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마음산책

호주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한국의 종이 신문이 2026년에 사라질 것이라 전망했다. 지금부터 10 여 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 사실 지금 이 시점에 종이 신문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조·중·동의 경우 생각보다 훨씬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 100만을 전후한 숫자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디지털로의 이행을 시행했고, 종편(종합편성채널)도 확보하는 등의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현재의 종이 신문 형태로는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일까?


그렇다면 '잡지'는 어떨까? 신문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담고자 하는 바는 훨씬 무궁무진한 잡지. 지금은 잡지 하면 <맥심>, <GQ> 같은 잡지만 생각날 테지만, 사실 우리는 잡지에 굉장히 익숙한 편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 30대를 전후한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잡지를 접해봤음이 분명하다. 


소설을 조금이라도 본다면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문학동네> 등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어린 시절 만화를 조금이라도 보았다면 <보물섬>, <아이큐점프>, <소년챔프> 등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군인 시절에 익히 접했을 <맥심>, <GQ>, <아레나> 등과 미용실에 가면 배치되어 있는 <주부생활>, <우먼센스>, <레이디경향> 등의 라이프스타일매거진. 또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임>, <뉴스위크> 까지. 정말 샐 수 없이 많은 잡지들이 우리들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었고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잡지의 위기를 감지하고 나오다


하지만 잡지는 명백히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다. 천정환 교수의 역작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마음산책)는 그런 잡지의 위기를 감지하고 나온 듯하다. 1945년 이후 70년의 한국 잡지를 창간사를 기준으로 담아냈는데, 총 123편이라고 한다. 언젠가부터 그 이름 만으로도 책을 집어 들게 하는 천정환 교수의 근현대 문학·문화 읽기의 일환이다. 그는 왜 잡지의 창간사로 시대를 읽으려 했는지? 다음을 읽어보자.  


"잡지의 제호와 창간사에는 그 잡지의 발행인이나 편집위원 또는 동인들이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또 '왜' 그 잡지를 창간(해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이 집약된다. (중략) 잡지를 창간하는 일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퍼뜨리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잡지를 중심으로 앎과 삶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 관여한다." (본문 중에서)


이 지점이 잡지가 신문과 다른 점일 것이다. 그 시대와 밀접하게 조우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창간사에는 그 시작과 이유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야말로 잡지의 창간사만으로도 시대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잡지의 위기 시대에 굉장히 적절한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 궁금했다. 잡지의 역사를.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했을 것이 분명한 잡지(의 창간사)를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는 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대변하는 잡지의 창간사들을 실다


책은 1945~1949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의 일반적인 사회문화사를 나누는 보통의 시기 구분법에 따라 7장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그리고 당대의 정치·사회·문화·경제를 잡지를 통해 그려내고 뒤에는 시대를 대변하는 잡지의 창간사들을 실었다. 여기에서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잡지가 아무리 유명하고 특별해도 창간사가 그러지 못하면 실지 않았다는 점. 저자는 이 점을 명확히 한다. 이 책의 미덕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또한 저자는 정치·사회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문제의식 있는 그리고 당대를 대변하는 창간사를 실었다. 즉, 문제의식이 있고 당대를 대변하고 있다면 독재 정권의 기관지의 창간사도 실었고 그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기관지의 창간사도 실었다는 말이다. 


창간사는 그 자체로 명문이 많아서 읽는 것 만으로도 눈과 정신이 정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한창기가 쓴 <뿌리깊은 나무>, 함석헌이 쓴 <씨알의 소리> 창간사가 그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 자체로 오래 두고 읽을 만한 시대의 문장이라 생각한다고. 그 중에 <씨알의 소리> 한 문단을 옮겨본다. 


"정부가 강도의 소굴이 되고, 학교, 교회, 극장, 방송국이 다 강도의 앞잡이가 되더라도 신문만 살아 있으면 걱정이 없읍니다. 사실 옛날 예수, 석가, 공자의 섯던 자리에 오늘날은 신문이 서 있읍니다. 나는 정치 강도에 대해 데모를 할 것이 아니라 이젠 신문을 향해 데모를 해야 한다고 했읍니다. 사실 국민이 생각이 있는 국민이면 누가 시키는 것 없이 불매 동맹을 해서 신문이 몇 개 벌써 망했어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 <씨알의 소리>(1970) 창간사 중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잡지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잡지는 무엇이 있을까? 1945년~1949년에는 <개벽>이 있다. <개벽>은 한국 근대 잡지사를 대표하는 1920년대의 종합지였는데, 일제에 의해 폐간되었다가 1946년에 복간되었다. 하지만 미국 당국의 방해는 일제 못지 않아서 오래가지 못했다 한다. 1950년대에는 단연 <사상계>다. 현대 한국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잡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잡지는 1953년 장준하가 인수하여 '사상계'라는 이름으로 새로 시작되었다. 이 잡지는 1950~6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기본 자료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잡지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소설가 황석영이 약관 20세에 '입석부근'으로 <사상계>를 통해 등단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창작과비평>, 1970년대에는 <문학과지성>이 단연 눈에 띈다. 1960~70년대에는 그야말로 문학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백낙청은 창간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50 여 년 동안 <창작과비평>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권위와 활동력은 <창작과비평>의 성격을 규정 짓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는데, 그는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한다. 여하튼 <창작과비평>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며 지주이자 보루의 역할을 해왔다. 


<문학과지성>의 경우는 동인지의 성격이 강하다. 김현으로 대표 되는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동인들이 창간 했는데, 지금까지도 <창작과비평>과 함께 한국 문학의 주류로 거론되며 문단을 주도하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들은 한국 대형 출판사로 성장했는데, 그런 성장은 한국 문학과 인문학의 역량의 소산이라 해도 될 것이지만 자신들이 저항한 세력의 한 방면으로 들어갔다는 비판을 쉽게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1970년대의 <뿌리 깊은 나무>, <씨알의 소리> 등의 잡지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는 잡지가 운동과 저항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말>, <한겨레>, <실천문학> 등은 지극히 80년대적인 잡지로, 당시 군사 정권의 탄압에 맞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이에서 생겨났다. 이 시대에는 수많은 잡지들이 폐간되었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잡지들이 1987년 새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안'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1990년과 2000년대 들어오면서 잡지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다. 시대와 긴밀하게 조우하는 잡지이기 때문이기도 한대, 이 시대에 접어들면서 잡지는 더 이상 전과 같이 시대를 선도할 수 없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화를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했지만, 어정쩡하게 목적이 달성 된 후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할까. 수많은 잡지가 사람들로부터 급속히 관심을 잃어가고 새로운 성격의 잡지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대중 잡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인지하고 있는 '잡지'는 주로 이 시대에 자리 잡은 개념일 것이다.


잡지의 미래는 어떨까?


'일정한 이름을 가지고 호를 거듭하며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출판물'이라는 뜻을 가진 잡지. 잡지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니 잡지의 미래가 보일 듯하지만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현재를 살펴보자면, '종이' 잡지보다 '인터넷' 잡지의 창간이 훨씬 쉬워 보인다. 실제로도 인터넷 잡지의 종 수가 종이 잡지를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다. 법 밖에 있던 인터넷 신문·잡지들이 2005년 언론 관계법 개정 이후 언론으로 정식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10 여 년이 지난 지금, 그 팽창 속도는 엄청나다. 


10 여 년이 훌쩍 넘은 블로그는 전성기가 조금 지났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과 파급력, 영향력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SNS와의 조우로 무시 못할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팟캐스트'야말로 현재 미디어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데, 언론과 잡지 기능의 일부에서 상당 부분까지 대체하고 있다. 이들 팟캐스트와 웹 언론이 단행본·잡지·신문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저자는 잡지의 미래를 어떻게 보았을까? 방대한 한국 잡지의 역사를 들여다본 후 잡지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조금 소홀히 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 보이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를 그라고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누구나 생각하기 쉬운 그래서 오히려 생각할 수 없는 잡지의 미래를 말하며 책을 끝마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잡지의 미래이다. 


"첫째, 미래에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가 쓴 글을 나누고 돌려 읽기는 해야 한다. 그래서 '잡지'라는 글 모듬의 형식도 유지될 것이다. (중략) 둘째, 영원한 플랫폼이나 '매개'(미디어)는 없다. 당장의 패자처럼 보이는 네이버나 페이스북, 구글 들도 지금과 같은 형태와 위세를 영원히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미디어 역사, 나아가 문화사의 법칙이다. 그러니 '잡지스러운 것'도 끝없이 모양을 바꾸고 다른 '매개화'를 겪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원문으로, 기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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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침묵을 위한 시간>


<침묵을 위한 시간> 표지 ⓒ봄날의 책

우리가 잘못 인지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말'에 대한 것이다. 하나는 전자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 간의 대화 시간이 줄어 들었다는 생각.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의사소통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여자는 하루 평균 25,000개의 단어를, 남자는 10,000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이는 자연스레 다른 하나의 오해로 넘어가는데, 말을 입으로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는 것. 이제는 입으로 뿐만 아니라 손으로 하는 말도 넓은 의미의 말로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확실히 우리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말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생각의 과잉으로 이어진다. 입으로 생각을 방출하지 않고 손으로 저장하다 보니 생각은 계속 쌓이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리 없는 침묵이 더해가지만, 실상 소리 없는 소음이 우리를 시시각각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진짜 침묵이 너무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침묵이 무언지 알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무섭고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수도원이란 어떤 곳인가?


아무래도 침묵하면 떠올리기 쉬운 것이 종교이다. 경건함 속에서 신을 영접 하는 장소, 그리고 시간. 그 중에서도 가톨릭의 수도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싶다. 개인적으로 수도원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지만 '유럽 수도원 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침묵을 위한 시간>(봄날의 책)이라는 책을 통해, 수도원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케케 묵은 오해도 풀 수 있었다. 


이 책은 '패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영국의 전쟁영웅이자, 독특한 문체와 깊이 있는 관찰이 돋보이는 20세기 최고의 여행작가 중 한 사람인 패트릭 리 퍼머가 유럽의 4개 수도원을 여행하고 쓴 에세이다. 여행기 답게 기막힌 묘사와 함께 잔잔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음에도 이 책 만으로 수도원이 그려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이 책은 절대 찬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에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는 무엇이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수도원에 관련된 역사, 수도원 생활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정보,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할 수도사의 생활과 그에 반하는 바깥 세상의 생활 등이다. 각주를 제외한 본문 분량 만으로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에 그런 부분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다.  


수도원에 대한 하찮은 오해


물론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지 60년이 흘렀지만, 수도원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금욕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고독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수도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지는 검정색 수도복을 입고 중얼거림조차 배제한 침묵의 일생을 보낼 것이 아닌가?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그들에게서는 묘지를 연상시키는 음침함이나 편협함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의에 바친 자신의 삶에 진지하게 임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서로 어울릴 때 보면 그들은 균형 잡히고 박식하며 재치가 넘치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여느 프랑스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본문 중에서)


이런 수도원이 있는가 하면, 다른 수도원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음침하기도 하다. 그들은 황야에서 겪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겟세마니 동산에서 방황했던 그리스도의 고뇌, 십자가의 길과 골고타 언덕에서 끝난 그리스도의 마지막 희생에 대한 평생에 걸친 모방의 일환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영적 수련을 평생에 걸쳐 한다. 그들에게 수도자의 삶이란 길게 이어지는 속죄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고행 하는 삶이 어떤 영적인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그 위안은 곧 '길게 이어지는 천국의 암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 그 이상이다. 이를 행복한 침묵이자 행복한 고독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전적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생각의 과잉에 하루라도 골머리를 썩지 않을 날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줌이 분명하다. 


"수도원은 무덤의 정 반대가 되었다. 수도원은 어떤 비밀스러운 길을 찾는 사원이나 고통을 잊게 하는 마법의 약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조용한 대학이자 시골 저택이었고 일상의 괴로움과 고민거리들이 닿지 못하는 공중에 뜬 성이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저자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수도원 4개를 여행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수도원에 대한 하찮고 편협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을 것이고, 궁금했을 수도원 생활과 수도사의 삶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며, 수도원에 관련된 박학다식한 지식을 뽐내고도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수도원에 간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술과 파티로 런던 생활에 환멸을 느끼며, 서머싯 몸이 그를 두고 '상류층 여성들을 상대하는 제비'라고 칭한 적이 있을 정도의 '끼'가 있었던 저자는 삶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도원을 전전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면서 여행서로서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구성과 문체를 선사해 주니 저자는 상당히 영악한 자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 우리에게 와 닿는 의미가 빠져 있는 것 같다. 무엇일까? 침묵과 고독의 대명사인 수도원과 우리의 삶이 맞닿아 있는 게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건 수도원 생활을 방문객 신분으로나마 직접 체험하면서 저자가 겪은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니, 순간순간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든 것에 시달린다. 더군다나 스마트폰 혁명의 광풍이 불어 닥친 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의 속도와 양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와중에 저자가 수도원 생활을 하며 느끼는 변화, 즉 '명징한 정신과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은 더없이 진하게 다가온다. 어느새 상상하기 힘들게 된 그것들이, 이 책을 보며 조금이나마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삶에 '침묵을 위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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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행복한 사전>


영화 <행복한 사전> 포스터 ⓒcineguru



2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출판계 불황의 늪. 더불어 출판계 종사자들의 위치도 애매해졌다. 여전히 서양에서는 출판편집자가 지식계 전문가 집단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출판편집자로서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다보니 점점 팔기 위한 책을 만들게 되고, 지식 종사자라는 타이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전' 출판은 완전히 다른 격이 필요하다. 수집하고 배열하고 창조까지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 어떤 사전이든지, 이는 출판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빨리 디지털화된 콘텐츠 중 하나이다. 데이터베이트 작업이 주를 이루다보니, 아나로그가 아닌 디지털로 할 때 빠르고 쉽고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워낙 방대한 작업이다보니, '장인 정신'이 없을 수 없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던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겠다. 그래서 영화 <행복한 사전>에서 보이는 아날로그적인 사전 편찬 작업의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것일 게다. 편찬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언어를 수집하고 해설을 붙이고 배열하고 교정하고 출간한 뒤 계속해서 개정을 해나가는 모습 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사전


영화는 1995년 어느 대형 출판사의 사전편찬부에서 시작한다. 20년 넘게 사전 편찬 외길을 걸어온 편집자가 정년 퇴직을 하게 된다. 회사 내에서 알맞은 사람을 골라와야 하는데 과연 누가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사전편찬을 하고 싶어 하겠는지... 


와중에 영업부에서 자신과 맞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이를 발견한다. 그는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사전에게로 달려가 찾아보곤 하는 마지메였다. 얼마나 성실하면 이름이 성실(마지메)이겠는가?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에 대한 사랑이 제일 크게 작용했다. 


우여곡절이 없을 수 없지만 마지메는 특유의 천성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장대한 프로젝트 '대도해' 사전편찬을 잘 해나간다. 기존의 사전에 계속 생겨나는 현대어를 모두 포함시키는 작업이다. 


"단어의 의미를 안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이죠. 그건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도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전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행복한 사전>의 한 장면. ⓒcineguru



영화는 하루종일 사전을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확인하고 수정하고 재차 확인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는 사전편찬부의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만 같은 모습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있다. 잔잔한 바다에 조용한 파문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지루할 틈이 없다고 할까. 그렇지만 그 파문들이 어떤 큰 사건이나 사고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터에서 항상 일어나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다. 


대도해(大渡海)라고 명명할 정도로 장대한 프로젝트. 사전을 만드는 일이 곧 바다를 건너는 정도의 공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게다. 영화는 원작인 <배를 엮다>(은행나무)가 목적했던 바를 놓치지 않고 잘 그렸다. 문제는 누구나 짐작할 만한 뻔한 결론을 어떻게 그리냐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오랜 세월에 걸쳐 포기하지 않고 외길의 장인 정신으로 사전을 훌륭히 완성해낼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그 사이 사전을 편찬하지 못할 뻔한 사건사고들이 일어날 것이었다. 


 '사전'에 대한 '소통'에 대한 '말'에 대한 이야기


'대도해' 프로젝트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난관에 부딪힌다. 사전 편찬이 회사에 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없었던 일로 하려는 수뇌부의 의견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니시오카를 위시로 한 사전편찬부 3명은 외부에 '대도해' 프로젝트를 알려 출간을 기정사실화 시킨 다음 수뇌부에게 가 부탁을 하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대답은 출간을 계속하라는 지시, 하지만 니시오카는 사전편찬부에서 홍보부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사전편찬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더욱 힘들어진다. 앞으로 10년 이상 계속될 이 작업의 행방은 어찌 될 것인가? 



영화 <행복한 사전>의 한 장면. ⓒcineguru



이 영화는 '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요 소재인 사전편찬도 그것을 위한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어수룩함과 소심함으로 남들과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주인공 마지메. 반면 누구보다 붙임성 있고 활달한 성격과 태도로 소통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니시오카. 


한편 달필이지만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로 일관하고 있는 마지메의 연애 편지에 경악하는 니시오카, 그리고 연애 편지의 당사자 카구야. 결국 카구야는 마지메에게 편지가 아닌 말로 사랑을 전해달라 청하고 카구야는 그에 응한다. 


그리고 사전 '대도해'에는 영화가 '말'에 대해 전하려고 하는 바가 정확하게 함축되어 있다. 사전편찬부 편집주간이자 '대도해' 프로젝트의 기획집행자의 말을 들어본다. 그의 말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전'에 대한 '소통'에 대한 '말'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있다. 


"단어의 바다는 끝없이 넓지요. 그 넓은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 줄 말을 찾습니다. 유일한 단어를 발견하는 기적과, 누군가와 연결되는 기적을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 그것이 바로 '대도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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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수꾼>


영화 <파수꾼>.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이지만, 표지에는 두 명뿐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필라멘트 픽쳐스

좁혀지는 미간, 꿈틀대는 눈썹, 뿜어져 나오는 한숨, 쯥쯥거리는 입술, 바싹 당겨지는 뒷목. 영화 <파수꾼>을 보고 난 후 남겨진 것들이다. 10대 친구들을 그린 이 '성장영화'를 보며 이런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서 나의 오욕의 학창시절을 투영했기 때문일까. 영화 자체가 소름끼치게 하였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은 독립영화에 속한다.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소규모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눈을 속이는 현란한 특수효과나 가슴을 뻥뚫리게 하는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는 없다. 대신 디테일하기 그지없는 미시적 심리묘사와 짜임새있는 스토리가 송곳에 찔린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필자가 독립영화를 처음 본 기억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주인공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케이블 TV에서 보내줬던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휴가나와서 하필이면 군대 영화를 보다니. 그럼에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면서 계속해서 나만의 해석을 덧붙였지만, 여전히 그 재미는 반감되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2008년에 <똥파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2011년, <파수꾼>을 접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인데, '파수꾼'이라는 단어와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같았기에 자연스레 접하게 된 케이스이다. 거기에 3년마다 찾아오는 명작 독립영화라는 일종의 징크스가 작용했을지도.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학생 3명이라는데 과연 어떻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궁금하였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를 접하기 전에 영화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아주 간단한 거였는데, 바로 제목이었다. 한글 제목은 <파수꾼>이지만, 영어 제목은 <Bleak Night>였던 것이다. 풀이하면, 암울하고 절망적이고 음산하고 황량한 밤 정도가 되겠다. 그들이 누군가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 그려졌다.


영화는 역순으로 진행된다. 자살한 기태(이제훈 분)의 아버지가 기태의 죽음을 쫓아 기태의 생전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그렇게 찾아낸 기태의 친구 희준(박정민 분). 그는 기태가 자살하기 몇 주전에 전학을 갔지만, 그 전까지는 기태와 가장 친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 동윤(서준영 분). 그는 중학교때부터 기태와 가장 친한 친구였고, 희준이 전학간 사이 기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세 친구는 단짝이었다. 그들은 철로가 끝날 때까지 같은 걸어갈 수 있을까. ⓒ 필라멘트 픽쳐스



주지한대로 주인공은 세 명의 단짝 친구들이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때부터 친구였고, 희준은 고등학교때 알게된 친구이다. 이들 셋은 언제나 붙어다닌다. 그런 그들의 관계에 약간의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윤과 희준이 좋아하는 세정과 보경이와 함께, 남자 셋 여자 셋 월미도 여행을 떠난다. 기태는 진심으로 친구들의 사랑이 성사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보경이는 희준이 아닌 기태를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보경은 기태에서 고백하고 이 장면을 본 희준은 기태에게 따지고 든다. 이에 기태는 언짢음을 느낀다.


이어서 학교에서의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기태 앞에서 부모님 얘기를 하지 말자는 동윤과 다른 친구의 눈짓을 본 기태가 또 다른 의미의 언짢음을 느낀다. 또한 기태는 싸움을 제일 잘하는 일명 '짱'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부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때부터 단짝인 동윤을 제외하고, 희준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에 역시나 언짢음을 느끼는 희준이지만, 기태는 그런 희준에게 자신의 속마음과는 다른 서툰 감정 표현을 하고 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툰 표현들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으로 이들의 관계는 점철되고 만다.


결국 기태와 그의 불량한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지 못한 희준은 전학을 가버리고, 동윤은 그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재를 하지 못한 채 희준의 편만을 든다. 이에 기태는 동윤에게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그의 여자친구인 세정이 과거에 안 거쳐간 남자가 없었다는 것. 이어서 기태는 세정에게 말한다. 동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동윤은 기태를 찾아가서 대판 싸운 끝에 절교를 선언한다. 이 도중에 기태의 불량친구들 또한 기태를 떠나간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자살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프로이트는 방어 기제를 '미성숙한 방어 기제'와 '성숙한 방어 기제'로 나누었다. 미성숙한 방어 기제로는 부정, 투사, 행동화, 건강 염려증, 퇴행, 수동 공격적 행동, 신체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기태가 사용하는 방어 기제는 행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미성숙한 자아와 어미니가 안 계시는 상황,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이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극 중의 내용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그와 관련하여 갈등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태가 말한다.


"난 집에 가면 내가 밥 해먹어. 가끔 아버지 얼굴 보면 인사하고 아침에 눈 떠보면 지각이라서, 왜 안 깨웠냐고 막 화내거든. 안 계시잖아. 엄마가. 아무도 없어. 그 정도야. 그 정도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우리 집 관련된 얘기야. 됐지? 됐냐고?"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기태의 자살이 결국은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사소한 오해와 갈등으로 그들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 필라멘트 픽쳐스



기태는 희준이 좋아하는 보경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기태는 계속해서 희준에게 다가가 사과를 한다. 그의 표현 방법이 조금은 서툴고 거칠지만 희준이 받아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희준은 시종일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 조금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태는 계속해서 엇나가고 만다. 급기야 희준을 향한 분노가 극단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다. 이번엔 희준이 말한다.


"너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내가 언제까지 네 앞에서 꼬리 흔들며 살아야 되는데? 내가 네 앞에서 그렇게 맞고도 오기로 버텨온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알량한 자존심. 나도 한 번 부려봤다. 왜, 안 되냐? 저 친구들도 네 옆에 있는 거 아니야. 착각하지마. 너랑 학교 다니면 편하니까 붙어있는 거지. 나도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고, 알아?"


영화를 보는 내내 희준을 향한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인간 관계란 것이 칼로 무자르듯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죽고 못사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일로 인해 단번에 그 친구와 절교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매일같이 사과를 했지만 나는 무엇인지 모를 오기로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의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성숙한 지금의 내가, 미성숙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의 사과를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불안한 관계, 그 끝은...


우리가 믿고 있는 깊숙한 관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친구는 무엇일까. 진정한 친구와의 깊숙한 관계는 불안정한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일까. 이 영화는 자칫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만연한 불안은 관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려 끝까지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고 상대를 대하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기태는 겉으론 한없이 강한 척 하며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면서도 나약했다. 그는 희준에게 거듭 사과를 하며 불안을 감추려 한 것이다. 하지만 희준은 자신의 불안을 완전히 굳혀서 기태를 대한다. 희준의 입장에서는 기태야말로 자신의 불안을 극도로 내보이며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또한 미성숙하기 그지없었다.


미성숙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동윤. 그야말로 제일 미성숙한 인물일 것이다. 시종일관 기태와 희준의 갈등 속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일방적으로 희준의 편만을 들었을 뿐. 또한 기태의 마지막 사과를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제일 성숙해 보였던 그였기에, 그의 말은 꽤나 반전이었다. 동윤의 말이다.


"너한테 기분 상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똑바로 들어.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지껄일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알아?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네 진정한 친구였단 생각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역겨우니까... 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있잖아 가식적인 인간 싫다고. 근데 네가 제일 가식적이야. 네가 역겨우니까 다 너 떠나는 거야...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혼자 남게된 동윤.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는 없었다. ⓒ 필라멘트 픽쳐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빛을 갚는 다는 속담이 있다. 죽마고우도 말 한 마디에 갈라진다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말'의 힘은 대단하다. 말은 '관계'에 있어 그 시작과 끝을 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파수꾼>은 10대 친구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고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세대를 초월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bleak night에 던져진 이들은 비단 미성숙한 그들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규명하고 있는 거대한 bleak night에 던져진 우리들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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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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