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여러 수작 단편을 쏟아내고는 멋진 장편 데뷔작 <우리들>을 들고온 윤가은 감독이다. ⓒ엣나인필름



두 명이서 가위바위보를 해 함께 하고 싶은 한 명씩을 데려와 편을 가르는 방법을 택한 어느 체육 시간 피구 게임, 선이는 어느 쪽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최후의 일인이 되었다. 왕따는 아닌 듯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외톨이인 듯하다. 키도 크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는 보라는 그런 선이를 이용해 먹기도 한다. 


보라의 부탁으로 방학식 날에 홀로 남아 반 전체를 청소하는 선이, 전학을 왔다는 지아를 우연히 마주친다. 보라의 치졸한 속임수 때문에 다리 위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선이, 다리를 지나던 지아와 우연히 마주친다. 둘은 금새 친해지고 선이는 보라를 주려던 수제팔찌를 지아에게 준다. 둘은 생애 다시 없을 것만 같은 방학 한때를 보낸다. 


지아의 부모님은 지아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이혼을 하셨다. 그 때문인지 선이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살가운 시간을 갖는 모습을 본 후 왠지 모를 적대감이 생기는 지아다. 그래도 그건 금새 풀었다. 하지만 지아가 영어학원을 다니고, 그곳에 다른 누구도 아닌 보라가 있었고, 개학을 하며 지아가 정식으로 전학을 오게 되며, 선이와 지아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다. 지아는 선이를 본 척도 않고 보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후 선이와 지아와 보라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계속되는데...


어른들이 무시했던, 아이들의 무시무시한 세상


누구나 지나왔을 어린 시절, 여러모로 '무시무시'했던 그때를 어린이 되고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엣나인필름



2016년 최고의 수작 중 하나라 할 만한 영화 <우리들>. <손님> <콩나물> 등으로 단편영화계에 신기원을 이룩한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독립예술영화계에선 거물로 통할 만한 '엣나인필름'이 배급을 맡아 온전한 '독립영화'라고 할 순 없을 것 같지만, 대신 '예술영화'로 포지션하여 다양성영화의 훌륭한 계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윤 감독은 앞선 두 대표 단편에서 어른이 되기 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우리들>로 그 재능과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무시하곤 한다. 한없이 동물에 가까운 본성을 지닌, 아직 이성적 존재 인간이 덜 된, 생각 따윈 없고 본능을 따를 뿐인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찌들대로 찌들고 죄질대로 진 어른 세상의 해법이 무지의 순수한 아이들에게 있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우린 이 영화에서 아이들의 치명적 관계 유착과 되물림, 권력에의 의지와 빌붙음을 목격할 수 있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세상, 그중에서도 지독하기 그지 없는 막장 인간들의 관계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을 말이다. 차라리 어른들의 세상이 더 유치한 것 같은 이유는, 그만큼 아이들의 세상을 무시했다는 방증이겠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불러온다. 특히 영화에서 선이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안기는 선이의 남동생, 어리디어린 윤이는 너무나도 귀여워 '보는 맛'이 날 정도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무시한 것처럼 선이는 자신보다 어린 윤이를 무시했다. 영화는 올려다보는 깨달음이 아닌 내려다보는 깨달음이라는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예리하고 섬세하고 긴장감 있게 파고드는 '관계'


영화 <우리들>의 첫 번째 주요 키워드는 '관계'다. ⓒ엣나인필름



'관계'라는 미묘하기 짝이 없는 건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평생을 가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어떤 관계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바르지 못한 것인지, 괜찮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오랫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그나마 괜찮은 관계가 무엇인지 모색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관계의, 관계에 의한, 관계를 위한 것이다. <우리들> 또한, 아니 <우리들>야말로 '관계'를 예리하고 섬세하고 긴장감 있게 파고드는데, 지극히 아이들의 시선과 생각과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메리트가 크게 다가온다. 빈 곳 없이 잘 표현해낸 주인공 아이들의 노력 덕분이겠다. 


2011년 최고작 <파수꾼>이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관계에 대한 천착 때문이다. 다만 <파수꾼>이 '관계'가 주인공에 다름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관계에 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필히 비극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파수꾼>, 반면 희극에의 희망이 있는 <우리들>. 개인적으로 손이 가는 영화는 앞엣것이다. 


생애 다시 없을 한때를 보낸 이들에게 파국이 찾아오는 건 한순간이고 그 이유도 하찮기 그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한 번 틀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 그런데, 그러면 누구랑 노나? 친구가 가장 소중할 때에 말이다. 매일 가장 친한 친구랑 티격태격하며 자주 맞고 다니지만, 그 친구가 아니면 누구랑 노냐는 윤이의 말이 가슴 깊숙히 와 닿는다. 


문제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누군가는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관계가 틀어짐에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동등하게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반드시라고 할 만큼 한 명이 자신을 굽히고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따위의 깨달음을 알 것 같진 않고, 아이들이 그런 깨달음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또 하나의 키워드 '권력'


영화 <우리들>의 두 번째 주요 키워드는 '권력'이다. ⓒ엣나인필름



'관계'와 함께 <우리들>의 중요한 키워드는 '권력'이겠다. 관계가 선이와 지아를 천착하는 거라면, 권력은 보라를 중심으로 역시 선이와 지아를 천착하는 것이겠다. 앞서 주지했듯 보라는 한 마디로 모든 걸 가진 아이다. 그리고 모든 걸 가져야만 하는 아이다. 그녀에게 존재감 없는 외톨이 선이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그럼에도 선이는 보라와 보라가 이끄는 소그룹을 선망한다. 


와중에 방학 중 선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개학해 정식으로 전학을 오게 된 지아, 선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걸 숨기고 거짓말로 점철한 채 영어학원을 다니며 친해진 보라와 함께 한다. 아니, 보라가 지아를 자신의 그룹에 끼워준 것이겠다. 지아가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 중에는, 전 학교에서 왕따였다는 것과 엄마가 영국에 계신다는 것과 영국에 가봤다는 것 등이었다. 


선이는 그 모든 걸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폭로한다. 첩첩산중으로, 보라는 이미 자신의 영원한 공부 1등 자리를 뺏어간 지아와 격렬히 대치 중이었다. 자연스레 보라와 선이가 한패가 되고 지아가 외톨이가 되는 형국으로 권력이동이 실시된다. 관계 못지 않게 권력의 속성이란 게 참으로 하찮고 한순간이다. 그런 중에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킬 요량이 많지 않다. 선이, 지아, 보라 중 누가 가능할까. 


영화에서 선이가 자신과 지아에게 물들여준 봉숭아물, 보라의 매니큐어를 따라한 지아의 매니큐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와 권력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건 선이와 지아가 함께 한 봉숭아물일까, 보라와 보라를 따라한 지아의 매니큐어일까. 나는 '당연히' 권력과 관계를 응원한다. 선이와 지아가 함께 한 봉숭아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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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