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무것도 아니야>


소설 <아무것도 아니야> 표지 ⓒ현암사



"의미 있는 건 없어. 나는 오래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은 거야."(분문 7쪽)


의미 있는 건 없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안톤은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는 마을 자두나무에 걸터앉아 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에게 설파했다. 의미나 가치 있는 건 없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아이들은 안톤의 말에 흔들렸다. 그가 던진 그 무엇이 한참 앞에 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가 되어야 했고, 누군가가 되어야 했다. 가치 있는 무언가, 의미 있는 누군가. 


그렇게 그들은 무언가를 하기로 한다. 의미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버려진 목공소를 아지트로 삼고 각자 의미가 있는 물건을 가져다 놓는 것이었다. 데니스의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 세바스티안의 낚싯줄, 리샤르트의 검은색 축구공, 로라의 아프리카 앵무새 귀걸이, 아그네스의 초록색 샌들... 아그네스는 급기야 게르다에게 작은 햄스터 오스카리틀을 지목한다. 


본격적으로 처절하고 잔혹한 '폭탄 돌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안톤을 나무에서 내려오게 하여 자신들이 맞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의미 있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그 어떤 것도 묵살되어 버린다. 거기엔 신앙, 생명, 순결, 신체까지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 안톤의... 


진리를 알아버린 비성숙한 이들의 비극


자신들보다 한참을 앞서 나가 인생을 관통하는 진리를 깨달아 버린 이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그 진리라는 것이 우리가 애써 눈감는 그리고 눈감아야 하는 바이고, 대상은 불과 열네 살 아이들이다. 이제 막 세상에 대해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자 눈을 뜬 나이다. <아무것도 아니야>(현암사)는 그들의 안타까운 비극을 그린다. 여기서 안톤은 안톤이 아니라, 진리의 화신이다. 


세상에 가치 있는 것도 의미 있는 것도 없다는 것, 즉 세상도 나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누구나 겪게 될 진리다. 결국 사람은 죽을 테고 세상은 사라지지 않겠는가. 이 고답적이고 고차원적이지만 회의적이고 치명적인 진리는, 사실 그리 고깝게 받아들여지진 못한다. 세상이 지금처럼 돌아가는 데 부정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게 자명하기 때문인데, 교육은 받았지만 원숙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이 우선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은 교육에 기반한 거다. 세상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게 없을 수 없다는 것. 그들은 그걸 증명해 보여야 했다.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지탱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후 그들이 보인 생각과 행동은 교육에서 원숙하지 못한 본성 또는 본능으로 나아간다. 시스템적 교육과 자연적 교육, 개인과 집단의 조화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들은 그들 만의 세상으로 숨어들어갔다. 


비극의 잉태는 예견된 수순이 아닌가. 우린 비성숙한 아이들의 집단이 저지른 수많은 비극을 익히 알고 있다. 그 비극은 비성숙이라는 이유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시선이 옮겨간다. 그 연유나 과정이 아닌 결과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 연유는 분명 안톤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안톤이 그렇게 된 연유를 찾아야 마땅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잘해봐야 그들의 비극의 과정과 결과가 보여준 끔찍하고 잔혹한 면면만 살필 것이다. 


다른 세상, 다른 진리도 있다는 교육이 필요하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극의 과정 즉 아이들의 '의미 있는 물건 더미 쌓기'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스릴까지 있다. 의미 있는 물건의 '의미'가 강도를 더해감에 따라 아이들의 본성이 살아나고 그럴수록 사건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문제는 그들이 그들하고만 있다는 것. 사이사이 보이는 어른들의 시선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잘 알고 잘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고립된 아이들. 


이 소설을 통해 들여다보아야 할 건, 가치나 의미의 진정한 의미, 가치나 의미 따위는 없다는 진리, 아이들의 교육과 본성이 아니다. 그들이 그들하고만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을 같이 할 수밖에 없게 된 모습이다. 거기엔 안톤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한 교육과 세상, 그리고 안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지은 교육과 세상이 있다. 


세상은 그들에게 하나의 세상을 알려주었을 뿐, 또 다른 세상의 존재와 세상과 세상의 대립과 충돌을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그건 스스로 깨우쳐야만 알 수 있는 많은 것들 중 하나이다. 누군가 알려준다고 온전히 깨우쳐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다른 세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교육이 횡행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건 틀린 거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걸 알 길 없는 아이들이 그 끝에 비극적으로 도달할지 희극적으로 도달할지 알 수 없다. 


안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세상도, 아그네스를 위시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세상도 궁극적으로 모두 틀리지 않다. 결론적으로 봐서 아이들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시작은 올바르지 않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안타깝다. 그들이 대립하게 된 이유를 제공한 세상이 원망스럽다. 그들이 그러고 있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어른들이 무능하고, 그들이 한 짓을 보고도 터무니 없고 황당한 짓거리만 일삼은 어른들이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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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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