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풀 메탈 자켓>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은 한창 전쟁 영화에 빠져 있던 당시의 나에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10년만에 다시 찾으니,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전쟁 영화를 한 번에 정리해버렸다. ⓒ워너브라더스



군대 가기 전이었다. 온갖 전쟁 영화를 다 챙겨 봤다. 비록 드라마지만 웬만한 영화 이상가는 퀄리티를 자랑하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필두로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전쟁 대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 <씬 레드 라인>, 70~80년대를 대표하는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그보다 윗 세대의 <패튼 대전차 군단> <콰이강의 다리>까지. 그리고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중 하나인 <전함 포템킨>도. 이밖에 수없이 많은 전쟁 영화를 챙겨봤다. 지금은? 신작은 안 보고 예전 전쟁 영화를 가끔 보곤 한다. 


전쟁 영화는 몇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일명 '국봉(?)'.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이들의 헌신을 다룬다. 주로 이데올로기 얘기가 들어가 있다. '반전'. 전쟁의 참상과 허무함과 쓸 데 없음을 사실적이고 때론 풍자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반대하거나 전쟁의 불필요함을 역설한다. '액션'. 전쟁이 가지는 블록버스터적인 요소를 끄집어 내어 극대화 한다. '고민'. 전쟁에 대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다 죽거나 병신이 되어 살아남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힘을 얘기한다. 


액션에 눈이 가게 마련이다. 거기에 적당한 고민이 섞이면 괜찮다. 반전 요소가 있으면 아이러니하게도 액션이 더 풍부하다. 전쟁을 더 참혹하게 더 사실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 영화 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생각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나도 어김 없이 그랬다. 


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제 그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은 그 당시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지만, 전투신다운 전투신 하나 없는 이 영화가 과연 제대로 된 전쟁 영화인지 보는 내내 의문만 들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본 이 작품은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전쟁 영화를 정리해주었다. '그동안 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걸로 이제 그만.'


영화는 크게 2부로 나눌 수 있다. 도입부라고도 할 수 있는 1부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 해병대 신병교육대 이야기다. 신병들을 인간 병기로 개조한다는 취지 하에 신병들을 인간 쓰레기 취급하는 하트만 상사, 나름 순조롭게 그들은 미해병대 인간 병기로 거듭난다. 한 명만 빼고. 


일명 '뚱땡이' 레오나드 로렌스는 무슨 수를 써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정신력도 꽝이다. 하트만은 그를 동기 조커에게 맡긴다. 한동안 잘 하는 듯했지만, 다시 돌아온 뚱땡이. 결국 하트만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뚱땡이가 사고를 칠 때마다 동기 전체가 벌을 받게끔 한 것이다. 이후 사건이 벌어지고 뚱땡이는 환골탈태를 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뚱땡이'가 살인 기계가 되어간다. 그의 환골탈태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워너브라더스



묻고 싶다. 감독은 이 신병교육대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마 감독도 묻고 싶을 거다. 이 신병교육대에서 도대체 그 어떤 '전쟁'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린애 장난 같은 이 교육들이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쟁에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하트만의 말처럼 킬러가 되면 되는 걸까. 누구를 죽이든 상관 없이. 특등 사수의 예를 365m 높이에서 14명을 쏴죽인 살인마로 든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아가 베트남전쟁의 의미까지 유추할 수 있다. 


허무하고 애처롭고 참혹하다


"어떻게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있습니까?"

"쉽지. 느리니까 그냥 갈기면 돼. 그럼 죽어. 크하하하."


종군기자가 된 조커 병장이 헬리콥터를 타고 전선으로 떠나면서 기관총 사수한테 물어본다. 어떻게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있느냐고,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죽이기 쉽다는 말이다. why에 해당하는 물음에 how로 답하는, 그의 머리엔 오로지 '살(殺)'만 있다. 신병교육대에서 배운 게 그런 걸까. 베트남전쟁의 목적이 그런 걸까. 


후방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포성과 총성을 듣고 싶어 하는 조커, 허세로 중무장한 그가 원하던 대로 전선에 와 있다. 그곳엔 온갖 허세로 완전 무장한 이들이 득시글하다. 그들이 전쟁을 알까. 말본새나 행동 거지를 봐선 제대로 된 전투를 치러보지 못한 듯하다. 알면 어떻게 또 모르면 어떠랴. 베트남전쟁 자체가 아무 짝에도 쓸데 없거니와 일어나선 안 되는 전쟁이었던 것을.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포성이나 총성, 피와 살점이 난무하지 않지만,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참혹하다. 고수의 손길이 느껴진다. ⓒ워너브라더스



허무하고 애처롭고 참혹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는 전쟁 영화를 보지 못할 것만 같다.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약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참혹하다. 포성과 총성이 끊임없이 오가고, 피와 살점이 휫날리는 참혹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구역질 나는 전쟁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를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주는, 그리하여 전쟁에 진심으로 치를 떨게 만든다. 영화적으로 생각하면 고수의 손길이 느껴진다. 


스탠리 큐브릭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라 일컬어 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후기작 <풀 메탈 자켓>. 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10년 넘게 영화를 만들지 않았고, 이후 <아이드 와이즈 셧> 편집본을 넘기고는 타계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영화에도 역시 그의 완벽한 사실주의가 살아 있다. 


배경 한 컷, 소품 한 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티가 난다. 재현한 건 물론이고 연기 또한 가감이 없다. 과하지도 모나지도 않다. 부담이 없다는 거다. 하물며 분위기랴? 베트남전쟁 당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거나 다름 없다. 전쟁은 인간 본성을 극치로 보여주게 만든다.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그려지는데, 본성을 억누르긴 힘들 게 아닌가. 감독은 만들어진 인간상이 아닌 인간 군상 그 자체를 옮긴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풍자다. 그런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극사실주의의 거장, 베트남전쟁을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다. 그대로가 풍자라니... ⓒ워너브라더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 일색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풍자다. 하지만 개중에 사실 아닌 것이 없다는 게 참으로 슬프다. 과장되지도 않게 모나지도 않게 사실 그대로를 옮겼을 뿐인데 그것이 풍자라니. 그것이 베트남전쟁의 인간 군상 그 자체라니.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이러니,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아작낸 전쟁의 비극이다. 엄연한 역사지만 지우고 싶다. 역겨워 구역질이 나고 슬퍼서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런 한편 빼놓을 수 없는 생각 한 가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역시 대단하구나'


역사는 되풀이 되고, 인간의 실수 또한 수없이 되풀이 된다. 역사를 통해 우린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아마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베트남전쟁 같은 의미없는 짓도 계속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그 피해를 누가 입게 되는 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짓을 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은 못 하겠다. 다만, 진실은 가려지지 않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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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표지 ⓒ창비


2015년은 유난히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의 기념일이 많다. 광복 70년을 필두로, 한일협정 50주년, 을사조약 110주년, 한국전쟁 65주년 등. 그야말로 한국의 운명을 바꾼 사건들이다. 우리는 이 사건들에 대해,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모든 이들이 독도를 외치지만 독도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지? 애증의 대상인 미국이 보여줬던 그 모습들의 이유는 무엇인지? IMF 사태가 터진 진짜 이유는? 우리는 이런 한국 현대사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 주로 한쪽의 시선으로만 알고 있다. 다른 쪽의 시선으로 볼 생각은 하지 않을 뿐더러, 양쪽의 시선으로 볼 생각은 더더욱 없다. 


흑백논리적 사고가 워낙 강하게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양쪽의 시선은 중도나 중립이 아닌 '회색분자'의 꼬리표를 남길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인지 흔히 '선명성'을 외친다. 한쪽을 확실히 선택해야 하고, 그래야 뭘 할 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양쪽의 시선으로 한국 현대사를 봐야 한다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창비)의 저자는 양쪽의 시선으로 한국 현대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정치화되고 신화화된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며 한국 현대사는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라진다고 집고 있다. 책은 독도, 과거사 망언, 영토, 식민지 근대화론, 미국, 정전협정, 베트남전쟁, 경제성장, 5·16, 햇볕정책 등 한국 현대사 10가지 주요 이슈를 다룬다. 


이 중에 흥미가 동하는 사건이 몇 개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 베트남전쟁, 경제성장이다. 평소부터 관심이 있었던 사건도 있고,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서 더 알고 싶게 된 사건도 있으며, 저자가 말했던 양쪽의 시선에 관한 사건도 있다. 특히 양쪽의 시선에 관한 사건에 흥미가 동하는데, 개인적으로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중도파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시선 자체에 관심이 간다. 


저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행했던 수탈, 그리고 일본에 의해 개발된 면모 양쪽 측면을 동시에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며 전 세계 역사 속에 식민지 수탈과 개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둘은 하나만 오지 않고 필연적으로 같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 저자는 여기에서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끝나는지?


베트남전쟁에 관해 알아야 하는 것들


베트남전쟁은 전쟁 그 자체가 세계 현대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예로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도 지는 바람에 닉슨독트린을 발표하고 금태환을 정지 시킨다. 이로 인해 달러가 가지고 있던 절대적인 지위를 잃게 되고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체제가 흔들린다. 


한편 베트남전쟁 도중에 우리나라는 미국의 요청에 의해 파병을 감행하게 되는데, 사실 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이 스스로 안보를 지키지 못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파병을 한다니? 그런데도 한국이 파병을 결정한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한미동맹과 안보적 문제. 이중 안보적 문제를 보면, 한국군이 파병을 하는 대신 주한미군 감축을 없었던 일로 하는 약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여력이 없어 주한미군을 감축하려 했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무슨 이유가 있던 간에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쟁 특수로 경제적 이익을 상당히 볼 수 있었다. 과거 한국전쟁 때 일본이 전쟁 특수로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봤었는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에 대해 당연히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베트남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경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경제성장 부분은 지금의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십 년 전과 지금이 이어져 있다. 저자는 IMF 사태가 일어났던 이유도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잘못된 경제 위기 해결 때문이라고 말한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와 1980년대까지 계속 경제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수출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방식의 정책을 행하다가, 베트남전쟁 특수로 수출이 급증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출에 중점을 두는 정책이 나타난다. 기업들이 차관을 들여오고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주게 되는 것이다. 결국 1969년 이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조사해 보니 건전한 기업이 하나도 없었다. 기업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니, 그야말로 남의 돈으로만 편안하게 사업을 했던 것이다. 이 경제위기를 박정희 정권은 사채 동결이라는 반자본주의적 조치를 통해 임시적으로 돌파한다.


1980년은 1961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 당시 왜 경제위기가 터졌는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때의 경제위기는 '구조조정'으로 돌파한다. 부실기업들을 상대적으로 건전한 기업들에 떠맡기며 대신 큰 혜택을 주는 방법이다. 이 때문에 본격적으로 재벌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벌은 1997년의 경제위기로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재벌이 커지면서 독과점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국내에서는 엄청난 이익을 보는 대신 상대적으로 세계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본격적으로 자유화가 시작되고 보호무역이 불가능하게 된다. 자연 세계와 상대하게 된 독과점 기업들에게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특히 금융에 크나큰 타격을 입힌다. 


중립의 시선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책은 이처럼 일반적으로 모를 공산이 큰 역사적 사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해석하며 한국 현대사를 대할 때 흔히 갈리는 첨예한 대립을 최대한 지양하고자 노력한다. 자신의 그런 주장이 양쪽의 시선에서 모두 안 좋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중립을 자처하는 나의 시선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말이 있었다. 그게 비록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감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면이기도 하겠지만, 책의 10가지 이슈 중 '박정희'와 관련이 없는 게 별로 없었다. 적어도 저자가 보기엔 한국 현대사가 박정희라는 거대한 그림자로 덮여 씌어져 있다는 것인데 씁쓸했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박정희 신화를 제대로 보려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지 않을지 걱정되는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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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다른

나에게 있어 미국은 몇 가지 유명한 사건들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아직 머리가 크지 않았을 때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작으로 히틀러에 의해 유린된 유럽을 복원시켰고 원자폭탄으로 일본을 파멸시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행한 나라. 또한 타국임에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출전하여 공산주의를 저지시키려 한 나라. 그리고 걸프전을 통해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그의 악랄한 나라인 이라크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나라. 미국은 고마운 나라이자, 믿음직한 나라이자,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나라였다. 


2001년 9월 11일, 세계 평화 수호자인 미국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대형 사건이 발발한다. 미국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슬람 테러단체가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무너지고 수천 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반 탈레반 정권을 수립한다. 2년 뒤에는 이라크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초강대국 미국의 추락이 시작됨과 동시에, 미국의 침략과 폭력이 부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진짜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 미국의 진짜 모습일까. 자유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평화를 바라는 미국이 진짜일까. 간섭과 침략과 폭력의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진짜일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과 시도로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었고 내놓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내놓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하워드 진'이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쟁에 참가한 전력이 있으며, 흑인여자 대학에서 교수 직책을 잡은 적이 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는 한평생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했고 전쟁을 반대했으며 평등을 외쳤다. 그는 <미국 민중사>라는 명저를 남겼는데,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다른)는 <미국 민중사>와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이다. 


만화의 콘셉트는 하워드 진이 강의를 통해 들려주는 미국사이다. 1890년 '운디니드 학살'을 시작으로 2001년 9.11 테러까지를 다루며, 미국이 어떻게 세계 초강대국으로 되어 가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일들을 저지르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하워드 진이 직접 겪었던 사건, CIA 기밀 문서에나 나올만한 내밀한 사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제 머리가 클만큼 커서 미국에 대한 환상을 져버린지 오래이고 그래도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만화를 보니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진짜 미국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더 내밀한 진짜 미국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 군대는 도덕적 목적이 아닌, 정치·경제·군사적인 목적에 이용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신이, 자신들에게 미개하고 미성숙한 나라에 민주주의라는 축복을 전하라는 운명을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말입니다."(본문 중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진실-침략 전쟁


저자는 미국사의 익히 알려진 사실을 나열하고 있다. 그중에는 알려져 있지만 숨겨진 진실들이 부지기수이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많다. 몇몇 주요 사건들을 간략히 다뤄보며 미국사을 빠르게 해부해 보겠다. 


지금은 전설적인 존재들이지만,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악덕 자본가들'이 있다. J.P. 모건, 존 D. 록펠러, 제이 굴드, 조지 폴먼 등이다. 그들은 미국 초기 때 광산과 철도 등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들의 악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제이 굴드가 했던 말인 "나는 노동계급의 절반을 고용해서, 나머지 절반을 죽일 수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조지 폴먼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계속해서 삭감하면서, 사택 임대료는 그대로 두었다. 그로인해 그는 고용주로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이어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평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간섭과 전쟁이, 사실은 미국 내의 파업과 저항운동의 반항적 에너지를 외부의 적에게 돌리려 한다는 수작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대표적 시작은 미국-에스파냐 전쟁으로, 이미 19세기 말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만 아니었을 뿐, 19세기 중반부터 온갖 간섭을 명목으로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했다. 


전쟁은 계속 이어진다. 하외이, 필리핀, 멕시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전쟁은 아닐지언정 미국이 뒤에서 조종한 전쟁이 일어난 곳도 쿠바, 니카라과, 이란 등 지면이 없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진실-조용한 전쟁


미국의 전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외부 침략의 전쟁과 맞물려 내부에서 조용하지만 격렬하고 끔찍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책의 시작에 나오는 '운디드니 학살'은 내부에서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엄연한 '침략'이었다. 수천 년동안 살고 있던 터전에 갑자기 타인이 쳐들어온 것이 아닌가?


이어서 악덕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계속된다.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건 파업밖에 없었고, 자본가들을 위시한 국가가 할 줄 아는 건 억압과 폭력뿐이었다. 그것으로 안 되니까 주지했다시피 외부로 눈을 돌린 것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부 전쟁이 있다. 바로 인종 전쟁. 백인과 흑인 간의 오래된 전쟁이다. 이는 내부에서도, 전쟁 중에서도 계속된다.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인종 차별의 정신이기 때문에, 참 오래가기도 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는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이 모든 반항적 에너지를 전쟁에 돌렸듯이, 이들 모두가 모여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을 벌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이자 작중 화자인 하워드 진이 강의하는 장면에선 그의 등 뒤로 여지없이 '이라크 전쟁 반대' 보이는 게 인상적이다. 이처럼 미국사는 '(모든 류의) 전쟁'과 '전쟁 반대'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의 한 장면 ⓒ다른


이 만화책은 그동안 접해왔던 교양학습만화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저명한 학자의 저서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만화로 옮긴 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만화로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옮겨졌을 뿐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학자의 연구 결과 그 자체이다. 하지만 저자(하워드 진)의 것인지 아니면 각색자의 것인지 모를 높은 수준의 유머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화로써 가지는 최소한의 코믹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 만화책은 만화가 가지는 시각적 특징을 최대한도로 이용했다. 위의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글을 적절히 혼합하였다. 시각적인 요소로써 만화와 사진은 동일한 장점을 지니지만, 실사는 객관성과 신뢰 그리고 때론 잔혹성을 높여주는 측면까지 지니고 있다. 여기에 일반적인 만화책보다 월등히 많은 글은 오히려 학습만화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만큼 마지막은 저자의 글로 끝마치도록 하겠다.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어려울 때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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