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쿠만>


영화 <바쿠만> 포스터 ⓒ디스테이션



남들보다 조금 늦게, 중학생 때부터 만화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만화는 나쁜 거라는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만화를 멀리했다. 그 때문인지 처음 접한 만화책은 다분히 교육적이었다. 아직도 장면 장면 기억이 생생한 <미스터 초밥왕>. 주인공 쇼타의 피나는 노력이 골격을 이룬다. 나중에는 회사에서 교재로도 쓰였다고 들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지금도 만화를 끼고 산다. 교육적인 내용에서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킬링 타임용으로 선회한 다음, 소년 만화를 멀리하고 성인 만화를 즐기게 되었다. 여기서 성인 만화는 소년 대상이 아닌 성인 대상의 다소 어려운 만화를 말한다. 그 일환으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즐긴다. 웬만한 소설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수준이다. 


그 사이를 미묘하게 왔다갔다 하는 만화들도 있다. 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건 맞지만, 스타일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오바타 타케시의 만화들인데, <고스트 바둑왕> <데스노트> 그리고 <바쿠만>까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세 작품 다 섭렵했는데, 확실히 진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본 만화계의 실제를 보여주다


<바쿠만>이 영화로도 나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기가 많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런 소재는 흔치 않다. 내부 사람이 아닌 이상 어디서도 들어보기 힘든 것이다. 다름 아닌 일본 만화계의 실제 말이다. 이 만화는 일본 만화에 대한 만화였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 재미있게 접했을 게 분명하다. 


영화로 나오면서 부침이 있었을 것이다. 방대한 스토리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축약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 어떤 만화보다 대사가 많고 촘촘한 스토리라인을 자랑하는 오바타 타케시의 파트너 옿바 츠구미의 원작이라는 점이 만만치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부침을 딛고 나온 영화는 상당히 깔끔했다. 


영화 <바쿠만>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영화는 시원시원하게 전개된다. 원작을 보지 않아도 누구나 알 만한 쉬운 스토리라인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는 게 좋지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게만 진행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주인공인 고교생 만화가 콤비가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모습, 그 와중에 비춰지는 '소년 점프'로 대변되는 일본 만화계, 소년 만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랑과 우정과 노력과 승리의 순간들, 그리고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성장까지. 기대 이상의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뜻하지 않게 마음을 졸이고 탄성을 자아내는 장면들이 다수 보인다. 재미가 쏠쏠하다. 며칠 밤을 새워 작성한 콘티를 출판사에 직접 찾아가 검토 받는 장면이라든지, 매주 '독자투표'로 바뀌는 순위를 기다리는 장면이라는지,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라는지. 특히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특수 효과를 대폭 넣어 영화 만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펜질 몇 번에 컷이 완성되고, 그렇게 완성된 컷들이 작업실 전체를 떠 다니니는 장면이 황홀하게 전개된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황홀의 깊이가 더할 것이다. 


영화 <바쿠만>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우정, 노력, 승리', 실력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


'우정, 노력, 승리'는 소년 만화의 정수를 이룬다. 엄연한 소년 만화이 원작인 이 영화에도 역시 피나는 노력과 피튀기는 경쟁을 넘어서는 우정, 그리고 달콤하고 가슴 벅찬 승리가 존재한다. 닭살도 돋고, 이 삭막한 세상에 더 이상 통할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소년 만화라면 절대로 추구해야 할 것들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리고 소년 만화를 만드는 사람들 또한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삭막한 세상이다. 앞으로도 더 삭막해질 것 같다. 그런 세상에서는 어떤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까.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으니, 내 한 몸이나 잘 건사하며 남이 안 되길 바라고 있어야 할까. 세상이 비열하니, 비열하게 살아가지 않는 게 바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까. 


영화 <바쿠만>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비인간적인 경쟁이 삭막한 세상을 만든 주범 중에 하나다. 이 영화에서도 비인간적인 경쟁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괴롭힌다. 아무리 그들의 꿈이 만화가라도 해도 말이다. 그렇지만 결코 비열한 경쟁이 아니다. 온갖 술수가 판치는 경쟁이 아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경쟁이다. 물론 잔인하다. 경쟁에서 뒤쳐지면 바로 나락이다. 최고의 인기작을 발표했어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면 만화가를 계속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정, 노력, 승리'은 결코 이상적이고 코웃음나는 단어들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잔인하리만치 실력으로만 승부가 나는 경쟁이 있다. 실력이 있어야만 우정이 있고 노력을 할 수 있고 승리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제목인 <바쿠만>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쿠만>은 극 중 주인공의 삼촌이 그린 인기작의 제목인데, 독자 투표 2위까지 올라갔음에도 순식간에 꼴등으로 전락해 연재가 중단된 비운의 작품이다. 그는 연재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머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엄청난 경쟁과 철저한 마감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 그리고 몸의 이상이 그 이유였다.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오로지 노력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지금 시대에는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바쿠만>에는 실력을 쌓는 과정이 나오지 않는다. 최고의 자리로 오르는 과정이 나올 뿐이다. 그들은 고등학생이다. 그렇지만 학교 생활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로지 '만화가'가 될 꿈만 꾸었다. 그리고 앞만 보고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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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