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 읽기]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만화 <몬스터> 표지 ⓒ서울문화사



뇌리에 박혀 한 장면, 어쩌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지 모르는 한 장면, 누구에게나 그런 한 장면이 있을 테다. 나에게도 여러 장면이 있는데, 그 중 한 장면이 만화책에 관한 것이다. 여전히 만화책은(만화가 아닌 만화책이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 그 장면이 종종 생각난다.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 쯤이었나, 그때는 아직 동네에 도서대여점이 성행 중이었다. 반경 500미터 안에만 족히 5개는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당시 내가 주로 보는 장르는 학원물, 스포츠물, 판타지물 등이었다. 그야말로 그 나이에 걸맞는 장르가 아닌가. 그런데 한두 살 정도나 많은 형이, 당시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전혀 보고 싶지도 않은 장르의 만화책을 빌려가는 게 아닌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였다. 


한두 번이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우연히 계속 보게 되었다. 한두 권이 아니라 18권이나 되었으니까. 뭔가 어려워 보이고, 뭔가 수준 높아 보이는 그런 만화책. 왠지 내가 좀 수준 낮아 보여 그 형이 <몬스터>를 빌려갈 때면 난 기다렸다가 한참 뒤에 빌려가곤 했다. 내가 <몬스터>를 보게 된 건 스무 살이 넘어 어른이 되었을 때다.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몬스터>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내가 접한 모든 콘텐츠 중에서 가장 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내가 읽는 그의 작품은 <파인애플 아미> <마스터 키튼> <몬스터> <20세기 소년> <플루토> <빌리 배트>, 즉 국내에 나온 그의 작품 대부분을 접한 것이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마스터 키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몬스터>.


내용은 굉장히 미드스럽다. 안 그래도 미드로 제작 중에 있다고 하는데, 언제 나올지는 미지수다. 일본 국적의 독일의료계 신성 텐마는 천재뇌외과의사로 명성이 자자하다. 병원장 딸과 연애도 하고 있는 바, 차기 병원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는 병원 정치에 발을 내딛고 있기에 온갖 술수에 희생양이자 앞장이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논문을 병원장 이름으로 내고, 터키인보다 오페라 가수를 살리는 게 우선이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던 찰나 사건이 터진다. 망명 온 동독의 고문 가족이 피살당한다. 부모는 죽고 쌍둥이 아이들은 살았지만 남자 아이가 머리에 총상을 입어 중태에 빠진 것. 텐마는 이 아이의 담당으로 배정되지만, 뒤이어 실려온 시장의 담당으로 다시 배정된다. 고민하는 텐마, 결국 그는 병원장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를 살려낸다. 반면 중요한 인물이었던 시자은 죽고 만다. 텐마는 곧바로 치프 자리를 빼앗긴다. 


살려놓은 아이 '요한' 앞에서 병원장과 끄나풀들의 죽음을 간절히 바란 텐마, 며칠 뒤 거짓말처럼 병원 고위층이 한 자리에서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고는 감쪽같이 사라진 요한과 여동생 안나. 새로 부임한 병원장은 텐마를 외과과장에 앉히고, 그렇게 10년이 흘러간다. 어느 날, 우연한 사건으로 텐마는 자신이 살려낸 요한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일삼는 괴물임을 알고 그를 죽이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는 길을 나선다. 아울러 그는 연쇄살인사건의 중요참고인 혹은 용의자로 수배된다. 


이 만화의 무궁무진한 포인트와 등장인물들


이 만화의 포인트는 무궁무진하다.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쫓기는 천재외과의사, 그는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은 둘째치고 자신이 살려낸 괴물을 죽이고자 외로운 길을 떠난다. 그가 쫓는 괴물 요한의 정체는? 그의 쌍둥이 여동생 니나와의 접점은? 이 괴물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격인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괴물, 즉 피해자인가.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까도 까도 끝없이 까지는 양파처럼 이 만화에는 수많은 포인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나하나가 인간 군상의 개개인을 상징하고 있는 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캐릭터가 없다. 결국 모든 게 괴물 요한이라는 포인트로 수렴되지만 모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공감이 간다. 


요한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괴물, 그뿐이랴? 그는 궁극의 혼란, 궁극의 파괴, 궁극의 고독을 원한다. 그런데 그에게 가까이 갈수록 슬픔을 느낀다. 그것이 과연 그가 원하는 것일까. 그가 원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 부분이 이 이야기가 가지는 매력이자 힘이다. 


'의사' 텐마가 요한을 죽이려는 건 결국 그를 '치료'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그를 찾아내어 처치하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인데,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도 치료한다. '네가 태어난 의미는 반드시 있어. 네가 살아갈 의미도 있어. 포기하지마. 희망을 가져.' 많은 이들이 요한으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삶을 포기하려 하는데, 텐마는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을 불어넣는다. 


우리가 고전 서사를 즐기는 이유, <몬스터>를 즐기는 이유


우리는 여전히 고전 서사를 즐긴다. 거기엔 인간의 전형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 서사를 변형한 콘텐츠도 부지기수인데, <몬스터> 또한 고전 서사의 변형으로도 볼 수 있다. 모든 걸 원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한 한 인간의 사투, 자신이 되살려 놓은 악을 섬멸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진 채 떠나는 한 인간의 모험, 악의 근원은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고 선의 근원은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어 내려가는 순환. 


이처럼 <몬스터>는 서사가 가지는 힘을 잘 알고 그를 극대화시켜 내보낼 줄 아는 작가의 능력이 극대화된 콘텐츠라 하겠다. 거기에 오그라들 만하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해놓았다. 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캐릭터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소년에게, 당대 정세나 상황 설정은 장년에게 먹힐 만하다. 


이 세상에 나홀로 남게 되었을 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무얼까.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거라고 만화는 말한다. 그건 비단 진정 이 세상에 아무도 없지 않아도 가능하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는 바, 나를 아는 사람이 모두 죽으면 나는 자연스레 존재하지 않는 게 되지 않을까. 요한이 본 '종말'이 바로 그런 모습, 그가 모든 이에게 선사하고 싶은 바도 그런 모습. 


'세상이 만들어낸 슬픈 몬스터', 요한에게도 통용되는 말일까. 그가 가진 몬스터의 요소 중 하나일뿐, 온전히 설명하는 요소는 아닌 것 같다. 우린 이 만화에서 '몬스터'보다 '인간'에게 눈길이 갈 것이다. 몬스터의 슬픔보다 인간의 희망에 기대를 걸게 될 것이다. '포기하지마'라는 전언이 깊이 새겨질 것이다. 그 전언이 몬스터도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큰 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린 그런 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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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조국과 민족>


<조국과 민족-상> 표지 ⓒ비아북



아직도 한 단어도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다. 국기에 대한 맹세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은 굳게 다짐합니다." 2007년에 수정되었다고 하는데, 여하튼 고등학교 때까지 아침 조례 시간이면 빠짐 없이 행하던 그 맹세. 군인이었을 땐 국기 게양 음악이 나오면 언제 어디서 무얼 하든 동작을 멈추고 그곳을 향해 몸을 돌려 엄숙한 자세로 경례를 하였다. 지금도 그 음악이 어디선가 들리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조국과 민족을 향한 몸에 봰 동작이자 감성이다. 


그땐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내가 충성을 다짐한 '조국과 민족'이 무엇인지. 깨우쳐서 알게 된 건 아니라서 '알았다'는 말이 정확한 수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았다.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나아가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나라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도 당연했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학생의 본분,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건, 나라를 위해 학생이 할 수 있는 최선. 


머리가 크니 조국과 민족이 국가를 위해 본분을 다하는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지켜주기는커녕 국민이 낸 혈세로 개인의 잇속을 챙기질 않나,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을 역사에 길이남을 만한 돈을 쓰며 밀어부치지 않나, 급기야 국민 몰래 나라를 통째로 넘기려들지 않나... 국가라는 게 무엇인지,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지. 국가라는 이름 하에 거행되는 짓거리가 한심하고 어이없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 짓거리는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드러내 놓고 거행되었다. 


<조국과 민족-하> 표지 ⓒ비아북


국가라는 이름 하에 거행된 '조국과 민족'을 위한 짓거리의 가해자


만화 <조국과 민족>(비아북)은 국가라는 이름 하에 거행된, '조국과 민족'을 위한 짓거리를 색다른 시각으로 조명했다. 바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가 주인공이 되어, 서술된 이야기이다. 자칫 감화될까봐 알고 싶지 않았고, 차마 그 짓거리들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궁금한 건 사실. 왜 그들은 그러했을까, 어째서 그들은 그런 생각과 행동을 했을까.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때는 1987년. 안기부로 유추되는 정보기관에서 고문기술자로 명성을 떨치는 젊은 청년 박도훈, 그는 장실장의 인도 하에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불행하고 특이한 어린 시절을 장실장 덕분에 잘 보내왔다고 믿는 도훈은, 장실장이 멘토이자 롤모델이다. 도훈은 일본과 금괴 밀수를 추진하다가 고정간첩 '광명산'의 마약 밀수를 돕게 된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이중간첩 아닌 이중간첩이 된다. 하지만 장실장과 가깝게 지내는 이중고정간첩 '량강 1호'의 첩보로 광명산이 잡히게 되고 도훈은 위기에 처한다. 도훈의 앞날은?


도훈과 함께 일하는 김대한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굴지의 건설사 회장 자리에 오른 김판구의 아들이다. 그는 '빨갱이'를 잡아 족치며 여기까지 왔다는 자부심이 대단한대, 대한은 다름 아닌 그가 조총련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대단한 신념을 지닌 대한은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김판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한다. 그러는 한편, 장실장의 명령을 받아 홍콩에서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인 사건을 파헤친다. 그런데 그 사건을 간첩의 짓으로 둔갑시키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이 이어진다. 대한은 어떤 선택을 할까? 


만화는 여러 실제 사건과 인물을 참조한 것 같다. '악의 축' 장실장은 장세동을, '고문기술자' 박도훈은 이근안을, 홍콩간첩조작사건은 '수지킴간첩조작사건'을 참조했다. 이밖에도 당시 전두환 정권 하에서 벌어진 기상천외하고 황당무계하고 무시무시한 조작 사건들을 다뤘다. 저자가 만든 이야기에 실제에서 빌린 인물과 사건을 곳곳에 배치하니 멋진 첩보물이 탄생했다. 기시감을 줄이고 생생함을 더했다. 


'보통 사람'의 조국과 민족을 위한 진심


작가는 만화를 통해서 말한다. 이 가해자들이 조국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그러했다고 말이다.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를 짓거리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게 이 작품의 노림수인 것 같다. 여기서 더욱 무서운 건 뭐냐고?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는 것. 특수하게 길러졌거나 훈련받은 게 아니다. 또한 그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 체계를 통해 '진심으로' 조국과 민족을 생각했다는 것. 마약을 상시 복용해서 정신이 돌아버렸거나 애초에 이상이 있는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만화를 보며 그림체, 말투, 배경 등 모든 면에서 느낄 수 있다. 적어도 실무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끔찍한 일을 그저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서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받은 충격을 다시 한 번 받았고, 그 눈쌀 지뿌려지고 가슴이 오므라들게 하는 잔인함은 영화 <남영동 1985>와 <변호인>을 생각나게 했다. 그들 모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했다. '일했다고 믿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했다'고 하는 게 가해자의 진심이다. 


이쯤 되면 혼란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 방법이 잔인했을 뿐 진심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을 했다는 그들, 그들도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거다. 더군다나 평범하다 못해 귀엽기까지(?)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잔인하지도 끔찍하지도 않게 느껴질 때가 온다. 장난처럼 느껴지는 거다. 


작가는 왜 그런 그림체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그려냈을까. 아이히만으로 상징되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하려는 의도일까. 홀로코스트가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말하는 개념이다.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은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여기에 <조국과 민족>의 주인공 가해자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진심이 얹혀 있다. 


'악의 평범성'과 차원을 달리하는, 계속되는 반인륜적인 짓


이슬람의 꾸란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는 '고의적인 살인'과 '고의적이지 않은 살인'의 구분. 고의적인 살인에는 사형을 내렸고, 그렇지 않은 살인에는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든 지시에 충실히 따르든 그들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짓거리는 고의일까 고의적이지 않은 걸까. 자기의 행위에 의하여 일정한 결과가 생길 것을 인식하면서 그 행위를 하는 짓임이 분명하기에 '고의'라고 하겠다.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행동이 나라에 충성하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조국과 민족>이 내포하고 있는 바는,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시무시하다. '악의 평범성'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거기에는 상명하복에서 오는 복종과 갈등 없는 기술적 임무만이 존재해 틀이 깨지면 일순간에 무너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맹목적 사랑과 충성이 도사리고 있기에, 틀이 깨져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아주 오래도록 암약하며 다른 형태로 계속된다. 


우리나라가 수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고문도 예술'이라는 망언 중에 망언도 서슴지 않았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하나의 사례가 될 텐데, 그는 김근태 의원을 고문하고 납북어부 김성학 씨를 감금한 혐의로 지명수배된 후 10여 년의 도피생활 끝에 자수해 감옥살이를 하는 도중 목사 안수를 받기도 했다. 2011년 말에 김근태 의원이 사망하고는 2012년 2월에 책을 펴냈는데, '그 당시에는 애국으로 한 일.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을 것이다'라며 사죄를 회피했다. 또한 '정치형태가 바뀌니 역적이 됐다. 멍에를 내가 지고 가고 있다'며 변명하기도 했다. 이 행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근안을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가져다 붙이기 쉬운 수식어다. 누구라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게 만드는 수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국가의 명을 받는 사람임과 동시에 국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하고 행동하기도 하는 바 누군가에게는 국가 그 자체로 비치기도 할 것이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진심어린 마음에서 충성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다고 해서, 그렇게 저지른 반인륜적인 짓을 용서해야 할까. 용서할 수 있을까.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땐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그것이 애국의 길이었다고 말이다. 그에게도 그들에게도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분명 어떤 사연이 있을 거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애국'이지만 '나쁜 짓', 조국과 민족이라는 대의를 위해선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당위 또는 자기 합리화. 그 시대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더 다양한 시각으로, 더 깊이 있게, 더 활발하게. <조국과 민족>은 이 세 층위를 고루 만족시킨 수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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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멧 데이먼의 <리플리>


우연히 상류층의 일원으로 보여진 '톰' 그는 특출난 재능으로 빠르게 상류층의 일원이 된다. 그렇지만 그건 분명 거짓된 삶이었으니... 그는 어떻게 될까? ⓒ미라맥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소프라노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어느 파티석상. 연주가 끝나자 선박 회사를 운영하는 부호 그린리프 부부가 다가와 톰 리플리에게 칭찬을 건넨다. 그러곤 그가 프리스턴 재킷을 입은 걸 보고 자신의 아들 이야기로 넘어간다. 톰은 '디키, 잘 있죠?'하며 아는 척 하고 그린리프 부부의 환심을 산다. 


톰은 피아니스트도 아니고 프리스턴을 졸업하지도 않았다. 그는 피아노 선율사이자 호텔 보이일 뿐이다. 다만, 그때는 친구를 대신해 돈을 받고 프리스턴 대학교를 나온 피아니스트인 척했던 것이다. 그린리프는 톰에게 1000달러를 보장하며 이탈리아로 가서 디키를 설득해 들어오게끔 한다. 톰은 디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전혀 모르는 재즈를 공부하고는 이탈리아로 날아간다. 


상류층이 되고 싶은 '재능'의 거짓된 삶


톰이 동경해 마지 않는 상류층의 삶 그자체인 디키. 톰은 차원이 다른 그의 사고와 행동과 여유와 씀씀이를 따라할 수 있을까? ⓒ미라맥스



영화 <리플리>는 이런저런 부차적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본론으로 넘어간다. 톰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를 단 몇 장면으로 보여주고는 곧바로 새로운 거짓된 삶이 나오는 것이다.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건 톰의 거짓된 삶에 있다. 비천한 삶이 상류층의 삶으로 둔갑하면서 톰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졌다. 숨어서 동경해왔던, 언제든 준비가 된, 그러나 거짓되었다는, 그래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삶. 


재능이 출중하지 않다면 일련의 일을 벌이지 못했을 거다. 그렇다. 톰은 상류층이 되기에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뭐든 금방 따라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능 말이다. 물론 뿌리 깊은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과는 근본적으로 이질감이 느껴지긴 하겠지만. 


그렇지만 그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게 있었다. 출신 성분이라고 해야 할까. 머나먼 윗세대부터 내려오는 뿌리 깊은 가문의 성분 말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가문, 학력, 돈, 명예, 지위 등. 디키는 선박 부호를 아버지로 두었고 돈은 엄청나게 많으며 프리스턴 대학교 출신이었다. 여기에 상류층다운 여유와 씀씀이, 차원이 다른 스케일을 소유하고 있다. 톰이 이런 것들까지 따라할 수 있을까?


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피해자일까, 사이코패스이자 미친놈일까


'초라한 현실보단 멋진 거짓이 낫다'는 생각으로 끔찍한 짓을 하고 끔찍한 현실을 버티는 톰. 그는 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피해자일까, 사이코패스이자 미친놈일까. ⓒ미라맥스



톰(멧 데이먼 분)은 디키(주드 로 분), 디키의 연인 마지(기네스 팰트로 분)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디키와 마지가 톰을 잘 대해주고 톰은 그들을 동경하며 잘 따랐다. 무엇보다 톰에게는 평생 다시 없을 상류층의 삶을 맛보는 나날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마치 자신이 진짜 상류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을 것이다. 


어느 날 상류층 친구 프레디가 찾아온다. 그는 디키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빌붙어 사는 게 좋냐고 톰을 놀려댄다. 톰은 적의에 불탔지만 이내 좌절하고 프레디는 그런 톰을 계속 놀려대고 디키는 톰을 조금 멀리하고 마지는 그런 톰을 위로한다. 그린리프 씨와의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디키와 톰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디키는 톰에게 강력하게 전달한다. 따분하고 싫증났다고, 가난뱅이 빈대에 찰거머리라고, 계집애 같다고. 다툼 끝에 톰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영화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이 모든 게 시작되었을 때처럼 우연치 않게 디키로 오해받은 톰은 아예 디키 행세를 한다. 그렇게 그는 디키가 되어 '진짜' 상류층이 된다. 영화는 더욱 긴박하게 돌아간다. 몇몇 장면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톰이 누군가에겐 톰이고 누군가에겐 디키이기 때문인데, 그 누군가들이 전부 상류층으로 서로 잘 알고 있다. 톰이 원하는 건 뭘까. 


톰은 '초라한 현실보단 멋진 거짓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 왔고 멋진 거짓을 현실로 옮겼으며 끔찍하지만 멋진 현실을 버텨 왔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를 생각나게 하는 이 생각은, 그러나 결국 진짜 상류층, 그가 바라는 멋진 삶을 주진 못한 것 같다. 그는 시대가 낳은 괴물이자 피해자일까. 흔히 있는 사이코패스이자 미친놈일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사회라면...


상류층만이 상류층을 인정하는, 참으로 슬픈 풍토다. 영화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상류층만이 상류층을 이해할 수 있고, 말이 통한다고. 이같은 풍토를 바꿀 순 없을까? ⓒ미라맥스



"과거를 창고에 꼭꼭 숨겨 두고 자물쇠를 채우고픈... 그 안은 어둡고 더러워. 그 추잡함을 들키면..." 


누구나 거짓된 삶을 사는 건 아니겠지만, 많은 거짓과 비밀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알려주고 싶지만, 그 더럽고 추잡한 사실을 들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평생을 사는 것이다. 톰 리플리, 그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모습이다. 너도 될 수 있고 나도 될 수 있고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미친놈이라기보단 괴물에 가깝지 않을까. 


때는 1950년대 미국, 위기와 전쟁을 지나 자본주의 최대 호황의 시대를 맞이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상류층의 삶의 양식이 정착되었다. 비천한 이가 감히 상상하기 힘들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기 쉽지 않을 거다. 누가 그에게 돈을 던질 수 있을까? 상류층이라면 돈을 던질 수 있을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재능 있는 리플리씨>에서 나온 '리플리 증후군'은 톰이 잘 보여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인데, 참으로 애잔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만약 현실이 비참하지 않다면?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끼는 건 누군가와 차별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건데, 그런 차별이 없는 사회라면? 영화에서처럼 상류층만 상류층을 인정하는 풍토가 없다면? 리플리 증후군 따위는 없을 거다. 


자만심으로 풍만한 상류층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하류층의 더럽고 슬픈 합작품. 누구나 그것에 노출되어 있고 빠지기 쉽다는 게 안타깝고 두려울 뿐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고 아마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거다. 내가 의도했거나, 나도 모르게. 


사회를 바꿔가는 수밖에 없다. '나'라는 중심을 확고히 세우고 '나'를 사랑하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만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 자칫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겐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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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오래된 리뷰] <아메리칸 사이코>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포스터 ⓒ21세기 엔터테인먼트


하얀 바탕으로 진한 빨간 색의 피가 흐른다. 하얀 바탕은 곧 접시가 되고 피는 곧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의 핏물이 된다. 그곳은 상류층이 즐비한 레스토랑이다. 종업원인지 셰프인지 손님들에게 요리를 내주며 코스를 설명한다. 상류층으로 보이는 손님들은 경청한다. 나만 그렇게 보이는가? 그들의 행세가 매우 지질해 보인다. 그들의 학력은 매우 높을 테고 매우 잘 살고 있으며 또 사회적 지위와 명망도 높을 테지만. 


세상에서 가장 지질한 상류층 인간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는 이처럼 메시지를 던지며 시작된다. 피와 핏물의 동질성, 상류층의 지질함. 그리고 그걸 보는 제3자의 시선까지.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크리스찬 베일 분) 또한 이 상류층의 일원이다. 그는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월스트리트 중심가 금융사 P&P의 부사장이다. 27세의 젊은이로, 학력도 높고 잘 생기고 돈도 많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잘 가꿀 줄 안다. 


패트릭은 여지 없이 초고층의 거의 꼭대기에서 근무하며, 순백색의 잘 가꿔진 집에서 산다. 그는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 그런 자신을 내세우기 좋아하며, 그 이상으로 남에게 지는 걸 싫어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패트릭의 그런 일련의 특징들을 죽 보여준다. 


규칙적인 운동 후에 웬만한 여성보다 더 많은 스킨 케어 화장품으로 자신을 가꾼다. 그는 그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러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 즉 아버지를 잘 둔 젊은 부사장들 모임에 참여해 그야말로 쓸 데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축 낸다. 하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 하나라도 더 아는 채 하려는 것. 


남에게 지는 걸 싫어하는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름 아닌 명함 자랑이다. 형압으로 팠다느니, 계란 껍질을 이용했다느니, 그 어느 것보다도 예쁜 색깔이라느니. 명함을 건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이번에 명함을 새로 장만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허세다. 그런데 패트릭 만이 각각의 명함 등급을 알아보고 혼자 손을 떨고 식은땀을 흘린다. 자신의 것보다 더 좋은 명함들을 보고서.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한 장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우월함의 증명, 세상에 대한 증오, 결국 살인까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증세(?)들을 겪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가꿔서 내놓아 자랑하고 싶고 또 그 중에 제일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 그러면서 절대 지지 않고 싶고, 졌다는 걸 알고 내색하지 않으려는 의지. 일반적으로 같은 증세라도 해도 상류층이면 상류층다운 증세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영화는 정반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상류층답게 지질의 급도 높다고 해야 할까. 참 한심하다. 실제로도 그럴까.


패트릭은 같은 일원이지만 제3자적 시선을 드러낸다. 그들은 상류층이면서도 급 높은 지질함을 자랑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80년대의 유수 노래들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 패트릭이 신봉해 마지 않는 노래들이다. 패트릭은 수많은 노래들을 듣고 비평한다. 이것은 그가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증거 중 하나이다. 


이 격렬한 증세들과 더불어 우월주의는 결국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노숙자를 살인하면서 시작된 살인 행각은 여성들로 이어진다. 그러는 와중에 돈으로 산 여자들과 섹스 비디오를 찍기도 하는데, 여지 없이 나르시시즘의 모습을 보이고 자기 과욕이 극에 달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는 수작이 아닌가 싶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한 장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중반 이후가 되면서 패트릭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도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그걸 자각하지만 더 이상 손 쓸 도리가 없다. 같은 상류층에 위치한 이들에 대한 증오와 함께 자신보다 아래에 위치한 이들에 대한 증오, 즉 세상에 대한 증오가 뿌리 깊어진 것이다. 그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감독이 의도한 바는 무엇일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피해자도 많아졌고, 괴물도 많아졌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겠다. 아메리칸 사이코, 즉 미국인 정신병자. 때는 80년대 냉정 막바지. 미국은 세계 패권을 거의 손에 넣었다고 볼 수 있겠다. 승리자가 된 것이다. 그런 곳에서도 상류층인 이들이 누리는 호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돈, 명예, 명성, 특권 등. 거기에 영화는 약물과 여자를 추가한다. 문제는 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느냐는 점이다. 여기서 교육이라 함은 '인성' 교육을 말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곳에서 인성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받지 않았을 거라 추측된다. 


그런 상태로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면 당연히 어떤 문제고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살인 행각은, 그것도 아주 엽기적인 살인 행각은 그렇게 생겨난 문제의 최악의 표출이라 할 수 있겠다. 인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만이 드높고 드러내는 것만 익숙하다. 그러면서 같은 부류의 이들과 행하는 지질하지만 진지한 경쟁, 그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채 아래 부류의 이들과 행하는 자기 우월 표출 의식. 결국 경쟁과 우월 표출이 살인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패트릭도 피해자일까. 이 시대가, 이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일까. 그의 행각 자체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중요하지만 협소한 메시지는 더욱 중요해지고 더 확대되었다. 피해자도 많아졌고, 괴물도 많아졌으며, 피해자이자 괴물인 이들도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피해자이자 괴물인 이들은, 그것도 하류층이 아닌 상류층이 이들은 피해자임에도 가차 없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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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피스>



영화 <오피스> 포스터 ⓒ리틀빅픽쳐스


저는 직장인입니다. 많고 많은 직장인 중에 한 명이지요. 오피스에서 일을 합니다. 회사가 크지 않고, 일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요. 그 안에서도 참 여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사정 상 현재는 상명하복 체계가 덜 갖춰져 있어요. 각자 자신이 담당하는 게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서 이기도 할 겁니다. 요즘 많은 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하죠. 회사마다 다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조직이 큰 대기업의 경우는 상명하복 체계가 갖춰져야만 하는 것인지요? 위로 갈수록 책임과 권리가 비례하게 올라가는 그런 구조 말이죠.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경우가 생길 거예요. 나보다 위에 있는데, 실력은 나보다 아래인 사람이 부서마다 꼭 있다는 거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난감한 상황이죠. 


이런 경우는 어때요? 누가 봐도 일은 끝내주게 잘해요. 아래 사람한테나 윗사람한테나 믿음직하죠.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 열심히 해요. 융통성 없고 고지식해서 주위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죠. 주위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조직 생활에서는 일 못하는 사람보다 이런 식의 사람이 더 힘들 거예요. 


영화 <오피스>의 김병국 과장이 바로 이런 사람이에요. 일은 잘 하지만 융통성 없고 고지식하고 재미 없는 사람이죠. 모르긴 몰라도 윗사람한테 아부를 하지 못하고, 아래 사람들에게 농담 한 마디 하지 못할 거예요. 회사에는 오직 일만 하러 오죠. 그런데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착하기 그지 없을 거예요. 그런 그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퇴근을 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다짜고짜 망치를 들고 오더니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합니다. 그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영화 <오피스>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다음날 광역수사대가 회사로 출동합니다. 집보다 회사에서 오래 있는 직장인이니 만큼 당연한 수순이겠죠. 집이 아닌 회사에서의 어떤 일 때문인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 이상해요. 하나 같이 김병국 과장을 두둔합니다. '과장님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요. 다들 그가 착하고 유순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죠. 다만, 그 말투가 비꼬는 듯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 거죠. 다들 여우 같아요. 


김병국 과장이 범인인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에요. 영화는 김병국 과장이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간단히 처리하고, 도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에 초점을 맞추죠. 회사 때문인 게 분명한데, 회사에서 숨기고 있어서 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찾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그건 영화 속 형사의 입장에서 이고, 관객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특히 직장인이라면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예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회사 일이 힘들 때면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할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곤 생각을 접죠. 그만 두면 뭐하죠? 회사를 직접 차리지 않는 이상, 다른 회사를 다녀야겠죠. 그러면 뭐가 달라질까요? 현재와 비슷하겠죠. 그럴 바에는 어떻게 하든 현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런데 그 상태가 계속 되면 어떻게 될까요. 참고 참고 또 참고... 내 손에 일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 상황이라면 그 사면초가의 상황을 어떻게 타계해야 할까요. 일을 잘 못하면 짤릴까봐 전전긍긍하며 어떻게 일을 더 잘 할까 고민하겠죠. 하지만 일과 회사, 그리고 사람들 자체에 신물이 나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죠. 김병국 과장에게 닥친 문제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많은 직장인들에게도 해당하는 문제겠죠. 



영화 <오피스>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그렇게 김병국 과장은 괴물이 되었어요. 영화는 김병국 과장이 왜 일가족을 살해했을까 에서, 김병국 과장이 회사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해 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회사 사람들 하나하나의 진짜 모습을 천착해 들어가죠. 가지각색입니다. 그렇지만 크게 보면 한통속이죠. 부장이 과장을 쪼면, 과장은 대리를 쪼고, 대리는 사원을 쪼고, 사원은 인턴을 쫍니다. 김병국 과장과 비슷한 부류라는 이미례 인턴을 제외하곤, 김병국 과장에게 죽어가죠. 괴물이 된 그에게 말이에요. 


이 모습을 보고 몇 가지 생각이 납니다. 김병국 과장이 많은 직장인을 대표하는 캐릭터이긴 합니다만, 그처럼 괴물이 되는 직장인이 많을까요? 일가족을 죽이고, 회사 사람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물론 거의 없을 거예요. 아니, 없다고 보는 게 무방하겠죠.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너무 오버 한다고, 말이 되는 스토리를 보여주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적은 아닌 것 같아요. 김병국 과장으로 대표 되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직장인이 얼마나 아프고 마음이 곪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한 거라 봐요. 날카로운 칼을 들고는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리네 직장인의 자화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회사를 넘어 결국은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죠. 그러고는 그에게 쥐어주는 게 칼입니다. 


또 하나는 이런 거예요. 김병국 과장은 자신이 일하는 영업 2부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죽이죠. 그 죽이는 장면 하나하나가 일품이었어요. 스릴러 영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에 근접했죠. 심장이 쫄깃쫄깃한 게, 그 여파가 쉽게 가시지 않았어요. 이런 영화적 접근도 접근이지만,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 마디로, 부서원들만 죽이면 뭐합니까? 변하는 건 없는데요. 


김병국 과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렇게 센세이션할 일을 저질러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이죠. 물론 영화에서 그가 세상을 바꿀 요령으로 그러진 않았어요. 괴물이 되어서 저질렀을 뿐이죠. 그 자리에서 이 영화는 멈춘 거예요. 더 이상 나갈 수 없었죠. 훌륭하게 문제 제기를 했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또 하나의 괴물을 등장 시켜 문제 제기 차원에서, 영화적 재미를 더하는 쪽으로 급 선회를 하죠. 그 때문에 영화가 조금 애매해졌다고 생각해요. 안타깝죠. 



영화 <오피스>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한편 피해자가 가해자로 되어 가는 모습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예요. 너무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사회가 정상적이라면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로 될 수 있을까요? 그러면 결국엔 진짜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거잖아요. 이런 콘텐츠를 볼 때 절대적으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게 바로 이 부분이에요. 꼭. 


시종일관 씁쓸했어요.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더욱 그랬죠. 어느 정도의 공감이 갔어요. 오피스라는 소재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죠. 학창 시절, 회사, 가족, 사랑 이야기는 공감이라는 기본 무기가 장착되어 있어서 좋겠지만 식상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어요. 그런 면에서 <오피스>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호흡이 좀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영화보단 드라마로 만드는 게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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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겨울왕국>




2011년 <곰돌이 푸>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디즈니의 신작 애니매이션 <겨울왕국>. 개봉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인기가 여전하다. 북미에서는 4억 달러를 돌파하며 폭주중이라고 한다. 또한 관객은 물론 평론가들한테도 호평을 듣고 있다. 그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히 애니매이션 왕국 '디즈니'의 신작이라는 이유때문은 절대로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디즈니는 2000년 들어 예전의 명성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였다. 거의 매년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지만 사람들 기억에 새겨질 만한 작품을 생산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8년 <볼트>를 시작으로, 2009년 <공주와 개구리>, 2010년 <라푼젤>로 인상적인 면모를 선보였다. 그러던 것이 2013년 <겨울왕국>을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내용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전통적인 면을 조금 덜어내고 현대적 감각을 조금 입힌 것 때문이리라. 우선 이 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완벽히 예상되는 전형적인 해피엔딩 스토리다. 그 스토리라인에는 여지없이 태생적 핸디캡, 사랑, 배신, 음모, 모험, 우정 등이 버무려져 있다.


'괴물'이 된 공주를 찾아라


공주 '엘사'와 공주 '안나'는 어릴 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이자 자매 사이이다. 그런데 언니 엘사에겐 태생적 핸디캡이 있다.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프로즌 마법 능력. 어느 날 엘사에 의해 안나가 다치는 불상사를 겪고, 결국 왕과 왕비에 의해 격리조치 된다. 오랜 세월동안 격리조치 되어 있는 도중, 왕과 왕비가 비명횡사하게 되고 엘사가 왕위를 물려 받는다. 


몇 년 동안이나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능력을 감추고 억제해왔던 엘사. 그런 엘사였지만 왕위수여식 파티에서 생각지 못한 실수로 자신의 능력을 만천하에 공개하게 된다. 그 순간 그녀는 '괴물'로 불리게 되고, 이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산으로 오른다. 그곳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언니 엘사를 찾아나서는 안나. 과연 그녀들은 무사히 귀환할까? ⓒ디즈니



한편, 안나는 엘사를 찾아 나서고 도중에 크리스토프와 조우해 같이 여행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엘사를 찾은 일행. 하지만 엘사는 자신이 휘황찬란하게 지은 얼음 궁전에서 떠나기가 싫다. 비록 자신때문에 세상이 '겨울왕국'으로 변했어도 말이다. 그녀는 세상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고 상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신도 통제하지 못할 '괴물'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말이다. 과연 '겨울왕국'의 운명은 어찌 될까? 


지구의 맏형 '미국', 다시 돌아와줘


이 영화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사랑만이 통제 못할 악랄한 마법을 푼다'이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지만, 엘사와 안나의 진정한 사랑으로 겨울왕국은 본래대로 돌아오는 결론을 얻는다. 그럼 이를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국가적인 차원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바로 '미국'의 차원에서 말이다. 미국을 엘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괴물 같은 능력을 가진 나에게로 다가오지마! 다칠지도 모르니! ⓒ디즈니



'전 세계는 미국을 싫어하지만, 미국은 그 사실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오래전이고, 지금의 미국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건 아마도 부시 정부때 절정에 달했던 명분 없는 타국 침략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득을 위해, 국가의 힘을 빌린 파렴치한 행태. 지금의 오바마 정부도 마찬가지다. 2013년 전 세계적인 핫 이슈로 떠올랐던 미국 정부의 빅 브라더적인(정부가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행태. 이제는 '전 세계가 미국을 싫어하고, 미국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자신도 통제하지 못할 '괴물'같은 능력을 앞세운 채 세계를 상대로 그 힘을 과시하더니 말이다. 영화에서 엘사는 그 힘이 몰고올 후폭풍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려움에 떨고, 결국 그 힘의 후폭풍으로 스스로 고립되는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비약적인 해석일지도 동심을 해치는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미국이 지구의 맏형이니까 다시 돌아와서 잘 해보자는 얘기다. 이에 미국은 형식적으로 몇 번 거절해주고, 다시 돌아와 지구의 맏형으로써 진정한 사랑으로 온 세계를 보호한다는 결론.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디즈니의 탁월한 선택이다. 


'역시 디즈니'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OST


그건 그렇고 이 영화의 OST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디즈니'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사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디즈니표 사운드트랙이다. 과거 전성기였던 1990년대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 <라이온킹>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미녀와 야수>의 'Beauty and The Beast',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 <뮬란>의 'Reflection' 까지. 당시 이 영화들의 사운드트랙은 빌보드차트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었다.


디즈니로썬 이번 <겨울왕국>의 'Let It Go'로 오랜만에 불후의 명곡을 하나 배출하게 된 것 같다. 이를 증명하듯이, 'Let It Go'는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상에서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결정적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썬 1995년 <포카혼타스>의 'Colors of The Wind' 이후 18년 만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답게 굉장히 많은 노래들이 나오는데 너무나도 좋은 곡들이다. 이 영화에 대한 다른 모든 걸 욕해도 OST만은 욕할 수 없을 것이다. 욕하기는커녕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지는 의미는 1990년 디즈니 왕국 전성기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그시절의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OST는 그 최전방에서 뒤쳐지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끌어당기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OST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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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0년 전인 1993년, 한국 영화 흥행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영화가 나타납니다. 거장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한국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이죠. 당시에는 서울 관객만을 집계했기 때문에, 더더욱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수치를 지금으로 옮겨보자면 400만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대표적인 예로, 올해 초에 개봉해 450만 급 흥행을 달성한 <신세계>가 서울 관객이 140만 명 정도였으니까요. 이를 북미로 치환하면, 1930년대 개봉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당시에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지만 그 수익을 지금의 가치로 환원하면 역대급 흥행의 반열에 오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과 10년 후인 2003년, 역시나 한국 영화 흥행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영화가 나타납니다. 아슬아슬하게 2003년도 끄트머리에 개봉해 무지막지한 흥행을 올렸던 <실미도>. '전무후유'한 1000만 명 관객 돌파였습니다. 지금이야 한 해에 몇 편이 1000만 관객을 달성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습니다. 


사실 이런 흥행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해가 1999년입니다.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200위 권 안에 드는 유일한 2000년도 전의 영화 두 편 <쉬리>와 <주유소 습격 사건>. 이 두 영화는 각각 500만, 200만 이상의 흥행을 올립니다. <쉬리>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도 흥행 30위권에 위치해 있죠. 마치 1997년에 개봉해 지금까지도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2위에 위치해 있는 <타이타닉> 처럼 말이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한 때 숫자에 빠져 영화를 흥행 성적으로 평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죠. 그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북미, 한국 박스오피스 순위를 어느 정도 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퇴색했고, 심지어 안 본 영화들도 많습니다. 훗날에는 흥행할수록 오히려 보지 않을 수도 있을지도요?


그럼에도 엄연히 문화산업의 최정점에 서 있는 영화의 흥행 역사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네요. 또한 이를 궁극의 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의 일환으로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에 노벨문학상 시즌에 맞춰 역대 노벨문학상을 총정리하는 리스트 업로드처럼 말이죠.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저만의 궁극 리스트를 올려볼 생각입니다. (문학으로 인류에 공헌하다, 노벨 문학상의 모든 것)



한국 영화 1000만 관객 리스트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참고했으며, 흥행 순위 순입니다.)

특이한 점이 눈에 띕니다. 

1. 총 9개의 작품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였는데, 1위 <아바타>를 제외하곤 전부 한국 영화. 

2. 9개의 작품 중 단 한 편도 감독이 겹치는 경우는 없지만, 주연 배우는 몇몇 겹친다. 

(설경구-<해운대>와 <실미도>, 류승룡-<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3.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매년 1편씩,

2009년 이후에는 한 해에 2편이 나오던가 아예 나오지 않던가. 

4. 논외로, 2013년에는 1000만 관객에 가장 가까이 갔던 3편의 영화가 있었다. 

<아이언맨3>, <설국열차>, <관상>. 모두 센세이션에 가까운 관심을 받았지만, 기묘하게 1000만 관객에 도달하지 못하고 900만에 머물렀다. 





아바타(Avatar) [13,624,328명]

2009년 12월 17일 개봉/SF, 액션, 어드벤처/162분/12세이상관람가/미국

감독: 제임스 카메론/주연: 샘 워싱턴, 시고니 위버





괴물 [13,019,740명]

2006년 7월 27일 개봉/SF, 가족, 드라마/119분/12세관람가/한국

감독: 봉준호, 주연: 송강호, 박해일, 고아성, 변희봉, 배두나






도둑들 [12,983,330명]

2012년 7월 25일 개봉/액션, 범죄/135분/15세이상관람가/한국

감독: 최동훈, 주연: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임달화,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






7번방의 선물 [12,807,677명]

2013년 1월 23일/코미디, 드라마/127분/15세이상관람가/한국

감독: 이환경, 주연: 류승룡, 박신혜, 갈소원, 오달수, 김정태, 정만식






광해, 왕이 된 남자 [12,319,542명]

2012년 9월 13일 개봉/사극, 드라마/131분/15세이상관람가/한국

감독: 추창민, 주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왕의 남자 [12,302,831명]

2005년 12월 29일 개봉/사극, 드라마/119분/15세이상관람가/한국

감독: 이준익, 주연: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태극기 휘날리며 [11,746,135명]

2004년 2월 5일 개봉/전쟁, 드라마/148분/15세관람가/한국

감독: 강제규, 주연: 장동건, 원빈, 이은주






해운대 [11,453,338명]

2009년 7월 22일 개봉/액션, 드라마, 어드벤처/129분/12세이상관람가/한국

감독: 윤제균, 주연: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실미도 [11,081,000명]

2003년 12월 24일/전쟁, 액션/135분/15세관람가/한국

감독: 강우석, 주연: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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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