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우디 앨런 감독의 <블루 재스민>


<미드나잇 인 파리>와 더불어 우디 앨런 감독 경력 후반기 최대작이라 할 수 있는 <블루 재스민>이다. ⓒ인벤트디



개인 삶의 문제를 떠나 영화감독으로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을 쌓은 우디 앨런. 그 명성에 비해 그의 영화를 그다지 많이 보진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그 명성에 비해 흥행은커녕 개봉조차 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듯한데, 우연히 <미드나잇 인 파리>보고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영화로 우디 앨런에 입문하지 않았을까?


이후 얼마 전 재개봉한 2005년작 <매치 포인트>를 인상깊게 봤다. 용서받지 못할 상류층을 참으로 적나라하고 아슬아슬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50년 영화 감독 경력의 우디 앨런으로서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적당한 평을 받고 흥행했다. 그리고 2013년 <블루 재스민>이다. 


이 영화는 <매치 포인트>의 여러 요소를 이었다고 보이는데, 다분히 우디 앨런식의 풍자 코미디와 가학적이고 비비 꼬는 비판 시각이 합세해 좋은 결과를 냈다. 일사천리 막힘 없는 스토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없이 보는 와중에, 우디 앨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남김 없이 집어낼 수 있다. 상류층과 밑바닥 인생의 삶, 이 시대 자본주의의 몰락 과정과 결과,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까지.


우디 앨런, 유럽에서 다시 미국 뉴욕으로 돌아오다


<매치 포인트>, <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 위드 러브> 등으로 유럽 순회공연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우리 앨런의 첫 작품 <블루 재스민>이다. ⓒ인벤트디



남편 할(알렉 볼드윈 분)의 사업 덕분에 뉴욕 최상류층에서 살아가는 재스민(케이트 블란쳇 분), 그녀는 생각, 행동, 외모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최상류층이다. 물론 그 기본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최상류층 일상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다름 아닌 남편의 외도, 그리고 남편의 사업 몰락. 공교롭게도 남편의 외도와 사업 몰락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남편이 사기로 몰락했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빈털털이가 된 재스민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생 진저(샐리 호킨스 분)에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잠시 몸을 의탁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그녀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정반대, 너무나도 다른 삶이다. 아예 차원이 다른 삶일 테다. 그 와중에 진저와 동거를 시작하려는 남자친구 칠리(바비 카나베일 분)의 압박이 신경쓰이고, 진저와 칠리의 하찮기 그지 없는 생각, 행동, 외모에 진절머리를 치는 재스민이다. 


재스민은 계속해서 옛날 생각을 하며 혼잣말을 하기 일쑤다. 밑바닥 인생인 현재를 부정하고 최상류층이었던 과거를 생각하는 데 더더욱 몰두하는 것일 테다. 그러곤 현실로 돌아오면 머리가 아프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견딜 수 없다. 그런데 그 증상이 딱히 최근에 와서 생긴 것 같진 않다. 어쨋든 그녀는 약을 먹고 술을 마신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녀는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녀가 바라는 것처럼 다시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예전의 '제대로 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디 앨런은 그의 44번째 작품 <블루 재스민>으로, <매치 포인트>를 시작으로 유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미국 뉴욕으로 돌아와 그의 클래식을 제대로 선보였다. <미드나잇 인 파리>로 정점을 찍고 다시 돌아온 느낌으로, 돌아오자마자 또 다른 정점을 찍는다. 최소 2000년대 이후 그의 대표작은 이 두 작품이다. 


자본주의 위기에 맞물리는 상류층의 몰락


사기와 거짓으로 점철된 뉴욕 최상류층의 기막힌 몰락은, 역시 사기와 거짓으로 점철된 현대 자본주의의 몰락과 궤를 함께 한다. ⓒ인벤트디



우디 앨런이 작정하고 만든 듯한 <블루 재스민>, 주인공 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 또한 제대로 작정한 듯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을 메인 중 하나로 내세우며 영화를 돋보이게 했는데, 1970년대는 다이앤 키튼을, 1980~90년대는 미아 패로우를, 2000~10년대는 스칼렛 요한슨, 페넬로페 크루즈, 엠마 스톤을. 


반면 케이트 블란쳇은 이들처럼 그의 뮤즈라고까지 할 수 없지만, 영화 한 편을 책임지며 여지껏 여자에게 허락한 적이 거의 없는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녀는 우디 앨런이 표현하고자 했던 빙퉁그러진 상류층을, 말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의 몰락과 비극적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이 시대의 상류층이라면, 무지막지한 돈을 벌고 그에 맞는 엄청난 소비를 하며 역시 그에 맞는 부류와 어울리며 일정 정도의 기부를 통해 남을 돕는 행위를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상류층이라는 걸 알고 그에 맞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 그런 삶이 모두 '사기'와 '거짓'으로 쌓아올린 것이라니. 이 시대 자본주의의 명백한 위기를 상징하는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의 이면에 사기와 거짓이 있었다는 게 밝혀진 지금, 이는 그 확실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와 동시에 이 시대 자본주의와 한 배를 타고 세상의 머리 위를  유유히 항해하는 상류층이 그 자리에 있게 된 것도 사기와 거짓이라는 점, 거시적으로 볼 땐 통쾌하게 다가오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서 느낀 건 결코 통쾌가 아니다. 씁쓸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것만 보여주었다면, 이 영화가 그렇게 좋은 영화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러면 어떠하리, 저러면 어떠하리'라는 진리


최상류층이었던 재스민의 삶, 그리고 밑바닥이었던 진저의 삶. 결국 모두의 삶은 맞다. ⓒ인벤트디



한 번 더 들여다봐야 할 부분은, '상류층' 재스민이 아닌 상류층 '재스민'이다. 그녀의 삶을 돌이켜보고 함께 따라가보면, 피해자인 것 같은 그녀가 결코 피해자인 것만은 아닌 게 드러난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행을 선택 '당한' 게 아니라 선택'한' 것이다. 상류층이라는 배를 내려온 게 아니라, 다른 상류층 배를 갈아타기 위해 환승을 준비 또는 대기하고자 한 거다. 피해자라 할 수 있겠는가. 


한편, 이 영화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은 진저의 삶이다. 흔히 말하는 밑바닥 인생 말이다. 그녀는 비록 없지만 전남편과 잘 지내던 시절 로또로 20만 불을 받고 모조리 재스민의 남편 할의 사업에 투자했다가 망하고 급기야 이혼을 한다. 다 큰 아이들도 있는 상황에서 역시 밑바닥 인생이라 할 만한 칠리와 사귀고 거기에 모자라 유부남인지도 모르는 어떤 남자와 사귀기도 한다. 


그녀 또한 재스민처럼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써가려 한다. 다만, 재스민과 달리 누구도 그녀더러 뭐라고 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 또는 자신에 관계된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간다. 모든 면에서 품위 있는 재스민을 보는 시선과는 달리, 다른 누가 보기에는 그녀의 삶이 하등 하찮고 볼 것 없이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또한 그녀의 주체적인 삶이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야말로 그녀를 향한 시선과 생각의 피해자가 아닌가. 


나의 눈에는 보인다. 진저와 재스민의 앞으로의 삶이. 흔히 규정내려지는 행복과 상류층은커녕 중산층의 삶과도 그리 깊은 인연이 있을 것 같진 않은 진저이지만 그녀에게 절대적 불행은 없을 것이다. 반면 어느모로나 상류층의 면면을 자랑하는 재스민은 복잡다단하고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매일매일과 가끔 찾아오는 절대적 불행이 함께 할 것이다. 어느 삶을 '선택'할 것인가?


두 삶의 양태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거리 이상으로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같은 미국이라는 진리만큼 삶에 있어서 절대적 동떨어짐과 차원을 달리함이 없다는 걸 왜 모를까. 모든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고, 그건 모든 나라를 포함한 이 세계와 이 세계를 지탱하는 많은 요소들에게도 해당된다. 이 시대 모든 삶을 규정하는 자본주의라고 다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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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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