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포스터. ⓒ월트디즈니코리아



스타워즈 시리즈에 온갖 최초와 최고의 수식어를 붙인다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영화'라는 걸 본다는 사람이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필수코스 중 하나인 것이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시리즈들인 <007>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쥬라기>, '마블' 등이 모두 영화 아닌 원작이 있는 반면 <스타워즈>는 영화가 원조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정도가 완벽한 원작 없이 영화로 만들어진 유명 시리즈이다. 


<스타워즈>라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할 순 없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신화 연구자의 필수코스인 미국의 비교신화종교학자 조지프 캠벨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니 말이다. 조지프 캠벨의 신화연구 자체가 <스타워즈>의 원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역사가 짧아 신화라고 할 것이 마땅치 않은 미국에게 선사한 현대 신화라고 할까. 미국은 <스타워즈>를 시작으로 수많은 현대 신화를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전혀 접하지 않았다. 못한 건 아니니 일부러 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너무도 방대한 세계관에 압도 당해 부담을 느꼈다. 한참 전에 끝난 시리즈를 이제 와서 다시 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10년 만에 오리지널로 돌아왔고 이듬해에는 최초로 스핀오프를 선보이며 최소 2020년 이후까지 매년 오리지널과 스핀오프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라진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오리지널과 세계관은 동일하지만 독립된 이야기를 내세우는 스핀오프를 보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이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는 나의 스타워즈 시리즈 입성의 시작이 되었다. 


실패 없는 성공을 위한 작전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국이 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숨어 살던 제국군 과학자 겔렌 어소 가족은 결국 제국군 크레닉 국장에게 걸리고 만다. 겔렌은 제국으로 끌려가는 한편 겔렌의 아내는 죽고, 겔렌의 딸 진은 탈출한다. 시간은 흘러 15년 후, 겔렌은 제국에서 행성 하나를 파괴해버릴 치명적인 무기 '데스 스타' 개발에 다시 투입되고 반군은 이 사실을 알고는 그의 딸 진을 이용해 저지하려 한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이내 설득 당하고 만 진은 호기롭게 실행에 옮기고자 한다. 하지만 완성단계에 있는 데스 스타를 파괴하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때 갤런이 극비리에 남긴 비밀 영상을 보고 데스 스타의 설계도 존재와 위치를 알아낸다. 설계도를 탈취할 가능성은 불과 2.4%, 즉 이 작전에 투입된 모든 이들의 죽음을 뜻했다. 


더군다나 반군 의장단 내에서는 그냥 항복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진은 강경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녀를 따르는 일행이 있다. 정보 요원 카시안, 무술 전사 치루트, 전투 전사 베이즈, 전향한 제국군 파일럿 보디, 그리고 새롭게 프로그래밍 된 제국군 안드로이드 K-2SO까지. 이들은 실패 없는 오직 성공을 위해 작전에 투입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확장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코리아



<로그 원>의 시작은 상당히 중구난방이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오리지널 스토리와 동떨어진 '스핀오프'를 선보임에 따른 딜레마가 존재했을 것이다. 오리지널 스토리를 전혀 몰라도 즐기는 데 큰 문제가 없게끔, 즉 새로운 팬을 위한 영화가 되어야 하면서도, 기존의 스타워즈 팬들에게 다시 없을 선물로 다가와야 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시리즈라는 큰 골격과 세계관에 속해 있거니와 스토리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했기에 영화 초반 이곳 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수시로 오가는 것이다. 제국군과 반군, 이 행성과 저 행성. 그것도 모자라 <로그 원>의 주인공들, 즉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처음 선보이는 캐릭터들까지. 


영화는 다양한 종류의 관객들에게 다양한 상황과 관계와 캐릭터를 최소한으로라도 보여주고 난 초반 이후에 비로소 날개를 핀다. 밉상 하나 없는 캐릭터 구성,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하거니와 한없이 직진에 가까운 작전 수행 과정, 이전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소규모 전투신과 볼 수 없었다는 대규모 전투신까지. 압도적이다. 


스타워즈를 모르는 이들과 잘 아는 이들 모두를 만족시킨 결과물이었다고 할까.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확장과 관련이 깊다. 스핀오프의 가능성은 스타워즈 팬의 유입을 크게 도울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비울 수밖에 없었던 구멍들을 메울 수 있게 되었다. 기존 팬들에게 큰 즐거움과 기쁨을 줄 것이다. 


'희망' 하나에의 반란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코리아



로그(rogue)는 악당이라는 뜻이다. 악질적이고 악마적 기질이 있는 류의 것이 아니고 악동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극 중에서 전 제국군 파일럿 보디가 순간적으로 생각해낸 일당의 이름이다. 이들이 수행하는 건 '반란'이다. 아직 혁명이 일어나기 전, 반대를 무릎쓰고 자신들만의 신념으로 수행하는 반란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반란은 제국에의 물리적 반란뿐만 아니라 반군연합에의 정신적 반란이다. 


이들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 수행의 원동력은 오직 '희망' 하나다. 제국의 최종병기 데스 스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동되지 않게 하지 않는 이상 단순히 반군연합뿐만 아니라 이 은하계에 아무런 희망이 남지 않게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희망으로 수행한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고, 개인보다 집단이 더 이성으로 수렴된다고 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건 이성이 아닌 이상이다. 실행되기 어려운 이상의 실행이야말로 그러하다.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을 실행에 옮겨 성공해내고야 마는 그 사람들이 있어서 이 세계는 끊임없이 바뀌고 그래서 지탱해나가는 게 아닐까. 


로그 원 일당은 스타워즈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들로 남을 것이다. 한국 영화 <아나키스트> <암살>의 주인공들이 생각난다.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게된 그들. 하지만 그들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아 왔기에, 죽음도 자신만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건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스스로의 선택과 신념. 사사(私事)와 대의(大義)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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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김형욱



지난 7월 4일부터 7일까지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 아내, 그리고 저 5명. 개인적으로 제주도를 많이 가보지 않았기에 그냥저냥 가는 휴가보다 더 설레고 들떴죠.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습니다. 다름 아닌 3일째에 잡혀 있는 한라산 등반 때문이었죠. 


산을 타는 데 두려움은 전혀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높지 않으나마 산을 자주 다녔습니다. 한 번도 중간에서 퍼진 적은 없었죠. 그런데 결혼하고 수원의 처가 근처에 내려와 살게 된 후 언젠가 한번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광교산이라는 산에 함께 다녀온 후 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이후 2년 정도는 산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알고 보니 산을 어마어마하게 잘 타는 체력 좋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따라가겠다고 멋모르게 덤빈 탓이었죠. 채 해발 600m도 되지 않는 산을 정상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정상 근처까지 가서 그야말로 벌렁 누워버렸죠. 퍼진 것입니다. 퍼져 누운 채로 장인어른, 장모님, 아내가 정상을 다녀오는 걸 보고 있었습니다. 


폭우 속 출발


ⓒ김형욱



이틀째인 7월 5일부터 제주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라산으로 출발하는 다음날에도 비가 내렸고요. 새벽 5시부터 등반이 가능한데, 우린 5시 20분 경에 도착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3시 30분에 기상해 준비하고 4시 조금 넘어 출발했는데, 1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심한 도로를 뚫고 도착했더랬죠. 


솔직히, 중간에서 포기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한테도 그렇게 말했죠. 설상가상으로 비도 오는데 무리도 이런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왔던 것처럼 아버님과 어머님이 먼저 출발해 조금 뒤엔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더군요. 처남도 바짝 뒤를 따랐습니다. 비록 군대를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속도면 퍼질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조금 티격태격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빨리 따라잡자고 윽박을 지르고 만 것이죠. 아내는 그러다가 퍼질 게 분명하다고 했고 저는 바로 수긍하고는 우리의 페이스대로, 즉 아내의 페이스대로 길을 나섰습니다. 천천히, 부담 갖지 말고, 그렇지만 포기 하지 말고. 


초반, 별 거 없는 길인데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아직 숨이 터지지 않았기로서니 이렇게 답답할리가 없었죠. 알고 보니 우비 때문이었습니다. 비는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갔지만 우비를 벗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린 우비를 벗고 조금 더 가뿐한 육체와 정신으로 중간 지점으로의 길을 재촉했습니다. 


관음사 탐방로


ⓒ김형욱



한라산 탐방로는 7개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중 어승생악과 석굴암 탐방로는 1km 남짓한 길이로 산책로 정도이고, 어리목과 영실과 돈내코 탐방로는 백록담을 가는 코스가 아니죠. 남은 게 성판악과 관음사 탐방로인데, 성판악은 가장 길지만 비교적 무난하고 관음사는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하필 성판악 탐방로가 단기적으로 폐쇄되었기 때문에 우린 관음사 탐방로를 이용했습니다. 


왕복 19.4km에 정상까지 가는 데만 평균 5시간이 소요된다고 알려진 관음사 탐방로. 아버님과 어머님은 왕복 6시간을 목표로, 우리는 왕복만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하산해서 점심을 먹는 코스라고 할까요. 얼핏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더군다나 아내의 페이스는 그리 빠르지 않은 것 같았거든요. 아니, 느려보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을 타는 게 두려워진 제가 일명 '헥헥'거리는 걸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남한 최고의 높이 한라산의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관음사 탐방로를 폭우 속에서 등반하면서 오직 코로만 숨을 쉬었습니다.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페이스 메이커'를 아시는지? 장거리 육상 경기에서 일정한 거리까지 선두를 이끌어 주는 역할을 맡은 선수를 말하죠. 이번 한라산 등반에서 제 아내가 그런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페이스 유지와 더불어 '함께' 하는 사람의 존재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못 탈 산이 없죠. 


백록담 정상 


ⓒ김형욱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중간에는 삼각봉 대피소라 하여 쉼터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한 번 쉬면서 이것 저것 챙겨 먹고 체력을 보충했는데요. 급격히 추워지더군요. 우비를 다시 챙겨 입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등반에 방해만 할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이후부턴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어 갔지만, 이미 반이나 왔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습니다. 


한라산은 정녕 천해의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더욱 그러했죠. 동식물에 관심이 많고 일가견이 있는 아내의 말에 따르면, 평소에 종종 봐왔던 식물들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상 근처에서는 어린 노루도 볼 수 있었습니다. 폭우에 안개까지 짙은 날씨의 한라산 정상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노루라니,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결국 백록담 정상에 도착했지만 너무나도 심한 안개로 백록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원래 백록담 위치도 잘 찾지 못했죠. 여하튼 시간은 9시 반이었습니다. 4시간 만에 올라온 것이죠. 아버님과 어머님은 한참 전에 내려가셨고, 정상에는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가 있었습니다. 중간에서 내려오는 한 명을 추가로 보았으니, 아마도 우리가 7월 6일 1950m의 한라산 등반 6, 7번째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내려오는 건 수월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냥 내려오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습니다. 폭우. 폭우 때문에 발을 디디는 모든 게 미끄러웠고 길마다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올라갈 때보다 온몸에 훨씬 더 많은 힘을 실어야 했죠. 그리고 나름 뛰어서 빨리 내려온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느렸습니다. 10km 육박하는 길이 얼마나 지루하던지요. 정말 힘든 한라산 하산길이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과 폭우가 주는 물리적 압박만 해도 쉬이 헤쳐나가지 못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죠. 그 모든 걸 뚫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 7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왕복하는 데 평균 10시간인 탐방로를 말이죠. 이제 가지 못할 산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건 한라산등정인증서가 증명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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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 세계 영화판을 뒤흔들며 전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한 '슈퍼히어로', 1930년대 대공황 때 시대적 탈출구로서의 영웅으로 처음 만들어진 후 80년 동안 사랑받고 있다. 1970년대 후반의 슈퍼맨과 1980년대 후반의 배트맨이 크게 성공한 후 1990년대까지 슈퍼히어로는 DC가 책임졌다고 보면 되겠다. 


2000년대 들어서 마블이 득세한다. 2000년대 초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2000년대 후반 아이언맨, 2010년대 어벤져스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매우 공고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슈퍼히어로도 부침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다. 사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슈퍼히어로는 존재의 이유가 크게 있지 않았다. 


주지했다시피 영웅은 혼란스러운 암흑기에 탄생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는 대체적으로 활황기였다. 위기가 와도 오래지 않아 자가재생이 가능했다. 영웅이 필요치 않았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후 거짓말처럼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위시해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2004년에 나온 픽사의 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은 슈퍼히어로가 필요치 않은 시대의 슈퍼히어로 이야기이다. 은퇴 후 일반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슈퍼히어로 가족이 주요 소재다. 


슈퍼히어로 인크레더블과 평범한 직장인 밥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크레더블은 세상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슈퍼히어로다. 사소한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부터 국가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까지 모든 곳에 나타나 해결해준다.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일이 연달아 생긴다. 그 날은 그가 엘라스티걸과 결혼하는 날이었는데,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려주고 인크레디보이라는 꼬마팬을 살리려다가 밤 보이지를 놓친 것도 모자라 기차선로를 부셔먹는 바람에 기차를 억지로 세워야 했다. 


근데 자살하려던 사람이 인크레더블을 고소한다. 살고 싶지 않았는데 살려놓았고 부상까지 당했다고 말이다. 또 기차 사고 부상자들도 그를 고소한다. 이를 시발점으로 슈퍼히어로를 상대로 한 소송이 쏟아지고 결국 정부는 그들에게 히어로 일을 그만둔다는 맹세를 받기에 이른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인크레더블은 밥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보험일을 하고 엘라스티걸은 헬렌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들은 세 아이를 기른다. 그중 두 아이는 그들처럼 초능력이 있다. 막내는 아직 알 수 없고. 밥은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힘들 뿐 아니라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어느 날, 정부기밀기관에서 일한다는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에게 많은 돈을 주고 슈퍼히어로의 힘으로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일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회사를 때려치고 당장 그 일에 착수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15년 전 그에게 가차 없이 퇴짜를 받았던 인크레디보이가 슈퍼히어로를 척살하고 그 자리를 본인이 차지하려는 수작의 일환이었으니... 인크레더블의 앞날은?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슈퍼히어로를 향해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크레더블>은 대체로 슈퍼히어로 영화의 범주에 속하진 않는 것 같다. 그저 픽사에서 만든, 그것도 아주 잘 만든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치부하는 인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다시 시작된 슈퍼히어로 전성 시대, 그 초창기에 큰 역할을 했거니와 지금까지 수없이 나온 슈퍼히어로 영화들 중 단연 으뜸으로 쳐야 마땅하다. 


이 영화는 독특하다. 대다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슈퍼히어로에 의한' 것인데 반해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를 향한'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보다 그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슈퍼히어로라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우리와 다름 없이 밥 먹고 싸고 씻고 자는 것 아닌가. 행동주체로서가 아닌 대상주체로서의 슈퍼히어로라고 해야 할까. 


원작으론 '최고'라는 수식어가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지만 영화로선 혹평과 흥행실패를 면치 못했던 <왓치맨>이 어른 거린다. 반면 흔치 않은 소재와 주제를 코믹과 진중함의 탄탄한 조화로 내보인 이 영화는 호평과 흥행성공을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슈퍼히어로를 들이대는 건 각종 위기에 봉착한 전 세계의 일원으로서 알게 모르게 탈출구를 찾고 있는 심리를 이용하려는 수작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슈퍼히어로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텐데,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다름 아닌 내가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인 것이다. 평범한(?) 슈퍼히어로 가족이 주인공인 <인크레더블>은 그 지점까지도 나아갔다. 


가족의 의미, 가족의 소중함, 가족과 함께 


<인크레더블>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정작 이 영화의 미덕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편이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팬들의 바람도 '슈퍼히어로'의 그것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가족'이다. 영화 시종 일관 내보이고 있는 '가족의 의미'. 밥이 다시금 슈퍼히어로라는 '꿈'이자 '지나간 영광'이자 '위험한 짓'을 꿀 때 헬렌이 말하는 '가족의 소중함'.


영화는 얼핏 헬렌을 두둔하고 있는 듯하지만 밥의 행동을 폄하하지 않는다. 그의 허황된 꿈은 남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꿈을 꾸지 말고 살아가라는 말 또한 일면 허황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꿈은 옳고 그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양자택일의 범주에 들어갈 테지만 그리 되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가족과 함께' 꿈을 꾸면 어떨까. 당연히, 다함께 망하자는 건가 하는 말이 나올 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힘을 얕잡아보는 것이다. 헬렌이 말하는 가족의 소중함이 '돈 많이 벌어 오세요'가 아닌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로 들리는 건 나뿐일까. 가족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가는 길, 강력한 적을 맞아 밥은 헬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홀로 가려 한다. 헬렌은 당신은 내 남편이니 죽으나 사나 같이 있을 거라 말한다. 밥은 자신이 강하지 않다고 얼버무리더니 "당신을 또 잃기 싫어. 다신... 절대! 난 그걸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해."라고 고백한다. 이 대화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가족의 소중함,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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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 루시!>


영화 <오 루시!> 포스터. ⓒ엣나인필름



일본 도쿄,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중년 여성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 분)는 조카 미카(쿠츠나 시오리 분)의 부탁으로 영어 회화 교실을 다니게 된다. 일단 무료체험을 하겠다고 나선 길, 수상하기 짝이 없는 학원 내부의 한 교실로 안내된 세츠코는 그곳에서 선생님 존(조쉬 하트넷 분)을 만난다. 


그는 미국식 영어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별 거 없는 영어와 함께 과장된 몸짓과 포옹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녀는 루시(lucy)라는 영어이름으로 불린다. 금발머리 가발과 함께. 가발을 돌려주러 갔을 때 다케시(야쿠쇼 코지 분) 즉, 톰을 만난다. 존에게 영어를 배우러 온 그였다. 루시는 그때 존과 깊은 포옹을 하고 남다른 기분을 느낀다. 사랑?


정식으로 등록하러 갔을 때 존은 떠나고 없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미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세츠코가 대신 수업을 듣는 대신 내준 60만 엔을 들고서. 그 사실을 안 미카의 엄마이자 세츠코의 언니 아야코(미나미 카호 분)는 세츠코에게 60만 엔을 돌려주고, 이를 다시 세츠코가 아야코에게 돌려주려 하면서 미카가 있는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가겠다고 한다. 아야코가 동행한다. 이 동상이몽 여정의 끝은?


신인 감독과 베테랑 배우들


영화 <오 루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영화 <오 루시!>는 일본의 젊은 신인 감독 히라야나기 아츠코가 자신이 만든 단편 <오 루시!>를 장편으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인 단편의 장편영화화에 일본 최고 베테랑 배우들과 할리우드 스타가 합류했다.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명배우 반열에 오른 테라지마 시노부와 야쿠쇼 코지, 일본 내 명배우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미나미 카호, 말이 필요 없는 조쉬 하트넷까지. 


초짜 감독의 그냥저냥 멜로 로맨스 영화에 이런 배우들이 모여들리 없다. 이 영화에는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게 뭘까? 섬뜩한 지하철 투신 자살 사건으로 시작하는 영화, 가족 간에 회사동료 간에 친구 간에 일절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보이는 세츠코, 고작 포옹 한 번에 미국까지 날아가는 세츠코, 언니에게 남자친구를 뺏긴 세츠코. 


세츠코의 기이한 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퍼즐 맞추듯 해보면 뭔가가 보일 듯하다. 영화 시작에서 보이는 투신 자살 사건이 비단 그 한 번으로 그치지는 않는다는 점은 사회적 병리 현상의 일면을 보이는 것 같고, 세츠코의 면면은 다름 아닌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흔하다면 흔한 병리자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심지어 이 영화가 겉으로 내보이는 멜로 로맨스 즉, 세츠코의 사랑조차 이 병리의 일환 같다. 결정적으로, 세츠코라는 자아와 루시라는 자아의 분리. 


개인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1인 가구의 폐해


영화 <오 루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1인 가구는 더 이상 특별한 현상 내지 양상이 아니다. 이미 전 인구에서 30%에 육박했고 머지 않아 1/3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 모습은 '문제'인가. 문제라고 하면 문제다. 의료발달로 수명은 점점 늘 것인데 반해 결혼과 출산은 점점 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들여다보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문제를 문제라고 하기 전에 다른 의미로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개개인의 문제를 먼저 해결할 필요도 있다. <오 루시!>는 사회적 아닌 개인적으로 1인 가구의 폐해를 들여다보고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혼삶을 사는 이가 모두 세츠코 같은 건 아닐 것이다. 그들 대다수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연대하며 살아간다. 삶의 형식이 둘 이상이 아닌 혼자일 뿐이다. 와중에 혼삶의 객체적 문제가 드러난다. 1인 가구가 지닌 병리적 모습을 고스란히 떠안은 이, '사회적' 인간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이, 최악의 경우 자신의 삶을 누군가가 빼앗아 갔다고 느끼는 이. 


세츠코의 경우, 가장 크게 다가오거니와 원초적인 사건이자 병리적 모습의 원인은 남자친구를 빼앗아간 언니 아야코와 미카의 존재다. 그녀는 그 때문에 자신의 삶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지금의 삶이 의미 없다고 느끼며 자연스레 이 사회에 적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 이는 비록 이유도 현상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관계들의 집합체


영화 <오 루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세츠코가 존을 사랑하게 된 또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저 존의 다가옴이었다. 존이 다가와서 포옹을 했고 세츠코는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꼈다.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면 '사랑'이라 자신있게 말하리라. 그런데 세츠코라는 사람이 사람과의 소통이 불능한 상태이기에, 관계에 있어 최상에 위치한 '사랑'을 한순간에 느끼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건 사랑이 아닌 병리적 모습의 또 다른 모습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존은 세츠코의 남자친구를 빼앗아 결혼한 아야코의 딸과 함께 도망친 사람이 아닌가. 세츠코에게 한처럼 남아 있는 그 일에 대비해볼 때, 존에 대한 사랑의 모습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인 갈망과 집착과는 완연히 다른 복수의 일면일 수 있다. 세츠코에게 남아 있는 사람과의 관계 형상이란 딱 거기까지인 것이다. 


경제위기 시대의 현대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1인 가구가 된 게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1인 가구의 혼삶을 살게 된 것처럼 보이는 세츠코의 이야기는, 그 면면이 혼삶의 병리적 모습을 띄고 있기에 복합적으로 보여지고 다가온다. 뭔가 알 만한 그림이 그려질 듯한 퍼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외롭고 초조하고 기이하고 단순하고 아슬아슬한 관계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반면 영화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단순명쾌하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충분한 효과를 보인다. 진심 어린 포옹. 내 몸의 절반과 상대방 몸의 절반을 오롯이 맞대는 행위. 거기엔 사람 대 사람으로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이 주고 받는 모든 것들이 있다. 그 자체로 이겨낼 수 없는 병리를 초월한 관계 형성이다. 분리되어버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자아도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또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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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 표지 ⓒ문학동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인 세 명을 뽑자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조선의 세종대왕, 이순신을 뽑지 않을까 싶다. 광활한 만주 대륙을 정복하고, 길이 남을 한글을 창제하였으며, 백전 백승으로 나라를 지켰다. 이 세 위인은 드라마(태왕사신기, 뿌리깊은 나무)와 영화(명량)은 물론 소설(뿌리깊은 나무, 칼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왕에겐 정치적 내홍이 없었다. 큰아버지 소수림왕이 국가의 틀을 완벽히 잡고 아버지 고국양왕이 잘 이은 와중에 뒷탈 없이 정복 전쟁에만 힘을 쏟은 광개토대왕, 아버지 태종이 대대적 숙청으로 완벽하게 왕권을 강화한 와중에 백성들을 위해 힘을 쏟은 세종대왕. 이러나 저러나 그들은 '왕'이었던 것이다. 


반면, 이순신에게는 평생 정치적 내홍이 뒤따랐다. 나라가 통째로 넘어가게 생긴 마당에 오직 이순신밖에 없을 정도의 위기 상황에서 이순신으로만 향하는, 향할 수밖에 없는 민심을 두려워한 왕(선조)과 왕을 따르는 무리들의 시기와 질투. 이순신은 외부의 적을 절대적으로 막아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내부의 적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을 전쟁 내내 겪어야 했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절대적 영웅임에 분명하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이리저리 휘둘리고 고민하고 자책하고 그러면서도 앞뒤를 막아야 하는, 철저히 발가 벗겨진 인간 이순신을 알아야만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이순신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떻게 하고 싶었을까. 어떻게 했을까. 김훈 작가의 명작 소설 <칼의 노래>는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알게 하는 좋은 기회를 선사한다. 


이순신이 감당해야 했던 것, 삶과 죽음


소설은 이순신의 백의종군으로부터 시작된다. 때는 1597년 4월 초, 같은 해 1월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에 불복한 죄로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 고된 신문을 받은 후 3개월 만에 풀려난 것이다. 7월에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궤멸되고, 8월 초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다. 그에게 남은 함선은 12척뿐이었다. 그는 12척으로 명량해전의 기적을 일으킨다. 


명량의 기적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에겐 참으로 비현실적인 고민이 따라다녔다. 어디서,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항상 사지(死地)를 물색했다. 전쟁을 치르며 이순신에겐 가족이 하나둘 죽어갔다. 당시 조선 어느 누가 그러지 않았겠냐마는, 머나먼 곳에서 나라의 명운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 그에게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고 슬퍼하는 건 일종의 사치와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수많은 적들을, 적들이지만 누군가의 가족임에 분명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였고 그 때문에 수많은 백성과 아군들도 죽어나갔다. 그에게 이 세상은 더 이상 유의미한 게 아니었다. 무의미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내가 죽으면 조선은 끝장이다'.


사지를 물색한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적의 완벽한 궤멸과 절대적인 철수를 지켜본 후에야 눈을 감을 수 있었을 테고, 혹시라도 모를 그 이전의 죽음으로 조선 전체가 피로 물들지 않게 또는 덜 물들게 전라도 해안이 아닌 경상도 해안에서 죽어야 했다. 그에게 삶은, 죽음은 무엇이었을까. 


김훈은 이순신을 짓누르는 그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다. 분명 이순신이라는 무게에, 이순신이 느꼈을 삶과 죽음의 무게에 처참하게 짓눌렸을 텐데, 그것들을 온전히 글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순신이 감당했어야 할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참으로 많이 힘들고 아팠겠다. 


영웅 아닌 인간 이순신


시종일관 이순신이 염두에 두는 건 적만큼 알 수 없는 임금 선조의 의중이다. 임금은 이순신을 죽여야 사직을 보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선의 국토가 유린당하는 와중에 백전 백승의 그에게로 쏠리는 민심이 두려웠다. 하지만 임금은 이순신을 살려야 사직을 보존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임금은 적에게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다. 이순신은 살았고 적 덕분에 적 앞에 섰으며 적을 무찌르고 나서는 임금의 손에 죽을 것이었다. 


진정한 절망은, 현재의 좌절에서 오지 않는다. 미래의 희망없음에서 오는 것이다. 이순신에게 미래 따위는 없었다. 결정된 죽음만이 있을 뿐.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래서 사지를 물색하는 일뿐이었다. 그가 싸운 건 외부의 적(왜)과 내부의 적(임금), 그리고 무의미한 이 세상 그 자체였다. 


이순신은 세상에 칼로 베어버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음에 절망했다. 오직 적들만 베어버릴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벨 수 있는 걸 벴다. 하지만 임금을 벨 수 없었고, 무의미를 벨 수 없었다. 악몽도, 끼니도, 자책도, 그 어느 것도 칼로 벨 수 없었다. '인간' 이순신에게 칼로 벨 수 없는 것들은 참으로 힘겹게 다가왔다. 그는 괴로웠다.  


<칼의 노래>에서의 이순신은 인간 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유약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맹렬히 진격하는 적의 칼끝을 피해 물러서기만 반복하다가 매복한 아군과 함께 적을 섬멸하고, 뭍의 적군 포탄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정박되어 있는 적군 배를 섬멸하고, 물길과 뭍지형을 살펴 적이 스스로 섬멸되게 하고... 그가 행했던 백전백승 전투는 화려하지 않았고, 그의 전쟁은 그 전투들에 있지 않았다. 


이 소설을 기점으로 이순신은 더 이상 절대무력으로 적에게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한 영웅전설의 주인공이 아니게 되었다. 이순신은 절대적으로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화려하지 않은 완벽한 승리만을 원해야 했던 망국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완벽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었던 그,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순신은 역사상 그 어느 위인보다 추앙받아 마땅하다. 이 책은 완벽히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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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홈>


영화 <홈>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열네 살 준호는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서는 그리 예쁨을 받진 못하는 것 같다. 준호에게는 어린 동생 성호가 있다. 귀엽고 똘망똘망한 동생을 돌볼 때면 이런저런 시름을 잃는다. 아빠는 없는 듯하고 엄마 선미는 있다. 보험일에 치여 집안을 잘 돌보지 못한다. 


그런 엄마마저도 준호와 성호의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다. 그녀와 함께 사고를 당한 이는 그녀가 바람핀 유부남 강원재의 부인이다. 원재는 보살펴줄 이 없는 성호를 딸 지영이 있는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성호는 준호와 성호의 엄마와 강원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준호의 아버지는 따로 있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준호다. 선미는 상태가 좋지 않고, 원재는 준호를 보살필 법적 의무는 없다. 심적 의무는 더욱 없어보인다. 하지만, 성호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당분간만 함께 살고자 한다. 점점 가족의 형태를 띄어가는 그들이지만, 선미만 세상을 떠나고 강원재의 부인은 살아날 기미를 보이며 더 이상 영위해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원재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준호의 앞날은 어떨까. 


독립영화 제작사 아토ATO의 야심작


영화 <홈>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영화 <홈>은 지난 2016년 <우리들>과 2017년 <용순>에 이은 관계&성장 3부작의 마지막이다. 한국 최고의 독립영화 제작사로 우뚝 서고 있는 '광화문시네마'와는 다른 시선의 독립영화를 내놓고 있는 '아토ATO'의 세 번째 야심작이기도 하다. 아토ATO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동창끼리 합심해 만든 광화문시네마처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기획 전공 출신 프로듀서들이 모여 만든 제작사라고 한다. 


김종우 감독은 이 영화 이전의 두 단편을 통해 끔찍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를 내보였다. 소외된 이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한국 독립영화 계보에서 가장 특출난 이야기를 양산해내는 소재와 주제가 바로 소외이다. <홈> 또한 끔찍한 상황에 처한 소외된 이의 이야기일 것이다. 


주지했다시피 아토ATO가 내놓은 작품들은 모두 관계와 성장을 주요 테마로 내세웠다. <홈>도 그 범주 안에 있는데, <우리들>이 '권력'을 <용순>이 '심리'를 또 하나의 주요 테마에 상정한 것처럼 <홈>은 '가족'을 또 하나의 주요 테마에 상정했다. <우리들>이 대대적인 성공을, 그에 반해 <용순>에 실패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홈>은 어떨까? 


아이들과 어른들


영화 <홈>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대표작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그래서 가족이나 가정을 콘텐츠화시켜 보여줄 때는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점철된 이야기를 만드는가 보다. 


영화 <홈>은 열네 살 준호가 주인공으로 그의 순수한 두 동생들과 함께 천진난만한 세계를 구축하며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가정을 영위하려 한다. 엄마 선미의 무관심에 가까운 행태에도 성호를 잘 보살펴온 준호다. 그런 그에게 우유부단하지만 착한 면이 있는 원재, 그리고 동생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막장이다. 선미는 결혼해 준호를 낳았고 바람을 펴 원재와의 사이에서 성호를 낳았고 원재는 부인과의 사이에서 지영을 낳았다. 준호의 아빠는 떠났고 선미 혼자 준호와 성호를 키우는 와중 원재의 부인이 찾아와 함께 어디론가 가는 도중 동반 교통사고가 나 의식불명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원재와 준호와 성호와 지영은 한 가족을 이룰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이 'house' 아닌 'home'이라는 점에 어떤 방점이 찍히는 것일까? 단순한 객체로서의 '집'이 아닌 가족이 사는 주체로서의 '집' 말이다. 막장과 천진난만함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준호가 아닌,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이 둘 사이를 잇는 유일한 끈으로서의 준호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가족도, 이런 집도 있는 법이다. 


관계와 가족


영화 <홈>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어른들과 아이들, 가족과 가족, 학교와 집, 준호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맴돌 뿐이다. 열네 살이라는 어른도 아닌 아이도 아닌 나이, 죽어가는 엄마 선미 하나로 이어질 뿐인 가족의 끈,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와 자기가 보살펴야 하는 동생들이 있는 집. 그 경계에서 준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별로 없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란 준호라는 경계인이 겪는 사면초가 상황에서의 끔찍한 관계 형성인 것이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 외의 또 다른 메인 테마인 '가족'은 막장이라는 지반 위에 또는 막장 뒤에 숨겨진 천진난만함에 있다.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이 가족의, 이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은 분명 희극처럼 보일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웃음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희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희극의 장본인인 이 아이들이야말로 비극의 씨앗인 것이다.


비극의 씨앗이 두루두루 잉태한 불행한 가족, 하지만 이 가족은 겉으로는 또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자 행복이다. 희극이자 행복은 천진난만의 아이들의 것이어야 하고, 비극과 불행은 막장의 어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경계에 있는 준호라고 하지만, 최소한 그에게 어른들이 비극과 불행의 끄트머리에라도 경험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건 그가 조금이라도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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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7월 4일에서 7일까지 제주도로 3박 4일의 여행을 떠납니다. 여름휴가로요. 결혼하고 나서 그래왔듯 처가 식구들과 함께입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 아내, 그리고 나. 이번에는 처남도 함께 합니다. 지난 2년간은 군인 신분으로 함께 하지 못했지요. 저에게 있어서만큼은 새로운 멤버가 추가되어 또 다른 설렘과 기대가 있습니다. 


이번 휴가여행에 있어 아내가 특별한 걸 준비했습니다. 여행 안내서, 알림장, 개인일기장이 혼합된 얇은 책. 이번 여행 총책임자로서 몇 개월에 걸쳐 계획을 짜고 정녕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책을 엮어냈습니다. 책의 기획, 원고, 디자인까지 모조리 혼자 한 것입니다. 인쇄와 제책만 외주를 주었고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저도 혼자서 기획하고 원고를 만들고 디자인까지 해낼 수는 없습니다. 그 수준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말이죠. 능력은 고사하고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내는 생각한 그대로를 실천에 옮겨서 실물을 내놓았습니다. 이제는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왜 '이제'냐고요? 사실 아내에게는 이런 책이 몇 권 더 있습니다. 제 아내만의 여행법이라고 할까요. 


여행 준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


아내의 여행 책들 ⓒ김형욱



소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책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건 2013년 일본 도쿄 6박 7일 여행이더군요. 그전까진 주요 정보만 출력해서 가져갔다고 합니다.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었던지라 하나하나 자세한 일별은 불필요했던 거더군요. 그런데 2013년 도쿄 여행은 난생 처음 혼자 가는 해외 여행이었습니다. 무섭고 두려웠죠. 


현지에 가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재밌고 편하게 구경하고 이동하고 먹을지 고심하기 시작합니다. 기존에 나와 있던 가이드 책은 만인을 위한 것이지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고요. 아내는 그중에 오직 자신만을 위한 정보를 뽑아내어 정리하고 공부합니다. 책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물입니다. 


해당 도시의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합니다. 우선 지도를 일별하며 숙소를 중심으로 묵을 곳과 구경할 곳과 먹을 곳의 후보지를 선정한다. 그러곤 가장 빠르면서도 즐길 만한, 예를 들면 이왕 가는 김에 잠깐 들릴 만한 곳들을 곁들여 루트를 짭니다.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철저해야 하구요. 


책을 만들 정도로 준비를 하다 보니 여행할 도시를 어떤 면에서는 현지 사람보다 더 잘 알게 됩니다. 가령, 서울 사람도 서울의 숨은 명소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외국인 관광객이 오히려 그런 곳을 잘 찾아가는 식이죠. 그래서 현지에 가면 이 책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이릅니다. 


단기 여행과 장기 여행


아내의 여행 책들(이전) ⓒ김형욱



아내의 2015년 한 달여의 대만 타이베이 여행 책은 의외로 얇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다 사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완벽에 가까운 계획과 물색과 루트까지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대신 가봤으면 할 곳들의 리스트와 함께 그 결과물을 남겨 왔습니다. 도장이 굉장히 많이 찍여 있는 걸 보니 도장 인증을 한 것 같네요. 소소한 일기도 눈에 띕니다. 


단기 여행과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에 차이를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입니다. 장기 여행을 단기 여행처럼 하면 일찍이 지쳐버려 돌아올 때쯤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절을 잘 해주세요. 아내의 대만 여행 책이 시사하는 바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2016년 호주 브리즈번으로의 우리 신혼여행 책은 굉장히 두툼한 편입니다. 그 어느 책보다 정보가 많고 철저하며 현지에서 기록했으면 하는 페이지들이 많지요. 비할 바 없는 정성이 느껴집니다. 당시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요. 아내한테 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니 아내는 신혼여행을 자유여행으로 기획했습니다. 어느 누구의 손도 타지 않고 직접 말입니다. 누구라도 이 책 하나면 혼자서도 지금 당장 브리즈번이 자랑하는 모든 것을 체험하며 지내다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한편 단순 관광 여행이 아닌 '살아보기' 콘셉트였습니다. 아침에 동네를 조깅하고 마트에서 장도 보고 주말에만 서는 마켓도 구경하고요. 이 콘셉트는 아내가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여행의 개념을 달리하는 특별함이 엿보입니다. 


여행, 그 전과 중과 후


아내의 여행 책들(최근) ⓒ김형욱



이제까지와는 달리 2017년부터는 전과 비교불가의 책을 만들어 냅니다. 일본 교토와 오사카로의 여행이었습니다. 이 역시 완벽하진 않지만서도, 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굉장한 편입니다. 나름대로의 차례와 판권도 존재하고 전체적인 짜임새가 수준 높네요. 


여행지를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조망하고는 해당 여행 또한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짚어봅니다. 그러곤 여행 관련 정보를 한데 모아 보여주고 여행자의 정보를 한데 모아 보여주며 마칩니다. 전체적으로 거시와 미시를 줄세워 체계가 확실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정보를 한눈에 훑게 하는 거시와 숙소 가는 길 또는 유심 교체하는 법의 아주 자세한 미시의 조화가 인상 깊습니다. 


그리고 이번 2018 여름휴가 제주도 여행 책입니다. 우리나라이거니와 많이 가봤었고 길지 않은 3박 4일의 여정이기에 얇게 나왔지만, '책'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서 완전하다고 할 만큼 벗어나, 오밀조밀한 포인트와 함께 핵심을 짚었습니다. 아내가 추구하는 여행법에 점점 가까이 가 완성으로 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네요. 


여행은 물론 여행지에서의 여정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아내의 여행법을 살펴보면 진정한 여행의 완성은 여행의 전과 후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책으로 엮어낼 정도로 여행을 준비하고, 그에 따른 효율적이고 여유로운 여정을 만끽하며, 여행의 결과물과 기록을 영원에 가깝게 되새기는 것. 그런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저는 행운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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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주토피아>


<주토피아>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930년대 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월트 디즈니 살아생전 황금기를 보냈지만 1960년대 중반 그의 사후 오랫동안 부침을 겪는다. 1990년대 들어 완벽한 부활, 그야말로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르네상스를 구축한다. 그 시기에 나온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고전이자 명작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2000년대 들어 암흑기가 부활, 2006년 픽사와 합병하여 존 라세터가 돌아와 디즈니를 진두지휘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존 라세터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뻗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완벽하게 부활한 것도 모자라 제2의 르네상스를 연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하면 픽사였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할까. 연일 고전 명작에 오를 만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주토피아>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최소한 디즈니의 두 번째 암흑기와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최고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주토피아>는 현 시대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스로에게 던지는 우화로, 애니메이션으로서의 기술적 측면과 스토리와 장르와 캐릭터성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 그리고 최소한 청소년 이상은 되어야지만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마음가짐이나마 가질 만한 수준높은 주제의식까지 두루 갖춘 잡식성 완벽함을 자랑한다.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에게 주어진 임무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토끼 주디 홉스는 부모님은 물론 아는 모든 동물들에게서 반대와 멸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되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게 꿈이다. 그는 3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위대한 도시 '주토피아'로 향한다. 그곳은 동물들의 이상향으로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도시이다. 주디는 우여곡절 끝에 주토피아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전선 제1구역에 배치된다. 


주디에게 떨어진 임무는 고작 주차 단속. 그가 아무리 경찰 학교 수석이라지만, 그는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였다. 그럼에도 주디는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여 참으로 많은 주차 딱지를 끊는다. 어느 날 수달 오터톤 부인이 남편 실종 건으로 찾아온다.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닌데, 실종된 지 열흘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주디는 선뜻 나선다. 서장은 그에게 48시간 동안 찾을 것을 명령하고 그렇지 못할 시 주디에게 경찰복을 벗으라고 한다. 주디는 곧 단서를 찾아내는데, 하필 그 단서의 시작점이 되는 주인공이 일전에 안면 있는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였다. 주디는 닉에게 당한 뒤통수 치기를 이용해 꼬득여 수사를 진행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장르물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해석의 여지가 필요 없이 훌륭한 장르물이다. 초짜 경찰이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사건을 아무런 지원 없이 홀로 맞서게 되고, 콤비를 이루는 게 경찰이 아닌 범죄자라는 점이 콤비 범죄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콘셉트인 것이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위화감 없이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퀘스트를 완료하듯 하나 하나 실마리를 풀어내는 진행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화적 재미라는 한 마리 토끼를 이쯤에서 완전히 손에 쥔 격이라 하겠다. 여기에 주인공들이 사람 아닌 동물이라는 게 화룡정점이다. 애니메이션으로서, 장르물로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캐릭터성을 동물보다 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특히 양육강식 동물 세계에서 최하층에 속하면서 동물로서의 귀여움은 최상급에 속하는 토끼가 동물들의 낙원인 주토피아를 지키는 경찰이 된다는 설정은, 영화적 해석 즉 영화가 줄 수 있는 영화 외적인 교훈이나 감동 또는 깨달음적인 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토끼의 성장 또는 좌충우돌이 기대되는 것이다. 


토끼와 콤비를 이루는 동물은 하필 여우다. 토끼와 상극이랄 수 있는 여우는 늑대나 하이에나 등과 더불어 가장 미움을 받는 동물 또는 가장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다. 영화에서 토끼가 상식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여우는 편견 그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주토피아>가 주는 영화적 해석은 바로 그들, 토끼와 여우에게서 비롯된다. 


차별과 편견에 대한 우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명백한 우화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선사함에도 캐릭터와 배경과 대사 모두 인간 세계에 대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린 이 영화가 다른 손으로 완전히 쥔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 멍청하고 약한 토끼와 비열하고 믿을 수 없는 여우. 그들은 각자의 타율적 시선을 이유로 세상을 지키고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 일을 할 수 없다. 


차별 이전에 편견이 존재한다. 인간 세상에서 전통적으로 약자라고 통칭되는 노인, 아이,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닌 타율적으로 한계가 정해져 버린다. 오랜 시간 고착해 되어온 그 한계는 편견이라는 상대적으로 여지가 있는 두루뭉술한 개념에서 머물지 않고 명백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차별로 나아간다. 돌이키기 쉽지 않다. 


영화는 여기에서도 한 발 더 나아가, 약자에의 편견과 차별만이 아닌 강자에의 편견과 차별 즉, 역차별까지도 다루는 광폭 행보를 보인다. 사실, 여우를 투 톱 중 하나로 내세운 것에서 엿보이는 부분인데 여우에의 편견과 차별이 분명 존재하지만 여우가 동물 세계에서 약자에 속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약자에의 편견과 차별' 또한 그 자체로 편견과 차별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에 대응하는 개념이 평등이라고 한다면, 평등을 약자에 대응하는 개념인 강자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너무나도 훌륭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선 동물 세계에의 우화로서 너무 많이 간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 세계에서는 강자가 강자로서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게 당연하다. 인간은 어떤가? 당연하지 않은 게 정설이지만, 당연해졌다. 


동물이나 인간 세계가 똑같다. 완벽한 우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건 동물 세계에서 역차별이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태초부터 강자인 상황에서 강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약자로부터 어떤 조치를 당하는 건 강자가 주체가 되는 차별의 차원이 아닌 약자가 주체가 되는 생존의 차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류의 고찰이 직선적이고 일차원적이었던 점이 살짝 아쉬웠던 <주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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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미씽: 사라진 여자>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포스터. ⓒ메가박스 플러스엠



최근 몇 년 새에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영화들이 많이 보인다. <차이나타운> <비밀은 없다> <악녀> <소공녀> <당신의 부탁> 등이 기억에 남는데, 남주인공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온전한 여배우 탑 영화라 할 순 없다. 자본의 손이 덜 탄 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련희와 연희> 정도가 여배우 탑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한국영화에서 온전히 여주인공만을 내세운 영화를 찾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반면 해외로 시선을 돌리면 셀 수 없이 많다. 특이할 점은, 상업영화에서도 눈에 띈다는 것이다. 올해 우리를 찾아온 영화만 열거해도 <툼 레이더> <레이디 버드> <스탠바이, 웬디> <미세스 하이드> 등이다. 한눈에도 엄청난 차이이다. 


그 와중, 한국영화 중에도 감독과 주연배우가 모두 여자인 경우가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 이언희 감독, 엄지원·공효진 주연의 <미씽: 사라진 여자>가 그 영화이다. 이 영화는 앞서 제시했던 한국의 여배우 탑 영화들처럼 자본과 거리가 먼 독립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라는 '객체'를 앞세워 도구로 이용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여자라는 주체가 겪는 지극한 현실을 지극히 잘 짜인 영화적 각본에 끌어들여 어느 하나 모나지 않게 우리 앞에 나왔다. 우리는 그저 즐기고 안타까워하고 분개하고 소름을 돋으며 응원하며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라진 그녀를 찾아라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이혼 후 지선(엄지원 분)은 생계를 위한 일은 물론 아이 육아까지 책임지고 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보모를 두었지만 언젠가 큰 실수로 아이를 다치게 하여 그만두게 하고 버티다가 새로운 보모 한매(공효진 분)을 들였다.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미덥지 않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출중한 능력을 믿고 함께 하고 있다. 


어느 날, 일도 잘 안 풀리고 아이 양육권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던 와중에 한매가 아이 다은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설마설마 하던 지선은 온동네를 찾아다니다가 경찰서에 신고하려 하지만, 변호사와 시어머니에게 오히려 양육권을 지키려고 벌인 자작극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결국 그녀는 혼자의 힘으로 다은이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은이 혼자가 아닌 한매와 함께 사라진 만큼 한매의 행방을 찾는 게 맞다고 판단한 그녀, 와중에 보이스피싱까지 당하고 결국 경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경찰조차도 지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데... 다시 혼자가 된 지선은 한매를, 아니 다은이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 한매는 왜 다은이를 데리고 사라진 것일까. 


현대 미스터리 스릴러의 절정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는 연기와 각본 그리고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연출력과 분위기까지, 완벽에 가까운 영화적 기술력을 뽐낸다. 최근 몇 년 새에 전성기라고 할 만한 연기력을 폭발시키며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엄지원과 범접할 수 없는 '로코의 여왕'에서 이젠 그 연기력을 다양하게 뽐내고 있는 공효진의 앙상블은 따로 또 같이 빛난다. 


근래 보기 드문 잘 짜여진 꽉찬 각본은 이 영화의 힘을 대변한다. 그 자체이자 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웰메이드 실종 미스테리 영화, 할리우드의 <나를 찾아줘>와 일본의 <화차> 등이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그 안에 완전히 다른,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메시지를 함유하고 있기에 결코 묻히거나 하지 않는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지극히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는, 현대인이 갖는 불치병과 현대사회가 주는 거대한 압박을 한몸에 동시에 받는 모습과 다름 아니다. 우리는 늘 불안하고 불만에 차 있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우리 사회는 우리를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하고, 우리가 도움을 청할 때 도와주지 않는다. 


영화는 이혼한 워킹맘 지선과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한매의 처절함을 통해 현대의 미스터리 스릴러가 보이는 모습에 더 직접적이고 깊숙히 다가간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자'이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모르긴 몰라도, 지선과 한매(와 다은)는 결국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우린 눈에 보이는 지선의 극도의 불안과 불만과 불쾌, 그 위에 덧씌어진 처절과 바람과 허무를 훨씬 능가할 게 분명한 한매의 그것과 만날 것이다. 치를 떨며 소름이 돋고 악에 받힌 울음을 함께 터뜨릴 수도 있고, 못 버티고 눈과 귀를 틀어 막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건 그런 거다.'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방이 막혀 있는 건 물론, 사방에 도움 청할 이 하나 없으며, 사방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것 같은, 그런 현대 미스터리 스릴러 그 자체 말이다. 그들 자신이 겪은 엄청난 일로 힘들어 하는 그들을 보며, 우린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걸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녀들의 울음이 오래 가지 않고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녀들이 서로를 찢어 죽이려 하고 서로의 아이를 팔아 넘기려 하지 않고, 부디 서로를 진정한 이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우리 모두 평평한 땅을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어불성설' 땅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울어졌고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두 여주인공을 제외하곤 주로 남자로 구성된 조연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하고 평면적·도식적이었던 아쉬움 아닌 아쉬움을 남긴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남자 쪽으로 기울어진 땅에서 여자가 버티고 서 있으려면 한 없이 입체적인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그런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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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르포 <당선, 합격, 계급> ⓒ민음사



장강명 소설가는 자타공인 2010년 이후 문학공모전 최대 수혜자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 2014년 수림문학상, 2015년 문학동네작가상과 제주4.3평화문학상까지. 한 소설가가 네 개의 문학공모전 수상을 한 건 그 이전에 없었고 아마도 그 이후에도 없을 것 같다. 그는 문학상을 받을 만한 문학적인 소설을 쓰는 소설가일까?


그는 10년 넘게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이달의 기자상' '관훈언론상' '대특종상' 등 기자로 일찌감치 이름을 높였다. 기자로 일하던 와중 한겨레문학상을 탄 작품이 <표백>이다. 기자 출신다운 건조한 문체로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거기에 어떤 '문학적인' 느낌이 들어서 있지는 않은 듯하다. 


장강명은 이후로도 계속 비판적인 어조로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그의 소설은 장르소설 또는 대중소설 쪽에 더 천착한 듯하여 한국문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순문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임에도, 한국문학계의 주류 중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공모전 최대 수혜자이다. 그 아이러니는 곧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또는 실마리. 


그는 그 아이러니를 누구보다 잘 인지한듯, 한국문학계에도 또한 자신에게도 파격적인 소설 아닌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을 들고 왔다. 이 책은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의 기원과 선발 메커니즘, 영향력을 수치와 팩트에 입각한 저자의 조심스럽지만 물러서지 않는 생각으로 알려온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한국 사회'이다. 공채와 간판과 계급의 시스템이 낳은 좌절의 한국 사회.


좌절의 시스템,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 이 둘은 굉장히 한국적인 제도로 대규모 동시 시험을 치러서 인재를 뽑는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는 곳은 한국 말고는 찾기 힘들다고 하는데, 저자는 한국 소설과 한국 사회가 서열구조와 관료주의로 역동성을 잃어가는 건 상당 부분 이 제도들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두 제도와 궤를 같이 하는 대학 입시를 생각해보자. 간판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우리나라 대학, 사활을 걸고 입학하여 간판을 걸고 나면 또 다른 간판이 보인다. 이젠 대학은 중요한 게 아니니, 대학에의 경쟁력은 급격히 저하한다. 한편 선발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우월감이 생기고 내부 결속력은 강해진다. 관료 집단의 출현이다. 


그럼에도 두 제도는 안정성과 신뢰성이 높고 공정하며 제너럴리스트를 뽑기에 좋은, 장점 많은 제도이다. 똑같은 시험을 동시에 치르고 같은 기준 하에 당선자와 합격자를 고른다.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주의와 당파성이 그나마 옅은 제도라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런 제도가 있는 한 서열과 간판과 계급의 시스템, 즉 다수에게 지극한 좌절을 안겨주는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서 절대 없어질 수 없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이대로 존재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없앨 수도 없다. 마땅한 대안 없이 그저 기존의 제대를 유지할 뿐이다. 


저자는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가 좌절의 시스템이라 확신하는 듯한데, 최소한 이대로 존재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면 어떻게 고쳤으면 좋을까 하는 대안이 있을까? 아니면 아예 없애버리는 게 맞다고 보는 걸까? 그 스스로가 문학공모전이 생기고 난 후 최대 수혜자임에도? 


독자들의 문예운동


장강명은 그다운 대안을 제시한다. 시선을 달리하는 것이다. 제도의 존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병폐인 서열과 간판과 계급의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간판의 힘이 정보 부족에서 나온다 보고 사람들에게 지도를 그려서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대안이다. 다른 두 가지 중요한 요소인 충분한 보상과 실패의 대비책은 많은 비용이 들고 그에 대비한 파급력이 작을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문학계에서의) 대안은 새로운 종류의 운동, '독자들의 문예운동'이다. 우리 문학계의 기존 시스템으로는 발견할 수 없거나 묻히기 쉬운 작가들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찾아내고 응원하는 운동이다. 그 중심에 '서평'이 있는데,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의 북큐레이션 뉴스레터 '비:파크레터', 온라인 도서 플랫폼 '밀리의서재', 독서 문화 잡지 월간 <책>의 인포그래픽 서평, 저자가 기획한 서평집 <한국 소설이 좋아서>, 서울 성북구의 '책읽는성북' 독서 운동 등의 구체적인 예를 든다.


그의 '간판 소설' <한국이 싫어서>(민음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궤를 같이 하는데, 이 소설은 헬조선을 탈출해 호주로 떠났지만 그곳도 헬호주였을 뿐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헬조선이 헬조선이 되는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하지 않나? 대안도 대안이지만 논쟁거리가 다분하다. 


논쟁에서 대안으로, 대안에서 실천으로


<당선, 합격, 계급>도 마찬가지로 논쟁거리가 다분하다. 완전한 해결 뒤 변하지 않고 굳어져 가는 시스템 대신, 치열하고 생산적인 논쟁이야말로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도 저자가 바라보는 현실과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문학공모전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현실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하거니와, 양자택일 아닌 본질을 생각하는 대안에 찬성한다. 


하지만 저자가 과연 진정으로 이 문제, 즉 문학공모전과 공채제도에 관심을 갖고 당사자로서 해결을 하려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저자는 이 제도를 한국 사회의 병폐인 서열, 간판, 계급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수단으로 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들여다보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으며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다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가 내세운 대안이라는 것도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인데, 일반 독자가 '왜' 나서야 하며 '어떻게' 나설 수 있겠는가. 더욱이 저자 또한 책에서 '내 의견이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라며 미리 발을 빼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난 저자가 말한 대안에 발맞춰 나서서 하고 싶다. 나서야 할 이유도 있고 나서서 할 능력도 있다. 하지만 난 유명하지도 않고 이 제도들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 엄연한 당사자는 아니다. 저자는 해야 할 이유도 있고 할 능력도 있으며 당사자로서 대안 이후의 실행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이 부디 그 결과물이 아닌 시작이길 바란다. 그러하다면 미미한 힘이나마 힘껏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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