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추리소설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내 생애 유일하게 밤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어버린 책도 다름 아닌 추리소설이다. 피터 러브시의 <가짜 경감 듀>, 그 유쾌하고 짜릿했던 순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을 때 종종 추리소설을 찾는다. 


세계 3대 추리소설이니 세계 10대 추리소설이니 따위의 것들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개중엔 크게 추리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중심으로 추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소설, 추리는 곁가지인 대신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이면과 세상의 필연적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개인적으로 후자를 더 좋아하고 더 높게 치는 편이다. 


추리소설의 본래적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뭐니뭐니 해도 '추리'가 아닐까. 추리, 즉 사건과 트릭이 얼마나 치밀하고 철저하게 직조되어 있느냐, 독자들로 하여금 얼마나 감탄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가, 독자들의 예측 범위를 얼마나 벗어났는가 등이 중요할 것이다. 엘러리 퀸의 작품들을 보면 가히 그 환상적인 추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추리소설 마니아들은 당연히 이들 소설을 더 높게 친다. 거기에서 어떤 문학적, 인문학적 요소를 끄집어내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충실하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으면서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추리를 내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많다. 


동양 추리소설의 천국이자 최첨단, 일본


히가시노 게이고 ⓒ나무위키



추리소설에서 추리적 재미 아닌 의미를 찾아야 하겠느냐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그래야 한다. 추리소설 입문을 늦게 한 독자일 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겠는데, 추리소설계에서 보면 수준이 낮은 독자일 수도 있고 오히려 수준이 높은 독자일 수도 있다. 결론은 추리소설계 전체의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던 건 분명하다. 


동양에서 일본은 추리소설의 천국이자 최첨단이다. 아니, 현재는 전 세계에서조차 북유럽 정도 아니고선 대적할 곳이 없는 최고의 추리소설 나라이다. 그런 일본 추리소설계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한다. 신본격과 신사회파. 본격에서 시작된 일본 추리소설이 사회파를 지나 두 가지 흐름이 따로 또 같이 흐르게 된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로 대표되는 본격은 사건과 트릭을 중심으로 촘촘하고 철저하게 직조된 소설이고,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자 국민작가이기도 한 마츠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는 인간을 중심으로 현실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이후 80~90년대에 사회파에 반하고 본격으로 돌아가자는 신본격과 사회파를 잇는 신사회파가 동시다발로 출현한다. 


그 즈음 출현한 수많은 추리소설가들, 그중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치는 독보적인 듯하다. 특히 옆나라인 우리나라에서 그 위치는 추리소설계, 아니 문학계, 아니 출판계 전체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왠지 생각나는 그 이름 무라카미 하루키가 몇 년에 한 번씩 출현해 출판계 전체를 뒤집어버리려고 하는 것과 다르게 실상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과 다르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 년에도 몇 편씩 출간하면서도 적어도 흥행면에서 실망시키는 법이 한 번도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접하는 소설은 단연 <용의자 X의 헌신>일 것이다. 일본 대중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상 중 최고봉인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데뷔한 지 35년 정도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약 데뷔 20년 정도 시기의 작품으로 모든 면에서 완숙된 면모를 보인다. 


추리소설에 한창 빠져 있던 당시 막 출간되어 수없이 많은 추천을 듣고 읽기 시작했었는데, 자연스레 그의 다른 소설들을 접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에, 오프라인 아닌 온라인에서 주로 추천의 말들을 접했는데 대부분 여성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겉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 극강의 사랑 방식을 내보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인데, 언제 보아도 반할 만한 아름다고 슬픈 사랑의 모습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으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 소설부문을 수상했을 만큼, 일본 추리소설계 계파에서 신본격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가이다. 하지만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보다시피 추리를 수단으로 사용할 만큼 추리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국내에 출간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거니와 얼마전에는 100만 부를 돌파하기도 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 인간 본성의 따뜻함을 내보이는 게 주된 목표인 소설이다.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추리적 재미의 반석 위에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발휘한 '인간'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 소설이라면 독자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무겁거나 사회의미적이지도 너무 가볍거나 사건트릭 위주도 아닌 그 경계에서 자유자재로 줄타기를 하는 소설이 어디 흔한가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


우리나라 추리소설계를 생각해보자. 뭘 알아야 생각도 해볼 텐데 알 수가 없으니 패스하자. 우리나라 문학계를 들여다보자. 여전히 본격문학이 우위에 있다. 대중문학 또는 장르문학은 무시하고 거들떠도 안 본다. 그 소설들의 역량이 떨어지던가 또는 건질 게 없던가 하는 건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들여다보지 않으니 역량을 높일 이유가 없던가, 역량이 떨어지니 들여다볼 필요가 없던가, 여튼 어떤 식으로 문제는 문제다. 


일본은 추리소설계뿐만 아니라 문학계 전체에서도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따로 또 같이 챙겨왔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닌가. 본격문학을 대표하는 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대중문학을 대표하는 나오키 상의 동급 위상은 일본 문학계의 축복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는 단편적으론 여성이 좋아할 만한 소재, 추리가 주는 내재적 재미와 추리 아닌 것들이 주는 외재적 의미의 자유자재 줄타기, 무엇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 등이 있을 테다. 하지만 기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 뒤에는 일본 문학계의 실력이 있다. 


본격과 대중을 가리지 않고 재미와 의미를 포용하는 자세 말이다. 분명 이는 오랜 시간 반목과 조율을 그 자체가 분열이나 혼란이 아닌 민주적 다양성의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너른 자장 아래서 계속 반복해온 결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소설가가 탄생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와중에 영리하게 이쪽 저쪽을 오가며 셀프포지셔닝을 하는 소설가 장강명이 있긴 하다. 기자 출신으로 어떻게 하면 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 굴하지 않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닌 채 다작의 기본으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데뷔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그의 앞으로의 10년이 기대되는 점이다. 제2의 히가시노 게이고, 제2의 장강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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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른도감>


영화 <어른도감> 포스터. ⓒ㈜영화사 진진



열네 살 경언(이재인 분)은 아빠를 잃고 혼자가 된다. 장례식 때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을 삼촌이라는 하는 재민(엄태구 분), 장례 이후 절차를 하나하나 도와준다. 그러면서 조의금이니 보험금이니 하는 것들을 넌지니 물어본다. 경언은 똑부러지게 대처한다. 경언은 그가 어딘지 못마땅하고 못미덥다. 


미성년의 나이로 혼자가 된 경언, 재민은 후견인이 되어준다는 명목 하에 경언의 집에 들어앉는다. 그러다가 아빠의 죽음으로 남겨진 보험금 8000만원 행방이 재미을 향했다는 걸 알게 되고 끈질긴 추적 끝에 재민을 추궁하지만 이미 어딘가에 몽땅 다 써버린 상태이다. 이에 재민은 우연히 알게 된 경언의 연기력(?)으로 함께 제비 작업을 할 것을 제안하고 경언은 받아들인다. 


작업 대상은 4층 짜리 건물주 싱글 약사 점희(서정연 분), 일명 철벽녀다. 재민은 조심스레 접근해보지만 번번히 막히고 만다. 그런 그녀가 왜인지 '딸' 경언에게는 반응을 보인다. 아빠와 딸로 위장한 재민과 경언은 본격적으로 점희를 공략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한다. 이 아이 같은 어른 재민과 어른 같은 아이 경언의 앞날은 어떨까. 


안정과 편안함을 앞세운 독립영화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오랜만에 폭력 없이 코믹하고 예쁜 독립영화, 신파 없이 감동 어린 영화를 보았다. 탄탄한 기본기에 막무가내로 밀어넣는 사회적 개인적 메시지 없이 자연스레 느끼고 잔잔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의미들의 향연이 신선하고 이채롭다. 


<어른도감>은 영화적 해석을 위해 또는 감탄 어린 영화적 연출이나 각본 감상을 위해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은 영화라기보다 특유의 안정과 편안함을 즐기기 위해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은 영화이다. 


특별할 것 없는 무난함과 별다를 것 없는 익숙함을 앞세운 듯, 뻔함 속에 단백함과 잔잠함 속에 초롱함이 빛을 잃지 않는다. 즐길 만한 게 없을 것 같은 와중에 '잘 봤다'라고 저도 모르게 나온다면 어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 만듦새가 한몫 하는 것이리라. 


여러 단편을 통해 연출과 각본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김인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새삼 특이할 것 없는 당연함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극을 이끄는 세 주인공을 맡은 엄태구, 이재인, 서정연 배우의 안정감과 탄탄함은 완벽에 가깝다. 


외로운 이들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경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서 굴러왔는지 알 수 없는 경언의 삼촌(이라고 하는) 재민 또한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의 이해로 힘을 합쳐 작업을 하려는 점희도 싱글이다.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외로움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 이들을 사연 있는 외톨이로 그려낸다. 이들 셋에겐 공통점인듯 아닌듯 아이와 어른을 오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평범하다고 하는 아이와 어른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경언은 어른 같은 아이다. 아빠를 일찍 여의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빠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어른 같았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빠가 철이 없지 않았을까. 그 아빠에 그 동생이라고, 재민은 아이 같은 어른이다. 형의 장례식 때 십수 년만에 경언 앞에 나타난 모양새부터 어딘가 꺼림직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경언과 재민은 극명하게 갈리는 캐릭터다. 그래서 입체적이진 않다. 반면 점희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첫인상, 재민과 경언의 작업으로 보여지는 허당끼 어린 모습, 경언과 이어지는 아픈 과거까지. 아이 같은 모습과 어른 같은 모습이 공존하는 그녀가 진짜 어른이 아닐까. 


쌓는 작업


영화 <어른도감>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진짜 어른'은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그저 시간이 흐르도록 놔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시간을,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드려고 노력해야만 그나마 어른 비슷한 거라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걸 '경험'이라고 부르면 맞을까. 베이컨에 따르면 인간 인식의 원천은 경험에 있다고 하는데, 경험이 쌓이듯 시간이 쌓이듯 무엇이든 쌓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무언가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경언과 재민은 이제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점점 다가갈 것이다. 부득이하게 있게 된 그 자리 말고, 그들이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 그 자리가 비단 '아이 같은 아이' '어른 같은 어른'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어른 같은 아이'보다는 '아이 같은 아이'가, '아이 같은 어른'보다는 '어른 같은 어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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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몰리스 게임>


영화 <몰리스 게임> 포스터. ⓒ영화사 빅



할리우드 천재 각본가의 연출 진출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영화계에 종사하지만 각본과 연출의 결은 엄연히 다르기도 하지만, 많은 천재 각본가가 천재 연출가를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중에 영화 연출로도 진출해 여전한 실력을 자랑한 천재 각본가들이 있다. 찰리 카우프만, 테일러 쉐리던, 아론 소킨이 그들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 <이터널 션사인>의 찰리 카우프만은 2007년에 연출 데뷔를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고 오랜 시간이 흐른 2015년 <아노말리사>로 베니스에서 심사위원대상을 탔다. <시카리오> <로스트 인 더스트>의 테일러 쉐리던은 2016년 연출 데뷔작 <윈드 리버>로 칸에서 감독상을 탔다. 


<어 퓨 굿 맨> <대통령의 연인>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스티브 잡스>의 원조 '천재 각본가' 아론 소킨은 2017년 <몰리스 게임>으로 영화 연출을 데뷔했다. 그는 이미 2012~2013년에 미드 <뉴스룸 1, 2>로 훌륭한 연출 데뷔를 이룩한 바 있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 무한 기대가 가는 <몰리스 게임>이 북미 개봉 1년 여만에 한국에 찾아왔다. 


'포커 프린세스' 몰리 블룸의 실화


영화 <몰리스 게임>의 한 장면. ⓒ영화사 빅



영화는 20대에 할리우드 사설 도박장을 장악한 '포커 프린세스' 몰리 블룸의 실화를 옮긴 책 <몰리 블룸>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이다. 그녀는 엄격한 심리학자 아버지 밑에서 한때 올림픽에도 진출한 스키선수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포기하고 만다. 그녀의 인생 첫 번째 실패, 그리고 어김없이 이겨내는 그녀의 첫 번째 반전은 로스쿨이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술집 알바를 시작하는 몰리, 그녀는 도박장을 운영하는 부동산 거물 딘의 개인비서로도 일하며 투잡을 한다. 유명인들이 드나들며 엄청난 판돈이 오가는 그곳에서 팁만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몰리, 결국 독립해 자신만의 사설 도박장을 열기에 이른다. 두 번째 실패에 이은 두 번째 반전이랄까. 


이쯤 되면 그녀의 세 번째, 네 번째 계획되는 실패와 반전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자릿세를 걷지 않고자 하기에 완전한 불법으로의 길을 걷진 않지만, 사설 도박장 자체가 불법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언제 실패와 좌절을 겪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누가 봐도 눈에 들어오는 출중한 외모와 매력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런 한편 FBI의 급습으로 체포된 그녀의 변호인 찰리와의 설전도 흥미진진하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가. 그녀는 그의 실력을 믿을 수 있는가. 그녀와 그, 그와 그녀는 그녀의 이야기 이면의 진짜 이야기를 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녀에게 '도박'이란? '신뢰'는?


영화 <몰리스 게임>의 한 장면. ⓒ영화사 빅



영화는 2010년 가장 바쁜 여배우 중 하나인 제시카 차스테인이 원톱으로 오롯이 이끈다. <인터스텔라> <마션> 등에서의 2순위 주연의 느낌이 아닌, <제로 다크 서티> <미스 슬로운> 등에서의 신념 어린 카리스마를 선보이는 단독 주연의 당당함을 다시 한 번 선보이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영화 속 몰리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모든 걸 잃을 위기에 빠진 몰리는, 그럼에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게 있다. 자신이 운영했던 불법 도박장을 드나들었던 주요 고객들의 신상명세. 찰리가 원하는 건 당연히 그들의 인생 따위가 아닌 의뢰인 몰리의 인생, 하지만 몰리의 신념을 꺾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몰리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는 제시카 차스테인밖에 없는 것 같다. 


그녀의 길지 않은 삶에서 도박이란 무엇일까. 무엇이길 바란 걸까. 영원한 일등도 영원한 꼴등도 없는 롤러코스터의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삶의 진리? 누구나 선망하고 우러러 보고 닮고 싶은 거물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얻는 삶의 진리? 


그것보다 '신뢰'가 우선이고 제일일까. 도박장 운영자와 도박장 고객 간의 철저한 믿음과 신뢰 하에, 대부분의 고객들은 돈을 쓰며 놀다 가고 어떤 고객들은 인생을 건 게임을 하며 어떤 고객들은 일을 한다. 몰리는 팁을 받고 자릿세를 걷는 대신 책임 지고 그들을 지켜준다. 


완벽하게 직조된 서사와 내러티브


영화 <몰리스 게임>의 한 장면. ⓒ영화사 빅



아론 소킨의 각본과 연출 방식은 굉장히 '영화적'이다. 의미와 메시지보다 사건에 집중하고, 사건보다 캐릭터에 집중하고, 캐릭터보다 대사에 집중하고, 대사보다 흐름에 집중한다. 즉, 내러티브를 가장 위에 두는 것이다. 관객은 눈 돌릴 새도, 생각할 새도 없이 영화에 집중하고 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의 내러티브 방식은 할리우드의 큰 흐름 중 하나를 형성했다.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는 대규모 스케일과 리얼리티, 영원히 남을 캐릭터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영화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직조된 서사와 내러티브 형성을 지향한다. 영화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수렴되는, 보다 원론적인 영화의 모습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몰리스 게임>은 참으로 신통하다. 크나큰 사건 하나가 아닌 자잘한 사건사고가 끝없을 정도로 이어지는 서사의 모양새가 재미와 지루함의 경계에 교묘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장인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직조한 명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꾸역꾸역 끝까지 끌고 가다시피 한 '멱살 캐리'의 불안한 상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재미보다 지루함이 앞섰지만 불안한 상품보다 어중간한 명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한편 어떻게 이런 내러티브를 선사하고 어떻게 이런 대사 집중력을 보일 수 있는지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마치 긴 드라마를 축약해 영화로 만든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아론 소킨은, 각본은 영화만, 연출은 드라마까지도 잘 해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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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표지 ⓒ아시아



영화와 더불어 단언컨대 우리가 가장 많이, 자주 접하는 대중매체 콘텐츠는 드라마이다. 아니, 영화는 극장이라는, 직접적인 돈이 지불되는 제한된 곳이 메인 매체인 반면 드라마는 TV라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무한정의 곳이 메인 매체이기에 가장 친숙한 콘텐츠인 게 자명하다 하겠다. 


즉, 드라마는 우리의 삶의 깊숙히 들어와 있다.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라면 삶 그 자체와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드라마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라고 해도 알게 모르게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보다 그 영향력에 비해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가 정통적으로 상정했던 시청자층의 협소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드라마를 오직 TV로만 접할 수 있었을 때는 오히려 영화보다 영향력이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아침, 저녁, 밤 시간대에 주로 방영한 드라마, 그 드라마의 주시청자는 주부였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회에서 빅마우스 역할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었다. 


시대가 지나 대중매체가 다양해짐에 따라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영화는 여전히 제약이 있는 반면, 드라마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드라마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시청자층은 다양해지고 다양한 시청자층을 수용할 다양한 드라마를 선보이게 되었다. 웰메이드 영화처럼 웰메이드 드라마도 탄생했다. 


드라마 분석과 연구와 비평


드라마를 무시하기는커녕 한국드라마는 일본, 중국을 포함 아시아를 완전히 점령했다. 드라마에서 파생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유행을 선도했다. 단순히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왔던 드라마는 우리의 세상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 대한 분석과 연구와 비평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는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드라마가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가미해 분석한 책이다. 드라마는 시대를 선도하기도 하고 시대에 각고히 발맞춰 가기도 한다. 반면 절대 시대에 뒤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만들면 온국민이 한 번쯤은 본다는 가정 하에 영화나 책처럼 종종 있는 허투루 만들어진 콘텐츠가 절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한국드라마를 중심으로 미국, 영국, 일본드라마도 종종 다루며 멜로, 가족, 판타지, 범죄의 네 가지 장르로 나눠 분석한다. 지금은 전방위적으로 퍼져 나갔지만 '한류열풍'의 원조는 한국드라마일진대, 그들 거의 모두가 멜로이다. 멜로와 필적할 만한 제작 편수를 자랑하며 흥행불패에 가까운 신화를 써내려온 가족드라마.


201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제작 편수를 늘리며 새로운 흥행신화를 써내려가고 그 환상성에 우리의 이야기를 잘 녹여내며 호평을 받고 있는 판타지드라마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자리잡아 가장 대중적으로 만들어지고 또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인 범죄는 우리나라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상륙한 모양새이다. 


드마라를 통해 현 시대를 들여다보다


이 책은 드라마 장르의 구분에 따른 분석, 드라마의 변천사, 드라마와 함께 해왔던 함께 하고 있는 시청자와의 조우 등을 소재와 주제로 삼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드라마가 만들어진 당대의 시대상을 요밀조밀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시청률의 압박은 심할지 모르지만, 영화보단 덜 상업적일 테고 영화보다 더 소통지향적일 테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드라마'에 한정해 누군가의 연구와 누군가의 드라마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또한 추천사를 통해 드라마 마니아, 드라마 작가지망생, 드라마 비평이나 논문을 준비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 책에서 '드라마'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즉, 드라마를 통해 다른 무엇, 현 시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드라마는 대상이 아닌, 대상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책은 드라마 자체를 들여다보는 데에도 훌륭히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난 편집자로서 그 점을 인지했고 저자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는 목적으로서의 드라마와 수단으로서의 드라마 모두를 들여다보는 데 문제 없이 가능한 훌륭한 책이다. 


멜로드라마와 판타지드라마


저자의 멜로드라마와 판타지드라마를 대하고 분석하는 시선은 대단히 균형 잡혀 있고 공감간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멜로드라마를 가장 무시하고 하찮게 여길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 고정관념 속에서 저자는 그 인기요인과 위험성을 분석한다. 패턴으로 고착화되어 간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있지만, 반복적으로 누적된 경험으로서의 관습이 기대와 만족감을 주기에 마니아층과 팬덤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로맨스가 생기고 사랑에의 금기를 내보이는 데에도 변화가 있다는 점을 인지한다.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사랑을 모두 성취하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결혼의 신성함과 순결은 더 이상 도덕적 관념의 틀 안에서만 해석되지 않게 되었으며, 중년과 노년의 로맨스와 재혼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망측한 짓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불륜, 동성애 등은 금기의 선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저자는 드라마가 판타지라 말한다. 드라마가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며 판타지의 환상성이 우리 안의 결핍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별에서 온 그대>의 사랑에의 욕구, <너의 목소리가 들여>의 행복에의 욕구, <시그널>의 정의에의 욕구. 드라마는 판타지이고 판타지는 우리 안에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드라마 관계자들은 사람들의 결핍과 결핍에 따른 욕구를 면밀히 분석해 현실적인 대리만족과 현실참여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여렴이 없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분들을 향한 헌사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그런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이다. 언젠가 세상은 보다 좋게 바뀔 것이다. 아니, 이미 세상은 보다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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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표지 ⓒ산지니



1990년대 초, 일본에 '북오프'라고 하는 중고 서점이 생겼다. 정확히 일본의 장기침체 기간 '잃어버린 10년'과 시작을 함께 했고, 일본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중고 서점은 호황했다. 일본 여행의 필수 관광지라는 타이틀을 얻고는 일본을 넘어 해외에 진출도 하였다. 북오프가 생긴 지 정확히 20년째 한국에는 알라딘 중고 서점이 생긴다. 


알라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06년 한국에 진출한 북오프는 2014년에 철수했다. 한국의 알라딘은 일본의 북오프만큼 호황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헌책방' 사업이 약진하는 중이라 한다. 맞는 말인가? 전체 파이로 보면 분명 그래 보인다.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이다. 알라딘 중고 서점을 제외한 많은 헌책방들이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많은 점포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와중에도 살아남는 소규모 헌책방들이 있을 것이다. 나름의 자타가 공인한 내공으로 대형 헌책방들이 지니지 못한, 지닐 수 없는 색깔을 지니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 그 대표격이라 하겠다. 이 헌책방의 주인장인 윤성근 작가는 많은 책을 통해 책에 대해, 헌책방에 대해, 이상한나라의헌책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 또한 익히 알고 있다. 


2년여 만에 '작가'로 돌아온 윤성근 주인장의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산지니)에는 그가 운영하는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상 '이나헌') 운영 철학과 그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생활'의 다짐이 담겨있다. 그 중심엔 20세기 가장 탁월한 사상가로 불리는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있다. 이는 곧 저자의 사상이기도 하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주인장의 이반 일리치적 사상


지난 2007년에 문을 열어 올해 2018년으로 11년차를 맞이한 '이나헌'에는 주인장이기도 한 저자 윤성근의 철학과 다짐, 그리고 그 기원인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곳곳에 담겨 있다. 노동, 생활, 속도, 에너지, 자립, 자유, 전문가, 평화로 풀어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가는 항목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아픈'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지 않을까. 


개중에 더 와닿은 것들이 속도, 자립, 평화 등이다. 저자는 '이나헌'이 일터이고 돈을 벌어 생활하는 수단이지만 삶과 이를 대하는 태도를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속도를 가지고 있는데 현대사회는 무조건 '빠름'을 들이댄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병든다. '이나헌'은 주인장의 속도감에 맞춰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오후 3시에 출근하고 주4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돈을 많이 벌진 못하지만, 돈보다 건강이 중요한 사람에겐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이거 해서 먹고살 수 있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비싼' 삶을 살진 못하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빠듯한 삶을 살고 있다. 그때 나타난 게 어김없이 이반 일리치이다. 그는 말한다. 돈을 벌어 집을 구입해 가족과 떨어져 따로 거주하는 일차원적인 것이 자립이 아니고, 우리를 잡아매도록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탈출해 그것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 게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라고 말이다. 


'평화'는 어떤가. 헌책방과는 너무 동떨어졌거니와 너무 거창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평화는 우리가 흔히 갈망하는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축제와 같은 것이라고. 그는 그가 일하는 터전을 그런 풍경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여기에 이반 일리치도 거든다. 평화에는 잠재력이 필요한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시를 써내는, 누군가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배웠던 게 아닌데도 엉뚱한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해내는 창의력 등이 그것들이다. 


이반 일리치 사상의 구체적 사례들


이반 일리치의 사상을 '이나헌'에 옮긴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여다보자. 이 작업은 비단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라는 상점을 '한번 찾아가보고 싶다' 정도에서 멈출 게 아니라, 이반 일리치의 사상과 철학을 더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접목해보고 실행에 옮기는 데 도움을 주고받는 차원에서 봐야한다. 우린 현대사회의 여러 병폐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공동체적으로 또 보다 광범위하게 치료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이나헌'이나 '윤성근'이 아닌 '이반 일리치'라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이반 일리치가 주인공인 책이라 해도, 저자가 이반 일리치 아닌 윤성근인 이상 이반 일리치의 사상과 철학을 자기 식으로 소화한 윤성근의 사상이 책에 담겨 있어야 하겠다. 이 책은 서평 모음집이나 이반 일리치 사상과 철학 해석집이 아닌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소개집에 가깝지 않은가. 


2년 동안 꾸준히 헌책방을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아무 말 없이 아무런 책도 구경하지 않고 사지도 않은 채 가만히 있다가 가는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저자가 말을 걸었을 때 돌아온 말은 헌책방이라는 장소의 비전을 선사해주었다. "저는 여기 뭘 하러 오는 게 아니에요. 여기 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래서 오는 거예요." 덕분에 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이 책을 통해 고민할 시간을 주는 장소를 마련하는 거라는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 


'심야책방'이라는 이름의 밤샘영업 이벤트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성황리에 계속되었다. 이 이벤트는 주인장이 계속해서 찾고 있는 '재미있는' 이벤트의 대표격이었다. 그는 사실 이벤트보다 타인의 삶과 생활에 더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있고 그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의 주체는 헌책방일 수도, 이벤트 그 자체일 수도, 주인장일 수도 없다. '재미'의 주체는 헌책방을 찾는 모든 이들, 다른 말로 현대사회의 개인이다. 


2012년 추운 겨울, 잘 아는 이가 헌책방으로 다 죽어가는 어린 고양이를 데려왔다고 한다. 겨우 살려낸 그 아이의 이름을 '앙또'라고 붙여주고 헌책방 독서모임 막독의 리더 시로 군의 집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 와중에, 헌책방이 이사하게 된  2015년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주인공의 눈에 띈다. '짹순이'라고 이름 붙인 그 아이는 여러 손님들의 도움으로 여전히 동거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언젠가 헌책방도 없어질 테고, 고양이도 죽을 테다. 슬픈 일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말이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자. 


저자는 확신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진정한 자립,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는 것, 버텨낸다는 것. 이런 것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끝없이 연구하고 실천에 옮기고 수정하고 나아간다. 인터넷으로 책을 팔지 않고, 간판과 명함이 없다. 한 번 오면 잊히지 않게 특이한 것들을 직접 만들며, 손님들을 믿고 무료 나눔 상자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헌책방 주변 이것저것 지도'를 만들어 단순 가게 홍보 차원을 넘어 주변 공동체와 동네, 그리고 마을의 공동 이익선의 확대를 추구하고자 한다. 다른 건 몰라도 10년 동안 하나는 확실히 알아냈다고 한다. 시간이 걸리고 더디게 움직이더라도 여럿이 함께 설 수 있는 자립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그'가 아닌 '우리'의 자립을 위해 있는 자리에서 하루하루 노동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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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델마>


영화 <델마>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언 강을 장총 든 아빠와 딸이 함께 건넌다. 맞은편 숲에 도착한 그들, 아빠는 조심스레 사슴의 목숨을 노린다. 곧 죽을지 모를 사슴을 지켜보는 딸, 아빠는 사슴을 향한 총구를 돌려 딸에게 향한다. 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진 못하고 사슴은 도망간다.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그 사연의 총량이 결코 작아보이지 않는다. 


딸 델마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한 그녀,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도서관 창문으로 맹렬히 날아오더니 부딪혀 떨어지고 동시에 델마는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당일 밤 뱀이 목을 조르는 꿈을 꾸고 다음 날 수영장에서 안부를 묻는 안자를 만나 페이스북 친구가 된다. 


곧 친해지는 그녀들, 하지만 델마는 부모님의 전화로 급히 빠져나온다. 그러곤 당일, 안자는 자기도 모르게 델마를 찾아가게 되고 그들은 한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잔다. 델마는 안자에게 연심을 품은 듯 보인다. 이후 그들은 함께 술, 담배를 하고 키스도 한다. 델마는 아버지께 최소한의 일탈을 고백하고 신앙심을 다시금 고취해보려 하지만, 안자를 향한 마음을 접을 길이 없다. 그리고 계속되는 발작... 


21세기판 <캐리>의 북유럽 버전


영화 <델마>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재작년 <라우더 댄 밤즈>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최신작 <델마>로 찾아왔다. 영화는 초자연적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띤,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이다. 감독은 전작에 이어 한 가족의 '폭탄보다 더 큰 소리'가 나는 사연과 비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연 생각나는 건 스티븐 킹 원작,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78년작 <캐리>, 독실한 신자인 엄마 밑에서 순결을 강요받으며 내성적이고 소심한 학교 생활을 하다가 끔찍한 따돌림을 당하고선 초능력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캐리. 그리고 과거의 비밀과 딸의 배신에 뒤엉켜 목을 졸리게 된 엄마는 딸을 향한 광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델마>는 21세기판 <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초자연적 힘과 광적이고 화려하다고 할 만한 비쥬얼이 주가 되는 대신, 보다 신화적이고 은유적이고 관능적이다. 그리고 배경이 북유럽이다 보니 특유의 자제된 서늘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쯤에서 <렛 미 인>이 생각나는 건 비단 나뿐일까. 섹슈얼한 공포를 유발시키는 설(雪)의 향연이 <델마>에서는 배우들의 몸짓과 눈빛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이런 면에서 <캐리>의 북유럽 버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델마의 발작과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억압과 금기


영화 <델마>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델마의 발작은 그녀로 하여금 일어나는 것 같은 초자연적 현상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단순히 그녀의 가족 중 누군가가 같은 병력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는 추측과 확신에만 시선이 가지는 않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가족력의 비밀이 중요하게 다뤄지게 되는 건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덕분이겠다. 


영화는 이야기들과 비유, 상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델마의 성장의 고됨과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자체로 훌륭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기능한다. 투철한 기독교 집안의 꽉 막히고 고지식한 자제의 세상 알아 가기. 그 교육이 결코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본능을 이길 소지는 없다. 


그런 면에서 델마의 발작은 그녀가 하나하나 풀어가는 억압과 금기의 실타래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녀의 끔찍한 내적 갈등과 싸움이 표출되는 것이리라. 그녀는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그 갈등의 한복판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발작과 함께 찾아오는 초자연적 현상은 그녀의 본능이 폭발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 설명할 길 없는 초자연적 현상은 델마의 어린 시절도 돌아가 그녀 가족의 사연과 직결된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서가 아닌 그 현상 때문에 억압되어야만 했던 그녀의 사연, 첫 장면에서 아버지가 총구를 사슴 아닌 델마로 향했던 사연 등. 그렇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 모든 것들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공상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마치 델마의 성장 이야기에 편입된 거대한 세계의 조각조각난 일부분인 것처럼. 


델마의 성장 이야기


영화 <델마>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를 델마의 성장에 맞춰서 볼 필요도 있겠다. 그럼 모든 일들이 더 뚜렷하고 더 명확하고 더 다채롭게 다가온다.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모양새를 띠지만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는 반면, 진짜를 얻기 위해 엄청난 껍질 손질을 해야 하는 밤송이처럼. 


<델마>의 완벽하리만치 직조된 이야기와 비유, 상징들의 타래는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의미를 찾기 위해선 그 모든 매력적인 것들을 헤치고 들어가 델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평생 길들여지고 교육된 정중동의 삶의 입방체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영화 <송곳니>에서 완벽하게 '잘못' 교육받은 큰딸이 큰 결심과 행동 끝에 빙퉁그러진 세계에서 탈출하고, 소설 <데미안>에서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구절처럼 말이다. 힘들고 가혹한 탈출의 투쟁이 <델마>에서는 곧 험학한 발작과 끔찍한 초자연적 현상이다. 


델마는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금기를 깨뜨리고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나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인생 처음으로 맞이하는 통과의례를 남들보다 늦게 힘겹게 지날 수 있을까. 이 세상 모든 델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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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인 것 같다.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르며 한껏 고무된 나를 발견한다. 이전의 소방차나 김완선의 기억은 별로 없다. 이후의 기억이 다시 생생하다.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시작해 듀스, 룰라, 쿨, DJ DOC, R.ef... 1990년대 초중반은 그야말로 전설들의 춘추전국시대가 아닌가. 좋은 시절이었다. 


중학교 2학년의 기억으로 건너간다. 친구가 물어온다. "H.O.T.야 젝키야, S.E.S.야 핑클이야." 난 젝키와 핑클을 골랐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H.O.T.와 S.E.S.는 SM 소속, 젝키와 핑클은 대성 소속이었다. 난 잘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느낌보단 보다 현실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그나마 좋아했나 보다. 


1997~8년 당시 중딩에게 가수는 이 네 그룹, BIG 4뿐이었다. 비록 신화나 베이비복스를 비롯해 지금은 전설 아이들이라고 할 만한 그룹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비할 바 아니었다. 하지만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은 그들의 인기도 오래가진 못했다. 사람들은 실력 있는 아이돌을 원했고, 아이돌은 독립을 원했다. 


2000년이 시작되자 마치 짠 것처럼 BIG 4는 일제히 해체 및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이후 몇 년 동안 아이돌 그룹은 자취를 감췄다. 대형 솔로 가수와 BIG 4 출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때가 암흑기라면 암흑기일까, 조만간 시작될 새로운 아이돌 천하의 전주곡일까. 


보이그룹 아이돌의 기억




군대에 있을 때였다. 군대하면 걸그룹일 텐데, 내가 군대에 있을 때(2005~2007) 걸그룹은 전무했다. 대신 그 자리엔 동방신기가 있었다. 난 중2 때처럼 선택을 강요 받았다. 선임이 말했다. "난 최강창민할 건데, 넌 뭐할래." "전 유노윤호하겠습니다." 나는 걸그룹에 열광하는 대신 내가 보이그룹이 되었다.


노래와 춤은 물론, 표정도 따라했다. 당시 비가 <I'm coming>으로 2년 만에 정식 컴백을 해 그 어디에서보다 군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 역시 군인들이 누군가에게 열광하는 입장이 아닌 스스로가 누군가가 되어 자신을 내보이는 주체화 현상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다. 


제대하고 나서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외롭고 힘든 군대 시절에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덕분인지, 난 여전히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을 선호한다. 그래서 동방신기 이후엔 자연스레 빅뱅-슈퍼주니어-엑소-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로얄 보이그룹 라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이사이 2PM, 샤이니, 비스트, 인피니트 등도 많이 보고 들었다. 


난 노래를 주로 유튜브로 듣는데, 지금도 내 좋아요 동영상엔 보이그룹 노래가 상당하다. 하다 못해 예전의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Missing you> <Sea of Love>를 비롯 동방신기의 <MIROTIC>, 빅뱅의 <FANTASTIC BABY>, 비스트의 <픽션>, 샤이니의 <Ring Ding Dong>, 엑소의 <중독>, 워너원의 <에너지틱>, 방탄소년단의 <FAKE LOVE> 등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보이그룹이라 할 순 없지만 남성그룹이라 할 만한 김경호, M.C THE MAX, 플라워, 에픽하이 등은 최애 그룹이다. 


단순히 군대에 있을 때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것만으로 이런 나의 보이그룹과 남성그룹 사랑을 설명할 순 없겠다. 주체화 현상이라는 거시적 분석도. 거기엔 나의 지극히 사적인 '노래(방)' 사랑이 작용한다. 난 내가 직접 불렀을 때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또는 잘 부르고 싶은 노래만 듣는다. 남자 가수건 여자 가수건 구분이 없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 가수의 노래를 압도적으로 즐겨들을 수밖에 없을 테다. 


와중에, 가수가 되기 위해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노래 부르는 게 좋고 또 이왕이면 음주가무 시간이 되면 일종의 '보여주기' 식으로 부를 만한 노래가 필요하기에 그럴 때 필요한 것들이 아이돌의 노래가 된다. 더욱이 요즘 아이돌 노래들이란 예전같지 않아서 후크가 계속되는 난점이 있는 중에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쉽게 부를 수 없는 고난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불러주어도 불러준 사람의 가치(?)가 하등 하락하지 않는 것이다. 


외롭고 힘든 군대 시절에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덕분인지, 난 여전히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을 선호한다. 그래서 동방신기 이후엔 자연스레 빅뱅-슈퍼주니어-엑소-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로얄 보이그룹 라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심지어 사이사이 2PM, 샤이니, 비스트, 인피니티 등도 많이 보고 들었다.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의 기억




그런데 삼십대 즈음부터 아이돌을 향한 관심, 아이돌에 대한 정보 취합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엑소부터는 찾아서 듣는 게 아니라 들려서 듣는 쪽으로 자연스레 선회하게 된 것이다. 대신 거짓말처럼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류의 음악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돌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인가...


하는 찰나에 찾아온 게 책이다. 무슨 책인고 하면, '문화 레전드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된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 난 이 책들을, 아니 이 시리즈를 맡아 편집하게 되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2015년 1권과 2권을 내고는 YG와 JYP의 수장 및 대표 아티스트를 다루려던 3, 4, 5, 6권은 중단되었다. 


여하튼 나는 아이돌을 향한 관심을 다시금 담금질하고 아이돌의 역사까지 다시 한 번 훑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리즈 기획과 출간을 편집자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힘든 작업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얼마전 출간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베트남에 판권이 팔리는 기적을 연출해 결국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아이돌 책은커녕 이런 류의 기획적 요소가 다분한 책을 만든 적이 없었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이수만 회장과 EXO 본인이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하다 못해 당사자들이 책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괜찮았을 테지만, 우린 그들 모르게 작업을 진행했다. 이메일, 전화, 공문 등을 통해 접촉했지만 허사였다. 


태생적인 핸디캡을 안고 SM 쪽은 영화 관련자, YG 쪽은 문화 기획자, JYP 쪽은 문예창작학과 출신자가 맡아 집필했다. 동시에 시리즈 전체 디자인을 총괄하는 아트디렉터와 각각 컨셉에 맞는 일러스트 아티스트를 물색했다. 아울러 사전 홍보를 위한 SNS 채널도 개설하고 굿즈 개발을 위해 기획사에서 운영하는 아트샵에도 방문했다. 


찬란한 계획 아래 실행은 지지부진 했다. 원고만 해도 수없이 보고 또 봐도 사실 관계까 틀어진 곳을 수없이 발견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매일 체크해 최대한 반영시켜야 했다. 일러스트 아티스트와의 협업과 이후 전시라는 컨셉을 위해 그 어느 책보다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찜찜한 구석은 남았다. 


결국 잘 팔리면 이 모든 게 보상된다는 생각 하에 기획사에 무작정 찾아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 오히려 책을 만들지 말라고 할까봐 일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언제 한 번은 JYP 측에 연락이 닿아 원고를 보내드리기도 했지만, 답변을 받진 못했다. 팬클럽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홍보를 해볼까 생각해 가입도 했지만, 책 홍보하는 걸로 받아들여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까봐 그러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들이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시리즈가 1년 이상 끌리다 보니 위에서의 압박, 저자들과 아티스트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당시 책들이 출간될 때까지 족히 몇 개월 동안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래도 덕분에 아이돌에 대해 조금은 더 전문적으로 알게 되긴 했을 듯?


한국 아이돌과 KPOP의 선순환을 위해




우리나라 아이돌은 미국과 일본의 이미지와 기획과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들여오다시피 했다고 알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정확히 일치하려는 바로 그 시점에 날카로운 직잠과 시장조사에서의 확신을 갖고 프로듀서들이 나섰던 것도 있을 테고, 보다 여유로운 시대로의 이행 시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변화의 바람이기도 했을 테다. 


현재 우리나라 아이돌은 KPOP이라는 이름 하에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휩쓸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3년 전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를 만들 당시만 해도 '혜성 같이 떠오르는 무서운 아이돌 신예' 정도로 포지셔닝되어 있었던 '방탄소년단'이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아이돌의 축적된 경험과 시스템이 최대치로 폭발한 현장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동안에도 국내 최고의 아이돌들이 세계 각지에서 해당 국가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었다. 거기엔 항상 '최초'와 '최고'와 '최선'이 붙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전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럼 앞으로 수렴되어야 하는, 수렴될 것이라 예상되는 방향은 어디일까. 


특정 아이돌의 독점적 질주는 당연하다. 그리고 KPOP의 경우, 특정 아이돌의 선전이 KPOP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는 걸로 보인다. 덕분에 수많은 친구들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여전히 엄청난 경쟁을 뚫고 아이돌이 되고자 한다. 아이돌 산업의 실태는 잘 모르지만, 확고한 자본과 시스템이 산업 전체로 잘 순환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보면 더 뚜렷하게 보인다. 


앞날이 창창한 한국 아이돌 KPOP, 다만 한 가지 보다 미래지향적인 바람이 있다면 한국 아이돌=KPOP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고착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이다. 한국 아이돌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는 반면, 한국 가요계는 다양성은 이전보다 잘 시행되고 있지만 전체 파이가 커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아이돌이 외모, 서비스, 관리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실력까지 다 갖춰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엄청난 아이돌이 나타나 보다 글로벌한 인기를 얻을 게 분명하다. 반대로 언제 그랬냐는듯 암흑기가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 우리 KPOP은 정점을 찍었거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일 텐데, 오로지 위'만'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아래'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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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업그레이드>


영화 <업그레이드> 포스터. ⓒUPI코리아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2003년 개봉한 <매트릭스2-리로디드>의 메인 광고 문구이다. 1999년 세기말에 개봉해 가히 액션 패러다임의 신기원을 이룩하며 지금까지도 그 이상을 선보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매트릭스>의 후속편이자 위대한 매트릭스 트롤리지의 한 편으로 그 가치는 충분함 이상이다. 


21세기 들어 <매트릭스>의 액션을 이어받으려는 또는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매트릭스는 잊어라!'며 당당하게 SF 액션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퀼리브리엄>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잔인함의 미학을 새로 새운 <킬 빌> 시리즈, 부드러운 강함의 영원한 판타지를 실현시킨 <와호장룡>, 면대면 맨몸 액션의 새로운 장을 연 <본> 시리즈, 아크로바틱 100% 리얼 액션을 표방한 <옹박> 시리즈 등. 이밖에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들이 부지기수이다. 


최근 이 계보를 이을 만한 액션영화로는 <존 윅> 시리즈 정도가 생각난다. <이퀼리브리엄>과 <킬 빌>과 <본>을 투박하게 합쳐놓은 듯한 영화로,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이 영화 <업그레이드>이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겟 아웃> 등으로 유명한 공포호러 명가 '블룸하우스'의 첫 액션 영화라고 한다. '공포음악' 영화라는 새장르를 개척한 <위플래쉬>를 만든 제작사이기도 한 바, 어떤 액션을 선보일지 한껏 기대된다. 


전신마비 환자에게 다가온 최첨단 기술의 유혹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하루종일 집에서 차를 가지고 노는 그레이는 아내와 함께 차 주인에게 차를 돌려주러 간다. 차 주인은 다름 아닌 유명한 베슬컴퓨터사의 주인 베론 킨이다. 그는 온 김에 그들에게 스템이라 불리는 칩을 보여준다. 그것은 말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새롭고 더 나은 두뇌이다. 


그레이와 아내는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자동주행 차가 오류를 일으켜 집이랑 정반대인 뉴크라운이라는 빈민도시로 향한다. 사고를 당하는 그들에게 네 명의 괴한이 들이닥치고 그들은 죽임을 당한다. 전신마비로 살아난 그레이와 결국 죽은 아내. 그레이는 최첨단 로봇기술 덕분에 누워만 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런 그 앞에 베론 킨이 나타나 뭐든지 할 수 있는 스템을 들이댄다. 그건 그레이를 다시 걷게 해줄 수도 있다. 그레이는 아내를 생각하며 극비수술을 받아들이고 몸에 스템을 이식한다. 스템은 그를 걷게 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첨단 기술과 시스템을 이용해 그의 몸뿐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와 최선의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해준다. 그레이는 자의 혹은 스템에 의해 아내의 복수를 시작하는데... 


신선한 로봇 액션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는 그레이의 은근 코믹 말빨과 스템에 의한 로봇(컴퓨터) 액션이 외양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근미래를 배경으로 최첨단 로봇이 아날로그적 인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디스토피아적 메시지가 내용을 진중하게 채운다. 새로운 양식의 액션을 관람하면서, 오래된 SF적 두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100% 액션 영화라 할 만한 이 영화에, 그것도 은근한 잔인함을 내세우는 와중에 '코믹'이 들어갈 소지는 없어보이는데, 그레이와 스탬의 케미가 주는 재미가 툭툭 튀어나온다. 대놓고 코믹이 아닌 은근한 코믹, 지배하려는 스템과 지배당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레이의 밀당이 주는 재미도 은근하다. 


그래도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쾌감은 뭐니뭐니 해도 스템에 의한 그레이의 로봇 액션이다. 완벽한 각본과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에 저절로 따라올 절대적인 연습, 그리고 카메라의 환상적인 워킹이 혼연일체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레이는 상대방과 약속된 행동을 완벽히 하는 와중에, 카메라는 카메라대로 정밀하게 움직인다. 


애드리브가 있을 수 없는 액션이란, 아무리 영화에서 액션이라는 것이 각본에 완벽히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정말 힘든 것이다. 이 영화가 비록 리얼 액션과는 거리가 조금 멀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신기하고 반갑고 신선하다. 현 액션 영화의 대세가 리얼 액션 아닌가. 그에 당당하게 반기를 들었다고 할까. <업그레이드> 액션의 신선함은 '로봇 액션'에서, 로봇 액션의 신선함은 '리얼 액션'의 반감에서 오는 것이다. 


아날로그적 인간에 침투한 최첨단 시스템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신선한 액션만 가지고는 앞에 'SF'를 붙이기에 민망하다. SF가 물론 이제는 마니아 아닌 대중지향적인 장르가 되어 보다 볼 거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인간세계에 대한 진중한 철학이다. 그리고 SF의 배경은 주로 미래, 거기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상천외한 것들이 부지기수인 바 개중에는 꼭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 그것들이 노리는 인간은 최첨단을 달리던지 가장 아날로그적이던지. 


괴한의 습격으로 아내는 죽고 전신마비가 된 그레이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첨단두뇌 스템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비록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마 스템은 그런 그이기에 그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들 한다. 그게 맞을지 모른다. 아니, 맞다. 괜히 외계생명체들이 뇌에 침투해 육체를 조종하겠는가. 이 영화는 그 명제를 조금 비튼다. 정신은 나의 것이지만, 정신의 반과 온전한 육체는 너의 것이라면? 그것도 육체가 가진 능력을 온전히 끌어올리게 해준다면? 


그런 공존이 가능하다면 무서워진다. 나는 육체를 가질 수 없지만, 너는 육체'까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정신까지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육체는 껍데기이기 때문에 가지는 비사고성으로 정신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육체는 주체가 될 순 없겠지만 주체에 의한 절대성이 고스란히 침유된다면 못할 게 없다. 인간은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육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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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송곳니>


영화 <송곳니> 포스터. ⓒ필굿 엔터테인먼트


모든 것엔 기원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5만 명 전후의 흥행성적과 폭발적인 비평성적을 기록한 바 있는 <더 랍스터> <킬링 디어>의 감독 요르고스 란디모스, 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잔인하고 빙퉁그러진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통렬한 우화를 선사하는 그의 기원은 어디일까. 


그리스 태생인 그는 <더 랍스터> 이전까진 4편의 영화를 당연하게도 오로지 그리스를 배경으로만 영화를 찍었다. 그중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더 랍스터> 이전 그의 이름을 알린 <송곳니>가 요르고스 란디모스 영화의 기원 또는 스타일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고정팬도 생기고 '젊은 거장'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그의 시작은 어땠을까. 아니, 이 영화로 시작을 알 순 없으니, 지금은 확립되다시피 한 그의 스타일의 시작은 어땠을지 궁금증을 갖는 게 맞을 것 같다. <송곳니>는 그에 대한 답을 충분히 줄 수 있을 것이다. 


잔인하고 빙퉁그러진 세계


영화 <송곳니>의 한 장면. ⓒ필굿 엔터테인먼트



오늘 배울 단어는 '바다', '고속도로', '소풍', '카빈총'이다. 그중 '바다'를 들여다보자. '바다'는 나무 팔걸이가 달린 안락의자로 집의 거실에 있는 걸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예문은 "서 있지 말고 바다에 앉아서 나랑 얘기나 해요"란다. '고속도로', '소풍', '카빈총'에도 상식과 동떨어진 의미가 부여되고 예문이 나열된다. 


도시 근교의 대저택, 수영장과 정원이 있고 높은 담장이 둘러진 그곳에 세 남매가 아빠한테 기괴한 교육을 받는다. 엄마는 교육을 함께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아빠만 차를 타고 저택 밖에 나갈 수 있는 걸 제외하고 나머지는 집밖에 나가는 것도 허락 없이 안 되고 저택 밖에 나가는 건 절대 안 된다. 아니, 송곳니가 빠지고 나서는 나갈 수 있다. 나갈 땐 차를 타야 하는데, 운전은 송곳니가 다시 나고 나서야 배울 수 있다. 


이 잔인하고 빙퉁그러진 세계를 창조해낸 건 아빠다. 그는 엄마와 공조해 생활의 수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철저히 통제한다. 매일매일 시행되는, 외부와는 전혀 다른 의미 체계의 단어 외우기. 즉, 교육. 그리고 다시는 '불순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이다. 


아빠는 막내아들 남자 구실 '교육'과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의 여자 경비원을 지에 들인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지 못하게 첫째딸과 교류 아닌 교류를 하는데, 비디오 테이프나 헤어젤을 가져다준다. 첫째딸은 그렇게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고 결국 생각할 수도 없었던 계획을 시도하려 하는데...


독재와 교육


영화 <송곳니>의 한 장면. ⓒ필굿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포스터를 통해 대놓고 메시지를 전한다. '전 세계가 격찬한 독재에 대한 통렬한 우화!' 전 세계가 격찬한 것도 맞고 독재에 대한 이야기인 것도 맞고 우화인 것도 맞으니 더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순 없으니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영화의 전반에 흐르는 '교육'을 말해보고자 한다. 


교육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 능력을 후천적으로 올바르고 수준높게 끄집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자와 피교육자 모두 어느 하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 사실상 동등한 관계로서 존재해야 한다. 인간이 절대 완벽할 수 없기에, 스승이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에 일방적이면 안 된다. 


바로 영화 <송곳니>에서처럼 말이다. 스승인 아빠가 제자인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그리고 일부러 '잘못된' 사실을 주입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교육의 중요성을 몇 번이고 다시 되새기게 된다. 물론 여기서 아빠가 주입시키는 사실이 '잘못된' 게 아닌 '다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게 중요하진 않다. 


반쪽 짜리 독재 우화


영화 <송곳니>의 한 장면. ⓒ필굿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독재'의 모습엔 '왜'가 빠져 있다. 오로지 '어떻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건 다분히 의도한 설정일 텐데, 의도한 게 아니라면 반쪽 짜리 독재만 보여주고 있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감독은 독재를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황당무계한 시스템이라고, 독재자를 대상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납득되는 이유 없이 오로지 일방적으로 주입만 시키는 바보괴물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난 독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독재란 물 샐 틈 없는 대의명분을 갖고 겉으로나마 철저하게 눈높이를 맞춘 생활을 영유하며 일방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의미를 주입시키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이 아닌 너른 마음으로 회유책을 쓰기도 한다. 영화에서의 아빠는 절대 독재자와 같을 수가 없다.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나. 또는 회유 당해 전향하고 말았나. 그건 독재자가 펼치는 독재라는 것에 능력과 매력이 있었다는 이야기겠다. 그래서 우린 이 영화를 통해 독재 그 자체가 아닌 독재에의 우화를 들여다보는 정도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첫째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져 성공하고서는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매우 궁금하다. 독재의 가장 큰 폐해, 독재를 당하는 사람들이 객체가 되어 길들여진다는 것. 독재자의 바람대로 우매한 민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독재를 끝내고 나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게 된다는 것. 이런 생각들을 독재자들이 계속 양산해내고 주입시킨다는 것. 우리나라가 독재를 청산한 지 30년, 앞으로 30년은 언제 다시 출현할지 모를 독재를 주시해야 한다. 언제나 깨어있는 시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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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 일명 '글쓰기 열풍'이 불었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스마트폰 열풍'이 전국, 아니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인데 사람들이 글쓰기처럼 아날로그적인 행동을 하니 신기하면서 한편 이해가 되고 한편 이해가 도무지 안 되었던 기억이 난다. 난 그 모습이 반대급부적 성질의 것이라기보다 필요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세상은 한없이 스마트해지고 그에 따라 인간도 스마트해진다고 생각들 하지만 편해질 뿐 스마트해지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인간이 진정 스마트해지기 위해선 직접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이나 글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쓰기야말로 가장 적합한 활동이다. 더불어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글은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점점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글쓰기 능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필요성. 


이런 글쓰기의 필요성은 일면 책쓰기까지 뻗어나갔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작가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작가가 되어 책을 냈다. 하지만 이 현상이 엘리트화되지는 못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순 있지만 누구나 이름을 날리진 못한다. 즉,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그들과 계속 가야할 이유는 없다. 자비출판 이미지만 배가되어 하등 좋을 게 없다. 그래서인지 당시 활개를 치던, 글쓰기가 아닌 책쓰기와 작가되기 책을 쏟아내던 이들이 언젠가 단번에 사라졌다. 시대에 편승했던 이들은 시대의 종말과 함께 사라지는 법이다. 


독립출판 시대를 열다




여기, 시대에 편승하는 이들이 아닌 시대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자비출판은 거의 출판사를 통해 진행되었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게 아닌,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가 출판사에 돈을 지불하던가 책을 일정 정도 산다는 전제 하에 책을 내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출판사가 이러진 않았고 대부분의 출판사의 경우 종종 그랬고 몇몇 출판사가 전문적으로 진행했다. 


그러다가 출판사를 끼지 않고 직접 제작해 유통하는 방식이 전자책에서 본격 시행되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지나 누구나 출판사 사장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전자책 시장 자체가 죽어버렸고 어쩔 수 없이 출판사 사장이 되는 건 종이책이어야 하게 되었다. 


자비출판 아닌 독립출판, 사실 우린 누구나 독립출판을 해본 기억이 있다. '문학 소녀' '문학 소년'이 아니더라도 끄적거린 것들을 모아 간단히 제본해 하다 못해 가족들에게라도 보여준 적이 있지 않은가? 독립출판은 그런, 출판사는커녕 중앙도서관을 통해 정식으로 ISBN을 받지도 않은 정식 '책'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중에는 작정하고 작가로서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작가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뒤로 하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말 아닌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사람이 많다. 전자보다 후자가 출판계의 현실에서도 훨씬 많을 것이다. 


이기주 작가와 백세희 작가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는 전자에 속한다. 얼마전 100만 부를 돌파했다는 이 책의 출판사 사장이 이기주이고, 지은이가 이기주이다. 즉, 독립출판이라는 얘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자 출신의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인 그는 이 책의 성공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출간 후 몇 개월 동안 전국의 서점을 순회하며 서점 직원과 잠재적 독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어필했다고. 


사실, 지금 불고 있는 독립출판 열풍에 이기주 작가는 들어 있지 않다. 그는 독립출판 열풍의 일환이 아닌 해마다 한 권 정도는 신이 선택하는 케이스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반해 최근 절대적인 인기의 유시민 <역사의 역사>를 밀어내고 종합 1위에 올라섰다는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현재 독립출판 열풍의 선두주자이자 지난 10년 독립출판계가 낳은 가장 기록적 흥행의 결과물이다. 


그야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텀블벅을 통해 자비로 책을 냈다는 그녀, 많은 인기를 끌자 1인 출판사 사장이 빠르게 컨택했고 정식 출판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1인 출판이 독립출판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시작은 완벽한 독립출판의 모습을 띄고 있다. 


많은 독자들은 왜 이 책을 선택한 것일까. 수없이 많은 보증된 출판사의 보증된 작가들의 책들이 아니고. 바로 그 점 때문이 아닐까. 5년 전에 불었던 글쓰기 열풍이 작가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듯이 말이다. 백세희 작가가 쓴 자전적 에세이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백세희 작가가 선택한 독립출판 방식 자체가 신선함과 함께 보편적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여기에서 주체는 단연코 '나'이다. 


독립출판 열풍의 핵심




독립출판 축제가 있다고 한다. 2009년에 온라인, 2010년에 오프라인으로 서점을 열고 독립출판물과 아트북을 위주로 판매하는 1세대 독립서점의 상징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가 그것이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하는 이 축제는 최소 1만 명 넘게 찾아오는 인기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야말로 독립출판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이 축제에 열광하는가. 거기에 독립출판의 현재와 미래가 있고, 독립출판 열풍의 핵심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생각해본다. 독립영화와 비교해보자. 독립영화는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감독, 스텝, 배우가 자체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만들 수 있나? 거의 불가능하다. 장벽이 높다. 그 장벽은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아닌 영상 정도에서 비벼볼 수 있겠다. 


반면 독립출판은 글 좀 쓰고 돈 좀 있으면 된다. 글이야 어떤 식으로든 평생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그저 소소하게 주위에 돌리는 식이라면 그 어떤 글이든 가능하다. 출판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해외여행 한두 번 갈 돈이면 될 듯하다. 누구나 작가가 되는 걸 넘어서 누구나 책을 내는 시대인 것이다. 거기엔 이 시대가 낳은 성향이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의 채널 '책'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수많은 SNS 채널을 통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인다. 개중에 소수의 사람들이 조회수, 광고 등의 일차적 수익과 책, 방송 등의 이차적 수익으로 먹고 산다. 대다수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남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걸로 만족한다. 


개방되어질대로 개방되어져 포화 상태에 있는 SNS 채널은 더 이상 이전까지의 메리트를 선사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소회되었던 '책'이라는 아날로그적인 개념이 독립출판이라는 양식과 만나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즉, 그들에게 책은 또 하나의 채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품질 좋은 채널인 것이다. 


아무리 '누구나'가 앞에 붙지만 여전히 책에는 엘리트적인 면모가 있다. 최소한의 인정을 받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것이다. 이는 채널로서 아주 크나큰 메리트를 지닌다. 출판사 관계자들이나 책 관련 종사자들은 그저 추상적으로 이 열풍을 바라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은 이들이 많아졌고(독립출판의 작가), 적게 벌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독립출판의 사장)는 정도로. 


나도 출판사 관계자이거니와 책 관련 종사자이기도 한 바, 이 정도의 시각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책은 완전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앞에 '누구나' '나도' '한 번쯤'이 붙는다. 더 이상 책은 출판계와 작가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아니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폐쇄 아닌 개방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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