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고 하네요. 칼 구스타프 융에 의하면,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죠. 이를 영화로 치환하면, 영화감독이 배우를 통해 자신의 분신이자 상징을 표현할 때 페르소나라는 말이 쓰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는 대표적인 콤비입니다. 그들이 함께 한 작품은 8개나 되는데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마틴 스콜세지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하는 역으로 로버트 드 니로를 선택합니다. 사실 이 둘은 각각 1942년생, 1943년생으로 한 살 터울의 친한 친구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죽이 척척 맞았을까요?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탈리아계 2세였죠. 즉 로버트 드 니로는 미국 뒷골목을 떠도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자신을 대변하는 페르소나였던 것입니다. 같은 뉴욕 출신의 로버트 드 니로는 그 이미지를 완벽히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는 연기자였습니다.  

자, 그럼 이들이 합작한 영화 8편을 볼까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20년을 함께 했습니다. 






[비열한 거리], 1973년





[택시 드라이버], 1976년




[뉴욕, 뉴욕], 1977년





[성난 황소], 1980년





[코미디의 왕], 1983년






[좋은 친구들], 1990년





[케이프 피어], 1991년






[카지노],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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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사랑 이야기는 어느 콘텐츠를 생산하든 거의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이다. 사골 국물 우려먹듯 수백 수천 년 동안 재생산되었기에 진부하다. 진부함에도 계속될 수 있는 건 사랑의 위대함이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랑은 참 위대한 것 같아. 사람에게 시간은 목숨과 다를 바 없는 건데, 그 목숨 같은 시간을 투자하다니 말야."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진데, 그마저도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의 힘이란 게 이런 것이 아닐까. 목숨까지 바쳐가며 하게 만드는 사랑은 정녕 위대하다.

반대로 그만큼이나 위대한 사랑이기에, 사랑에 배신을 당하면 그만큼이나 괴롭고 힘들다. 목숨을 바쳐 사랑에 헌신하지만, 사랑에 배신당하면 목숨을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사랑에 배신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많이 있다.

사랑에 상처받고 미친 사람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인생의 반 쪽을 잃은 그들의 웃음에는 무엇이 깃들어 있을까. ⓒ 나이너스엔터테인멘트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데이빗 O. 러셀 감독)의 두 주인공 또한 사랑에 배신당해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증세가 범상치 않다. 남자 팻(브래들리 쿠퍼 분)은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못하는 정신병자이다. 8개월 전 부인의 외도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참을 수 없는 광기에 휩싸여 직장에서 쫓겨났고 아내에게는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졌으며 정신 이상으로 정신병원에 갖힌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제대로 살아보려고 정신병원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펫.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쳐 있는 상태라는 거. 팻은 아내에게 찾아가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왜 그랬어!

여자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 역시 참을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최근에 남편을 잃고(죽음) 그 슬픔과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같은 회사 직원들께 풀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분노 해결 방법은 남자들과의 섹스였다라나? 그 슬픔과 외로움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심한 거 아닌가? 또 그녀는 그처럼 마인드 컨트롤이 안 되는 증세도 종종 보이곤 한다. 팻이 자기보다 더 미친거 같다고 말하는 걸 보니 그녀 또한 미쳐 있는 상태라는 거.

이 둘은 같은 동네에 산다. 둘 다 아침 조깅을 하는데 티파니가 계속 따라다니는 게 아닌가? 여차저차해서 팻은 티파니를 이용해 아내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빌미로 티파니는 커플 댄스 대회 출전을 강요한다.

그렇다. 사실 티파니는 그 편지를 건네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팻이 좋아져 버렸는걸? 하지만 팻은 여전히 아내 생각뿐. 그럼에도 그는 언제부터 같은 처지에 같은 미친(?) 사람인 티파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결코 미친 게 아니라 '아픈' 거란 걸.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사람들은 왜 이해를 못하는지?


그녀만의 플레이북으로 팻을 유혹하는 티파니. "이봐, 왜 자꾸 따라오는데?" ⓒ 나이너스엔터테인멘트


뭔가에 미친 사람들

영화가 미친 두 연인의 얘기로 이렇게 흘러가서 이렇게 끝이 난다면, 그대로도 썩 괜찮은 시나리오의 참신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지만. 영화에는 주연만 있는 게 아니다. 조연도 있어야지. 그러면 그 조연들은 미치고 아픈 이 연인을 잘 보살펴서 개과천선하는 데 이바지 하는 역할일까? 아니면 주연들이 셀프 힐링을 하려는 데 옆에서 방해하는 역할일까? 한번 들여다보자. 그들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들.


도박에 중독된 팻 아버지. 내기에서 이긴 듯? "야호! 우리팀이 이겼다!"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사실 이 영화에는 미친 사람들이 또(!) 나온다. 사실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다들 미쳤는데 어떻게 도와줄까. 그렇다고 방해를 할 이유가 있을까. 먼저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는 도박에 미쳐있다. 팻의 어머니(재키 위버)는 미치진 않았지만 미친 남편과 아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 심신이 약해져 있다. 팻의 형은 팻에게 자격지심이 있다. 그것도 심하게.

여기까지는 팻의 가족들 뿐이다. 팻의 친구이자 정신병원 동창(?)인 대니(크리스 터커)는 말할 것도 없고, 팻의 동네 친구인 로니와 그의 아내 베로니카 또한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정상인이 분위기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한 가지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누가 다른 누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상황이 아니라, 서로 문제나 일으키지 않으면 좋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의 무한 반복. 팻이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보다가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면서 하는 말.

"세상은 충분히 험난하고 힘든데, 해피엔딩 좀 쓰면 안 돼요?"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는 끝날 것이라는 복선이 깔려 있는데, 어떻게 미친 사람들의 세상에서 '실버라이닝'(어두운 구름을 뚫고 비쳐나오는 햇살)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보게 만들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이 영화의 예정된 결말이.

예정된 결말이 궁금해지는 영화

언급했듯이 이 영화의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다. 팻은 아내와의 일을 잘 추스르고 티파니한테로 달려갈테고, 그 사이 티파니는 조금의 오해와 실망 끝에 팻을 받아들일 테고. 다른 미친 사람들은 자신들을 한 곳에 묶어주는 결속력 있는 프로그램 내지, 한 차례 폭풍비가 내린 뒤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각종 오해와 다툼이 뒤섞여 일어난 뒤 바라던 좋은 일이 터지며 깨끗하게 마무리될 거라는 느낌 말이다.


팻과 티파니는 댄스 대회에서 5점만 넘길 바랄 뿐이다. 그들 각자는 5점이지만 그들은 이제 둘이기에 5+5=10. 앞으로 만점의 인생을 살면 되는 것이다.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이 영화는 결말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 예정된 결말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종일관 흐르는 편안함과 잔잔한 재미를 얼마만큼 잘 유지시켜줄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를 보고 유일하게 실망하는 부분이 결말 부분이라고들 평하는데, 그건 뻔한 걸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습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왜 항상 끝에는 거대하거나 찬란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라는 제목을 보고 결말을 먹구름 사이에서 비쳐지는 햇살처럼 찬란할 거라고 기대를 했는지는 몰라도. 사실 영화는 전혀 먹구름를 몰고 다니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아프고 외롭고 힘들고 미치는 상황임에도 감독은 이를 전혀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실버라이닝'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잘못된, 아니면 관객을 낚는(?) 제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북미에서는 엄청난 장기 흥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맥을 못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기존의 건실한 로맨스 코미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이런 정신병자, 중독자 등 미친 사람들에 의한 화창한 분위기의 영화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보면 후회는 안 하실 텐데. 추가로, 영화를 볼 때 스토리나 분위기 말고 연기만을 보는 분들께는 강추!



"오마이뉴스" 2013.3.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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