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야스다 고이치 <거리로 나온 넷우익>치기 어린 네티즌들의 '우파 놀이터' 정도로 치부되었던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근래 들어 사회적으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2010년 초에 사이트가 생겼고 초기에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아니었다. 이후 우파 성향의 유저들이 대거 유입되어 커뮤니티 사이트로 변모해갔다고 한다. 그들은 많은 활약(?)을 이어갔고, 5·18 왜곡 및 폄훼로 정점에 다다랐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일베를 승리 공신 중 하나로 뽑은 바 있는 우파 논객 조갑제씨조차 5·18 당시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했다가 '종북'으로 몰리기까지 하였다.
오래전부터 여성과 이주민 등에 대해 도를 넘어선 감정을 표출하는 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던 시점에서 한 층 더 나아가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일명 '일베 현상'이다. 2013년 5월 28일 MBC <100분 토론>의 주제가 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일베. 토론에서조차 이들의 '현상'만을 가지고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논했을 뿐, '본질'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은 볼 수 없었다. 이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왜 이런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우리들과는 다른 그들인지. 우리들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인지.
<거리로 나온 넷우익> 표지 ⓒ 후마니타스
이 시점에 적절한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가 쓴 탐사 르포르타주 <거리로 나온 넷우익>(후마니타스)이다. 저자는 일본의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를 밀착취재 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왜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극우주의적 성향을 띠게 되었는가. '현상'과 '본질' 모두를 규명하려는 균형 감각을 아주 잘 유지한 책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재특회는 애국, 반외, 반조선(남북한 모두), 반중국, 반좌익을 표방하는 우익단체로, 궁극적으로 재일 특권 폐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재일 특권이란 재일 코리안이 가지고 있는 특별 영주 자격과 조선학교 보조금, 생활보호 우대, 통명 제도(일본어로 된 이름으로 바꿈) 등을 말한다. 다른 외국인과는 달리 재일 코리안에게만 주어지는 자격 및 우대들이다.
이를 빌미로 해서 생활고로 수많은 일본인들이 자살하는 시점에 왜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특권을 제공하고 우대를 해주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며 외국인은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시위한다. 지난 16일, 여지없이 반한 시위를 하다가 멤버 일부가 반한 시위 반대 그룹의 멤버 일부와 몸싸움을 벌여 회장을 비롯한 재특회 관계자 4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얼핏 '현상'만 보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봐도 진실은 드러난다. 저자는 '재일 특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재특회가 주장하는 '재일 특권'을 조목조목 나열하여 파헤친다. 특별 영주 자격은 말 그대로 특권이라기보다 '자격'일 뿐이고, 조선학교 보조금은 사실상 지급되지 않고 있으며, 생활보호 우대는 허위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통명 제도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 당시, 자의 반 타의 반 일본으로 오게 된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것이라 말한다. 그러며 통명 사용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통명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코리안이라고 차별이나 불이익을 주는 모순적인 일들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충격을 던져준, 재특회 회원의 '정체'
여기서 저자도, 독자도 의문이 든다. 도대체 그들은 왜 거짓말로 점철된 주장을 진실인 양 외치며,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는 것일까. 우린 그 '현상'만을 알 뿐이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신경 끄자.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고 배배 꼬였는지. 쯧쯧."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불만과 불안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등장한 배경에는, 불안정 고용이 급증해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해소할 길이 없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가진 젊은이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사실이 있다. 그런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배출할 곳을 찾아 약자를 공격하는 것은 아닐까?(분문 속에서)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분노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국가적인 분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안과 불만이 종착점을 찾다 도착한 지평이 우연히 애국이라는 이름의 전장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는 모두 그곳으로 수렴된다. 그 분노의 선두에 달리는 것이 재특회라면, 그 밑에 펼쳐진 광대한 수맥이야말로 그런 '분위기'가 아닐까?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재특회는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낳은' 것이다.(본문 속에서)
오랜 시간 그들을 밀착 취재하고 인터뷰한 저자의 생각 또한 비슷하다. 그들은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찬 이 세계가 낳았다고 말이다.
재특회도 한국의 '일베' 등처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출발했다. 어떤 정치적 배경 없이 각종 유머를 공유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을 찾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려했던 '일베'와 비슷하게, 재특회 또한 일상의 스트레스나 불만들을 해소할 방편을 인터넷에서 찾으려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들은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를 비롯한 간부들이 거리로 나가서 시위를 벌이며 세상을 향해 속 시원하게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던 것이다. 그들의 불만은 한 곳으로 모여 강력한 화살이 되어 재일 코리안으로 향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재일 특권'은 일종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일찍부터 재일 코리안이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경위나 직접적인 피해 때문에 발생한 증오가 아니라, '보호받고 있다', '우대받고 있다'라는 일방적인 인상이 '재일 코리안 비판'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본문 속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재특회 회원들의 '정체'를 두고 충격 아닌 충격을 받으며 신기해한다. 생각해왔던 이미지와 너무나 다르고, 한두 명이 아닌 모든 회원들이 같은 이미지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과 다를 바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소에는 일본인 특유의 그 깍듯한 예의가 몸에 배어 있고, 아주 친절하다 못해 나긋나긋한 사람들이다. 동시에 평생 세상에 불만 한번 토로한 적 없는 평범한 소시민. 그들이 우연한 기회에 애국심(힘든 삶의 일정한 원인을 제공한 사건을 알게 되었고, 그 사건이 주로 외국인 우대의 차원에서 일어났음)이 발호되었고,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게 된 것이다.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은 시대, 고독을 강요당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던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강한 사람을 추종하려 한다. 사람은 파시스트나 인종차별주의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설사 선량함과 자애로 가득 찬 사람일지라도.(본문 속에서)
재특회는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캐치했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를 잡아 어느 한 부분을 확대시키거나 없는 사실을 호도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저자는 나름대로의 결과를 도출시키며 재특회는 '이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이웃'처럼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하다는 뜻. 우리와는 다른 그들이 아닌 우리들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이라는 뜻에서 '이웃'이라는 것이다.
재특회에게 재일 코리안은 '진격의 거인'?
출판사에서는 일본의 재특회를 한국의 일베와 대비시키는 전략을 사용해, 표지에 "한국에 일베가 있다면, 일본에는 재특회가 있다"는 카피를 달았다. 외국인 혐오 같은 면에서는 공유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단순 비교를 읽기 전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그들을 비난하거나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게 만듦으로써, 일베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나아가 궁극적인 통합으로의 생각까지 들게 하였다. 출판사에서도 카피는 조금은 과격하게 뽑았지만, '다 읽어보면 알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제목이다. 그 중에서도 부제인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가 상당히 모호했다는 의견을 드리고 싶다. 이 책의 포인트는 재특회가 어떻게 '넷우익'에서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냐는 것이라기보다, 재특회를 비롯한 신우익의 '본질'을 탐사하고 그들이 '왜' 그런 사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게끔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우리나라에 일본의 '재특회'에 비견할 만한 것이 있을까? 이런 비교나 연상이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우리와는 다른 그들'로 구분하고 비판하는 데 그친다면, 이 책이 의도하지 않는 바다.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개별적인 현상을 넘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분노와 증오를 문제 삼고, 우리 자신을 한 번 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옮긴이의 말)
이 책에 관련해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 하나 더 있다.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10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발빠르게 애니매이션화되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 <진격의 거인>이다.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인류 사회에 갑자기 거인이 나타나 인간을 잡아먹었다. 이에 인류는 높은 성벽을 사방으로 몇 겹을 두르며 방어했다. 하지만 거인은 잊을만 하면 침공해 인류를 위험에 빠트린다. 거인의 약점을 연구한 인류는 어떻게든 거인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온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초거대 거인의 출현. 인류는 위험에 빠진다.
<진격의 거인>에 대한 일반적 해석은 이렇다. 극 중 인류는 일본을 가르키고, 극 중 거인은 중국을 비롯해 일본을 직간접적으로 위협하는 나라를 가르킨다. 이 만화가 기이하게 많은 인기를 누리는 점과 현재 정세를 생각해보면, 일면 타당성 있는 해석이다.
그런데 이 해석을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 맞추면 더욱 기막히게 들어 맞는다. 극 중 인류는 재특회를 가리킨다. 재특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갑'질하는 우익, 돈 많고 권력 있는 보수계층과는 거리가 있는 단체이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며 일명 '재일 특권' 철폐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를 확장시켜 다른 모든 외국인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기엔, 재일 코리안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특권을 앞세워 일본을 집어삼키려 진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재특회에게만은 거인보다 더욱 크고 무서운 존재이다.
이를 누구보다도 기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평범한 사람들이 불만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을 방출하고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재특회를 만들고 활성화시킨 것이다. 이는 자칫 파시즘적인 성격을 띨 위험이 있다.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면 무시 못할 움직임이 일어날지 모른다.
어쩌면 재특회라는 방파제가 해일이 일기 전의 파도를 간신히 막아서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되, '현상'만을 보고 '본질'을 모두 파악한 양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문제의 '본질'을 찾아 나설 때다.
"오마이뉴스" 2013.6.17일자 기사
'신작 열전 > 신작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흔한 말 카오스, 제대로 알고 있나요? (2) | 2013.06.24 |
---|---|
조선에서 세자로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 (0) | 2013.06.21 |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물리학 (2) | 2013.06.11 |
시대와 소통하는 매체가 필요하다 (0) | 2013.06.09 |