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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정교하지 못한 기교로 '아름다운 잔혹함'을 표현한다면? <네온 데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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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네온 데몬>


콘텐츠에 있어서 '기교'가 전부여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영화같은 긴 호흡의 콘텐츠는 더욱 그렇다. <네온 데몬>은 기교에 대부분의 힘을 실은 듯한데, 그조차 정교하지 못했다.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예술성이 가미된 콘텐츠를 평할 때 전문가들이 '기교가 전부'라는 말을 하며 혹평을 주곤 한다. 엔간히 출중한 능력을 믿고 기본을 제대로 연마하지 않은 채 기교를 부리는 데에 따른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엔 괜찮다고 할지 모른다. 현란하고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밑천이 드러나고 말 것이다. 


영화는 은근히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에 기교가 어쩌고 저쩌고 하기가 쉽지 않다. 노래처럼 한 번에 판단하기가 힘들다. 그런 만큼 영화에 대고 기교를 말하는 건, 대상이 되는 그 영화가 얼마나 기교에 힘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시종 일관 기교를 보여주려 애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코타 패닝'의 동생 '엘르 패닝' 주연의 <네온 데몬>이 그런 경우다. 강렬하게 시작한 영화는 시종 일관 현란한 기교로 눈을 범하려 한다. 아무래도 모델에 대한 이야기니 만큼 으레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도가 좀 심하다. 그 기교가 졸음을 선사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한숨을 토해내게 하니 말이다. 종종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모든 기교가 그러하고, 가끔 탄성을 자아낼 뿐이다. 


정교하지 못한 '아름다운 잔혹함'


영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아름다운 잔혹함, 오직 하나뿐인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블랙 스완>이 생각나게 하는데, 과연 잘 표현해냈을까.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영화는 얼핏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2010년작 <블랙 스완>을 생각나게 한다. 단순한 욕망을 넘어선 광적 집착이 가져오는 아름다운 파멸을 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건 비슷한 극초반의 분위기에서 온 '눈속임'에 불과했다. <블랙 스완>은 그 특유의 분위기를 심리 스릴러 라는 장르에 훌륭히 장착해 끝까지 끌고가는 반면, <네온 데몬>은 그 분위기가 오히려 영화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결정적인 차이는 아마 주연 배우들의 연기 내공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치명적이긴 하다. 얼마나 아름다울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2011년작 <드라이브>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른바 '아름다운 잔혹함'을 극대화시켜 보여주었는데, 잔혹함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정교한 기교를 사용했으면 아름답다고까지 했을까 싶다. <네온 데몬>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나지만, 그 기교가 정교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친절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랄까. 


이쯤에서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모델지망생 제시(엘르 패닝 분)는 혈혈단신으로 LA에 온다. 급하게 만난 사진가 지망생(듯한)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해 자신의 미모만 믿고 모델에이전시로 간다. 역시나, 그녀의 꾸미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에 누구든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디네이터, 모델, 실장, 수석 디자이너 할 것 없이. 


제시도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걸 잘 안다. 그 아름다움이 어느 누구라도 탄복해마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녀는 단번에 탑모델로 올라선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녀를 향한 시기와 질투, 무엇보다 집착이 심해진다. 혈혈단신 그녀 주위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녀는 믿고 의지할 만하다고 판단한 코디네이터 집으로 피신을 간다. 그렇지만 그 코디네이터는 그녀를 집착하는 다른 탑모델들과 친하다. 제시는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엉망, 스타일이라도 좋다면 괜찮았을 텐데...


이야기가 참으로 듬성듬성이다. 그 방면으로는 봐주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감독이 승부를 본 스타일만 남는데... 그마저 괜찮지가 못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 어쩌지.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순수함'은 선도 악도 될 수 있다. 모델이 되기 전 제시는 순수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모델이 되고선 그 순수한 아름다움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진 못했다. 겸손함이나 자신 없는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순수한 악마만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도 화장을 지우고 모델의 옷을 벗으면 소녀로 돌아온다. 모델이라는 타이틀이 순수함의 방향타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런 심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패션 업계의 뒷 얘기와 심리 스릴러는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블랙 스완>이나 <버드맨>처럼, 겉으로는 화려하기 그지 없지만 그 뒤에서는 엄청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스타일에 맞게 잘 전달해주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물론 이 감독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보여주고자 한다. 문제는 그 스타일만을 과도하게 밀고 나가는 데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스타일로 조화롭게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야기와 스타일이 아니라 이야기는 이야기고 스타일은 스타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스타일이 엄청나다면 다른 게 엉망이더라도 크게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의 향연을 잠자코 지켜봐야 하는데,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더욱이 그 절대적 양이 왜 그리 많은지, 지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난감하지 그지 없지 않은가.


기대만큼 실망이 크다


영화를 보기 전, 많은 부분에서 기대를 하게 했다. 제목, 포스터, 감독, 주연, 주제나 소재 등. 낚이지(?) 않을 수 없게 해놓고는, 결과적으로 낚인 듯.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영화는 2016 칸영화제에 상영되어 관객으로부터는 기립박수를, 평단으로부터는 혹평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평단도 관객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평하는 나는, 혹평세례를 퍼붓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나? 영화가 던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받아내지 못했나? 너무 아름다운 가운데 너무 역겨운 상극의 이미지가 던지는,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잡아내지 못했나?


고백하자면, 제목을 보고 영화 포스터를 보고 감독을 보고 주연 배우를 보고 나서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간 거다. 그만큼 치명적인 영화를 볼 기대를 한 것이고, 그 기대가 보란듯이 물거품이 된 것뿐이다. 그뿐이다. 이만큼의 기대를 하지 않고 봤으면, 그만큼의 실망도 하지 않았을 거다.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하는 제시가 내 눈엔 촌스럽기만 하다고 느껴졌을 때, 그 실망이 배가된 것 같다. 영화 안에서 그들이 보는 제시는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의 전형이다. 그들 자신은 절대 갖지 못할 그것. 그런데 영화 밖에서 보는 일반인의 입장은 다르지 않은가. 그녀도 꾸미지 않을 때보다 꾸몄을 때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쁜 것 같은데 말이다. 그들은 제시를 보고 꾸미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꾸몄을 때를 상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물론 영화는 그런 심리조차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주구장창 스타일만 고수하며 알 수 없는 '짓거리'만 철퍽철퍽 뿌려댈 뿐이다. 난 심리 스릴러를 보고 싶었지, 비주얼 스릴러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스스로 생각하고 유추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신 이와 같은 영화를 보고 싶진 않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라면 그냥 지나가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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