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예쁜 외관보다 안전이 우선일 줄 알았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그렌펠 화재 사건: 진실 속으로>
영국 런던의 켄싱턴-첼시 왕립구는 영국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자치구다. 고급 주택과 해외 대사관들이 즐비하다. 그 와중에 '그렌펠 타워'라는 지자체 소유의 고층 임대 아파트가 존재하니 그 주변은 경제적으로 영국 전체에서도 하위에 속한다고 한다.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이니 만큼 언젠가 문제가 터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2017년 6월 14일 이른 새벽에 일이 터진다. 4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가파르게 위를 향했고 오래지 않아 꼭대기 24층까지 옮겨 붙었다. 이 참사로 72명이 사망했고 70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불과 얼마 전 최종 보고서가 나왔으나 처벌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그렌펠 화재 사건: 진실 속으로>는 제목 그대로 그렌펠 참사와 진실을 파헤치는 목적의 작품이다. 이미 진상조사의 최종 단계까지 끝난 사건인 만큼 앞뒤 잴 것 없이 진실 속으로 파고들면 될 것이다. 과연 그곳에 얼마나 충격적인 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얼마나 안타깝고 슬프고 억울할 것인가.
런던의 고층 아파트는 절대 불이 번지지 않을 거란 믿음
우선 화재 당시로 가보자. 아수라장이 된 현장이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영국'을 향한 믿음이 탑재되어 있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우리를 구하러 오겠지, 저버릴 리가 없어' 하는 믿음 말이다. 영국에는 수많은 이민자가 살고 있고 아무래도 그렌펠 타워에 상당히 많이 살고 있었으니, 그들이 꿈과 희망을 찾아 영국으로 온 이유가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영국에는 '대기 정책'이라는 게 있다. 화재 시 두 시간 동안은 불이 다른 집으로 번지지 않도록 건물이 지어졌다는 믿음에서 나온 정책이다. 런던 소방대는 대기 정책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특히 고층 아파트 화재에서는 절대 번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나라의 세월호 참사 초기 대응이 떠오른다. 객실 매니저가 무조건 안에서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으로 승객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매뉴얼에 따랐다고 하나 정작 선장과 선원들은 재빠르게 빠져나갔으니 앞뒤가 전혀 맞지 않다. 가만히 있으면 국가가 나서서 구해 줄 거라는 믿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건이겠다.
그렌펠 참사의 경우는 여기에 더해 '화재'에 관한 거대한 흑막이 존재한다. 앞서 말한 '런던의 고층 아파트는 절대 불이 번지지 않을 거란 믿음'에는 그래도 합당한 근거가 있을 텐데 그렌펠 타워에는 해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1974년에 지어진 후 오랫동안 방치 수준으로 놔뒀다가 2010년대 들어 리모델링을 실시한다. 외부를 외장재로 덮는다는 것이었다.
대규모 규제 완화 정책과 방염 안 되는 외장재의 만남
문제는 바로 그 외장재였다. 그렌펠 타워 리모델링 당시 ACM이라는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으로 된 외장재를 사용한 것이다. 불이 붙으면 아주 활활 타오를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외장재를 사용해 리모델링을 한 걸까? 안전보다 예쁜 외관을 우선시한 걸까? 작품은 다른 이유들이 얽히고설켜 있다고 본다.
우선 당시 영국이 전국가적으로 펼친 대규모 규제 완화 정책이 있다. 하여 영국에 ACM 외장재를 대거 팔 수 있었다. 다른 빅마켓 국가들 대다수가 규제 강화를 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알루미늄 외장재를 팔기 어려웠던 반면 영국에 팔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지방 의회가 담당하는 그렌펠 타워 리모델링은 또 다른 흑막이 있었다.
이른바 '아다리'가 잘 맞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런던 지방 의회는 '내놓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렌펠 타워를 리모델링하는 데 무조건 가장 저렴한 외장재를 원했던 것이다. 내구성이나 방염 같은 건 뒤로 미루고 가장 저렴하고 또 예쁜 외관을 형성할 수 있는 자재를 찾았다.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너무 과할까?
그렇지 않다. 참사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은 언제든 어디서든 날 수 있다. 그리고 번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렌펠 참사처럼 번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앞서 그런 짓들을 하지 않았다면 수십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는 참사까진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왜 알고도 하는가. 진실을 알고 나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기억하고 재발 방지에 힘써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