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새벽 출정>


<새벽 출정> ⓒ아시아

대한민국 역사 중에서 몇몇 굵직한 시위나 농성은 전환점을 마련해 흐름이나 방향을 바꾸곤 했다. 1960년 4.19 혁명,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등. 그 시위나 농성에 가담한 사람들의 숫자도 숫자지만, 그 의미나 성과가 남다르다. 


1987년 6월 항쟁에 이어 7, 8, 9월에 있었던 노동자대투쟁 역시 그 규모면에서나 의미, 성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이 투쟁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투쟁으로 민주화 열기로 고양된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 및 노조 결정 움직임이 분출된 결과였다. 그 움직임의 격렬함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도였다고 한다. 


비록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중산층의 외면으로 사그라들고 말았지만, 이후 노동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방현석의 소설 <새벽 출정>은 이런 배경 위에서 지어졌고 또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1988년 7월 17일 제헌절에 죽고 만 인천 세창물산 故 송철순씨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그녀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노동운동 현장을 떠나는 조합원의 모습을 그리며 시작된다. 그 조합원은 학생 조합원의 실질적 리더였는데, 사장의 비열한 반격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된 것이었다. 세광물산 사장 김세호는 학생 조합원의 학교와 학부모에게 공문을 올려, 학생을 제적조치 취할 수 있다는 협박과 함께 그들이 하는 농성과 시위 등의 노동운동이 '비합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주지 시키려 했다. 


노동운동 현장의 문제는 이 뿐만 아니었다. 성과 없는 농성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다들 지치기 시작했다. 그건 각오한 일이라고 치지만, 당장 먹을거리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따뜻한 국 한 그릇은커녕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도 힘들었다. 


"날이 갈수록 인원이 줄어들어 취사량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줄어드는 인원보다 농성자금은 빠르게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부식비를 최소로 줄일 수밖에 없었고 식사는 점점 부실해졌다. 추위에 까칠해진 조합원들의 입끝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본문 중에서)


소설의 초중반은 이처럼 당시 노동운동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투쟁은 굉장히 이상적일 것이다. 외부로 보여지는 투쟁은 올바르고 이상적이고 멋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실상은 보여지는 것 외의 것에서 진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즉, 외부로 보여주는 투쟁을 실현 시키기 위한 투쟁. <새벽 출정>은 그것을 온전히 보여주며 노동운동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소설은 이어서 그들이 어떻게 농성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위원장 미정, 회계감사 민영, 그리고 철순. 이들은 세광물산 공순이들이다. 이들은 회사측의 비열한 계략으로 어쩔 수 없는 과도한 경쟁으로 피폐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끝없는 경쟁이 계속 되더라도 나아지는 건 없다는 것을 직시한다. 그 이익은 회사에게 돌아갈 뿐 정작 자신들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이들은 처음에 자신들을 물로 보는 관리자들에게 만만히 보이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단체 결근을 시행한다. 하지만 돌아온 건 사직서와 각서였다. 몇 년을 몸 바쳐 충성을 다해도 세광물산은 결코 그들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사장의 것이었을 뿐. 


"강민영, 너는 일당 4,080원짜리 고용인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야. 그리고 이제 사장은 네가 필요없어졌어. 매일 구매하던 4,080원짜리 물건을 이제는 다른 곳에서 구입하겠다는 거야. 내가 앉혀졌던 자리에 다른 누군가 앉혀져서 도료를 만지게 될 거야." (본문 중에서)


노동자의 진짜 뜻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이윤을 창출하게 해주는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이 지천에 널려 있어, 이게 아니면 저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무섭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 말은 25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노동자의 서러움 투쟁으로 끝장내자"라는 플래카드를 굴뚝에 걸려다가 떨어져 죽은 철순. 철순의 죽음으로 조합원들은 한때 뭉치게 된다. 그러며 세광물산 사장 김세호의 정중한 사과문으로 상황이 역전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사장은 폐업을 선언한다. 그는 생산량의 증가도 임금의 인하도 아닌 노조의 해산과 조합원들의 퇴직을 원했다. 


"우리가 아직 눈뜨지 않은 노동자였을 때 우리의 시간들은 오로지 사장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살기를 갈망하며 싸워온 지난 날들은 비록 어렵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동안 우리는 해방의 세상에 살았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돈은 인간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을 뿐, 돈에 대한 탐욕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본문 중에서)


2014년 현재 최저 임금이 5,210원이다. 여전히 한 끼 식사를 겨우 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루 8시간이면 41,680원이다. 하루 세 끼와 차비를 해결하면 2/3이 남을 뿐이다. 여기에 주거 관련 비와 통신비 등을 제하면 마이너스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소설 속 철순의 말대로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미정의 말대로 라면 만성두통, 신경통, 소화불량, 위장병이 남을 뿐이다. 


인간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돈을 최저생계비라 치면, 2014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603,403원이고, 2인 가구는 1,027,417원이다. 한 달 평균 일수를 23일로 치면 958,640원이다. 2인 이상은 책임질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 


소설은 마지막에 돈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돈보다 더욱 소중한 것, '동지에 대한 변할 수 없는 애정'과 '참 인간다운 삶'이 그것이다. 이는 인간이 돈보다 중요한 것이며, 인간애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들이 캄캄한 새벽 하늘에 출정을 거행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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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다른

나에게 있어 미국은 몇 가지 유명한 사건들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아직 머리가 크지 않았을 때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작으로 히틀러에 의해 유린된 유럽을 복원시켰고 원자폭탄으로 일본을 파멸시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행한 나라. 또한 타국임에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출전하여 공산주의를 저지시키려 한 나라. 그리고 걸프전을 통해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그의 악랄한 나라인 이라크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나라. 미국은 고마운 나라이자, 믿음직한 나라이자,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나라였다. 


2001년 9월 11일, 세계 평화 수호자인 미국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대형 사건이 발발한다. 미국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슬람 테러단체가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무너지고 수천 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반 탈레반 정권을 수립한다. 2년 뒤에는 이라크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초강대국 미국의 추락이 시작됨과 동시에, 미국의 침략과 폭력이 부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진짜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 미국의 진짜 모습일까. 자유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평화를 바라는 미국이 진짜일까. 간섭과 침략과 폭력의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진짜일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과 시도로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었고 내놓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내놓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하워드 진'이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쟁에 참가한 전력이 있으며, 흑인여자 대학에서 교수 직책을 잡은 적이 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는 한평생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했고 전쟁을 반대했으며 평등을 외쳤다. 그는 <미국 민중사>라는 명저를 남겼는데,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다른)는 <미국 민중사>와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이다. 


만화의 콘셉트는 하워드 진이 강의를 통해 들려주는 미국사이다. 1890년 '운디니드 학살'을 시작으로 2001년 9.11 테러까지를 다루며, 미국이 어떻게 세계 초강대국으로 되어 가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일들을 저지르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하워드 진이 직접 겪었던 사건, CIA 기밀 문서에나 나올만한 내밀한 사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제 머리가 클만큼 커서 미국에 대한 환상을 져버린지 오래이고 그래도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만화를 보니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진짜 미국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더 내밀한 진짜 미국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 군대는 도덕적 목적이 아닌, 정치·경제·군사적인 목적에 이용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신이, 자신들에게 미개하고 미성숙한 나라에 민주주의라는 축복을 전하라는 운명을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말입니다."(본문 중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진실-침략 전쟁


저자는 미국사의 익히 알려진 사실을 나열하고 있다. 그중에는 알려져 있지만 숨겨진 진실들이 부지기수이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많다. 몇몇 주요 사건들을 간략히 다뤄보며 미국사을 빠르게 해부해 보겠다. 


지금은 전설적인 존재들이지만,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악덕 자본가들'이 있다. J.P. 모건, 존 D. 록펠러, 제이 굴드, 조지 폴먼 등이다. 그들은 미국 초기 때 광산과 철도 등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들의 악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제이 굴드가 했던 말인 "나는 노동계급의 절반을 고용해서, 나머지 절반을 죽일 수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조지 폴먼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계속해서 삭감하면서, 사택 임대료는 그대로 두었다. 그로인해 그는 고용주로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이어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평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간섭과 전쟁이, 사실은 미국 내의 파업과 저항운동의 반항적 에너지를 외부의 적에게 돌리려 한다는 수작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대표적 시작은 미국-에스파냐 전쟁으로, 이미 19세기 말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만 아니었을 뿐, 19세기 중반부터 온갖 간섭을 명목으로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했다. 


전쟁은 계속 이어진다. 하외이, 필리핀, 멕시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전쟁은 아닐지언정 미국이 뒤에서 조종한 전쟁이 일어난 곳도 쿠바, 니카라과, 이란 등 지면이 없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진실-조용한 전쟁


미국의 전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외부 침략의 전쟁과 맞물려 내부에서 조용하지만 격렬하고 끔찍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책의 시작에 나오는 '운디드니 학살'은 내부에서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엄연한 '침략'이었다. 수천 년동안 살고 있던 터전에 갑자기 타인이 쳐들어온 것이 아닌가?


이어서 악덕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계속된다.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건 파업밖에 없었고, 자본가들을 위시한 국가가 할 줄 아는 건 억압과 폭력뿐이었다. 그것으로 안 되니까 주지했다시피 외부로 눈을 돌린 것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부 전쟁이 있다. 바로 인종 전쟁. 백인과 흑인 간의 오래된 전쟁이다. 이는 내부에서도, 전쟁 중에서도 계속된다.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인종 차별의 정신이기 때문에, 참 오래가기도 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는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이 모든 반항적 에너지를 전쟁에 돌렸듯이, 이들 모두가 모여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을 벌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이자 작중 화자인 하워드 진이 강의하는 장면에선 그의 등 뒤로 여지없이 '이라크 전쟁 반대' 보이는 게 인상적이다. 이처럼 미국사는 '(모든 류의) 전쟁'과 '전쟁 반대'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의 한 장면 ⓒ다른


이 만화책은 그동안 접해왔던 교양학습만화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저명한 학자의 저서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만화로 옮긴 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만화로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옮겨졌을 뿐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학자의 연구 결과 그 자체이다. 하지만 저자(하워드 진)의 것인지 아니면 각색자의 것인지 모를 높은 수준의 유머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화로써 가지는 최소한의 코믹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 만화책은 만화가 가지는 시각적 특징을 최대한도로 이용했다. 위의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글을 적절히 혼합하였다. 시각적인 요소로써 만화와 사진은 동일한 장점을 지니지만, 실사는 객관성과 신뢰 그리고 때론 잔혹성을 높여주는 측면까지 지니고 있다. 여기에 일반적인 만화책보다 월등히 많은 글은 오히려 학습만화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만큼 마지막은 저자의 글로 끝마치도록 하겠다.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어려울 때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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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축구]


ⓒ연합뉴스

초등학생, 중학생 때까지 참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즐겼다. 매일같이 축구를 하며, 어떻게하면 더 잘할 수 있을 연구하곤 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가족이 둘러앉아 응원했다. 축구를 못하게 되면 울었을 정도이니, 짐작이 가시리라. 그렇게 어린 시절을 축구와 함께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도 축구는 계속 했다. 다만 예전같이 재미있지가 않았다. 어릴 때의 '재미'를 위한 축구가 점차 퇴색되어 갔기 때문이리라. 머리가 커지다보니, 축구를 함에 있어 어떤 위계 질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축구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과의 명백한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 내지 박탈감이었다. 즉,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축구를 마지막으로 하게 된 군대에서까지 계속된다. 


이후 나의 축구를 향한 관심은 다르게 표출된다. play(경기)에서 watch(TV)가 되고 다시 play(게임)가 되고 지금은 그냥 watch(방관)이 되었다. 직접 경기에 출전해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축구를 하다가,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직접하는 건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는 것마져 지쳐서, 축구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 저것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몸은 굳어져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어디 가서 축구 좀 아는 사람 정도의 지식만을 가진 채 방관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단적인 예로,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을 할 때마다 전 세계 누적 시청수가 몇 백억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그뿐이랴? 유럽선수권대회와 유럽 4대 리그 경기들도 이와 버금가는 인기를 구사한다. 당연히 그곳에서 오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축구는 더이상 '사람들에 의해서' 굴러가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축구'가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지경에 이르렀는가? (나름 추측, 연구, 조사를 해보았다. 이 가운데 추측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자세하고 학문적인 해석을 원하신다면 따로 책을 구입해서 보는 게 좋은 듯.) 


축구의 종주국은 영국이다. 영국은 또한 산업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가? 그렇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와 축구가 시작된 시기는 엇비슷하다. 본래 옛날부터 공을 가지고 하는 놀이나 경기가 있어왔지만, 거기에 정형화된 규칙이 적용되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리게 된다.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에 하릴 없이 노닐다가 공을 발견한다. 그렇게 공놀이를 하게 된다. 이를 본 관리자는 자신이 나서서 규칙을 만들기도 하고, 심판을 보기도 한다. 분별없이 쉬는 시간을 허비하는 노동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여하튼, 걔 중에는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잘하진 못해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다. 그들은 동호회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클럽이 생기기 시작한다. 초창기에 이들은 노동자 생활과 축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영국 전역의 산업혁명 중심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지금의 맨체스터, 리버풀 등은 산업혁명 당시의 중심지였다. 


산업혁명의 열기는 전 세계를 덮기 시작하고, 자연스레 축구의 열기도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다. 점차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어가자, 돈이 몰리고 전업 축구 선수가 출현하고 스타가 탄생한다. 동호회 모임 대회는 도시 대항전이 되고 전국 대회가 되고 급기야는 전 세계 선수권 대회가 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22명의 몸좋은 선수들의 경기에 열광한다. 그 크기에 압도되고,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감동한다. 그리고 압도되고 감동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덩달아 신난다. 비로소 축구는 축제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축구의 본질은 사라진다. 


축구는 사람들 손에서 시작했지만, 곧 그 손을 떠나 세상을 횡행한다. 소설가가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사실 그 캐릭터는 이미 소설가의 손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지만 대중에게 내놓는 순간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축구는 그렇게 사람들 손에서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이제 축구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돈으로 지배하고, 축구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로 지배하고, 결국은 축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정신적 지배. 


사실 축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축구를 피해갈 수 없다. 관련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물질적 이득을 주겠고,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이득을 준다. 그리고 이들의 수는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들은 고립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90% 이상 추측에 의한 해석이니, 재미로만 봐주세요. 

올바른 해석을 알고 계신 분께서는, 가차없는 해체와 비판, 비난, 비평을 해주세요. 


언젠가는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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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상을 이루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만화 <남동공단>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 55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프로그램 이름은 <다큐멘터리 3일>(KBS 2TV). 대부분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숙한 곳에서의 3일을 보여주는데, 항상 낯선 것은 왜일까.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곳이 속은 너무나 평범하다는 것을,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쳐 버리곤 했던 곳이 사실은 어느 곳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곳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또는 관심이 없을지도.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혹은 너무 평범하거나.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군대 또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군인이라는 하나의 대명사 안에는 몇십만 명의 수많은 개체 명사가 존재한다. 그 속에 속한 모든 개체 명사들이 동일한 일을 하고 동일한 삶을 살아가기에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누구나 알고 싶어한다. 그들 개개인의 삶을 말이다. 군인은 그렇게 위로받곤 한다. 자신들 또한 개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노동자 또한 마찬가지다. 지극히 활동적이거나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완전히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속한 집단이 하는 일은 거의 같다. 지겹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에게 이름은 '없는 것'과 같다. 그냥 노동자라고 통칭할 뿐이다. 나를 포함한 그들은 알고 싶어한다. 자신이 누군지를, 익숙하지만 낯설기만 한 자신을 말이다.

그들은 매 순간 살아있다


ⓒ 새만화책

마영신 작가의 만화 <남동공단>(새만화책)은 작가 자신이 2002년도부터 3년 반 동안 인천 남동공업단지(남동공단) 내 병역특례 업체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공장 노동자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담고 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고 거들떠보지 않는 그곳의 삶은 어떨까. 평범할까 특별할까.

한마디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삶 또한 평범한 듯하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고들은 다른 직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와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적일 것이 아닌가. 당사자들의 눈으로 보자면 어디든 다 평범할 것이다. 

작가는 종민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자신의 분신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첫대면에서 이름과 얼굴을 일일이 대조시키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다. 노동자라는 이름 하에 이름을 잊어버린 그들의 존재를 되새기게 해주는 장치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독자가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잊지 않을 수 있게끔. 

종민은 낯선 그곳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3년. 첫날 만나게 된 고참의 위로어린 충고가 그 시간을 설명해준다. 우리의 일상 속 생각을 설명해주는 듯하다. 

"월요일은 그래도 시간 잘 가는 날이야. 아침에 예배 드리면 오전 금방 가고 점심 먹고 오후 슬슬 마치면 다음날 화요일, 여기 수요일 날은 맛있는 거 나오는 날인데 화요일은 다음날 뭐 나올까 생각하면서 보내고, 수요일은 맛있는 거 나오는 날이니까 기분 좋아서 시간 금방 가고, 목요일은 다음날 금요일이니까 그 생각에 시간 금방 가고, 금요일은 마지막 일하는 날이니까 기분 좋아서 금방 가버리지, 그렇게 하면 시간 금방 가."(본문 속에서)

그는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굳이 그의 일을 나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매번 다르다. 언뜻 무한 반복되는 동일한 일에 파묻혀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매 순간 살아 있다.

진득하니 사람 냄새나는 만화 그려주길


ⓒ 새만화책



작가 마영신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인간을 그린다는 것. 담백하게 그린다는 것. 평범한 일상을 과장이나 왜곡없이 그린다는 것. 이번 작품 <남동공단>에서도 이런 특징은 그대로 이어진다. 다른 누가 아닌 마치 나의 얘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그만큼 책장을 넘기는데 속도가 붙어 짧은 시간 안에 다 보게 되지만, 곧 다시 한번 읽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림체 또한 평범하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대한 감각은 형편없기에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요즘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을 정도다. 반면에 보기에 전혀 부담감이 없다.

만화가 어쩔 수 없이 지녀야 할 거의 필수적인 요소인 판타지성을 내용·외형에서 모두 벗어던져 버린 듯하다. 평범하다 못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온다. 작가의 스타일인지 작가가 노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은 깨뜨리는 데 일조했다.

이 작가가 앞으로도 진득하니 사람 냄새나는 만화를 그려주길 바란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 화려함 속에 파묻혀 평범함이 그리울 때, 다른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 언제든 펴볼 테니.



"오마이뉴스" 2013.4.18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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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