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제리 맥과이어>


오랫동안 탑스타로 군림하는 톰 크루즈. 그에게 사실 가장 어울리는 옷은 로맨틱코미디가 아닐까? ⓒ피터팬픽처스



1981년 <끝없는 사랑>으로 데뷔하고선 이내 주연으로 올라서 80년대 후반에는 이미 자리를 공고히 한 배우 톰 크루즈. <미션 임파서블>을 위시한 단순 액션 영화를 많이 찍었지만, <레인 맨>이나 <7월 4일생>, <매그놀리아> 등 작품성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도 많이 찍었다. 모두 톰 크루즈에게 제격이어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더 잘 맞는 옷은 따로 있었다고 본다. 다름 아닌 로맨틱 코미디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제리 맥과이어>겠다. 그의 필모를 들여다보면, 진지한 역이 반 정도이고 유들유들한 역이 반 정도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유들유들한 역을 제대로 선보이는 바, 직전에 찍었던 <미션 임파서블 1>이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이 영화는 톰과 함께 한 두 주연급 조연에게도 특별하다. 쿠바 구딩 주니어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와 미국 내 각종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는데, 이후 2000년대엔 각종 영화로 최악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단골로 올라갈 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르네 젤위거는 당시 무명 배우였는데, 이 영화로 단숨에 유망주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쿠바 구딩 주니어와는 반대로 2000년대 세계적인 여배우로 우뚝 섰다.

말랑말랑 로코와 감동적인 드라마

<제리 맥과이어>는 기본적으로 로코와 드라마와 합본이다. 말랑말랑하고 감동적인. ⓒ피터팬픽처스



능력과 외모, 성격까지 완벽에 가까운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분), 누구보다 잘 나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담당하는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터진다. 어떤 선수는 10대 소녀를 성추행하고, 어떤 선수는 프로잼 카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린 아이의 사인을 거절했다. 결정적으로 어떤 선수는 몇 번이나 부상을 당했는데도 제리가 만류하지 않았는데, 그의 아들이 제리에게 'FUCK YOU'를 날린 것이다. 제리는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처음으로 직업에 회의를 느낀다.

선수들을 그저 '돈'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것이 맞다는 생각과 함께, 어느 날 그는 회사에 제출할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요지의 방대한 제안서를 작성한다. 회사에서 환대를 받는 제리, 하지만 곧 해고 통보를 받고 쫓겨나 1인 에이전트를 세운다. 그때 그를 따라온 유일한 동료는 경리과 도로시 보이드(르네 젤위거 분), 그리고 유일한 선수는 미식축구 로드 티드웰(쿠바 구딩 쥬니어 분). 

제대로 된 홀로서기를 위해선 우선 제대로 된 선수를 잡아야 하는 바, 제리는 그저 그런 무명 선수인 티드웰은 제쳐두고 NFL(미국 미식축구리그) 드래프트 1순위가 확실시 되는 커쉬맨을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이미 잡은 물고기 로드, 거의 잡은 물고기 커쉬맨. 제리는 행복하다. 하지만, 커쉬맨은 막판에 제리를 배신한다. 제리는 전에 없는 실의에 빠진다. 과연 그만을 보고 따라온 도로시와 로드의 운명은?

<제리 맥과이어>는 얼핏 <머니볼>처럼 지극히 직업적인 색채가 강하고 전문적인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말랑말랑하고 현실적인 로맨틱 코미디(제리와 도로시)와 감동적이고 진취적인 드라마(제리와 로드)의 합본이다. 영화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현실적인 로코와 진취적인 드라마

하지만 속내는 마냥 말랑말랑하고 감동적이지만은 않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진취적인 면모도 보인다. ⓒ피터팬픽처스



먼저 제리와 도로시의 로맨틱 코미디, 이들의 사랑은 말랑말랑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이다. 제리에겐 잘 나가던 바로 얼마 전까지 약혼녀가 있었으며, 도로시는 아들 하나가 있는 이혼녀다. 이들이 이어지는 이유는 결코 '사랑'이 아닌 듯한대, 외로움을 극도로 잘 타는 성격의 제리가 자신이 힘들 때 상냥하고 친절하게 잘 대해준 도로시에 '의리'를 지킨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회사를 나올 때 유일하게 따라왔다. 

그런 그들의 사랑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돈보다 인간이 중요하다고 울부짖다가 해고 당한 제리 입장에서 또다시 돈 때문에 대형 선수를 잃어버리고 찾은 안식처가 도로시일 텐데, 역설적으로 그 사랑이나 의리는 사람이 아닌 돈에 상처 받은 마음의 약일 것이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이 치유해줄 수 있지만, 돈으로 받은 상처를 어찌 사람이 치유할 수 있겠는가. 

제리와 로드의 드라마는 어떨까. 역시 모든 걸 다 잃고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선수, 'SHOW ME THE MONEY'를 외쳐대는 그저 그런 무명의 선수 로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제리. 적어도 그와는 비즈니스 관계에 있기 때문에, 돈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가능성은 있겠다. 그러기 위해선 로드이 유명해지고 그래서 고액의 연봉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의 실력이 아닌 그의 인성. 

제리는 로드에게 더 좋은 실력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나은 인성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 지옥같은 경쟁의 장에서 실력이 아닌 인성을 요구하다니? 아무리 이미 출중한 실력을 갖고 있는 로드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제리는 자신이 쓴 제안서가 맞다는 걸 로드를 통해 입증해낸다. 비단 에이전트와 선수 사이의 인간 관계뿐만 아니라,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보다 중요한 게 인간 관계라고 말이다. 

자본주의를 벗어나진 못했다

모든 건 자본주의 하에서 이루어진다. 사랑도, 인간 관계의 진전도, 성공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피터팬픽처스



로맨틱 코미디도 아닌 것이, 드라마도 아닌 것이, 직업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닌 것이, 영화는 직업인 제리를 중심으로 세 가지 주제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거기에 맞는 세 가지 주제는 돈, 사랑, 관계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주제와 소재들을 모두 포괄하는 이 '세계'는 자본주의다. 

돈이 모든 걸 지배하고, 돈이 사랑도 관계도 넘어서는 세계가 자본주의일진대, 이 영화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일침을 가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게 아니라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툭 건드리는 정도로 다가오는 건, 아마도 조금 불편한 결론 때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돈과 관계와 사랑까지 완벽해지는 그때.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게 순서다. 내가 보기에, 돈이 가장 먼저였다. 그보다 앞서 가족의 진심어린 사랑이 있었지만 그게 경우에 따라 돈으로 환원될 수 있겠다. 그 다음이 관계였고, 마지막으로 사랑이었다. 모든 걸 완성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사랑이 보인 것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이게 하는 '사랑'을 말이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자본주의'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랑이 아닌, 자본주의 안에서의 사랑. 물론, 이 영화가 20년 전 영화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라는 게 최절정기에 있었던 1990년대 중반에 이런 정도의 영화가 나왔다는 게 신기한 거다. 여러 면에서 유려한, 이미 1990년대를 대표하는 명작 중 하나가 된 <제리 맥과이어>. 언제라도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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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어바웃 타임>


영화 <어바웃 타임> ⓒ유니버셜



50세의 나이로 교수 자리에서 은퇴해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버지, 무뚝뚝하고 진지하기만 하지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어머니, 항상 반듯한 정장 차림이지만 뜬금없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수시로 하는 삼촌, 말괄량이다 못해 너무나도 천방지축인 여동생, 그리고 키는 멀대 같이 크고 말랐으며 모태솔로에 지극히 보통인 그런데 어딘지 찌질한 면이 있는 나. 


내가 21살이 되어 성년으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으려 할 때, 아버지가 따로 보자고 하신다. 그리고 친절하게 대해주시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성년이 된 나에게 덕담을 곁들인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 거겠지?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우리 가문 남자들은 성년이 되면서 특별한 능력이 생기는데, 바로 시간 여행 능력이라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감은 뒤 돌아가고자 하는 때를 생각하면 된다. 과거로만 여행이 가능하고, 여행 중의 기억들이 모두 생생할 것이며, 내가 시간 여행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들까지 리셋이 된다는 것이었다. 시험 삼아 한 번 해봤는데 정말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인생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여자친구를 만들 것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감은 뒤 돌아가고자 하는 때를 생각하면 시간 여행이 실현된다. ⓒ유니버셜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가 돌아오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프롤로그 스토리이다. 전형적인 듯한 로맨틱 코미디의 스토리와 이제는 너무나도 식상한 소재가 되어 버린 시간 여행’, 거기에 그리고 유명하지 않은 남자 주인공까지. 할리우드가 아닌 영국 발의 이 영화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믿음이 가는 이유는 정확히 10년 전 개봉해 가히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러브 액츄얼리>의 리차드 커티스 감독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일찍이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각본을 맡은 바 있다. 이들 작품 모두 로맨틱 코미디의 한 획을 그은 작품들로, 그를 가히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어바웃 타임>도 역시나 연출 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도맡았다.

 

<러브 액츄얼리>의 경우, 개봉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최근에 재개봉하는 등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먼저 다른 점들을 재처 두고 크리스마스 시즌만을 노린 점이 잘 먹혔다. , 너무 많은 걸 넣으려 하지 않고 선택과 집중을 했다는 뜻이다. 반면 19명의 주인공(10 커플)을 등장시키는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에, 캐스팅과 스토리에서는 많은 걸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어떤 관객도 최소한 한 커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신들린 듯한 공감과 웃음, 그리고 재미


<어바웃 타임><러브 액츄얼리>의 채취가 상당히 많이 베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만을 노리지 않았고, 옴니버스 형식을 차용하지도 않았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분위기, 그리고 감독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게 드러난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영화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팀(돔놀 글리슨 분)의 이야기이다. 그는 시간 여행으로 가장 이루고 싶은 게 여자친구 만들기였다. 그래서 첫 눈에 반한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고군분투를 다한다. 주로 시간 여행에 따른 고군분투인데, 그건 그의 착한지 오지랖이지 생각없음인지 모를 행동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껏 메리에게 호감을 사 좋은 관계로 진행되고 있을 찰나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메리가 팀을 모르는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곤 했다. 그럼에도 그에겐 시간 여행이란 절대적 무기가 있었기에 결국에는 메리와 사귀고 결혼하고 아기를 낳기까지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팀은 결국 첫 눈에 반한 메리와의 메리에 성공한다. ⓒ유니버셜


 

, 이 영화의 거의 후반부까지의 스토리는 이처럼 아주 예측가능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지루하거나 재미없거나 심지어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 팀에 있다. 그의 연기가 출중한 건지 대사가 출중한 건지 상황 연출이 출중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너무나도 재미있다. 그것도 공감하면서 웃는 재미. 주로 여성들에게서 그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팀이 순진하면서도 찌질하게 메리를 대하는 모습에서 공감의 웃음이 나오고, 그가 시간 여행을 통해서 과거로 가 그 모습을 억지로 버리고 능숙하게 대하는 모습에 코믹스러움을 대할 때의 웃음이 나온다.

 

감동 코드도 놓치지 않는 센스


반면 감동 코드 또한 놓치지 않는다. 팀은 수많은 시간 여행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기억에 없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지만 말이다. 그의 아버지(빌 나이 분)는 잘 알고 있다.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 결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대신 그는 시간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랑의 참맛을 알게 된다. 깨닫고 난 후 그에게 시간 여행은 그 사랑을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이다. 너무 힘들고 지치고 형편없는 것만 같은 하루를 온전히 지내고 난 후, 시간 여행을 통해 다시금 똑같은 하루를 보낼 때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전부 알고 있는 이의 여유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감동 코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음악이 없었다면 아주 밋밋한 화면과 스토리가 되었을 텐데, 음악 덕분에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음악이 과했다면 남은 것이 음악 밖에 없었을 테지만, 그 또한 잘 캐치해냈다. 음악에 먹히지 않고 음악을 잘 소화해냈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 팀과 함께한 시간을 선택한다. ⓒ유니버셜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쟁취하고 싶은가? 언제로 돌아가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어디로 돌아가 어떤 행동을 저지하고나 하고자 할 것인가? 영화에서 팀은 여자친구를 만들어 사랑을 쟁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인 팀과 여유롭게 산책하는 옛날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이것 한 가지도 잘 안다. 지금 이 순간은 반드시 과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굳이 과거로 돌아가서 무엇을 바꾸려고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바로 지금,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행동에 옮기면 되지 않겠는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 생각을 인지한 채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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