 기억이 없다. 비단 등장인물들이 많이 죽기 때문 만은 아니다. 배우들을 가져다 쓰고 버린 듯한 느낌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스토리가 훌륭한가? 등장 인물들의 헌신적인 죽음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그런데 바로 이게 감독이 의도한 바인 것 같다. 결국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한 사람만 남고 모두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스토리를 봤을 때, 그 느낌을 더 잘 살려주었다. 즉, 배우들을 가져다 쓰고 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 연출한 의도는, 권력의 비열하고 간악한 유지를 위해 가차 없이 이용했다가는 어김없이 처리하고 마는 그 진짜 모습을 피부에 와 닿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강남 개발조차 그 권력이 이용한 것이다.


이 폭력과 욕망의 무간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죽어서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만약 살아남았다고 해도 더욱 더 고통스러운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지옥을 만들고 관장하는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호의호식하고 있다. 그들이 서로 치고 박고 죽고 죽이면서 발생된 그 욕망의 덩어리가 만들어낸 거대한 에너지를 통해서 말이다. 그것이 지금의 강남이고, 지금의 권력자들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상했다가 추락하고 죽고 죽일까


얼마 전에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놓고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이 일대 혈전을 벌였다. 예의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대기업 둘 간의 결투였다. 그 결과 예상 값의 3배가 넘는 돈인 10조 원 이상을 투자한 현대차그룹이 매입했다. 이후 주위의 땅값이 4년 전보다 6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뻥튀기도 이런 뻥튀기가 없다. 강남 1970에 이은 강남 2015라고 할 만 하다. 


여기엔 어떤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을까? 일차적으로는 대기업의 투자 대결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강남 부자를 위해 땅값을 올리려는 수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이상도 가능하리라. <강남 1970>에서 강남 개발 그 위에 진짜 목적이 대선 자금 확보에 있었듯이 말이다. 그 안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상했다가 추락하고 죽고 죽일까. 그 정점에선 누가 모든 수혜를 업고 그들만의 세계를 더욱 견고히 만들어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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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고 하네요. 칼 구스타프 융에 의하면,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죠. 이를 영화로 치환하면, 영화감독이 배우를 통해 자신의 분신이자 상징을 표현할 때 페르소나라는 말이 쓰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는 대표적인 콤비입니다. 그들이 함께 한 작품은 8개나 되는데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마틴 스콜세지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하는 역으로 로버트 드 니로를 선택합니다. 사실 이 둘은 각각 1942년생, 1943년생으로 한 살 터울의 친한 친구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죽이 척척 맞았을까요?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탈리아계 2세였죠. 즉 로버트 드 니로는 미국 뒷골목을 떠도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자신을 대변하는 페르소나였던 것입니다. 같은 뉴욕 출신의 로버트 드 니로는 그 이미지를 완벽히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는 연기자였습니다.  

자, 그럼 이들이 합작한 영화 8편을 볼까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20년을 함께 했습니다. 






[비열한 거리], 1973년





[택시 드라이버], 1976년




[뉴욕, 뉴욕], 1977년





[성난 황소], 1980년





[코미디의 왕], 1983년






[좋은 친구들], 1990년





[케이프 피어], 1991년






[카지노],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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