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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브래드 피트의 미국 붕괴 시나리오, 그 연결 고리 <워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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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워 머신>


브래드 피트의 플랜 B와 넷플릭스의 만남,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로 궁금증을 일으킬 만한 영화 <워 머신>. ⓒ넷플릭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한복판, 세계 중심의 상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다. 미국 정부는 이를 민간 항공기를 납치한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한 사건이라 규정, 부시 대통령은 이 테러의 배후에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 그가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경고, 탈레반 정권이 이를 거부하자 침공·함락한다. 이어 반 탈레반 정권인 과도정부를 수립한다. 하지만 미국은 2003년엔 이라크를 침공해 역시 과도정부를 수립하는 등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간다. 


전쟁이 8년 차로 접어든 2009년, 스탠리 맥크리스털 4성 장군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강조하며, 병력 증원에 통해 전쟁을 종결시킬 것을 선언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와의 마찰과 각종 구설수로 1년여 만에 경질된다. 


다분히 문제적 인물인 이 사령관과 문제적 구도의 이야기를 《롤링스톤》지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헤이스팅스가 논픽션 <디 오퍼레이터스>로 훌륭하게 풀어냈다. 다름아닌 그 책을 브래드 피트의 플랜 B가 영화 <워 머신>으로 제작했다. 거기에 봉준호 감독의 <옥자>처럼 넷플릭스로 공개했다. 주인공 글렌 맥마흔 장군은 브래드 피트가 직접 열연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과 <퓨리>를 잇는 전쟁, <머니볼>을 잇는 리더십, <빅쇼트>를 잇는 미국 풍자를 총집합시켰다. 과연 구슬을 잘 꿰매었을지.


'완벽한' 승리를 원하는 '완벽한' 사령관


맥마흔 장군은 완벽하다. 완벽한 만큼 완벽한 승리를 원한다. 하지만 그 자신 우스꽝스럽고 부하들은 일을 못하며 결정적으로 대통령에 반한다. ⓒ넷플릭스



대략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구슬을 그리 잘 꿰매진 못한 것 같다. 대신 각 구슬들이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이 영화가 기본 골자로 말하고자 하는 미국 풍자 블랙코미디 부분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선사한다. 그건 다름 아닌 브래드 피트가 분한 글렌 막마흔 장군에서 시작해 끝난다. 


출중한 경력, 꾸준하고 철저한 자기관리, 부하를 살피는 세심함, 최고의 자리에 걸맞는 겸손함까지 갖춘 완벽한 사령관 맥마흔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가졌다. 모두가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것과 다르게 그만 유독 튄다. 그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미국 정부는 오래토록 의미 없이 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아무 탈 없이 이대로 진행하다가 '흐지부지' 끝내고 싶다. 자신과 결을 완전히 달리 하다시피 하는 부시 전 정권에 의해 시작된 전쟁이기도 하기 때문인데, 어쨌든 맥마흔은 그런 미국 정부의 의중을 대신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저 생각 없이 지내다 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맥마흔은 아프가니스탄 현지 주민 피해의 최소화와 더불어 충분한 병력 증강을 통한 '완벽한' 승리를 원한다. 그는 주지했다시피 많은 걸 갖춘 '완벽한' 사령관이다. 그런 그는 우습고 아이러니하게도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도, 일 못하는 부하들도, 완벽한 승리와 현지 주민의 최소화라는 모순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한 단면이다. 


맥마흔이라는 미국의 단면, 또 다른 단면


맥마흔이 미국의 한 단면이라지만, 그와 반하는 미국 정부도 당연히 한 단면이다. 그들 모두 터무니 없다. ⓒ넷플릭스



미국의 또 다른 단면이 여기에 있다. 세계를 이끈다는 자부심과 세계의 모든 분쟁을 해결한다는 비뚤어진 책임감, 그리고 세계 모두가 지켜보는 데도 불구하고 황당하게 비겁하고 무능한 짓을 꿋꿋하게 이어나가는 면모 말이다. 그건 실명이 거론되는 오바라 대통령을 위시한 미국 정부의 맥마흔 장군 조종과 그에 따른 대처에서 나타난다. 


맥마흔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이지만 엄연히 유럽까지 총괄하는 엄청난 힘과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다. 하지만 그는 6개월 동안 대통령을 한 차례 화상으로 만났을 뿐이다. 대개 현지에 대통령 대리로 와 있는 안보위원과 대사와 협의할 뿐이다. 그가 마음에 들던 안 들던 그토록 중요한 자리에 있다면, 대통령이 수시로 직접 대면은 못할 망정 화상 대면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지난해부터 한국을 대혼란에 빠뜨렸던 국정논란 때 알려진 사실들이 있다. 대통령과 사전 면담 신청을 통한 독대가 없었다는 정무수석과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비서실장. 물론 영화와 현실의 이 둘을 직접적이고 평면적으로 비교할 순 없겠지만, 고의로 인한 무능과 그 자체로의 무능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무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맥마흔 본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런 맥마흔을 뽑아 배치한 건 미국 정부다. 전 세계 민주주의의 가장 큰 축을 차지하며, 개인을 중시하는 만큼 집단적 의견의 출중함으로 후회없는 선택을 하고, 완벽한 대응과 잘 짜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것 같은 미국이 결국은 터무니 없는 일을 일삼고 있는 게 아닌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는 거대한 허상에 터무니 없는 진지함으로 임하는 맥마흔, 그런 자를 뽑아놓고 피하는 미국. 


미국이라는 거대 생물의 자기 모순과 붕괴를 직시하다


공교롭게 영화의 배경이 2009년이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로 미국의 붕괴가 시작되었는데, 2009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어가는 느낌이다. ⓒ넷플릭스



영화는 전쟁이라는 거대 시스템 속에서 미국 정부와 대립하는 우스꽝스러운 진지충 맥마흔의 터무니없는 리더십을 보여주며 미국의 역설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작지만 핵심적일 수 있는 모순들, 예를 들면 현지에 과도정부를 수립하며 반란군를 괴멸시키면서도 반란군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현지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 또한 반란군을 괴멸시키면서도 현지인 희생이 없어야 하는데, 현지인이 공격을 해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쟁'을 한다는 게 일반인 피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게 아닌지? 애초에 왜 전쟁을 하는 것인지? 왜 승리를 쟁취해야만 하는 것인지?


이는 미국의 역설이기도 하고, 맥마흔의 역설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으로 수렴되는 바, 미국이라는 거대 생물의 자기 모순과 붕괴를 미리 직시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로 이미 미국은 깊은 수렁에 빠졌으니, 영화의 배경이되는 2009년은 그 수렁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다. 거기에 현대 미국이 행한 가장 큰 헛발질이라고 할 만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니, 답이 없다.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 브래드 피트의 행보가 가히 신선하다. 넷플릭스를 택하면서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하며, 이후에 이어질 이야기들에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가 제작에 뛰어든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겠다. 그런 면에서 <워 머신>은 한 번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많은 이슈들 중에 하나였을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위에 군림하고 있지 않다. 지상으로 내려온 지 한참이고, 이제는 자기 살길 찾아 가기 바빠졌다. 많은 비난이 뒤따르고 있지만, 현실은 전면적 각자도생의 길에 도달했다. 사실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혼란 속에 수렁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불길하지만 현실적인 예감뿐이다. 많은 영화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듯이.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영화들이 답을 던져주고 있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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