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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지독한 생존 투쟁기이자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의 종말기 <재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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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편혜영 소설가의 <재와 빨강>


소설 <재와 빨강> 표지 ⓒ창비



C국에 있는 본사로 파견근무를 나가게 된 방역업체 직원 '그',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중인 전염병 때문에 가벼운 감기 증상을 보이는 그는 입국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입국했고 본사 출근하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있지만 열흘 후엔 문제 없을 것 같다. 그가 자리잡은 곳은 '4구'. 쓰레기로 뒤덮혀 참을 수 없는 냄새를 풍기는 이곳은, 사실 쓰레기매립지를 재개발해서 만든 외딴섬이다.


전염병 때문에 고립된 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그는, 어느 날 모국으로부터 아내가 처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얼마 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으로 들이닥치려 하자 그는 자신이 아내 살인 용의자로 몰린 것이라 생각하고 아파트먼트 4층에서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린다. 그가 추락한 곳은 '안전한' 쓰레기 더미. 그는 곧 부랑자가 된다. 


더 밑으로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은 그의 행세는, 그가 전염병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다른 부랑자 무리에 의해 하수구로 추락하면서 '지하'로 내려간다. 그곳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했던' 4층에서의 고립된 생활이, 쓰레기 더미에서 그나마 음식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먹고 버려진 옷가지를 주워 입고 어떻게든 깨끗한 물로 씻을 수 있었던 부랑자 생활이, 너무도 그립게 만든다. 쥐를 잘 잡아 본사파견에 뽑힌 그가, 쥐보다 못한 인간으로 전락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의 앞날은 어떨까?


얼마 전 편혜영 소설가의 2010년작 <재와 빨강>(창비)가 '2016년 폴란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설적 대단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일찍이 그의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단편 1~2편 정도) 나로서는,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 <재와 빨강>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단편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로테스크한 필체와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 때문이었는데, 더욱이 이 소설은 그 정점이었다. 


전염병 세상으로 치환된, 현대사회의 무감각과 단절


편혜영 소설가 또는 편혜영 소설을 관통하는 건 부정적 이미지들이다. 그로테스크, 어둠, 암울, 고독 등. <재와 빨강>은 2000년에 데뷔한 그의 의외로 늦은 첫 번째 장편소설이니, 그동안 묵혀 왔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을 게 분명하겠다. 그 중심엔 '전염병'이, 그리고 그에 죽을동 살동 생존 투쟁을 벌이는 '인간'이 있다. 


전염병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소설은 카뮈의 <페스트>다. 우린 이 소설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와 빨강>에서는 '절망'만을 발견할 뿐이다. 5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독감, 거슬러 올라가 중세 유럽을 초토화 시켰던 페스트, 그리고 불과 2년 전에도 나라 전체를 벌벌 떨게 했던 메르스까지, 수백 수천 수만 년의 전염병과의 투쟁에서 인간이 깨달은 건 무엇일까. 


예방법 혹은 퇴치법? 에드워드 제너는 천연두를 퇴치했고, 파스퇴르는 페스트를 퇴치했다. 하지만 인간이 깨달은 건, 아니 깨달아야 하는 건 전염병 자체가 아니라 전염병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전염병 의심자를 관리하는 '권력'이다. '그'가 하염없이 추락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의심'과 '권력' 때문이었다. 물론 1차 추락은 다른 종류와 층위의 의심 때문이었지만, 그 이후 그의 삶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보여지고 다뤄지는 건 다름 아닌 주인공 '그'이지만,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그'가 끊임없이 의심받고 의심하고 짓눌리고 결정적으로 고독한 건 전염병으로 점절된 세상으로 치환되는 현대 사회의 지독한 무감각과 단절 그리고 그로 인한 외로움과 절망이다. 세상을 뒤덮은 쓰레기를 태워서 나오는 '재'와 고독에 몸부림치며 자기도 모르게 행하는 짓으로 얼굴을 덮은 '빨간' 피가 한없이 몸을 떨게 만든다. 


이 소설의 강점이자 약점, 수많은 층위와 상징들


SF 스릴러에 가까운 장르적 느낌이 나는 이 소설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은 수많은 층위와 상징들에 있다. 이 소설을 '그'의 지독한 생존 투쟁기로 읽어도 좋고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의 종말기로 읽어도 좋다. 작가는 이 둘을 모두의 서사를 충실하게 내놓으며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하다못해 '그'의 이름은 무엇인지, 그의 아내는 왜 처참히 죽었는지, 그는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와 같은 소소한 맥락들을 따라가는 것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더불어 도처에 깔린 각종 상징들은 완벽할 정도다. 그의 빈틈없는 문체와 이야기 구조의 기반 위에 정교하게 계산된 상징들이기에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전염병이 창궐한 시대의 최고 권력인 '방역'과 '의료', 거기에 그의 본사 임원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자본 권력이 서로를 인정하고 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쥐를 잘 잡아 본사로 파견된 그가 쥐보다 못한 부랑자가 되고 쥐한테 위협당하는 지하인이 되어 결국 다시 쥐를 잡는 것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자각해 지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모습은, 인간과 쥐의 당황스럽지만 틀리지 않은 동급 자각의 깨달음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쓰레기매립지 위에 세워진 도시, 굳이 쓰레기가 도처에 산더미처럼 쌓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는 구역질 나는 구취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기반이 다름 아닌 인간이 싸질러 놓은 것들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건 즉, 모든 게 무너지는 종말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와중에 한낱 개인이 절망에 고통스럽고 고독에 울부짖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겠다. 


이 비극인듯 희극인듯, 비극적 세상을 비극적으로 투쟁하는 한 인간의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쓰레기로 뒤덮인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어느 정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통에도 사랑은 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염병 창궐 사회에서도 일을 해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리라 본다. 당사자만 모를뿐이다. 우리도 우리가 얼마나 절망적이고 고독한지 모르듯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더 오래 버틸지 알 수 없듯이, 또는 알고 싶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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