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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명작과 망작 사이에 이 영화가 있다 <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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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교사>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다. 과연 그 기대에 부응할지는 모르겠지만, <거인>의 김태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CJ E&M Pictures



1987년생, 이제 갓 서른 살이 된 젊은 감독 김태용은 지난 2014년 장편데뷔작 <거인>을 내놓았다. 수많은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청룡영화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수상했다. 이 독립영화는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하며 차기작을 기대케 했다. 


가슴 먹먹하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김태용 감독, 2년 여만에, 햇수로는 3년 만에 김하늘과 함께 돌아 왔다. 제대로 들여다보기 전에는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스타일 상 이런 류의 영화를 연출할 것 같진 않았기에 다시 보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는 장편상업영화를 연출할 때 각본도 쓰지 않는가. 


연출과 각본을 함께 하는 건 젊은 김태용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었던 바, 영화 <여교사>다. 영어 원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misbehavior' 즉 '부정 행위' '불량 행동'이라는 뜻이다. 추측컨대, 여교사가 학교에서 행하는 부정 행위 또는 불량 행동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지 않을까. 일단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두 여교사와 한 남학생의 '부정 행위'


영어 원제가 '부정 행위'를 뜻하는 'misbehavior'인데, 과연 여교사의 부정 행위는 무엇일까. 그게 무엇인지는 영화 초반에 드러난다. 궁금증은 그렇게 풀리고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한다. ⓒCJ E&M Pictures



계약직 교사 효주(김하늘 분)는 박봉에 야근은 둘째 치고 불안한 현재와 미래가 걱정이다. 어떻게든 정직원 교사가 되어야 하는 상황, 그래도 다음 정직원 발령이 그녀 차례이기에 나쁘지 않다. 와중에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 분)이 갑자기 나타나 하루 아침에 정직원 자리를 꿰찬다. 효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낙하산 발령. 그런데 혜영이 해맑은 웃음을 앞세우고 자신이 대학 후배라며 효주에게 들이대는 게 아닌가. 기억에도 없을 뿐더러 그녀의 존재 자체가 싫은 효주는 과하다 싶게 매몰차게 대한다. 


한편 효주는 임시로 맡게 된 학급의 재하(이원근 분)라는 발레특기생을 찾아 간다. 처음엔 뭘 하는 애일까 궁금해서, 두 번째는 연습 잘 하고 있나 궁금해서, 세 번째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으로. 두 번째 방문에서 재하는 술에 취해 효주에게 키스했고, 세 번째 방문에서 효주는 재하와 혜영이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효주는 다음 날 당장 혜영을 불러 목격한 장면을 폭로하고는 교사답게 처신하라고 협박한다. 그러고 재하에게는 체육관 대신 학원을 선사한다. 그 이면에는 그녀 만의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다. 다름 아닌, 혜영에게 말한 '교사답게 처신해라'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 과연 이 여교사 둘과 학생 하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거인>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우린 가슴 먹먹함을 일부 느낄 수 있다. 다만, 그를 훨씬 뛰어넘는 '기분 나쁨'을 느끼게 될 것인데, 이는 명백한 감독의 '착오'가 아니었다 생각해본다. '기분 나쁨'에만 천착해 그것이 마치 '수작'의 좋은 방편인 양 생각한 것 같다. 그렇지만 대놓고 드러내면 수작이 될 수 없다. 자연스레 드러나 관객들이 알아차리게 만드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고 또 더욱 괜찮은 방법이다. 


파격 사랑 이야기 또는 치밀한 권력 암투기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한 이야기,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분명 감독은 그 이면에 인간 본성의 치밀한 무엇을 상정해놓은 것 같은데...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CJ E&M Pictures



영화의 극초반, 정직원이 되려는 계약직 앞에 나타난 이사장 딸을 봤을 때는 치밀한 권력 암투와 잔인한 살인 방조가 판을 치는 장면들을 예상했다. 그렇지만 채 10분도 안 되어 이사장 딸과 학생의 관계가 있고 나선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이다. 그 앞에 붙는 단어는 '파격'.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더 좋은 건 이것 또는 저것을 드러내놓고 말하면서 그 이면에는 저것 또는 이것을 숨겨놓는 것. 감독은 분명 이를 의도한 것이겠다.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 또는 인간 본성에 투철한 권력 암투기. 그런데 영화를 보고는 감독의 의도를 잘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아마 숨겨놓은 걸 알아차리지 못할 텐데, 굳이 알아차리지 못해도 하등 상관없는 수준이다. 


이는 '능력 미숙'이라기 보다는 '방향 설정 미스'라고 보는 게 맞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그 명성에 걸맞은 '전술'을 선보인 반면, '전략'에선 실망을 안겼다. 효주와 혜영의 대비되는 옷차림과 표정, 효주의 옷차림 변화, 효주와 혜영과 재하의 대면 장면에서의 구도 등이 보여주는 미장셴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해냈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도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보장은 없다. 전투에만 승리하면 되는 때는 그 옛날 중국의 춘추시대 이전이다. 제대로 나라가 형성된 이후에는, 나라 대 나라로 벌어지는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몇몇 장면과 캐릭터가 대단하다고 한들 명작이 될 수 없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시나리오와 의도와 메시지가 튼튼해야 한다. <여교사>는 줄기가 튼튼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기저기 잎사귀에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려 했다. 


명작과 망작 사이에


'한 끗 차이', 명작과 망작의 사이에 위치한 이 영화 <여교사>. 시나리오에 신경을 썻을 게 분명하지만, 영화는 시나리오가 아닌 다른 곳에 중점을 둔 듯 보인다. 패착이다. ⓒCJ E&M Pictures



영화는 참 애매모호하다. 명작과 망작은 한 끗 차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에 해당하는 말인 듯하다. 시나리오와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는데 반해, 편집과 연기가 점수를 다 깎아먹었다. 요즘 영화치곤 러닝타임이 짧은 편인데, 편집을 과도하게 한 결과이겠다. 편집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과하면 논리적 전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을 게 분명한 바, 캐릭터들의 감정선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반응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영화에서 보여진 것보단 조금 더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반면 영화는 감정선을 극의 흐름이 아닌 분위기, 구도, 옷차림 등으로 표현하려 했다. 그게 패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는 연기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캐릭터보다 그밖의 다른 것들에 더 많은 신경을 쓴 것 같다. 문제는, 그렇다고 미장셴이 전에 없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각본까지 담당한 감독은 시나리오에 가장 중점을 둘 것이 분명하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눈에 띄지 않았지만, 연기를 끌어내는 감독의 의도가 불분명했던 게 더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연출 의도가 영화를 다른 의미로 치명적이게 만든 것 같다. 충분히 치명적이게 매력적인 영화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인데, 치명적이게 기분 나쁘기만 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거인>으로 받은 기대가 상당히 꺾여 안타깝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대하는 감독임은 분명하다. 나이와 경력이 아직은 단출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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