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초록물고기>


'거장' 이창동 감독의 시작 <초록물고기>. 우리는 이 영화에서 지금으로선 기가 막힌 한석규, 송강호의 동반 출현을 볼 수 있다. ⓒ시네마 서비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1997년 2월 초에 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한 영화감독의 데뷔작, 심상치 않다. 이런 영화가 이전에 있어나 싶다. 흥행 미풍, 호평 일색이다. 제목은 <초록물고기>, 감독은 이창동. 거장의 출현을 알린다. 당시 그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1983년에 데뷔한 중견 소설가였다. 이 작품 이전에 <그 섬에 가고 싶다> 각본과 조연출을 성공리에 마치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각본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러니 초짜가 아닌 중고 신인의 데뷔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의 사건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중심엔 이창동 감독이 있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단 5편의 연출작을 남기는데,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초록물고기>부터 시작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까지, 앞의 세 편으로 이미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박하사탕>인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가 설경구일 때가 있었다. 거장의 눈썰미는 시나리오와 더불어 배우에게도 가 닿아 있는 것 같다. 설경구를 비롯해 송강호, 문소리, 정진영 등은 오로지 그의 눈썰미에 의해 뽑혀 함께 한 배우들이고 하나 같이 대배우가 되었다. 우린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와 송강호와 문성근이 함께 하는 마법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외형은 느와르, 내형은 누구나의 이야기


소시민적 이야기에서, 느와르로, 누구나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리얼리즘 진한 작품. 소설 한 편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네마 서비스



시작은 제대 귀향 기차. 막동(한석규 분)은 우연히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 미애(심혜진 분)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듯, 하지만 그녀의 스카프만 얻었을 뿐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다.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일산의 옛날 집으로 돌아온 막동, 뭐라도 해보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기술도 없다. 큰형, 작은형, 막내여동생을 찾아 다니며 회포나 풀 뿐이다. 계란장사를 하는 작은형과의 한바탕은 그에게 참으로 귀한 재산이다.


와중에 걸려온 여인의 전화, 수소문해보니 귀향 기차에서 만난 미애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이트클럽 전속 가수이자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보스 배태곤(문성근 분)의 여인이다. 배태곤의 눈에 띈 막동, 곧 그의 아래로 들어가 승승장구한다. 보스 몰래 하는 미애와의 사랑도 꽃피운다. 


그런데, 소싯적 배태곤의 보스였던 김양길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사태는 일변한다. 일대를 주름잡던 배태곤의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든 것. 급기야 배태곤은 김양길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만 이대로 있을 배태곤이 아니다. 그는 막동에게 극비리에 중요한 임무를 떠앉기는데... 막동의 앞날은 어떨까. 


리얼리즘의 대가 이창동, 그는 소시민을 잘 그려내기로 정평이 나 있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또는 중심에 서지 못한 이를 내세워, 그로 하여금 대표성을 띨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초록물고기>는 외형은 느와르이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나의 이야기, 드라마이다. 막둥이가 살아가는 동향, 그의 가족들 모습, 그를 둘러싼 환경들이 모두 그렇다. 


조폭 영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명작


흔한 조폭 영화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삶의 지독한 아이러니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명작이다. 소시민과 재개발과 조폭. ⓒ시네마 서비스



벌써 20년이 되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도 하다. 기억 속 <초록물고기>는 같은 해 개봉해 숱한 화제를 뿌린 문제작 <넘버 3>와 비슷하다. 한석규와 송강호가 나오는 조폭 영화라서 그런지, <넘버 3>가 뇌리에 더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초록물고기>를 보기 전에, 현재 한국 배우 빅3인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을 한 영화에서 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건 <넘버 3>인데. 


그런 기대, 조폭 영화를 볼 때면 으레 가지게 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면 이게 무슨 <전원일기>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날것의 소시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막동이와 작은 형이 함께 계란차를 타고 경찰차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한창훈 소설가의 <오늘의 운세> 한 장면을 그대로 차용한 것 같은데, 장면으로 보니 정말 많이 웃겼다. 한편 한창훈 소설가가 천착하고 있는 것도 아무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이들의 '소외'이니 만큼, 그의 소설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회사 사정 상 파주와 일산 쪽을 자주 가는데, 오래전에 신도시가 들어선 그곳이지만 아직도 허허벌판이 눈에 많이 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에 나오는 배경과 완연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개발이 한창인 당시, 배태곤이 추진하는 게 다름 아닌 재개발 관련 사업. 신도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아니 피해를 볼 여지가 있는 소시민인 막둥이가 배태곤을 도와 신도 개발 사업을 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한 삶이 아닌, 삶이란 아이러니하다 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


'좋은 영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초록물고기>는 단연코 좋은 영화인 바, 이 기회에 한 번 보심이 어떨지. 당당하게 추천한다. ⓒ시네마 서비스



재개발과 소시민, 그리고 소외를 다루는 한편 정통적인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영화가 갖는 위대함이라 하겠다. 잘 빠진 느와를 한 편을 보는 것도 힘든데,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생 드라마를 엿볼 수 있다니 말이다. 와중에 제대로 된 한국형 느와르인 <달콤한 인생>이나 <비열한 거리>의 만들어진 듯한, 적어도 '내'게 피부로 와닿는 공감은 선사하지 못하는 부분을 <초록물고기>는 채워준다. 


그 중심엔 막동이라는 캐릭터가 있겠다. 배태곤이 그에게 꿈을 묻는다. 그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단다. 소박하다면 소박하지만, 가족들이 한데 모여야 한다는 점에선 요원할 수도 있겠다. 그 꿈이 소박할수록 그가 가고 있는 길은 험난해진다. 그리고 비극은 점점 다가온다. 


영화는 말한다. 사람이 허무하게 죽어 나자빠지는 느와르, 절절한 배신이 난무하는 느와르와 소박하기 그지 없는 꿈을 꾸는 소시민의 생각, 행동,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느와르는 하나의 장르가 아닌, 먹고 사는 삶에서 파생된 여러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부분을 이 영화가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기도 한다. 당대의 생생한 모습을 우린 스크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런 리얼리즘 작품에서 절절히 확인할 수 있는 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된다. 우린 알 수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이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라는 걸. 그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우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2016년 최후의 발견 <혼자>


근래 본 적이 없는 강렬한 포스터다. 헤어나올 수 없는 악몽에 갇혀 괴로워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디스토리



조그마한 방, 바닥과 책상이 피 칠갑이다. 일정하지 못한 숨소리의 주인공이 당황과 짜증이 섞인 손놀림으로 피를 닦는다. 중도 포기. 그러곤 벽에 붙은 사진들에게로 손을 뻗는다. 수없이 많은 사진들, 동네인 듯한 곳 여기저기를 찍어서 이어 붙여 놓았다. 그 중 한 건물의 옥상에 있는 한 여자,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고 사진으로 뻗는 손은 떨린다. 이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혼자>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전형적인 방법으로 시작된다.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영화의 중요 장면이나 끝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이 달랐던 건 '롱테이크', 약 4분 간을 한 번에 보여주며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더불어 그 방식이 점진적이라는 점. 좁은 방을 보여주는 데 1초면 끝났을 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롱테이크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는 점진적인 방식의 주요 수단이 될 것 같다. 여러모로 기대되는 첫 장면이다. 


꿈 속의 그것들은 무엇인가


첫 시퀀스에서 복면남자들에게 당하는 수민.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가장 궁금하다. 이 시퀀스는 꿈일까 현실일까. ⓒ인디스토리



사진으로 뻗은 손이 닿은 옥상, 장면은 실제 옥상으로 옮겨간다. 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데 세 명의 복면 남자들이 쫓아와 여자를 죽인다. 맞은 편에서 그 장면을 사진 찍는 남자, 길가는 사람에게 소리쳐 도움을 청하려는데 복면남자들에게 들키고 만다. 길을 건너 곧 들이닥치는 복면남자들, 남자는 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복면남자들은 유리창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이닥친다. 그러곤 망치로 남자를 가격한다. 


다음 순간 발가벗은 채 어느 정자에서 깨어난 남자, 얼어 죽지 않으려면 무작정 길을 나설 수밖에. 정자가 있는 곳은 산동네로 보이는 어느 동네의 중간 이상 쯤으로 보인다. 남자는 길을 나서 내려간다. 도중에 만나는 칼을 든 남자아이,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어른여자. 그리고 망치를 들고 쫓아오는 복면남자. 


영화는 비교적 초반에 정체를 보여준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가 깨어나는 정자부터 꿈이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분명 칼을 든 남자아이, 우는 어른여자, 그녀가 변한 엄마, 망치를 들고 쫓아와 남자를 죽이려는 복면남자는 꿈에 나오는 이들다운 상징이 있을 것이다. 이 상징들을 하나하나 해석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듯. 


피 칠갑 되어 있는 남자의 좁은 방, 머리에서 갑자기 흐르는 엄청난 피, 무엇보다 미로처럼 나갈 길이 없을 것만 같은 산동네의 골목길까지, 온통 상징투성이다. 이 역시 해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건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다만,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들, 그 중에서도 알면 좋을 것들은 있다. 칼을 든 남자아이는 주인공 남자의 어린 시절을, 우는 어른여자는 남자의 여자친구라는 걸. 남자를 죽이려는 복면남자는 죄의식으로 똘똘 뭉친 남자를 무너뜨리려 오는 저승사자들이라는 걸, 미로같은 골목길은 남자 내면의 헤어나올 수 없는 혼란을 뜻한다는 걸. 


꿈과 현실의 경계가 자아내는 매력


꿈과 현실의 경계를 표현함에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게 바로 산동네다. 미로처럼 꼬이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곳, 수민의 내면과 같다. ⓒ인디스토리



그렇다. 영화는 주인공 남자 수민이 꾸는 꿈으로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누구나의 내면이 그렇듯 수민의 내면도 인간의 뇌처럼 생겼다는 산동네 골목길만큼 꼬이고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면서 서로 이어져 있으니 답을 구할 수 없는 와중에 문제들만 계속 쌓이는 느낌이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꿈만 꾸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꿈이라고만 하기에도 미심쩍다. 종종 꿈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꿈 속의 꿈이 아닌. 그렇다고 현실처럼 보이나? 그건 또 절대 아니다. 여기서 롱테이크 기법이 빛을 발하는데, 장면의 전환이 거의 보이지 않으니 분명히 꿈으로 끝나는 한 장면의 시작이 현실이 아닌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위한 기막힌 수법이다. 


왜 감독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려 했을까. 그건 비단 꿈과 현실뿐만 아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수민의 여자친구를 죽인 게 수민인지 복면남자들인지 알 수 없고, 칼을 든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죽인 것인지, 즉 수민이 아버지를 죽인 게 맞는지 알 수 없고, 수민을 찍는 카메라가 수민과 함께 하는지 수민 자체인지 수민이 속한 세계 바깥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 


경계는 불안해서 절묘하고 미스터리해서 궁금증을 자아내곤 하는데, 이 영화도 그런 매력을 발산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무슨 내용인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모르지만 절묘하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런 영화 말이다. <혼자>는 초반에 지극히 스릴러적인 면모를 뽐내며 당장의 궁금증과 추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가슴을 조이면서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스러운 스릴러가 아닌, 미스터리에 추격 아닌 추격이 가미된 서스펜스가 주를 이루는 재밌는 스릴러 말이다. 


우리의 본 모습 '혼자', 하지만 가장 멀리하고 싶은 모습


언제나 혼자가 되는 그, 아무리 혼자로 태어난 인간이라지만 혼자가 되고 싶은 인간은 아무도 없다.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는 말이 무섭게 다가온다. ⓒ인디스토리



꿈을 꿀 때마다 혼자가 되는 수민, 그는 왜 혼자일까. 그 또한 그의 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꿈에서만인지 현실에서도인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를 죽인 어린 수민, 그는 아마도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컸을 거다. 지금은 혼자 사는 수민 그리고 꿈에서 나와 수민을 책망하는 어머니, 아마도 그는 아버지에게 당하고 사는 어머니를 놔두고 집을 나왔을 거다. 수민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헤어지려는 여자친구 지연과 돌변하는 수민, 아마도 수민이 지연에게 돌변하여 상처를 주었을 거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든 그의 잘못이었든, 수민은 상처가 쌓이고 죄의식이 쌓이고 불안이 쌓이고 불만이 쌓인다. 그건 곧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과거의 나에게, 꿈 속의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든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타임루프처럼 꿈 속에서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지만 언제나 혼자가 될 뿐이다. 


영화는 초반의 스릴러를 뒤로 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드라마에 치중한다. 아무래도 혼자가 되어 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를 역시 롱테이크로 차분하게 따라가기 위해서는 스릴러 형식이 아닌 드라마 형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반 이후 지루한 맛이 있는 컷이 나오는데, 바로 그 컷이야말로 수민의 의식 가장 밑바닥에 있는 상처와 죄의식을 드러내니만큼 중요하다 하겠다. 그 컷을 여지 없이 스릴러로 표현했다면, '혼자'라는 느낌이 많이 퇴색되었을 거라 예측해본다. 


영화가 끝날 때 쯤이면 골목길이 낀 사거리 언저리에서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고개만 숙일 뿐인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는데, 나 또한 언젠가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었던. 그 누구한테도 손을 내밀지 못했었던.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만 있었던 것 같은. 


외로움은 인지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다. 그 외로움을 몸소 겪을 때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다. 인지하지 못하는 건, 인지할 수 없는 건, 외로움을 발산시키는 그 무엇들이 무의식에 오랫동안 쌓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들은 오랫동안 쌓이는 만큼 한 번에 없애버릴 수도 없다. 그것들은 '외로움'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지도 않는다. 다양한 이름과 모습으로 찾아와 외로움의 무리를 이루어 우리를 조금씩 괴롭히는 것이다. '혼자'는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우리의 본모습이지만, 우리가 가장 멀리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한테서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는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책으로 책하다] 스크린셀러는 영원하라!


영화를 뜻하는 '스크린(screen)'과 '베스트셀러(bestseller)'를 합친 신조어 '스크린셀러(screenseller)'. 이 말이 통용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리고 2014년 말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도 그 파워는 여전하다. 이번 시간에는 2014년 11월 현재 파워 스크린셀러를 알아본다. 

스크린이 책을 끌어올리든, 책이 스크린을 받쳐주든 서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콘텐츠들이다. 이들 콘텐츠들을 한 번쯤은 접했을 거라 생각된다. 



1. <미생-아직 살아 있지 못한다>




유일하게 책과 드라마 모두 보았고 보고 있는 콘텐츠이다. 

그야말로 너무 재밌어서 까무러칠 정도이다 ㅋㅋ

정말 오랜만에 (웹툰 연재 당시에도 그랬고) 본방을 손꼽아 기다리며 보고 있는 드라마. 



2. <나를 찾아줘>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할리우드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의 최신작이다. 

개봉한지 2주가 지났건만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ㅠㅠ

내년 아카데미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고, 현재 전 세계 흥행력도 그에 못지 않다. 

북미 흥행에서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고 한다. (월드와이드도 조만간)



3.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스웨덴 국민의 1/9 가량(100만명 이상)이 봤고 세계적으로 600만명 이상이 봤다는 베스트셀러. 

우리나라에 건너와서도 그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1위를 밥먹듯이 했다. 

족히 몇 십만부는 팔렸을 듯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소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는 

후문이다. 즉, 훨씬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잠재력을 영화가 가로 막았다는 뜻. 

그럼에도 이리 많이 팔렸다니, 뭘 더 아쉬워하랴?



4. <메이즈 러너>





개봉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그 힘을 발휘 중이다. 거즌 300만명. 

북미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에서 한국이 제일 높은 흥행력을 선보였다고 한다. 

소설은 이에 힘입어 수직 상승했고, 총 3부작이기에 시리즈 전체가 동반 상승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만 조금 흥미가 갈 뿐, 소설은 읽기 싫다. 

여타 비슷한 종류의 영화들이 반짝 흥행을 하는 반면, 

이 영화는 이토록 오래 힘을 발휘 중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나간 책 다시 읽기] <밤으로의 긴 여로>


칼로타에게. 열두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당신,

눈물과 피로 쓴 오랜 슬픔의 드라마 원고를 당신에게 드리오. 행복을 축하해야 하는 날에 이 무슨 서글프고 어정쩡한 선물인가 싶을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이해해 주오. 당신의 사랑과 따뜻함을 기리는 선물이라오. 그로써 나는 사랑을 믿을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내 죽은 가족을 맞대면하여 이 극을 쓸 수 있었소. 이것은 유령에 쫓기는 네 명의 타이런 가족에 대한 깊은 슬픔과 이해와 용서로 쓰인 글이라오. 


사랑하는 이여, 지난 열두 해는 빛과 사랑으로 가는 여로였소.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또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 거요!


<밤으로의 긴 여로> 표지 ⓒ 열린책들

위의 글은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서문이다. 그가 행복한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눈물과 피로 쓴 오랜 슬픔의 드라마 원고를 선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 덕분에 그는 마음이 치유되었고, 그의 가족을 맞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그 결과물을 선보이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서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아가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 '유진 오닐'의 삶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진 오닐의 암울한 삶


유진 오닐은 연극 배우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굉장히 유명했지만 한 가지 배역에만 몰두하다보니 발전이 없었고 점점 잊혀졌다. 어머니는 그를 낳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마약 중독자가 되었다. 첫째 형은 명석한 두뇌를 가졌음에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치여 여자와 술을 탐닉하며 살아갔다. 둘째 형은 어릴 때 홍역으로 죽고 만다.


그 자신의 삶 또한 녹록치 않았다. 어찌보면 제일 암울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한 호텔방에서 태어났고 이후 아버지가 속해 있는 유랑극단을 따라 다니면서, 극단과 호텔을 전전했다. 명문 대학에 진학했지만 견디지 못한 오닐은 선원 생활을 하기도 했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부랑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자살 기도를 시도했다고도 한다. 뉴욕에 돌아왔을 땐 폐병에 걸려 있었다.


이후 스트린드베리, 입센 등의 영향을 받아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대박이 났으며, 1922년에는 퓰리처상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1924년, 1928년에 잇따라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급기야 1936년에는 미국인으로써는 1930년 싱클레어 루이스 이후 두 번째로, 극작가로써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명실공히 최고의 작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불운은 계속된다. 잘 나가던 그에게 평론가들의 집중 포화가 시작되었고, 점점 잊혀져갔다. 그는 결혼을 세 번했는데, 그의 아내와 자식들 중 몇몇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불행을 겪기도 하였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혹평으로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던 1941년에 쓰였지만, 출간하지는 않았다. 그는 유언으로 이 작품을 사후 25년 간 출간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캘로타는 사후 3년 후인 1956년 출간하였다. 이 작품으로 그는 네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타이런 가족의 1세대


삶은 드라마이고 세상은 무대라고 한다. 작품에 나오는 이들 타이런 가족의 삶을 보자하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작가의 개인적인 가족사와 거의 흡사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위에서 언급했던 유진 오닐의 다섯 식구와 타이런 가족의 다섯 식구는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아버지 타이런은 과거 굉장히 유명했던 셰익스피어 전문 연극 배우였다. 가난으로 일찍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배우가 되었고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많은 돈을 만지게 된 그. 그만 그 삶의 안주해버렸고, 그 많은 돈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없다. 그는 돈 밖에 생각하지 않는 구두쇠가 되어버렸다. 아픈 아내를 치료하는 데에도 돈을 아껴 돌팔이 의사를 소개시키는...


타이런: 인생이 나를 멋대로 가지고 논거야... 당시로선 대단한 수익이었지... 난 그 많은 돈으로 무엇을 사려고 했던 건지...뭐, 상관없지. 후회해도 늦었어.(본문 속에서)


어머니 메리는 과거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수녀 수제자였다. 그녀에겐 무궁무진한 미래가 있었던 것이다. 뭐라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던 그 시절, 타이런에게 반하고 말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덜컥 결혼을 하게 된 그들. 절망이 시작되었다. 첫째 제이미를 낳았고 잘 키웠다. 그렇지만 그들이 신경을 써주지 못했기에 커서 말썽꾼이 되고 말았다. 둘째 유진을 낳았는데, 빨리 죽고 말았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진 그녀. 의사는 그녀를 치료함에 있어 마약성분이 짙은 약만 주었기에, 그녀는 그 약에 점차 취해갔다. 셋째 에드먼드가 태어났지만 너무나 심약했기에 많이 아팠고 커서도 계속 아팠다. 그녀는 마약에 손을 댔고 어느샌가 마약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며, 가족에게로 그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메리: 제이미는 어디 있지? 아, 물론 제이미는 술값이 남아 있는 한 절대로 집에 들어오지 않지... 지금의 제이미를 보면 그 아이가 한때 아기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요...  유진도 마찬가지였죠. 건강하고 잘 웃고. 내가 방심해서 그 아이를 죽게 놔두기까지 2년 동안 말이에요...제이미가 커서 집안의 말썽꾼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타이런: 그래, 그 게이른 녀석이 술주정뱅이가 된 게 내 탓이란 말이오? 

에드먼드: 엄마가 마약쟁이란 사실이 가끔 견디기 힘들어요!


타이런 가족의 2세대


첫째 제이미는 어린 시절 아무 이상 없이 잘 컸다. 건강하고 잘 웃었다. 명민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타이런과 메리가 둘째와 셋째에 온 신경이 쏠려 있는 동안, 점차 삐뚤어져 갔다. 결국은 여자와 술에 탐닉하는 난봉꾼이 되어버렸다. 그 역시 어머니 메리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며, 가족에게로 그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제이미: (에드먼드) 너 지금 나를 비난하는 거냐? 날 가르치려 들지 마라! 난 네가 상상도 못할 만큼 인생을 많이 배운 놈이야! 고상한 문학 작품을 더 많이 읽었다고 해서 나보다 잘났다는 생각은 버려! 넌 덩치만 큰 꼬마일 뿐이야!


둘째 유진은 태어나지 얼마 안되어 죽고 말았다. 어머니 메리는 그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고 그 와중에 마약에 손을 대게 되었다.


셋째 에드먼드는 어릴때부터 심약했고 커서도 아팠다. 폐결핵에 걸려 가족 모두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그로 인해 어머니 메리는 마약쟁이가 되었고 그때문에 제이미는 난봉꾼이 되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 작품은 1912년 타이런 가족의 어느 날 하루 동안의 일로, 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극의 시작은 여느 가족극과 다를 바 없다. 화목해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 하지만 뭔가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곳곳에서 풍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춰져 있던 모습들이 드러난다. 밤이 찾아오고... 이들 가족은 '막장'으로 치닫는다.


이 '막장 드라마'의 끝은 '삶은 드라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타이런은 여전히 구두쇠로 아들이 아픈데도 돈을 쓰기를 망설인다. 메리는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이제는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이다. 제이미와 에드먼드는 서로를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함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의 드라마들이 불륜, 근친상간, 겹사돈 등의 비현실적인 모티브로 '막장'의 타이틀을 획득했다면,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가족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술과 마약, 여자, 돈 얘기가 난무하는 이 가족 드라마야말로 '막장'이 아닐까.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먹먹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감동과 공감이 들게 하는 명품 막장 드라마.


세상은 여러 비현실적 요소들로 우리를 속이고 있다. 현실은 너무 아프고 진실은 때로 감춰져 있는 게 낳을 것이기에. <밤으로의 긴 여로>는 그런 통념을 과감히 버리고 현실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작가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해 말 그대로 현실 그 자체를 보여주기에 이른다. 이 가족극이 미국 연극계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을 듣는 이유일 것이다.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 둘러볼 필요도 없다. 바로 옆에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가족이 있을 것이다. 이 가족에게 시 한소절을 들려주고 싶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블랙 호크 다운>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소니/콜롬비아


실제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극적인 사건들은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콘텐츠화 되곤 한다. 다분히 극적이진 않더라도, 내러티브가 있고 어느 정도의 감동이 있으면 충분하다. 거기에 창작자가 극적 장면과 호기심 일게 하는 스토리 얼개와 개성 강한 캐릭터를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를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은 2000년 <글래디에이터>로 세계적 명장의 반열에 올라선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01년에 <한니발>에 이어 호기롭게 만든 영화로, 실제 했던 사건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사실 '리들리 스콧'하면 일찍이 1970~80년대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으로 SF의 전설로 자기매김한 인물이다. 여기에 제작자는 그 유명한 '제리 브룩하이머'. 일찍이 만난 적이 없던 이들 간의 시너지가 어떻게 터져 나올지 기대가 되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제1차 모가디슈 전투'. 1992년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무법천지였다.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대통령을 축출한 뒤 소말리아는 정치적 혼란에 빠졌고 거기에 최악의 가뭄까지 겹쳐 30만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에 미군을 위시한 유엔 평화유지군은 소말리아에 전투부대를 파병하고 아이디드 체포를 최우선적인 목표로 잡는다. '베트남 전쟁'으로 역사적인 망신을 당한 미국이 '걸프전'으로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금 세계 곳곳에 손을 뻗고 있는 시기였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그러던 1993년 어느 날 미군은 아이디드 최측근의 위치를 파악하고 체포를 위해 레인저 부대, 델타포스 부대, 블랙 호크 헬기가 포함된 특수전 항공연대를 출동 시킨다. 비록 더 이상의 지원 없이 적지 한 가운데로 투입되는 위험천만한 작전이었지만, 작전 예상 시간은 불과 30분에 불과한 비교적 간단한 작전이었다. 델타 부대는 최고의 전력 답게 아주 간단히 아이디드 최측근들을 체포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 최강 '블랙 호크'가 연달아 추락하면서 발생한다. 이에 사령관은 생존자 구출을 위해 추락 지점으로 대다수 부대들을 급파한다. 하지만 추락 지점으로 가는 도중, 추락 지점에서 많은 수의 대원들이 다치고 죽고 고립되고 만다. 과연 이들은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제목이자 '블랙 호크'가 추락할 때 파일럿이 외치는 보고인 '블랙 호크 다운'은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고의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을 자랑하고 세계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미국의 입지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제1차 모가디슈 전투'에서 유엔 다국적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립된 대원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미국의 무모함과 무력감을 아주 약하게 깔면서, 그 대신 '전우애'와 '휴머니즘'을 듬뿍 투입 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작전 예상 시간이 불과 30분에 불과한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무모한' 작전에 대해서는 단지 이 작전을 지상에서 이끌 소령과 몇몇 부하들의 불평·불만으로 어물쩍 넘어가고 있다. 반면 전우들 간의 진한 '전우애'와 '휴머니즘'은 블랙 호크 헬기가 추락한 뒤 사령관이 절대적으로 시행할 것을 명령한 '모든 대원들의 귀환'과 그 명령을 행할 때 보이는 대원들 간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통해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영화 자체로는 더 없이 훌륭한 명작이라 칭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을 볼 때 위와 같은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주지했듯 영화 자체로는 소위 '명작'이라 칭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전쟁 영화 중에서 현대전을 다룬 최고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거의 이 영화의 '극사실주의' 연출에 있다. 기존 전쟁 영화가 가지는 리얼리티의 특징인, '피 튀기는 현실감' 대신 장면 자체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실제 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배우들은 실전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고, 1993년 모가디슈 전투에 실제 투입된 기체들을 가져와 사용했으며, 이후 다양한 전쟁 영화에서 차용한 탁월한 촬영 기법으로 전투의 세세한 장면들을 굉장히 미시적으로 접근해 현실감을 극대화 시켰다. 이 밖에도 영화 곳곳에서 리들리 스콧이 리얼리티 구축을 위해 쏟은 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극도의 리얼리티에만 있지만 않다. 만약 그랬다면 아주 훌륭한 다큐멘터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대중을 겨냥한 상업 영화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들리 스콧은 극도의 리얼리티 말고 또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그것은 위에서 말한 '전우애'와 '휴머니즘'에서 기인한다. 비록 영화 외적으로 볼 때 많은 논란을 낳을 여지가 있지만, 영화 내적으로 볼 때 이는 굉장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그리 개성적이지는 않지만 캐릭터들이 틈틈이 보여주는 행동과 속내는 이 영화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특히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전우를 구하려다 오히려 총에 맞아 결국 죽고 마는 장면은, 비록 굉장히 진부하지만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대원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 하는 레인저 부대 분대장과 이 모습을 보며 너의 잘못이 아니며 전쟁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하는 델타 부대 장교의 대조 되는 모습도 은은한 감동을 자아낸다. 전투가 끝난 뒤 곧바로 다시 전투에 투입되는 델타 부대 장교가, 이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레인저 부대 분대장에게 하는 말은 결정타이다. 


"대원들이 남아 있어. 고향 사람들이 묻더군. '그 짓을 왜 해, 후트?' '전쟁이 그리 좋아?' 

난 대꾸 안 해. 왜냐하면 이해를 못 하거든. 우리가 싸우는 건 바로 전우애 때문이란 걸 말이야. 

바로 그거야. 그게 전쟁이지."


보는 이의 성향에 따라서 이 영화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단, 이 영화를 '명작'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또는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은 한 가지를 명심하고 있거나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볼 때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른 누구의 입장도 아닌 다분히 미국의 입장에서 서술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런 다음, 영화가 보여주는 극도의 리얼리티 속에 푹 빠지면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일전에 <1960년을 묻다>(천년의 상상)라는 책을 보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1960년대의 '전설' 혹은 '망령'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 시대에, 1960년대의 산물을 완전히 리메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당시를 철저히 해부한 책이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계의 가능성이 거의 소진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그렇게 처절한 문제의식을 갖고 해체된 구시대의 산물은 새시대를 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었다. 

위 책의 저자 천정환 교수와 권보드래 교수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자신들의 전공분야에 심기 위해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푸른역사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2011년 11월 말부터 1년이 넘게 행해진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강좌이다. 천정환 교수는 프로젝트 기획자 중의 한 명으로, 권보드래 교수는 강좌의 강사 중 한명으로 참여했다.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강좌는 "'문학사'를 욕망하지 않는 시대에 '문학사'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곤혹스러움의 정체는 가감 없이 토로되고 신랄하게 분석될 필요가 있다."라는 강좌 시즌 1의 발문을 시작으로, 시즌 5까지 25강이 계속되었다.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 푸른역사

그리고 그 중 9강을 추리고 묶어서 책으로 내었다. 강좌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푸른역사)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여기서 '문학사'는 한국 현대문학을 가르키며, '문학사 이후'는 이미 종언된 근대 문학의 망령에 사로잡혀 현대 문학사가 쓰여지지 않은 시대를 가르킨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강좌를 통해 그 이후의 문학사에 대해 논한다. 

제대로된 문학사를 기술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비판, 정해진 것 없는 현재의 문학사를 재구성한다는 희열, 무너진 폐허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막연함과 두려움들이 뒤섞여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미 기존 문화의 해체와 재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독자적으로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행해왔던 학자가 포진해 있기에 기대를 해본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당 3명의 강사가 진행했던 3개의 강의가 자리하고 있다. 1부에서는 권보드래 교수와 천정환 교수 콤비가 1번과 2번 타자로 나와, 문학사에 대헌 문제의식을 꺼리낌없이 내보이며 기존의 통념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책의 부제인 '한국 현대문학사의 해체와 재구성'에 맞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문학사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할지에 앞서, '왜' 해체해야 하고 재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리이다. 

이후 세 번째로 나온 소영현 교수는 하루키나 톨스토이는 한국문학인가 또는 팬픽이나 판타지는 문학사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와 같은 도발적이고 획기적인 질문을 던지며 앞선 강사들의 기존 통념 흔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이로써 독자는 1부를 통해 '문학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다. 

2부와 3부는 1부에서 던진 문제의식 하에 어떻게 문학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할 지를 다룬다. 단, 2부가 새로운 틀을 갖고 어느 특정 시대를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라면, 3부는 주로 영화, 가요, 드라마 등의 대중 문화와 소설과의 관계를 다룬다. 재해석의 범위와 소설과 다른 주체 간의 콜라보레이션의 범위가 차원을 달리한다. 

염상섭의 프레임으로 식민지시대의 소설을 들여다보고, 1960년대만의 특별한 이야기(4.19와 5.16등)를 당시 문학과 대치대조시키며, 공동체 밖에 있는 일종의 소외된 이야기를 끌어오는 등의 문학사를 새로운 시각과 틀로 보고 다루려는 시도를 한다.

또한 통념적으로 기존의 문학사 범주에 들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것들을 비교하며 다루기도 한다. 문학사와 영화사를 수평으로 놓고 이야기 해본다던가, 나아가 대중가요나 드라마, 연극까지 문학사 범주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바로 지금 대중소설의 정점에 있는 '팩션(픽션+팩트)' 역사소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문학사의 새로운, 색다른, 획이적인, 도발적인, 상념을 깨는 시도들이다.

문화 주체에 대한 재해석은 모든 문화 방면에서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기존의 문화 재해석 작업은 주로 기존 주류와의 단절 내지 계승을 밑바탕에 깔고 진행해 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겠다. 서양 클래식계에는 사조가 존재한다.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자연주의... 이런 식으로 누구는 어디에 속하고 누구는 어디에 속하고, 각각 시기와 특징이 명확하다. 연대별, 사조별, 특징별, 계파별 등으로 단절되어 확고히 나뉘어져 있었던 문화사. 서양 문학사는 물론이고 한국 문학사도 이와 같은 사조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 사조를 구분하는 방법을 고스란히 계승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가 낳은 체계는 망령이 되었다. 최소한 거의 사멸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망령이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하직하고 세상에 없는 박정희와 노무현이 여전히 사람들 입에 제일 많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을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된 지 오래 되었는 데도 말이다. 

일례로 2000년대 후반에 나온 <한국현대문학사>라는 제목의 책을 보면, 몇 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수정 또는 증보되어 재판되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윤식의 <한국현대문학사>는 최초 1989년에 나와 최근 2008년까지 계속해서 재판되었다. 자그만치 20년이란 세월동안 새로운 현대문학 통사를 서술하지 않은 것이다. '제대로'된 기술은 둘째치고,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열렬히 외우고 재해석하고 사랑하는 게 결코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힘이 이제는 다 해가고 있다는 것, 최소한 조만간이든 언젠가이든 그 힘이 다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래도 지금까지는 '전설'로 남아 있다. 죽은 사람임에도 차마 '망령'이라고 칭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전설적 행보와 그가 남긴 전설이 여전히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들려오지 않는가? 애플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의 전설도 언젠가는 망령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해체되고 재해석·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전설이 사멸하기 전에 위의 작업을 거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문학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양한 시선, 획기적인 접근법, 도발적인 질문, 변방의 소리 등이 모두 모여 틈을 메운다면 전설은 망령이 아닌 전설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거기에 어떠한 절대적인 기호가 투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같은 발언 또한 '절대'라는 단어의 그늘 아래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마이뉴스" 2013.7.25일자 기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봐도 봐도 재밌고 또 봐도 감동적인 콘텐츠들이 있다. 드라마, 영화, 책, 만화, 음악 등. 퇴색되지 않는 재미와 감동은 물론이고,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볼 때마다 환경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필자가 살아가면서 보고 또보고 계속봤던,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콘텐츠들을 나름 엄선해 간단히 리뷰해본다. 이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다.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 드라마① [하얀거탑]

소설 <하얀거탑>. 총 4권으로 완결되었다. ⓒ청조사

<하얀거탑>은 본래 일본 장편 소설이다. 정확히 50년 전인 1963년에 연재가 시작되어 2년동안 계속되었다. 이후로 1966년에 일본에서 영화화되었고 1967년, 1978년, 1990년, 2003년에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다. 그 엄청난 인기와 더불어 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엿보인다. 한국에서는 일찍이 1978년 청조사라는 출판사에서 소설이 출간되었고, 2005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잠시 청조사라는 출판사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출판사는 <우동 한 그릇>이라는 짧디 짧은 일본 소설을 출간해 소위 '대박'을 친 바 있다. <하얀거탑>은 2007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MBC에서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선보였다. 당시 군대를 갓 제대한 터라 정신없는 와중에서 제대로 시청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에서 떠들썩했음에도, 안타깝게 본방사수는 하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접하게 되었다. <하얀거탑>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 천재 외과의사의 끝없는 질주와 비극적 종말이다. 당연하게도(?) 이 외과의는 권력에의 야망이 엄청나다. 대신 외롭다. 일종의 정략결혼을 한 탓으로 아내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비롯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다.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여자는 따로 있다. 그의 권력에의 야망은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했던 기억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를 끔찍이도 위한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다. 걱정하실까봐. 그의 제일 친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과의사인데, 주인공과는 달리 의사 집안 출신의 전형적인 인자한 의사 타입이다. 권력에의 의지보다 환자에의 의지가 강하다. 천재는 아닐지언정,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실력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그는 친구이자 천재인 주인공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저돌적이지 못하고 언제나 수치에 입각해 정확한 진찰과 검사에 의지하는 자신을 한탄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 <하얀거탑> ⓒMBC

드라마는 2천년대에 들어선 한국 드라마가 전형적인 캐릭터와 개연성이 무시된 이야기, 천편일률적인 남녀 주인공의 '짝짓기 놀음'으로 점철되었기에,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되었다고 하면서 이를 타파하기 위한 드라마를 만드려했다는 기획의도를 명백히 밝혔다.그리고 이 의도에 완전히 부합하는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청률(AGB)은 10%대로 출발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20%를 넘기며 종영한다. 주인공 장준혁 역의 김명민은 2007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 부문 최우수상을 탄다. 당시 MBC 연기대상을 시청하며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대상은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이 탔었다. 김명민은 다음해인 2008년 베토벤 바이러스로 대상에 재도전했고 대상을 탔다. 하지만 이마저도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과 공동대상이어서 옥의 티였다.  이 드라마는 얼핏보면 선과 악의 대립, 권선징악의 교훈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주지했다시피 주인공의 권력에의 야망에는 남모를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온갖 권모술수와 부정행위로 야망을 이루고야 마는 주인공은 결국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 시종일관 주인공의 최대의 적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10년간 스승이, 주인공에게 패한 뒤 물러나 칩거하고 있을 때 읊는 구절이 주인공의 비극적 종말을 상징한다 하겠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하얀거탑>은 기본적으로 의학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 법정, 심리 드라마에 가깝다. 혹여 아직 접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이 점을 유념하시면 좋을 것이다. 

필자는 이 드라마 DVD를 선물로 받아서 소중히 간직하면서 1~2년마다 한 번씩 다시 보곤 한다. 스피디하고 긴장감 있는 전개와 물오른 연기들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름 드라마 시청 경력(?)이 20여년 되었지만, 최고의 드라마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하얀거탑>을 꼽을 것이다. 자신있게 추천드리는 바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