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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위대한 추리소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무엇이? <바스커빌가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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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바스커빌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 표지 ⓒ열린책들



소싯적에 추리소설 한번 읽지 않은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추리소설 접한 사람치고 한번 푹 빠져 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아마 그 시작은 대부분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일 텐데, 그 시리즈는 하나의 통과의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래 동화에 버금가는 친화력으로 무장해 수많은 이들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했다. 물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소싯적에 추리소설에 한번 푹 빠진 적이 있다. 그때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Y의 비극> <환상의 여인>의 '3대 추리소설'이니 '10대 추리소설' 따위를 열심히 찾아보곤 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셜록 홈스 시리즈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단 하나의 소설만 빼고. 그건 다름 아닌 셜록 홈스 시리즈 최고의 소설로 통하며, '10대 추리소설' 중 하나에 들곤 하는 <바스커빌가의 개>이다. 


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심상치 않은 기운은 소설의 내용과 분위기에 그대로 투영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빨려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 전에 내외적으로 소설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어 흥미를 더한다. 소설의 배경이 셜록 홈스가 죽었을 때라는 점이나, 여타 셜록 홈스 시리즈의 책과는 너무도 다른 느낌 때문에 코난 도일이 쓴 게 아니라는 의혹 등이 그렇다. 


현실로 다가온 바스커빌가의 '악마 개' 전설


영국 남서부 쪽에 위치한 다트무어, 바위가 많은 고원인 그곳의 황무지엔 바스커빌 홀이 있다. 오래된 가문 바스커빌가의 본가인 그곳엔 전설로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다. '악마 개'가 바스커빌가의 망나니 선조를 물어 죽인 전설이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 직계 후손인 찰스 바스커빌 경이 악마 개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전설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에 찰스 경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모티머 박사가 홈스와 왓슨을 찾아온다. 찰스 경의 죽음을 조사함과 동시에 그의 유일한 상속인인 헨리 바스커빌 경을 보호해 달라고 말이다. 홈스는 오랜 숙고 끝에 왓슨을 바스커빌 홀로 파견한다. 홈스는 당장 시급한 일 때문에 나설 수 없으므로. 


거기에는 오랫동안 바스커빌가를 모셔온 가문의 배리모어 부부가 있고, 근처에는 래프터 홀의 프랭클랜드 씨, 메리피트 저택의 스태플턴 남매가 있다.  찰스 경과 가깝게 지냈던 이들인데, 홈스는 이들 모두가 여전히 미지의 요소이기 때문에 빠짐없이 살펴 보고하라고 이른다. 그리고 황무지엔 살인범 탈옥수도 숨어들었다고 하는데...


왓슨이 바스커빌 홀에 온 이후 소설은 다른 양식을 따른다. 오로지 왓슨의 보고서와 일기에 의존한다. 홈스의 명쾌하고 기가 막힌 추리와는 다른, 지극히 조심스럽고 어딘지 어설픈 추리다. 나름 재밌지만 홈스가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드시 홈스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언제쯤 어떤 식으로 등장하게 될까?


위대한 추리소설, <바스커빌가의 개>


<바스커빌가의 개>는 위대한 '추리소설'의 요소를 갖췄다. 위대한 추리소설이라하면,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정녕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엄청난 '추리'를 해내는 것이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상황을 만들어야 하겠다. <Y의 비극>이나 <노란 방의 비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굉장한 마니아가 존재할 것이다.


또 하나는 추리도 추리지만 '문학'적으로 굉장한 성취를 보이는 것이다. 추리소설이라는 딱지를 떼고서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수준이랄까. <바스커빌가의 개>를 포함한 <환상의 여인>, <기나긴 이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추리소설보다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갖는 위대한 양식 중 하나는 단연 '분위기'이다. 다트무어라는 지역이 주는 특징인 '바위가 많은 고원', 그런 곳의 음울하고 황량한 '황무지', '탈옥수'가 주는 불안, 그리고 바스커빌가의 전설 '악마 개'가 선사하는 초자연적 두려움까지. 이는 단연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고딕소설'의 일환이다. 


추리소설이라는 하위 장르가 아닌, 그보다는 상위 개념인 고딕소설이라는 장르. 코난 도일은 고딕소설의 요소를 상당 부분 차용해 이 추리소설을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고딕소설의 클리셰가 엄청 눈에 띄는데, 그게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게 백미다. 이 소설은 고딕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엄연히 추리소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셜록 홈스 시리즈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 대영제국이 느낀 으스스함을 담다


낭만주의 소설 양식 중 하나인 고딕소설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다루는데, 당대에 성행했던 이성주의와 계몽주의 등에 억압된 비합리성과 감성에 대한 갈망이 표출된 것이라 한다. 유명한 작품으로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등이 있는데, 이 소설에선 '바스커빌가의 악마 개'가 그 주체라고 하겠다. 


'악마 개'의 시작은 18세기 중반, 고딕소설로 표출될 억압된 욕망의 갈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 사람들의 갈망이 만들어낸 허상은 허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때론 허상이 실상보다 무서운 법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서운 게 아닌가. 


소설이 만들어진 때가 1901년이니 복잡다단한 당시의 세계가 투영되었을 것이다. 보어전쟁이 한창인 당시, 17세기부터 전 세계를 호령한 대영제국은 서서히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 힘이 예전만 못한 것. 그런데 그 대상이, 그 적이 누구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사방이 적인 게 아닐까. 소설은 그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소설이 갖는 으스스한 분위기는 고스란히 당대 영국이 느끼는 으스스함이었을 것이다. 홈스와 왓슨은 과연 이 초자연적인 사건들과 알 수 없는 으스스함의 원인을 찾아 훌륭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역시 그러하겠지만, 이번에는 그리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영국이 홈스를 사랑하는 이유, 홈스가 반드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 홈스가 죽으면 안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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