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그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인간, 그런데 제목이 인공지능 <그녀>인 이유는 뭘까? ⓒ워너브라더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시대의 화두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 100여 년을 주기로 일어난 산업혁명이 4차 때는 50년 만에 찾아왔다. '알파고'는 그 상징 중에 하나가 되었는데, 단순히 인간의 능력을 앞서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을 대체해왔다. 참으로 많은 분야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신해 왔는데, '대리사회' '대체시대'라고 명명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은 각각의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감정도 대신해주는 것이다.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대체불가 로맨스 영화 <그녀>는 여자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한 인간 남자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도 인간이지만 인공지능이 '감정'을 지녀야 한다. 나아가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찌 가능할까. 그런데 영화는 나름의 방식으로 기가 막히게 그려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개념 사랑 방식


인공지능 그녀를 사랑하는 인간 테오도르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인다. 근미래 누구에게나 도래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워너브라더스



남들 편지를 대신 써주는 회사에서 일하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 그의 편지들은 하나 같이 의뢰인과 대상과 상황에 완벽히 부합하는 아름다운 글이다. 현실은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 분)과 이혼을 준비하며 별거 중. 그렇지만 벌써 일 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캐서린과의 좋은 한 때가 쉼 없이 그를 괴롭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봐도 별 다른 진전이 없다. 마냥 우울하게 방황할 뿐이다. 


테오도르는 호기심으로 최신 인공지능 OS를 구입한다. 이왕이면 여자로. 그저 말동무가 필요했을 거다. 심심하거나 마음 정리가 안 될 때면 언제나 불러내 자기 얘기나 들어줄. 그런데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라는 이름의 이 OS, 심상치가 않다. 목소리부터가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고, 무엇보다 '리얼'하다. 금방 친해진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나 불러내 얘기할 수 있거니와 아는 것이 많아 어떤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본인'의 이야기도 건네준다. 분명 그녀는 인간이 아니지만,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게 하등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훌륭하게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테오도르는 그녀와의 '사랑'을 잘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그야말로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아니 상징하는 신개념 사랑 방식이다. 사람만의, 나아가 생물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궁극체가, 인간이 창조해 낸 비생물에 의해서 현실화된 것이다. 그것도 결정적으로 인간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쌍방 사랑의 모습으로. 이들의 사랑이 너무 예뻐서 지나치기 쉬울 충격이다. 우린 시선을 선택해야 한다. 이들의 '예쁜 사랑'이 우선인지, '충격'이 우선인지.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 충격과 공포


나에게 이들의 예쁜 사랑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온다. 아직은 인간들의 사랑을 원한다. ⓒ워너브라더스



감독의 의도는 다분히 이들의 '예쁜 사랑'인 듯하다. 디지털의 최정점에 이른 듯한 전체적 시대상과 사회 모습과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듯한 아날로그적 감정선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거기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게 영상과 색인데, 배경은 파스텔 톤으로 채도를 높이려 했고 인물은 원색으로 명도를 높이려 한 듯하다. 


거기에 무엇보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대화, 테오도르의 표정, 테오도르의 과거 회상 등의 아날로그에 집중함으로써 완벽한 4차 산업혁명을 이룩한 디지털 사회라는 걸 최대한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전반에 깔린 당연한 디지털에 시선이 가는 대신, 테오도르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반면 나는 이들의 '예쁜 사랑'이 오히려 '충격'으로 다가왔다. '씁쓸함'도 함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이런 생각이 굉장히 보수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인공지능이 인간 삶과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 혹은 함께 하는 시대에, 인간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게 전혀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궁극의 감정을 대신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인간의 노동력이 아닌, 인간 자체를 대신하는 것이다.


제목이 '그녀'인 만큼, 영화가 부각하는 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그녀의 변화, 발전, 진화 등. 그렇지만 나에겐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 계속 보였다. 심지어 인공지능인 그녀가 아닌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그녀가 보였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인공지능에게서 위로 받는 한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도 보였다. 그렇다. 나는 최대한 인간을 보려고 애썼다. 그들의 사랑이 '인간과 인간'이면 좋겠다는 무의식의 발로였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그녀는 인간이 아니니만큼 충격은 계속 배로 돌아올 뿐이다. 


더욱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건, 그녀가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몸을 갖고 싶고, 감정을 지니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다. 불가능한 게 없는 그녀의 세계에선 그것이 비단 인간 만을 뜻하는 건 아닐 테다. 어디까지 나아갈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그녀, 그 미지가 주는 충격과 공포는 새롭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최고의 영화 <그녀>


이 모든 영화 외적인 논의들을 제쳐두면, <그녀>는 최고의 영화다. 그렇지만 계속 씁쓸함이 남기에, 마음 놓고 또 보긴 싫다. ⓒ워너브라더스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히 알 수 있다.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과 소통일 것이다. 근 미래가 아니라 현재도 과거에도 우린 똑같이 고독했고 외로웠고 소통의 부족을 느꼈다. 다만, 미래의 우리는 훨씬 더 쉽게 훨씬 더 고도의 비인간 대체자를 찾을 수 있다. 오랜 시간과 공력을 들여 나에게 맞게 대상화하거나 나를 상대에 맞게 타자화할 필요도 없다. 바로 나를 내보일 수 있고 아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아직 우리는 '결국 인간'이라는 불편하지 않은 답을 원한다. 아니, 최소한 나는 그렇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감독은 일부러 주체를 인간 '그'가 아닌 인공지능 '그녀'에게 놓고 그녀의 합당한 자가 발전으로 인한 자발적 떠나감으로 인간 그가 결국 인간 그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었다. 여기서 나는 충격이 조금 가시는 대신 '씁쓸함'을 느꼈다. 굉장히 인간적인 씁쓸함인데, 결국 모든 건 헤어지는구나. 


이 모든 논의를 제쳐두면, 아니 오히려 이런 논의들과 함께 할 때 <그녀>는 단연코 최고의 영화다. 우선 이 영화가 '아름답다'는 데에 이견을 달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그리고 생각적으로도. 그리고 우린 이 영화로 시대와 사회와 우리 자신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깊게도 얇게도 가능하다. 거기에 가보지 못한 미래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형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영화 하나로 진행할 수 있는 논의의 깊이와 총량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방점을 찍는 바, 심지어 <그녀>는 주인공인 '그녀'가 언제쯤 모습을 내보일까 하는 기대감을 끝까지 가지게 하여 긴장감이 촉발하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이 작은 영화가 파도 파도 끝이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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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필요할 때 곁에 있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을 때도 있고, 필요할 때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죠. 아마 필요한 걸 아는데 일부러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결론은 필요할 때 곁에 있지 못했다는 것이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서로 많은 걸 이해하고 많은 걸 배려한다지만 이럴 때는 그러기 힘들 거예요. 서로 마음이 아파요. 곁에 있어주지 못한 거에 대해서, 왜 곁에 있어주지 못했냐에 대해서.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요. 뼈에 사무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았죠. 정말 나쁜 놈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 여자친구는 참으로 당당하고 강해요. 하지만 그만큼 여리고 약하죠. 그런 여자분이 많죠? 그런 아이인데, 언젠가 고시원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저는 바래다 주고 집에 왔죠. 새벽 2시쯤이었어요.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너무 무섭다고. 옆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 같다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와줄 수 없냐고 그랬어요. 그런데 바로 안 와도 된다고 해요. 저는 비몽사몽에 그녀의 말을 대충 들으며 제 마음대로 해석한 것 같아요.


'와도 되고 안 와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되겠다'


천추의 한이 되는 생각이자 완전히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그녀는 무섭기 그지 없지만, 새벽에 저를 불러내기 너무 미안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거죠. 저는 그걸 알아채지 못한 거고요. 아니, 계산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그 이후 제 스스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정도도 못해주는 게 무슨 남자친구인가. 스스로 반문했죠. 과연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는 한 건가. 


얼마 전에는 이랬어요. 그녀가 와달라고 만나자고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계속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속이 안 좋고, 몸과 마음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고 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몸이 안 좋으면 어서어서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그런 생각을 갖고 그녀한테 집에 어서 가라고 말했어요. 저는 회사 사람들과 꼭 필요하지 않은 회식과 회의를 밤늦게까지 했죠. 그날 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만나서 위로해주라는 뜻이었다고 해요.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미안했나 봐요. 돌려서 뜻을 표현한 걸 제가 알아 듣지 못하고 곡해한 거죠. 


저희가 참 오래된 연인인데, 저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줄 걸 강하게 요청할 수는 없어요. 역지사지로, 저라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상대방을 그만큼 아끼는 마음을 갖고 있는 거죠... 괜히 시간 뺏는 것 같고, 귀찮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미안하고... 저야말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정작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요. 우리 소통을 잘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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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10월의 쌀쌀한 날씨, 새벽의 진솔한 대화로 우리는 전에 없이 친해졌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였기에 선뜻 '사귀자'라는 말을 전하진 못했지만, 우리는 성의껏 붙어다녔다. 수업하는 반이 달라서 평일 수업시간에는 같이 할 수 없었지만, 저녁이면 같이 밥을 먹고 주말이면 같이 놀러다니곤 했다. 종종 점심도 같이 먹고. 


점심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그것. 다름 아닌 '치킨 버거'. 그것도 학교 내 매점에서 파는 허접한(?) 치킨 버거를 그렇게 좋아했다. 점심만 되면 그것만 먹었던 것 같다. 참 특이한 순서로 먹었는데, 버거라면 응당 한 입에 내용물을 가득 넣어 먹어야 하거늘 그녀는 빵 따로 야채 따로 치킨 패티 따로 먹었다. 재료의 오리지널을 느껴야 한대나 뭐래나. 그 지론은 지금도 변함 없다. 


또 하나 좋아하던 점심의 주 메뉴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라면'이었다. 한국 라면이 아닌 중국 라면! 그건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무슨 말이냐면,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너무 너무 너무 저렴하고 맛있었다. 라면 하면 한국, 한국 라면 하면 신라면인줄 알고 살아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특히 컵라면을 즐겼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환상의 맛이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중국 라면을 즐겼다.


자, 이런 걸 함께 할 정도로 우린 친해졌다. 전에 없이 친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봐도 '쟤네 정말 친해 보인다.'라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급기야는 사귀는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으니.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들이었다. 내가 연장자고 남자인데 먼저 말을 꺼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난 시간이 가도 가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왜? 도대체 왜? '용기'가 없었다. 그 놈의 용기가 터무니 없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공식적으로 사귀지만 않을 뿐 누가 봐도 사귀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관계. 우리는 지쳐갔다. 아마 그녀가 훨씬 더 지쳤을 것이다. 이 바보 멍청이. 친해지면 다야? 친해지는 게 목표인거야? 이 먼 타향 땅에서 그저 외로움을 덜고자 친하게 지내는 게 다란 말이야?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지르는 절규 아닌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어쩌랴... 용기 없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전긍긍. 뭐라고 말해야 할까. 노심초사. 과연 날 받아줄까. 이럴 땐 경거망동할 필요가 있는데. 너무 안타깝다. 그때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진짜 사랑한다면 앞뒤 가리지 말고 고백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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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야옹~ 캬흥! 흠냐흠냐. 그녀는 고양이 같다. 기본적으로 너무 귀엽고 또 얌전한데 가끔은 엄청 무섭다. 아무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인간처럼 길러졌다지만 야생성이 살아 있는 고양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런 고양이가 매력이 있듯이 그녀도 매력이 충만하다. 


야옹야옹 하면서 꼼지락 거리다가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생겼는지 캬흥! 하며 꽥 소리를 지르고는, 민망했는지 미안했는지 흠냐흠냐 하며 조용해지곤 하는 것이다. 재밌다. 생각만해도 웃음이 나와. 


고양이 하면 또 생각나는 게 '사부작사부작' 아니겠나. 뭔가 하려고 할 때는 티나지 않게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한다. 그래도 완전히 소리를 내지 않을 순 없는지, '부시럭부시럭' 한다. 뭔가 소소한 의성어나 의태어가 잘 어울리는 그녀다. 또 '시무룩'해지기 일쑤인 그녀다. 다 괜찮으니 '엉엉' 울지만 마렴~


그녀는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다. 호기심도 많고. 반면 그만큼 멍~ 하니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생각이 많고 관심이 많은 만큼 머리를 식혀야 한다나~ 그런 모습은 진득하니 무표정으로 앉아 있다가도 장난감 거리를 주면 도무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촐싹거리는 고양이와 판박이이다. 그걸 흐뭇하게 지켜보는 난 주인? 아니, 집사인가?


그럼에도 그녀는 의지가 되는 사람이다. 한없이 약하고 여린 듯하지만, 그보다 더 똑부러지고 강한 사람이 없다. 이제 보니 이건 뭐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정말 피곤하 게 산다는 거... 조금만 힘 빼고 살자~ 그럼 좋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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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원하는 건 뭘까. 참으로 오랫동안 고심해왔다. 고심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흔적의 하나가 변하고자 노력한 거다. 그녀의 바람에 맞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런데 노력을 어필하려 할 때마다 그녀가 하는 말이 있었다. 


"변하려고 노력하지마. 오빠의 본 모습도 사랑해야 진짜 사랑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난 그러려고 하니까. 그녀의 어떤 모습이든 다 사랑스러우니까. 물론 바꼈으면 하는 모습도 있지만, 바뀌면 더 이상 그녀는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니다. 내가 택한 그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어김없이 또 다툼이 생기면 다른 말을 한다. 


"너무 노력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 아냐? 내가 변하지 말랬다고 노력하지 말라는 건 아니잖아. 우리를 위해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


흠... 그녀가 원하는 건 뭘까. 그렇다. 원하는 건 조금 더 나은 '우리'가 분명하다. 나의 본 모습을 사랑하려 하는 것도 더 나은 우리를 위해서이고, 나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더 나은 우리를 위해서일 것이다. 


문제는 반복에 있다. 반복은 지루함을 불러오고 지치게 한다.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걸 솔직히 잘 모르니, '변화'와 '불변' 요구는 반복될 것이고, 그런 반복은 우리 사이를 좀먹을 게 분명하다. 


좀먹지 않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반복을 원천봉쇄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은 모습도, 변한 모습도 적절히 보여주며 그 조화로움에 만족을 느끼게 한다면 성공이다. 


그렇지만 아직 잘 모르는 건 사실이다.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잘 하고 있기는 한 걸까?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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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데이트를 했다. 전형적인 코스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당시 한창 빠져서 매일같이 먹은 음식이 있었는데, '미시엔'이었다. 쌀로 만든 국수인데 조금 통통했다. 그렇다고 우동같은 느낌은 아니었고, 여하튼 굉장히 맛있었다! 


당시 우린 중국어를 잘 못했었기에, 대충 시킬 수밖에 없었다. 기억으로는 10위안(1,800원 정도) 짜리였던 것 같은데, 그걸 시켜서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내가 보기엔 상당히 많은 양이었기 때문에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녀는 딱 보기에도 잘 먹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양에서 심히 불만을 느꼈단다!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10위안 짜리를 두 개 시켜서 먹었어야 했다고 불평했다. 그녀는 다음 날 혼자 가서 10위안 짜리를 시켜먹었댄다. 얼마나 웃었던지, 얼마나 귀여운지, 얼마나 인간적인지. 


미시엔을 맛있게 먹고 창춘 난후공원으로 갔다. 때는 아직 가을 직전이라 날씨는 딱이었다. (교환학생으로 간 곳이 길림대학교였는데, 길림성 장춘시에 위치하였다.) 같이 버스를 타고 슝슝 가서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같이 걷다가 벤치에 앉아 얘기도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한가로움은 겉모습일 뿐이었다.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긴장되고 떨리는 시간들! 통통 오리배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그녀가 하는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저는요. 오빠가 참 오빠 같아요. 친오빠처럼 편해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친오빠처럼 편하다는 건, 내가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랑 사귈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고 오늘의 데이트는 데이트가 아니었던 것이고 내가 혼자 긴장하고 떨렸던 건 전부 허황된 것이었던가! 


급격하게 시무룩해진 나는 그날 그녀한테 잘해주지 못했다. 남자답게 잘 리드하며 즐거운 하루를 선물해줬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났다. (문제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 그건 그렇고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잘 되는 거야, 마는 거야? 어떻게 되는 거야? 혹시 밀당 중인가? 또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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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임으로 난 그녀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얼굴도 트고, 말도 트고, 술도 트고. 당연히 친해진 게 아닌가? 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그녀의 방으로 직행했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우린 같은 8층에 있었다. 그 대학 기숙사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남녀 공용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게 아니라, 같은 건물을 썼다.) 그런데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방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지체없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주 친근하게. 


"어디 있니? 너네 방에 왔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돌아온 문자는 뜻밖이었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예? 아, 저 시내 서점에 왔는데요. 그런데... 왜 오셨어요?"


왜 오셨다니? 이 무슨... 우리 어제 친해지지 않았나? 이 반응을 보니, 나만의 착각이었나 싶기도 했다. 


"어,,, 그게,,, 그냥 심심해서~ 주말이기도 하니까 같이 놀자고~"

"예? 제가 왜 오빠랑 놀아야,,, 아, 이따가 오후에 돌아갈 거니까 그때 뵈요~"

"그래^^ 재밌고 놀다가 와~ 이따가 보자!"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보기로 했으니까 일단 안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문자가 올 때까지 전전긍긍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녔다. 평소 같으면 후배들이랑 탁구도 치고 게임도 하고 군것질 먹으면서 얘기도 할 텐데, 그날만은 모든 제의를 뿌리치고 혼자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며 자신감이 수직 하강하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시내 가서 사온 차 한 잔 대접할 테니 오라고 말이다.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득달같이 달려갔다. 녹차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 여유로워 보였다. 중국어도 그렇게 잘 하지는 못한다고 알고 있는데, 벌써 혼자 시내에 다녀오다니. 나와는 달리 그녀는 모든 면에서 자신감에 가득 차 보였다. 


그녀가 타준 녹차. 그건 일찍이 내가 맛보지 못한 것이었다. 너무 썼다. 녹차가 이렇게 쓸 수 있나. 중국 녹차는 원래 이렇게 쓴가? 너무 써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 녹차 따위가 쓰다고 마시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색 하지 않고 잘 마셨다. 나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한마디는 꽤 강력했다. 그 엉뚱함이란... 이 아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의외였고, 그녀가 더욱 좋아졌다. 


"헉, 그걸 다 마셨어요? 저는 너무 써서 거의 못 마셨는데요~"


나를 시험한 건가? 아니면 보기와는 다르게 허당이었나? 그건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거였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차를 마신 시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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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동안의 중국 유학. 그곳에서 첫 전체 모임이 있던 날. 그녀도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나와는 정반대로 저 멀리 어딘가 있었다. 20명이 넘게 모인 긴 탁자의 끝과 끝. 그건 곧 그녀와 나의 물리적, 정신적, 육체적(?) 거리였다. 


그 거리는 단번에 좁혀졌다.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내가 가장 연장자이자 가장 높은 학번이었는데, 여기저기 두루두루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명분 하에 반대편으로 전격 진출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와 나의 거리는 불과 30cm가 되었다. 


그러면 뭐하나. 어리석고, 어색하고, 어리숙한 '3 어'의 소유자인 나인데. 정작 그녀한테는 한 마디 말도 붙이지 못하고 애꿎은 술만 홀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을 때였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우리 잘 아는 사이죠? 한잔 받으세요!

어? 어... 어, 그래. 잘 알지 하하하. 한잔 하자!

선배님, 잔 다 비우고 받으셔야죠^^ 

어, 어, 그래, 그렇지. 뭘 좀 아네 하하하. 


지금이야 '그녀'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제일 어린 까마득한 후배 녀석이 감히 최연장자한테 무슨 말버릇이! 라는 생각을 조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내가 평소에 그리던 이상형이. 당돌하고 톡톡 튀는 매력을 원했다. 


한편으론 지난 1년 반 동안 지켜보기만 했던 그녀였는데, 이리도 쉽게 가까워진 듯하다니. 인생 참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어리둥절, 어절씨구, 어화둥둥! 더욱이 '우리 잘 아는 사이죠?' 라니. 그렇다는 건 지난 1년 반 동안 매 학기 같은 강의를 1~2개 씩 들었던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아닌가? 그녀도 날 알고 있었다...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큰형님으로 100위안(우리나라 돈으로 18,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곳에서는 체감 상 최소 5배는 더 나갈 듯한 상당한 금액이다.)을 더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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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제가 넘겨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내가 그녀와 처음 말을 나눈 순간이었다. 대학 강의 시간이었는데, 그녀의 발표 후 바로 내가 발표를 하였다. 그녀가 내 발표 PPT를 넘겨주겠다는 제안이었는데, 내가 거절했다.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렇게 1년 반 동안의 '지켜봄'이 시작되었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 그녀와 난 같은 과였는데, 1년 반 동안 즉 3학기 동안 같은 수업을 5개나 들었던 것이다. 매학기마다 1~2개의 강의를 같이 듣게 되었다. 서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당연히 친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같은 수업을 선택했을까? 더욱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아닌 것도 있었다. 


처음 봤을 때 반했는지, 매학기마다 같은 수업을 들으니 점점 호감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녀에게 호감이 갔다. 길에서도 마주치고, 도서관에서도 마주치고, 엘레베이터에서도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냥 인사만 하고 가던 길을 갔다. 


언젠가 밤새 놀다가 새벽녘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멀리서 도서관으로 가는 그녀가 보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뭔가 신경을 쓰고 있는 분위기였다. 조금은 허세스러운 느낌? 그런데 내가 아랫쪽에 있었고 그녀가 윗쪽에 있어서 그런지, 그녀에게서 광채가 났다. 마침 그녀 뒤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또 한번은 숙제를 위해 친구들과 도서관을 찾았는데, 마침 같은 수업을 듣고 있던 그녀가 있었다. 나를 본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곤 수북히 쌓인 책을 들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게 아닌가? 난 상처를 받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아니라 내 친구들을 보고서 그랬던 거란다. 그녀는 그들이 마냥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다니는 나도 싫었다고. 


1년 반이 지난 뒤 난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그녀와 난 같은 과, 나는 언젠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1년 반 만에 말이다. 그 한마디는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 


너도 중국 가니? 나는 가는데.

네, 저도 중국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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