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초코파이 광고에 나왔던 유명한 카피입니다. 남성분들에게서 자주 언급되는 이 문구는, 뭇 여성분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는 문구이기도 하지요. 어떻게 말하지 않아도 아느냐? 표현을 해야지 알지! 


하지만 오랜 세월 같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말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옵니다.(그럴거라 생각됩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요.)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의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가타부타 말씀 없이 걸음을 옮기십니다. 다시 보면, 젊은 남성이 주장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무조건 오랜 세월 함께 한다고 무언의 대화가 실현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사랑과 존경, 신뢰와 의지가 내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 비로소 서로를 한없이 감동시킵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그들 만의 속삭임이죠. 


어느덧 한 겨울이 찾아왔고 연말이 다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충만한 시간들을 보낼 것입니다. 반면 그만큼의 사람들이 어느때보다도 사랑에 목말라 할 것입니다. 그 모든 분들께 제가 느꼈던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오늘 일기는 일기가 아닌 메모이지만, 꼭 전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있어 행복한 연말연시가 되시길. 



그들의 무언의 대화. http://www.flickr.com/photos/36595903@N00/1267269122/




2012년 7월 24일

지하철 6호선 안이다. 

내 옆에 할아버지가 앉으셨다. 

할아버지께서 맞은 편을 보며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신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인사를 하신거겠지 생각하며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계속 고개를 끄덕끄덕. 뭔지 모를 행동들을 하신다. 

그래도 그러려니. 할아버지들이 가끔 하시는 그런 동작인 듯. 

문뜩 맞은 편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선하게 생기신 할머니시다. 

할머니께서도 고개를 끄덕끄덕. 

아, 옆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와 부부셨구나. 

할아버지의 알 수 없는 끄덕거림은 할머니와의 무언의 대화였구나. 

"나 여기있어, 할멈"

"응, 나도 여기 있어, 할아범"

할아버지께서 내리려고 일어나신다. 그 눈빛과 행동을 읽고 같이 일어서는 할머니. 

할머니가 일어서는 할어버지를 자못 사랑스런 눈빛으로 올려다 보신다. 

어떤 존경의 마음이 거기에 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그들의 지난 세월이 읽힌다. 저런 삶을 살고 싶다. 

잘 모르지만, 알 수 있을 듯하다. 

남편이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부인이 남편을 얼마나 존경하는 지를.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고 신뢰하는 지를. 

그 짧은 순간에 전해진 사랑의 대화가 나를 가슴벅차게 했다. 

전해주고 싶다, 그 감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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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비만이 부쩍 늘었습니다. 어른들은 말하곤 하죠. 요즘 애들은 밖에서 뛰어놀지 않고 집안에 틀어 박혀서 컴퓨터만 한다고. 그래서 뚱뚱해지는 거라고. 물론 거기에는 비만이 되기 쉽게 만드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요즘'은 언제부터 일까요? 즉, 밖에서 뛰어놀지 않고 집안에 틀어 박혀 컴퓨터만 하게 된 시기 말이죠. 아이러니한 건 TV가 보급되었을 때도 TV는 아이들을 불러모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컴퓨터만큼 중독성이 심하지 않았었나 봅니다. 제 일기에 의하면 1990년대 초에 컴퓨터가 보급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같은 시기에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는데,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는 하교 이후 저녁 즈음에 매일 해오던 축구를 못하게 되자 울었던 기억도 나네요. 또 그때만 해도 동네 또래 아이들이 전부 몰려나와 해가 질때까지 같이 놀곤 했습니다. 그때 같이 놀았던 친구, 형, 동생들을 지금 보면 서먹서먹해서 아는 체도 못하죠.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팽이치기'입니다. 하나에 500원인가 했던 기억이 납니다. 줄은 한 번 사놓으면 거의 바꾸는 경우가 없었는데, 팽이는 여기저기 부서지곤 해서 자주 바꿨었죠. 시합이라도 있을라치면 무릎이 까지는 걸 무릅쓰고 팽이를 힘껏 상대 팽이로 향해 돌진시켜 날려버리곤 했었습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게해서 이기면 그 팽이를 갖거나 아니면 먹을 걸 사주는 내기도 존재했었던 것 같네요. 





1994년 6월 23일 목요일


제목 : 팽이치기

오늘은 팽이치기를 했다. 

편을 갈라 2명, 2명으로 대결했다. 참 재미있었다. 

나는 팽이치기를 매일 한다. 팽이치기를 매일해도 나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없고 더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몇 시간 동안 팽이치기 놀이를 하며 논다. 



기산풍속도 <팽이치기> ⓒ문화콘텐츠닷컴



1996년 9월 8일 일요일


제목 : 팽이놀이

동네친구들과 나, 동생은 팽이놀이를 하였다. 

나는 오랜만에 했기 때문에 잘하지 못했다. 

먼저 동네형과 시합을 하고 다른 아이들과 편을 짜서 시합을 했다. 

우리 동네에는 4명이 잘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중에 내가 속해 있다. 

하지만 4명 중에는 3번째로 잘한다. 그래서 나는 4위하고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그래서 기분이 참 좋았다. 

기쁨은 잠시쁜 다시 4위와 해서 지게 되었다. 

4위와의 싸움은 계속 되었다. 결국 나는 지게 되었다. 


팽이치기뿐만 아니라, 달리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얼음땡도 하곤 했습니다만 제 일기에서 찾아볼 수는 없네요. 반면 '덤블링'이라는 제목의 일기가 눈에 띕니다. 제 기억으로 1990년대 말까지 하곤 했었습니다. 덤블링의 주인은 항상 할아버지였던 기억도 생생하고요. 한 번 뛰기 시작하면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놀이가 시작되죠. 더구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습니다. 반면 난 가만히 있는데, 무엇인가가 나를 뛰어주는 느낌이 들 때면 일종의 평화(?)를 맛보곤 했던 것 같네요. 





1995년 4월 19일 수요일


제목 : 덤블링

오늘은 친구와 함께 덤블링을 탔다. 

친구와 함께 타서 더욱 재미있었다. 

10분에 200원인데 20분을 탔다. 

친구가 800원을 내고 20분을 태워준 것이다. 

그 이유는 어느 날 그 친구가 준비물을 않가지고 와서 500원을 빌려주웠는데 그걸 값은 것이다. 

다음에도 와서 타고 싶다. 



지금은 정말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놀이들이 되었네요.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당연해지고, 걷는 것보다 서거나 앉는 것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보다 손을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죠. 그 덕분에 제가 이렇게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지만, 정작 앞집, 옆집, 뒷집에 사는 사람들과는 쉬이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가끔 추억을 끄집어내는 건 심신에 참 좋은 것 같네요.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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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십수 년 전 한창 예체능 붐이 일었습니다. 그 여파로 소위 3대 예체능 학원인 '태권도(검도)' '피아노' '미술' 학원을 다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저도 그 피해자(?)로, 초등학교 5~6학년 때 태권도 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1년 정도씩 다녔었습니다. 그것도 동시에 말이죠. 두 학원이 서로 5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가능했었죠.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예전에 망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알아보니 PC방으로 변해있는지가 오래 되었네요. 왠지 씁쓸합니다.)


저는 상남자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아니 오히려 미소년(?!)에 가까운 스타일입니다만, 손이 굉장히 우락부락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손의 움직임이 상당히 느린 편이죠. (가까운 예로,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굉장히 잘 합니니다만 손이 굉장히 느린 걸로도 유명했습니다.) 당연히 피아노 학원은 적성에 맞지 않았죠. 외우기는 좋아해서 이론 수업은 곧잘 따라갔지만, 실기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피아노를 쳤다하면 선생님께 손등을 맞기 일쑤였죠. 그래도 불굴의 의지로 꿋꿋이 다녀서 체르니 100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30을 한 지 오래였는데 말이죠... 당시의 심정을 알아볼 요령으로 일기를 찾아봤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 태권도는 제 적성에 완전히 맞았습니다. 3살 터울인 동생과 같이 다녔는데, 하교해서 집에 돌아오자 마자 도복으로 갈아입고 맨발의 슬리퍼 차림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와 동생과 제가 손을 붙잡고 집 근처에 있는 태권도 학원에 가서 처음으로 등록을 하던 날. 


1995년 6월 23일 금요일


제목: 태권도

오늘 처음으로 태권도 학원에 가서 태권도를 배웠다. 

어제 아빠와 동생과 같이 태권도 학원에 가서 입학을 했다. 

태권도 학원에 입학한 이유는 커서도 도움이 되고, 

아버지께서 태권도 학원에 입학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태권도에 입학 하지 실었다. 

그래도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근처에 살고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같은 초등학교도 다니고 있었던 절친한 친구도 같이 다녔습니다. 그 친구와 어울리느냐고 동생은 뒷전이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또 그 친구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어김없이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며 순대를 먹던 기억도요. 새삼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집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 친구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헤어지게 되었는데 말이죠.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저는 태권도 학원에 아주 잘 적응했습니다. 승급심사에서도 떨어지지 않았죠.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떨어지게 되면 한 달치 학원비가 날아가 버렸기에 기를 쓰고 해야 했었죠. 당시에 성인부도 있었던 걸로 봐서는 지금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지금은 아예 태권도 학원을 찾아보기가 힘드네요. 우리 동네만 그런건가요?


1996년 5월 26일 일요일


제목: 국가원심사

오늘은 국기원에서 심사를 봤다. 

왜냐하면 풍띠를 따기 위해서이다. 

풍띠는 빨간색과 검정색이 반씩 썪여 있는 띠이다. 

검정띠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먼저 품새를 한 다음 겨루기를 하고,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참 즐겁고 재미있는 하루라고 생각된다. 


국기원 건물


저는 1장부터 8장을 모두 다 외워서 승급심사를 모두 통과하였고, '고려, 금강, 태백, 평원' 순의 품새에서 고려를 외워서 1품까지 딸 수 있었습니다. 품을 따기 위해서는 직접 국기원에 가서 심사를 봤어야 했는데요. 일기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심사 시간과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두치와 뿌꾸'의 방영 시간이 거의 겹처서 심사는 뒷전인 때도 있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엄청난 속도로 심사를 치른 뒤 필사적으로 컴 백 홈을 했던 것입니다. 재미있고 귀여운 일화죠. (아래는 태권도에 대한 마지막 일기입니다.)


1996년 8월 30일 금요일


제목: 태권도 심사 

오늘은 태권도에서 심사를 봤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도복을 입고 태권도 학원에 갔다. 

가서 먼저 국민의례를 한 다음 이름을 부르는 순서대로 나와 

먼저 품새를 한 다음 싸우라비를 쳤다. 

나는 최고기록(파괴력) 218점이 나와 친구를 데리고와 싸우라비를 찰 수 있는 티켔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참 좋았다. 

다음 심사 때는 더 좋은 점수에 도전해 보아서 도전에 성공하겠다. 


저에게 태권도 학원은 지치고 힘들었던 학교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땀 흘리며 뛰고, 무언가를 있는 힘껏 발로 차고, 무도인(?)으로써의 우정을 다지면서 말이죠. 추억이 따로 없습니다. 이런 게 바로 인생을 관통하는 특별한 추억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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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3년부터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되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하루를 잘 쉬었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한글날'이 공휴일이었던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무척 어릴 때인 1990년도에 휴일이 많은 것이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경제 단체의 문제 제기로 인해, '국군의 날'과 함께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식목일'과 '제헌절'의 경우에는 머리가 크고 기억이 생생한 몇 년 전에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식목일'은 국민식수(國民植樹)에 의한 애림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하여 1949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어 1959년까지 이어졌다가 1960년에 폐지되었고 다시 1년 만에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82년에 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2006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일기를 통해 옛날 '식목일'의 풍경(?)을 살펴보자. 


1964년 4월 달력. 당시만 해도 식목일은 정말 중요한 날이었다. 4월을 대표하는 날. ⓒ한국세시풍속사전


1995년 4월 5일 수요일


제목: 식목일

오늘은 식목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푹 자고 아주 많이 놀았다. 

밖에는 나가지 않고 집에 처밖여서 텔레비젼(TV)를 보고 놀았다. 

TV가 너무 재미 있어서 밖에 않나간 것이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그렇다. 1995년에는 '식목일'이 당연히 쉬운 날이었다. 집에서 쉬면서 놀고 TV도 보고. 

'제헌절'은 5대 국경일(광복절, 제헌절, 개천절, 삼일절, 한글날) 중 하나로, 1948년 7월 17일에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을 기념하는 날이다.(7월 17일은 조선의 건국일이라고도 한다.) 제헌절은 2007년까지 변함없는 법정 공휴일로 군림(?)해 왔다. 그러던 것이 2006년 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식목일'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제헌절'은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5대 국경일 중 하나이다. 올해부터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됨에 따라 5대 국경일 중에서 '제헌절'만이 비공휴일이다. 조만간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길 바라며, 옛날 일기 속 휴일 '제헌절'을 들여다본다. 


대한민국 헌법공포 기념, 1948. 8. 1.


1995년 7월 17일 월요일


제목: 제헌절

오늘은 제헌절이다. 그래서 오늘은 학원을 셨다. 그래서 참 좋았다. 

또 오늘은 만화, 재미있는 영화도 많이 해서 좋았다. 

특히 재미있던 영화와 만화는 백 투 더 퓨터Ⅰ,Ⅱ,Ⅲ과 꼬비꼬비 총 집합이었다. 

백 투 더 퓨터는 토요일부터 해서 지금까지 했다. 

또 꼬비꼬비는 1시간 50분동안 총집합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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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커녕 DVD도 없던 시절, 비디오 테이프 빌려보는 것도 사치였던 그 시절에는 매주 토요일 밤이 영화보는 날이었다. 대표적으로 KBS <토요명화>, MBC <주말의 명화>. 오늘은 어느 채널에서 재미있는 영화가 할까? 주말에는 부모님과 같은 방에서 자기 위해 이불을 깔고 누워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안방 영화'는 온 가족을 한 방에 모이게 하는 매개체이자,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하던 시기에 이를 해소해줄 거의 유일한 세상과의 다리였다. 


kbs <토요명화> 오프닝


KBS <토요명화>는 1980년 말에 시작해 2007년까지 28년 간 장수한 프로그램이다. 2005년 후반 들어 새벽 시간대로 옮겨지면서 하락세를 탔다. 솔직히 말하면, 2000년대 이후에는 거의 챙겨보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는 컴퓨터를 통해 언제든 찾아서 볼 수 있었고, 또 <토요명화>의 동시간대에 재밌는 프로그램들이 즐비했다. 결정적으로 케이블이 들어오면서 예능, 드라마, 그리고 영화까지 봐야할 게 너무나도 많아졌다. 


mbc <주말의 명화> 오프닝


MBC <주말의 명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프로그램은 KBS <토요명화>보다 훨씬 오래 전인 1969년부터 방영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과연 어떤 영화를 방영했을까? 대부분이 지금은 전설로 내려져오는 영화들일 거라 생각해본다. <토요명화>와 함께 꾸준히 토요일 밤을 책임지던 <주말의 명화> 또한 2005년부터 새벽 시간대로 옮겨지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더니, 2007년에 폐지되고 말았다. <토요명화>와 함께 전성기를 누리다가 거의 동시에 하락세를 탔고, 함께 마지막을 보냈던 것이다. 


일기를 들춰보니 1996년 6월에 '토요명화'라는 제목으로 쓰인 일기가 보인다. 당시 <토요명화>는 최고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토시 하나 바꾸지 않은 17년 전 어느 날의 일기를 공개한다. 


1996년 6월 22일 토요일


제목 : 토요명화

오늘밤에 KBS 2(7번)에서 토요명화를 봤다. 제목은 '레모'이다. 

참 재미있고, 즐거운 영화이다. 주제는 레모가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것이다. 

그 영화를 다 보니 11시 쯤이 되었다. 오늘 밤을 감동시킨 영화였다. 


영화 <레모> 포스터


영화 <레모>? 전혀 생각 안 난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았다. 1986년에 개봉한 액션 영화로, <007-골드핑거>, <007-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 등 007 시리즈로 유명한 '가이 해밀톤' 감독이 연출했다.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비밀 첩보원인 주인공 레모가 습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다. 이후 되살아난(?) 레모가 신분을 감추기 위해 성형 수술을 한 후, 한국인(!) 전노인으부터 '시난주'라는 엄청난 무술을 배운다. 이 무술로 그는 총알을 피하고 발을 땅에 닿지 않으면서 공중에서 뛸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미래의 우주방어 시스템을 건설하고 있는 악당(?)을 찾아 비밀을 캐내고 무찌는다는 것이다. 


영화 <레모>의 한 장면


오른쪽이 주인공이고, 왼쪽이 한국인 전노인이다. 물론 실제로 한국인은 아니고,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일찍이 1973년에 미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명연기자였다. 한편 이 영화의 주인공인 프레드 워드는 얼마전까지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10월의 마지막 주가 지나고 11월이 시작되는 이번주 주말에는 오랜만에 오래된 영화를 한 편 보시는 게 어떠신지? 더불어 지나간 일기도 들춰보심이?


함께 읽어볼만 한 '책으로 책하다'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2013/10/22 - [생생 스포츠]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1993년 한국시리즈 해태-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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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한국시리즈 해태-삼성]


해마다 이맘 때 한국야구라는 꽃은 만개한다. 흔히들 말하는 가을 야구(플레이오프)를 하기 위해, 6개월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짓고 결실을 맺기 때문이다. 올해는 넥센 히어로즈가 창단 5년 만에 드디어 준플레이오프에 올랐었고, LG 트윈스가 자그만치 11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올랐었다. 정규 시즌 1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있다. 


올해 정규 시즌은 유난히 치열했는데, 특히 상위 4팀의 싸움이 그랬다. 1위 삼성과 2위 LG가 2게임차, 2위 LG와 3위 두산이 1게임차, 3위 넥센과 4위 두산이 불과 0.5게임차. 독주가 없는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반면 전체적으로 보면 상위 4팀의 독주였다. 4위 두산과 5위 롯데가 4.5게임차나 났던 것이다. 1위와 4위의 게임차보다 4위와 5위의 게임차가 더 벌어졌다니, 쉬이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삼성은 정확히 20년 전에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있다. 정규 시즌 성적은 2위였다. 재밌는 사실은 당시 정규 시즌에서 3위가 OB 즉, 지금의 두산이었고 4위가 LG였다는 것. 20년의 시차를 두고 데자뷰 아닌 데자뷰를 느끼게 된다. 


사실 이렇게 야구와 더불어 한국시리즈 얘기를 풀어 놓는 건 20년 전에 쓰인 나의 일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일기를 상당히 게을리 쓰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한국시리즈 7차전을 보고 그 열기에 반했는지, 나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여기 그 전문을 토시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선생님께서 그 일기장 전체에서 유일하게 "정확히 잘 관찰했다"라는 멘트를 남기셨다. 


10월 26일 화요일 맑음


제목: 야구

"나는 오늘 야구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해태를 응원 핸는데 그런데 1회말에 1점을 따냈고, 3회말에 한 점 4회말에 한 점을 따냈다. 그래서 다 합채서 3(4)점이다.(*3인지 4인지 정확하지 않다.) 6회말에 한 점 삼성은 9회초에 안타로 1점을 따냈다. 그래서 해태는 3대 1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인제 1993년 10월 26일 1993년 프로 야구는 끝났다. 삼성은 준우승을 했다."


실제 사실을 통해 1993년을 간단히 복기해본다. 주지했다시피 1993년 한국 야구 정규 시즌은 1위 해태, 2위 삼성, 3위 OB, 4위 LG였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LG는 OB(두산)을 2-1로 꺾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은 LG를 3-2로 꺾었다. 그리고 맞이한 대망의 1993년 한국시리즈 해태-삼성. 


역투하는 해태 선동렬 선수 ⓒ연합뉴스


1차전은 10월 18일 해태의 홈구장인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열렸다. 삼성은 탈삼진왕 김상엽이 6회까지 잘 던지다가 난조에 빠져 유명선으로 교체한다. 하지만 이를 기회로 삼아 해태가 7회 대량득점에 성공, 결국 5-1로 해태의 승리. 


2차전은 10월 19일 해태의 홈구장인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열렸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이 무난하게 삼성이 승리했다. 삼성 투수 김태한은 완봉승을 따냈다. 삼성의 6-0 승리. 


3차전은 10월 21일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렸다. 해태는 88년 한국시리즈 MVP였던 문희수를, 삼성은 에이스 루키 박충식을 내세웠다. 팽팽한 접전 끝에 2-2로 무승부를 거둔다. 


1993년 당시 신인이었던 삼성 양준혁 선수와 해태 이종범 선수. 각각 정규 시즌 신인왕과 한국시리지 MVP를 차지했다. ⓒ삼성라이온즈


4차전은 10월 22일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렸다. 4회 초 해태가 2점을 따내며 앞서갔지만, 삼성이 곧바로 반격하여 4-2로 역전. 급기야는 8회말에 4점 대량 득점으로 삼성이 8-2의 대승을 거둔다. 


5차전은 10월 24일 서울의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해태는 다승왕이자 1차전 승리의 주역인 조계현을 내보냈다. 해태는 1, 3, 4회말에 꾸준히 점수를 내 4-0으로 앞서간다. 이에 삼성은 9회초에 이만수가 2점홈런을 쳐 따라가지만 거기까지. 해태의 4-2 승리. 


6차전은 10월 25일 서울의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양팀은 1회부터 사이좋게 한 점씩을 냈고 2회말에 삼성이 또 한 점을 냈다. 그러다가 6회초에는 해태가 한 점을 내더니 8회초에는 두 점을 냈다. 결과는 해태의 4-2 승리. 이로써 해태는 우승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가게 된다. 


대망의 7차전. 해태가 3승 1무 2패로 앞서 가는 상황. 1승만 따내면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반면 삼성은 낭떠러지.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20년 전 나의 관찰이 정확했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1회말에 해태의 이종범이 안타로 출루한 후 도루를 성공시킨다. 이어 이종범은 4회말에 2사 1, 2루 상황에서 안타를 쳐 2-0에 기여한다. 해태는 이에 그치지 않고 5회말과 6회말에도 각각 1점씩을 낸다. 7회에 들어섰을 때의 상황은 4-0. 거의 해태의 우승 분위기였다. 삼성은 9회초에 1점을 따내 영패를 면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접전 끝에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 삼성. 1993년 한국시리즈 당시의 모습. ⓒ삼성라이온즈


20년 전 일기를 보니 대략적으로는 맞는 것 같다. 단지 3회말이 아니라 5회말에 한 점을 냈다는 것과 총 점수에서 약간 헷갈렸다는 점. 그래도 10살에 저 정도의 관찰력이면 꽤 수준급이 아닌가? 단, 맞춤법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이다. 참고로 난 삼성팬이다. 

올해 2013년에는 어느 팀이 우승의 영광을 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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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